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2:19-25(고침 받읍시다)_김양재 목사님
목장모임(김영민, 위준아, 이정민, 김태현)
1.첫째로, 고침 받기 원해야 합니다.(19-20절)
요단강을 갈라 동편에서 이제 서편으로 다시 온 엘리사는 여리고에 곧 도착을 합니다. 그런데 거기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여리고가 오늘 위치는 좋은데 물이 나빠서 농사가 안된다고 합니다.겉모양이 아름다운데 열매가 안 맺히고, 아무리 경치가 좋고 사람과 돈이 몰려들어도 그냥 다들 죽음의 냄새가 나고, 다들 시들시들하고, 아이 울음소리가 안 들리고 죽어간다는 거죠.이제 그 여리고를 생각해 보면, 여호수아 6장 26절에 여호수아는 '여리고 를 재건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300년 후, 아합시대에 이 제 사마리아 성을 쌓고 상아궁을 지으니까 부러운 것이 없는 시대가 되니까 여리고 성을 건축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열심히 재건을 해도 저주를 받는 일이 있다 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항상 근원을 살펴보아야 돼요. 우리가 무슨 일이 일어난 거 는 항상 삶의 결론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랫동안 저주받았던 여리고에도 때가 되니까 이제 우리를 고쳐달라 고 엘리사에게 찾아오는 사람이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오늘 주인이라고 부릅니다. 이건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뭔가 목적은 물 고쳐달라고 기복적인 것 같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선지자를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고침 받기 원해서 왔습니다. 근데 지난 주일에 제자라고 하면서 스승의 시체를 찾겠다는 이 고집을 부리는 선지생도 제자들과 욕심의 도시에 살면서 문제를 선지자에게 가져오는 여리고 사람 들 중에 누가 더 믿음이 좋은 거예요? 이 고정관념을 내려놔야 합니다. 엘리사가 이 여리고에 이 이방인 초신자들을 호호 불어 가는 거죠. 물의 문제를 듣자마자 뭔가 해결책을 주는 것이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그러니까 이거는 사실 변치 않는 소금 언약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인데. 이 말을 들은 여리고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곧 가져왔어요. 제자들처럼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며 고집부리지 않습니다. 토를 달거나, 묻지 않습니다. 선지자가 말하자마자 곧! 즉시!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왔습니다. 그러니까 그 선지자 제자 입장에서 보면, 이방인 같은 여리고 사람 들이잖아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적도 없을 테고, 엘리야와 엘리사가 행하는 기적을 직접 본 적도 없습니다. 소문만 듣고 선지자의 능력을 신뢰합니다. 그 선지자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적용 :여러분은 고침 받기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러면 목장에서 나누고자 합니까?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한다라고 생각합니까? 우리 온라인 성도님들은 언제까지 온라인 예배 드리실 건가요?
이렇게 여리고 백성이 말씀에 즉시 순종하여 소금을 새 그릇에 담아 가져오자 엘리사는 여리고의 흐르는 샘물의 근원으로 가서 우리가 이렇게 모든 이스라엘의 절기 제사 때마다 소금 칩니다. 소금 언약을 기억해서 이 소금을 딱 던집니다. 이게 부패를 막습니다. 물 근원은 문제의 근원을 상징합니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문제는 사실 현상이잖아요. 근원은 따로 있습니다. 가장 최고의 근원이 우리 죄 입니다. 죄라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현상적인 문제를 아무리 해결하고자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문제가 끝없이 이어지는 겁니다. 시체를 아무리 찾아도 끝없이 시체 찾다가 끝나는 인생인 겁니다. 예수님을 내가 만나야 되는데 예수님을 앞에 놓고도 시체를 찾으면 안 보입니다. 죄에 물든 내 영혼을 봐야 한다는 말인데 이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 소금이 떨어질 때 고침을 받는 겁니다.그러니까 우리에게 그렇게 근원적인 그게 안 되는게 여리고의 저주가 집집마다 사실 있습니다. 교만의 저주, 바람 피우는 것에 대한 저주의 뿌리에 근원에 소금을 뿌려야 되는데 근원을 잘라내기 위해서 가지도 말고, 만나지도 말고, 보지도 말 아야 될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민에 사로 잡히지도 말고 끊어야 될 건 끊어야 합니다.
적용 :오늘 말씀의 소금으로 잘라야 할 나의 근원적인 부패함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끊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리고 같은 우리 집안을 위해 고쳐 달라고 찾아가야 할 엘리사는 누구고, 어디예요? 여러분, 양육으로 지질 생각은 없으십니까?
3.심판으로 고침 받습니다.(10-14절)
금송아지를 모셔놓고 예배를 드립니다. 성도들의 마음을 붙잡는 거는 돈이 최고잖아요? 기도하면 돈 생긴다. 하나님이 주신다. 십일조 하면은 돈을 몇 배로 준다. 제가 이걸 기복적 으로 얘기하는 거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제 금송아지를 이렇게 모셔놓고 '거기다가 비나이다 비나이다 해라. 돈이 나온다.' 그 여로보암의 죄가 가장 큰 죄악이라고 열 왕기서를 통해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이삭을 부르짖으면서 영적 교만이 하늘을 찌른 곳이 벧엘입니다. 너무 전통적인 믿음의 집안이라고. 예수하면 자기 집안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점점 더 잘 살고, 상아궁에 살며 금송아지로 기복이 온몸에 뱄기 때문에 그냥 기복 그 자체가 신앙인 줄 알고 믿었기 때문에 이렇게 특별히 팔복산으로 올라가는 하나님 잘 믿는 이 엘리사 같은 사람을 보면은 다른 믿음이라고 대적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벧엘의 금송아지 우상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는 삶을 살기에 선지자를 알지만 실제로는 모릅니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알지만 존재는 모릅니다. 안다고 해도 인정하 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눈에 번쩍번쩍 보이는 금송아지 우상이 또 그거밖에 본 일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금송아지 우상처럼 믿으면 이 돈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관리자로 놓고, 돈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적 교만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을 저주하려면 영적 교만에 빠지 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여러 심판의 사건들은 하나님의 나팔 소리입니다. 회개의 자리로 부르시려는 그 소리가 크다~ 작다~ 좋다~ 나쁘다~ 이런 것만 따지면서 회개하지 않는다면 결코 고침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 판단은 내려놓고 내 죄에 대한 근원을 살펴보고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에 있는 죄악을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상의 소굴인 벧엘에 갇혀 있던 내 삶이 하나님의 승리가 있는 이 갈멜산으로 향하는 거룩한 삶으로 되고 거기서부터 사명이 기다리는 사마리아로 가는 귀하게 쓰임 받는 복된 인생이 됩니다.
적용 :내 아이들이 곰에게 찢어 죽임을 당할 말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사역자, 목회자, 또 남편, 아내, 자녀, 부모, 시부모, 상사, 부하에 대한 표현은 어떻습니까? 신실한 표현을 얼굴과 언어에 나타내고 있어요? 지금까지 원망하는 심판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모든 사건의 목적은 구원임이 얼마나 인정됩니까?
*목장 공통 나눔 (여러분은 고침 받기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까?,오늘 말씀의 소금으로 잘라야 할 나의 근원적인 부패함은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A - 생일날까지 가지고 싶은거 있어도 잘 참을 수 있도록, 사촌 동생이 군대 가는데 무사히 전역할 수 있도록.
B - 많은 행복이 찾아올 수 있도록, 마음이 무너질때가 많은데 잘 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C -나쁜 시선들을 신경쓰지 않고 좋은 일만 일어날 수 있도록.
D - 고침받기를 말로만 하는게 아니라 고침받기 위해 원하고 적용하는 제가 될 수 있도록, 형이 교회에 나올 수 있도록,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