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26 마태복음 5:6 (팔복산의 배부름)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온유 다음은 가장 힘든것이 늘 눈을 뜨면 내가 옳도다에서 니가 옳도다가 안되는것입니다.
우리의 주제가는 늘 옳다여서 억울한 게 많아요. 내가 아무리 온유해도 '내가 옳다'에서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의를 내 힘으로 못합니다. 의는 그리스도 자체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날마다 의에 주려야 합니다. 성경에서- 팔복산에서- 배부름의 축복을 말씀하십니다. 팔복산의 배부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우리는 기복산의 배부름에 너무 주려있습니다.
내환경은 나보다 옳도다의 말이 놔와야 하는데 그럴수가 없는데 그렇게 힘든 고난이 올때, 성품으로 순종햇는지, 사건으로 순종했는지 가봐야 안다.
내게 그에 대한 억울함이 있고, 인정이 안되는데 누구를 위한 옳음인가? 우리힘으론 절대 할수가 없다. 그때마다 의에 주려야한다는것
이것의 실상을 봐야합니다. 돈 명예 사랑 가족 기적 등에 주리고 계십니까?
배부른것이 아닐 배고픔에 주려야 하는것은 배고프면 기분이좋아요,라고 말해야 된다
사마리아여인이 목마르다 하는것을 보며 너의 남편이 다섯이나 있지만 지금 남편도 결국 너의 남편이 아니라는 말씀을 보면 이 세상 물은 먹어도 먹어도 목마릅니다. 육체적으로 목마르기도 하지만 영적으로 주린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 세상의 물은 애통보다 애타게 바라는것을 말합니다.
안되는 것을 보면 쪽이 팔리고 그것이 바로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라는 겁니다. 늘 이 세상에서 돈에, 용모에, 배불렀다면 팔복이 시작도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도 과거에 이 세상 성공에 주리고 주렸기에 그것을 채우고자 노력했었습니다. 그것을 해봤기에 배부를 수 없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내가 죄인이라는것을 뼛속까지 알아야 한다라는 건데 기복산의 주림은 사람에게 주리고 사랑에 목마름인겁니다.
내 결핍을, 이 주림을 채우고자 몸부림치면 당장에 목마름을 채울수있는것같지만, 결국 절대 채울 수 없다는것을 역사를 통해 말씀을 통해 알게 됩니다.
-적용질문 : 육신의 남편이나, 혹은 아내가, 또 자녀가 너무 좋고 의지가 되지만 믿음이 없기에 감히 '나는 남편, 아내가 없다'는 고백을 할 수 있겠습니까?
2. 의에 주리고 목이 말라야 합니다.
팔복산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가 있다고 하시는데 단순히 의는 옳고그름의 정의를 가르키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의로운 자가 옳은자가, 복이 있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교회 잘다니는 자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구원에 목이 마른자가 의로운자고 그런 의로운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바로 이 차이,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는 이 구분이 너무 중요합니다.
이 세상엔 의인이 하나도 없는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행위에 복이 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는 주님의 구원에 목마른 자라는 겁니다.
스스로 구원할수있다는 교만한자는 의로울수 없다는 겁니다. 자신의 전적 무능과 전적 부패를 깨달은 자가 의를 꿈꿀수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의, 구원을 열망하는자, 이것이 바로 가난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의를 못깨달으니 너 틀렸다 내가 옳아 이러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들교회가 부르짖는 유다가 나오는겁니다.
유다는 너무 스스로 의로웠습니다. 그렇기에 자기 죄를 못봤는데 자기의 며느리가 이 집안을 살려보겠다고 자기랑 동침하겠다고 찾아왔는데 자신의 며느리가 임신한겁니다.
며느리는 예수씨를 잉태하기위해 자기와 동침하겠다고 왔는데, 이게 쾌락이 아닌 약속때문에 지팡이를 가지고온 다말에게 니가 나보다옳도다라고, 이게 내 옳음이 아니라 예수님이 옳도다 라고 한것입니다.
이때 동침은 롯과 딸의 동침은 예수씨에 못 들어 옵니다. 유다가 자기 죄를 직면한겁니다. 자기 실상을 본겁니다. 예수씨를 이어야하는데 요셉을 죽이고, 그런 자신의 죄를 보고 고백한겁니다.
유다가 그렇다해서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다해서 유다가 짠하고 요셉을 꺽고 이런것이 아닙니다. 천국가기 직전까지도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과정에서 늘 중재자가 되는겁니다.
행위로 천국 가는것이 아니기에 천국의 상을 보여주는겁니다, 그렇기에 유다와 다말이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겁니다. 그것이 의에 주리는것입니다.
나보고 이해하라고 사건준것이 아닙니다, 이해하지 못하기에 하나님을 만나는겁니다. 나의 옳음으로는 도저히 해석이 안됩니다, 그렇기에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부르짖게 되는겁니다.
구원에 목이 말라야 합니다. 내 가족의 구원을 위해 내가 감당해야 할 수치, 이것에 목 말라야 합니다.
다말 같은 마음이되서 말씀에 주리셔서 이것을 채우고 채워야 합니다.
어떤 경우도 당신이 옳다. 이것이 의입니다.
우리는 배고파야 합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내가 틀렸습니다. 주님이 옰습니다. 라고 구원의 초점으로 이 고백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의에 주리지 않으면 아무리 온유해도 안되는겁니다. 기복산에서 배가 부르니 그때부터 말씀이 안들리는겁니다. 속이 썩어지니 기다리며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게 되는겁니다.
(죄와 연약한 사람을 분리해보라고)
겉으로는 온유의 탈을 썼으나 속은 늑대처럼, 그러니 이 땅에 온유가 없다했는데 회개하면 상대방이 옳다 고백하게 되는것이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적용질문 : 수치를 무릅쓰고 다말같이 회개할 일은 무엇일까요?
유다처럼 그는 나보다 옳도다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내가 먼저 당신이 옳도다며 수치를 무릅쓰고 고백하면 그런 나를 보며 상대도 당신이 옳다며 고백하는것이 의로운 고백입니다.
3. 팔복산의 배부름을 약속하십니다.
헛된곳에서 찾다가 목마르지 마시고 팔복산에서 주님의 약속을 찾길 바랍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로 방향을 전환하실때 누리며 배부를 것임을 믿습니다.
자기가 거룩을 원하는것만큼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힘들잖아요, 그러니 의에 주리고 말씀에 주리지 않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힘든것을 겪으며 그것이 주님을 갈구하게 됨을 인정하고 그렇게 힘든것을 복이라고 인정하는 자입니다.
주님이 주는 먹는것은 이례적인건데 바로 단번에 가신다는 겁니다. 목마름이 단번에 가신다는 뜻인데 이게 한번하고 끝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백팔십도 바뀐다라는 뜻입니다.
영적인 성숙을 위해 매순간마다 주님이 주시는 물을 마실수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물은 생명이요 진리이니 마셔야 하는겁니다. 바로 이 샘물을 마셔야 하는겁니다.
영생하도록 솟이나는 샘물인데 없어도 배풀것만 있습니다, 배풀다 보면 감사하다보면 줄것만 있는 인생이 되는겁니다. 영생하도록, 바로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영생을 줄수있고 이 말씀을 샘물로 받을때 영생의 말씀으로, 말씀이 있는 예배를 통해 바로 회복의 역사가 시작이 되는겁니다.
예배에 대한 말씀을, 스스로 메시아라고 밝히신것이 딱 두번인데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한번 그리고 개인에겐 바로 이 사마리아여인에게 밝히신겁니다.
세례요한에게 준것도 아니고, 열두제자에게 준것도 아니고 바로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의 말씀을 주신겁니다.
보면 점점 성장하는것을 보게되는데 유대인에서, 선생님, 선생님에서 메시아로 인정하는것을 보며 예수님을 알아보는데 저를 보는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의로운 인생을 살아도 의인은 없다는겁니다.
늘 의외주리고 목말라야 배부른것이지 나의 자리에서 순종하고 가는것, 의는 어떤상황에서 옳도다가 맞는겁니다.
-적용질문 : 여러분은 배가 고픕니까, 부릅니까?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까?
'당신이 옳다'고 고백하고 배부름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목장기도제목>
은우목자언니
1.이해할 수 없는 모든 사건들이 선한 계획안에 있다는 것을 믿고 불평과 원망을 멈추고, 감사함으로 매일 하루만 사는 은총 누리도록
세정
1. 3월부터 새로운 시작인 이직과 대학공부, 일대일양육
3가지 모두 잘 통과할 수 있도록
2. 부모님과의 건강한 분리가 되어 내 인생을 건강하게
찾아갈수 있도록
지희
1.눈이 건강해질 수 있길
2.사람에게 기대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사람이 아니라 관계의 주인이신 주님을 경외하도록
지윤
1.양교 숙제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칠수 있도록
2.나의 질병, 아픔을 주님께 내려놓도록
다님
1. 미국에서 온 사촌동생의 구원을 위해,
-목장 잘 정착할수있길, 말씀이 들리는 은혜를 부어주시길
2. 생활예배가 가장 우선시 되고 가난한 심령으로 양교에 임할수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