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9. 여호와 보시기에
* 열왕기하 3:1-8
* 김양재 목사님
1 유다의 여호사밧 왕 열여덟째 해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해 동안 다스리니라
2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음이라
3 그러나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4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5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6 그 때에 여호람 왕이 사마리아에서 나가 온 이스라엘을 둘러보고
7 또 가서 유다의 왕 여호사밧에게 사신을 보내 이르되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하는지라
8 여호람이 이르되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리이까 하니 그가 대답하되 에돔 광야 길로니이다 하니라
갈멜산에서 위로를 얻고 사마리아로 돌아온 엘리사에게 힘든 사역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으면 너무 좋은데 문제는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더 큰 위기에 빠지기도 합니다. 기회를 잘 잡기 위해서는 여호와 보시기에 어떨까 think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 여호와 보시기에 앞뒤가 다른 개혁은 악한 것입니다. [1-3절]
1 유다의 여호사밧 왕 열여덟째 해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해 동안 다스리니라
2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음이라
3 그러나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이제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하시야가 죽자 그 동생인 여호람이 왕이 됩니다. 형보다 10년이나 길게 왕위를 이었는데 둘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람은 악을 행하였으나... 바울의 주상을 제하였기에 그 부모와 달랐다 합니다. 그가 부모를 객관적으로 보았다기보단 아합과 아하시야의 결말을 보고 그 비참한 죽음을 보았고 그들을 돕던 바알 선지자들이 엘리야에 의해 죽임당하는 것도 보았기에 자기가 왕이라는 자아도취에 빠져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바알세붑 똥파리나 믿고 50명씩 두번 죽이고 2년 뒤에 죽는 형과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께 돌아갈 기회가 왔습니다.
여로보암에게는 딱 달라붙었습니다. 여로보암의 죄를 고수하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2절, 바알의 주상을 없앴다라고 합니다. 사역형으로 쓰게되어, 주상을 파괴한 게 아니라 그저 옮긴정도라는 것입니다.
3절, 여러보암의 길을 떠나지 아니했다 라는 것도 없앤척만하고 여로보암의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겉으로는 버린 것 같으나 속으로는 우상숭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라는 말은, 여러보암의 죄악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한번 답습한 죄악에서 헤어나오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심각함을 보여줍니다.
마약이 아주 조그만 양만 섭취해도 영원히 중독된다는 것입니다. 필라델피아 마약거리를 보면, 다들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멀쩡한 남자들이 그냥 죽은사람처럼 서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모양이라도 먹거나 마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잠시후 예후가 반란을 할 때, 북 이스라엘의 신당과 제사장들이 여전히 가득합니다. 무늬만 개혁인거죠. 앞으로는 개혁같으나 뒤로는 돈과 권력에 딱 붙은 것이기에 여호와 보시기에 악합니다. 왜 이렇게 다들 여로보암의 길에 딱 붙어있을까요?
열왕기상 12:26 그의 마음에 스스로호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길로 간다 ampbullampbullampbull 합니다
솔로몬도 왕이 되자마자 건축합니다. 비판을 하며 왕이 된 사람들은, 자기도 비판받을까 얼마나 독재하는 지 모릅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전권을 누리다가 자기처럼 또 배신할 자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니, 착각이 구체화되어 확실한 이 세상 자기 나라를 만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정치가 그렇습니다. 자기의 부지런함으로 왕이되었다고 생각하니까, 더욱 부지런을 떨어 건축합니다. 건축을 안하면 불안한거죠. 하나님만 바라보면 의존증환자처럼, 찌질해보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자가 없다고 외치지만, 스스로 못하는 사람을 보면 무시합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용납이 안될 때는 자살을 하게 되는 거죠. 누구보다 강박으로 살았습니다. 시간을 보면서, 이 시간에는 뭘 할텐데 하면서 불안해하고. 연습을 하고. 인간관계하려면 여기도 저기도 가야될텐데.. 가만히 있으면 큰일 날 것 같아 두려워했습니다. 좋은 노예와 나쁜 노예는 그럴 때 자격증이라도 따면 좋은 노예같으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똑같습니다. 노예근성이란 결국 주인이 올까봐 무섭고, 야단 맞을까 무서운 것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에 다윗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예배를 드리게 합니다. 이미 이스라엘에는 모세시대에도 전력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바꾸면, 열왕기상 12절에보면, 장막절은 추수때가 북쪽은 한 달 뒤에 옵니다. 그래서 굉장히 절기 지키기가 힘듭니다. 그들에게 맞게 한달 뒤로 절기를 정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좋아하죠. 3번의 절기동안 예루살렘에 가야할텐데 백성들이 안 움직여도 되게 필요를 채워주고. 또 어용제사장들을 세우니까 민주적인것 처럼 보입니다. 북이스라엘은 틀렸다고 하고 모두 남쪽으로 가니까 자기 마음으로 제사드릴 사람들이 안 남았죠. 그래서 소명이 하나도 안 남은 - 돈 있고 학벌있는 사람들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배까지도 스스로 할 수 있다가 그들의 주제가입니다.
적용해봅시다. 순종해야하는 것은 신결혼의 성전인데, 불신결혼을 하면 내가 믿게할꺼야 하면서 성소를 스스로 바꾸며 합리화하는 것에 민심이 따랐다는 것입니다. 인권의 시대에 청년이 듣기란 그래서 어렵습니다. 우리들교회에서 그래서 이혼을 문자적으로 막아주시는 것 아닐까요?
이런 보기 좋은 개혁을 하니까 왕이 민심을 얻습니다. 다수가 원하니 곧 법도 되네요? 민심을 얻게되니 그 이후로 여로보암의 길을 떠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손수 비주류가 되어야하니까요. 예배도 현란하게 드리고 기복을 부르짖는데, 실제적으로 북이스라엘의 아합이 상아궁을 지을 때, 북이스라엘이 부국강병했죠. 여로보암의 길이 맞네 하며 딱 붙어있게 되었겠죠. 자기들의 왕권을 유지하게 해주는 여러보암은 북이스라엘의 국부가 됩니다. 날이가도 그 인기는 식지 않습니다. 모든 왕은 여러보암의 길을 따라갑니다. 성경외 북이스라엘 경전을 만들기까지합니다. 북이스라엘 왕들은 단 한명도 망할때까지 여러보암이 잘못되었다고 회개한 적이 아무도 없습니다. 어리석기는 남유다도 마찬가지에요. 북이스라엘의 관용어는 여로보암의 길이고, 남유다는 산당을 없애지 않았다 입니다. 그들도 다 연약합니다. 그래도 회개를 했다는 게 북이스라엘과는 다릅니다. 반역을 한 사람들 특징이 회개를 안한다는 것이죠.
반역당한 사람이 복수할 필요가 없습니다. 회개가 안되는 벌을 자신들이 받기 때문이죠. 요즘 잠언 말씀을 하지만 솔로몬도 죄가 있고 그 아들 르호보암도 죄가 있습니다. 성군이었던 아산왕도 죄가있는데,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은 유치원생과 박사를 붙여놓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여로보암이 너무 훌륭해보입니다. 르호보암 들으라고 잠언을 써도, 르호보암은 너무 바보같아 잠언이 내 말씀이 안되죠. 노인들 말을 안듣고 7공주랑만 놀다가 데모가 일어납니다. 솔로몬도, 르호보암도, 성군들도 죄가 있는데 구속사는 뭐겠어요? 그 가운데서 가장 성군이라면 내 죄를 잘 본 사람입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고 별인생이 없습니다. 그래서 죄고백 있는 사람과 결혼하면 정말 로또입니다. 자기죄보는 사람은 정말 찾기 어렵습니다.
여로보암도 전권을 유지해야하니 남유다로 가지말라그러고 남유다도 금송아지 섬기는 북 가지말라고 했겠죠. 누구 말을 들어야 할까요? 말씀을 듣는 통찰력이 있어야합니다. 우리에게는 근본적으로 기복신앙이 있습니다. 자립신앙이 안되니까, 저주받는다그러면 무서워서 꼼짝못합니다. 그래서 아무것이나 따라가면 그게 죄가 됩니다. 영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도 있기 때문에 잘 분별해야합니다.
벧엘의 금송아지 예배를 드린 것이 민심에는 너무 좋은 것입니다. 편하게 해주니까요. 먼데 가라고 하지 않으니까요. 어떤 부목자님이 우리가 금송아지 예배를 드린다고 생각이 들었나봅니다. 죄를 다 까는 새벽설교 듣다보면 판단될 때가 많다고 합니다. 성가대가 없는 것도 아쉽고, 가장 이해안되는 것은 주일에 장로를 세우는 것인데. 기름부은 받은자가 서야되는거 아닌가? 목사님은 그 장로님을 쓰래기로 사셨다고 하는데 그런 삶도 이제는 쓰시는구나 하기도 한다고. 문자적으로는 마음대로 예배드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이해타산때문에 마음대로 바꾼것이고, 우리들교회는 만인 제사장 시대에 이타적인 구원의 목적으로 적용을 생명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타적인 생각을 하게하는 것은 광야를 거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다 소명의식을 가진 레위인입니다. 우리들교회는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런 사명자가 우리 모두를 살립니다. 진정한 예배를 드리게 해주니까요. 물론 교회를 학교 체육관에서 드리다보니 생기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내가 살고 나라가 살아야 예배가 삽니다.
지금 이 예배가 벧엘의 금송아지 예배인지, 남유다 예밴지 어떻게 알겠나요?
유다가 며느리와 동침한 것은 구속사로 예수님이 오셨듯,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딸들과 동침했는데 그들은 생명책에 못들어옵니다. 겉으로는 똑같은 행위인데, 한 성령이 임해야 이게 이해가 됩니다. 예배가 회복된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가 들리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이 너무 훌륭하고 정치도 잘하고 북이스라엘의 19명의 왕이 국부 역할을 했지만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계보에 솔로몬에게서 르호보암이 났다고 합니다. 이 연약한 르호보암을 써줍니다. 영적계보에 올라감은 잘난 사람이 아닙니다. 이 얘기가 안 들린다면 겉의 개혁만 보는 사람입니다. 구속사는 겉과 속이 같이 개혁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거룩한 예배를 드려도 여호와 보시기에는 악한 예배가 됩니다.
적용/
예수믿고 술 담배 먹는것 끊었으나 여전히 그리워하고 갈망하며 떠나지 못한 죄는 무엇입니까?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앞뒤다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여호와보시기에 앞뒤가 다른 개혁은 악하다고 했습니다. 큐티 예배 잘 드리나 겉으로는 우상을 제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 오면 여전히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하나도 못 끊는다면 적용해야합니다.
2. 뇌물을 준 자 받은 자 똑같이 악합니다 [4-5절]
4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5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떠나지 못하는 죄가 있기 때문에, 모압이 처들어오고 배반하는 일이 생깁니다. 모압은 다윗이후 이스라엘 속국이 되어 힘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모압은 롯이 딸과 동침해 낳은 자손들입니다. 다윗이 이들을 굴복시킨 뒤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 되었습니다.
모압은 이 세상의 믿는 사람의 종노릇밖에 못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믿는 자를 돕기위해 존재합니다. 훈련을 위해 존재하다 사망을 월급으로 받고 지옥으로 갑니다. 안 믿으면. 해마다 이스라엘에 바치는 조공이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래도 자기는 주인이 못되고 종노릇만 합니다. 모압은 이스라엘이 남유다 북이스라엘로 갈라졌을 때 독립기회를 노렸겠죠. 믿는 자가 분열 할 때 세상도 분열합니다. 믿는 부모가 이혼하면 애들도 분열되듯이, 느헤미야서에 보니 제사장이 잘 안 서있을 때 백성들도 즐겁게 헌금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세상은 조공을 바치는데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습니다. 근데 다윗이, 다윗 예수그리스도의 조상이니까요. 다윗 밑에 있을 땐 종노릇을 잘 했습니다. 그러다 이 나라가 분열되니 안 믿는 사람이 왕노릇하려고 치고 올라오는 것입니다. 분열 이후 북 아합왕이 세상적으로는 강력하니 여전히 드립니다. 세상적으로도 너무 무서운 상사 밑에는 가만히 있듯이요. 그러다가 전사했다는 소식에 반란을 바로 일으키고 조공을 바치지 않습니다. 돈이 얼마나 생명줄인데, 멀쩡하게 돈을 바치겠어요? 나에게 오는 게 없을 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배반을 하는 것입니다. 모압 왕 메사는 겉으로는 양 치는 자라고 자처하나, 속으로는 칼을 갈아 배반합니다 (5절)
여로보암처럼 소명도 없는 사람을 돈 있다고/학식있다고 직분을 주면 겉으로는 양같이 그러다가 때가되면 세상이 왕노릇하며 분열됩니다. 직분 잘못 줬다가는 분열됩니다. 얼마나 분별해야하는 지 모릅니다. 돈이 있어서 직분주고, 지위있어 줬다가는 망합니다.
오직 안 믿는 사람의 돈과 학벌은 형편없어도 믿는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나를 위해서 삼성과 현대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 나를 위해서 돈을 벌어주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수고하다가 사망을 월급으로 받습니다. 절대 주인이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가 인정하든 안하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재벌기업들이 생겼습니다. 그 전에는 어림도 없습니다. 영육간, 육적으로는 안 믿는 사람이 괴롭혀서 훈련시키고. 돈은 나 때문에 벌어주고. 하나님앞에 내가 서 있다면 그 일이 중요할 때는, 안 믿는 자들을 통해서도 돈을 공급하십니다. 내가 파출부를 해도 내가 믿는 자라면 주인입니다. 회사에서 내가 사원이라도 내가 잘 믿으면 사장이 내 밑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주인행세 하라는 게 아닙니다. 믿는 그 한 사람 때문에 흘러가는 것입니다.
모압이 반역한 사건은, 어떻게 니가 감히 그럴 수 있어!? 가 아니라, 하나님을 반역한 자신의 죄를 보라고 회개하라는 기회입니다. 이것때문에 모압의 메사가 수고합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죄에서 떠나라는 기회입니다. 모든 기회를 복수로 바라보니 더 큰 위기가 오는 것입니다. 모든 위기에서 내가 구원의 기회로 삼아야합니다.
6 그 때에 여호람 왕이 사마리아에서 나가 온 이스라엘을 둘러보고
전쟁을 하려고 여호람이 눈이 돕니다. 군인을 모집하러 나갔습니다(둘러보고 - 방문하다, 파카드) 그만큼 복수를 위해서 반란 진압에 열심을 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모압을 누르려고 합니다. 여호람 왕은 모압의 반란으로, 자신의 반란, 자신의 죄를 회개했어야죠. 신당 재상 등등을 없앴어야죠. 그러나 오직 복수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열심으로 우리 모두를 한 사람 한 사람 둘러보고 방문하십니다. 여호람 왕은 복수로 둘러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매 순간 바카드 합니다. 누가 덜 중요하고 더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 지금도 일하십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이 나를 찾아와 내게 말씀하시는 사건입니다.
아무리 억울한 사건, 모압의 배반같은 견디기 힘든 사건도 하나님이 나를 방문하시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괴롭힘 당하면 피해자고 조연이고 감독은 하나님인데 하나님이 날 돌보시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듭니다. 하나님이 계신데 왜 이래!? 빈정이 상합니다. 우린 이 사건을 통해 저 사람이 아니라 내게 말씀하시는 구나. 내가 구원 받을 주인공이구나. 내가 당하는 배반을 통해 내가 주님을 배반했던 일, 그 일을 생각해야합니다. 그걸로 회개해야합니다. 구원의 기회를 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뇌물을 주고 조공을 준 모압이나, 그것을 받다가 안 받는 여호람이나 똑같습니다.
적용/ 모압의 배반같은 사건이 있습니까? 여전히 복수하고 싶으세요?
내가 생각하고 회개해야 할 배반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뇌물을 주고 받은 적 있습니까?
남편이 술을 먹고 돈을 받았는데, 그 돈뭉치를 당장 돌려주라고 얼굴에 돈다발을 던졌답니다. 그 돈다발을 돌려주려고 갔다가 술마시고 잃어버렸답니다. 아내가 양육받고 두려움에 떨던 때라, 보험을 해지해서라도 업체에 갚아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갚아줬는데, 나중에 보니 이사갈 때 그 돈이 나왔답니다. 하나님께 적용했더니 보상해주신 것 같다고 합니다. 거기까지 갔으면 아니면, 거기서 내 죄를 봐야합니다. 지나친 도덕적 기준으로 옆 사람들이 나에게 숨기는 게 많다. 나도 긴 시간 양육받았는데 나눔을 한 건 얼마전부터이다. 남편이 너무 사건을 많이 만드니 남편 뒤에 숨어 괜찮은 사람으로 스스로 포장하기 좋았다고. 계속 술 먹고 돈 잃어먹고 모자람이 많은 남편이니까. 남편에게 불편한 아내고 그러니까 밖으로 돌 수 밖에 없었다고. 그게 나때문이라고 인정이 된다고 합니다.
3. 여호와께 묻지 않으면 악한 자 입니다. [7-8절]
7 또 가서 유다의 왕 여호사밧에게 사신을 보내 이르되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하는지라
8 여호람이 이르되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리이까 하니 그가 대답하되 에돔 광야 길로니이다 하니라
여호람이 직접 다니며 군대를 소집했는데, 모압을 치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신을 보내 모압 정벌에 함께하냐고 합니다. 요청내지 협박입니다. 여호사밧의 대답만봐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사밧이 생각해볼게 해야하는데, 묻지도 않고 가겠다고 합니다. 불과 3년 전 아람을 치려하며 여호사밧에게 질문을 했었죠.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같이 싸우겠느냐? 여호사밧은 그때도 같았습니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죄인으로서 다윗의 후손, 여호사밧이 사단의 후손인 아합과 북이스라엘 위세에 완전히 눌려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의 후손이 여호람이 도와달라니 묻지도 않고 네네 합니다.
그 당시 아합이 북이스라엘이 강성했습니다. 사돈어른께 예의를 갖춰 어느 길로 갈까요? 믿습니다. (8절)
모압이 나를 배반했다고, [나와 함께] 가겠느냐고 합니다. 국가간 명분이 없이 나를 위한 동기임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사실 질문도 물을 필요 없습니다. 남진이냐 북진이냐. 당연히 남쪽에서 건너야 하는데, 에돔은 아직 남유다 지배아래 있기에 에돔도 정벌에 끌여들일 수가 있으니까, 사해를 건너 남쪽에서 북진하는 것입니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것이면, 모압은 요새화되어 공격이 불가합니다. 멀리 떨어져있어서 모압의 손이 안 미치는 곳으로 멀어도 갔다와야 하는 것을 누가봐도 아는 질문을 한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아합의 전쟁과 그 최후를 봤습니다. 여호사밧은 그 사건들을 하나님이 주신 사건으로 이해하지 않았어요. 아합이 치러갈까요? 할 때 아합의 권위에 압도가 되어 그래도 하나님께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해야합니다. 오히려 아합 앞에서는 눌려서라도 그렇게 얘기했는데. 형식적으로도 물어보는 여호람을 보고 우쭐해졌는지, 바로 대답합니다. 하나님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람에게 눌리는 게, 사람 앞에서 우쭐한것보다는 구원을 위한 훨씬 좋은 환경입니다. 눌려살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평생 우쭐 했다면 여기까지 못 왔겠죠. 그러므로 눌려있음이 너무 나쁜게 아니구나! 하며 즐거워하길 바랍니다. 우리는 묻지를 않으니까, 똥파리에게 묻습니다. 사건이 오면 그래서 하나님이 생각조차 안납니다. 눈 앞에 위윙거리는 똥파리나 보입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딱 붙어있음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릅니다. 뭘 이런것까지 물어봐? 하는 게 세상에 주제가지만, 우리교회는 물어보는 걸 기본입니다. 전문가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전문가를 찾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떤 전문가도 자기 분야를 넘어서지는 못합니다. 모든 것을 아시며 각각 주인공처럼 살펴보시는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말씀에 물어봐야합니다. 우리 교회가 정신과를 많이 가지만 정신과 선생님이 믿음이 없을 땐, 현상만 진단 받을 뿐 영적 이유를 전혀 모릅니다. 구원의 일을 나눌 수 있는 우리들 교회 목장은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치료소입니다. 어디서 이런 얘기를 계속 나누겠습니까. 전문가를 넘어서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공동체에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묻지 않는 자는 악합니다.
교회는 사람의 모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공동체에 묻는 게 말씀에 묻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두 세사람만 모여도 교회가 됩니다. 혼자서는 성경을 내 말씀으로 못 들으니까 교회 지체를 통해서 듣는것입니다. 하반기 목장이 시작되었는데 더 많이 묻고가길 바랍니다. 스스로의 생각과 전통에 딱붙지 말고 주님께, 말씀에 딱, 목장에 딱 붙어가길 바랍니다. 구원으로 부르시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붙잡는 비결입니다. 여호와 앞에서 사는 비결입니다.
적용/ 여전히 묻기 싫어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요즘 눌려있습니까, 우쭐합니까? 이번주 목장에서 무엇을 묻겠습니까?
지나온 시간을 생각해보니 겉으로는 우쭐할 일이 많았는데 속에는 평생을 눌려있었구나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인도함이 있으니 그래서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구나 합니다. 목장에 대한 3가지 케이스 스터디를 지난 주 있었던 일을 공유합니다.
오신지 10일 되신 분이 10여년 전에 법원 앞에서 이혼 날짜를 받았습니다. 다른 교회 권사님이 이혼 전에 우리들교회에 데려다주시고 등록까지 마치시고 본인은 가셨답니다. 3시간씩 10년을 그렇게 다녔답니다. 그전부터 별거를 했으나 남편을 만나 훼파된 가정을 유지할 건지 끝낼껀지 얘기를 나눴답니다. 이혼을 요구한답니다. 저도 이혼하고싶고, 마음이 상했답니다. 공개적으로 처방을 한다면, 10여년 동안 다녔는데, 아직도 목원입니까? 양육을 안 받으셨습니다. 내 설교만 가지고는 안 바뀝니다. 오늘 간증처럼 책도 읽고 설교도 녹취해보고 해보면서 조금씩 변해가는것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닙니다, 거룩입니다. 남편을 오래만에 만났으면 남편의 모습 속 내 모습이 있구나, 내가 저랬겠네 하며 불쌍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남편이 아직 재혼을 안 하셔서 너무 감사한 상태인데 당신이 나보다 옳다고 해야합니다. 거기서 선택하라고 하면 안됩니다. 지금까지 잘 버티셨는데, 정말 이혼하지 말길 바랍니다. 양육받기를 권합니다. 직장이 다니셔도 직장다니는 분들은 다 양육 받았습니다.
저도 13년 결혼생활 중 35년 동안 혼자살았는데, 남편이 살아있으면 돌아올 소망이라도 있는데, 꼭 이혼해야 할 이유가 뭐가있습니까? 진짜 여기서 사명을 찾아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셔야합니다. 10년이나 나와도 양육을 안받으면 남편이랑 합쳐지는 게 인생의 목적이 되서는 안됩니다. 나때문에 수고하는 남편을 봐야합니다.
반면, 다른 케이스를 소개합니다. 이름을 밝히는 것을 용서해주세요. 이 분은 하버드 석사, 캐임브릿지 박사, 파리에서 공부해 5개국어에 능통한 남편과, 중국과 일본에서 공부한 4개국어 되는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7살 3살 아들딸이 있습니다. 결혼 후 이게 다 성공인 줄 알았는데, 전쟁같은 결혼생활이 힘들었답니다.
목장을 다니며 양육을 다녔는데, 휴식이 끝나는 양육이 되어, 6월까지 파리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답니다. 남편은 파리로 돌아가길 원하고 아내는 여기 남자고 합니다. 띵크 양육 마치고 6월말이 되어도 결정을 못했다고. 편성전날까지도 결정하지 못했다고, 파리 본부에 얘기하기로 했다고 하는데 독일에 사는 부모님들은 화까지 내며 돌아오라하는 데도, 잠언 말씀에 정착하기로 했답니다. 노후연금,집도 주는 빵빵한 파리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막상 남겠다고 하니 솔직히 남편이 가자고 하길 바랬다고 합니다. 남편뒤에 숨어가길 바랬는데, 남편이 너무도 뜻밖의 결정을 합니다.
부부간 양육받아 후에라도 유럽에 사명감당했으면 하지만, 아무리 OECD라는 직장에 다녀도, 아들 딸들이 문제가 되면 그게 지옥입니다. 그래서 남습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여기 남는 결정을 한 이 부부를 여호와보시기에 칭찬할것이라 생각합니다. 결혼을 이쁘고 스펙이 아무리 좋고. 그것은 잠시 후에 지루해집니다. 어떤 선남선녀가 만나도 예수가 없으면 대화가 지루합니다. 할 말이 없어요. 그런데, 나는 교회를 하면서 믿음 있는 우리 모두와 만나며 지루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이혼을 안합니다. 그렇게 싸워도 지루하지 않으니까요. 신혼여행만 가면 다 싸웠답니다. 그래도 아무도 이혼안해요, 지루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설렘이 없으면 다른 것 찾아다닐텐데, 믿음을 택하면 로또같습니다. 거기는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재미가 있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합당한 인생은 뭐가 부족하겠어요?
여호와께 묻지 않으면 악합니다. 나의 한계만 생각하며 나는 못해! 합니다만, 주께 드리는 것은 헛된 것이 없습니다. 주님의 뜻을 알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도 물어보면 이유를 알게합니다.
적용/
예수믿고 술 담배 먹는것 끊었으나 여전히 그리워하고 갈망하며 떠나지 못한 죄는 무엇입니까?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앞뒤다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적용/ 모압의 배반같은 사건이 있습니까? 여전히 복수하고 싶으세요?
내가 생각하고 회개해야 할 배반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뇌물을 주고 받은 적 있습니까?
적용/ 여전히 묻기 싫어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요즘 눌려있습니까, 우쭐합니까? 이번주 목장에서 무엇을 묻겠습니까?
나눔
[적용1]
* 예수믿고 술 담배 먹는것 끊었으나 여전히 그리워하고 갈망하며 떠나지 못한 죄는 무엇입니까?
*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앞뒤다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안식
술을 정말 끊기가 힘들다. 세상 사이에서는 여러 이유로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하지만 뭔가 축하할 일이 생기거나 기념비적인 일이 있으면 술을 꼭 마신다. 퇴근하고 집에서 혼자 여유롭게 마시는 술이 너무 좋다. 하지만 이런 술 중독이라는 죄를 공동체 앞에서 드러내기가 너무 힘들다. 오늘 말씀이 하나님이 나에게 술 중독을 죄라고 인식하고 고백하게끔 하는 것 같았다.
오주완
자기 전에 핸드폰 하는 시간이 있는데 요즘 너무 길어진 거 같다. 줄이고 싶은데도 잘 줄여지지가 않는다.
서인욱
게임이랑 핸드폰 중독인 것 같다. 한 번 할때 최소 2시간 정도하고 다른 일을 미루고 할 때가 많다. 게임을 하고 잠자리에 누우면 또 유튜브를 몇 시간씩 보다가 잔다.
김지명
인정 받고 싶다는 생각에 술을 많이 마시게 된다. 이번에 술집 알바를 하는데 알바생들이 술집 알바다 보니 전체적으로 술을 다 좋아하다보니 술을 많이 먹게 되었다.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욕심이 있다보니 술을 줄이려해도 줄이기가 쉽지가 않은 것 같다.
남영우
술이다. 전여친 만날 때 술 마시고 실수한 적 있었는데, 그 때 술이 죄구나라는 걸 그때 처음 인정했다. 사람들 경계나, 내 장점이 되는 게 많았다 - 관계하기 편하고, 술마시면 나사풀리는 모습이 내 매력같았는데, 그때 그런 사건으로 죄라고 인식을 했다. 그런데도 안 줄여진다. 이번 소개팅 때, 친구 소개로 신앙으로 차 있는 사람인 척하려고, 술 먹고 있는 중에도 연락 할 때 앞뒤 다르게 일부로 좀 숨겼다. 일부로 좀 숨기려고 하는 것을 보면, 내가 스스로 바람직하지 않구나 하는 마음을 보게된다. 관계에 대한 욕심이 있으니까 술이 잘 안 줄여진다.
[적용2]
* 모압의 배반같은 사건이 있습니까? 여전히 복수하고 싶으세요?
* 내가 생각하고 회개해야 할 배반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뇌물을 주고 받은 적 있습니까?
서인욱
전 여친과의 관계에서 나는 교회를 가고 싶은데 여자친구는 주말에 자기랑 시간을 보내자, 가지마라 라는 뉘앙스가 있어서 많이 눌렸었다. 평소 여자친구가 화내고 숨막히게 할 때도 내 잘못 때문에 이러구나하면 내 탓으로 먼저 돌리며 눌려했었다. 이때동안 여자친구를 사귀게되었을 때 교회를 안나가게 되었는데 이런 연약한 내 모습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김지명
교회, 학교 수업 등 내가 먼저 힘들면 내려놓는 타입이라 내가 배반하는 사람인 것 같다. 학교 수업에 불가피한 사유로 참여를 잘 못해서 교수님께 양해를 구했었는데 교수님께서 고생하라고 잘 토닥여주시더니 막상 성적을 받아보니 c0를 받게되어 배반당한 느낌이 들었다.
상대가 내가 필요하면 먼저 오겠지 라는 마음과 아쉬운 건 결국 너겠지 라는 갑 위치의 마인드가 깔려있어서 관계에 있어서 잘 내려놓는다.
안식
사람들한테 항상 눌림받고해도 상황에 화가 나는게 아니라 가만히 보고 계시는 하나님한테 화가 났다. 항상 하나님을 가해자, 나는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고 산다. 내가 시안을 몇 개를 다 들고가도 팀장과 다른 담당자 간의 소통 부재로 맨날 무너지는데 하루 성과에 대해 맨날 이야기하면 내 시안은 뽑힌게 없으니 구박받고 무시를 받는다. 교회 일은 잘해서 칭찬을 많이 받는데도 정작 본업에서 칭찬을 못들으니 마음이 너무 안좋았다. 회사 담당자 등 그 사람들이 나를 판단하고 힘들게하지만 결국 모합처럼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이런 사람들을 붙여준거라는 오늘의 말씀에 위안을 많이 받았다. 본업에 대해 내가 기준이 없고 오너십이 없다보니 하나님이 기준도 없는 상사들을 붙여주셔서 이런 내 모습을 고쳐주시려한다는 것을 알고 위안이 많이 되었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이 내게 준 모합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남영우
작년, 파출소에 있었을 때 계급마다 채울 수 있는 상점이 있다. 표창을 받는 것인데, 여러가지 항목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특방기간이다. 그 예가 서열 특방기간 - 지방 많이 내려가니까, 빈집털이/절도에 대해서 많이 조심시키는 것. 그 기간 안에 잘 실적을 채우면 표창이 나온다. 그동안은 표창을 못 받다가, 욕심을 내자 해서 이번에 좀 열심을 내서 검거를 8건이나 했다. 사수형과 같이 도와주셔서 실적을 채웠다. 우리 둘이 표창이 되는 걸로 정해졌다. 당연히 형도 도와주려고 한 것이었고, 형이 고마워서 밥도 샀다. 갑자기 근데, 파출 소장님이 이번에 기동대로 가니까, 이건 남아 있는 형한테 상을 주자! 이렇게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속상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인사이동 가더라도 표창 받을 수 있는걸로 아는데 저를 챙겨달라고 했는데, 기동대 잘 챙겨주도록 협조시키겠다고 이번에 양보하자 이렇게 흘러갔다. 소장님 말씀에, 표창이 너가 넘어간 뒤에 나오니까 못주는 것이다. 이동하기 전에 나오면 당연히 줄 것이다. 그런데, 가기 전에 나왔고, 그 형님 이름으로 나왔다. 이런 일이 있어 소장님이 너무 미웠다. 그 권한과 직책이 있으면서 거짓말까지 하면서 다른 사람을 챙긴걸까? 해석이 안됐다. 나와 그 형이 실세였다. 소장님과 따로 독대할정도였으니까. 이 형이 파출소를 처음 왔고, 영우는 이동을 하니까 얘를 챙겨야겠다라고 소장님 이해타산에 맞게 처리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형님은 영우를 챙기라고까지 했지만 소장님은 뜻을 안 바꿨다.
이번에 근무로 소동이 났을 때의 제대원들과 팀장님들 사이에 껴있는 모습이 될 때 나도 소장님같은 사람이구나 느꼈다.
[기도제목]
오주완
1. 건강 챙겨질 수 있도록
2. 휴대폰 중독이 좀 자제될 수 있도록
서인욱
1. 게임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2. 수면 패턴이 회복 될 수 있도록
김지명
1. 생활패턴 회복될 수 있도록
안식
1. 이번주 프로젝트 마무리 잘 할 수 있도록
2. 눌리게 하는 분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도록
3. 술 유혹이 올라 올때마다 기도할 수 있도록, 목장에 얘기할 수 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