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8 성령의 옳은 말씀
⁃사도행전 28:25-28
⁃김양재 목사님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지요, 우리가 성령의 나라 시민이 되었다면 성령의 나라 법인 성령의 말씀을 준수하며 살아야 되지 않을까요? 이 성령의 말씀은 옳은 정도가 아니라 100% 옳다고 인정해야 됩니다. 오늘 바울도 하루종일 전한 설교를 '이사야를 통하여 성령께서 하신 말씀이 옳도다!'로 마무리합니다. 그것은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는 뜻입니다.<성령의 옳은 말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서로 맞지아니하여 흩어지면 안됩니다 (25절)
[25] 바울이 하루종일 전한 복음으로 믿는자/믿지않는 자로 나뉩니다. 서로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돌이켜 예수를 믿은 자들의 변화가 워낙 커서 이제 불협화음이 커졌습니다. 안 믿는자와 믿는자는 이렇게 나뉩니다.
여기서 맞지 아니하다 는 누가가 아심포노니라는 단어로 썼습니다. 심포니란 말은, 아름답게 어우러진 하모니를 말합니다. 거기서 부정접두어 아가 붙어 부정어가 됩니다. 유대인들의 자기네만의 화음을 만드는 무리에서 나뉘어진 것을 말합니다. 합창에서 중요함은 노래를 잘하는 것보다 내 옆사람의 소리, 전체의 소리를 들을 때 아름답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니, 신앙고백이 확실히 남의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것 같고, 노래도 신앙고백이 되어야 소울을 흔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도 그 소리를 먼저 들어야합니다. 내 소리를 먼저 듣는게 아닙니다. 내 마음속에 반응해서 소리내고 또 소리내며 기도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여기는 크게, 여기는 작게 하면서 완급이 들어갑니다. 중요한 것은 모두 작게낼 때, 나만 소리를 크게 내는 것. 완전히 불협화음이 됩니다. 가정에서 내가 내목소리만 내고있었구나를 깨닫는 게 고침의 시작이지만, 보통 잘 안듣습니다. 남의 말 안듣고 성공한 스스로는 자신이 가장 옳기 때문입니다. 한 분야에서는 박사를 따고 맞을 지 몰라도, 삶의 모든 부분에서는 한 사람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박사와 함께 살 때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구속사를 믿는 유대인들이, 아직 고난의 양육을 못 받아 불협화음을 들어줄 수 없네요. 그래서 서로 맞지아니하면 내놓을 수 있는 답은 흩어져! 밖에 없네요. 믿으나 안 믿으나 안 맞으면 헤어져야지! 하는 것이 바로 이 모습입니다. 믿은 인간이나 안 믿은 인간이나 문제만 생기면 갈라집니다. 물론 결혼 전과 후는 다릅니다. 결혼 전에 맞지 아니하면 헤어져야합니다. 결혼 후에는 완전히 다릅니다. 성경의 원칙이 중요합니다. 십자가 지혜와 타이밍은 이렇게 원칙에 따라 다릅니다. 내가 왜 사는 지 모르는 사람들도, 결혼은 반드시 지키라는 말이 성령의 옳은 말씀입니다. 결혼한 자는 나눌 수 없습니다. 믿었으면, 믿지 아니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고 섬겨야하는데, 고난의 양육을 아직 받지 못해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유대인 습관을 그대로 남아있어 성령의 옳도다보다는 내가 옳도다로 싸웁니다. 이렇게까지는 못참아! 하며 흩어집니다.
바울 입장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설교한 결과가 흩어짐입니다. 성령의 경영으로 몇년간 기도와 준비하며 로마에 온 것입니까. 기다렸던 로마입니다. 비록 쇠사슬에 매여 군인의 감시로 있지만 기다리고 고대하던 로마에서 전한 첫 설교입니다. 믿은 사람이 생겼으니 열매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믿은 사람들이 바울과 함께하는 우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믿은 유대인, 믿지않은 유대인 똑같이 흩어집니다. 시간을 기다리다 흩어짐이 아니라, 서로 맞지않아 흩어졌습니다. 청중이 서로 싸워 흩어지는 시간이 온 것입니다.
적용/
내가 은혜를 받아도 안 받아도 불협화음의 주인공입니까?
고난의 양육을 안 받아서입니까? 교회의 양육을 안 받아서입니까?
양육은 어디까지 받으셨나요? 떠나고 싶은 상황/사람은 누구(무엇)입니까?
***한 집사님 다섯이 식구인 가정에서 힘듦. 남편은 대출만 받고 사고뭉치. 가정에 무관심한 남편. 남편은 결국 보이스피싱 중간책을 하다가 잡혔다. 정작 이 남편은 경찰에 출두도 하지않고 외도하러 나갔다는 고난. 그 과정가운데서도 남편은 능력없으니 이혼하자. 편히 그 여자에게 얻어먹으며 살겠다고 했다. 남편은 돈도 안 벌고 양육도 안 시키고, 여기서도 목장도 나오다 안나오다. 거기다 이혼까지하니 왠 능력이 많으니 그런 놈을 먹여줄 여자도 있네요.
우리들교회에 발 디디기도했는데 믿으나 안 믿으나 흩어집니다. 이 분들은 고난의 양육은 엄청 받지만 교회의 양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두가지가 다 필요합니다.
2.'옳도다!'로 해석해야 합니다. (26절)
[26] 이사야 6:9장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700년전에) 아무리 말씀하셔도 그들이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도다. 그들의 완악함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이사야는 150년 전에서부터 망한다만 외치던 선지자입니다. 39장까지 망한다. 40장부터는 포로로 잘 훈련 받으면 회복된다 합니다.
망하기 전부터 말했고, 망할 때는 에스겔이 망할 때의 얘기. 포로로 가서까지도 선지자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신실함도 나옵니다.
이사야의 소명을 봤는데, 웃시야가 죽고 높은 보좌를 봤습니다. 의지하던 왕이 죽고나서야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것을 봅니다. 바울이 전한 높은 보좌의 말씀을 전하니 믿는 자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만 흩어집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이사야는 하나님의 높이들린 보좌를 보고/영광을보고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들이 할 말입니다. 한마디로 나의 백성은 죄인이고, 나는 입술이 부정하다. 이 부정한 자들 중 내가 있었다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망하게 되었음을 고백하며 나의 실체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합니다. 정체성을 알아야 큐티의 근간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입술이 부정한 것을 보지못하니까, 믿은 사람 안 믿은 사람이 서로 맞지 아니한다고 흩어지는 것입니다. 입술이 부정한자로부터 정결케된 선지자는 다시 입술이 부정한 자 사이에 파송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망한다고 외쳐도 잘 전한다면서 나의 죄성을 보고 간다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이렇게 말씀을 들으며, 해석하며 가야하는데 성경이 안 깨달아지는것은 가장 큰 심판입니다. 내 인생에 성경이 깨달아지지않는다면 얼마나 심판가운데 있어야할까요? 이사야가 화로다 망하게되었도다로 고백하며, 사죄받은 다음에야 사면됩니다.
하나님이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할 때 이사야가 제가 여기있습니다! 하니, 이사야의 반응이 짧은 순간 달라집니다. 회개와 은총을 경험하므로 적극적으로 소명에 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배경으로 28:26절을 주십니다. 부르심을 받고 가는데, 사람들은 하나도 못 알아들을것이다라고 말하는 하나님입니다. 아무도 안 듣는데 왜 가야할까요? 내 나라가 망하기까지 기다려야합니다. 그것이 바벨론 포로로 가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시간을 앞당길 수 없고, 기다려야합니다. 즉, 목장에서 안들리고 안 변하는 사람을 끊임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자기 죄를 본 사람들을 기다려야합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는 사람은, 완악/패역한 백성중에서 이사야같은 사람입니다.
제 남편도 갑자기 간동맥이 파열되어 육의 나라가 무너지고 영접했습니다. 그렇게, 내가 누구를 기다려야하나 눈물흘리며 가야합니다. 기다리는 건 얼마나 힘듭니까? 우리는 날마다 큐티하며 옳은 말씀을 보며 한 절 한 절 기도해야합니다.
이 사람들이 흩어지고 싸우는 동안에, 한 구절이 바울 말씀에 떠오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건을 만나면 제일 먼저 감정이 반응합니다. 열심히 전했는데, 둘로 갈라져 흩어지는 사건이 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이해가 안되겠지요. 어떻게 내가 섬겼는데! 하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행복에 초점을 두고 오로지 내 나라를 건설하기 위했는데. 이 땅에서 무너지니까 이해가 안되서 불평 불만 절망에 빠지는 것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와서 전했는데, 둘이서 믿어 갈라지냐는 말입니다. 아심포노이해서 불협화음이 됩니다. 안타깝고 실망스럽겠지만, 바울은 감정뿐만아니라 읽은 말씀 ampbull 묵상한 말씀까지로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힘든 때 기억난 한 구절에 '옳도다!'하는 바울입니다.
상황에 딱 들어맞습니다. 말씀을 보니 억울한 일이 아니구나. 슬퍼할 일이 아니구나 합니다. 그런 말씀입니다. 이것이 해석입니다.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 진행되는 과정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말씀을 많이 들어둬야 날마다 큐티 한 줄 한 줄로 내 생각을 적셔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사건이 올 때 그 본질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해석이 안되니 자기감정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나라 백성은 옳은 말씀이 있기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이 싫다면, 그 사람의 변화를 내가 더 원하겠습니까, 성령이 더 원하겠습니까? 여러분이 답답하시겠습니까, 성령님이 더 안타깝고 답답하시겠어요?
생각해봅시다. 우리 자녀가 아프면 밤잠을 못 자고, 자녀가 아프면 내 생명을 주는 부모입니다. 영적부모인 내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내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십자가 편에, 내 편에 서 계십니다. 그래서 돌아와 고침받기를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게 성령님입니다. 2023년도에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힘든일 마다, 성령님의 말씀에 옳도다 하기 바랍니다!
이 사건이 나에게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 옳도다! 하라고 당사자 앞에 세운 줄 알고,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남편이 하루 아침에 갔다면 보통은 젊은 여자에게는 아무 말도 안들릴겁니다. 큐티를 하던 나는, 이사야의 의지의 대상이 웃시아였습니다. 부국강병 왕이니까요. 남편보다 더 높히 들린 하나님보좌를 봅니다. 어떻게 봤냐?
남편 데려간 날, 에스겔도 아내를 데려간 구절이 딱 나왔습니다.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에스겔 선지자가 나랑 딱맞는 고난을 당했기에 에스겔 한 말씀으로 성령의 나라 말씀을 듣게 됩니다. 에스겔같은 선지자도 하루아침에 기뻐하는 아내를 데려가시고 슬퍼하지말라 하십니다. 이 일이 공평하다 합니다. 앞으로 표징의 선지자가 되리라 하셨는데, 그 한 마디를 옳도다! 하고 그냥 믿었는데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믿은대로 옳은 말씀이 되게 하셨습니다. 큐티하면서 하루하루 믿으면 그것이 나중에 옳도다의 말씀이 됩니다.
여러분은 거대한 계획을 세우지마시고 하루하루 큐티로 믿고 가세요. 수십년이 지났을 때 그 옳은 말씀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게 됩니다.
적용/
힘든 사건이 왔을 때 말씀이 기억나, 이 말씀이 옳도다! 하고 해석한 일이 있습니까?
서두에 이혼을 하셨습니다. 큰 아이 둘째 둘 다 아픕니다. 큰아이는 ADHD이고, 사역자분들이 전부 심방갔습니다. 전도사님이 어머니께 아들과 같은 ADHD라고 스스로 소개 했습니다. 엄마도 좋아하고 아들은, 내가 누군지 아냐라는 물음에 ADHD동료라고 불러주었답니다. 그 후 여러가지 얘기를 해주고, 아들보고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 해보라고 했습니다. 엄마 너무 힘들고 고생하신다고. 사랑한다고 말 해주며 안아줬답니다. 이 전도사님이 어머니께, 이 세상에 정말 위로는 아들이 엄마가 힘든 것을 아는 것입니다. 엄마가 힘든 걸 아는 것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딨을까요? 잘먹고 잘사는 요즘세상에 부모님께 수고해준다고 고맙다고 하는 것은 잘 없는 일 아니냐며 얘기했답니다. 아들에게는, 말할 사람 없을때 연락해라 동료여! 했답니다. 너가 나의 과거고 내가 너의 미래다. 앞으로 우리 집에 네가 심방와줘! 온 우주를 ADHD화시키자 했답니다. 이번 주 병원과 교회 나올 것을 약속하자, 동료야 나와 함께 약먹는 적용하자 했답니다. 교회나오기 힘든 일있을 때 연락해주기, 약 타고 먹기, 수련회/VIPs 같이 가기. 등의 처방을 듣고 엄마와 아들이 옳도다 했답니다.
예수님을 만났으면 합니다. 하나님과 아들의 중간고리 역할을 잘 하고 영육간의 건강을 바라고, 적용할 힘과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성령의 옳은 말씀은 정말 옳도다! 맞습니다.
이 엄마가 결국에는 믿으나 안 믿으나 흩어져서, 아들이 그렇게 힘든데.. 남편이 자리를 그렇게 비워도 살아만 있어도 다행입니다. 못되고 힘들게하고 무서운 사람이나, 이혼 안하고 있었더니 아들들이 컸는데 무서운 아빠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한 역할 합니다. 무서운 아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심하는 게 생깁니다. 없어지면 좋겠다는 마음이 흩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옳은 말씀은, 서로 맞지아니하여 흩어지면 안되고 항상 내 모든 사건은 옳도다! 하며 결론임을 고백해야합니다.
3.돌아와 고침 받으라는 간절한 초청입니다. (27-28절)
[27-28]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하나님은 히스기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그 말씀 - 바울앞에서 서로 맞지않아 흩어지는 유대인들에게 똑같이 말씀합니다.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우둔함/완악함 이라고 표현합니다. 마음에 살이 쪄 두꺼워졌는데 그것은 고집입니다.
우둔함, 완악함은 의도적이지만 사람들을 겪다보니 의도적이지 않은 고집도 있습니다. 이것만은 못버려! 하는 게 있습니다. 자기가 무슨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고, 상대가 뭘 지적하는지도 모르고 바꾸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하고 착한 얼굴로 네 라고는 하는데, 도무지 말을 안듣습니다. 그럼에도 심지어 고집없다고 스스로를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도적/비의도적이어도 악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100%죄인이에요.
보는 것과 아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듣고 깨닫는 것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말씀이 선포되어지고 이루어지는 것에 거침이없습니다. 천사들도 하나님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능력있게 전파되는 모든 말씀에서 가로막는 딱 한 존재가 있습니다.
아직도 남 탓을 하면 그렇습니다. 바로 '나'
내가 눈을 감고 마음을 닫으면, 어떤 능력도 내 삶속에 전파되지 않습니다. 이사야가 그래서 인용했습니다. 그 마음속에 안듣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실제로 자는 사람은 들으면 깨어날 수 있습니다. 모르고 자다가 흔들면 깨잖아요. 절대로 흔들어 깨워도 깨지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자는 체 하는 사람입니다. 자는 체하면 아무리 흔들어깨워도 절대 안 일어납니다.
안 듣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술먹고 바람피는 사람이 아니라, 유대인처럼 작정하고 교양있게 자는 척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행위나 율법의 죄보다는 믿지않는 죄가 정말 큽니다. 우리 마음이 완악하여 안들으니까, 내 속의 마음이 막습니다. 욕심 ampbull 음란 ampbull 쾌락 ampbull 탐욕으로 성령께서 와도 딱 막습니다. 성령이와도 뭐합니까? 내 속 욕심 시기 미움 음란이 물 붓듯 부어지는 성령이 오는 것을 막는 딱한 것입니다. 그래도 성령을 받아야합니다. 성령을 못 받는 게 아니라, 안 받는것 입니다.
이혼은 안된다고 말하지만, 이럴 경우엔 이혼해야 해! 내가 판단하고 내가 결정해서 내 나라를 세우는 것. 듣기는 들어도 보기는 보아도 안 믿는 것. 그런 사람들이 눈 뜨고, 고침 받아야합니다. 음란한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을 전하지만 음란한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고 하지만 못들은 척 지나갑니다. 남의 여자 남자를 탐하는 사람은 멸망을 당한다고해도 못 들은 척 눈을 감습니다.
조금 손해 볼 수 있습니다. 내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 같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합니다. 우리가 눈을 감는 이유는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때문입니다. 눈을 떠서 천국을 바라보아야합니다.
고침받는 것, 눈 뜨는 것은 지금 돌이켜 회개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손으로가는 적용으로 이어져야합니다. 적용하기 막막함이 있습니다 말씀안에 적용하고 하늘로 두 손을 들 때 내 심령속에 성령님이 임하는 게 고침입니다.
고쳐줄까하니라 이사야10장에서는, 고쳐줄까해서 걱정이라고 역설적으로 말하는데, 바울이 유대인이 미워 그랬겠습니까? 정말 간절히 돌아오길 바라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골육 친척을 위해 아픔을 가지고 이 원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에도 똑같은 말이 나옵니다. 내 백성에게 나오지만 그들이 하나도 네 말을 안 들을거라고 부르십니다. 그래도 전하지않으면 피 값을 찾겠다그러니까요..
나의 형제, 골육의 친척을 위해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그들의 구원을 바란다고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 거짓말이 아닙니다. 마음에 그치지를 않고 바란다는 뜻입니다. 오랫동안 기도하다보면 근심도 걱정도 거짓으로 말하면서 야망이면서 영적근심을 하는 척 하기도 합니다. 앉으나 서나 성경읽고 가치관이 변하도록 가르쳤더니, 다른 애들은 다 새사람이되었는데 내 아이는 학교도 안가고. 학교를 떨어지고, 공부는 잘하는데 교회와는 담을 쌓았다면 이 사람의 근심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 사람의 근심은 야망일까요 영적 근심일까요? 내가 가르쳐서 변했다면 그 자체로 기뻐야할 텐데, 내 아이가 안변하면 내가 뭐할려고 해ampbullampbullampbull 하는 마음이라면 야망입니다. 영적근심이 아닙니다. 수준이 높다는 얘기는 내 남편이 어쩌고저쩌고해도 나는 그것으로 이제 흔들리지 않고, 말씀보면서 힘든 남편들에게 약재료 내놓는것으로 기쁜 것입니다. 여기가 다 변하면 이미 남편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한참 후 기다리면 반드시 변합니다.
아까 이 남편이 너무 이상하지만 아내도 말씀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기다림이 필수적입니다. 못살아 못살아 하지만, 양육을 받고 이 말씀이 들려 옳도다! 해야합니다. 남편이 수고를 하는구나. 보이스 피싱당하지만 옳도다! 가 되어야합니다. 끊임없이 인본주의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는 눈뜨고 못살아 외칩니다. 결혼하면 남편이 있어야하고 아내가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남편 아내 떠나서 선남선녀 만나봤자 그 아이들은 선남선녀는 나와 상관없습니다. 바람피워도 내 아버지 찾습니다. 우리들교회는 재혼해도 그것을 인정해줍니다. 자기 부모 찾는 다는 것을. 일원론은 인간론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알고 잘하다가 가는 게 우리의 목적입니다.
내가 구원의 확신이 있는 만큼만 근심하게 됩닌다. 주님과 사랑으로 연합되어가는 가운데 그치지않는 식구들로 인한 고난이 있습니다. 끊어질지라도 그들의 구원을 원하는 바울은 얼마나 큰 사랑의 깊이입니까. 이게 구원입니다. 실제로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유대인들이 구원되지 않고 있기에 최고로 힘든 대상을 바울이 만난 것입니다. 나는 열심히 주님을 믿는데, 내 식구들이 안돌아오면 내 식구들이 다 시험들면 그것은 야망이었던 것입니다. 안 돌아와도 끝까지 주님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섬기다가면 그 마음에 요동없이 평강만있습니다. 성령의 옳은 말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닌다. 지난 주 의왕에 40년 된 기사아저씨 전도했는데도 안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기도하세요! 권사님이 얘길 해서 주여! 이러고 갔다면 나머지 유족들이 예수를 믿을거다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사모님이 오셨습니다. 등록도 했습니다. 주님을 부르고 갔나봅니다. 사모님이 오늘 말씀이 자기 말씀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정말 내 남편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다고 했습니다. 아주 나를 닮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남편 믿고 천국갔을 것 같습니다. 전혀 시험들지 않으셨기 때문에 응답이 맞습니다. 기도 응답이기때문에, 내 말에 실리면 응답이되네하며 두렵고 떨립니다. 나도 믿지만 정말 이루어지니까 날마다 놀랍습니다.
적용/ 내가 내 옆의 사람이 계속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소리는 무엇인가요?
나는 어떤 말씀 앞에 눈을 감고 있나요?
올해 내가 고침받고 싶은 부분은 어디입니까?
오늘은 선교주일입니다. 우리들교회 아웃리치의 열매입니다. 베트남 자매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 10년을 다닌 베트남 자매 간증.
기도제목
남영우
- 금연을 하고 있는데 사일차가 힘든데 잘 지나갈 수 있도록
- 큐티 1주일에 두 번 하기
- 대장암 치료 후에 아버지 건강 잘 지켜지도록
- 외로움 잘 붙어갈 수 있도록
김진명
- 일상이 무너져있는데, 밸런스드 라이프 잘 붙어갈 수 있도록
- 임용고시 준비해야 하는데, 잘 붙어갈 수 있도록.
- 동생이 집 밖으로 안나오고 불안해하는데 회복될 수 있도록
김태윤
- 약 때에 맞춰 잘 먹을 수 있도록
이현우
- 올해 잘 교회에 붙어갈 수 있도록
- 여자친구와 요즘 자주 싸우는 데 관계회복
안식
- 회사에서 여러가지 프로젝트로 성가신데 옳도다로 질서에 붙어갈 수 있도록
- 전세에 대해 알아보고, 의견을 잘 모아서 갈 수 있도록
- 일하기 전에 큐티를 반드시 사수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