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옛날에~ 하면서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재미가 있었습니다. 성경이야기도 너무 추억이 있습니다. 수요일에 바울의 증인, 큐지컬로 공연을 합니다. 룻기의 나오미, 사무엘의 압살론의 기념비 를 공연 했습니다. 이번에는 바울의 사도행전을 입체적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창조적으로 역사하는 우리들교회라고 생각합니다.
비교가 안되는 큐지컬입니다. 수준이 모가 높겠어? 할 수 있지만, 수준이 높진 않아도 비교가 안되는 큐티컬 입니다.
바울은 종착역을 한두주 앞두고 있습니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형제들에게 했을 것입니다. 노스웨스턴 대한의 심리학교수 덴 맥 아담스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합니다. 나의 정체성의 뿌리가 이야기를 통해서 좋은일로 나쁜일로 바뀌는 것은 오염시퀀스 나쁜일에서 좋은일로 바뀌는게 구원시퀀스라고 합니다.
구원시퀀스가 바탕이 되면, 좋은 이야기가 뿌리가 되면 늘 감사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어디에 뿌리가 있나요?
결국인 이 둘다 자신과 자기 중심적으로 나에게 뿌리를 두는 기억이기에, 행복해도 불행해도 결국 그 이야기 속에는 오염이나, 구원이나 그 이야기 자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체성의 뿌리를 주님의 이야기에 뿌리를 둔다면 행복과 구원이 십자가로 이어지고, 최고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간증이 됩니다.
성령의 이야기란?
1.나를 지키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16절
바울이 드디어 로마에 들어 갑니다. 긴 시간입니다. 에베소에서 결심한지 5년이고,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감근된 밤 이후로 3년 만 입니다. 그동안 많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잡히고, 쫓기고, 아시아와 유럽, 아가야 지방에서 헌금모아 예루살렘까지 가져갔는데, 결국 폭동에 잡히고, 옥에 갇히고, 결국 로마로 재판받으러 가는 길에 폭풍이 불어 모든 배가 산산조각 나기 까지 합니다.
그렇게 이와같이 로마에 들어간 것입니다.
당시 로마는 모든 것을 다 갖춰서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자신 했을 거 같은 땅끝 나라의 끝판 왕 입니다.
이 땅 끝 로마에 바울이 입성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16절은 우리가로 시작을 합니다. 16절을 끝으로, 이제 우리는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에서 주어가 바울로 바뀝니다. 이 말은 실제로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동행하지만, 로마로 들어간 이후부터는 주어가 바울로 기록이 됩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이고, 천부장이 조서를 잘 써줘서인지 따로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키는 자가 있습니다.
이제 내 옆에 형제들이아니라, 지키는 자가 있습니다. 이 지키는 자가 있기에 바울은 자신의 스토리를 마무리 할 수 있습니다. 로마까지 함께 오지만 사명은 혼자 감당 해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결국 죽으러 온 것입니다. 예수님도 골고다를 오를 때,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도 혼자 가십니다. 죽으러 가는 길은 혼자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나혼자 지어야 합니다. 공동체를 통해 담대함을 얻었다면 적용은 혼자 해야 하는 것입니다. 책임은 내가 지고 적용 해야 합니다.
목장에서 이러라 했다고 이랬다 저랬다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귀하지만 죽는 것은 내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감시하는 한 군인이 마치 남편처럼 아내처럼 딱 붙어서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정도 됬다면 나를 못믿어?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키는자가 필요 합니다. 지키는 자가 없으면 떠내려 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며 이야기를 써내려 가게 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처절한 슬픔 가운데,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는 부활의 이야기 입니다.
시댁 생활을 할때는 한명이 지켰습니다. 지금은 전세계가 지킨다 생각합니다. 그렇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가하면 더욱 주의 일을 열심히 할 거 같지만 더 나가기 싫어 집니다. 저 사람이랑 살면 정말 행복하겠다 합니다. 하지만 속지 마세요, 주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감시받고 있는 사람이 그럴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최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를 지키는 한 사람이 만명 같은가? 만명이 한 사람 같은가?
-나를 지키는 사람이 없어도 있는 것 처럼 사는가? 지키는 사람만 없으면 마음대로 할 것 같은가?
모든 이야기는 성령의 이야기로 승화 시키라고 여러분의 이야기가 있고, 지키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2.소망으로 말미암아 쇠사슬의 매임을 이야기 해야 합니다.
17~20절
사흘 후에, 주어가 바울로 굳어 집니다. 바울로 주어가 굳어지고 나서는 황제를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안하십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자신을 끝 없이 배척한 유대인부터 만나게 합니다.
돌고 돌아 나를 끝없이 상처준 그들에게 들어가 성령의 이야기를 또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나에게 상처준 그들에게 들어가는 것이 로마로 가는 비결임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날마다 전도하러 갈 때마다 유대인의 회당부터 갔습니다. 듣든지 안듣든지 가족과 동족을 위해서 얘기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선 순위입니다. 로마까지 와서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까지 오는동안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써내려간 이야기가 너무나 많을 텐데, 이 이야기를 또 내가족 동족에게 또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믿는데, 내 가족, 형제들이 훨씬 힘들게 합니다. 우리가 그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원도 관심 없지만 곳곳에서 복음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또 이유가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이주해서 간신히 터전잡고 사는데, 그들이 추방을 당합니다. 추방이유는 네로의 박해로 기독교인들 때문에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대인 회당 사람들중 하나둘 씩 기독교가 되어 가는 것 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계속 소동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받는 이 오해를 풀지 않으면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오해를 풀 수 없다고 생각이 드니, 이것 부터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전파를 위해 먼저 이 오해부터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20절에 함께 이야기 하려고 청했다고 합니다. 조상의 관습을 어긴 것이 없다 고 하는 것입니다. 그저 너희를 보고 이야기 하기 위해서 로마까지 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도 결국은 로마를 변화시키리라가 아니라, 로마 성 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이야기 하려고 로마로 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다는 사도행전에 딱 2번 쓰입니다. 1차 전도여행때 유대인의 회당에서 말할때 사용 됩니다. 부정과거 동사로 딱 한번 말하는 건데요 하는 것입니다. 이 딱 한번 말하는 걸로 온 시민이 모였다고 한다 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8장에 마지막으로 로마까지 와서, 같은 동족, 같은 대상, 유대인들에게 말할때 쓰입니다. 시작과 마지막을 이야기할 때 쓰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이스라엘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구원, 회개, 예수 이렇게 말하는데 지금은 소망때문에 쇠사슬에 매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표현입니다. 나도 이스라엘 백성으로 같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회개, 예수 라는 말만 들으면 경기를 일으키는데, 지금은 같은 소망때문에 매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이렇게 어휘 선택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매이다로 번역한 단어는 특별한 단어인데, 감기다. 둘러쌓이다 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쇠사슬에 매여 있는것처럼 주님이 연약에 휩쌓여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쇠사슬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해를 못합니다. 이스라엘 소망은 내가 쇠사슬에 매여 있다가 풀리는게 아닙니다. 그랬다면 예수님이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도 죄수의 신분으로 쇠사슬에 매여 있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소망은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부활로 말미암아 심문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또 이 부활이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 졌기 때문에 결국 예수그리스도 우리의 소망인 것입니다.
그들이 바란 소망은 독립을 넘어 구약, 성경의 성취이고, 이땅에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회복된 하나님 나라가 오는것이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이 소망을 전하기 위해, 이땅에서 쇠사슬에 매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 입니다. 이렇게 쇠사슬에 매여 있어도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모습을 보이시니, 이 때 이야기를 전할 때, 내 이야기가 아닌 가장 강력하게 성령의 이야기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가장 수치스러운 모습에 있을 때, 가장 높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보여주면 이스라엘 소망 때문에 매였다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떻게 사명 감당하다가 쇠사슬에 매임을 당했어도, 광풍에 난파 당해도, 매를 당해도 늘 낙심하지 않고 나눠줄 것만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자신이 스데반 죽인 일을 끊임없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당해도 자기 죄에 대한 벌 보다 훨씬 가벼움을 항상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한번 회개한 사람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쇠사슬에 매인 이것을 구원에 의한 약재료로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봐야 상처입은 피해자가 아니고,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쇠사슬에 매여 있으며 이스라엘 소망을 전하는게, 진정한 예수님의 이야기고, 나의 간증이라는 것입니다.
신세한탄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망인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땅끝 나라, 세계 최고의 도시 로마에 왔지만, 로마를 변화 시킬 수 있는것은 유대인 너희여야 한다고, 이것이 이스라엘의 소망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미 로마 교회는 바울이 편지, 로마서를 써서 보냈 기에 이미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 지도자들은 아닌 것입니다. 같이 예수를 믿는다 하지만 마음이 같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나의 매임에서 이타적인 이스라엘 소망, 즉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말하나요? 이기적인 신세 한탄을 하나요?
-다른말로 매임에 대해 부끄러워 숨기려고 하나요?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약재료로 나누고 있나요?
하지만 유대인들이 로마를 너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 길이 먼 것입니다. 우리들교회를 왔는데도, 세상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못먹는감 찔러나 보자 하는 것입니다.
학벌에 매어 있는 나눔이 너무 많았습니다.
한분은 학벌 좋은 사람을 차별한다고 전도하기도 싫다고 그들이 알아서 찾으면 되지 왜 알려주냐고 합니다.
또 한분은 학벌 좋고 돈도 많기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고 하고, 학벌이 좋은데 안믿으면 있으면 모하냐 믿지 않는데 하는 것입니다.
부자고 학벌 좋고, 잘나가는 사람은 전도하고 싶지 않다고 애통함이 없다고 제안에 이세상에서 잘먹고 잘 살았으면 됬지 몰 천국까지 가려하냐 하는 시기질투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성령의 이야기는 쇠사슬의 매임이 얼마나 능력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솔직히 나눠주는 것이 우리들교회의 성령의 이야기라고 생각 합니다.
3.형제 중 듣고자 하는 자들이 반드시 남아 있습니다.
21절
유대인 지도자들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을 분명히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바울과 연관있다고 생각하기 싫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유명하다 해서 보러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바울이 직접 쇠사슬에 매인것을 보여 주니 우리는 들은게 없다 하면서 바울을 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해도 그래도 소망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연관있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22절
만일 유대인 지도자들이 바울과 연관없다고만 여기고 싶었다면 여기서 끝나는 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쇠사슬에 매인 모습을 보이며 이스라엘 소망이라고 말하니, 감을 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니 궁금해 지는 것입니다. 비호감이 호감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고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쇠사슬에 매여 자신들과 함께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은 처음 보는 것입니다. 그들 마음이 움직인 것입니다.
그동안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웠던 사상에 대해 마음이 열린 것입니다.
아마 그들이 풍문으로는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듣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그저 기독교가 사람들이 반대하고 부정적이다라고만 생각하는 그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주기 위해서 바울이 로마로 온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로 와서 자신의 인생을 총정리해서 들려주는데, 그것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내 이야기를 듣는 어떤 한 사람에 때문에 바울이 로마로 온 것입니다.
풍문으로만 들으면 다들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들려주는 게 중요합니다.
성경은 악하고 음란한 이야기가 성경의 스토리입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모르면 부정적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잘 되야 하는데, 왜 이러시나 합니다. 하지만 이런 내 모습으로, 매어지는 상황에서 낮아짐으로 아픔속으로 들어가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이야기 속에 말씀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것이 성령의 이야기 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는 이야기, 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전하는것, 내 이야기 속에 성령의 이야기만이 들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들려주어야 합니다.
*민백기 목자님 이야기
-내 사상은 여전히 세상의 가치관인가요? 부활을 바라는 천국의 가치관인가요?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인가요? 풍문으로 들은건가요?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이 있나요? 무관심인가요?
기도제목
혜국
1. 직장에서 광풍 잘 통과 할 수 있길, 통과를 못하게 된다면 이 고난이 내게 트라우마로 남아서 아픈 사람으로 머물게 될 것 같아 두렵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길
2. 힘들어도 힘든티를 안내는데, 사실 너무 힘들다, 나의 체면이 너무 강한데 내려놓을 수 있길
3. 직장에서 억울하고 피해자라고 생각하는데 결국 자기죄를 못봐서 그런것 같다, 나의 죄를 볼 수 있길
성도
1. 개편되는 목장에서 적응 잘할 수 있길
2. 지난주 정말 오랜만에 술을 많이 마시고 주일에 힘들어서 교회와 목장에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 한 주가 마음이 무거웠고 우울함을 느꼈다, 예배와 목장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던 사건으로 생각하고 앞으로는 술 자제 하길
3. 신교제, 신결혼!!!
재신
1. 치과 개원 준비중인데 잘 마무리 할 수 있길
2. 병원이 잘되면 잘된다고, 안되면 안된다고 방침을 변경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말씀으로 중심을 잘 잡을 수 있기를
3. 부모님에게 네! 라는 대답이 잘 안나온다 항상 NO!라고 말하는 청개구리 같은 나의 심보를 내려놓고 부모님께 순종 할 수 있길
설봉
1. 회사에서 급여문제가 일어 나질 않길
2.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결과가 잘나오길, 건강관리 잘하기!
3. 개편된 목장 가서 적응 잘 하기!
4. 신결혼 준비 잘해갈 수 있도록
형주
1. 어머니의 그림자 아래살며 굶주림이 없다보니 꿈이나 목표가 없다, 하나님께 나의 진로를 물으며 진지한 자세로 삶을 살기
2. 남이 날 보는 시선과 인정 중독에서 자유로워지길
3. 자기 모습 보기
4. 내년에 경제가 어려워 진다고 이야기가 많은데 잘 넘어 갈 수 있기를
두성
1.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보상심리로 주말에는 그저 놀고 쉬고만 싶었고 그 끝은 공허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공동체와 말씀 안에서 있으니 채워짐 경험하며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 뿐이였습니다
개편된 목장에서도 중심 잘 잡고 붙어 갈 수 있기를 기도 부탁 드립니다
2. 신교제, 신결혼
3. 가족 구원
주영
1. 취직 포트폴리오를 만드는중인데 준비 잘하길
2. 멘토 말만 믿고 직장을 나왔다가 지금은 취업을 못한 상태인데, 불안한 상황에서 말씀에 순종 할 수 있길
3. 불신 여자친구를 전도하려 하는데 정착 잘 할 수 있길
세진
1. 화요일 면접보는데 잘 분별 할 수 있길
2. 개편된 곳에 가서, 내 생각을 드러내기보다 잘 들어주고, 체휼 해주며 섬길 수 있기를
3.요즘 모든일을 내 생각으로 결정하는 일이 많았는데, 매일 아침 큐티하며 그날 주신 말씀으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