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3.26 팔복산의 통로
마태복음 5:7
간증의 주인공들이 예수님의 조상이 돼었다.
영적 배부름을 경험하게 되면 팔복에 중아엥 있는 의인은 너는 나보다 옳도다 한다.
의는 나는 너보다 옳도다 .
긍휼은 불쌍이 여기는 것이다.
-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긍휼은 매우 불쌍히 여기는 마음.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며 불쌍히 야기는것.
주님의 긍휼은 박애는 아니다. 사람의 동정과도 다르고 조건적인 차별적인 긍휼과도 비교가 된다.
동정은 나보다 못한 여러가지 조건에 의해 불쌍히 여기는 건 긍휼이 아니다. 비교의식 우월감 자기만족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좋은릴에 기부하거나 동정를 베풀었을때 후에 우리마름에 일어나는 감정이나 생각을 솔직히 점검해 보면 인간이 100%죄인 이라는 것을 알수맀다.
열심히 선하게 살다가 막히는 일이 생기면 돕던것을 베풀던것을 내려두게 된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왓지? 라며 내 선한일을 기억하며 억울해 한다. 이것은 동정한 것이다.
남이 부당하게 고통당할때 내 마음에 생기는 고통의 감정. 이 긍휼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호소하고 불쌍한 사람들 동원해 최대한 불쌍해보이려고 애쓰면 처벌을 면했다고 한다. 그런일을 당해서는 안돼고 안될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고통을 당하니 측은지심이 생기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할때 불쌍히 여기어 도와주는 것이 측은지심이다. 건장한 장정이나 강도가 빠지려고 할땐 불쌍히 여겨지지 않는다.
긍휼은 조건적이고 차별적이다. 죄인이 불쌍히 여겨지지 않고 의인이 부당한것을 당할때 불쌍히 여겨지는것이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라고 말씀 하실때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으시고 그저 긍휼히 여기는자를 말하신다. 가족 친족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누구든지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복을 누린다.
인간의 옳고 그름은 팔복산의 통로가 될 수가 없다.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해서 모두를 긍휼히 여겨야 한다
우리다 다 밑둥잘린 나무이기 때문이다. 원수를 포함해 모두를 불쌍히 여겨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는 죽음 때문이다.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으니 나도 남도 불쌍히 여겨야 한다.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불쌍한 존재인것을 깨닫는 것은 복이다.
건강하던 아프던 부하던 가난하던 착하던 악하던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한없이 불쌍한 존재다. 사람은 누구나 긍휼이 필요하다.
고난은 장차 당할 마지막 고난인 죽음의 예고편이다.
이것을 알면 이게 복이다.
고난을 통해서 죽음을 생각하면 그 고난은 제대로 잘 맞은것이다. 고난을 당해서 잘차 임할 죽음을 생각하면 굉장한 복이다. 아무 고난이 없이 그 죽음을 모르면 많은 고난을 당한 사람보다 훨씬 불쌍한 사람이다.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내죄를 보고 대단한 적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다.
긍휼히 여기는건 말한마디 작은것 부터 시작이다.
*적용질문
- 긍휼히 여김을 받은 것입니다.
누구나 긍휼히 필요하다는건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로 남을 긍휼히 여기는것 특히 내게 피해를준 사람에게는 힘들다. 구원의 반석에 오른 사람만이 가능하다.
죽음의 늪에 빠진 사람을 불쌍히 여길 수 있다. 지옥으로 갈 인생이 보이기 때문이다.
라함은 어머니의 자궁이라 뜻으로 창자가 끊어지듯 아파한다는 뜻이다. 감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적으로 공감해주고 행동하는 것. 이게 긍휼이다.
아무런 공로와 자격이 없을때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
자격과 공로가 없는 점하나로 있는 태아 상태에서 부터
점 보다도 약하고 무너진 성벽 무너진 내 인생을 주님은 엄마가 젖먹은 자식을 못잊는것 처럼 항상 보고계신다.
자기 태중에 나온 자식이기 때문에 끝까지 손바닥에 새겼다는 뜻이다. 죽음같이 강한 사랑으로 긍휼히 여기신 것이다. 죄인인 우릴 위해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과 공감을 해주신다. 슬픔과 애통이 행동으로 행함으로 나가는것.
하나님의 긍휼이 성육신 예수님이다.
우리는 값없이 1만 달란트 탕감받은 긍휼히 여김을 받은 사람인데 이것을 알지 못하니 100데나리온 긍휼을 베풀지 못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니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게 아니다.
근본적으론 마지막을 준비하는 종말론적 이야기이다.
주님의 절대 긍휼을 입은자 만이 이웃에게 긍휼을 흘려보낼 수 있다. 주님의 긍휼을 받지 못한 사람이 하는 긍휼은 동정이나 자선을 넘어서지 못한다. 내 힘으로 자선하고 둥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는 긍휼과는 차별이된다. 그러니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사람은 사람에게 일희일비 하지 않게된다. 사람은 믿음의대상이 아니다. 내가 해준만큼 받으려 한다. 사람에게 긍휼을 받으려 하지 말아야한다.
내가 해준게 있으니 니가 나에게 갚아야 한다 라며 늘 싸우게 된다.
긍휼을 입을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은 이 땅에 없다.
우리가 중독된것에 일등이 자식인데 하나님이 테스트 하신다. 내 분신이 이 세상에 나왔는데 속썩이고 공부를 못하면 창피해 한다. 무서운 열심으로 쏟아붓는데 그 기대에 못미치면 잠이 안온다 집착이다. 그러면서 사랑이라고 한다. 안돼면 사랑한다고 때리고 욕한다.
자식 하나만 내려놓아도 큰 적용이다. 마약도 한 번 하기시작하면 하루종일 그 생각밖에 안난다고 한다.
모두 끊어봐야 집착인줄 중독인줄 안다.
세상적으로 잘 살수록 중독에 더 잘 빠진다.
영원한 형벌은 없다. 30년 후에 이스라엘에 망한다고 영적으로 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린 예수 믿어야 회복이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회복의 약속을 주신다.
망하는것 같아서 중수할 수가없다.
그래서 무너진 성벽을 못 끊는다. (돈,여자,술,마약 등등)
우리는 간절히 바라는게 있어 서원하고 이뤄지면 잊곤한다.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나에게 잠시 맡겨주신 것이다.
*적용질문
잘살아지니까 이혼 , 동성애 등 중독이 생긴다
- 그래서 가장 힘든 사람을 데리고 함께 올라야합니다.
진정한 용서는 무엇인가? 나에겐 선한것이 없기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주님 제가 용서할 수 없어요 불쌍히 여겨주세요 라고 기도해야한다.
구원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을 긍휼히 여겨주신 주님이 나를 힘들게 한 그사람도 긍휼히 여기심을 믿어야한다.
긍휼히 여길때 나의 부족한 부분이 조금씩 매꿔진다.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긍휼히 여길 수 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보고 저사람만 없으면 내게 복일텐데가 아니고 그사람이 있어서 내게 복 이다 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사람을 통해 나 모습을 볼 수 있기때문.
나를 힘들게하는 그 사람이 복의 통로다. 미워하지 말아야한다.
내가 나를 용서 못하면 다른 사람은 더욱 못한다.
*적용질문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게 되면 긍휼히 여기게 되고 긍휼히 여기게 되면 창자가 끊어지듯 아프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미디어를 보면서 음욕을 품는다. 수없는 간음을 하고도 들키지 않았다.
이 세상에 누구도 긍휼히 여겨지지 못할 사람은 없다. 나도 긍휼히 여김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100% 죄인이다. 의인은 네가 나보다 옳도다. 긍휼은 불쌍히 여겨주세요 이다. 우리는 용서할 수도 없고 사랑 할 수도 없다.
[기도제목]
이민규 - 함께 할 수있는 좋은 배우자 만날 수 있도록
윤성현 - 가르치는 학생들이 교회를 접하고 하나님을 알아 영적구원이 있길
박현진 -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보며 죄와 중독이 끊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