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겼으나 진 싸움
왕하 3:21-27
8/5/2023
김양재 담임 목사님
인생의 목적이 작은 일이 되면 이겼으나 진싸움이 되는 거에요. 오늘은 이겼으나 진 싸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지는 싸움은 자기 욕심으로 결정합니다.
모압왕 메싸는 3개국 연합군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총동원령을 내립니다. 모압군 군사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일찍 일어났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불신자들도 열심히 일해요. 수많은 전쟁을 이기고 또 이겨서 위인이 된 사람들이 많아요. 작은 일인 음악과 작품이 목적이 되어서 큰 일인 구원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모압 군사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하게 움직였으나 착각했어요. 이스라엘 군이 물이 없어서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모압군도 알았을 거에요. 하지만 이스라엘 군사가 워낙 많았기에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들이 본 방향에서는 햇빛을 받은 물이 피처럼 보였어요. 누구의 피라고 해요? 쳐들어온 세 왕들이 싸운 피라고 해요. 이 확신은 나름 합리적인 근거가 있죠. 밤새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골짜기에 물이 있을리가 없고 색깔도 붉은 색이니 반드시 피라는 거에요. 그러니 물이 없어서 세 군대가 서로 싸웠다는 거에요. 군사 전문가가 틀림없다며 확신 해주었던 거에요. 여러분 의사 군사 전문가 결정적인 때는 다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 큐티를 해야 되요.
이결과 어떻게 됩니까? 공격할 때 제일 중요한 정찰을 안한거죠. 너무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여긴 나머지 정찰 하나쯤이야 안해도 되겠지 하며 앞뒤 안 가리고 돌진을 한거죠.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기본 중에 기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생략을 했어요. 여호람도 기본 중에 기본인 물 준비를 하지 않았잖아요. 모압은 불신자이고 하나님의 대적입니다. 아무리 사활을 걸고 준비를 잘 해도 본질이 작은 일이고 이세상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한 사람이 있어서 하나님이 착각하게 하심으로 망하게 됩니다.
Q. 사활을 걸고 부지런하고 착각하며 살며 틀림없다며 확신하다가 기본의 기본인 정찰을 소홀히 해서 진 싸움은 무엇입니까?
어떤 좋은 일이 있어도 하루 이상 생각해보셔야 되고 목장에 물어야 됩니다.
2.이기는 싸움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모스신에게 묻는 모압사람들과 여호와께 묻는 여호람이 비슷해 보여요. 믿는 사람도 불신자와 똑 같은 행태를 보일때가 많아요. 여호람은 연약해도 여호와께 물은 여호사밧이 있었어요. 그모스 신과 여호와의 차이를 모르는 모압은 질 수 밖에 없는 거죠. 겉은 비슷해요. 시아버지와 동침한 유다의 며느리와 아버지와 동침한 롯의 딸들이 겉으로 보면 똑같아요. 하지만 유다의 며느리는 구속사의 주인공이 됩니다.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이 구체적이어야 하는데요. 날마다 큐티를 하다보면 어떤 사건이 생겨도 구체적으로 묻게 돼요. 붙어계시기만 하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가도 은혜가 임해 들리게 되더라구요. 성경을 자세히 읽는 것이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묻는 것이 될 수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그 물. 정관사가 붙은 그 물은 이스라엘의 갈증을 해결한 그 물을 의미하는데 아침에 똑 같은 물을 봤는데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물이 됐는데 모압에게는 피로 보이는 멸망의 물과 아침이 된 거에요. 똑 같은 물인데 구원받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물이고 멸망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의 물이 됩니다.
똑 같은 물과 환경인데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구원과 심판으로 나누어지는 것 아니겠어요? 구원의 사람들에게는 나를 구원할 사건이구나 해석을 하면 해결이 되는 거에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먼저 묻고 의뢰하며 가는 것이 이기는 일이에요. 교회를 다녀도 모압처럼 잘나가지고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열등감이 많을 수 밖에 없어요. 교회를 다녀도 묻지 않아요, 큐티도 안 해요, 공동체도 오지 않아요.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습니까? 말씀이 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골짜기에 개천만 파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모압군이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부지런한 모압군에 비해 이스라엘 군은 특출난 게 하나도 없어요. 이스라엘군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따라 승리의 열매를 그냥 수확하기만 됐어요. 노략하기 위해서 연합군을 향했던 모압군대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일어났는데도 모압군은 뜻밖의 기습으로 도망하게 되었고 지리멸렬하게 되었어요.
26절 본문을 직역하면 그 전쟁은 그보다 더 강했기 때문이다. 모압이 아무리 사활을 걸어도 모압보다 강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강하신 거죠. 하나님께서 때마다 시마다 나를 도와주시는 것이 느껴지십니까? 하나님이 내편인 거에요. 에돔은 마지막으로 칼찬군사 700명을 데리고 세나라 군대 중 제일 약체인 에돔군대를 공격하려고 했는데 뚫지 못했어요. 완전히 궁지에 몰렸어요. 궁지에 몰렸어도 불신자인 모압은 물을 자가 전혀 없어요. 하나님의 하자도 몰라요. 그래서 이제 그모스에게 제사를 드리게 되는 거죠. 하나님과 그모스 어떻게 비교가 되요. 세상 사람들은 세상 신들과 하나님이 비교가 된다고 생각을 해요. 성경은 세상신들과 비교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서 기록해 놓고 있어요. 이스라엘이 모압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지만 여호사밧으로 인해 하나님께 물은 게 하나 있죠. 여러분 목장에서 묻는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에요. 묻는 것은 내가 내 힘으로 하지 않겠다는 신앙 고백이에요. 묻는 거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에요. 내 자존심을 내려놓는 게 힘든 일입니다. 내가 아무리 전문가라도 어떤 일을 결정할 때는 공동체에 물어보기를 바라요.
Q. 내가 전문가라도 물어야 할 사소한 일은 무엇일까요?
Q. 똑같은 환경에서 구원을 맛보고 있습니까? 심판을 맛보고 있습니까?
3.이겼으나 진 싸움은 한가지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모압의 수도인 길하레셋이 있었어요. 완전한 승리가 되지 못하고 있는데 길하레세을 남기고 있는 거에요. 여호람도 여호사밧도 이스라엘 군대 뒤로 숨어서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어요. 물이 생기자 이스라엘 군대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렸어요. 그러니 가장 강한 요새 길하레셋 앞에서 여호와께 물어야 하는데 살만하니까 자기의 전술대로 그 성을 남겨둔 채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조금만 뭐가 있는 거 같으면 금새 하나님을 잊고 자기를 의지합니다. 하나님은 이기게 해주시지만 이것에 대해서 뒤끝이 있으세요.
전세가 완전히 기울게 되니까 모압의 메사는 자신의 아들을 그모스에게 바칩니다. 이스라엘, 유다, 모압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사람을 바치는 제사는 하나님이 가장 가증하게 여기는 제사입니다. 우리는 자녀마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모압왕 메사가 자기 맏아들을 그모스에게 바치니까 거기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했다고 했어요. 이렇게 큰 격노함이 임하자 군대를 물리고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하잖아요. 큰 승리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길하레셋을 남기는 패배를 하고 돌아간 거에요. 이겼으나 진 싸움이 된거에요.
하나님을 잊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큰 격노함이 임한 거에요. 모압을 이기게 해 주는데 감사함이 없는거에요 지금. 내가 그렇게 물을 줬는데. 모압을 길하레셋을 놔두고 기도하는지 뫘는데 아무도 기도하지 않는 거에요. 모압이 아들을 죽였는데 이스라엘에 격노함이 임했어요. 아들을 제사지내는 모습을 보고 이스라엘이 전의를 상실하고 빈손으로 돌아갑니다.
불택자는 자식 때문에 심판이고 택자는 자식 때문에 구원이다. 신자 불신자 차별없이 자식 앞에서는 고발하고 고소하고 똑같다는 거에요. 그러니 하나님이 격노하시는 거에요. 작은일과 큰일을 구별하지 못하는 거에요. 하나님께서는 골짜기에 물을 채우는 작은일을 넘어 모압을 이기는 큰일을 행하시겠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말씀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은 큰일과 작은일을 바꿔서 생각했어요. 물 먹는 것만 중요하게 여긴 이스라엘은 그까짓 길하레셋 하나 쯤이야 생각합니다. 모압은 이후에 다시 성장해서 이스라엘을 쳐들어오게 되고 이스라엘을 죄에 빠지게 합니다.
Q. 누군가의 격노함을 당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격노함인 것을 깨달으시나요?
Q. 여러분이 아직 남겨 놓은 사소한 죄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거운 짐으로 다가와서 얽어매고 있습니까? 이겼으나 진 싸움은 무엇이 있습니까? 즉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 것이 무엇입니까?
A: 외국에서 솔로로 지내고 있는 시간이 감옥에 있는것 같은 시간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말씀을 들으며 지금처럼 여유롭고 내 삶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를 허락하여 주셨는데 그것들은 보지 못하고 없는 것만 바라보며 지옥을 살았던 것 같다.
남겨놓은 사소한 죄의 뿌리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인 것 같다. 아버지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관계를 끊고 지내고 있는데 이런 아버지와의 관계가 여러가지로 내 삶에 무거운 짐이 되는 것 같다.
B: 교회에서 나에게 호감을 표시하던 자매가 사실은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자매의 호감이 싫지는 않았어서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될지 고민이 된다.
기도제목
A: 신교제와 신결혼을 위해서. 지금 주어진 환경을 구원의 환경으로 여기며 잘 즐길 수 있었으면. 이직을 위해서. 삶의 예배와 큐티가 회복되도록.
B: 가족들 목원들 영육간의 강건함을 위해서. 예수님으로 자존감을 채울 수 있도록. 왔다갔다 하지 않고 한결같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마음에서 예수님의 사랑이 계속 넘쳐 흘렀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