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제목
성화
- 키가 작은 열등감을 잘 해석해갈 수 있도록
- 운동 꾸준히 할 수 있도록
지훈
-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나타내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순원
- 회사 생활 잘 할 수 있도록
- 운동 잘 할 수 있도록
- 말씀으로 잘 납득될 수 있도록
종민
- 말씀 잘 보고 가고 하루하루 계획 잘 세우면서 갈 수 있길
- 낙심하지 않도록
기백
- 소유의 근원을 하나님으로 잘 인정하고 갈 수 있도록
- 교제간에 내 모습 잘 보고 사랑의 언어를 잘 쓸 수 있도록
- 회사에서 꾸지람 잘 듣고 갈 수 있도록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에워쌈을 당하는 초라한 삶이 해석되어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영적지수를 처음 들었다. 그 중에 최고점은 깨달음이다.
깨닫기 위해 여러 공부를 한다. 보통 사람이 평생 영적지수를 5를 올리기 쉽지 않다.
이번 한 주간을 통해 5가 아니라 500점이 되는 업그레이드를 한 것 같다.
말씀을 들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마음으로 한 주간 살았다.
팔복산의 배부름에서 우리 신앙의 목표가 있는데 내가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씀을 들으면서 영성지수가 100점 정도 되는 깨달음이 있었다.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천국의 기쁨을 가지는 시간이었다. 감사와 회개를 했다.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주어는 하나님이다.
너 혼자 바둥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는 인생으로, 기복에서 팔복으로 나올 수 없겠니?
하나님이 오늘 우리들을 부른다. 함께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콜링에 반응하고 적용하길,
하나님에게로 나아가기 위해,
1) 내 삶에 허락하신 작을지라도가 해석이 되야 합니다.
미가 선지자는 유명한 선지가는 아니다.
예수님이 탄생하기 전부터 베들레헴에서 나올 것을 예언했다.
너희도 돌이키지 않으면 북이스라엘처럼 망한다는 예언의 말씀을 한다.
구원자 메시야의 모습이 기대와는 상반되는 것이다.
뭔가 메시야라고 하면 멋있게 등장해야 하는데... 승리를 가져다주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이름도 잘 모르는 베들레헴에서? 듣보잡이다.
그곳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맞나? 의아해 하는 선포가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세팅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수님의 방식이 뭔가 미움과 무시가 깔린다.
예수님이 보이는 사람은 기존과는 다름이 보인다.
예수님이 의지하는 하나님의 위엄은 섬김을 받는 리더십이 아니다.
종의 모습으로 서 있는다. 서서 우리들을 목축해주신다고 한다.
예수님이 목자되심으로 안연히 거주할 수 있다. 굴림이 아니라 섬김으로,
예수님이 왕복으로 입고 좌정하시면 섬세하신 인격, 어떤 분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셔야만 했다.
작은 곳에서 오시는 주님을 바라보기까지 오래 세월이 걸렸다.
모태신앙으로 잘 믿으면 잘 되어야 하는 줄 알았다.
1절을 보면 딸, 군대여라고 부른다. 뭔가 무능력한 이미지다. 딸들이?
3절을 보면 메시야가 오시기 전까지 우리 손에 붙여주신다고 한다.
이것을 해산하는 여인의 이미지로 표현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에 두신다는 것이다.
막대기로 지도자가 뺨을 맞는다고 하는데 세상에 고개를 숙이는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불쌍한 우리 부모님을 봐달라고 하는데 응답이 없었다. 10년 간 교회를 끊었다.
하나님에 대한 거절감으로 기도를 잘 안하는 사역자이다.
가장 큰 거절감은 '하나님, 더 죄 좀 짓지 않게 해주세요...'
하나님이 없으니 애정, 인정에 목말라 음란의 죄를 많이 지었다.
기도 속에 곧은 욕심, 의, 자기중심성 기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예수님이 되려는 마음이 있었다. 내 주제를 인식하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수단으로 삼아서 제 자신이 뭔가 성인이 되려는 마음이었다.
깨달아지니 옳소이다가 되었다. 작을지라도의 세팅이 인정이 되었다.
해석되지 않는 작을지라도의 세팅이 우리들에게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직면하면서 묵상해보면 좋겠다.
*적용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해 서운한 감정들 거절감이 숨어있진 않으십니까?
내 삶에 허락하신 작을지라도의 세팅이 여전히 해석이 안 되어 자기 연민에 갇혀 있지 않는가?
2) 나를 많은 백성 가운데 두신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복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5절 말씀에 평강이 될 것이라고 한다.
내가 화평이 아닌 검을 주러 오셨다고 한다. 다 양면이 있다.
지난 주, 네팔 아웃리치를 다녀왔다. 주신 말씀으로 저의 나눔을 했다.
내 안에 동정심이 있었다. 나의 기준으로 영혼을 보았다. 제 안에 우월의식을 보았다.
그 사람들을 변화되기 전에 우리에게 변화를 주셨다.
아웃리치 기간 말씀으로 마태복음을 통해 천국은 이런 곳이라고,
겨자씨 만한 남은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많은 백성들 가운데 두셨다고 한다. 잘 감당하고 있는가?
사명 때문에 왔다가 사명 때문에 간다고 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밟혀야 하는 욕심, 이기심, 선민의식가 가지치기가 되어야 한다.
*적용
전도새상자에게 따듯한 위로와 도움만 주면서, 막상 교회로 나오셔서 말씀을 들으셔야 한다는 본론은 말씀 못하고 있진 않으신가?
손과 발이 가는 섬김의 적용이 없어서 '너나 잘 믿으세요~'라는 조롱을 듣진 않는가?
많은 백성 가운데 나를 두시는 이유가 영혼 구원 때문임을 인정하는가?
3) 하나님이 내 삶 가운데 이루실 심판이 반가워야 합니다.
우상과 주상을 멸절하겠다고 하신다. 우리에게 우상이 되기 쉬운 것은 자녀다.
아까도 광고했지만 부모학교에 많은 관심과 기도바랍니다.
하나님이 진노와 분노로 대하시는 것이 반가운가? 조심씩이지만 반가워지고 있다.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에 애통함이 심겨졌다. 순종 원어는 들리다
기복의 배부름으로 말씀이 들리지 않을까봐... 하는 생각이 든다.
말씀을 취사선택 하는 것은 자기중심성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네게서 내게로 나오라고 한다. 하나님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길,
*적용
내가 가장 의지하는 무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내가 두려워 눈치보는 우상이 있다면 무엇인가?
말씀을 취사선택해서 듣고 있진 않는가?
*기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처럼 훈련된 온유가 없었다.
이렇게 해주셔야 한다고 조정하려는 저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고 거절감으로 온 몸으로 주님을 부인했다.
이제 너의 연민, 너의 생각, 감정에 빠지지 말고 나에게로 나오라고 하신다.
주신 말씀에 순종해서 에워쌈을 당하는 환란에서 해산하는 여인처럼
무력감에도 나를 바라보는 주님을 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