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1-3절)
아람은 다윗 왕이 점령한 뒤 오랫동안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뒤 유다 왕 아사왕 때 이스라엘 왕 바아사 유다를 공격했습니다. 다급한 아사는 아람왕 벤하닷 1세에게 큰 재물을 바치고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람이 북이스라엘의 적국이 됩니다. 그래서 아합왕 때는 아람 왕 벤하닷 2세가 침략하여서 수도 사마리아를 포위하기까지 합니다. 이제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굉장히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아합은 결국 그 아람과의 전쟁 중에 전사를 합니다. 이때가 이스라엘은 그 오므리 왕조 때로 상아궁 짓고 가장 강성할 때입니다. 나아만는 바로 이 벤하닷 2세 때 공을 가장 많이 세운 장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람이나 나아만 자신은 몰랐지만 그 아람이 이긴 것은 사실 하나님이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을 지금 1절에서 열왕기 기자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나아만은 이렇게 장수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명예를 얻은 큰 용사였지만 그의 마지막 소개 말은 나병환자입니다. 고칠 수 없는 질병에 사로잡혀 있는 겁니다. 우리도 아무리 대단하게 모든 것을 쌓아놓았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같이 죽을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밑동 잘린 나무라는 겁니다. 나아만이 이끄는 아람 군은 수시로 이스라엘을 쳐들어가서 노예로 쓸 사람을 많이 잡아 왔습니다. 근데 그중에 아주 총명해 보이는 한 어린 소녀를 나아만 자신의 그 아내의 몸종으로 삼았습니다. 나아만는 많은 군대를 호령하지만, 소녀는 여주인에게 수종듭니다. 한마디로 나아만은 강자고, 어린 소녀는 약자입니다.
그러면 누가 누구를 동정하고 도와야 합니까? 나아만이 어린 소녀를 불쌍히 여겨야겠죠? 그런데 실제로 이 어린 여종이 나아만을 생각합니다. 나아만의 빨래방에서 섬기다가 이 나아만이 갑옷으로 철저히 감추고 너무나도 숨기고 싶은 그 주인의 나병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나아만이 그 나는 새도 정말 떨어뜨릴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도 도저히 고칠 수 없는 그 고통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이 소녀는 그걸 봤습니다. 이때 이 소녀가 사마리아에 꼐신 선지자 엘리아를 생각합니다. 죽은 사람도 살리는 선지자인데 나병쯤 못 고치겠어요? 소녀는 그런 믿음이 있는 겁니다. 이 어린 여종이 언제 엘리사를 만나 봤겠습니까, 만난 적이 없어도 한 성령이기 때문에 엘리사가 믿어지는 겁니다. 하지만 이 소녀에게 나아만는 어떤 사람입니까? 자신을 납치해 온 원수입니다. 어쩌면 부모가 자기 보는 앞에서 다 아람 군대의 손에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나병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당해도 싸다고 여겨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어린 소녀이고, 여종이라도 주님을 만나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거를 알게 되는 겁니다. 용서받은 죄인과 용서받지 못한 죄인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이제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가 전파되려면 용서받지 못할 사람을 사랑할 때 예수가 전해지고 그리고 치유가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근데 주님과의 만남이 없다면 이 말을 들을 때 맹렬한 분노가 올라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몸종으로 사로잡힌 소녀가 이 위대한 장군을 불쌍히 여겼다는 겁니다. 살길을 알려줍니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나병으로 지옥을 살던 나아만 부부에게 참으로 기쁜 소식 복음을 전해준 겁니다. 소녀의 존재나 상황이 위대하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며 산다는 믿음 심지어 원수 에게조차 차별 없이 복음을 알려주는 그 믿음이 위대한 것입니다. 복음이 위대하기 때문에 그 복음을 전하는 소녀가 진짜 위대한 사람입니다.
적용: 크고 용사이지만 감추고 싶은 나병은 무엇입니까? 나는 사형수라고 생각합니까, 경범죄라고 생각합니까? 이런 말 들으면 맹렬한 분노가 올라옵니까? 여러분은 내 처지가 초라해도 힘든 내 옆의 사람에게 우리들교회를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겠습니까?
2. 나병 같은 고난이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4-5절)
어린 여종이 전한 복음을 들은 부인이 나아만에게 그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복음을 들은 나아만은 왕에게 허락을 구하고 그 선지자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당시 강대국 아람의 모든 의술이며 주술을 다 동원해도 고칠 수 없는 나병인데 그 나병을 고칠 선지자가 적국 이스라엘에 있다고 하는 겁니다. 믿기 힘든 말이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말입니다. 이 나병이야말로 낫기 위해 안 해본 것이 없는 이 부부에게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라도 믿을 수 있게 하는 그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고 하는 그 낮고 낮은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그 래서 나아만은 왕에게 나아가서 소녀가 전한 복음을 왕에게 전합니다. 벤하닷 2세는 아합과 끊임없이 싸웠어요. 두 번이나 크게 패했고, 그중 한 번은 아합에게 거의 항복하다시피 목숨을 구걸하며 살았어요. 그래서 아합이 죽은 것도 아람과의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끼는 장군 나아만의 나병을 고칠 선지자가 이스라엘 사마리아에 있다는 보고를 들은 아람 왕은 나아만을 이스라엘에 기꺼이 보냅니다. 근데 그냥 보내지 않습니다. 옷 10벌만 아니라 은 350kg, 금 50kg을 보냅니다.
아람 왕이 의리가 있어서 나아만을 살리고자 하겠습니까? 그게 아닙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아람 왕에게 나아만은 너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전쟁에 이긴 게 나아만의 공입니다. 자기가 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를 위한 일이라면 뭐든 해줘야 했습니다. 아람이 존재하고 있는 거는 나아만 때문이기 때문이입니다. 그래서 아람 왕이 비록 왕이지만 나아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약점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저절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지고, 돈이 없어지고, 자존심이 상하고, 몸이 고장나고, 계획한 일이 틀어지는 이런 육이 무너지는 고난이 없으면, 인간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볼 수가 없습니다. 나는 부자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고난을 당해야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또 내가 아는 것에 한계가 있고, 내 능력에 한계가 있고, 내 생각과 내 의지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게 축복입니다. 나아만에게 나병이 있었기에 그 소녀가 알려준 복음을 듣고 선지자를 찾아가려고 했듯이, 아람 왕도 나아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그런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분에 넘치는 선물을 이스라엘 왕에게 주며 도왔습니다. 우리도 이제 나병 같은 고난이 있을 때, 낮은 마음이 될 수밖에 없는 힘든 사람, 또 어려운 환경에 있을 때 또 이제 그 복음을 듣는 마음과 귀가 열리기 때문에 고난이 축복인 겁니다. 우리가 아플 때 약 먹을 시간 되면 약을 먹어야 합니다. 약 먹을 시간 되었다 이걸 잘 지켜야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고난이든 그것이 찾아오면 그냥 영적인 약을 먹을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알람인 줄 아시기를 바랍니다.
적용: 고난이 축복이라는 고백이 있습니까? 모든 인간관계를 객관적으로 분별하십니까?
3. 옷을 찢는 탄식에도 응답하십니다. (6-8절)
아람 왕은 이제 이스라엘 여호람에게 많은 선물과 함께 편지를 보냅니다.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주소서'라고 합니다. 아람 왕은 '당신의 나라에 있다는 선지자를 불러 나아만의 병을 고쳐주소서'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람에서는 주술을 베푸는 제사장들이 다 왕의 부하이고 수하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또 이스라엘에서 잡혀 온 어린 소녀도 아는 일을 왕이 모를 리 없다고 생각습니다. 근데 모르니 그저 아람 왕이 불가능한 요구를 자기에게 던지며 전쟁의 명분을 쌓는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면서 새 옷을 찢습니다. 옷을 찢는 것은 한계 상황에 이르렀을 때 그 절망과 슬픔과 분노를 표현하는 행동입니다. 너무 기가 막힌 상황을 만나면은 어찌할 바를 몰라 소리 지르고 펄쩍펄쩍 뛰고 머리카락을 잡아 뜯고 난리를 치는데 이스라엘 왕이 지금 딱 그런 상황입니다.
적국의 장관이 왜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요? 수없이 이스라엘 사람을 잡아가는 아람이 지금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불치병을 고치는 하나님을 보여야 하는데 이스라엘 왕이 사명은 하나도 없고 탄식만 하고 있으니 '네가 무시하는 적국의 나아만이라도 믿게 해서 내가 너에게 하나님을 알리고자 하는 거다' 라고 합니다. 늘 생명을 내놔야 합니다. 내 옆에 나아만이 곳곳에 있습니다. 다들 영적으로 죽은 나병 환자고, 다 밑동 잘린 나무처럼 다 죽을 인생인 겁니다. 아무리 군대 장관이래도 그 안에 하나님이 없으면 다 이렇게 불쌍한 영혼인 겁니다. 최고 강국 지금 이스라엘의 여호람이 이렇게 믿음이 없는 겁니다. 어린 소녀만도 못한 겁니다. 하나님께 소중한 것은 한 영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이 그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정하신 통로입니다. 하나님이 자연도 아니고, 다른 책도 아니고, 오직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지식을 알려주신 것처럼 가족도 아니고, 나라도 아니고, 어떤 엘리트 집단도 아니라 오직 교회를 통해서 우리를 천국으로 불러주시는 줄 믿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이렇고 저렇고 때마다 불평할 수는 있어도 교회를 떠나면 안 되는 겁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 안에 거할 때 주님이 연약한 우리를 때마다 분량대로 고쳐주십니다.
적용: 내 힘으로 하려다가 옷을 찢으며 절망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나홀로 신앙에 머물고 있지는 않습니까? 공동체에서 탄식했을 뿐인데 응답받은 적은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