2023.10.8. 열왕기하 5:1-8 '고쳐주소서' - 김양재 목사님
1. 복음 전하는 위대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아만은 벤하닷 2세 때 공을 많이 세운 장군이었음. 그런데 아람이나 나아만 자신은 몰랐지만 이 위대한 승리는 사실 하나님이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다고 지금 1절에 그렇게 이제 밝히고 있음. 이 말은 나병도 하나님만이 낫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지금 암시하고 있음. 1절에 시작과 끝이 다 있음
나아만은 이렇게 장수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화를 얻은 큰 용사였지만 그에 대한 마지막 소개는 나병 환자임. 사회적인 편견을 피할 수 없는 저주받았다는 인식을 달고 살아야 되는 나병은 나아만 자신에게는 이 병 하나의 무게가 앞에 나온 모든 찬란한 수식어의 무게보다 훨씬 더 이제 무거웠을 것임
이 얘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역한 결과, 포로로 잡혀간 이방 땅에서 왜 잡혀가는지 그 이유를 지금 설명하시는 것임. 하나님은 왕이시고 이스라엘은 큰 용사이나 나병 환자라는 것임. 고칠 수 없는 질병을 걸렸다는 것임
우리도 아무리 대단하게 모든 것을 쌓아놓았어도 하나님 앞에서 다 같이 죽을 인생임. 밑동 잘린 나무 같은 인생임. 티끌에 불과하다는 것임
그런데 그의 집에는 이스라엘에서 잡아온 어린 소녀 노예가 있었음
나아만이 이끄는 아람군은 이제 이스라엘을 쳐들어가서 계속 그때마다 노예로 쓸 사람들을 많이 잡아왔음. 그중에 총명해 보이는 어린 소녀 하나를 자신의 아내의 몸종으로 삼았음
여기 어린 소녀는 단지 나이가 적다는 뜻만 아니라 작고 보잘 것 없는 계집종이라는 뜻임. 그래서 이름도 나오지 않음. 크고 존귀한 나아만과 정반대임. 게다가 나아만은 왕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장군이지만 소녀는 사로잡힌 노예임. 나아만은 많은 군대를 호령하지만 소녀는 여주인에게 수종 듦. 한마디로 나아만은 강자고 어린 소녀는 약자임
그러면 누가 누구를 동정하고 도와야하나? 나아만이 어린 소녀를 불쌍히 여겨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실제로는 이 어린 소녀가 이 나아만을 불쌍히 생각함
나아만의 빨래방에서 나아만이 그 갑옷으로 철저히 감추고 너무도 숨기고 싶은 왕의 나병을 알게 되었음. 나아만이 그 권세를 가지고도 도저히 고칠 수 없는 그 고통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를 이 소녀가 본 것임. 그런데 이때 이 소녀가 한 사람을 딱 생각했음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바로 엘리사임. 아마도 이 소녀는 그 수넴 여인의 아들 살린 일을 들었을 것 같음. 죽은 사람도 살리는 선지자인데 나병은 당연히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이 소녀는 믿음. 만난 적이 없어도 한 성령이기 때문에 그게 믿어지는 것임
원수의 적국으로 잡혀가도 구속사가 믿어지는 사람은 이렇게 같이 통할 수가 있는 것임. 하지만 이 소녀에게 나아만은 어떤 사람인가? 자신을 납치해 온 원수임. 어쩌면 자기 보는 앞에서 부모가 아람 군대에게 다 죽었을지도 모름. 여러분이 이런 처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병의 고통보다 훨씬 더한 고통을 당해도 싸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어린 소녀이고 종이라도 내가 주님을 만나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앎.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옳고 그름으로 나가는 것임. 성경의 모든 이야기가 원수 사랑 이야기임
근데 그 원수의 죄보다는 디모데전서 1장 15절처럼,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알게 되면 내가 가장 극형을 당해야 될 사형수인데 경범죄자를 용서하는 것은 당연한 것임. 그런데 나의 죄를 이 세상의 윤리적인 죄로만 생각하기에 나는 죄 없고 너는 용서할 수 없어 이렇게 되는 것임. 늘 이 땅에 옳고 그름으로 복수, 복수만이 나의 답이야 이러는 것임. 이 세상은 용서받은 죄인과 용서받지 못한 죄인만 있을 뿐이라는 것 이것을 모름
그러니까 내가 예수를 믿게 하려면 용서하지 못할 사람을 사랑할 때, 그곳에 예수가 전파되고 치유가 일어나게 됨. 내가 용서할 때 치유는 나에게 일어나는 것임. 그 상대방보다는.
그런데 주님과의 만남이 없이 이 말을 들으면 맹렬한 분노가 올라옴. 그래서 온 나라가 상대 진영을 죽여라 하는 것임
몸종으로 사로잡힌 소녀가 이 위대한 장군을 불쌍히 여겼음. 그래서 그 장군의 살 길을 알려줌.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나병으로 지옥을 살던 나아만 부부에게 참으로 기쁜 소식 복음을 전해준 것임
누가 진정 위대한 사람인가?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나병 때문에 괴로운 큰 용사 나아만보다 위대한 사람은 원수조차 긍휼히 여겨 살 길을 알려주는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무명의 계집 여종 소녀임. 이 소녀의 존재나 상황이 위대하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님. 복음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며 산다는 믿음. 심지어 원수에게조차 차별 없이 복음을 알려주는 그 믿음이 위대한 것임. 다시 말해, 복음이 위대하기에 그 복음을 전하는 소녀가 진짜 위대한 사람임
적용 질문)
크고 용사이지만 감추고 싶은 나병은 무엇입니까?
나는 사형수라고 생각합니까 경범죄라고 생각합니까?
이런 말조차 들으면 맹렬한 분노가 올라옵니까?
여러분은 내 처지가 초라해도 힘든 내 옆의 사람에게 우리들교회를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겠습니까?
2. 나병 같은 고난이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3절과 4절 사이에는 어린 여종이 전한 복음을 들은 부인이 나아만에게 그 복음을 전했음. 그 복음을 들은 나아만은 왕에게 허락을 구하고 그 선지자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함
우리가 그렇게 아끼는 자녀들의 말도 무시할 때가 많음. 하물며 여종의 말이라면 여러분은 믿겠는가? 그것도 보통 말이 아님
그 당시 강대국 아람의 모든 의술이며 주술을 다 동원해도 고칠 수 없는 나병임. 그런데 그 나병을 고칠 선지자가 적국 이스라엘에 있다고 함. 믿기 힘든 말이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말임. 이 말을 왕이나 모사가 아닌 자기 집 여종이 해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아만 부부는 이 말을 믿음. 그러면 이들이 특별한 믿음이 있어서 이 복음을 믿었겠는가? 믿음과 전혀 상관없는 이방 사람임. 게다가 아람의 대장군임. 믿음을 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 그런데 어떻게 이 부부는 어린 소녀가 전한, 그때는 믿음이 아니었지만 참 기쁜 소식인 이 복음을 믿었겠는가? 바로 나병이라는 고난이 있었기 때문임
이 나병이야말로 안 해본 것이 없는 이 부부에게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라도 믿을 수 있게 하는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낮고 낮은 마음을 갖게 했음
그래서 나아만은 이제 왕에게 나아가 소녀가 전한 복음을 왕에게 전함. 그러자 또 왕은 어떻게 하는가? 아끼는 장군 나아만의 나병을 고칠 선지자가 이스라엘 사마리아에 있다는 보고를 받은 아람 왕은 나아만을 이스라엘에 기꺼이 보냄. 그냥 보내지도 않음. 오늘날로 이거 따지면, 금 가치만 해도 40억이 넘고 한 100억 정도 되는 예물을 바리바리 실어서 보냈음. 친서, 이 강대국의 친서까지 동봉을 했음
이게 아람 왕이 또 믿음이 있어서 이걸 보냈겠는가? 아람 왕이 의리가 있어서인가? 나아만에게 의리 지키려고 보냈는가? 그게 아님.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님. 아람 왕에게 나아만은 너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임. 그를 위한 일이라면 뭐든 해줘야 됨. 그래야 자기가 안전하고 자기 나라가 지금 살아남을 테니까. 아람 왕이 비록 왕이지만 나아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약점이 있었다는 얘기임. 그게 없었다면 아람 왕이 뭐하러 가기도 싫은 이스라엘 왕에게 그런 엄청난 선물을 보내면서 부탁을 하겠는가. 그러니까 우리의 모든 관계는 이해타산을 따라 움직이는 것임
나아만에게 나병이 있었기에 이 어린 소녀가 알려준 복음을 듣고 선지자를 찾아가려고 했듯이
아람 왕도 나아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그런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분에 넘치는 선물을 이스라엘 왕에게 주며 나아만이 선지자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도운 것임
아무 문제없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사실 내가 스스로 하나님 되고자 하는 마음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의 마음임. 요즘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임
따라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고난이 올 때 어찌 이런 일이라며 슬퍼하거나 화내지 마세요. 우리가 아플 때 약 먹을 시간이 되면 약을 먹어야 함. 어떤 종류의 고난이든 그것이 찾아오면 영적인 약을 먹을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알람인 줄을 아시기 바람. 무슨 약이요? 구약과 신약. 하나님 말씀의 약. 여러분들이 하도 안 먹으니까 이 정도 병 가지고는 어림도 없으니까 더 심한 병을 주시는 것임. 약 먹으라고. 그래도 그거 먹어야지 천국에서 입성할 거니까 사랑의 약임. QT 할 시간인 것임. Question Time. 이 고난에 대해서 주님께 묻고 나에 대해 묻고 주님의 뜻에 대해 묻는 이 말씀의 약을 먹으라고 주시는 축복의 타임이 고난인 것임
적용 질문)
고난이 축복이라는 고백이 있습니까?
모든 인간관계를 객관적으로 분별하십니까?
3. 옷을 찢는 탄식에도 응답하십니다.
아람 왕 벤하닷은 이제 이렇게 선물, 편지를 함께 보냄. 근데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주소서 함. 아람에서는 주술을 베푸는 제사장들이 다 왕의 부하임. 왕의 수하로 있음. 그러니까 왕이 한마디 명령하면 이제 고쳐줄 거다 이 말임. 그리고 또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어린 소녀도 아는 일을 왕이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음. 하지만 믿음이 하나도 없는 여호람은 아람 왕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함. 엘리사 선지자를 생각도 못함. 그저 아람 왕이 불가능한 요구를 자기에게 던지며 전쟁의 명분을 쌓는다고 해석함
내가 하나님이야? 내가 어떻게 고쳐? 이거 완전히 시비 거는 거잖아? 나보고 어쩌라는 건데? 이러면서 옷을 이제 찢는 것임
옷을 찢는 것은 한계 상황에 이르렀을 때 그 절망과 슬픔과 분노를 표현함. 말로 다 할 수 없는 마음 속 격동을 드러내는 행위임. 우리가 너무 기가 막히는 상황을 만나면 어찌할 바를 몰라 소리 지르고 펄쩍 뛰고 머리카락을 잡아 뜯고 혼자 난리를 부림. 근데 이스라엘 왕이 지금 딱 그런 상황임
왕들이 그냥 할 수 없이 계속 세습해서 내려오다 보니까 정말 고난이라고는 없어가지고 하나님이 선지자와 사건을 통해 그렇게 지금 말씀하셨음. 엘리야부터 850명의 바알 선지자를 물리친 사건에서부터 개천에 땅 파서 비 오게 한 것부터 기름, 과부, 수넴 여인 다 들었는데 여호람은 꿈쩍도 하지 않음. 이제 하나님 좀 찾을 때가 되었잖아요? 그런데 끝까지 자기감정에 사로잡혀서 기뻤다, 슬펐다, 옷을 새로 해 입었다, 찢었다 이거 반복하고 있음
그의 눈에는 엘리사가 보이지 않음. 그의 귀에는 엘리사에 대한 소문도 들리지 않음. 여호람은 한다는 일이 깊이 생각해서 아람 왕이 전쟁 일으키러 왔다고 쫙 얘기하는 것임. 깊이 생각해서 오버센스를 함. 깊이 생각할 것을 깊이 오해해서 이렇게 의심만 함
깊이 오해하고 있는 것을 바꿀 수가 없는 집들이 너무 많음. 그래서 의처증, 의부증, 의심병들이 분별과 의심은 다름. 분별은 구원 때문에 내가 생각을 해보는건데 의심은 자기의 감정에 충실해서 날마다 의심하는 것임
그런데 하나님은 이 믿음 없는 여호람의 탄식조차 들어 응답하심
적국의 장관이 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까? 수없이 이스라엘 사람을 잡아가는 아람이 하나님을 왜 알아야 돼요? 그런데 엘리사는 주변 국가가 지금 다 알아야 되기 때문에 불치병을 고치는 하나님을 그들에게 보여야 되는 것임
그런데 이스라엘 왕의 사명은 하나도 없고 탄식만 하고 있으니까 네가 무시하는 그 적국에 나아만이라도 믿게 해서 거꾸로 하나님을 좀 알리시고자 하는 뜻이 있는 것임. 그래서 여종을 아람에게 보내고 나아만 집에 보내서 거기서 전해서 지금 거꾸로 역수입이 됐음
그래도 결국에는 엘리사를 불러 가니까 그래도 이게 믿음의 나라 맞음. 결국에는 끝에 가서는 엘리사를 또 부름. 내 옆에 나아만이 곳곳에 있음. 다들 영적으로 죽은 나병 환자이고, 밑동 잘린 나무처럼 다 죽을 인생인 것임. 아무리 군대 장관이라도 그 안에 하나님이 없으면 다 불쌍한 영혼임
여호람이 유다 왕 여호사밧과 함께 모압을 치다가 물이 떨어졌을 때도 엘리사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거기 와 있었음. 이번에도 여호람이 엘리사를 생각하지도, 찾지도 않았는데 엘리사가 왕이 옷 찢으며 탄식했다는 말을 또 들었음. 그러면 이제 엘리사가 왕에게 뭐를 좀 구해볼까 그래서 관심 있는게 아니고 왕이 나라 전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니까 항상 왕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것임. 왕 한 사람도 이렇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나라 전체가 돌아올 수 있으니까 엘리사가 끊임없이 왕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그에 대해서 파악을 하고 있음. 엘리사는 그때마다 옆에 있음. 왕을 도우려고 준비가 딱 돼 있음
우리가 나라를 위해,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이래야 됨. 모든 목적이 구원이기 때문임
상황을 들은 엘리사는 왕에게 사람을 보내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함. 그러면서 뭐라 그러죠?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나병을 고칠 선지자가 이스라엘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왔지만 이제 자기를 만나면 그게 진짜 소식인 줄을 알게 될 거다 약속을 이제 하는 것임. 여호람에게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면 되지 옷을 왜 찢어요. 나아만의 나병 고치는 일은 당신의 일이 아니에요. 이건 하나님 선지자의 일이고 하나님의 일이에요. 당신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일이에요. 당신이 어떻게 나병을 고쳐요? 손 떼고 내게 맡겨라 엘리사가 이러는 것임
그러니까 할 수 없는 일 혼자 짊어지고 있어야 옷 찢는 일밖에 할 게 더 있겠어요? 여러분?
할 수 없다는거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라, 하나님께 맡겨라, 말씀을 들어라 이런 말씀인 것임
믿음 없는 여호람이 옷을 찢는 탄식에도 그런데 하나님은 귀 기울여 들으시며 응답하심. 구원을 약속하시는 말씀으로 응답하심. 그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있기 때문임. 구속사의 계보를 부정하고 떠난 북이스라엘이지만 그래도 아브라함의 후손임. 그래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 살고 있음.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임. 바로 이 이유 하나 때문에 여호람의 향방 없는 탄식조차 들으시고 말씀으로 응답하심
하나님께 소중한 것은 한 영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교회는 하나님이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정하신 통로임. 교회가 이렇고 저렇고 저마다 불평할 수는 있어도 교회를 떠나면 안됨. 주님의 몸인 교회 안에 거할 때 주님이 연약한 우리 때마다 분량대로 고쳐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날마다 고쳐주소서, 고쳐주소서 이것만 하면 됨. 고쳐주소서 믿음 없는 우리의 외침과 탄식과 불평에도 귀를 기울여 들으시는 줄 믿습니다. 약속의 말씀으로 응답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붙어만 있으면 수지맞는다고 하잖아요. 그래야 가정도 안 깨고 회사도 나가는 거예요.
모두 공동체한테 꼭 공동체 안에 꼭 붙어서 작은 신음에도 응답 받는 은혜를 누르시길 바랍니다.
적용 질문)
내 힘으로 하려다가 옷을 찢으며 절망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나 홀로 신앙에 머물고 있지는 않습니까?
공동체에서 탄식했을 뿐인데 응답받은 적이 있습니까?
김경은
나의 정체성을 직장에서 찾으려 하는 나병을 고침 받고, 그 근원에 대해 묵상하기를
박소영
고난 없기를 바라는 게 내가 스스로 하나님 되고자 하는 악임을 알고,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과 공동체에 묻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