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사도행전 끝나기 전까지 성령을 받으셔야 하는데, 아직까지 안되서, 28장이 마지막인데 한두절씩 할까 한다.
지난 주 성령의 피난처로 잘 피하셨나요? 멜리데가 피난처란 뜻인데, 영국의 청교도들이 피난처를 찾아 떠난 미국이라고 영원한 피난처가 아니었다.
영원한 피난처에는 공의가 있어야 한다. 공의는 법정 판결 같은 뜻이 있다. 하지만 법정 판결이 공명정대하지 않는 경우를 자주 본다. 사람은 100% 죄인이기에 공의로울 수 없다.
최고의 공의는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성령의 공의란?
1.뜨거움으로 독사가 나와야 합니다.
3절
멜리데 원주민들이 불을 피워 바울일행을 영접했다. 이 불이 꺼지지 않아야 한다. 이는 특별한 동정으로 피워진 불이다. 언 마음과 몸을 녹이기 위해 선한 의도로 피운 불이다. 그런데 비와 추위로 불이 꺼져 간 거 같다. 그래서 바울이 불을 지피 려고 했는데, 그만 독사에 물린다.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몸을 일으켜 수고한 바울이다. 칭찬받아 마땅한 손 인데, 이 손이 독사에게 물린 것이다. 꽉 물리고 매달려 있는 것이다.
뱀으로 인해 선악과를 먹고 죄가 들어왔다. 그로 인해 창세기에서는 계속 뱀이 원수가 되어 세상 끝날까지 성도를 괴롭힌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땅에서는 영원한 피난처는 없음을 바울이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여자의 남은 자손, 예수만이 사단의 머리를 칠 수 있다. 이것이 성령의 공의다.
바울에게 죽을 수 밖에 없는 복병이 또 온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데도, 무서운 상황이 쓰나미 처럼 몰려오는 것이다.
이번주에 편지를 하나 받았다. 아이를 키우는 20대 미혼모이다. 낮에는 아이를 키우고, 밤에는 CCTV를 연결해서 보면서 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누군가 교회를 가자고 했을때 어릴 때는 거절했는데, 지금은 믿고 싶다고 한다. 교회를 오라고 했는데, 지금 밤에서 시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어서 고민이 된다. 한다. 무엇이 공의인지 모르겠다.
또 다른 엄마는 남편이 집을 나갔다. 책 선물을 받고 교회에 나와야 겠다 했는데, 집이 지방이라 너무 멀었다. 그런데, 한 목자님이 계속 데려다주시고, 데리고 가셨다. 덕분에 아이를 데리고 10년째 잘 다니고 있다. 너무나 감사하다.
더 좋은 것이 있어야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두 자매 모두 뱀의 협박을 받고 사단으로 끌려갈 뻔 한 것이 보인다. 한분은 이제 편지를 주고, 한분은 우리가 있으니 그런 환경에서도 눈물로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목자님은 공군사관학교 출신인데, 주식에 바람에 가출에...교회오면 이혼해 주겠다고 해서 왔는데, 지금은 두분다 목자가 되었다. 이분은 빚독촉이 힘들어서 빚만 해결 되면 사단과도 손을잡겠다고 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나눴다.
따뜻함을 유지하고자 나뭇가지를 던진다. 선한 의도로 한건데, 뱀에 물린다. 우리 마음속에는 알지 못하는 독사가 숨어 있다. 없던게 생긴게 아니다. 그런데 선한 의도, 따뜻한 마음에 튀어 나오는 것이다.
나의 독사사 체면, 사회규범으로 통제될 때는 모른데, 그런데 뜨거움이 다가오니 어두움에서 밖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넣은 가장 가까운 바울은 문다. 선한 의도로 전도했지만, 독사처럼 상처주는 말을 들은 분이 있을 것이다.
따뜻한 때문에 독이서린 말과 눈빛으로 물린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또 나의 독사도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 따뜻함에 독사가 나온것이 다행인 것이다. 얼어있으면 계속 숨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독사가 물때 어떻게 할 것인가?
따뜻해서 나왔으니 불을 끄라고 하지 않겠는가? 내가 독설을 받았으니 난리를 친데, 그런데 바울은 어떤가?
독사가 그 손을 그냥 물고 있다. 문채로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물고있다고 번역된 말은 여기서만 사용된 동사인데, 손을 털지도 않고 물린 채로 그대로 있는 것이다. 바울이 감각이 둔해서 그런게 아니다. 내가 특별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을 때, 독이 서린 말과 눈빛을 받아도, 상대가 나를 아무리 물어도 물린채로 있는 것이다.
상대의 독이 서린 말을 물린 채로 다 받는다. 이렇게 받는것이 성령의 공의다.
이렇게 받아내면 이보다 더한 공의는 없다. 정치가 옳고그름이 아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 받아야 한다. 날마다 독사가 물었다고 펄펄뛰면 안된다.
-뜨거움에 나온 치명적인 한 마디 독사의 말과 행동은 무엇인가요?
-그래서 누구를 죽어라고 물고 있나요? 아니면 잘 물리고 있나요?
성령의 공의를 알려면 뜨거움으로 내속에, 네속에 독사가 다 나와야 합니다.
2.진실로 살인한 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4절
물린 채로 있는건 구원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독사가 나를 문 이 사건을 보면서 멜리데의 독사가 맹독성임을 원주민 들이 아주 잘 안다. 그렇게 동정했던 원주민들이 응급처치를 해주거나 하는게, 아니라, 이자는 진실로 살인한 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바울이 살인자라는 말까지 듣는다. 물리고 있는데, 너 살인자 아니야? 라고 범죄자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범죄자가 되고 손가락질을 받는다. 원주민들은 그를 살인자라 생각하며 공의의 여신이 그를 죽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과응보가 이세상의 모든 특징이다.
여기서 공의는 무엇인가? 어떤 분이 평생 죄 짓고 살다가 죄악에서 돌이키자 마자 천국 갔는데, 그분이 선을 행할 시간이 어디 있어 겠는가? 그분이 천국 갔을까?
공의라고 하면 사람들은 과거의 죄와 현재를 같이 놓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거의 죄가 한가지라도 있으면 내 삶 전체를 심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스겔을 보면 과거의 죄와 오늘의 죄를 같이 심판하는게 아니라 한다. 지금 이시간이 심판의 시간이라고 한다.
내죄가 붉은 지라도 오늘 내가 예수의 이름을 믿는 다면, 바로 내 죄가 도말 받는 것이다. 구원받는것이다. 반대로 내가 죄지은 거 하나도 없이 살다가 마지막 예수를 부인한다면 심판 받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공의이다.
사람은 공의로울 수 없다. 오직 예수의 이름만 공의롭다.
멜리데의 원주민이 특별한 동정을 하지만 그들의 양심은 옳고 그름이기에, 바로 배신을 한다. 그래서 인간적인 동정을 늘 경계해야 한다. 우리의 동정은 구원에서 출발하는 동정이어야 한다.
원주민들이 특별한 동정을 하다가. 살인자라고 하다가. 6절에는 신이라고 한다. 인간의 동정은 변덕스럽다. 그래서 착한건 믿을 수 없다. 우리는 동정보다 구원이 필요한 인생이다.
빈곤포르노라는 말이 있다. 모금을 위해 공경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보여주는 거라 한다.
물론 지침을 잘 지는 단체도 있지만, 요즘 매체에서 동정을 일으키는 영상을 보여주는 일이 많다.
구속사적으로 동정해야 한다. 목적이 구원이어야 공의가 될 수 있다.
바울은 어떻게 성령의 공의를 나타내는가? 바울은 한마디도 안한다. 나는 선한의도로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웠는데, 독사에 물리고 살인자라고 까지 한다. 이때 씽크를 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틀린말도 아닌 것이다. 내가 스데반을 죽인, 예수님을 죽인 살인자라고 했던 자기 죄를 다시 직면하니, 독사를 보면서, 이상횡에 대해 원망할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이 인류의 모든 죄를 지시고, 모든 사람을 대신해 십자가에 매달렸다. 그래서 우리가 죄에서 해방된 것이다.
내가 죽어질 때, 죽음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다.
우리는 독사에 물려 있다. 그리고 내안에 숨어져 있는 독사로 인해 우리가 다 가해자임을 인정 해야 한다. 피해자 얘기는 그만해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죄인인지에 대한 정확한 자기 인지에서 부터 성령의 공의가 시작 된다.
사람들이 너는 살인자야 라고 손가락질 할때, 예수님이 내 대신 손가락질 당하셨구나 하는게 성령의 공의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자기 삶을 바쳤다. 그런데 어딜가나 무시당하고, 이제는 이방인에게까지 무시를 당한다. 존경받아야 할 나이와 위치인데도 이런 말을 듣는 것이다.
아마 우리는 저런 무시와 조롱에 변경을 했을 것이다. 이세상에 남들은 다 과거의 죄를 문제 삼는다. 그래서 아무리 지금 잘 살아도, 과거의 죄가 늘 문제가 된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내 자신은 과거의 죄를 인정을 해야 한다.
바울은 내가 살인자지 하고 인정한다. 그러면 어떤가? 받을 죄를 받아야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독사가 무섭지 않고, 그로인해 오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겼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어떤 문제를 가져왔어도, 주님을 만난 사람은 내가 가해자임을 인정한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된다.
-늘 나의 과거가 인정 되나요? 늘 남의 과를 문제 사만요?
-오늘 내가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았습니까?
-다른 사람도 예수 이름으로 구원 받았음을 인정 하시고 이제 그만 용서해주시면 어떨까요?
-여러분에게 살인자 인식이 있습니까?
-상대가 나를 비난하며 말할 때, 변명을 하며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성령의 공의를 모르면 여전히 내가 가해자임이 인정이 안될 것입니다.
성령의 공의는 뜨거움에서 독사가 나오고, 살인자 인식이 있어야 하고,
3.돌이켜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하십니다.
5절
잠시동안 뱀이 물고 있었으나, 이후 바울은 이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립니다. 앞절에는 독사였지만 지금은 짐승이라고 합니다. 상대의 마음에 숨어있는 독사는 받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짐승의 권세는 떨어 버려야 합니다. 죄인은 사랑하지만 죄는 미워해야 합니다.
이 짐승은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거대한 권세, 세력들입니다. 이 짐승을 어디다 떨어 버립니까? 특별한 동정으로 피우던 불에 떨어 버립니다.
독사에 물렸다고 불을 피워야지 불을 끄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했던 적용들 바로 그 불에 이 짐승이 불살라 짐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살리는 권세라면 짐승의 권세는 죽이는 권세입니다. 내가 적용하고 사명을 위해 간다면 어떤 권세도 나를 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평소라면 이 살인자야! 병신 XXX! 라는 말을 들으면 크게 상합니다. 이것이 짐승의 권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원의 불을 피우고, 십자가 앞에 내가 살인자임을 인정하고 가면 내 존귀한 가치가 폄하 되지 않습니다.
내가 구원과 사명을 십자가 길로 놓고 간다면 조금도 상함이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는 이건 못참아 하면서 가는 것이다.
성령의 공의는 조금도 상함이 없는 정도가 아닙니다.
6절
기복적이고, 인간의 동정이 많은 사람들인 신이시여 했다가. 살인자야 했다가 한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님이 보여진다. 바울보고 살인자라 했던 원주민 들은 바울을 오래 기다리면 죽기를 바라며 지켜보는 것이다.
내 주변에 원주민 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바울인 것이다. 그들이 수고하고 있는 것이다. 니가 이래도 예수 믿는다고 할래? 하면서 괴롭히는 것이다. 그들이 오래 기다리면서 지켜보고 있는것이다. 도와주지도 않고 너는 죄 지었으니 죽어라 하고 있는것이다.
이렇게 보고 있으면 쓰러지던지 죽어야 하는데, 기다려도 아무렇지도 않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더 지금 적용으로 그러는거지? 진정성이 안느껴져 하면서 모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면 우리는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사단은 알아듣지 못하게 한다. 나도 진심으로 한게 아니라 억지로 한것인데...그런데 억지로 하면 진심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정곡이 찔리니 부글부글 하는 것이다.
독설로 상대를 물면 상대는 쓰러져야 하는데, 오히려 구원과 사명을 십자가 길로 놓고 가니, 따뜻한 불을 여전한 방식으로 피워대니 이들이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는 것이다.
내 인생은 살인자로 끝나야 할 인생이다. 망해야 할 인생이었는데, 살인자라고 손가락질 받던 바울을, 나를 이제는 원주민들이 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신이 아니다. 바울이 믿는 신, 즉 하나님을 인정한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정한 것이다.
난리 법석을 치며 옳고 그름을 따지며 상대를 죽이려고 하는게 아니라, 말씀을 붙들고 여전히 내모습을 인정하고 불을 피우면, 나를 살인자라고 손가락질 하며 무시했던 그들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당신을 보니 예수가 있긴 있나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공의다.
무조건 물려 있으라는게 아니다. 구원과 동정은 다른 것이다. 분별할 것은 분별해 가면서 해야 한다. 내가 무조건 받아주는게 구원은 아닌 것이다.
내 열심으로 살았을 때는 살인자였지만, 돌이켜 나를 직면하고 회개함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복음안에서 태어난 전혀 다른 존재로 나를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바울을 보고 살인자라고 정확히 말했던 원주민들이 정확하게 당신은 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입니다. 하고 정확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말에 화를 내지 마시고, 거기서 들어야 할 말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너가 나한테 어떻게 그래? 하지 마시고, 독사에 물려서 가만히 있으시길 바랍니다.
세상은 나를 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예수님 만이 나를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부목자님이 명절에 아이들과 동태전을 붙여 먹는다고 합니다. 작년엔 대구전을 했는데, 이제 동태전을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올해는 민어전을 했던이 이제 동태,대구전을 안먹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최고의 전은 우리들교회의 패자부활전이라고 생각한다 합니다. 삶에서 패배한 우리가 공동체에서 살아나는게 패자 부활전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사랑해야할 죄인은 누구고, 미워해야 할 죄는 무엇인가요? 죄인은 사랑해야 하지만 공의로 미워할 죄가 있습니다.
-내 인생은 공평합니까? 불공평합니까?
-새로운 존재가 되었는데, 내 환경이 뜨겁다고 겨우 불붙기 시작한 목장예배 불을 꺼뜨립니까?
기도제목
혜국
1. 인사 사건 잘 해결되고 회사 미팅 잘 하길
2. 자신의 문제 잘 바라보길 구원을 위한 적용을 할 수 있기를
3. 회사 부서 이동을 가는게 맞는지, 이직을 하는게 맞는지 분별 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인도해 주시길
설봉
1. 회사 일정 순조롭게 가길
2. 광풍보다 무난하게 가길 여유 있는 삶을 살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3.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한 삶을 살수 있도록 적용
세진
1. 부동산 문제 잘 해결 되도록 도와주시길
2. 진로의 인도
주영
1. 이력서 합격 소식 오길
2. 여자친구와 멘토 전도
재신
1. 병원 개원 준비 잘하길
2. 양육 마무리 끝까지 잘하고 수료 할 수 있기를
3. 전도한 여자친구 잘 붙어가길
형주
1. 자신의 일에 집중 할 수 있도록
2. 삶의 계획표를 쓰고 적용 할 수 있길
3. 양교 한주 남았는데 마무리 잘할 수 있도록
성도
1. 다음주 회사 업무들 잘 끝나길
2. 대학원 마무리 잘 할 수 있도록
3. 건강을 위해서 다이어트 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