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9월 25일 주일
본문: 사도행전 26:24~32
설교자: 김양재 목사님
제목: 성령의 원함
1.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해야합니다.
피바람 불 다메섹 가서 증언하여 바울이 살았다. 베스도가 바울의 말을 끊었다. 바울의 많은 학문이 너를 미쳤다(헛소리하다)라고 말을 끊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로 귀신과 얘기하는 것으로 여겼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베스도가 깊은 인상을 받은게 분명하다. 욕하는 사람이 항상 가능성이 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에서 미친자로 취급이 되었다. 예수를 만났더니 사람들에게서 광적으로 믿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 베스도는 이제 바울의 그 무죄를 밝혀주려 청문회를 열었는데, 자기 상식으로 정신나간 사람을 말하는 것 같아서 창피했다. 아그립바 왕 앞에서. 너무 부끄러웠다. 무엇이 그렇게 들을 수 없이 부끄러웠을까? 부활이 미련하고 미신같은 얘기라고 생각한 것이다. 네가 미쳤다 라는 베스도의 말에 바울이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것이 아니고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라고 대답한다. 신약에서 각하느 데오빌로, 데로, 베스도 3명이다. 바울은 미쳤다는 말에 대해 강한 부정도 아니고, 인정도 아닌, 어감도 중요하고, 그 앞에 종과 증인으로 서 있기 때문에 인정할 때와 부인할 때를 딱 안다. 그러게오 하면 여기서 안된다. 여기서 미치지 않았다고 말을 한다. 이게 아주 뉘앙스도 아주 중요하다. 제가 미치지 않았습니다. 날 어딜 보고 미쳤다고 해? 라고 하면 안된다. 구원에 관심있는 사람은 어감도 중요하다. 진리에 대해 온전한 정신으로 하는 말인데요.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로 하는 말인데, 통념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바울이 또렷이 기억한다. 그래서 바울이 지금 복음은 미친 사람의 헛소리가 아니다. 바울이 힘든 시간 거쳐가면서, 힘든 시간의 실제를 겪게 되는데, 바울의 인생을 되짚어보면 전도할 때 읽고 또 읽는 교과서가 되었다. 이방 교인들의 구제 헌금을 받아서 갔다. 가자마자 잡히고 사네드린 공회에서 벨릭스와 드루실라 베스도 아그립바에게 전했다. 같은 복음을 전하고 또 전하나 아무도 안 믿는다. 70곳을 전도하는 혁혁한 성과를 올린다. 20~26장까지는 복음 전해도 아무도 안 믿는다. 7장 감옥, 7장 복음을 전한다. 우리는 이럴 때, 저럴 때가 있다. 다녀야만 신령한 선교가 아니다. 아무도 안 듣는 이들에게 바울은 끝없는 복음을 전했다. 안되는 정도가 아니고 날마다 죽이려는 살해위협을 느끼면서, 바울이 자신에 죄성에 대해 점점 깊이 직면하게 되었다. 마지막 간증이 26장에 나왔다. 예수님의 고난을 점점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7장에 박해받던 시간으로 세계적인 전도자가 되게 하셨다. 천국소망이 더 확실해지면서 주옥같은 13개의 서신서를 썼다. 죄의 얘기가 빠지면 안되는 것이다. 죄 얘기를 하나도 없이 높음만 말하면 감동이 없다. 달음질 하기를 향방없이 하고, 나라의 부부의 통일도 향방이 없으면 안된다. 참되고 온전한 것은 이런 간증을 말한다. 맞습니다의 말이 참되고 온전한 말이다. 저또한 저의 연약함을 끊임없이 보게 하셨다. 남편 갔을때도 뭔가 하게끔 하셨지만, 난 목사 할 사람이 아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목사와 안 맞는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까 저를 붙들어 달라고 해야한다. 이렇게 주의 일을 한다는 것이 아직도 자신이 없다. 35년 지났는데, 그 때보다 훨씬 더 갇혀있는 삶이다. 남편 가고 덤으로 사는 인생인데, 나에 대한 자신이 없고 목회를 하게 하시니, 바울처럼 갇혀있다 생각이 든다. 그 감옥에 있으니 날마다 직면하게 하셨다. 정말 죄가 없는데 어떻게 회개를 하겠는가. 저 또한 이게 가장 불쌍한 과부의 원형이다. 젊었을 때. 그때부터 누구 만나고 안식년하고 그럴 수 없었다. 너무 조심스러워서 갇혀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나고보니 갇혀있었더니 쉬지 않고 책이 나왔다.
[적용] 여러분은 예수 때문에 미쳤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까? 아니면 거기까지 하면서 막은 적이 있습니까? 참되고 온전한 말인 약함의 죄인 간증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2. 담대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천부장에 전할 때는 너무 갑갑했는데, 이제는 내가 담대히 말할 수가 있다.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이 비밀스럽게 한 구석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안 믿고 못 믿는다. 예수님을 모르니 하나님을 높일수가 없다. 나를 높이는 말이야말로 헛된 말이다.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나를 높힐 말이 뭐가 있겠나. 그런데 가난하대 막혔대 하면서 세상은 무시한다. 부자에게는 말을 잘 못한다. 가난한 자에게는 미쳤다고 말을 잘 할 수 있다. 그래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 것이다. 내가 믿는 게 기적 중에 기적이다. 어제 결혼식에 처음 오셔서 등록하고 가는 것이 믿는 것이 기적이다. 내가 베스도 총독보다 아그립바보다 낫구나.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수업에서 지혜를 갖는 게 얼마나 슬픈가. 다른 생명체는 죽어도 왜 죽는지 몰라. 인간은 슬프면서도 교만한 존재다. 모순을 갖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환생 부활 아직까지 나는 그거 몰라. 안 겪어봐서 nothing 이다. 환생 부활도 마음의 양식이다. 라고 생애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낫띵이라 하셨다. 지성이 많을수록 믿기가 참 어렵다. 바울의 고독이 이해가 가시지요. 아그립바 왕이여 믿으실 줄 압니다 하며 바울이 말한다. 선지자를 믿는다고 해야지 안 믿는다고 말할 수 없는 아그립바다. 그러면 유대 지도자들의 지지를 잃는다. 바울의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 곧 믿으시는 줄을 아나이다 하며 퇴로를 열어 주었다. 믿지도 않는 아그립바에게 각하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아그립바 왕에 대해 선지자에 대해 예언한 결단을 촉구하는 의미는 분명하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아그립바는 유대인의 왕이다. 바울에게 말하라고 허락을 했다. 들으려는 마음은 있었다.공부도 좋아한다. 그런데 들리지가 않는다. 개념 알지만 실제는 모른다. 벨릭스도 믿진 않는다. 이 수없는 은혜가 안 믿어진다. 바울도 알 수 없는 것을 내가 못했다 자괴감 가지시면 안된다. 아그립바는 참되고 이런 간증을 다 듣고 당황했다고 본다. 왕의 자리가 그렇게 쉽게 반응할 수 없는 자리다. 그것이 아그립바의 걸림돌이다. 논점을 바꾼다. 네가 그리스도인이 되려 하냐? 그 때 그리스도인은 무시하는 대상이었다. 네가 아무리 권하고 설득해도 너처럼 예수쟁이가 될 마음이 없다. 예수쟁이는 재산 권세 다 뺐긴다. 내가 설득이 됐어도 적용이 안된다. 결국 누구 눈치를? 유대 지도자들 눈치를 본다. 정치인들도 그렇다. 그 탑에 인정되는 자체를 못 견딘다. 걸림돌이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 후에 아그립바는 굉장히 호의적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아무리 들어도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7장동안 계속되는 얘기였다. 이런 말을 나도 나날이 들었다. 바울은 계속 자기 간증만 했다. 유대인 대표인 아그립바에는 그게 거리끼는 것이고 미련한 것이였다. 바울은 걸림돌인 예수 부활을 계속 말을 한 것이다.
[적용]복음이 나에게느 미련한 말입니까? 걸림돌입니까?
3. 나처럼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원하나이다의 원함이 원함의 원어이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왜 말을 하나. 어떻게 이렇게 나처럼 되라고 하나요? 교만해보이지 않아요? 이 말을 바울처럼 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바울처럼 그렇게 말을 못할까? 전자동으로 내 행위를 생각하는 것이다. 요셉이 나처럼 되라 하면 수긍이 되나 따라갈 수 없다. 유다가 나처럼 되라 하면 수긍은 안 되나 따라갈 수 있겠다 생각은 든다. 하나님 나라 전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이 아니다. 세상에서 밑바닥을 살아도 나같이 사세요. 가 되는 것이다. 바울이 자기의 죄를 하나님이 구원해주셔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아서 그 나라에 초대하고 싶어서 나처럼 되라는 것이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했다. 이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천국을 경험하니, 유다도 조롱받는 며느리 편을 들었다. 누구를 옳다고 하는 것은 십자가 짐 같은 인생이다. 예수의 직계조상이 되려면 이 정도 수고는 해야하는가보다. 우리의 상식으로 천국은 가는 곳이 아니다. 유다처럼 무너져봐야 보이는 것이 있다. 이 세상처럼 비교되지 않는 것이 있는 천국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의롭고 좋은 일 많이해서 공로 있어서 나처럼 되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무식하고 받은 은혜가 있으면 나처럼 되라고 할 수 있다. 총리 요셉이, 유다가 하나님의 용서를 처절히 깨달았겠습니까? 바울이 유다의 시각으로 말한 것이다. 구원 받은 사람은 나처럼 되라고 말한 것이다. 나처럼 되라고 하면 됩니까.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알아 들을 수가 없다. 바울은 그냥 나와 같이 되지 않기 원한다가 아닌, 여러분은 그저 복음 듣고 예수믿고 구원 받으세요 그 뜻이다. 나는 구원 때문에 결박 당하는데 넌 왜 그래? 라고 한다. 내가 공로로 행위로 믿는 것처럼 생각해서, 쟤는 왜 고난도 없는데 잘 믿는거야 생각한다. 우리 주님이 자기 십자가로 주셔서 받은 구원이 얼마나 선물인지 알면 된다. 아무런 수고 안해도 되니 원함이 생긴다. 각자 은사대로 믿는다. 바울이 사형당할 죄가 없구나 한다. 결과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것이 묵상의 결론이다.
[적용]나처럼 되라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행위입니까, 은혜입니까? 가족에게 생색내고 있는 내 결박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저런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어 하면서 내새우는 조건은 무엇입니까?
구원받기를 하나님께 원하고 있는 내 곁에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기도제목
이소정
1.나의 원함이 무엇인지 살펴보며 주신 과정을 잘 통과하도록, 결국은 성령의 원함을 주목하는 은혜 주시길
2. 가족과 지체의 영육간 건강을 위해
류가영
1. 남자친구 일대일 양육에 성령의 원함이 함께 하기를
2. 나의 교제가 나의 원함이 아닌 성령의 원함의 길로 인도해주시길
3. 신교제신결혼
4. 코로나후유증 영육간 강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