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23.01.08
제목: 성령의 옳은 말씀 | 내 옆 사람의 소리를 들어보아요
본문: 사도행전 25:25-28
설교: 김양재 목사
*말씀
로마에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가 성령의 나라 시민이 되었잖아요. 그러면 한나라의 시민이 될때는 그나라 법을 준수 하겠다는 서약을 하잖아요. 그렇다면 성령의 나라법인 성령의 말씀을 준수 하며 우리가 살아야 겠습니다. 성령의 말씀은 옳은 정도가 아니라 백프로 옳으신 말씀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바울도 하루종일 전한 설교를 이사야를 통하여서 성령께서 하신 말씀이 옳도다 로 마무리 합니다. 이얘기는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이런 뜻이에요. 오늘은 성령의 옳은 말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지면 안 됩니다.
25.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바울이 하루종일 전한 복음을 듣고 유대인들은 믿는자와 믿지 않는 자 둘로 나위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말씀을 듣고 돌이켜서 믿은자의 변화가 컸기 때문에 기존 유대인들하고는 통하지 않게 되었어요. 그래서 불협화음이 되어서 맞는게 없게 됐어요. 맞지 아니하다를 누가는 아 심포노이 라는 말로 표현을 했는데 아름답게 어루러진 화음을 말하는데 불협화음이 됩니다. 유대인으로써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무리중에 있었는데 지난 크리스마스 찬양 콘서트 마지막에 어르신 합창단이나 사역자 특송을 신앙고백으로 하시니까 조화롭고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합창에서 중요한것은 노래를 잘하는 한사람이 아니라 내 옆사람의 소리 전체가 내는 소리를 들을때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거에요. 신앙고백이 남의 소리도 들을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에요 하나님께 기도할때도 먼저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내 소리만 내고 내 목소리만 크게 내는게 기도가 아니에요.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내 마음속에 반응을 해서 소리내고 또 소리내며 기도하다가 하나님하시는 말씀을 듣고 중요한것은 다 적게 내는데 혼자 크게 내면 불협화음이잖아요. 이걸 보면서 내가 가정에서 내 목소리만 내고 있구나 이걸 인정하고 깨닫는거에요. 이것을 깨닫는것이 고침의 시작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깨닫지를 못하는것이 남의 말을 안듣고 성공했기 때문이에요. 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위험합니다. 한 분야에서는 그게 맞을지는 몰라도 삶의 모든 분야에서는 자기가 옳다는 그 한사람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구속사의 하나님나라를 믿은 유대인들이 믿기는 했어요. 그런데 아직은 고난의 양육을 받지 못해서인지 불협화음을 참고 들어주기가 어려운거에요. 서로 맞지아니하면 어떻게 하는가에서 그들이 내놓은 답은 흩어져 이것뿐이었습니다. 믿은 사람 안믿은 사람 안맞으면 결론은 헤어집니다. 가정이고, 교회고 갈라지기를 밥먹듯이 합니다. 결혼전과 후는 다릅니다. 결혼전에는 맞지 않으면 헤어져야죠. 결혼후는 완전히 다릅니다. 성경에 원칙이 중요해요. 십자가와 지혜와 타이밍은 바로 원칙에서 부터 비롯됩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왜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분들도 있을거에요. 그러나 결혼은 반드시 지키라고 하는것이 성령의 옳은 말씀이에요. 성령의 옳은 말씀은 성경의 옳은 말씀인거죠. 결혼을 지켜 가면서 거룩을 이루어 갈때 행복이 따라오는거죠. 바울이 전해주는 말을 듣고 믿었으면은믿지 않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주께 인도하려고 섬겨야 하는데 아직 양육을 받지 못해 거기까지 생각을 못합니다. 아직까지 유대인습관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성령의 옳도다가 안되고 서로가 옳다고 싸웠어요. 이렇게까지는 못참아 하며 결국 흩어집니다. 바울 입장에서 아침까지 설교한 결과가 흩어짐이에요. 몇년을 기다린 로마입니다. 비록 쇠사슬에 메어 군인의 감시를 받는 죄수로 와있지만 그토록 기다리고 고대하던 로마에서 작정하고 전한 첫 설교에요. 그 설교를 듣고 믿은 사람이 생겼으니까 열매가 있었던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누가는 그 믿은 사람들이 바울과 함께 하는 우리가 된것처럼 말하잖아요. 믿은 유대인이나 믿지 않은 유대인이나 똑같이 서로 맞지 않아 흩어졌다고 기록 했어요. 시간이 되어 흩어진게 아니라 서로 맞지 않아 흩어졌대요. 하루종일 설교한 바울에겐 청중이 서로 싸워 흩어진 사건이 왔어요. 교회를 다녀도 양육이 안되면 맞지 않아 흩어지는게 다반사 입니다. 결혼이고 가정이고 귀담아 들어야 될 사도행전의 결론입니다.
*적용질문
Q.내가 은혜를 받아도 안 받아도 불협화음의 주인공입니까? 그것은 고난의 양육을 안 받아서 입니까 교회의 양육을 안 받아서 입니까?
Q.일단 양육은 어디까지 받으셨나요? 그래서 서로 맞지 않아 떠나고 싶은 사람(상황)은 누구(무엇) 입니까?
2.옳도다!!로 해석해야 합니다.
26.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사야 6장 9절 말씀인데요. 바울이 당시로 부터 700여년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이에요. 아무리 말씀을 하셔도 깨닫지 못하고 사건을 통해 보여줘도 알지 못 하는 백성의 완악함을 들어내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6장 1절부터 보면 이사야가 웃시야 왕이 죽은 후에 높은 보좌를 보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어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것은 성령이 충만한거죠. 마찬가지로 바울이 전한 높은 보좌의 말씀을 듣고 충만해서 유대인가운데 믿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믿었는데 흩어졌어요. 그런데 이사야는 그 영광을 보고 뭐라고 했냐면은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본자들이 해야할 말이에요. 영광을 보고 한마디로 나와 백성은 죄인이다. 이사야 자신도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고 내가 입술이 부정한 백성중에 있었다는 거에요. 죄인은 하나님을 보면 살 수 가 없어요. 그러니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나의 실체를 하나님 앞에 내려 놓아야 해요. 사명자는 정체성을 알아야 해요. 이것이 큐티의 근간도 됩니다. 그런데 자신의 입술이 부정한것을 보지 못하니까 서로 맞지 아니한다고 흩어지는 거에요. 선지자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으로 부터 정결케 되어서 다시 입술이 부정한 백성가운데로 파송된 사람들이에요. 말씀도 잘 전해야 하지만은 잘 전하는 사람들이 백성들이 열광을 하는데 나의 죄성을 보고 간다는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 자리를 넘을 수 없어요. 환경이 겸손한거지 사람은 겸손할 수 가 없습니다. 그러니 성경이 안 깨달아지는 것은 가장 큰 심판입니다. 제가 성경이 깨달아지지 않았다면 얼마나 심판가운데 있었을까요. 이사야가 입술의 죄를 고백하고 사죄받은 받은 다음에야 사명을 주십니다. 이 순서가 바뀌지 말아야 돼요. 하나님이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하니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했어요. 짧은 순간이지만 이사야의 반응이 달라진거죠. 그는 하나님을 만나고 회개의 은총을 경험하고 적극적으로 소명에 응했어요. 이런 배경으로 오늘 이사야 6장 9절 사도행전은 28장 26절이 되는거죠. 그런데 내가 여기 있나이다 했는데 그랬더니 하나님이 부르심을 받고 가도 사람들이 하나도 못알아 들을거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간절히 전했는데 사람들이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완전히 자기나라 내나라가 망할때까지 기달려야 해요.세상적으로 두려운 일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보면 내가 하나님 시간을 앞당길 수 가 없어요. 그냥 기다려야 해요. 내 입술이 부정한 것을 아는 사람은 이사야 처럼 자기 죄를 보는 사람들은 기다리고 남을 기다려 줄 수 가 있어요. 내버려 둬 가 아니라 애통하면서 기다려 주고 나도 기다릴 수 가 있는거에요. 제 남편도 간동맥이 파열이 돼서 하루만에 육의 나라가 무너 졌어요. 내 나라가 무너지니까 주님을 영접했죠. 내가 기다려야 될 사람이 누군가 눈물을 흘리면서 가야 해요. 기다리는게 얼마나 힘들어요. 우리가 옳은 말씀인 성경을 보면서 한절한절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이 사람들이 안 믿고 흩어졌는데 한구절이 바울 머릿속에 떠올르는 거잖아요. 우리가 사건을 만나면 제일 먼저 감정이 반응을 합니다. 열심히 전했는데 둘로 흩어지는 사건이 사람의 관점에서는 이해가 안되는거에요.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어떻게 망할수가 있어! 어떻게 이런결과가 나올 수가 있어! 이것은 행복에 초점을 두고 내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이해가 안됩니다. 바울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자기가 열심히 했는데 로마를 어떻게 오게 되었는데 감옥에 갇혔다가 로마에 와서 전했더니 믿는 사람이 생겼지만 둘이 안맞는다고 흩어졌어요. 너무 슬프더라구요. 그런데 여러가지 안타까운 감정이 올라 왔겠죠 바울은 감정만 아니라 말씀을 기억한거에요. 평소 읽은 말씀 묵상한 말씀을 읽었기 때문에 감정이 요동하는 사건이 올때 말씀을 기억할수 있었어요. 힘든 상황에서 떠오른 말씀 한구절에 대해 바울이 어떤 태도를 보입니까 옳도다 하잖아요.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이 상황에 딱 들어 맞는다는 뜻이죠. 말씀에 비춰 이상황을 보니까 우연이 아니구나 이건 억울한 일이 아니구나 이런 고백을 나오게 하는 말씀이라는 거에요. 이것이 해석이죠.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와 진행되는 과정을 앞으로 될 결말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하게 되는거에요. 평소에 말씀을 잘들어두는게 중요하고 날마다 큐티인 본문으로 한구절로 거기 나온 한단어로 내 생각과 마음을 조금씩 적셔야 하는거에요. 그때 사건이 오면은 사건의 본질을 해석할수 있어야 합니다. 해석이 안되니까 자기 감정에 놀아 나는 것이죠. 성령의 나라가 백성은 그러면 안됩니다. 우리는 말씀 묵상하는것이 유일한 방법이에요. 변하지 않는 아내,남편,자식,부모,내자신이 너무 싫으시다면 그 사람의 변화를 여러분이 더 원하시겠어요. 성령님이 원하시겠어요. 여러분이 더 답답하시겠어요. 성령님이 답답하시겠어요. 여러분이 답답하고 안타까운것보다 훨씬 성령님이 답답하고 안타깝고 힘들어 하십니다. 내 자식이 아프면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고 우리 아이들 일이라면 내가 대신 죽기라도 하겠다 이런생각을 하는데 우리의 부모,남편 모든것 되신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같은 편에 있으세요. 주님이 나를 힘든 훈련을 시키셔서 옳은 말씀을 듣게 하시는거에요. 힘든 가족이 여전히 속을 썩일때 낙심하지 마시고 사건이 있을때마다 성령님의 말씀이 옳도다 하시길 바랍니다. 성령님의 생각은 여러분들이 간절히 고침 받길 원하시는 거에요. 말씀데로 백프로 옳으신 하나님을 믿으시고 여러분들이 어떤 사건에서도 이 사건에서도 옳도다 우연이 아니야 삶의 결론이야 이 모습을 보이라고 이사야,바울 처럼 그사람 앞에 세우신줄 아시고 담대하게 잘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적용질문
Q.힘든 사건이 왔을때 말씀이 기억나 이 말씀이 옳도다! 하고 해석한 일이 있습니까?
3.돌아와 고침 받으라는 간절한 초청 입니다.
26.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얘기를 바울 앞에서 서로 맞지 않아 흩어지는 유대인들에게 바울을 통해서 말씀 하시는 거에요.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구나 보기는 보아도 알지는 못하는구나 주님은 이 상태를 마음을 살이 쪄서 단단해 졌다는것이죠. 단단한것은 고집입니다. 자기의 고집을 절대로 바꾸지 않는것을 우둔함 완악함 이에요. 이 고집이 많은 경우 의도적이지만요. 의도적이지 않은 고집도 있더라구요 이것만은 못버려 고집을 부리는것이 아니라 자기가 무슨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고 상대방이 무엇을 지적하는지도 몰라서 바꾸지 않는거에요. 이런 사람이 더 애를 먹여요. 정말 양육이 안되더라구요. 선하고 착한 얼굴로 네 라고 답을 하는데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아요. 그러면서 나는 고집이 없어, 내 죄는 착한거잖아 이런 생각하시는 분들도 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악한것은 마찬가지에요. 누구든 악에대해 타고난 고집이 있어요. 인간이 백프로 죄인이기 떄문입니다. 보는것과 아는것에 차이가 있어요. 듣는 것과 깨닫는것도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 되고 전파 되는 것에는 걸림돌이 하나도 없어요.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생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천사들도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있게 전파되는 모든 환경에서 이 옳은 말씀을 가로 막고 방해하는 딱 한 존재가 있으니 정말 딱한존재 딱 한 존재에요. 바로 자기자신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죠. 듣기는 들어도 보기는 봐도 안본다는 거에요. 왜냐면 그 마음속에 안듣기로 작정을 했어요. 여기서 자는 사람은 일어나요. 그런데 절대로 깨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바로 자는 척 하는 사람이죠. 절대로 흔들어 깨워도 의지를 가지고 안듣기로 작정하기 때문에 누구도 못깨워요. 바울이 유대인때문에 힘들잖아요. 이방인들은 전도해서 열매가 많은데 우리의 마음이 완악하여 안들으니까 바로 내 삶속에 하나님읠 말씀을 가로 막는것이 내 마음이에요. 내 마음이 뭐죠 내 죄 입니다. 성령받게 해달라고 기도 하면 뭐합니까 그 기도하는 내가 성령을 딱 가로 막고 있는데 내 속에 음란란,욕심,시기,미움 이런 죄가 물 붓듯이 성령의 옳은 말씀에 딱 가로 막고 있는거에요. 내나라가 하나도 안무너져가지고 안 끊는거죠. 성령을 받아야 해요. 왜 성령을 안주시냐고가 아니라 내가 막고 있습니다. 불신결혼은 안된다고 느혜미야가 수염을뜯고 옷을 뜯어 말려도 내 눈앞에 저 사람이 너무 멋있어요. 듣기는 들어도 안듣고 보기는 봐도 안보면서 말씀 앞에서는 눈을 딱 감아 버리는거에요. 이혼은 안된다고 말씀에서 말하지만 둘이 성경에서 한몸이라고 말했는데도 이정도면 이혼 해야해 내가 판단하고 결정해서 듣기는 들어도 안 듣고 보기는 봐도 안보면서 나한테 불리한것은 다 눈을 감아 버리죠. 여러분 고침 받아야 해요. 눈을 떠야 해요. 음란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음란한 사람에게 복을 전하지만 음란한 자는 반드시 심판 받을 것이다. 그런것은 딱 감아 버립니다. 남의 남자,여자 탐하는 자는 멸망 당할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심판의 말씀은 눈을 감아버려요. 눈떠야 합니다. 23년 성령 받아야 합니다. 손해 볼 수 있어요. 내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러나 내일일은 모르잖아요. 안개와 같은 이 세상에서 결단해야 돼요. 말씀앞에 눈을 떠야 해요. 믿어야 돼요. 우리가 눈을 감는 이유는 세상이 좋아요. 로마가 너무 좋아요. 내게 주는 즐거움이 너무 좋기때문에 눈을 딱 감는 거에요. 유대인들이 성령 박사라고 해도 세상이 좋아서 눈을 감는 거에요. 우리가 눈을 떠서 천국을 바라 봐야 하는데 지금 내나라가 무너짐이 있어야 해요. 더 좋은 것을 바라 보는것은 회개 하고 돌이키는 것인데 회개는 손으로가는 적용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적용하면 살길이 막막할것 같은 상황이 올 수도 있어요. 말씀앞에 적용하고 내가 하늘을 향해 두손을 들때 가로막고 있던 성령께서 내 심령속에 임하는것이에요. 그러니까 아무리 이상한 사람이랑 살아도 말씀이 없으니까 이혼 밖에 답이 없는거에요. 내가 그 사람을 놔두고 다른 사람을 섬기면서 살면 결국은 다 돌아오게 되어있어요. 어디를 봐도 그런 간증이 우리에게는 철철 넘치고 기다려야 되는거에요. 망할때까지 기달려야 하는데 가슴이 아프지만은 아픈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양육을 받아가지고 다른 사람을 살려야 하는게에요. 다 살아나는데 현상만 보고 이런남자 저런남자 어떻게 살아야 이게 주제가인거죠. 고쳐줄까 함이라는 고침을 받게 될까 걱정이다 역설적으로 얘기했는데 이 이야기를 유대인이 미워서 했겠습니까 간절히 돌아오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초정이에요. 자신의 친척을 위해서 바울의 아픔을 가지고 원리를 설명 하는거에요. 에스겔에도 똑같은 말씀이 나오죠 내가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다른 민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언어를 쓰는 백성에게 보내는데 그들이 니말을 안들을거다 저도 에스겔 말씀으로 부르셨어요. 그래도 니 식구들이 아무도 안들을거다 그래도 전하지 않으면 피값찾겠다고 그러셨잖아요. 나는 가족의 구원떄문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고백을 해요. 우리는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다보면 근심,걱정을 거짓말로 할수가 있어요. 자기 근심 하면서 야망의 근심을 하면서 영적 근심을 하는 것처럼 거짓말을 할 수 있는거죠. 예수믿고 너무 감사해서 앉으나 서나 성경을 읽고 가치관이 변하도록 주일 학교 목장등을 섬기며 가르쳤더니 내가 가르친 다른 집 아이는 다 변해서 새사람 됐는데 내 아이만 변하지 않아 여러분의 근심은 야망의 근심입니까 영적 근심입니까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상급이 되면은 나한테는 열매가 많아요 나때문에 변화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면 내식구들은 걱정할게 없어요. 그것은 기다리다 보면 반드시 구원의 선물을 주십니다. 내가 열심히 하다가 집이 안되면 떠나고 큐티도 안하고 나한테 주시는 말씀이 따로 있어 이러면 안됩니다. 내가 구원 확신이 있는 만큼만 근심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주님과 사랑으로 연합되어 갈수록 구원받지 못한 식구들 때문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어야 당연한 거에요. 무슨 설교라도 눈물한방울 안흘리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도 안되고 관심도 없는것은 내나라가 아직 튼튼하기 떄문에 공감이 안되는 이유가 내나라가 안 무너졌다는 뜻입니다. 구원의 애통함을 모르는 것이죠. 끊을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이지만 내가 그 사랑에서 끊어 질지라도 이 형제의 구원을 원한다고 했어요.이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 상대이고 얼마나 사랑하고 원했으면 이런 이야기를 할까요 이것이 구원이에요 구원보다 더 좋은것은 없기 때문에 구원 보다도 중요한것은 없어요.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유대인들이 구원이 안되고 있으니까 바울은 최고로 힘든 대상을 만난거에요. 고난이 많고 주님의 열심히 섬길때 저 사람은 수준이 높아 그 얘기를 하는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나에겐 열매가 있거든요 딴사람들은 주님께로 인도하기 때문에 수준이 높다고 하는거에요. 결국은 내 식구도 구원이 되는 날이 온다는것이에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셔야 하는거에요. 그러면 요동함이 없어요. 그러면 옳도다 라고 해석이 되는거에요. 성령의 옳은 말씀이 있기 때문에 사랑이 가능 한 것입니다.
*적용질문
Q.내가 내 옆에 사람이 계속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소리는 무엇인가요?
Q.나는 어떤 말씀 앞에 눈을 감고 있나요?
Q.올해에 내가 고침을 받고 싶은 부분은 어디 입니까?
말씀을 맺어요. 성령의 옳은 말씀은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지면 안됩니다. 항상 거기서 성령님 옳도다 니가 옳도다 해야 되는 거에요. 옳도다 해석 해야되는거에요. 그것은 돌아와 고침 받으라는 간절한 초정인거에요. 우리가 달고 오묘한 그 말씀에 반응하여서 성령의 나라를 이루십시다.
'니가 옳도다!'
*기도제목
A
-건강검진 결과가 내일 나오는데 아무 문제 없기를
-실업급여 받을 수 있도록
B
-주일성수 백프로 지킬 수 있는 환경으로 인도 받기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건강 지켜 주시길
-혈기가 나올때 마다 내 죄를 보며 죽어지는 적용 하기를
-시간 날 때 마다 간절히 기도 하는 습관 가지기
C
-회사에서 업무 함에 있어 교만해 지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