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2
<들어야 삽니다> 이성훈 목사님
잠언 1:8-19
8절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9절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10절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11절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12절 스올 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들 같이 통으로 삼키자
13절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을 채우리니
14절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지라도
15절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16절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
17절 새가 보는 데서 그물을 치면 헛일이겠거늘
18절 그들이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19절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저는 이번 한주 말씀 준비하면서 잠언이라는 굉장히 순도가 높고 그래서 아주아주 짠 그 진짜 소금 중의 소금으로 푹 절여져 지냈습니다.
그런데 사실 말씀으로 절여진것도 있지만 저같이 고난의 대머리가 머리숱만 대머리가 아니라 나눌만한 고난이 없어서 너무 눌렸습니다. 잠언을 한절 한절 묵상하면 주옥같은 지혜입니다. 다 연결해서 한번에 던져주니 순서대로 묵상하는 것이 힘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잠언에는 하라는 긍정어가 140개가 나오고 부정어가 90개 나옵니다. 20% 더 분량많은 욥기, 40%넘는 신명기를 봐도 하라는 긍정명령과 하지말라는 부정명령이 적습니다. 명령 잔소리 훈계 훈수 이런 거 듣기 싫어하는 우리가 잠언이라고 잠오는 말씀이라고 하시는 것 같아요. 여러분은 살고싶으신가요 죽고싶은신가요? 피투성이라도 살라고 했으니 아무리 죽고 싶어도 살아야합니다. 살기 위해서는, 잘 살기 위해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은 왜 말씀을 들어야 사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1. 듣기 싫어하는 태생적 교만 때문입니다.
(8-9절)
우리말 번역은 내 아들아가 먼저 나왔지만 히브리어는 들으라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어라고 명령이 나옵니다. 첫번째로 나오는 말이 들으라 입니다. 제일 많이 나오는 명령입니다. (12번) 그만큼 듣는게 너무 중요합니다. 듣는 것에는 3단계가 있습니다. 귀로만 듣고 머리(이해)만 듣는데서 끝나는게 아니라 행동(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들어야 하는 가를 보니 훈계라고 합니다. 훈계라는 말이 100번 나오는데 100번 중에 잠언에 44개나 잠언에 나옵니다. 구약중에서 분량은 작지만 훈계의 책입니다. 묵상하기 쉬운 책 아닙니다.
잘못을 지적하고 꾸짖고 다시는 잘못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잔소리하는것이 훈계이고 훈수두는 것인데 하는 입장에서는 중요합니다. 듣는 입장에서 그게 그냥 아무리 좋은 말이여도 듣기 싫습니다. 더구나 오늘 말씀에서 다른사람도 아니라 아비의 훈계를 들으라고 합니다. 다윗은 백전백승의 카리스마로 나라를 일으킨 할아버지였고 솔로몬은 가장 부강했을때 지혜로 다스렸던 아버지였습니다. 그집안 아들들에게 아비의 훈계를 들으라고하면 숨이 막혔을것 같고 집밖으로 나가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법을 떠나지말라고 합니다. 요새는 핼리콥터맘 지나서 드론맘이라고 합니다. 우리시대에는 잘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어머니하면 따뜻한 느낌이잖아요 법은 차가운 느낌입니다. 이 두 개념을 합쳐놓으니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하면 어겨도 될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의 훈계를 듣고 어머니의 법을 떠나지 말라는 명령은 윤리적인 의미가 다가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훌륭한 부모들도 있지만 아닌 사람들도 많습니다. 교회 가는 거 못 가게 하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부모님 말씀에 맹종하라는 가르침은 아닐 것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말에 궁극적인 의미는 아버지는 하나님아버지를, 어머니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신명기 8:5 아버지가 아들을 훈계하는 것처럼 말씀으로 사건 사람으로 훈계하십니다. 하나님의 훈계를 들으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 아버지의 훈계라도 죄를 지적하시니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훈계조차 듣기 싫어합니다. 그러니 양육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갈리디아서 4:26에 보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위의 있는 예루살렘은 교회라고 합니다. 어머니의 법은 교회의 법입니다. 교회법이면 안지켜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아비의 훈계든 어미의 법이든 교회의 법이든 듣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듣기 싫어할까?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되나요? 내 말을 멈추어야 합니다. 내 생각도 내려놔야 합니다. 왜 내 말을 멈추고 내 생각을 내려놓는것이 왜 싫을까? 상대방 앞에서 낮아지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듣기 싫은 것은 낮아지기 싫은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내가 제일이고 내가 중심이고 내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의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에서 비롯된 원죄 교만입니다. 내가 중심이고 내가 제일이고 내가 내삶을 주도해야 한다는 자부심 자의식 자신감이 내 머리에 쓰고있는 왕관처럼 화려하게 장식하는 금목걸이 처럼 내려놓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모범생이라서 아버지의 훈계든 어머니의 법이든 기쁘게 듣고자 했습니다. 사실 저의 아버지는 저에게 큰 소리로 혼내신적도 없습니다. 늘 저를 믿어주시고 말씀으로 격려해주시고 기도해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짜증이나 화를 내신적이 없습니다. 잔소리도 하나도 없습니다. 한개 있습니다. 애...쉬었다 해라 피곤하겠다. 제가 공부를 하고 있는데 눈치도 그런 잔소리를 하십니다 학교에서도 징계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칭찬해주시는 분 아니세요? 학교는 상 받는 곳 아닌가요?
우리가 이렇게 교만하기에 자라면서 일찌감치 인생의 한계를 경험해야만 인격이 성숙하고 믿음이 자랍니다. 저는 안되는 게 없다보니 인생의 한계를 경험한적이 없어서 법없이도 잘하고 살 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저의 왕관처럼 쓰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일까요? 그래서 인생이 잘 풀렸을까요? 제가 듣기싫은 사람이 되어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말도 듣기싫어했습니다. 상대방과 대화를 하잖아요 나를 칭찬하지 않는것 같다 인정하지 않는것 같다하면 저 사람하고 말 섞지말자 이랬어요. 아는 척 하는 사람이 싫었습니다. 권위자조차도 많이 모시지 않았어요. 이렇게 제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살았습니다.
결혼이 제게는 고난이었습니다. 저랑 혈연으로 엮이지 않았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저한테 의지가 없는 아내님께서 아주 객관적인 눈으로 레이저 광선까지 써가면서 저의 모습을 살피고 잘못을 드러내러 지적하고 훈계하면서 날마다 훈계를 하셨던 것입니다. 제가 쓰는 단어, 저의 말투, 표정까지도 너는 말투가 왜 그러냐 너는 왜 표정이 그러냐, 너는 웃어라 화난것 같다 라고 하니까 모든 것을 지적하며 훈계하니 제가 정말 살수가 없더라고요. 만약에 결혼에 준비 교과서만 있었더라면 97점 맞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결혼에 대한 최고의 준비를 해주는 곳이 우리들교회입니다. 그 때 우리들교회가 있었다면 위대한 결혼의 일타강사님들께 강의도 듣고 고난이도 문제도 풀고 킬러문제까지 다 마스터를 해서 제가 백점을 맞았을텐데 그 때 몰랐던 게 패착이었습니다. 결혼해서 아내한테 빵점맞으니 부들부들 맞으면서 살았습니다. 모범생들이 사실 듣기 싫어합니다. 자기이익을 위해서 듣는 척을 하지만 진짜 들어야할 말은 하나님의 훈계를 속으로 무시하면서 삽니다. 오히려 사고많이 차고 문제많은 문제아들이 잘 듣습니다. 자기가 문제아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나 때문에 우리 엄마아빠가 속을 썩이는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삶을 살면서 믿음의 진도가 빨리나가는 것입니다. 자기의 왕관을 쓰고 자기의 목걸이먼 걸고 삽니다. 이것이 태생적인 교만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이기에 이렇게 살면 살 수 없기에 들어야 삽니다. 말씀을 들을 때 멸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Q. 이번주 들었던 말 중 제일 힘들었던 말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육적인 한계를 인식하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까?
2. 속아서라도 채우고 싶은 욕심 때문입니다.
(11-14절)
악한 자의 꾀, 유혹은 따르지 말라고합니다. 우는 사자 같이 두루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온갖 속임수를 동원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속이기 위해 악한 자들이 사용하는 무기가 있는데 하나는 관계입니다. 악한 자는 자신을 아비 어미 애증이 담긴 사연이 많은 존재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다가옵니다. 우리 친구잖아 우리가 다 해줄게 책임져줄게 괜찮을거야 나를 만족시켜줄것 같은 가까운 사람의 관계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또 하나는 돈입니다. 우리만 따라오면 지갑을 채워줄 수 있어 표현이 어마어마 합니다. 산 채로 통으로 삼키고 온갖 보화를 주고 집을 채우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를 따라서 투자하시면 대박납니다. 따상에 따따상까지 합니다. 이렇게 빈주머니를 채워주겠다고 유혹합니다. 쉽게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유혹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 피흘리는 악행도 문제 삼지 않고 따라갑니다. 외로움을 채워줄것 같은 관계, 빈 지갑을 채워줄것 같은 돈 때문에 넘어가지 않을 자가 없습니다.
(15-16절)
악한 자의 길은 다니지 말아야 할 뿐더러 아예 밟지 말아야 합니다. 그 길이 빈지갑과 관계를 채워줄것 같지만 끝에는 악과 피 재앙과 죽음이라는 뜻입니다. 인터넷에 주식과 부동산의 정보를 주면서 천기를 누설하는 듯한 정보가 많잖아요. 그거 발도 들여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외롭다고 만남을 주선하는 앱이 있으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게 있으신 분들은 다 지우시기 바랍니다.
자신은 속아넘어가지 않을거라고 하며 속아넘어가는 자가 계속 나온다. 결국 드러나서 심판을 받게됩니다. 그래서 속인 자보다 속은 자가 더 문제입니다. 속인 사람은 속인 범죄를 알기에 회개할 기회가 있습니다. 속은 사람은 피해의식에 갇혀서 고정관념에 갇혀서 내가 사실은 속아서라도 나의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 싶었고 빈지갑을 채우고 싶은 욕심이 내 안에 있었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피해자라는 고정관념에 갇혀서 내 안의 태생적인 한계 욕심을 못봅니다. 그렇기에 죽을 생각을 합니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속아서라도 채워내려했던 내 안에 있는 욕심을 회개해야합니다. 힘든 부모보다는 친구처럼 다가오는 그들로 채우려고 했던 정욕, 큰 돈을 쉽게 벌수 있다는 나의 욕심에 넘어가서 내 스스로 속아넘어갈 수 밖에 없는 탐심 탐욕이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와 상관없이 환경이 어떤가 상관없이 내 안에 있는 것을 인정헤야합니다. 저도 이런 욕심이 많습니다. 교만과 마찬가지로 태생적인 한계입니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죄와 사망의 그늘에 살다가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해 살지만 그 끝은 악과 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아내와 소개팅으로 만난 첫날입니다. 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대화를 했습니다 .아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 거짓말을 해서까지 이 아가씨의 마음을 살필요는 없다 목사의 아내로 살면 어떠는지 등 하나도 숨기지 않고 다 말했습니다. 진실되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신학교 총장 아버지는 외과의사지만 나는 돈이 없다 사역을 하며 살려면 돈을 벌 수가 없다. 사역에 따라서는 선교지 오지를 가면 굶을 수도 있다. 이게 필터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아가씨가 그런 어마어마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전혀 그것을 싫어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반응하는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땠을까요?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다 라고 생각해서 110일만에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결혼해서 살게되니 배고픔이라는 것을 생각지도 못한 와이프에게는 이렇게 사는 것인지 진작 못했습니다. 사역자 사례가 얼마 안되니 아내가 너무 너무 불평과 원망과 분노를 날마다 쏟았습니다. 잠에서 일어나면 통장에 찍힌 금액이 생각난다고 해서 처음에는 아내의 입장을 들어주었습니다. 참다가 억울해서 제가 아내에게 엄청 화를 내었습니다. 아내는 없어도 이렇게 없을 줄 몰랐다고 합니다.
아내가 저한테 속은 게 아니라 한국 드라마한테 속았습니다. 드라마에 보면 재벌 아들이 나온다는 거예요. 근데 이제 재벌이 여자를 만나면 처음에는 그렇게 가난한 척을 한대요. 그러면 그 아가씨가 참 이렇게 가난하지만 저렇게 성실하게 살아가는구나. 그 모습에 반해가지고 사랑에 빠져서 이제 결혼을 한다는 거죠. 그런데 까고 보니까 이 사람이 누구예요? 재벌집 막내 아들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런 드라마를 보고 있던 우리 아내가 아니 어떤 사람이 만난 첫날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겠는가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으면 저런 말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당당하게 할까 그래서 저의 확신이 찬 그 말이 마치 저를 재벌집 아들로 착각하게 만든 우리 와이프가 한국 드라마에 속은 것이죠.
근데 제가 이 생각을 다시 해보니까 제가 재벌집 막내 아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더라구요. 아내가 한국 드라마에 속은 게 아니라 제가 제 자신을 속였고 제 아내를 결과적으로 속인 것이더라고요. 저는 그런 나는 이제 예수님도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으니까 주님의 뒤를 따르는 사역자는 당연히 가난도 감수해야 되고 불을 쌓아서도 안 되고 어디 무엇이든지 이제 그런 준비가 되어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그게 저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거예요. 나는 그렇게 살 수 있고 나는 성공을 추구하지 않고 나는 돈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와 주님만을 따르겠다 이런 이상적인 사람이라고 저는 자기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제 자신을 그렇게 속였던 것이죠. 여러분 속임 당한 게 너무도 분명하고 억울한 피해자인 것이 100% 확실해도 우리가 결국에는 가해자, 피해자 이렇게 나뉘어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게 아니잖아요. 아내와 저가 맨날 싸우고 이렇게 사람이 니 탓이다 내 탓이다 하면서 맨날 싸우지만 이게 우리 삶의 끝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우리가 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다 하나님 앞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내 열심대로 살지만 나를 움직이는 힘은 내 욕심입니다. 그렇기에 나에게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힘들면 쉽게 그만두는 시대를 사는 것 같습니다. 버텨서 이렇게 앞에서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힘들 때에 그만두기 쉬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더이상 내 욕심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완주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지나는 이 길에 이 코 앞만 보면서 죽네 산에 외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처음과 끝과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걸어가는 그 모든 발걸음 한 걸음 한 걸음을 주님께서는 다 살피시고 다 보시고 다 감찰하고 계신 거예요. 나,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내 욕심 따라 살다가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지만 그렇게 살지 말라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들어야 사는 것입니다.
Q. 무엇 때문에 공허합니까? 그 빈 자리를 채울것 같은 사람이나 일이 있습니까?
악한 방법으로 주머니를 채우려고 꾀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3. 오직 말씀만이 우리를 살리기 때문입니다.
(17-19절)
누가 여러분에게 이 새대가리야 그러면 여러분들 어떻게 하실래요? 왜? 닭대가리야 이러실 거예요. 이러시지 마시고요. 야 이 새대가리야 이러면 잭잭 이러시면 됩니다. 잭잭 참새에는 잭잭 이렇게 하시면 돼요. 새는 지능이 낮은 동물의 대표 주자죠. 근데 이렇게 머리가 나쁜 새도 자기 앞에 나를 잡으려고 그물을 치는 모습을 보면 그 머리가 나쁜 새도 피할 줄 안다는 거예요. 도망갈 줄 안다는 거예요. 그런데 악인은 어떻다는 겁니까? 악인은 너 그 길로 계속 가다가는 망해. 그 길로 가다가는 죽어. 이렇게 훈계의 말씀을 계속 들려주고 그 앞에서 보여주는데도 악인은 그 말씀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 열심, 욕심에 따라서 자기 교만함에 따라서 질주를 하다가 결국에는 생명을 잃어버린다는 거예요. 새대가리만도 못한 어리석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생이 이렇게 악합니다. 주님 없는 인생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비극에서 구원받아야 돼요. 그렇죠? 죽지 말고 우리 진짜 죽고 싶은 인생이잖아요. 근데 죽고싶은 마음이 올라와도 죽지 말고 이제 살아야 돼요.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셨기 때문에 하박국 선지자도 또 바울 사도도 의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죽으리라가 아니라 살리라 말씀하시잖아요. 그렇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이 한계를 넘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 우리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9절을 다시 보시면 이는 내 머리에 아름다운 관이요 내 목에 금 사슬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세요. 믿음으로 살리라 그랬는데 이 믿음이 어디에서 난다고 그랬죠?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그랬어요. 그리고 우리가 들을 수 있도록 우리가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우리를 살리시는 말이 아름다운 관이고 금 목걸이입니다. 아름다운 관은 히브리어로 리워얏 헨입니다. 일차적인 의미로 직역하면 은혜의 관(왕관). 우리는 아름다운 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노력합니까? 아무리 아름다운 관을 썼어도 결국에는 언젠가 흔적없이 사라집니다. 언제 있었는지 모르게 사라집니다. 진짜 아름다운 관은 나의 노력 나의 공로와 상관없이 주님께서 내 위에 조건과 성공과 승리가 아닌 은혜로 씌어주신 관입니다. 주님께서 씌위주신 관이기에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격을 잠깐 얻었다가도 자격을 잃는 순간이 있어요. 믿음이 좋고 뜨거울 때가 있다가도 그게 또 없을 때가 있어요. 만약에 이 아름다운 관 이 관이 우리가 머리에 쓰고 있는 관이 우리 자격에 따라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면 벗었다 썼다를 우리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하겠어요 그렇죠? 그러나 은혜의 관이기 때문에 우리의 상태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 머리 위에 씌워주신다는 거예요. 우리 머리 위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또 거룩한 나라며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이 증거 역할을 해주는 것입니다.
금사슬도 그래요.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힘은 좋은 재료와 좋은 기술로 만든 이 갑옷이 아닙니다. 나를 지켜주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예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입니다. 구원이 황금 사슬, 골든체인이에요. 신학적으로 이 구원을 우리가 항상 이 황금 사슬에 비유해서 이 설명을 합니다. 듣기 싫어하고 속기 좋아하는 내 한계를 주님께서 아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얘들아 니들이 너희들 한계를 너희들 힘으로 넘어서 나한테까지 와봐 이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한계를 아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로마서 8장 30절 말씀처럼 아무 자격 없고 죄 가운데 거하던 우리들을 주님께서 미리 정하시고 그리고 정하신 우리를 부르시고 부르신 우리를 어떻게 하셨죠? 의롭다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우리를 마지막에 어떻게 하세요? 영화롭게 하십니다. 택하시고 부르시고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이 구원의 과정 하나하나를 누가 만드셨어요? 주님이 고리 하나하나 꼼꼼하게 연결하시고 주님께서 연결하신 고리이기 때문에 절대 끊어지지 않고 주님께서 만드신 사슬이기 때문에 황금과 같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천국에서도 영원히 빛날 그러한 황금 사슬을 우리에게 우리 목에 아무 공로 없는 우리 목에 걸어 걸어주신 거예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자랑할 목걸이가 하나도 없어도 우리가 주님을 믿는 택자요, 성도인 이상 주님께서 이렇게 주님의 피로, 주님의 적용으로, 주님의 죽으심으로 만들어주신 이 영광스러운 가장 영광스러운 황금 사슬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에 지금 다 걸어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은혜로의 구원을 알기 때문에 아름다운 관과 이 황금 사슬이라는 주님께서 은혜로 베풀어주신 구원을 우리가 다 쓰고 있기 때문에, 다 걸고 있기 때문에 죽고 싶다고 내 한계는 여기까지라고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고 내 삶은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좌절 속에서 죽어갈 것이 아니라 살아야 되는 거예요.
살려면 우리에게 이렇게 관을 은혜로 씌워주시고 황금 사슬을 우리 목에 둘러주신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곧 날마다 뭐 해야 돼요? 큐티해야 되는 거예요. 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많이 읽었고 또 대학 이후에는 성경을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읽었고 또 초대 교회 교부들부터 중세 스콜라 신학자들 또 종교개혁자들, 현대 신학자들까지 그들이 쓴 원어로 헬라어, 라틴어, 영어, 독일어, 불어로 읽고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큐티를 하지 않았어요.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8장 1절에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고 그랬잖아요. 제가 정말 헛된 지식 때문에 마음이 높아지고 교만해져서 큐티는 평신도들이 주관적인 묵상하는 건데 나 같은 사람은 안 해도 돼 이런 건방을 떨면서 큐티를 안 했습니다. 결혼 7년 동안 저희는 날마다 큐티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싸우면서 힘겹게 힘겹게 죽을 것처럼 지옥을 살다가 드디어 미국 유학 중에 아내가 도저히 이제 너 같은 인간하고는 못 살겠다 라고 하면서 이제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이혼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그렇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던 내 삶 이제 망했구나 이 깊은 절망에 빠져서 죽을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이렇게 이제 두 달을 죽을 용기도 없어서 그냥 살고 있는데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내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같이 큐티를 하자는 거였어요. 그러면서 이제 책을 한 권 보내줬는데 그것이 큐티인이었습니다. 근데 그 와중에도 아내에게 너는 너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내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날마다 큐티인으로 말씀을 묵상해서 자기의 죄를 거기에 기록하고 또 회개하는 적용을 다 기록해서 저에게 이제 매일같이 보내주었습니다. 아내 배후에 목장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무시하다가 제가 계속해서 아내가 보내준 걸 읽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 여자가 이럴 사람이 아닌데 왜 이러지? 너무 궁금한 거예요. 도대체 뭐지? 이게 뭐야 이거 내가 그렇게 애를 썼는데 꿈쩍도 안 하던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지?
그래서 이제 아내가 보내준 그 큐티인을 제가 펴서 저도 이제 그 큐티인으로 묵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6월 말이었어요. 꼭 9년이 지났네요. 이제 그 해 이제 2014년 그 다음 달 7월 본문이 마태복음이었거든요. 저는요 마태복음을 한글로 읽지 않아요. 영어로도 잘 안 읽습니다. 저는 마태복음을 마태가 기록한 이 헬라어로 읽습니다. 그만큼 제가 이제 본문을 본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안다는 그 확신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복음서를 읽을 때요 복음서를 읽을 때 저는 늘 예수님 편에만 서 있었어요.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같은 사도들도 저에게는 존경이 아닌 정죄와 판단의 대상이었습니다. 아니 뭐 그도 그럴 것이 성령 강림 받기 전에는 그분들도 연약했잖아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큐티인으로 매일같이 그 본문 해설을 읽고 또 이제 간증을 읽으면서 본문을 묵상을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내가 예수님 편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도들 연약한 사도들의 모습도 아니고 진짜 완악한 바리새인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게 어느 날 굉장히 강하게 깨달아지더라고요. 2014년 7월 25일 마태복음 9장 27절에서 34절 본문이었는데요. 그날 제가 큐티한 기록을 찾아보니까 제가 써놓은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제가 이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내가 맹인이고 벙어리다. 보는 척 말할 줄 아는 척하고 있을 뿐 실상은 늘 세상 것에 대한 염려로 분주한 삶을 산다. 목사로서 신학자로서 맹인이고 벙어리다.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남편으로서, 아비로서, 아들로서, 사위로서 이 모든 기본 관계에서조차 맹인이고 벙어리다 스스로 멀쩡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수치스럽다. 바리새인이 바로 나였다.] 좋은 가정에서 자라서 훌륭한 교육 받으면서 모범생으로 자라서 신학 박사까지 되었지만 바리새인이 나라는 저 말고 제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이 명확한 사실을 저만 모르고 살았던 것이죠. 그러나 아내라는 인생의 그 킬러 문제를 만나서 서로의 죽일 듯이 전쟁을 치르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결국 가정이 깨지는 그 고난을 겪고 거기로 끝났으면 진짜 죽었을 텐데 주님께서 은혜로 말씀을 임하게 해주시니까 제가 바리새인 같은 죄인임을 알게 된 것이죠. 진짜 은혜의 관을 씌워주신 거예요. 저는 제 왕관 쓰고 살 줄 알았는데 그게 다 아니라는 걸 보여주시고 주님께서 은혜의 관을 씌워주신 일입니다.
여러분 큐티를 귀로만 하지 마시고 눈으로만 하지 마세요. 귀티, 눈티라고 하죠 큐티가 Quiet Time이잖아요? 주님 앞에서 분주한 거 다 내려놓고 주님 앞에 조용히 앉아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그 묵상하신 내용들을 손으로 써서 큐티하시면 좋겠어요. 지금 이렇게 기록해 두시면 나중에 어떻게 쓰임을 받을지 몰라요. 또 꼭 쓰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한 절 한 절씩 이렇게 묵상하고 내 자신에 대해서 묵상하고 내 적용에 대해서 기록으로 남기시면서 묵상을 하시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읽고 해석해 주시는 그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큐티를 무시하던 제가 큐티를 이제 시작한 지 그때 이제 2년 반이 지나서 큐티인 본문해설을 제가 쓰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제 그때부터 다시 1년 반이 지나 감수 일도 맡게 되었고요. 그로부터 또 1년이 지나서는 여러분 큐티 책 맨 앞에 보이는 묵상 가이드도 저에게 맡겨주셔서 제가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제가 이제 큐티인 우리 국문 4종 또 영문 4종 이 8종이 있습니다. 이 8종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 300분이 넘는 우리 동역자들을 모시고 같이 이 큐티인 8종을 만들고 있습니다. 말씀의 사역자라고 제가 자신을 하며 살았지만 정작 말씀을 듣지 못하던 저에게 하나님께서 큐티인 묵상을 통해서 저에게 말씀을 들려주셨어요. 저를 살렸고 제 가정을 살린 큐티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게 해주는 책이고 또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책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에게 지식으로가 아니라 나에게 오늘 주시는 말씀으로 들리게 해주시는 성령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귀한 선물 만드는 일을 이제 저에게 맡겨주셨잖아요. 얼마나 제가 이 감격이 있고 제가 여기에 이제 저의 모든 혼신을 다해서 만들게 만들고 있겠습니까? 그것이 제가 받은 은혜를 정말 조금이라도 갚을 길이 없지만 조금이라도 갚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어떤 사역자께서 이렇게 물어보시더라고요. 목사님 목사님은 왜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를 많이 하셨어요? 저는 그 순간에 뭐 할 말이 없는 거예요. 근데 이제 그 질문이 계속 제 머릿속에 남더라고요. 생각을 해보다가 이번 주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가 그 답을 찾았지 뭡니까 그 답은 제가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한 이유는 큐티인을 잘 만들어서 여러분 묵상 마음껏 하시도록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 대신 공부한 것입니다. 만세 전부터 큐티인을 위해서 준비된 학력과 고난인 거예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학력으로는 목사 중에 상위 1% 안에 들지 않겠습니까? 저 같은 PhD가 두 명이나 같이 저와 이 큐티인 8종을 지금 만드는데 올인하고 있어요.
태생적인 교만과 욕심에서 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내하고 사명을 감당하시면 주님이 책임져주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주저하지 마시고 큐티인으로 마음껏 묵상하시면서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곳곳에 전해주시고 마음껏 전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큐티인을 통해서 말씀을 읽는 분들마다 주께 돌아오는 역사 주님의 말씀을 들어서 살아나는 역사가 날마다 더 크게 임할 줄 간절히 기도합니다.
Q. 마지막으로 조용히 앉아서 큐티한 적은 언제입니까?
귀나 눈으로만 하십니까? 분주한 삶을 멈추고 조용히 앉아 기록하면서 묵상하십니까?
오늘날마다 큐티하시겠습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들어야 사는 것은 듣기 싫어하는 태생적 교만이고 속아서라도 채우고 싶은 욕심 때문이며 오직 말씀만이 우리를 살리기 때문입니다.
나눔
참석자: 김지수, 김은진, 연현우, 황혜진
목장 재편성으로 새로운 목장식구 혜진자매가 함께 했습니다!
기도 제목
현우
1. 회사로 인해 몸과 정신이 너무 지치고 괴로운데, 하나님께서 이 과정들을 제가 잘 해석하고 인내할 수 있는 응답 주시기를.
2. 회사 사람들을 지혜롭게 피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길.
3. 일이 많아서 야근으로 체력이 많이 달리고 힘든데 몸 건강 지켜주시길.
4. 엄마와의 관계를 주님 안에서 잘 만들어 갈 수 있도록.
5. 지원한 회사, 면접 본 회사, 좋은 결과 받을 수 있기를 인도해 주시길.
6. 이직 인도해 주시길.
지수
1. 할아버지 처방받은 새 약으로 혈기와 집착진정되시기를, 할아버지의 치매악화 증상이 외갓댁의 구원의 사건이 되기를, 할머니의 건강 지켜주시길
2. 아빠에게 진실한 믿음 부어주시길,하나님 안에서의 자존감을 누릴 수 있기를 , 그래서 함께 예배드릴 수 있기를
3. 엄마 손가락 휘어짐과 통증이 심해짐에도 병원가기를 회피하고 두려워만 하시는데..빨리 병원가서 치료 받으시고, 두려움을 회피하는 습관도 성령의 고침받기를
4. 동생과 동생 가정에 주님 동행해주시고 예배와 목장에 꼭 참석할 수 있기를
5. 배우자 기도를 쌓아가려고 하는데 주님의 원하심이 내 원함과 같아질수 있도록 사람 보는 눈과 부드러운 마음을 허락해주시길
6. 목장식구들 기도 모두 들어주시고 이뤄주시길, 다같이 나눔할 수 있도록 목원들 영육간의 건강 회복시켜주시길
은진
1. 아빠 진료 결과 하나님께 맡겨둡니다. 엄마의 건강 자꾸 넘어지시는데 원인 잘 찾고, 운동하실 수 있길.
2. 예진언니의 임용고시 준비에 기름 부어주시고, 효진언니 시험 준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영육의 강건함 허락해주세요. 효진언니의 말에 과민반응하지 않고 지혜롭게 언행할 수 있게 붙잡아주세요. 언니의 무기력이 끊어지게 해주시고 소망을 채워주세요.
3. 목장 식구들 구원의 공동체로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해지게 붙들어 주세요. 함께 나눌 수 있는 정신적 신체적 여유를 허락해주세요.
4. 허락하신 만남에서 상대방의 영혼에 집중할 수 있길.
5. 진료보는 환자들의 치유와 회복에 잘 쓰여지게 붙들어주세요
6. 매일 큐티와 기도로 하나님 의지하고 알아가길 원합니다.
7. 신교제 신결혼이 결과가 아닌 과정의 시작임을 받아들이고 주께 맡깁니다.
정화
1.건강 회복
2.말씀에 순종하며 인도함 받는 삶
이지원
1. 이직한 곳에서 지속적으로 직장 동료 사람들이랑 좋은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2. 두통 나을 수 있도록
3.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해서 공동체 참여할 수 있는 체력과 마음을 주실 수 있도록
4. 짧은 시간이라도 항상 큐티와 기도를 할 수 있 도록
5. 가족들 영육간을 항상 지켜 주실 수 있도록
6. 신교제 할 수 있도록
7. 물질적인 욕심과 내안에 있는 인정중독 내려놓을 수 있도록
혜진
1. 잘 듣고 살아나는 한주되게 해 주세요!
2. 곧 있을 큐페 공과 잘 준비할 수 있게 해 주세요!
3. 다음주(14일)에 청약 발표가 나는데 순조로이 장막 마련되게 해 주세요!
박지원
1. 우선순위를 잘 지켜 신결혼 할 수 있도록
2. 회사 생활에서 지혜롭게 대처하고 위치와 역할이 맞게 행동할 수 있도록
3. 가족, 목장 식구들 모두 건강하게 한주간 보낼 수 있도록
희주
1.이번 주 말씀 잘 붙고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도록
2. 회사내에서 분별을 잘 할 수 있도록 지혜를 허락해 주세요.
3. 아빠가 예배에 계속 참석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