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가장 많은 사람을 구출한 배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6.25 전쟁 중, 통일이 다 될거 같았는데, 중공군의 투입으로 힘들어 졌다. 계속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던 그때, 마지막 수송선의 항선의 정원이 60명에 불과한데, 이미 선원이 47명이 타고 있는데, 13명이 아닌 14,000 명을 태우고 온 미국의 수송선이 있다. 배에 있는 물자와 무기를 다 태우고 결국 거제에 도착을 한다.
그리고 이 물자와 무기를 중공군이 쓸까봐 폭파 시켰다고 한다. 기독교 정신이 있어서 지혜롭게 분별 했던거 같다.
배의 선장이 라듀선장인데, 이것은 기적이고, 하나님의 손길이 그 배의 키를 잡고 있는 것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한다. 그리고 이후 평생을 수도사로 살았다고 한다.
그의 묘비명에는 만 사천명을 구한 영웅담이 일체 없고, 이름과 살아간 날만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분의 결단이 14,000명을 구원했는데,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천국에는 이런분들이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할 때 영혼의 구조를 받아야 한다. 육지가, 목적지가 다가오고, 사도행전이 끝나가는 이때, 성령을 받아야 한다. 구조를 받아야 한다. 시간이 없다.
성령의 구조란?
1.경사진 해안이 눈에 띄어야 합니다.
38절
배부르게 먹었다 한다. 이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좋은 사람과 맛있는거 먹는거라 한다. 그러나 세상에 좋은 사람들은 배신들을 많이 한다. 결국 믿음의 지체들과 먹는 식사는 금보다 귀한것이라 생각한다.
육지에 가까워질 수록 수심이 얕아져 암초에 걸릴 일이 많아지기에, 밀을 버려야 하는것이다. 배부르고 행복하니 버릴 수 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눕는 것이다. 이제 육지가 가까워 졌으니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더 좋은 것이 생기면 마약도, 중독도 버릴 수 있다.
마약은 너무 무서운 것이다. 한번 하면 끊을 수 없다 한다. 좋은 것이 있어야 하는데, 좋은 것에는 예수님 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을 알기 어렵기에 바울과 믿는 우리가 수고를 한다.
여명이 가까웠기에 때를 알아야 한다. 상식과 믿음으로 알아야 한다.
평소에 버리는 적용을 해야 한다. 마약중독의 딸을 위해 엄마가 자존심을 버린다. 오픈하면 죄가 힘을 잃을 것을 알고, 울림기도회, 새벽설교, 주일설교, KBS 등에서 다 오픈하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뭐라 하는 사람도 있는데, 딸이 살아야 한다. 체면이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밀을 버리는 적용이다.
배부른 사람들이 왜 그런걸 말하냐 하는데, 인생이 짧다.
괴산에 지진이 났다. 뉴스에서 우리가 불이 났을 때, 생명을 위해 딱 한가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고 한다. 뭐라고 생각하는가? 뉴스에서는 안강기 라고 한다. 안강기를 타고 내려와야 한다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이걸 모르고 작동법도 모른다고 한다.
911사태때, 그동안의 재난 대처 훈련 덕분에, 3천명 중에 2700명 가까이 구조 되었다고 한다. 미국은 이 911 사태를 계기로 모건스텔리를 모델로 재난 안전 시스템을 다 뜯어 고쳤다고 한다.
39절
밀을 버렸다. 버리고 나서 드디어 날이 밝는다. 날이 밝으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지만 경사진 해안이 눈에 보인다. 경사진 해안이란, 항구로써의 기능이 없는 해안이란 뜻이다. 다 버렸으니 안전하게 상륙했다고 할 수 있는 결말인가? 믿음의 인생이 간신히간신히 가게 되는 것이다.
이말은 영적으로 내 눈이 떠지니 내 삶이 해석되고 조금씩 내 삶이 보인다는 뜻이다. 망하고 아프고 버리고, 광풍을 겪으니 상대방의, 식구들의 굴곡진 경사가 보이는 것이다.
아무도 배를 대지 못하는 경사진 가족의 아픔이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경사진 인생이며 누구도 나에게 정박을 할 수 없었겠구나가 깨달아 진다.
경사진 해안의 항만을 보면서, 경사진 식구들을 도와주려 해도, 내속의 경사짐을 먼저 보고 마음이 아파야 한다.
눈에 띄는 사람이 있어도 훅 들어 가면 안된다. 39절 후반절에 보면 의논을 한다. 의논을 하고 전략이 필요하다. 항상 삼위 하나님도 나를 위해 같이 의논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낮아지면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도와주실 텐데, 앞서나가면 안된다. 성령이 도와주시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말씀 묵상하면 늘 알려주신다.
의논한다는 것은 몇번이고, 심사숙고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언제나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리고 누구를 도와준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우리 언니 선교사님은 본인이 늘 선교지에서 도와준다는 생각을 하니, 원주민들의 경사진 가치관을 보고 한계를 느끼고, 수평이 아닌 수직적인 관계를 맺다 보니 거기서 뼈를 묻어야 겠다고 간증을 한적이 있다. 하지만 결국은 돌아 왔다.
지체와 공동체가 너무나 중요한다.
필리핀에 선교사님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했는데, 여자 선교사님들만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는데, 지금 보면 그분들만 너무나 잘 사역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분들 끼리 지체가 되신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큐티나눔을 하고 계신다.
의논이 끝나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40절
광풍이 불때는 닻을내렸다. 목적지를 알지 못할때는 닻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사명을 발견했기에, 내눈에 경사진 눈에 띄는 한 영혼 있다면 마지막 닻을 끊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말은 내 배가 좌초될 지언정 경사진 그사람의 삶속으로, 고난 속으로 들어가길 작정한 것이다. 그리고 키도 풀어 늦춘다. 사공들이 자기 뜻대로 배를 모려고 하지 않는것이다. 그리고 돛을 바람에 맞춘다. 이는 바람의 힘으로 육지로 가려고 하는 것이다.
아픔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이것이 성령의 구조 이다.
적용을 하면,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밀을 버리고, 날이 새니 경사진 항만, 경사진 사람이 보이고, 의논하고 최선을 다해 그 아픔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구원이 코앞인데 무엇을 버리지 못하나요? 여러분의 가장 큰 행복은 무엇인가요?
-다음 주 전도 축제에 내 눈에 띈 경사지 같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의 경사짐, 왜곡됨을 보십니까?
-그를 위해 나는 어떤 전략을 가지고 목장에서 의논 합니까?
2.두물이 만나 깨어져야 합니다.
41절
의논하고 항만을 향해 전진을 한다. 자연적인 돛 하나로만 가고 있는데, 하필 지나간 곳이 두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이다. 이것은 걸린게 아니다. 그리고 여기에 정박을 한다.
두물이 만나는 이곳은 육지의 물과 바다의 물이 만나는 곳을 말한다. 거기에 모래톱이 쌓이는 것이다. 그렇게 의논하고 왔는데, 결국은 암초에 걸리는 것이다.
기도하고 묻고 그렇게 그렇게 왔는데, 결국 암초에 걸리는 것이다. 즉 내 생각 니 생각이 만나서 깨지는 것이다.
전혀 다른 두 물, 남녀의 만남, 신자 불신자의 만남이 그렇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니 깨지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니 행복한 것이 아니라 깨지는 것이다. 결혼은 내 반이 깨어져야 반이 채워지는 것이다. 깨어질 때, 내 삶의 십자가가 보인다.
두물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거룩을 목적으로 두는 것이다. 그런데 행복을 목적으로 두니 깨어지는 것은 너무나 정상이다.
예수님이 이세상에 오시는것도 전혀 다른 두물이 만나는 일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이 세상이 깨어 지는가? 아니다. 이물을 단단히 고정하듯 자신의 손과발을 단단히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자신의 육체가 깨어지기 시작한것이다.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이 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죄의 형별을 받을 우리는 아들의 신분이 되고, 아들의 신분이신 그분이 우리의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이다.
충돌하여 깨어지는 것이 성령의 구조이다. 단단한 사람이 깨어져야 하는 것이다. 잘날 수록 안깨진다. 조금만 학벌, 돈이 있어도 자기가 안깨지려고 다른 사람을 깨려 한다. 이것이 구원을 가로 막는 저주이다.
돈이 있고, 미모가 있으면 안깨지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깨어지는가? 이해할 수 없는 저 남편, 저 아내로 인해 내 자신이 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경사진 삶에 들어간다면 그가 아닌 내가 깨어져야 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들이 깨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영광스런 부활을 맛보지 못했기에 여자로, 마약으로, 중독으로 피해 가는 것이다.
두물이 합해진곳에 배가 우연히 걸려진것이 아니고, 배를 걸었다고 능동태를 쓰고 있다. 자기 의지로 정박을 한것이다. 구원 때문에 조심하고 조심했지만 이제는 정박해야 겠다고 결단한 것이다. 십자가에 잘 묶여 있으면 기막힌 카이로스의 타이밍을 알려 주신다.
우리가 실력행사를 해야 할 때가 있다. 그 때는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것이다. 남편에게 더이상 시간이 없으니,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전하고 나자마자 육신의 배가 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카이로스의 시간인 것이다. 우리가 용기있게 나가야 할 때가 있다.
만일 알렉산드리아 호가 깨지지 않고 무사히 정박했다면 어떻게 됬을까? 전설의 배가 되고, 배를 만든 회사가 유명해지고 그배의 선원들도 유명해 졌을 것이다. 그러면 이 사건은 구원의 사건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호가 섬에 정박했다면 우리가 구원 받는게 아니라, 알렉산드리아호가 유명해 졌을 것이다.
성령의 구조가 되기 위해서는 나를 태우고 가는 배, 내가 우상삼을 수 있는 배가 철저히 깨어져야 하는 것이다.
-내가 깨지고 있습니까? 내가 다른 사람을 깨뜨리고 있습니까?
-내가 구조하려는 그 사람에게 들어가 내 시간, 내 돈, 내 자존심이 깨질 것을 각오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일부러 정박을 했다 한다.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정박을 해야 하는것이다. 결혼이라는 약속이의 십자가에 나를 딱 못박고, 내 육신이 깨지고 결국 다 구원 받을 줄 을 믿습니다.
3.널조각에 의지하여 구조됩니다.
42~44절
로마법상, 죄수들이 도망가면 그들을 보던 군인들은 사형을 당한다. 자기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 군인들은 죄수들을 죽이려 하는 것이다. 자기가 살려고 도망치려 했던 선원들과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백부장은 왜 말리는가? 바울을 살리고자 말린 것이다. 한영혼의 구원 때문에 말렸겠는가? 아니다. 바울이 로마까지 가야 하니까 말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울과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이 구조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바울을 특별히 여기신 까닭이 있다.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황제에게 복음을 전해야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온전해서가 아니다. 바울이 사명있는 그 한사람이기에 함께한 모두가 구조된 것이다.
제가 조심조심 해서 왔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문제가 참 많이 있다. 그렇지만 제가 형편 없기에 늘 눈물을 흘리면서 가는 것이다. 사명이 기가 막혀서 가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행함으로나 모로나 따라 갈 수 있는게 없다. 그런데, 제가 한가지 잘하는게 있습니다. 가정준수, 말씀묵상이다.
사명을 감당 할 수록 내 죄가 보이니까 가는 것이다. 가정에 사명있는 한사람이 있으면 가정 모두가 구원 받는 것이다. 교회도, 사회도, 나라도 마찬가지다. 중심잡는 한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구원의 은혜를 아는 한사람, 성령의 구조를 경험한 한사람 때문에 공동체가 살아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한사람이 나일거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우리는 다들 그 한사람이 내가 아니라 너야 하며 편하게 가려고 한다. 내가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사명을 미루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주제가 이다.
우리나라는 시스템이 잘 되있다. 하지만 윗 사람이 중요하다. 위에서 명령이 없으면 아무도 안하는 것이다. 한사람이 중요하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그래서 깨어 있으라고 하는 것이다.
자발적인 의식이 없으면 명령이 되고, 그러다보면 책임 추궁이 있다보니까, 아무도 움직이려 안하는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추궁만 하려고 하는 것은 결국은 자발성을 떨어트린다.
한사람의 결단 때문에 14,000명이 살아날 수 있는가 하면 반대도 있다. 평소의 연습은 너무나 싫은 것이다. 하지만 평소의 큐티와 목장은, 위기의 때에 우리를 살릴 것이다.
날마다 하는게 너무나 힘들다. 1년에 4번 갑자기 하는 재난 훈련은 너무나 하기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911테러에서 많은 사람을 살린 것이다.
문제만 생기면 책임추궁만 하니까, 다들 극단적으로 행동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사람에 대한 자율성을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큐티고 나눔인 것이다.
여기서 널조각은 배에 깨어진 파편이다.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는 힘이 있을때 사람을 구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을 구조한 것은 깨어진 널조각이다. 배가 망가지니까, 결국 널조각이 나를 구원하는 것이다.
내가 구조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돈, 무력, 경험, 곡물등은 오히려 배를 무겁게 하고 버려야 할것이다. 나를 구원한 것은 결국은 나를 아프게 한, 깨어진 나의 파편, 나를 힘들게한 것들 의 파편, 널조각 들이 나와 우리의 구원에 쓰인 것이다.
내 경험, 돈, 들이 나를 구원하는것이 아니다. 깨어지고 또 깨어진 내 삶속에 찾아온 그분이 나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구조이다.
자발적인 리더십이 우리나라에 너무나 부족한 것이다. 사람을 향한 자발적인 마음이 필요하다.
성령의 구조는 내가 아니라, 너를 구조할 때, 나도 너도 구조되는 것입니다.
-내가 붙든 널조각은 무엇입니까? 다른말로 내 고난과 약재료는 무엇입니까?
-나는 어디서 구조되고 싶은가요? 솔로탈출? 직장? 가정? 중독?
기도제목
A 관계가 틀어지면 도망치려한다, 도망치지 않도록 힘을 주시길, 목장개편 이끌어주시길
B 한섬에 걸리게 하신다고 하셨는데, 말씀대로 가는중이다 그 시간을 균형 있게 보내길, 형부 전도를 하려고 하는데 말씀이 들리시길, 목장 개편을 위해 기도해주시길
C 신교제, 친오빠 전도, 목장 개편이 되면 적응이 어려운데 잘 적응하길
D 관계 분별 잘하길, 회피가 아닌 직면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길, 직장 인도
E 조카가 아픈데 회복 도와주시길
F 치과 개원을 하는데 도와주시길, 여자친구 전도를 하려고 하는데 잘 적응 할 수 있도록
G 신결혼 준비 도와주시길, 남자친구 아버님 신장 수치가 높은데 건강 지켜주시길, 여동생 전도
H 내 주제파악 잘하길, 신교제, 신결혼
I 교만 내려놓길, 공동체에 잘 붙어 갈 수 있길, 개편되는 목장 가서 적응 잘하길
J 마음의 소동이 심한데 말씀 안에서 잘 해석하고 평안을 찾을 수 있길
K 직장에서 인정 받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올라오는데 교만한 마음 내려 놓을 수 있길
L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데 관계에서 트러블이 생기면 내 생각만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큐티보면서 해석할수있길, 신교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