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1.(주일) 왕하1:7-18
함께 내려가라
1. 말씀사역 때문입니다. (7-9절)
엘리야는 난간에서 떨어진 아하시야에게 위로를 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대로 '반드시 죽으리라' 하고 조금도 가감하지 않고 정확히 고했다. 죽으리라는 그 말을 한 그 사람이 누구냐, 바로 이것이 말씀사역이다.
깨달아지는 것도 있고, 안 깨달아지는 것도 있을 수 있지만 이렇게 이제 말씀의 문맥을 따라 읽는 게 참 중요하다.
엘리야도 어렵게 전한 게 전혀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전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큐티라는 게 별다른 게 없다. 성경을 읽고 거기에서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게 큐티인데 그렇게 매일 성경을 읽다 보니까 이제 지식도 쌓여지고, 정말 우리들교회를 보니까 아무리 무식한 사람들도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지는 것을 제가 보게 되었다.
아하시야가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을 듣는 기회를 지금 놓치고 있다. 바른 말을 해줄 사람은 엘리야밖에 없다는 걸 아하시야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절대로 말을 안 듣는다. 이런 사람이 교회에 너무 많다. 십자가 지라는 말이 옳다는 건 알지만은 앞에서는 듣는 척하고 삶에서는 전혀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것이다. 중요하고 급한 일 중에서 아하시야가 엘리야의 말을 듣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인 것이다.
엘리야가 왕에게 죽으리라 하니까 왕이 엘리야에게 내가 너를 죽이리라 한다.아하시야는 마지막까지도 회개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
내가 누구에게 충성하느냐에 따라 간신이 될 수도, 충신이 될 수도 있다는 거를 알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잣대로 생각해야 충신이다.
눈앞에 엘리야보다는 아하시야가 지금 무섭다. 교만의 자리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내려가야 한다는 걸 모른다. 하나님을 끌어내리려는 이 교만으로 내가 세상의 중심이어야 하고, 내가 하나님이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말씀 적용하기를 싫어하면서 남에게 적용하려고 하는 사람이 가장 교만한 사람이다. 내가 내려가야 주님과 함께 내려가는 말씀사역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사람에게 말씀사역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 엘리야도 나라가 없으면 예배를 못 드렸다. 그러니까 목숨을 내걸고 하는 게 말씀사역이다.그런데 끊임없이 성경에 술 마시지 말라는 말씀 없어, 담배 피우지 말라는 말씀 없어. 이게 말씀을 왜곡하는 것이다. 뻔히 보이는 악의 길, 사망의 길로 가는 내 가족, 이웃에게 가감없이 전해야 할 말씀이 오늘 바로 '반드시 죽으리라'의 말씀사역인 것이다.
사울이 다윗을 미워해서 죽인 것도 아니고, 전쟁을 많이 해서 죽인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열심히 예배를 드리러 다녔지만은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죽이셨다고 하신다. 아하시야가 그 똥파리신 바알세붑에게 물었다.
말씀이 안 들리면 뭐든지 옳고 그름으로만 생각해서 문제가 해결이 안된다. 해석이 안 되니까 해결이 안 된다.
- 적용
Q. 오늘 어떤 말씀을 주셨습니까?
Q. 나는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를 죽이러 가는 자입니까?
Q. 명령대로 따라야 할 하나님의 사람과 따르지 말아야 할 아하시야를 잘 분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충신입니까, 간신입니까?
Q. 남이 아니고, 내가 내려가는 적용이 말씀사역이라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2. 맹종이 아니고 순종입니다. (9-15절)
마지막까지 회개하지 않고 가는 사람들이 지옥의 길로 간다.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불태우기 위해 심판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불은 아무리 뜨거워도 따뜻하게 하는 불이고, 비추는 불이지 무서운 것 같아도 이 불로 살리기 위해서 불을 내리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구원과 심판의 양면의 불인 것이다. 그런데 그 불이 살리는 불이 될 수도 있고, 태워죽이는 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이나 검과 몽치로 예수님을 잡듯이 엘리야를 잡으러 갔지만 50명씩 2번이나 다 불사름을 당했다. 그런데도 아하시야는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굴복하기를 거부한다. 이런 아하시야를 보고 부하 입장에서 생각하면, 왕이 너무 이상한 명령을 하는데 왕에게 맹종해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다. 오십부장과 50인은 다 아하시야에게 맹종했습니다. 결론은 죽음이다. 잠시 뒤에 일을 모르고 눈앞에서 맹종하다가 구원도 못 받고 최후의 시간을 함부로 쓰다가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갔다. 하나님의 원칙은 어떤 사람의 악에 대하여 일정 기간 두고 보시다가 계속 악을 행할 상태라면 그냥 이렇게 데려가신다. 그러니 이 세상의 권세에 자기의 유익 때문에 무조건 맹종해서는 안 된다. 질서에 순종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우리가 길이 아닌 길을 가라고 하면 이렇게 다 죽는다.
세 번째 오십부장은 엘리야를 알아봤다. 세 번째 오십부장 만이 무릎을 꿇고 순종하여 생명을 얻었다. 엘리야도 생명 내놓고 말씀을 전했고, 오십부장도 생명 내놓고 무릎을 꿇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그 50명이 다 살아났다. 한 사람이 너무 중요하다.
세 번째 오십부장의 순종의 적용으로 한쪽에서는 심판사역이 이루어지고, 한쪽에서는 50인을 살리는 사역이 이루어졌다. 나 한 사람의 적용으로 내가 살고, 우리 집안이 살고, 나라가 살고, 세계가 살아난다는 것을 기억하라.
- 적용.
Q. 여러분은 윗사람의 지시를 무조건 맹종합니까, 기뻐서 순종합니까?
Q. 오늘 누구 앞에 가서 생명을 구하며 무릎을 꿇어야 할까요?
Q. 나와 내 가정, 주변 사람들까지 살리는 말씀 적용이 내 삶에도 있습니까?
3.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16-18절)
아하시야가 드디어 엘리야를 만난다. 그렇게 내려오기 싫어하는 아하시야에게 엘리야는 자발적으로 함께 그 죽음의 자리로 내려왔다.
하지만 아하시야가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성경에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았다. 그리고 '엘리야가 전한 말씀대로 죽었다'는 것만 기록된다.
아하시야가 생각할 기회가 몇 번 있었을까? 반드시 죽으리라는 심판의 말씀 앞에 무릎 꿇을 기회, 자기가 서 있는 자아의 이 높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들을 이 낮은 자리로 내려갈 기회가 최소한 세 번 있었어요. 그런데 아하시야는 이 황금 같은 기회를 모두 놓친다.
엘리야에게 말씀을 직접 듣는 시간은 심판의 시간이고 심판의 집행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아하시야가 난간에서 떨어지도록 두신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어떤 결정을 하신 것을 의미한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이 세상의 가치는 오직 이 땅에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결정을 해주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땅에서 영벌과 영생이 결정되는 그것만 가치가 있다. 이 땅에서의 사는 동안에 귀중한 가치는 이 땅에서 영생과 영벌이 결정되는 것. 그거 이상도 이하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내일 당장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가 없다. 오늘 말씀을 들었으면 오늘 회개하고! 오늘 적용할 일이 있으면 오늘해야 된다. 내 욕심에 치우쳐서 그 기회를 놓치는 것은 영원히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다 해도 성자 하나님만큼 높지 못하고 아무리 낮은 자리로 간다고 해도 십자가 죽음만큼 내려가지 못한다. 근데 그 성자 하나님이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대로 내려가셨다. 이런 순종의 적용에 뜸을 들이지 않았다. 그런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함께 내려가라, 혼자 내려가라고 하지 않으신다. 주님과 함께, 지체와 함께, 내려가라고 하신다. 말씀을 듣는 바로 지금 이 시간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 적용
Q. 너무 강하다고 또는 너무 연약하다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가족, 이웃은 누구입니까?
Q. 말씀대로 죽는 인생이 아니라, 말씀대로 사는 인생이 되기 위해 내가 감당해야 할 엘리야의 역할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