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1:1-6(잘 물어야 합니다)_김양재 목사님
목장모임(박예랑, 김영민, 이정민, 위준아)
1. 잘못 물으면 배반은 따라 옵니다(1~2)
열왕기하는 시작부터 죽음과 배반이 나옵니다. 아합이 죽자 모압이 배신했다 합니다. 왜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라는 책입니다. 우리는 고난이 오면 왜 를 생각합니다. 열왕기하 당시가 영적으로 가장 혼잡하던 시기였는데 망하기 전 풍요를 허락하셨었습니다.강한 아합이 죽은 후 이스라엘에 반역을 일으킵니다. 가장 치명적인 반란은 여로보암이 북족 열지파와 함께 하여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반란으로 세워진 북이스라엘에는 선한 왕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 정치의 결론도 하나님이 없으면 다 배반의 역사입니다.그래도 우리는 내 인생의 왕을 자꾸만 세웁니다. 돈, 명예, 남편, 자녀를 세웁니다. 내가 세운 왕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합을 의지하고, 누군가를 의지하고, 그런데 그 왕은 사람이기에 자신의 왕국을 세운다는 것입니다.요셉의 후손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깁니다. 그러면서 돈과 명예와 이것으로 찌질한 남유다를 괴롭힙니다. 그러니 경건을 가장한 영적 교만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유다의 후손 다윗은 따라야 할 모습이고 요셉의 후손은 멀리해야 할 모습들이 되었습니다. 전체적인 구속사로 볼 때 결국 유다인데 이는 요셉을 욕하는 것은 아닙니다.우리가 아합이 죽으면 모압이 배반하였더라 합니다.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모압이 나쁜 것인지, 바알교를 가지고 들어온 요셉의 후손인 아합이 나쁜 것인지, 다 똑같습니다. 뭐가 더 나쁜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을 함에 있어 고려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를 반면교사 삼아 살아나야 하는데 아합의 죽음은 악행의 끝이 아닌 악행의 심판으로 내려질 재앙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무시하던 모압에 배반을 당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하시야왕은 더욱 더 악했다 합니다.하나님의 은혜로 아합은 겸비하여 재앙이 아들의 세대로 내려갔으나 아하시야는 부모가 하라는대로 했다, 부모에게 효도했다 하지만 이것이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 3절에는 경고를 하는데 듣지 않으니 4절에서 죽음을 가지고 옵니다. 내가 권력과 재물을 남기고 죽으면 배반할 사람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적용 :부모로서 나는 어떤 결론을 자녀에게 남겨줄까요?유명메이커, 값비싼 물건으로 치장한 아이들을 학교와 거리에서 배반의 대상이 되게 하지는 않습니까?
1절의 배신의 사건이 있자마자 2절에 아하시야의 추락사고가 일어납니다. 계속 이어지는 용법으로 속수무책으로 아무 대처도 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열왕기에서 다락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죽은자를 살리는 생명의 장소인데 아하시야는 모압이 배신하기 이전에 본인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바알세붑에게 묻습니다. 왕이 다락 난간에 왜 올라갔는지 모르나 자기 영토를 둘러보며 내가 왕이 되었구나 하며 기쁨을 만끽하러 올라갔을 수 있고, 모압이 배신했어도 아직 많은 땅을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아하시야에게 내린 재앙이 너무나 심각한데도 유일한 관심에 이 병이 낫겠다 합니다. 이 사건에 던져야 할 질문은 왜 입니다. 이유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사건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리 고난이 와도 큐티를 하니 우리들교회가 비교적 해석이 되니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하시야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봤음에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여로보암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 경고하셨으나 아무도 심각하게 듣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습니다. 그저 칭찬하고 따르는 사람만 보이니 자기 실체를 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가장 심각한 죄악입니다.
고난 이야기를 하면 교인이 50프로 주는 만큼 고난과 죄의 이야기를 너무 싫어합니다. 조그만 고난만 와도 참지를 못합니다. 그저 보이는 것을 찾게 됩니다. 이단으로 가는 사람들은 당장 눈 앞에서 잘된다고 하니 이혼한거 잘했다 불륜 잘했다 하니 그렇게 갑니다. 이게 죄라고 다시 출발하라는 이야기를 듣기를 싫어합니다.내가 왜 이렇게 열심인가, 목숨걸고 남편의 구원을 해주셨기에 목숨걸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건을 주신 목적을 생각해야 합니다. 시험을 볼 때 출제자의 의도를 잘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왔을 때 언제 끝나냐만 생각하지 말고 구속사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왜 왔을까, 여기서 뭘 봐야 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큐티책을 피고 점을 칩니다. 죽음이 두려우니 떨 자도 싫고 죽 자도 싫습니다. 고난은 멈춰서라고 주시는 사건입니다.
적용 :결과만 너무 궁금해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 밑에 깔린 내 욕심이 보입니까?사건이 온 이유를 깨달아 자유롭게 된 일이 있습니까?
3.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이 병이 낫겠는지를 가서 물어보라 합니다. 왜 명색이 하나님 믿는 나라인데 바알세붑에게 물으라 했을까요?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금송아지를 하나님 대신의 자리에 두었습니다. 바알신전을 세우고 바알을 국교로 세우며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세벨과 불신결혼한 결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보암이 열지파나 합세를 시켰습니다. 반역해서 나가는 순간 두 지파가 있는 남유다 예루살렘에는 진짜 하나님의 성전이 있습니다. 그러니 북이스라엘은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니 인정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정치를 하니 내가 절대로 예루살렘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둘째로 아하시야는 모태 바알교인입니다. 그러니 원래의 우상이 있던 에그론의 바알세붑을 찾아갑니다. 우상은 이렇게 자꾸만 갈아탑니다. 방황도 끝이 없습니다. 이런 아하시야에게 선지자를 통해 질문하십니다. 하나님이 없어서 물으러 가냐, 왜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냐 하십니다. 계속 양육하고자 하시는데 그들은 말을 너무나 안듣습니다. 그 까닭이 아하시야의 욕심과 기복임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야를 통해 직접 화법으로 말씀하시나 듣지를 않습니다. 여러분은 뭐가 든든해서 믿지를 않으십니까? 그러니 사자를 보내 가로막으시며 기회를 주십니다. 바알세붑은 파리모양이었는데 바로 똥파리에게 물으러 간다 이겁니다. 목장에 와서도 우리 아이가 되는지 안되는지만 묻습니다. 결론만 알고자 하니 어렵습니다. 그는 부모의 악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바알세붑의 똥파리 신에게 감히 하나님과 견주어 물어보라 합니다. 내가 오늘 정말 묻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 외에는 고작 파리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자꾸 공동체를 떠나 묻습니다. 처방을 듣기 싫어합니다.
적용 :산기도 다니는 건 뭔가 공을 들이는 것 같아 뿌듯하고 큐티하고 말씀 듣기는 힘은 안들지만 힘들어 지친다고 느낀적은 없습니까? 내 문제를 누구에게 묻고 있습니까? 하루 동안의 대화에서 내가 묻고 있는 주제는 무엇입니까? 얼마나 묻고 있습니까? 확률에 의해 조작되는 신문의 운세코너를 습관적으로 읽고 있지는 않습니까? 운세가 좋은 날과 운세가 나쁜 날에 마음이 어땠습니까?
*목장 공통 나눔 (결과만 너무 궁금해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내 문제를 누구에게 묻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A -듣기 싫은 말을 잘 듣고, 연약한 부분을 목장에 잘 나누며 갈 수 있도록, 형을 정죄하지 않고 형을 위해서 기도 할 수 있도록,지금 눌리는 상황에서 갇혀있지 않고 말씀 보고 잘 나누면서 갈 수 있도록.
B -예배 시간에 졸지 않고, 돈을 적당히 쓸 수 있도록.
C -심적으로 힘들어 하거나 불안해 하는 친구들 미술 상담 해줄 수 있도록, 고소 공포증 이겨낼 수 있도록.
D -음란에 있어 계속해서 경계하고 오픈하고, 결혼에 대한 두려움도 하나님께 물으면서 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