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1-11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함께 내려가라는 사명의 말씀이 무겁고 부담스럽게 느껴지게 되지만, 절대로 주님을 떠나면 안됩니다.
1. 낮아지고 낮아져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라는 표현이죠. 아하시야 왕은 높고 높은 자리로 오르고 오르려고 했지만, 난간으로 떨어졌습니다. 엘리야는 내려가고 내려가고 함께 내려갔더니 인간의 바람이 아닌 회오리 바람으로 높이 올리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강권적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입니다. 엘리야를 이세상에 높은 아합왕과 아하시야왕을 심판하셨지만, 사명을 받은 후 엘리야가 승승장구 한게 아니죠. 3년동안 이방땅에서 숨어서 피신했잖아요. 하나님이 전하라고해서 말씀을 전할때마다 어김없이 박해가 따라왔어요. 이세벨에게 쫓겨 광야로 도망가며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원하는 처지에 이르릅니다. 이런사람을 하늘로 올려주시네요 하늘로 올려주신 사람 한명 더 있는데요 에녹이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자녀를 나아서 동행한다는 것 자체가 내려가고 내려가고의 인생이 아닐까요? 믿음의 집안은 심플합니다. 밑동짤린 나무 신세라는것을 인지하고, 별 인생없다는 것을 알고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이 그들과 다른 것 입니다. 엘리야 정도의 빡센 고난과, 에녹의 고난의 비중이 같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에녹의 고난은 나 자신이잖아요 그래서 에녹의 고난은 언급이 없어요. 자녀 고난이 가장 큽니다. 남의 고난과 내 고난은 너무 차이가나요 엘리야는 자녀 얘기가 없습니다. 어마어마한 고난을 받아도 자녀가 없으면 그 고난을 감당하기가 쉽죠. 사명감당하며 자녀에게 본이 되면서 갈려면, 어마어마한 상상 할 수 없는 자녀고난이 있는 분들은 너무 조용히 사면 감당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환경이 겸손하니 입이 다물어집니다. 엘리야는 그래서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 라는 신앙 고백을 가진 이름을 가질 수 있었어요.
Q1. 오르고 오르려고 해서 떨어진 자리는 어디입니까, 낮아지고 낮아지니 올려진 자리가 있습니까?
내 자녀 고난이 하늘에 올려지는 최고의 상인 줄을 믿습니까?
2. 머무르지 않아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아하시야가 자신의 말을 안듣고 죽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가 다 죽었어요. 엘리야의 기도로, 그래서 또 아합과 이세벨이 죽고 그 아들 아하시야 왕까지 죽으니, 가만히 생각해보니 엘리야가 살고싶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너무 악한 세대인데 자기 말한대로 다 되니까.
또 이런일이 오니 심판의 역할 그만하고, 이 수고를 이제 그만 그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이 나라를 생각하면 떠날수도 없고, 피부로 다가왔나봐요. 의미있는 곳에 홀로 가보고자 합니다.
외로움이란 혼자있는 고통을 말함이고 외로운 사람은 다른사람을 배려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고독은 혼자있는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홀로 마지막에 40키로가 넘는 네곳을 여행하기로 결단을 합니다. 머무르지 않아야 네곳의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1) 길갈의 전설에서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길갈은 이스라엘의 영적고향입니다.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진을 친 곳입니다. 애굽의 수치의돌이 굴러갔다고 > 길갈이라고 칭했습니다.
압살롬에게 쫓겨났다가 복귀한 곳도 길갈입니다. 그 이후에 길갈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에 휘말리지 않은채 평안을 유지했다고, 짐작 할 수 있지만은 너무나 역사적인 전설의 곳이지만, 이스라엘의 악을 묵과 하고 있는 곳 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보고 여기 머물라 그래요 자기가 온 길을 오게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 입니다. 엘리야는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엘리사도 여기서 엘리야가 떠나면 내가 왕노릇하면 되겠다. 잘가슈 ! 하고 길갈에 머무른다는 생각을 안한 것 같습니다. 자기와 같이 가는 길이 믿음의 길이지만 자기와 같이 가자고 하지 못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 둘이 위대한게 아니라 그 둘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더 위대하십니다.
2. 벧엘의 금송아지 맘몬신에서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벧엘은 뜻 자체가 하나님의 집 입니다. 야곱의 영적고향이에요. 벧엘은 금송아지 섬기는 센터가 되었어요. 엘리야를 길갈에서 벧엘로 보내시는 거에요. 전설의 길갈을 지나 하나님의 집이 우상의 집이 되어서, 황금을 섬기는 집이 된거에요. 십일조와, 주일성수 꼬박꼬박하는데 겉으로는 화려했겠죠.
너는 여기 머물라는 엘리사야 편한 사명의 길로 돌아가지 그래, 너 평생 고생하면서 갈거야?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가장 강력한 의지를 나타낼 때 내가 목숨을 건다고 하잖아요. 그니까 목숨을 걸고 떠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엘리야 선생님의 생명뿐아니라 // 얼마나 큰 가치일까요 하나님 생명만큼 영생만큼의 가치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3. 여리고의 욕심에서 머무르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같은 말이 세번이나 나옵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읽고 들어야합니다. 여리고는 난공불락의 성이였죠. 가나안 첫번 째 영적전쟁의 성이였는데요. 여기는 사명을 감당해야하는 곳인데, 6일동안 하루에 한바퀴씩 돌면서 침묵해라 마지막 바퀴는 함성을 질러라. 영적전쟁을 하나님의 말씀에 구체적으로 반응하면서 인도를 받아야하는데, 여리고는 무너졌어요. 반면교사 삼아 여리고를 건축하지 말아라 했는데 아합왕 시대에 은혜를 일부러 무시하는 시대가 되었어요. 여호수아가 예언한대로 아들들이 다 죽었죠. 그 터의 은혜대신 욕심만 남은 새로운 여리고성이 생긴거에요. 이 죄악을 알려서 회개하게 하는것이 엘리야의 사역이고, 엘리사가 이어가야 할 사명임을 알려주는거에요.
4. 요단의 죽음에서 머무르지 말아야 합니다.
여리고는 요단강에서 아주 가깝기 때문에, 엘리야와 엘리사는 바로 요단가에 섭니다. 헤엄을 치거나 작은배를 타고 건너야 했습니다. 홍해를 통해 출애굽 1세대에게 보내주신 사랑. 요단을 건너지 않고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는 것 입니다. 늘 죽음을 준비하지만, 죽음이라는 말을 들으면 쉽지않아요. 암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철렁합니다. 내가 건너 갈 요단강 건너편의 그 나라의 임금을 믿어야 안심하고 가잖아요. 죽어지는 한계를 맛보지 않고는 두렵습니다. 그 나라의 임금을 믿어야, 이 강을 딱 건너는 것 입니다. 맛 보지 않으면 뭐든 지식으로 하려고 하면 확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죽음같은 고난을 맛보지 않고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다면이 주제가 입니다. 주님을 떠나지 않으려면 죽음을 떠나 서야합니다.
Q2. 길갈의 전설에서 그 정도면 됐습니까? 벧엘의 금송아지 신앙 가지고 십일조와 예배는 안빠지지만 여리고의 사명은 감당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단의 죽음을 넘어서기가 어렵습니까? 길갈의 전설,벧엘의 맘몬, 여리고의 욕심, 요단의 죽음 중에 어디 머무르고 있습니까?
3. 여전한 방식으로 요단의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제자들도 하나님이 엘리야를 올리실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 엘리사보고 엘리야 선생님 떠나시는 것 알아요? 라고 묻습니다. 엘리사가 평소와 똑같이 엘리야를 여전한 방식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언제 어떻게 데려가시든, 여전한 모습으로 같은 자리에서 사명을 감당 할 뿐이다. 염려하면서 오늘 할 일을 결정하려고 합니다. 엘리사는 오늘 하루를 충실하려고합니다. 당신의 선생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 알아요? 제자들의 반복되는 의문에도, 시험에도 엘리사는 떠나지않고 엘리야 곁을 지킵니다. 엘리사는 시험을 통과하며 자기자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두 사람이 가니라, 첫째 엘리야가 숱한 사역을 했습니다. 비를 오게도 그치게도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외쳤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남은 자가 엘리사 한 사람입니다. 주님을 따라갈때는 다 나를 떠날 수 있다. 엘리야와 가난했고, 엘리사는 부자였어요. 여러가지로 너무 달랐습니다. 하나가 될 수 없는데 사역을 이뤘습니다. 하나님 중심이 되니까 하나를 이뤘어요. 어떤 관계도 예수님 안에서만 하나가 됩니다. 탈무드에 유태인의 사람 분별법이라는 그런 법이 있는데, 주변에 있어서는 절대 안 될 사람.
1. 화내는 사람
- 식탁에서 화내는 것을 보래요. 쉽게 화내고 쉽게 풀지 않는사람
2. 교만한 사람
-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명령조의 말을 즐기고, 거드름을 피우고, 그런 사람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은 자기방에 뭐가 있는지 다 보이는데 본인만 몰라요
3. 험담하는 자
- 말을 전하지 말라는 거에요. 어리석은 자는 말을 옮기지 못해 산고를 치르는 사람처럼 느낀대요.
말을 얼마나 조심하셔야 하는지 몰라요.
4. 필요할때만 찾는 친구 조심하래요. -친구를 일찍 신뢰하지말고, 친구가 없는 사람은 오른팔 없는 왼팔 같대요. 주변인들을 보래여
인간은 악하고 음란한데, 이것이 탈무드의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렇게 살지 않아요. 예수님을 모르면 이 세상의 관계를 몰라요. 인간은 세가지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하나님과는 예배해야 하는 관계, 인간과는 동반자, 자연과는 관리자로서의 관계인데, 이 관계가 뒤죽박죽 되어서 하나님과는 직통계시가 되어서 나와같은 동반자로 여기고, 사람은 기준에 따라 관리자로 여기고, 강아지를 동반자로 느낍니다. 관리와 동반을 거꾸로 하는 것 입니다. 자식을 키우면서 내 자신에게 절망하고 훈련 받아야 하는 것 입니다. 오죽하면 자식 키우는 것이 하늘로 올려지는 비결이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제대로 예배를 드리고 있어야 누가 관리자고 동반자인지 알게 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떠나면 모든것이 다 떠나는 것 입니다. 우리 앞에는 늘 요단 강 같이 강같은 문제들이 있어요. 사회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성경의 가치를 거스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주님편에 설 지도자 한명을 기도하는데, 엘리야는 반드시 죽으리라 이딴 얘기만 합니다. 좋은 말만 해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죄인이에요 연약해요. 주신 사명의 자리를 결코 지킬 수 없습니다. 사명 없이 시늉은 할 수 있습니다. 시늉이라도 하게 하는 뭔가가 뭔지를 생각해봐야합니다. 사랑이에요? 자식이에요? 돈이에요? 체면이에요?
진정 사명의 자리를 하게 하는 힘은 오직 믿음입니다. 사람이나 환경을 기준으로 삼는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는 것 입니다. 엘리야를 통해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공동체에서 진짜 동료를 찾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이 교회 공동체만큼 진짜 친구가 어딨겠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떠나지 않는 비결입니다.
Q3. 주님이 내게 맡기신 목숨 걸고 떠나지 않아야 하는 여전한 자리는 무엇일까요? 아내 남편 자녀 아들 딸 회사 경배자, 동배자, 관리자의 관계를 잘 지키고 있나요?
Q1. 가정고난으로 쳐주신게 있는지
사쿠라 : 감정조절이 안되는 두 사람을 보니까 그런 일 있고나서 말씀을 보니까 하나님이 아시는구나 이거를 느꼈고, 부서에서부터 느껴서 눈물이 났다. 너는 말씀으로 혼자 깨닫지 말고, 그대로 나누라는 처방을 받았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신다고 하시니까 너무 좋았다. 하찮은 거라고 생각해서 나누기가 힘들었는데, 그 고난을 높여주신다고, 부모고난이 힘들고 하니까 엘리야가 죽기를 고했던 것처럼 그정도까지 아니여도 감사한 것 같다.
장원영 :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걸, 이번에 경보사건을 통해 알 수 있었고, 너무 평안한 때를 보내면 은근슬쩍 불안해진다. 투자에 대한 생각이 있었는데 간증을 들으면서, 이렇게 평안해도되나 이런생각이 올라온다. 간증들으면서 나에대한 경고인가 이런생각이 들었다.
서현진 : 가정에 대해서 구체적인 적용에 대한 생각이 많다. 이제서야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하신다는걸 알면서도 잘 되지않는 모습들이 있다 그래서 어려운 마음이 있지만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