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23 마태복음 5:9 (팔복산의 상속자)
9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팔복산에서 가난한 자가 누릴 애통과 온유와 의에 주림으로 배가 부르게 되고, 또 팔복산의 통로인 긍휼로 팔복산의 시력인 청결을 갖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청결함으로 오늘 화평으로 나가게 된다고 합니진.
그리고 이 화평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는 상속자의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1. 상대와 함께 화평을 누립니다.
로마입장에서는 평화라고 할수있지만 제압당한 반대 입장에선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개종해도 소용없고 유대인조부가 있는 사람은 가차없이 몰살당했습니다.
독일은 승자의 위치로 화평했겠으나 유대인입장에선 아니었을것입니다.
화평은 헬라어로는 샬롬인데 평화를 위해
죄로인해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세상이나는건데 자기편이 말하면 무조건 옳다라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권의 시대에 살고있는데 유례없는 무서운 시대에 살고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 유대주의를 거슬러 올라가는것처럼 왜 이런일이 일어났을지 거슬러 올라가봐야합니다.
유대인들의 원죄는 예수님을 죽인 죄인겁니다. 그 죄값을 다 받을테니 예수님을 죽여라 라고 한것입니다. 힘있는 사람이 기준이 되는데 돈이든 외모든 뭐든 힘이 조금이라도 더 있는 사람이 세운 질서대로 화해하는 척하지만 싸우고 화해하고 반복합니다.
온전한 화평은 다투던 양쪽이 누리는것을 뜻합니다.
힘있는 어느 누구의 질서가 아닌 하나님이 기준이 된 질서가, 이 땅의 모든 질서도 마찬가지로 화평을 이루는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생각지 말아야 할 일시적 화평이 있습니다.
싸움만 그치면 그 결혼이 유지될것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화평은 가족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된 연민, 위장된 감정, 일시적 화평이 깨지는 것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한국인은 정이 많은데 기대가 많고 기대했던것 만큼 배신당하면 분노하고 죽이고 싶을정도로 미워하는겁니다.
싸움도 복음 때문에 담대해지고 진정한 평화가 넘칩니 그러니 진정한 화평을 위해 주님은 일시적 화평을 깨트리실수도 있다는 겁니다.
-적용 질문
여러분의 화평은 한 쪽 짜리 이기적 화평입니까? 양쪽의 이타적인 화평입니까?
일시적인 화평을 지키려고 주일을 어기는 배우자, 자녀를 못 본 체합니까? 그러다가 나중에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는 원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백마디 듣기 좋은 말은 한마디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임을 실천하십니까?
2.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룹니다.
그리스도와 똑같이 상속을 받는 상속자 신분인 하나님의 자녀라는겁니다. 그런데 이때 빠질 수 없는게 뭐죠?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영생을 위한 면류관을 써야할때가 있는데 이때 혼자 받는게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그 십자가 길을 따라가다보면 따라 받을수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뭐가 가난합니까?
돈, 용모, 스펙, 성품, 인정받는 부분에서 가난해지기란 인간의 죄성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만났다가는 화평은 물건너갑니다. 그것으로 군림하기 때문입니다.
내 맘에 쏙 드는 자녀와 부모와 배우자와 살고있다면 내 신부인 주님을 사모하게 되겠습니까? 내가 맘에 안드는 만큼 주님을 사모하는겁니다.
원칙을 지켜야합니다. 육이 무너지는만큼 영이 세워지는겁니다.
자녀의 품질이 좋으면 좋은데로 교만해서 자기 부인이 필요하고 자녀의 품질이 나쁘면 열등감으로 닦달을 하기에 자기 부인이 필요합니다. 썪어질 것을 버림으로써 얻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것이 주님과의 화평을 막습니다.
하나님믿는거랑 예수님믿는거랑 차이를 설명해도 성령님이 없으면 안되는겁니다.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이 오시는건데, 그런 예수님이 이 땅에서 준마로 안오고 나귀새끼로 왔잖아요, 독일인이 유대인들을 학살할때 억소리도 안내고 순종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러니 행위로는 그들을 따라갈 자가 없습니다.
이것은 유다를 이해하냐의 문제입니다. 유다가 그래도 예수님이 오실때 중요한역활을 했기에, 라고 말하는것은 그래도 유다가 선한마음으로 행위를 가졌기에 구원받지 않았나 라고 하는것입니다. 인간말종이나 하는 얘기로 들린다고 합니다.
구속사가 안들려서 그렇습니다. 금그릇들이 바른생활들이 안깨져서 그렇습니다.
구원열차에 그냥 끝까지 타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행위로 구원받을수 없다는 겁니다.
-적용질문
여러분의 집은 자녀가 문제아입니까, 부모가 문제아입니까?
독일이 더 나쁩니까, 유대인들이 더 나쁩니까?
(화평의 메신저 유다를 따라갈 상속자는 없습니다).
3. 정말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입니다. 이게 화평의 언어입니다.
유다가 바로 다말의 고백으로 회심을 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되고 육적 아버지인 야곱을 사랑하게 되고 요셉에게는 벤야민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겁니다.
구원을 위하면 진짜 사랑을 자연스럽게 하게됩니다. 유다를 보면 진짜 사랑을 알수있습니다.
원망할때는 요셉을 죽이려들고 팔았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유다가 예수를 만나고서 이들은 22년이나 계속되는 아버지의 슬픔을 보았습니다.
각자 식구들이 헤어나오지 못하는 슬픔이 있는데 그러니까 그들을 위해서 왜 그러냐? 가 아니고 내 자신을 내어주는 방법 외에는 길이 없다는 걸 유다가 알았습니다. 야곱은 여전히 요셉과 베냐민만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예수님 만난 유다가 예수믿게 해준 아버지를 이해하게되고 연약한 부분을 인정하게 됩니다.
요셉이 총리되는것보다 기적은 형들의 변화가 더욱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야말로 유다는 화평의 중재자입니다.
유다는 자타가 공인하는 만고의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회심한 그후로는 성경에서 조용히 있습니다. 그리고 그 22년후에 화평의 중재자가 되는겁니다. 자기주제를 알기때문입니다. 죄를 알기에, 늘 입을 다뭅니다.
유다는 예수씨이고 요셉은 예수님의 표상인데 이것은 하늘과 땅차이입니다. 예수씨와 표상은 진짜와 가짜의 차이입니다. 씨는 생명이 나는거잖아요, 진짜지않습니까?
하나님과의 화평이 있으려면 이 유다처럼 자기의 주제를 알아야 됩니다. 그럼 이제 내 자신에 대해서 정죄도 아니고, 동정도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 신분의식, 화평이 있어야 됍니다. 그러면 저절로 이웃과의 화평, 중재자가 따라오게 됩니다.
진실은 그저 모든 걸 까발리고 옳은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 때문에 진리와 진실을 이야기해야하지만 믿음의 분량과 행위의 분량은 각자 다르기 때문에 진리와 진실을 말할때는 화평이 수반되야 하는겁니다.
화평은 나와 주님사이에 죄로 가로막혀있으면 되지않습니다.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가 지금 우리들교회의 표어입니다.
-적용질문
여러분 진실이라고 까발립니까? 믿음의 분량을 인정하고 화평을 수반해서 말합니까?
화평을 빙자해서 회피합니까?
<기도제목>
은우목자언니
1.100% 옳으신 주님과 화평한 한주 보내도록
2.직장과 가족의 상처 가운데 일어날 힘 전혀 없는 목장식구들의 탄식의 기도를 들으시고 검게 그을린 나무와 같은 우리의 마음에 회복의 옷을 입혀 주시고 해석할 수 있는 약속의 말씀 주시도록
다님
1. 어떠한 자리, 사람, 시간, 일이든 늘 큐티와 함께 할수있길
2. 양교와 주어진 일들 무사히 끝 마칠수있는 체력을 부어 주시길
지윤
1. 하루를 잘 살아내고 감사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2. 불평불만 하지 않고 입을 다무는 적용할 수 있도록
세정
1. 사람 묵상, 인간관계 지옥에서 박차고 나올 수 있도록
2. 어지럼증에서 회복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