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일시: 2022.12.18
제목: 성령의 이야기
설교: 김양재 담임목사님
본문: 사도행전 28:16-22
16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17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18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19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20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21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성령의 이야기
바울은 그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형제들에게 하고 출발을 했을거에요. 나의 정체성의 뿌리가 이야기를 통해 바뀌는 것.. 오염된 이야기의 뿌리를 둔 사람들은 늘 삶의 만족을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의 이야기는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나요? 결국 둘 다 자신과 자기중심성으로 나에게 뿌리를 두기에 행복한 기억도 불행한 기억도 그 이야기 속에는 좋았어 하면서 교만, 나빴어 하면서 열등감이 들어갑니다. 주님의 이야기를 내 뿌리를 둔다면 행복과 불행이 십자가로 이어지게 되고 최고의 스토리를 말하게 된다는 거죠.오늘은 성령의 이야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나를 지키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16절)
바울이 드디어 로마로 들어간다. 에베소에서부터 5년이 지났다. 그동안에 수많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 로마 인구가 백만에 달했고 로마는 모든 것을 다 갖춰서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자신했을 땅 끝나라 끝판 왕이었다.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동행을 했지만 로마가 들어간 이후로 주어가 바울로 기록이 된다. 한 군인이 지키게 한다고 한다. 내 옆에 형제들이 아니라 지키는 자가 있다. 그러나 이 한 사람의 지키는 자가 있기에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바울이 주어가 되었다는 것은 사명은 혼자 감당해야 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에 놀러온 것이 아니다. 죽으러가는 길은 혼자이다. 십자가는 나 혼자 지어야 한다. 공동체를 통해 담대한 마음을 얻었다면 적용은 내가 해야 한다. 결정은 본인이 해야 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기복적으로 적용을 하니 잘 되는 것만 응답이라고 생각한다. 적용은 내가 해야 되는 거다. 목장에서도 본인이 적용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랬으면 좋겠으면 적용은 ~가 하세요.라고 이야기 해야 한다.
십자가 지는 것 때문에 욕먹는다면 하나님께서 감당해주신다. 바울 정도 되었으면 나 마음껏 사역하도록 자유 좀 주어달라라고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나를 지키는 자가 꼭 있어야 한다. 지키는 자가 없으면 떠내려 간다. 나를 끝없이 감시한다면.. 시댁과 남편 그 한 명이 만명같이 나를 감시했었다. 그 한 명만 없으면 내 세상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한 명이 지켜도 만 명이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 세상이 아니고 두렵고 떨림으로 살고 있다.환경은 믿을 것이 못된다. 나의 행복과 불행은 말짱 무지개이다. 없어지는 것이다. 주님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일순간이라도 주님과의 만남이 있는 사람은 최고의 이야기를 써내려 갈 가능성이 있다.
<적용질문>
·나를 지키는 한 사람이 만 명 같은가요 만 명이 한 사람 같은가요?즉, 나를 지키는 사람이 없어도 있는 것 같이 사나요?
·지키는 사람만 없으면 마음대로 할 것 같은가요?
2. 소망으로 말미암아 쇠사슬의 매임을 이야기해야 합니다.(17절~20절)
사흘 후에 바울이 주어로 굳어졌다. 바울이 주어가 되어 황제를 만나야 한다. 로마 황제도 만나게 해주실 수 있다. 여전한 방식으로 자신을 끝없이 배척했던 유대인들을 만나게 하셨다. 돌고 돌아 상처주었던 그 사람들에게 들어가 성령의 이야기를 해야되는 거다. 어디를 가도 가족과 동족은 잊을 수 없다. 이것이 성도의 갈 길이다. 로마까지 왔다면 바울이 그동안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써내려 간 이야기를 내 가족 유대인들에게 또 하고자 하는 것이다.
바울은 어떤 경우에도 늘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파했고 배척 당했다. 믿고 안믿고는 하나님께 달렸다. 사도행전을 보면 유대인들이 바울을 잡아죽이려 한다. 같이 믿는 사람이 제일 괴롭힌다. 그래도 늘 찾아가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어긴적이 없기에 죄가 없지만 오직 너희를 보기 위해 땅 끝나라 이 로마까지 왔다. 그런데, 로마가 나를 죄 없다고 석방할려고 했는데 너희를 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를 만나려고 저 먼 곳 예루살렘에서 묶여져서 여기로 왔다.
로마도 로마를 변화시키리라가 아니라 이 성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야기하러 왔다. 중요한 주제가 이스라엘의 소망이라는 단어이다. 로마의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에 쇠사슬에 매였다고 간증을 했다. 아주 지혜로운 표현이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이스라엘의 소망을 기다리고 있는 그 사람하고 나도 똑같은 사람이다. 이렇게 이들에게 맞는 어휘를 선택했다. 유대인들에게는 예수가 길이다라고 말하면 경기한다. 바울의 단어를 가지고 욕할 것이 없다.
구원은 언어를 잘 써야 한다. 자기 매임이 오직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에 매였다. 이 매이다의 단어는 감기다 둘러 쌓이다의 뜻이고 예수님도 고난을 받아서 순종을 배웠다고 하셨는데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이 땅에서는 용납을 못한다. 그런데,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쇠사슬에 매여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 주님도 연약에 휩싸였다는 것이 쇠사슬의 매임이다. 이스라엘의 소망은 부활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소망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바라던 소망은 독립을 넘어 구원의 성취였고 예수로 말미암아 회복된 나라가 진짜 이스라엘의 소망이다.
그것을 전하기 위해 이 땅에서 가장 무식하고 미혹된 자들이 받는 형벌인 쇠사슬에 매인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예수 믿고 복받으면 이렇게 된다가 아니라 내가 쇠사슬에 매여 있어도 성경의 모든 말씀으로 내 삶을 전할 때 성령의 권능이 임한다. 당당하게 높은 사람들을 청해서 쇠사슬을 보여주며 내가 이스라엘 소망 때문에 이렇게 매여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거다. 쇠사슬의 매임을 보여줘야 한다. 학생은 학생의 매임, 아내는 아내의 매임.. 예수 믿는 사람으로써 얼굴을 찌푸리는 행동을 안해야 한다.
포로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라고 하니 예레미야를 매국노라고 했다. 큐티를 진짜 잘해야 한다. 매임이 부활의 증거가 되는 약재료로 쓰인다면 그 매임을 통해 내 안의 죄악을 회개해야 한다. 바울이 무슨 일을 당해도 이 사람 왜 낙심하지 않죠? 항상 낙심치 않는 모습. 바울은 스데반 죽인 죄인이다. 어떤 일이 와도 내 죄가 고난보다 더 많다. 그러니 사람은 100% 죄인이라고 했으니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 죄를 보는 사람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안하는 거다. 나의 모든 일을 매임, 약재료로.. 어떤 것도 수치스러울 것이 없다.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내가 체휼하는 거다. 상처 가운데에서 상처입은 피해자가 아니라 치유자가 되는 것은 자기 죄를 봐야 된다. 성령이 임해야 자기 죄가 보인다. 그만큼 자기 죄를 봐야 매임에서 성령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다. 내가 매임에서 전하는 성령의 이야기의 권능이 생겨나고 권능으로 성령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다. 쇠사슬에 매여 하나님 나라를 전해야 한다. 내 신세 한탄이 아니라 이 매임 속에서 내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이 말씀이 이스라엘의 소망, 하나님의 소망이다.
로마를 변화시킬 사람은 예수 믿는 유대인 바로 너희들 이라고 사명을 고취시키는 거다. 너희는 하나님이 뽑아서 택한 제사장 나라이고, 너희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 지는 거다. 로마를 전도해야 되는데 로마를 너무 좋아했다. 그러니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니 갈 길이 멀다. 쇠사슬의 매임이 아니라 세상에 매여있는 거다. 로마의 강성함을 오히려 시기한다. 미워하면서 너무 부러워하고..이런 마음이 없어져야 한다.
<적용질문>
·나는 나의 매임에서 이타적인 이스라엘의 소망, 즉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말하나요? 이기적인 신세 한탄을 하고 있나요?
·다른 말로 매임에 대해 부끄러워 숨기려고 하나요?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약재료로 나누고 있나요?
3. 형제 중 듣고자 하는 자들이 반드시 남아 있습니다.(21절~22절)
바울이 자기의 억울함과 결백함만 주장했다면 유대인 지도자들과 대화가 끊어졌을 거다. 이들이 바울의 매임을 보고 있고 이스라엘 소망이라는 말을 듣자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아닌 것 같고.. 잘난척하거나 비굴하거나 했으면 안들었을텐데 감을 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니 궁금해졌다. 바울처럼 쇠사슬에 매인 모습으로 나타난 자는 없었다. 바울처럼 성령의 담대한 마음이 충만해 쇠사슬의 매임을 받아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을 처음 봤기에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나사렛 예수파에 대해서 마음이 열렸다. 기독교는 어디서도 반대를 하는 줄 알고 풍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다고 한다. 정확한 성령의 이야기는 듣지 못한거다. 기독교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거다. 나눔할때도 잘되고 아름답고 성공한 나눔만 하면 뭐라고 할 게 없다. 그러나, 악하고 음란한 이야기가 성경의 이야기이다. 아내를 팔아먹은 아브라함 이야기, 거짓말 사기꾼 야곱 이야기, 유다.. 기생 라합.. 처녀 마리아 이야기가 실제적인 이야기라고..
바울이 쇠사슬에 매여 있으면 우리도 내가 매여있으면 바울의 말을 잘 듣는다. 나 때문에 바울이 매여있구나.. 그래서 다른 매인 사람 때문에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성령의 이야기이다. 내가 매여있는 상황 속에서 낮아짐으로 그들의 아픔 속으로 성령의 이야기로 나가야 한다. 내 이야기 속에 말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이다. 겉으로만 보면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는 이야기.. 내 안의 죄가 보이면 그 죄가 어떻게 예수로 말미암아 부활되었는지.. 우리들교회 이야기를 풍문으로 듣고 와보기 전에는 천분의 일도 몰랐다고 이야기 하는 거다.
<적용질문>
·내 사상은 여전히 세상의 가치관인가요? 부활을 바라는 천국의 가치관인가요?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인가요? 풍문으로 들은 것인가요?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이 있나요? 많은가요? 무관심인가요?
김준 목장보고서
일시: 2022.12.18
장소: 판교 주변 식당
참석: 김준, 고영광, 윤석준, 이재찬, 전재호
나눔 및 목장소식:
- 한 주를 어떻게 살아냈는지 근황을 나누었고, 주일설교 말씀을 통해각자 느낀점을나누었습니다.
- 적용질문을 통해 각자 어떤 쇠사슬에 매여있는지,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며 느낀점들을나누었습니다.
기도제목:
A:
1. 큐티하기
2. 주어진 자리에 감사하며 한 주를 보내길
3. 봉사부서 섬김에 대해 기도하기
B:
1. 큐티하기
C:
1. 회사에 일할 좋은 사람이 잘 뽑히도록
D:
1. 매일 큐티하기
E:
1. 안정된 직장생활
2. 모두 건강하길
F:
1. 어머니 건강
2. 큐티하면서 매일 깨닫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