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대로 남았더라
열왕기하4:38-44
1. 흉년의 때에 말씀의 공동체에 머물러 앉아야 한다.(38a절)
엘리사가 갈멜산을 주요 기점으로 삼고 다시 길갈에 말씀을 전하러 갔는데 흉년이 들었다. 이 흉년은요, 8장에 나오는 7년 흉년이다. 이 기적의 사건들은 연대기 순은 아니다다. 엘리사의 사역을 주제별로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길갈이 어떤 곳인가? 여호수아 5장 9절에 보면, 수치의 돌이 물러갔다는 그 유명한 길갈이다. 에브라함 산지에 길갈이 흉년이 들은 이유가 짐작되이 된다. 금송아지 숭배를 하고 있는 북이스라엘은 오므리부터 아합과 아하시야와 여호람까지 4대를 이어지는 오므리 왕조의 악행으로 하나님이 반복해서 말씀하시고 사건을 주시는데도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흉년이 오면 항상 영적인 문제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 기근과 결핍이 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이렇게 살펴야 한다. 늘 흉년과 기근으로 우리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이시니까 이 흉년은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린 삶의 결론이다. 엘리야 때도 3년 가뭄을 허락하셨다. 엘리사 때도 가뭄에 이어 기근으로 이어지는 흉년이 또 온 것이다. 이 흉년의 악순환을 우리는 지금 가장 가까이 북한에서 보고 있다. 어떤 흉년을 주셔도 회개하지 않고 또 다른 흉년을 불러오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선교사 제이콥 로버트 무스가 쓴 『1900, 조선에 살다』 이 책은 최근인 2008년에 출간이 되었다. 1899년부터 1924년까지 20년 이상 양주와 춘천에서 교회 개척을 하고, 선교 활동을 하고, 학교 설립을 하는 등 그 당시 기독교 신자가 1만 명 가까이 되는데 이 선교사님의 역할이 아주 컸다.
그 당시 생활상 중에서 이제 민며느리를 데려오려면은 2달러가 필요한데, 주막에 한 끼 식사값이 2센트니까 한 20끼 식사값만 주면 데려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가난하면 태어나자마자 한 두세 살부터 먹고 살 것이 없어서 시댁으로 보내져서 시댁의 노예로 살게 된다. 너무 고된 학대로 희망이 없어서 그냥 우물에 빠져 죽어도 그냥 그다음 날 가만히 둘둘 말아가지고 산에 갔다 버리면 그다음 날 또 지체없이 다른 며느리가 들어온다. 이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가 우리 조선이라 것이다. 여자는 그냥 수도 없이 바꿀 수가 있었다. 또 그 여자들은 버려지면 누구든지 또 보쌈을 해서 데리고 갈 수가 있었다.
너무 가난하니까 밥 한 끼에 노예로 보내고, 이 가정이라는 단어 자체가 1950년 정도까지 없었다. 그래서 흉년과 기근과 가뭄이 반복되고 반복돼도 왕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그 길을 몰랐다. 그냥 인간은 악하고 음란하니까 그냥 그 표상인 것이다. 선한 게 하나도 없다. 기독교가 들어오고 이 반만년의 흉년과 가난을 해결해주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이 불과 수십 년 전의 일이다. 이랬던 나라가 지금 10위권의 우리나라와 똑같은 나라이다. 반만 년 동안 흉년을 거듭하던 우리나라가 지금 어떤 흉년과 뭐가 와도 그걸 감당해내고 있다. 태풍이 오고 가뭄이 와도 우리가 딸과 며느리를 밥 한 끼 팔아먹고 그러지는 앖는다.
당시 북이스라엘의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 앞에 앉았다고 한다. 여기서 앉았다는 히브리어 단어 [야샤브]의 기본적인 의미는 움직임을 멈추고 한 자리에 머물다 이다. 움직임을 멈추는 것도, 또 한 자리에 머물러 앉는 것도 다 목적이 있는 행위이다. 근데 제자들은 흉년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분주하게 다니는 일을 멈추고, 엘리사 앞으로 이렇게 나왔다. 가르침을 듣기 위해 그 앞에 자리를 딱 잡고 앉았다. 흉년이라는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 이런 공동체가 무슨 힘이 있어 보이겠나. 당장 쌀 한 톨 만들 수 있는 게 필요한 상황인데. 흉년에서-각자 여러분들의 흉년에서- 우리들교회에 와서 앉아있는 게 무슨 힘이 된다고 생각하시겠나. 그러니까 흉년 앞에서 떠나지 않고 이렇게 남아있기가 더 어려운 공동체이다. 43절에 보니까 그냥 공동체를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제자가 100명이나 된다.
물론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을 찾아야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는데 그 해결책 중 하나가 가정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는 게 되어서는 안 된다. 가정과 교회는 말씀으로 직접 세우신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2장 24절에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는 말씀으로 가정을 세우셨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 주님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말씀으로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에 가정과 교회는 그 모습이 때로는 연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우셨기 때문에 말씀의 공동체요, 거룩한 공동체이다. 따라서 가정과 교회는 문제가 생겼다고 떠나야 할 곳이 아니다. 문제가 생길수록 더욱 굳게 머물러야 하는 공동체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극심한 흉년 같은 문제가 와도 거기 붙어만 있으면 수지맞는 공동체이다. 이스라엘 어디를 가든 흉년을 피할 수는 없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앞에 앉은 사람들만이 흉년 가운데 먹고 남는 구원을 경험했다. 흉년에서 남은 것을 보고, 죄를 깨닫고 돌이켜 구원을 얻으려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공동체에 머물러 앉아야 한다
▪ 적용
Q. 어떤 흉년을 겪고 있습니까? 흉년을 핑계로 떠나려고 하는 곳은 가정, 교회 어디입니까?
Q. 내 역할의 자리에 딱 앉아있습니까? 어정쩡하게 서있습니까? 딴 곳을 바라보며 억지로 있습니까?
2. 한 사람이 중요한다.(38b-41절)
지금 엘리사는 흉년에 대해서 강의하지 않는다. 흉년을 극복하는 믿음에 대해서도 설교하지 않는다. 자기 사환에게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서 국을 끓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 사환은 뭘 해야 될지 모른다. 이 고대 사본은 이 사환이 게하시라고 하는데. 게하시의 무능력함은 계속 나오고 있다.
결국 솥에 국을 끓이려면 국거리가 있어야 된다. 근데 말씀 듣는 중에 이 국거리를 가지러 나간 사람은 한 사람이었다. 100명 중에 한 사람. 항상 한 사람이 중요하다.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갔다. 42절에도 바알 살리사의 한 사람이 나온다. 나 한 사람이 큐티하고, 예수 믿고, 적용하는 것이 모두를 살리는 길이다. 나 한 사람쯤 이야기가 아니다.
들포도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호박을 땄다 호박이 아니고 들호박이다. 겉모습은 호박인데 유사 호박이다. 근데 독성이 있어서 먹으면 심한 복통을 일으키는데 그럼에도 그가 그것을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 국을 끓이고, 이를 무리에게 먹게 했다. 흉년이 들었을 때는 이게 먹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분별이 안 된다. 하와가 왜 선악과를 먹었겠나? 먹음직 보암직하니까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반드시 죽으리라'해도 그냥 먹었다. 유혹이란, 이렇게 들호박처럼 교묘하기 때문에 이런 모든 유사 호박에 너나없이 속아 넘어갈 수 있다.
무리가 국을 먹다가 '솥에 죽음의 독이 있다' 하고 외친다. 지금 엘리사 말 듣고 들에 나가서 들호박을 따가지고 끓였는데 거기 독이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먹을 것이라고 생각도 안 한 것(들호박)을 지금 궁하니까 가지고 온 것이다. 가지고 오긴 했는데 와서 보니까 독을 같이 가지고 왔다. 우리가 종류별로 흉년을 맞이할 수 있다. 너무 취직이 안 되니까 평소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을 회사와, 너무 결혼이 안 되니까~ 평소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을 아내와 남편과 결혼을 했다 이것이다.
내 수준에 전혀 안 맞는 것 같은 배우자와, 회사와, 학교를 낮추고 낮추어서 택했는데 거기에 죽음의 독이 같이 온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복통과 흉통과 막 살 수 없는 아픔이 지금 밀려와요. 또 실제적으로 폭력을 행하고, 나가서 외도를 하니까 내가 저를 봐줘서 결혼했는데 외도를 한다고? 죽음의 독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다.
이렇게 모르고 그렇게 들호박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교회 다니면서 인도받으면서 결혼을 했는데도 먹어보니까 죽음의 독이 있다. 신결혼이라고 했는데 이 독이 있어 마음과 몸이 아파서 고통이 너무 커서 살 수가 없다. 객관적으로 보면 살 수 없는 부부가 너무 많다. 내가 적용해서 갔는데. 우리가 말씀 없이 불신결혼해도 택자라면 거기서 주님을 만난다. 그리고 일단 교회에 왔다는 것만도 택자라고 생각한다.
엘리사가 대단한 능력을 발휘한 게 아니다. 그냥 가루를 가져오라 그랬다. 엘리사는 앞선 2장 21절에서도 더럽혀진 여리고의 물을 정화할 때에 소금을 거기다 뿌렸다. 근데 지금 이 가루는 무슨 가루일까. 주석 책을 봐도, 어디를 봐도 그냥 곡식가루 이상도 이하도 아니디. 그냥 일반적으로 날마다 내 옆에 있는 것 중에 가장 흔한, 당장 할 수 있는 그런 가루. 흉년이니 뭔가 특별하고 귀한 가루였을 리는 없다. 사르밧 과부에게도 마지막 남은 밀가루가 있었던 것처럼 선지 학교 식당에도 밀가루가 조금 남아있었던 것 같다.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하고 싼 이런 밀가루를 솥에 던졌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은, 흉년 때 이상한 열매가 들어가서 먹지 못하게 된 국에 그나마 있던 밀가루를 던지는 거는 굉장히 경제적으로 손해이다. 가루를 솥에 던진 행위는 그야말로 다시 한 번 상식을 뛰어넘는 이상한 처방 같은데 또 상식을 지키는 처방의 대가 맞다.
그리고는 그 국을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한다. 지금 쓴맛, 독한 맛, 역한 맛의 상한 국을 맛보았는데 다시 어떻게 먹을 수 있겠나? 근데 독이 든 듯한 맛이 나는 국을 다시 먹어야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 와가지고 '다시 남편하고 살아라! 다시 부인하고 살아라!' 그러면 다시 그냥 쓰고~ 독하고~ 역하고~ 상한~ 그맛 생각해서 못 돌아간다. 조금 전에 먹었던 죽음의 맛의 기억에 갇혀서 먹지 않았다면 절대로 몰랐을 맛이다. 하지만 그 쓴맛의 기억을 넘어 엘리사 선지자의 말씀을 믿으며 국을 다시 먹었으니 국이 해독되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가루가 특별한 게 아니다. 하나님의 이 놀라운 권능이 역사한 복음의 가루인 것이다. 날마다 하는 큐티는 엄청난 가루가 되어서 우리를 해독한다. 오직 복음만이 말씀만이 삶의 중독을 해결할 수 있다. 지금 말이 안 되는 술 중독, 도박 중독, 게임 중독, 쇼핑 중독. 들호박처럼 이 독을 품은 온갖 중독들도 복음가루 하나면 해결이 되는 줄 믿는다.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시면 내 인생에도 독이 사라진다.
▪ 적용
Q. 말이 안 되는 적용으로 결혼하고, 회사 가고 했는데 죽음의 독이 올라옵니까?
Q. 죽음 같은 고난에서 말씀 듣고 채소 캐러나가는 한 사람입니까?
Q. 말씀의 해독가루로 없애야 하는 내 안의 독은 무엇입니까?
Q.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말씀하신 대로 독이 없어진 구원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Q. 이 세상의 모든 관계는 나를 위한 것임이 이해되십니까?
3.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42-44절)
또 한 사람이 흉년 중에 수확한 보리로 처음 만든 떡 20개와 채소를 가져온다. 바알 살리사는 세 가지의 주인이라는 뜻인데. 그 이름이 보여주는 것처럼 거기 이름에 바알이 들어가 있다. 농사가 잘 됐지만 기복으로 아주 끈끈히 뭉쳐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도 한 사람이 있다
어떤 한 사람인가? 바알 살리사는 셋째 우상 또는 셋째 남편이라는 뜻이 또 있는데. 이 사람이 셋째 남편쯤 돼서 곤고해가지고 예배가 회복되지 않았을까?
이 사람이 흉년의 때 처음 만든 떡을 가지고 온 것은 굉장히 예배를 사모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율법에 의하면, 모든 곡식의 첫 소산는 여호와께 바치도록 되어 있는데. 우리 중에 한 사람이 드리는 경건한 예배가 전체를 살릴 수가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는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다라는 표현이 4번이나 나온디. 40절에 사환이 끓인 솥의 국도 무리에게 주어 먹게 했고. 41절에 가루를 넣어 해독한 국도 무리에게 주어 먹게 했다. 42절에 또 바알 살리사에서 온 사람이 들인 떡 20개와 채소를 무리에게 주어 먹게 했다. 43절에 또 이 말을 들은 사환이 내가 어찌 이것을 100명에게 주겠나이까 하자 엘리사는 다시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그러니까 엘리사는 끊임없이 무리에게 줄 것이 있는가 생각을 하는데 믿음 없는 사환은 '내가 어찌 죽겠다? 내가 어찌 주겠다?' 내가 어찌-가 전공이다.
그러니까 엘리사의 사환으로서는 엘리사의 지시가 과거 우리나라 고참병의 지시처럼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때마다 말 안 듣는 이 사환은 왜 붙이셨을까? 예수 믿고 주님을 잘 따른다고 하면서도 십자가 지라고 하면 입이 나오고 힘들다고 불평한다. 그런 내 모습을 이 사환을 통해서 좀 보라는 것이다.
진짜 말씀이 들어가면 가난해질 수가 없다. 엘리사가 이렇게 이상한 처방을 내릴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나? 바로 여호와의 말씀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엘리사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떡 20개와 채소 한 묶음이지만은 100명이 되는 선지생도들이 다 먹고도 남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인생의 그 어떤 흉년도 하나님의 사람을 돌보려는 이름 없는 그 한 사람의 사랑을 막지는 못한다. 오흉년과 기근으로 우리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지만, 흉년을 통해 더욱 큰 사랑과 능력을 더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니까 처음 만든 떡을 드릴 만큼 경건한 바알 살리사의 믿음으로 공동체가 복을 받고,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은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은 뭐든지 헌금도 십일조도 자발적으로 잘하지만 목장 섬김도 자발적으로 섬기니까 먹고 남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신 것이다.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니까 이제 우리들교회의 열매로 보일 수가 있게 됐다. 이렇게 '말씀대로 하니까 먹고 남을 수가 있다'
4장에는 5가지 이적이 나왔는데 모두가 여호와의 말씀 가운데 행해졌고, 또 말씀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가 이렇게 큐티를 강조하고, 구속사적인 말씀 묵상 이걸 강조하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늘 먹고 남게 해준 줄 믿는다.
▪ 적용
Q. 여러분은 예배가 회복된 한 사람입니까?
Q. '내가 어찌 이것을!!' 이라며 지체들과 나누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다? 시간이다? 돈이다 목장이다? 나눔이다? (여러 가지 많잖아요. 내가 이것만은 나누지 못해! 하는 것)
Q. 여러분의 집과 목장은 해독 공동체입니까, 갈등 공동체입니까.
(기도제목)
지윤
1. 주어진 하루만 감사하면서 잘 살 있도록
2. 회사가는 날만 큐티를 하는데, 쉬는 날도 말씀보고 안식 얻을 수 있도록
다님
1. 남이 아닌 나를 위해 남은것임을 알고 독이 약이 되는 시간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신비를 알수있길
2. 해독과정에서 주어진것에 감사할수있도록, 생활예배가 우선시 될수있도록
세정
1. 흉년의 때 떠나지 않고, 말씀 공동체에 머무를 수 있는 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흉년으로 인해 말씀이 들려 먹고 남는 삶이 되기를
2. 아버지에게 복음이 전달 될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박재현 목사님 감사합니다. 아버지께 복음이 받아들여질 수 있길 소망합니다.
크리스틴
1. Regain the intimacy with God by diligently having the quiet time
주님과 인격적으로 회복함과 생활예배와 말씀 묵상 지속적으로 하도록
2. Dont keep things to myself and instead shout out the Lords name and share with brothers and sisters in faith community
힘든 부분을 혼자 간직 하지 않고 목장과 공동체에 나누도록
3. Praying that my niece and nephew will like their respective worship services so that they open up to services and worship.
조카들이 예배 시간을 좋아하고 귀하게 생각하여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우
1.흉년의 때 채소를 얻으러 귀국했더니, 내안에 독을 해독가루로 해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해석된 출애굽 간증이 은나팔이 되어 무리에게 나눠 줄 수 있도록, 처소를 지키고 감사하게 하루만 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