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의 사람을 믿습니다. (18-25a절)
수넴여인 부부가 나이도 많은데 아들을 낳고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는 가정의 모습으로 들판에 나가서 이제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아마 일사병에 걸렸는지 '내 머리야' 하다가 아들이 죽게 생겼습니다. 늘 지혜로운 수넴 여인은 평소에 남편에게 신뢰를 얻었는지 남편이 아이 엄마한테 데려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데리고 왔는데 아이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샬롬이 평안입니다. 그녀는 이 사건에서 먼저 전자동으로 그 성전으로 생각했던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을 생각하고 찾았습니다. 첫번째로 하나님의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성전을 생각한겁니다. 그래서 침상 위에 그 죽은 아이를 두고 남편에게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 오겠다 고 합니다. 아들을 주실 때도 지혜롭고, 아이가 죽었는데도 지혜롭습니다. 수넴여인은 늘 큐티하고 하나님께 묻다 보면 이런 것이 분별이 됩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평안을 빌어요.' 이거는 샬롬이라 그랬잖아요. 아이가 죽었는데 '평안입니다.' 이렇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것이 훈련되어져야 합니다. 문제가 계속되는 인생 가운데 어떤 경우에도 '별일 아니에요. 걱정 마 세요.' 조건 반사적으로 '평안입니다.' 이렇게 읊조릴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왜 주실까요? 항상 반복된 훈련 가운데 성숙 지수가 높아가는 가운데 점점 많은 사람을 감당하라고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 성도는 딱 사건이 오면 이 사건에서 어떻게 그 하나님을 보일 것인가 어떻게 풀어가는지를 보여야 할 사명이 있는 겁니다. 태양을 본 사람은 어떤 사건에서도 설명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이고, 문제가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닌겁니다.
믿음이 약한 남편은 배려하며 평안입니다. 하고 샬롬을 외쳐야 합니다. 샬롬은 내적, 외적으로 닥치는 근본적인 어려움에서 또 하나님의 평안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남편은 수넴 여인의 말을 누구보다 잘 들어주는데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인이 탁월하지만 이 남편에게 맞추어야 게스트하우스라도 짓지 자기 믿음이 최고라고 상대방과 상관없이 자기 얘기만 하면 게스트 하우스는 커녕 아들도 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열매가 없습니다. 세심한 배려는 이렇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 남편은 지금 믿음보다 성품이 훨씬 큽니다. 이런 남편하고 살면 정말 구원이 멀리 갈 것 같습니다. 정말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솔직히라는 미명하에 기도받고 처방받아야 할 일을 그르치게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여인의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 상대에 따라서 행하는 것이 구원의 디테일인 겁니다. 우리도 눈에 띄는 열매를 좋아합니다. 부모가 교회를 사랑하는 정도에 따라서 아이들도 부모의 가치관을 보는 것이 있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공부 안하고 교회 다니는걸 분해서 그걸 못보는 부모가 많이 있습니다. 아웅다웅 해도 이 세상 영광은 반딧불과 왕초 정도 차이 입니다. 겨자씨와 호박씨 정도의 차이죠. 태양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겁니다. 지금 말씀 묵상하고 이거를 훈련시키는 걸 그렇게 하찮게 보시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원이 중요한 사람은 연기를 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근데 교만한 사람은 이런 거 깨닫지도 못하고 '진실한 사람이 왜 연기를 해? 솔직 해야지.' 이러는 겁니다.
적용: 사건이 생겼을 때 누구를 제일 먼저 생각하나요? '그래도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인데..'와 '내가 지금 죽게 생겼는데..' 중 어떤 말을 자주 합니까? 구원을 위해 연기를 해본 적이 있나요? 아니면 연기하는 사람을 진실치 못하다 고 비난합니까?
2. 그 하나님의 사람에게 털어놓습니다. (25-28절)
여러 도시를 순회하던 엘리사가 갈멜산에 거했을까요? 우리는 잘 모르죠.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여인이 엘리사의 거처를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것은 자신의 스케줄을 알려줄 만큼 긴밀한 관계라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그 당시는 예수 믿는 사람이 희귀하기 때문에 이 진짜 믿음인 겁니다. 하나님과 그만큼 소통이 되는 믿음이라는 겁니다. 그 당시 갈멜산은 알다시피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물리친 종교적인 성지였습니다. 그곳에 지금 엘리사가 있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인 것이 다 맞아 떨어집니다. 세번이나 반복해서 물어보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자기도 모르게 이 집에 문제가 생겼다 말합니다. 이렇게 분별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순수하지 못한 마음으로 진단하고 처방하며 시간을 낭비할 것이기 때문에 엘리사를 게하시에게 보내던 말던 게하시를 보내든 말든 우리 아들에게 엘리사가 와줘야 된다고' 하는 겁니다. 남편에게도 함구를 하고, 게하시에게도 함구를 했는데 내 죽어가는 일들을 지금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지금 함구해야 될 때가 있는 겁니다. 이게 세심한 배려입니다. 할 말, 안 할 말을 분별해야 아들 낳고 평안할 수 있는 겁니다. 사람을 하나 예수를 믿게 하려면 이런 디테일이 너무 필요한 겁니다. 사람을 분별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보자마자 여인이 바로 안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도 그의 영혼이 괴로웠다 합니다. 쓰고 싼 상처 사건에서 마음을 기가막힌 상황을 남편에게 쏟았더라면 그 가정을 깨졌을 겁니다. 게하시에게 쏟았더라면 이혼만 당했을 겁니다. 하지만 여인은 지금 촛불들이 아닌 태양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람 앞에 와서야 그 쓴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주님도 여인이 괴로운 이유를 엘리사에게 숨기셨습니다. 여인이 자기 입으로 직접 털어놓도록 세심하게 배려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이 더 잘 아시고, 더 잘 설명해 주실 수 있잖아요. 그런데도 여인이 직접 털어놓게 하십니다. 자기 말로 쏟아내는 것 자체가 치유라는 것을 주님도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적용: 나는 목장에서 내 마음을 다 털어놓습니까? 털어놓지 못한다면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지체의 나눔을 잘 들어줍니까? 목사님은 좋은데 목자들은 싫어요' 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3. 하나님의 사람을 떠나지 않습니다. (29-30절)
너무 급해서 게하시를 먼저 보내려고 했습니다. 젊은 사람이니까 빨리 갈 거 아니까 게하시에게 허리를 묶고 가라는 거는 허리를 열어놓으면 빨리 갈 수가 없잖습니까? 빨리 가라는 뜻이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고 엘리사의 지팡이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게하시는 인사할 인간입니다.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인사를 받을 위인입니다. 그러니까 게하시는 뽐내고 자랑할 수 있는 위인입니다. 그러니까 큐티도 이렇게 흉내만 내면 안 되는 겁니다. 진짜 본인이 해야 되는데. '엘리사의 지팡이다' 이러니까 아주 정확하게 지금 처방을 해주는 겁니다. 이걸 수넴 여인은 미리 알았습니다. 사람이 사심이 들어가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뽐내거나 엘리사의 지팡이 하나 들고 갔다고 뽐내거나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인거, 이걸 수넴 여인이 먼저 압니다.
게하시는 겉으로는 엘리사 제자로 경건해 보이지만 겉으로 다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결정적인 구원의 일은 결국 야망이 있기 때문에 왜곡해서 듣고 일이 안 되게 하는 사람입니다. 엘리사와 수넴 여인은 하나님을 경험했는데 게하시는 그렇지 못해 보입니다. 그런데도 엘리사가 선지 생도 중에 제일이라고 고른 사람이 게하시입니다. 수넴 여인이 분별을 훨씬 더 잘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분별하면서 가면 되는 겁니다. 이 사람은 야망이 있어, 이 사람은 믿음이 없어 분별하고, 거기에 알맞은 얘기를 하면서 가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는 축복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여러분들 이렇게 구속사를 깨닫는 사람들하고 같이 목장을 하는 거는 금 주고도 못 사는 축복입니다. 여인은 문제의 핵심은 아들의 죽음이 아니라 평안이 없음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아들이 생기니까 자기는 생각지 못했는데 아들이 생기니까 아들 우상이 생겼습니다. 그건 지금까지 아들이 없어봤기 때문에 몰랐지만 아들이 생기니까 필요한 게 없어집니다. 그래서 멀리서 여인을 본 엘리사가 가족 모두의 평안을 묻습니다. 아들을 줬는데 예전처럼 하나님의 사람을 자주 만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아들이 너무 좋아서 이 아들 평안을 만나서 진짜 평안을 살짝 놓치고 있었기 때문에. 수넴 여인은 대단하잖아요? 인류 역사에 믿음의 여인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끼쳐야 될 사람입니다. 수준이 높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을 하나님 자리에 놓고 있으니까 한순간에 아들 죽는 사건이 오자 여인은 금세 Think를 합니다. 아! 내가 헛된 평안을 구했구나 이렇게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평안을 구했구나. 그래서 그 잘못된 희망으로 속았다는 말을 자기한테 한겁니다. 진짜 평안은 오직 하나님 곁에 있을 때 오직 하나님과 함께할 때 온다는 걸 기억합니다. 그래서 이게 모든 신앙의 회개인 겁니다.
적용: 잠시 아들이 주는 평안에서 진정한 평안을 주시고자 주신 사건은 무엇입니까? 잠시의 아들은 무엇이고, 갑자기 온 사건은 무엇입니까?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