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25 열왕기하 2:19-25 (고침 받읍시다)
19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20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21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22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23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24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25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 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잘 살기위한것이 잘먹고 잘버는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하여 사랑과 심판으로 고침받는것이라 생각합니다.
1. 고침 받기 원해야 합니다.
여리고가 환경적으로는 좋은데 물이 없어서 다죽어 간다는 갑니다. 여기서 열매가 없다는것은 생명이 죽어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리고함락후에 여리고를 재건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라고 예언했는데, 부러운게 없는 시대가 되니까 여리고성을 건축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안들리는겁니다.
근원을 살펴봐야 하는데, 여리고를 재건해서 저주받은 이의 이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름은 이렇게 교만하게 짓는게 아니라 말씀으로 구속사적으로 겸손하게 짓는게 좋습니다.
세라라고 짓는다면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어?라며 말씀복음의 툴이 되는겁니다. 이것이 구속사적 이름입니다.
엘리사는 여리고성 성도들을 호호불어가는건데, 새그릇에 소금을 가져오라합니다. 그런데 여리고성 이방인 성도들이 엘리야 시체찾자며 말안듣고 갔던 제자들처럼 판단하거나 토를 다는게 아닌 선지자가 말하니 곧 소금을 가져옵니다.
믿음은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지나 맹목이 아닙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이 진짜요, 정답이심을 아는겁입니다
-적용 질문
여러분은 고침 받기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러면 목장에서 나누고자 합니까?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한다라고 생각합니까?
2. 말씀으로 고침 받습니다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에 다슬기가 사는 맑은 물의 엘리사의 샘물이 있다고 합니다. 근데 저는 설교하느러 성지순례를 한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안보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고싶습니다.
제사때마다 소금언약을 치는, 부패하지 않은 말씀의 언약을 쳐야합니다.
물 근원은 문제의 근원을 상징합니다. 현상에 문제가 있는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죄에 있습니다.
죄라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현상적인 문제를 아무리 해결하고자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문제가 끝없이 이어지는 겁니다. 문제는 죄에 물든 영혼에 있습니다. 이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소금을 칠때 고침을 받는 겁니다.
여리고를 고친 히엘의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죄인겁니다. 어긴것이 죄입니다.
물 근원에 소금을 뿌려야 되는겁니다. 말씀의 소금을 뿌려야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니 고침받았습니다.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할까? 보다 어디로 가야하나? 하는데, 뿌리로 가야 하죠. 뿌리는 본질인데, 본질로 가야합니다. 본질에 소금을 뿌리니까. 물이 고쳐졌다고 하지않습니까?
외모를 보면 뭐합니까? 물이 나빠서 열매를 못맺는데. 그러니 신교제를 해야되는겁니다.
내 죄를 보는 게 죽은 자를 살리는 것보다 어렵다고 합니다. 현상만 치료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자.
이렇게 나쁜 물과 같은 여러 나쁜 문제를 가지고 이곳에 왔다면 전부 고침받을수있음을 믿습니다. 근원을 치료해야 된다는겁니다.
근원에 소금을 뿌려야 되는데 근원을 잘라내기 위해서 가지도 말고, 만나지도 말고, 보지도 말아야 될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민에 사로잡히지도 말고, 끊어야 될 건 끊어야 합니다.
주식 못끊는 집사님을 보면 의사인데도 20년을 주식을 못끊고 있는데, 이렇게 못끊는것도 있는데 끊어야한다고 다시한번 얘기하는겁니다.
진정한 고침은 아픈얘기도 해야되는겁니다.
가족이 남편의 양육을 대신해주다가 가족 세명이 양육 되었다고 합니다.
양육은 어찌 되었든 권하고 싶습니다. 1%라도 나에게 들렸다면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말씀으로 지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으로 지져야 되는 겁니다.
-적용 질문
오늘 말씀의 소금으로 잘라야 할 나의 근원적인 부패함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끊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리고 같은 우리 집안을 위해 고쳐달라고 찾아가야 할 엘리사는 누구고, 어디예요?
여러분, 양육으로 지질 생각은 없으십니까?
3. 심판으로 고침 받습니다.
금송아지를 섬기고있는데 점점 더잘살고 상아궁을 사니까, 기복이 온몸에 배었고 기복이 그 자체가 신앙인 줄 아는 겁니다.
이들이 엘리사를 못랐을리 없습니다. 엘리야랑 함께 엘리사가 벧엘에 머물렀었기 때문입니다. 벧엘의 금송아지 기복을 너무 겪었기에, 금송아지 우상이 너무 좋으니까 완전히 사라잡혀있기에 선지자를 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모릅니다. 돈이면 다 인겁니다. 우리가 지금 기도해서 잘산다고 합니다. 그것이 처음엔 맞았지만 지금은 돈을 경배하니 하나님을 관리자로 내려놓게 되는겁니다.
내가 상아궁에 산다 이러면서 영적교만에 빠지는겁니다.
신체를 비난하고 모독하는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신체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절대 용서받지 못합니다.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하는데 대머리는 워낙 부정하다는 의미가 있고. 그러다가 이제 대머리여 하는 거는 이건 사기꾼이고 거짓말쟁이다 라고 하는겁니다.
저도 남편에게 외모비하를 많이 겪었는데 그 후에 목회하면서 비난받은것들을 생각하면 미리 그렇게 비하하는 걸로 훈련시키신 것이구나 생각이 드니까 미리 심판을 겪어서 고침받게 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대머리보다 더 모욕적이었던 것이 바로 이 올라가라로 조롱한 부분입니다.
암몬신을 너무 믿는데,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 가장 돈으로 공격하는겁니다.
교회를 조롱하고, 목회자를 조롱하면 분별력 없는 비난을 하는데 비판하면서도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 자신이 모릅니다 내가 울면서도 내가 왜 우는지 그걸 모른다고, 그래서 양육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화장실 청소하는 우리 어머니가 무슨 욕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게 밑진것같지만 뒤로 남는다는겁니다.
맘몬 가치관으로 볼 때, 그 당시 누가 화장실 청소한 우리 어머니를 존경했겠습니까? 무시 받았겠죠. 전 무시 받아보는 것은 인생에 너무 유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사건건 교회 일을 못 마땅해 하고, 사역자들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서. 그런게 그대로 자녀에게 갑니다.
확실히 제가 이렇게 분별은 합니다. 하지만 비판은 안 해요. 분별은 해야죠. 그런데 비판하는게 몸에 벤 사람이 있습니다. 이건 영적교만한겁니다.
내가 대머리 올라가라한 근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히엘이 여리고 건축한 그 죄를 봐야하는데, 근원을 생각해야 되는겁니다.
어떤 사건도 원인은 구원에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님을 무시하고 조롱하며 거역했던 자기 죄에서 돌이켜 구원받아야 됩니다. 아이였든 불량배였든 왜 42명이나 되는 사람이 곰의 공격을 받아 찢어졌겠습니까? 그 반역 동참한 나머지 청년들을 회개케 하고 그로 인해 벧엘 전체를 구원받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나를 회개의 자리로 부르시는 나팔소리인데 이 소리가 크다, 작다,좋다,나쁘다. 이런 것만 보면서 회개하지 않는다면 고침을 받지 못합니다.
내 죄에 대한 근원을 살펴보고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에 있는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상의 소굴인 벧엘에 갇혀 있던 내 삶이 하나님의 승리가 있는 갈멜산으로 향하는 거룩한 삶이 되고 거기서 부터 사명이 기다리는 사마리아로 가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겁니다.
엘리사가 자기가 아닌 여호와의 이름으로 고쳐주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치료해줬지만, 마음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결국 젊은 이들이 42명을 죽인게 됐는데 슬펐을것같습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갈멜산으로 달려간겁니다.
애들이 오늘 찢어 죽일 말을 하는 것은 부모의 삶의 결론입니다.
여리고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고쳐주셨고, 벧엘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셨습니다.
한쪽은 구원으로 고쳐주셨고 한쪽은 심판으로 경고하셨습니다. 이것 또한 고침 받기 원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심판과 구원은 동전의 양면시버다. 심판은 구원받으라는 사인인겁니다
-적용질문
내 아이들이 곰에게 찢어 죽임을 당할 말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사역자, 목회자, 또 남편, 아내, 자녀, 부모, 시부모, 상사, 부하에 대한 표현은 어떻습니까?
신실한 표현을 얼굴과 언어에 나타내고 있어요?
지금까지 원망하는 심판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모든 사건의 목적은 구원임이 얼마나 인정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