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7 잘 물어야 합니다.
열왕기하 1:1-6 김양재 담이목사
답을 잘 받으려면 질문을 잘 해야 한다.
그 시대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
1.잘못 물으면 배반은 따라옵니다.
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 하였더라.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보라 하니라
열왕기하는 시작부터 1절에 죽음과 배반이 나온다.
아합이 죽자 모압이 배신했다고 한다. 왕들이 너무 말을 안들어서 바벨론으로 포로로 간 후에 이스라엘이 왜 망하게 되었는지 생각하라고 쓴 역사서이다.
개인적으로도 고난이 닥치면 왜 내게 이런일이 하고 묻는다.
근데 열왕기하 당시가 포로로 가기 직전이니 가장 영적으로 혼잡한 시대인데 망하기 전에 풍요를 잠깐 허락하셨다. 풍요하면 듣지 않는다. 안물어본다.
아합이 이런 시대에 굉장히 풍요하던 시대의 왕이였다. 근데 왕이 죽었다.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큰딸과 동침해서 낳은 아들의 후손으로 여호와의 총애에 못들어오고 다윗에게 정복을 당했다. 오랜세월 속국으로써 멍애를 벗기위해 호시탐탐 틈을 보다가 아합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에 반역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의지하는 아합이 죽었고 무시하는 모압은 배신을 했다. 우리도 똑같다.
아합은 누구고 모압은 누구인가?
거슬러 올라가면 배신 중에서도 모든 이스라엘의 반란중에 치명적인 반란은 자국에서 일어난 반란인데 바로 그 요셉의 후손 에브라임의 후손 여로보암이 북족 10 지파와 합세해 반란을 일으킨 여기가 북이스라엘이다. 그래서 남북 북이스라엘 남유다의 19명의 북이스라엘 왕과 20명의 남유다 왕 중에 반란으로 세워진 북이스라엘은 선한 왕이 단 한 명도 안나왔다. 모두 그러므로 배반과 반역의 역사였다. 믿는 북이스라엘도 이런데 세상은 어떻겠는가? 배반과 반역의 역사인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내 인생에 왕을 세우는 것이다. 돈. 명예. 남편. 아내. 자녀의 왕을 세운다. 그보다 더 큰 천하의 왕이신 하나님을 세워야 되는데 내가 세운 왕은 한계가 있다. 왕은 너를 압제하고 착취할 뿐이다. 그래도 하나님이 홍해 바다를 건너게 해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왕이 필요하다 한다. 그왕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왕국을 세우는데 필요한 왕이다. 자기 왕국을 위해 모든것이 도구가 되고 수단이 되니 백성을 압제하고 착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백성을 부린다.
가정에서는 이겨야 되니까 거기서도 계속 압제하고 착취하니 가정이 불행해지고 회사에서도 모든것이 도구가 되고 수단이 되니 이겨야 되니까 불행해지고 나라가 가정이 불행해진다. 이겨야 되니 자기 왕국 세워야 하니 그렇다. 그다음 열왕기에서 여로보암은 우상숭배의 대표자인 악인들의 원류로 평가하고 그 사람들이 나가서 하나님 자리에 금송아지 가져다 놓고 하나님이라 섬기라 했다. 그리고 찌질하다고 유다 후손인 남유다를 계속 괴롭혔다. 그러므로 소위 죄가 없는 총리 요셉의 후손들의 경건을 가장한 영적 교만이 이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다. 그들은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냥 쭉 역대기 열왕기를 봐도 유다의 후손 다윗을 따라야할 기준이고 요셉의 후손 여로보암은 부정적인 평가의 기준이 되었다. 물론 창세기 요셉이 등장했던 구절엔 요셉에게 본받을 점이 많지만 전체적으로 구속사로 보게되면 유다라는 얘기다. 이걸 잘 분별해야 한다. 요셉을 욕하는게 아니다.
여기서 아합이 누구인가? 북이스라엘의 경우 오므리 왕조에서 오므리와 아합이 다스릴때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시돈왕 엡바알의 딸 이세벨과 정약 결혼을 하고 남유다의 거룩한 성군인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에게 자기 딸 아달랴를 시집을 보내는 등 영육간에 모든 정약 결혼 외교를 통해 경제적으로도 찬란하고 궁을 지으면서 전성기를 보냈다. 그러나 그의 우상숭배 악으로 인해 아합의 징계를 내리려다 아합의 아들 세대에 심판을 내리겠다고 열왕기상 21장29에 보면 그래서 지금 아들 시대에 재앙이 왔다. 모압을 통해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다.
아합이란 최악의 왕이 죽었으면 그걸 반면교사 삼아서 회복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빌딩 지하실이 끝이 아니라 그 밑앤 지하주차장이 있다고 한다. 아합의 죽음 악행이 끝이 아니라 악행에 대한 심판으로 내려진 재앙의 시작이였던 것이다. 모압을 아버지와 딸이 동침해서 낳은 민족이라고 그렇게 무시했던 북이스라엘은 바로 그 모압에게 배반을 당했다. 아합이 악한가 모압이 악한가?
우리는 과거를 가지고 문제 삼으면 안된다.
사실은 아합과 모압중에 누가 더 악한가? 믿는 북이스라엘은 맨날 모압을 무시하고 유다를 무시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동침했다고 무시한다. 물론 모압은 하나님을 안믿는다.
그런데 북이스라엘 8번째 왕이 아하시야다. 16장 25절부터 보면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30절에는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그 아들 아하시야는 아버지의 길과 어머니의 길과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고 한다. 계속 조상의 길로 행하고 있다. 그래서 악하고 더 악하고 더 악했더라 가 북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이다. 금송아지를 계속 섬기며 저걸 하나님이다 돈 신을 섬기는 것이다. 문자적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하나님이라 섬기라 한다.
대대로 악을 행하는데 이사람들이 대대로 내려오면서 아합시대는 상아궁에서 까지 산다. 죄 의식도 없이 아하시야는 악한 부모들에게 효도를 하며 악한길을 죄의식도 없이 살아간다. 아하시야는 너무 효자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합은 나중에 마지막에 겸비하여 재앙을 아들 시대에 내리겠다고 하셨다. 한 마디의 회개도 하나님은 그걸 받아들이시고 아하시야 시대가 되었는데 아하시야는 본인의 악으로 죽지만 부모가 하라는 대로 다했다는 것은 부모의 구원 나의 구원을 책임지지 못한다. 부모가 하라 그러는게 다가 아니다. 그러니까 자기 오므리 아합은 흠이 없다. 할아버지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야한다. 결국 아합의 우상숭배가 자녀시대가 돌입해 1절에서 모압의 배반으로 결론이 나고 2절에는 그 아들의 질병을 가져오고 3절에는 경고를 가져와서 4절에서는 아예 죽음을 가져온다고 한절 한 절 이게 부모의 결론이다. 내가 권력과 재물을 남기고 죽으면 권력과 재물 떄문에 나를 배반하고 자녀를 배반하고 집안을 배반하는 사람이 생긴다.
자기편이 없어도 돈이 있으니까 배반 당한다. 돈이 없으면 배반당하지 않는다. 돈은 가졌지만 주변에 온통 나를 배반할 사람만 있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끔찍한가.
아합이 상아궁에 살면서 부자 나라를 만들고 정치를 잘 한 왕이다. 그러나 죽자마자 배반당하는 인생이 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물질을 자녀들에게 주면 자녀가 물질 자랑을 해대니까 배반과 약탈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부모이다.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 배반당하지 않는 삶의 비결이다.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돈도 나도 내 자녀도 아무도 지킬수가 없다.
아이들을 어려서 부터 말씀으로 계속 양육시켜 놓는 것은 금보다도 더 귀하다.
*적용질문
부모로서 나는 어떤 결론을 자녀에게 남겨줄까요?
유명메이커, 값비싼 물건으로 치장한 아이들을 학교와 거리에서 배반의 대상이 되게 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고 나는 부자인데 아이들을 너무 빈곤하게 검소하게 키우면 그 아이들은 억한 심정을 가지게 된다. 뭐든지 치우치면 안된다. 그래서 말씀으로 설명을 해주면서 밸런스를 마추고 치우침 없이 나누면서 설득을 해야지 무조건 너는 아끼고 살아 하면 사단의 밥이 될 수도 있다.
없다고 무조건 치장을하고 있다고 무조건 아끼고 다 문제가 된다.
남 보다는 항상 내공이 튼튼한 아이를 키우려면 부모가 솔직하고 이타적으로 살아야 한다.
2.결과보다 이유를 물어야 합니다.
2절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보라 하니라.
1절에 배신의 사건이 있자마자 그리고 아하시야의 추락 사고가 이어졌다. 아무런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엘리야는 다락에서 사르밧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렷고 엘리사도 수냄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렸다. 똑같은 다락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살겠고 하나님을 배신하는 자는 죽는다. 아하시야는 모압의 배신 이전에 본인이 하나님을 이미 배신하고 있다. 바알세붑에게 물으라고 한다. 급할때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왕이 다락 난간에 왜 올라갔을까? 아마도 그 대단한 아버지 아합을 이어서 내가 왕이된 기쁨을 만끽하려 다락에 올라갔다. 영국 황실보면 다락에서 손 흔들듯이.
한편은 모압이 배반했어도 아직나는 땅이 많다. 자기 도취에 젖어 흡족해 하는 그러다가는 자기 도취의 난간에서 반드시 떨어지게 된다. 떨어지고 나면 내가 왜 저기 올라갔었지 이게 자연스러운 것인데 아하시야에게 내린 재앙이 너무 심각한데 왜 떨어졌지 이런 이유는 생각하지 못하고 아하시야의 유일한 관심은 이 병이 낫겠나? 이다.
*하나님이 인생의 고난을 주실땐 그 걸음을 잠시 멈추고 삶의 방향을 생각해봐라.
항상 왜 를 질문을 해야한다. 우리는. 이게 살리는 질문이다.
그런데 아하시야는 죽이는 질문만 한다. 바알세붑에게 물어보라고.
아하시야는 왜 이거 관심없다. 복잡한 생각 하기 싫어한다.
아하시야는 예전에 아버지가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었는지 그렇게 우상숭배를 하다가 개와 개들이 피를 핥아서 아합과 이세벨이 죽었는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하나님은 여로보암떄 부터 선지자를 보내 부지런히 경고를 하셨다. 그런데 누구도 심각하게 듣지 않는다. 왕이 되려고 지위와 권력을 가지려고 누리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 오르니 눈에 뵈는게 없고 들리는게 없다. 따르는 사람 칭찬하는 사람 당신이 최곱니다 외쳐주는 부하들만 보이니 자기 실체를 볼 수 없는 영적 맹인들이 되어 버린다. 이게 심판이고 가장 심각한 재앙이다.
아합을 다시 생각해보면 열왕기상 22장에 아합이 아람의 길르앗 라못은 원래 우리의 것이니까 유다의 그 선한 여호사밧 왕보고 같이 치자고 한다. 그러니 여호사밧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물어봅시다 하니 그쪽 아합의 가짜 선지자 400명이 당연히 이긴다 장담한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물을만한 선지자가 더 없나 물었더니 아합이 미가야 라는 선지자가 있긴 있지만 그 사람은 맨날 나에게 흉한 예언만 하기 때문에 미워한다고 한다. 그 미가야가 불려와서 아합이 죽을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
아합이 화가 나가지고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떄 까지 고생의 떡과 물을 먹이고 가더라.
이렇게 바른말을 하면 옥에 갇힌다. 목장에서도 바른말을 해주면 싫어한다.
미가야 말대로 아합은 죽게된다. 우리가 밑동이 잘린 나무인 것을 생각하면서 알려준게 얼마나 복인가? 잠시후에 죽는게 사실인데 듣기 싫어한다. 400명의 제사장들이 모조리 폐하가 옳으십니다 이러면서 다 이긴다 그러는 것이다. 자기 영혼의 내린 무서운 재앙을 생각하기 싫고 사욕을 쫓을 선지자를 두고 날마다 내가 잘돼 안돼 묻고 잘된다 하면 복을 빌라고 한다. 그래서 천국가는 길을 막는 지도자가 많다. 기도만 받으면 뭐가 잘될것 같지만 400명이 북이스라엘의 믿는 사람이니 왕들을 위해 매번 기도해준다.
5절 예언자라는 자들이 나의 백성을 속이고 있다 입에 먹을 것을 물려주면 평화를 외치고,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면 전쟁이 다가온다고 협박한다.
6절 예언자들아, 너희의 날이 끝났다. 이미 날이 저물었다. 내 백성을 곁길로 이 끌었으니 너희가 다시는 환상을 못 볼 것이고 다시는 예언을 하지 못할 것이다.
7절 선견자들이 부끄러워 하며, 술객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다. 하나님꼐서 응답하지 않으시니, 그들이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다.
8절 그러나 나에게는, 주님께서 주님의 영과 능력을 채워 주시고, 정의감과 함께, 야곱에게 그의 죄를 꾸직고 이스라엘에게 그의 범죄를 꾸짖을 용기를 주셨다.
그러니까 고난 얘기를 하면 교회 교인이 50프로가 줄고 죄 얘기하면 아무도 안나온다고 한다.
그만큼 죄 얘기를 싫어한다. 그러니까 행복이 인생의 목적이기 때문에 조금만 고난이 와도 참고 견디지 못한다. 늘 조급하고 불안하고 손쉬운 해결방법 처럼 보이는 것을 찾는다 그러니 사기 당하고 사이비에 빠지고 우상에게 넘어간다. 조금이라도 힘든거 못참는다. 이것이 성경에 그대로 있는데. 성경대로 살고 설교하는 것이 목숨을 걸고 해야하는 일이다.
사건의 해결에 앞서 말씀으로 해석을 해야한다. 사건을 주신 이유와 목적을 생각해야 된다.
아이들도 학교에서 시험 볼 때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히 알수록 정답을 잘맞출수 있듯이 아이들 어렸을때 부터 큐티하면서 띵크해야 한다. 이걸 해야 출제자의 의도를 알게된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거하면 세상책은 어떤것도 해석이 된다.
자꾸 공부하느라 학원 가느라 이게 비교의 대상이 아닌다. 사건이 오더라도 그걸 허락하신 주님의 의도와 뜻을 알아야 풀수있는 것이다. 정확하게 해석해서 풀어야 해결이 따라온다. 그런데 우린 날마다 사건이 왔을때 이 사건 끝나는 건가 언제 끝나나 하지말고 왜 왔을까 내가 생각해야 할 것은 뭐지 내가 봐야할 죄악은 뭐지 라고 구속사적인 질문을 하고 응답을 기대하길 바란다.
그런데 날마다 이게 언제 끝날까 *결과보다 이유를 생각해야한다.
*적용질문
결과만 너무 궁금해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 밑에 깔린 내 욕심이 보입니까?
사건이 온 이유를 꺠달아 자유롭게 된 일이 있습니까?
3.하나님꼐 물어야 합니다.
아무리 뻔해도 우린 하나님꼐 안 묻는다.
3절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북이스라엘도 분명 하나님에게 택함받은 백성이지만 병이 들게 되니 블레셋의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나을 것인가 물어보라고 한다.
왜 하나님에게 안 묻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첫째로 하나님의 존재가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북이스라엘 초대왕 여로보암이 유다와 대결하려고 10지파 데리고 나가서 브엘서부터 단 까지 금송아지를 세웠다. 북이스라엘은 반란해서 나가서 처음부터 우상을 숭배했다. 이후에 아합은 사마리아에 바알신전을 건축하고 바알숭배를 국교로 선포하면서 더욱 심각해진다. 바알을 섬기던 시돈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불신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반역해서 나가는 순간 하나님의 성전은 그들이 인정하든 안하든 지금 남유다 예루살렘에 있다. 그게 늘 걸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하나님께 뭘 물어보는 그 순간 자기가 유다보다 못하게 된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하나님 보다 더 높였던 교만이다. 자기가 제가 뭐라고 애기를 하면 아니 뭐 목사가 하나님 보다 더 높아? 목사가 뭐라고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가 많이 한다. 아하시야가 이러는 것이다.
절대로 하나님께 묻지 않는다. 내가 진다는 것이다. 나는 목자한테 안물어 목자한테 진다는 것이다.
둘째로 아하시야는 욕심을 채우려고 기복신앙을 추구했기 때문에 바알세붑에게 묻고자 했다.
아하시야는 모태 바알 교인이다. 그래서 바알에게 복을 비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우리로 생각하면 교회를 다니는데 돈 신을 믿고 복을 비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것이다.
부모에게 보고 배운것이 사건이 올 때마다 자기가 원하는 답을 준비하고 있는 400명이나 되는 바알 선지자들을 부르는 것을 보고 자랐다. 그렇게 바알 섬기던 부모가 하루사이에 비참하게 죽었다.
그러니까 사마리아 신전에 있는 바알이 아니라 원조 원래 고향인 원조 에그론의 바알세붑을 찾아가라 한다. 바알이 이건 정말 기복신앙이다. 이게 기복신앙의 기본 구조고 공식이다. 늘 내 욕심이 기준이기 떄문에 욕심을 채워줄만한 우상을 찾아 열심히 섬긴다. 그러다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갈아탄다.
제사를 바꾸고 신전을 바꾸고 도시를 바꾸고 신을 바꾸고 하지만 내욕심에 만족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사명이 없으면 기쁨이 없고 만족이 없고 감사가 없다. 맨날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이런 방황이 끝이 없다. 이런 아하시야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 엘리야를 통해 에그론으로 보낸 사자들을 통해서 한가지 질문을 한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에그론의 신 바알에게 물으러 가는 까닭을 물으신다. 간접적으로 아하시아의 불신과 기복적 욕심 떄문임을 지적한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이렇게 살아계시는데 아하시야가 믿기를 거부하니까 바알세붑을 찾지 않냐 하신다. 하나님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자기가 만들어논 백성이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제사장 나라로 세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이 이렇게 하나님을 멀리하고 돈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니까 계속 찾아가서 말씀을 하신다. 자기 마음이 욕심에 꽂혀있으니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은 너무 싫고 그저 무엇이든 들어줄 것 같은 우상을 찾아 방황한다. 아하시야가 그 잘난 부모를 두고도 너무 못 깨달으니 엘리야를 통해 직접 화법으로 얘기해줘도 안 듣는다. 여러분은 무엇이 그렇게 든든해서 하나님을 못 믿는가? 자식 돈 명예 부모님이 그렇게 든든한가? 그래서 못 믿는가? 그런데 사자를 보내서 묻기 전에 엘리야를 통해 가로막아 또 기회를 주신다. 너 거기서 묻지마라 징계가 목적이 아니라 돌아오라고. 사랑으로 가로막았다. 그러나 우리도 교회를 다니며 한다는게 무당 찾고 점쟁이 찾아서 묻는다. 날마다 이런거 물으로 다닌다. 비참하게도 에그론은 불모의 땅이란 뜻이다 바알세붑은 파리의왕이란 뜻의 에그론의 신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벌은 가장 큰 벌은 여왕벌이라 하지만 파리는 가장 큰 파리는 여왕파리라고 하지 않고 똥파리라고 한다. 똥파리에게 물으러가냐 하시는 것이다.
처음 큐티를 하다보면 사건 적용만 되서 날마다 뭐 물어보라고 한다. 결론부터 알려고 하기 때문에 상담자들이 그 결혼을 해라 하지말아라 병이 낫는다 안낫는다 이런 결론만 말해주면 다들 우와 영엄하다 한다. 그러니까 물으라고 하는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그는 부모의 악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이미 모압의 배신과 자신의 병을 통해 징벌 하심을 믿지 못하고 바알세붑의 똥파리신에게 물으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물으러 다니는 대상은 고작 똥파리신과 같은 바알세붑같은 존재일 뿐이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대상을 찾아가서 내 문제를 물으러 공동체를 떠나고 목장을 떠난다 예수 점쟁이가 너무 많다. 교묘하게 예수믿고 다니면서 나한테 좋은 말을 해주면 너무 열광한다. 이렇게 묻는것 자체가 똥파리 신이다. 이렇게 불신과 욕심으로 우상에게 물은 결과는 4절에서 6절 죽는다 이 얘기이다.
4절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5절 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하니
6절 그들이 말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니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성경의 한절이 너무다 중요한데 반복해서 죽으리라가 4절 6절 16절에도 반드시 죽으리라고 나온다.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 그길로 가기 때문에 반복해서 말씀 하신다.
사단은 선악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했는데 죽을까 하노라 그러면서 먹었다.
왜 말씀 몰라서 선악과를 먹었을까? 정녕 죽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하와가 유혹을 너무 강하게 하기 때문에 죽을거 알면서 다 선악과를 먹는다. 죽을거 알면서 불륜을 행하고 죽을거 알면서 동업하고 코인하고 마약하고 그런다. 우리의 죄성이다. 에그론의 바알세붑을 반복하며 강조하시는데 말씀으로 인도함 받는것이 얼마나 큰 능력인데 네가 고작 똥파리 신에게 물으러 가느냐고 호통을 치신다. 엘리야를 통해서. 우리가 너무 확신에 차서 말해주는 것은 다 이상하게 여겨야 한다. 우리가 의논을 하지만 답을 주는 곳이 아니다. 이렇게해서 인도함은 당신이 받아야 한다.
*적용하기
산기도 다니는 건 뭔가 공을 들인 것 같아 뿌듯하고 큐티하고 말씀 듣기는 힘은 안 들지만 힘들어 지친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까?
내 문제를 누구에게 묻고 있습니까?
*하루 동안의 대화에서 내가 묻고 있는 주제는 무엇입니까? 얼마나 묻고 있습니까?
확률에 의해 조작되는 신문의 운세 코너를 습관적으로 읽고 있지는 않습니까?
운세가 좋은 날과 운세가 나쁜 날에 마음이 어땟습니까?
우리가 자꾸 이상한 곳을 찾아다니며 묻는 이유는 십자가지는 삶이 너무 싫기 떄문이다.
뭔가 합리화 할 거리를 찾고싶고 권위있는 누가 이렇게 하라고 했다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 물어보고 다닌다. 우리는 눈 앞에서 당장 이렇게 되는것 때문에 이렇게 유명한 사람의 처방을 너무 기뻐하며 권위있는 누가 얘기할때 상담을 공부하고 뭐 이런것들. 앞으로 벌어질 일에 십자가를 길로 놓으면 되는데 결국 내 문제를 누구에게 묻는가는 너무 중요한 문제이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계속 띄우고 그래도 둘 중에 믿음이 부족한 사람은 눌러줘야 중재가 된다.
화평케하는 것이다. 잘 물어야 한다 누구에게 묻고 누구에게 혼나고 중요하다.
대상을 잘 찾아서 물어야 한다. 되게하는 화평케 하는 중재자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잘 물어야 한다 대상이 너무 중요하다 잘못 물으면 이렇게 400대 1인데 400명이 옳다고 해도 아닌건 아닌것이다. 그 얘기하면 죽음이 있다 그래도 목숨을 걸고 우리가 전해야되고 살려야한다.
잘못 물으면 배반은 따른다 결과보다 이유를 물어야 한다. 정말 우리는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나의 사욕을 쫓을 스승을 찾아가 물으면안 된다.
-나눔
나는 어떤 똥파리에게 빌고있나에 대해 나눴습니다.
-기도제목
민규 - 신교제를 하기 전전에 거룩한 삶을 늘 살 수 있도록
주님이 주신 재능을 사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생길 수 있도록
성현 - 일에 대해 결과만 보지않고 이루어나가는 과정과 그에 대한 이유까지 생각할 수 있는 삶이 되길
가르치는 학생들을 더욱 더 긍휼히 생각하여 기도할 수 있는 정결한 마음주시길
현진 - 내 생각에 앞서 행동하지 않고 잘 묻고 갈 수 있길
허락해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는 하루 살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