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읽는 전도서
전도서 1:12-14 3:11-13 12:13-14
강영안 교수(미국 칼빈신학교)
3년 전에 우리들 교회에 와서 그 때 했던 강의 덕분에 책을 쓸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5년간 가르치는 동안 책을 7권을 냈는데요. 그 때 마다 늘 기억하고 떠올리는 성경 구절이 전도서에 있습니다. 12장 12절. 책을 짓는 것은 끝없고 글을 많이 읽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한다. 그러나 제 삶은 이 말씀을 배반하는 삶이 되긴 하지만 언제나 이 말씀을 기억하며 내 삶 별것 아니다 생각하면서 감사하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이 계절에 가장 묵상하기 좋은 게 역시 전도서라고 생각합니다. 마침 큐티인에 묵상이 시작되더라구요. 오늘은전도서 말씀을 함께 생각 해보겠습니다.
1. 전도서가 어떤 책인지
전도서라고 하는 말은 코헬렛 인데요, 에클레시아라는 말 모임이라는 말을 라틴어로 표현하고 다시 영어로 옮긴 말입니다. 원래 히브리 말은 이것저것 지혜로운 말들을 모으는 사람 collector,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사람 gatherer, 설교자 preacher 이 세 의미를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배경을 알고서 전도서를 읽으면 훨씬 더 쉽게 이해됩니다.
전도서는 1장-12장까지 되어있는데요. 서론에서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 헛됨에 대한 역설이 나오구요
12장 8-14절까지는 일종의 결론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이 해야 할 마땅한 일이다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신다라고 하시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지켜야 할 이유입니다.
전도서를 사람 몸에다 비유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지키는 것이 몸통이고, 한 팔은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하는 것이고 다른 한 팔은 모든 것이 선물이다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가운데인 1장 12절에서 12장 7절까지는 중심을 이루는 부분으로 1인칭으로 되어 있습니다. 1장 1-11절, 12장 8-14절까지는 3인칭으로 전도자가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장 12절에서 6장 9절까지는 인간의 삶을 자세히 그려보는 description 이구요, 9절 이하부터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삶의 교훈 prescription을 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전도서는 전반적으로 삶의 의미에 관해 묻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검토해보지 않은 삶은 인간에게 살만한 가치가 없다는 말을 남겼어요. 이 철학 전통이 서양의 긴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소크라테스는 문답법을 전개하는데요. 끊임없이 자기 삶을 성찰하는 방식인데요. 전도서의 방식은 이와는 다릅니다. 전도서의 전도자가 하는 방식은 인간의 삶을 자세하게 관찰하는 것이었습니다. 경험주의자적 관점에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 첫번째 질문을 드립니다.
(적용 질문) 여러분은 삶의 의미에 대해서 삶의 가치에 대해서 삶의 방향에 관해서 질문을 던져 보십니까? 이 질문을 그리스도 안에서 던질 때와 그리스도 바깥에서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던질 때 차이가 무엇입니까?
2. 전도서에서 삶을 보는 방식
모든 것이 헛되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헛됨에 대한 자각과 한탄은 1장부터 8장까지 계속 헛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11장과 12장에서도 계속 나옵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히브리어로 하벨 하발림. 헛된 것 가운데 헛되도다 라는 말이 계속 반복됩니다.
이 말은 안개 연기 수증기 공기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역을 하면 공기 중의 공기로다. 연기 중의 연기로다. 안개 중의 안개로다.무슨 말 일까요?
잠시 잠깐 있다가 사라져버린 것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것. 잡으려해도 잡히지 않고 손아귀를 빠져나가버리는 것.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현실. 그와 같은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인간 세상을 보면 지혜가 우매함보다 낫지만 지혜자나 우매자나 마찬가지로 같다는 인간의 현실. 짐승보다 인간이 낫지만 죽음의 현실 앞에서는 짐승이나 인간이나 같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보면 모순되는 일들 역설적인 것들이 잘 일어난다는 걸 보게 됩니다.
왜 이럴까요? 세 가지로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뭘 좀 이해해보려해도 도무지 이해되지가 않는다. 왜 악인이 잘살고 왜 의인이 오히려 고통받는가. 왜 믿음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고도 나고 병들고 슬픔을 당하는 일이 왜 일어나는가. 설명이 힘들고 알 수가 없다 입니다. 인식론적으로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둘째, 우리의 인생이 뭔가 좀 알맹이가 있고 실제가 있는가라고 물어보면서 그걸 잡아보려 해도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현실. 존재론적 의미에서 실체가 없는 현실이고,
세번째는 이게 정말 가치가 있는가. 어느 것도 궁극적 가치가 현실속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강한 인식이 전도자가 우리 삶을 바라보면서 헛되도다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의 모든 노력들 우리 삶의 어떤 알맹이라든지 인식 가능성이라든지 가치의 존재 여부 등이 확정할 수 없는. 결국은 우리 삶을 우리 손으로 컨트롤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팬데믹처럼 치료제도 개발하고 하지만 우리 손으로 완전히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처럼 헛되구나 하는 인생입니다.
니체 등의 철학자가 말하는 허무주의는 두 가지가 있는데요. 소극적 의미의 허무주의는 우리의 존재라 하는 것은 어떤 목적도 없고 외부적 가치도 없고 우리 존재를 떠받치고 있는 기초가 없다는 의미에서 nothing주의죠. 적극적 허무주의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들어내야 한다는 주의입니다. 우리가 의미의 창조주가 되어서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내고 의미부여해야 한다고 합니다. 극단적 인간 중심주의가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전도서에서 말하는 헛되다라는 건 무신론적 허무주의와는 의미가 다릅니다.
(적용 질문) 여러분은 삶의 헛됨을 분명하게 경험해 보셨습니까? 그것을 어디서 경험해보셨습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허무주의와 그리스도안에서 삶을 헛되다고 보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3.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알아가며 사는 삶이 무엇인가
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은 모든 것이 헛되다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게 다가 아니라 전도서 2장 24절 말씀. 이런 인식이 일곱 군데에 나오는데요.
전도서에 쭉 반복해서 기쁨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일하고 수고하는 그 삶을 즐거워하라 기뻐하라고 합니다. 이 것들이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즐거워하라고 하는 거죠.
우리가 가진 것 누리는 것 주변에 있는 것. 당장 아침에 먹은 것, 점심에 먹은 것들. 나에게서 나온 것들이 아니에요. 바깥에서 나온 것들이죠. 그 가운데에는 죽음이 전제가 됩니다. 소와 돼지와 식물이 죽고, 죽음을 통해 우리의 삶이 가능한것이죠. 죽음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수고가 없다면 우리가 먹을 수도 없습니다. 먹는것에서부터 우리의 친구들 가족 형제자매 아내 남편 자녀들. 내가 잘난게 아니고 은혜고 선물 입니다.
우리가 선물을 받았다고 하면 내가 보여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요?
바로 감사하는거죠. 감사로부터 우러나오는 게 뭘까요 당연히 기쁨이죠. 결혼의 목적도 삶도 행복이 아니라 거룩함이 목적입니다. 행복을 목적으로 설정하지 않는 것 뿐이지 행복은 거룩함의 결과로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죠. 행복은 내가 쟁취한다고 얻는 게 아닙니다.
행복은 내가 얻어내는 게 아니라 마땅히 살아야 할 방식대로 살면 거기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로 생각하면 거기로부터 오는 건 감사함이고 깊은 감사함의 자리에 설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행하지 않고 그 삶을 만족함으로 받아들이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감사하고 만족하고 자족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 거에요.
감사 안하면 불평하고 불만족에 빠지고 남과 비교하게 됩니다. 비록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내가 숨쉬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고 하늘을 응시하고 내 곁의 사람에게 말을 건낼 수 있다는 현실에만 해도 감사하고 만족할 수 있다고 하면 남과 비교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이성이 있기 때문에 비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물들은 뭘 쌓고 모아놓고 축적해가지 않잖아요. 사람은 자기가 평생 써도 못 쓸 것들을 모으거든요. 남보다 비교우위에 서고자 하는 욕망이 그렇게 만든 거에요. 감사하는 마음이 만족을 주는 행복의 통로가 됩니다.
감사로만 그칠 수 있을까요?
받은 선물을 선용해야하죠. 함께 나눌 수 있는 게 뭔지 모를지라도 공동체의 삶에서 내가 있음으로 해서 공동체에 기여하는 게 있을겁니다.
은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뭘 가진 사람만이 은사가 아니라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게 은사가 될 수 있는 우리 공동체의 삶의 방식입니다. 이럴 때 감사라 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삶이 일들이 다름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감사로부터 우러나온 삶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삶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드리는 감사도 중요하지만 감사로부터 우러나와서 이 땅의 삶의 자리에서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구원의 은혜로부터 나온 감사에서 이루어진 삶이라 이해를 할 수가 있죠. 그럼 그 삶에는 기쁨이 있고 행복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
이렇게 두 날개 또는 두 팔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통 역할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죠. 그의 말씀 그 명령을 따라 사는 겁니다.
12장 13절. 하늘을 경외하는 것.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이 삶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부활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부활의 삶을 고대하면서 이 땅에서 믿음과 사랑과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부활은 단지 미래에 올 현실일 뿐만 아니라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고 지금도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미래에 올 부활과 과거의 부활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지금 우리의 삶 자체도 매일 십자가에 매달리고 부활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이제 가을이 오는데요. 이 가을이 되면 우리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밖에 없는 시기입니다.
유대인들의 절기에 보면 봄 시절에는 유월절이구요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고. 여름에는 이른 추수를 하게 됩니다. 가을에 들어서면 이번주 토요일부터 초막절/수장절이 시작됩니다.
이 때 유대인 전통이 읽는 성경이 전도서 입니다.
전도서를 통해 광야 생활을 기억하고 추수하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우리에게도 가을이 그런 절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목장 기도 제목 ㅇ >
*은혜 목자 언니
1. 삶을 주님이 주신것으로 인정하며 감사로 살아낼수 있길
2. 게으름으로 미루지않고 해야할것들 직면해서 해나갈수있도록
*현아
1. 회사 일에 지치지않고 감사하며 자리 잘 지킬 수 있도록
2. 동생 목장에 기쁨 주시길, 신교제!
3. 아빠 평택 목장 환경 열리길, 엄마 마음이 열리길
4. 양육시작 동반자와 내가 지치지않고 말씀으로 살아내는 10주가 되길
5. 친구 희경이도 양육 숙제에 지치지 않고 부담보다는 기쁨이 가득하길
*은혜
1. (퇴사) 회사 마무리 잘 할 수 있도록!
2. 친오빠와 형부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3. 어디서든 주님의 자녀로서 말과 행동에 본보기가 되기를!
4. 현재 하는 일, 앞으로의 모든 일을 주님께서 개입 해주시길!
*윤진
1. 마음의 안정
2. 가족들 건강과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길
3. 기초양육 받을 수 있는 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