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23.09.10
본문: 열왕기하 4장 31-37절
제목: 눈을 뜨는지라
설교: 김양재 담임목사님
어두운 세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것이 눈을 뜨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 지수 중 600점은 평안, 700~1000점은 최고의 수준인데 깨달음입니다. 이 깨달음은 신성(예수님, 부처)과 결합되어있습니다. 우리는 20~30점 수준인 수치심을 안고 울며 삽니다. 이런 삶 가운데 어떻게 눈을 뜰 수 있을까요?
1. 엘리사의 지팡이라고 해서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31절.게하시가 그들보다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지도 아니하는지라 돌아와서엘리사를 맞아 그에게 말하여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게하시가 먼저 달려와서 아이 위에 엘리사의 지팡이를 올려놓지만 깨어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깨어나다'는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깨우러가노라 할 때의 단어와 같은데 '소생'을 의미합니다. 엘리사도 게하시를 믿고 먼저 보냈지만 아이를 깨어나게 하지 못합니다. 엘리사도 게하시를 분별하지 못한 것인데 엘리사가 하나님이 아니니 분별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엘리사의 지팡이를 약장수처럼 따라한다고 해서 능력까지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좋은 설교, 목회를 똑같이 따라한다고 해서 결과까지 똑같을 수 없습니다. 저번주 수넴 여인이 연기를 했다고 했는데 구원을 위한 연기인지 자기 이익을 위한 연기인지 알아야 합니다. 절대 같지 않습니다.
32절.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엘리사가 아이를 자기 침상에 눕힙니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고백하는데 아이가 죽었어도 엘리사를 대하는 태도가 한결 같기에 앞뒤가 같은 사람입니다. 가짜 평안이던 '아들'과 진짜 평안인 '하나님'을 이제야 깨닫고 엘리사에게서 떠나지 않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도 하나님이 감추셨기에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은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엘리사에게나 수넴 여인에게나 이 사건은 있어야 할 사건입니다. 아들의 죽음 사건이 암초 같지만 암초보다 깊은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 허락하신 사건입니다. 수넴 여인이 그동안은 엘리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겼지만 아들의 죽음 사건으로 하나님만 바라게 되고 하나님을 통해 엘리사를 섬기게 하십니다. 수넴 여인의 믿음의 수준이 높기에 죽음의 고통을 통과하고 생명 거는 적용을 하기 원하시고 허락하십니다. 말씀을 진리로 깨닫게 하시려고 사건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이 깨달음은 인간의 힘으로는 깨달을 수 없고 오직 예수의 자녀가 되어 예수님의 공로로써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들이 죽는 고통을 통해 하나님보다 더 큰 기쁨이 없음을 알게 된 수넴 여인과 그 여인을 알아본 엘리사는 겸손하게 됩니다.
Q. 적용질문
- 여러분이 자랑하는 엘리사의 지팡이는 무엇입니까? 모태신앙입니까? 유명 교회입니까? 직분입니까?
- 여러분의 신앙 패턴은 한결같습니까? 오르락 내리락 합니까?
2.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33절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엘리사가 방에 들어가 문을 닫습니다. 방문을 닫았다는 것은 문 벆의 어느 것도 의지하지 않겠다는 의미예요. 방에 들어가서 언약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기도는 독백이 아닌 대화예요. 기도하면 그분의 언약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기는 어렵죠. 그래서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해요. 하나님은 점차 키워가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에요. 특별히 '여호와'께 기도했다고 하는데 원어는 '팔랄'이에요. 의미는 공동체와 지체를 위해 간구하다 입니다. 하나님께 간곡히 호소하고 자기 자신을 자복했다는 겁니다. 간곡함과 자복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수넴 여인과 엘리사는 둘 다 통회 자복했어요. 아들을 살리는 건 엘리사가 아니라 하나님이에요. 수넴 여인과 엘리사 둘 다 이 사건을 통해 낮아져야하고 겸손해져야 했어요.
Q. 적용질문
- 절망적인 상황에서 통회자복하나요? 절망하나요?
- 말씀대로 적용하고 기도하는 게 왜 중요한지 이해가 되나요?
- 요즘 언약의 여호와께 기도합니까, 전능의 하나님께 기도합니까?
- 질문 훈련 잘하며 큐티 잘하고 있습니까?
3. 고정관념을 뒤엎고 엎드려야 합니다.
34-37절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엘리사가게하시를 불러 저수넴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엘리사가 이르되 네 아들을 데리고 가라 하니라여인이 들어가서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엘리사가 총 세 번 엎드립니다. 첫번째 엎드리다의 원어는 눕다 이고 두번째 세번째 엎드리다의 원어는 구부리다 는 뜻입니다. 자기 생각을 꺽고 엎어버리고 엎드린다는 겁니다. 자기 고정관념과 감정을 뒤엎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수고를 해야합니다. 엘리사가 자기 생각을 꺽고 엎드렸습니다. 당시 시체를 만지면 이레 동안 부정하게 된다는 규범이 있었는데 엘리사는 이 규범을 알면서도 아이의 주검을 만집니다. 스스로 부정하게 되는 행동을 합니다.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선 적용을 합니다. 영혼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아이 위에, 시체 위에 누울 수가 없습니다. 세 번이나 합니다. 차가운 시체를 자기 몸으로 데우는 것입니다. 적어도 2주는 부정하게 되는 행위를 하는 엘리사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생명이 없으면 다 시체입니다. 엘리사는 아이의 차가운 몸을 끌어안았습니다.
우리는 목장에서 진정성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어요. 사과를 해도 진정성이 없다 적용으로 했네 이러면서 진심이 아니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오늘 정답을 알려드립니다. 진정성보다 더 큰 것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적용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의 사랑보다 하나님 때문에 적용하는 게 더 큰 거에요. 이게 구속사입니다. 행위 구원보다 구속사이고 적용은 순종이기에 그렇습니다. 내 판단과 감정보다 중요한 게 구원입니다. 구속사를 모르면 항상 과거에 매여살고 진정성을 부르짖습니다.
엘리사가 3번이나 엎드려도 차차 온기가 돌아옵니다. 서서히 이루어집니다. 우리도 목장에서 저사람이 서서히 돌아온다고 생각하고 계속 사과하고 진정성 없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응답도 서서히 오는 겁니다. 수넴 여인도 살아난 아들을 안고 엎드린 후 나갑니다. '엎드림의 사랑'이 평안입니다. 후에는 반드시 부활의 열매를 주십니다.
Q. 적용질문
-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구원 때문에 입과, 눈과, 손을 맞추는 수고로 엎드려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 주님께 받은 사랑으로 섬깁니까? 결과를 얻기 위해 섬깁니까?
- 이 수고가 헛되지 않고 부활로 결실 맺을 것임을 믿습니까?
[목장 기도제목]
- 현주 : 마음 평안하기를 (오늘 회사 출근하자마자 우울했는데 업무 하나 둘 정리하니까 괜찮아졌어요.), 생활예배
- 은지 : 상대방을 향한 저의 마음이 넓어지고, 우선순위를 분별하는 지혜주시길, 신교제, 회사업무 가운데 지혜와 체력주시길
- 윤경 : 실업급여 수급기간(~11월 중순까지)에 조급함 내려놓고 주신 시간을 감사히 여기고 잘 쉬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 되길. 부모님 일에 간섭, 잔소리 줄이기. 내 죄 보는 신교제가 되기를.
- 현지 : 직장생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매일 큐티하는 삶 살 수 있도록, 신교제에 대한 기도 할 수 있도록
- 형단 : 9월 연주곡 잘 연습하기
큐티 잘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목장 진행 사항]
- 장소 : 사푼사푼 카페
- 참석자 : 5명(은지 형단 윤경 민정 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