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성령의 원함 (김양재 목사님)
본문: 사도행전 26:24-32
장소: 휘문고 2층 좌측 부근
인원: 4/8 (수근, 찬, 원범, 윤제)

Source: steemit.com
핵심:성령의원함의최고의비결은하루하루말씀을붙들고사는것이다. 당장에 세상에서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은 못 될 지언정순종을 하고 가는 적용을 하면 나중에 지난 날들을 뒤 돌아볼 때후회를안하게된다. 세상적으로휘황찬란한게없을지라도오직감사할것밖에없게된다. 또한, 성령의 원함은 순종의 적용을 한 이후 하나님께 기도함이다.
주일 말씀
남북과의 통일에 대한 원함과 목적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한 마음으로우리가죽어지고 예수가 살아지는통일을바라보길 원한다.
성령의 원함은...
첫째,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해야합니다.
베스도는 실제적이고 행정직무를 담당하는 사람이기에 바울의 간증고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다.긍정이든 부정이든 베스도는 바울에 대한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베스도는 자신의 손익계산을 마친 후 공식적으로는 바울의 청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본래 기대하였던 것과 다른 상황을 마주하게된다 - 바울이 왕 및 고위관료들 앞에서 스스로 쌓아온 학문과 세상논리를 바탕으로 자신의 무죄를 위하여 변론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간증을 한다. 바울을 청문무대 위에 세운 자로서 베스도는 바울이 부끄럽고 미련하다고 여긴다. 세상논리로 치열하게 이기고 이기는 삶을 살아온 베스도는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바울을 온전히 이해가 안되기 때문이다.
바울의 경우, 1차부터 3차 전도여행의 고된 여정들을 통하여 고생에 대한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유대인들로 부터 갖은 꼬투리를 잡혀 옥살이도 해보고, 등등 고생을 할 때마다 자신에게 먼저 와주셨던 하나님을 생각하며 오히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었을 때 예수의 마음이 어떠하였을 지조금이라도 더욱 통감하였으리라 묵상을 해본다. 사도행전 26장에서 아그립바왕을 향한 바울의 간증에서 '가시채 뒷발질'은 그런 맥락에서 추가된 간증이라 여겨진다.
바울을 보며 십자가를 지려고 하는 우리는, 교리와 이론을 앞세워 다른이를 정죄하기보다,우리의 삶에서 부터 보여지는 향방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이러한 향방은 이기고 이기는 삶을 바라고 살아가는 자 보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게되어 십자가의 훈련을 받는 이들에게 발현되기 수월하다. 순종하는 적용을 통하여 말씀이 들리고 자신의 죄가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결국 순종의 말은 참되고 온전한 말이다.
나는 기존 피아니스트의 삶을 꿈꿔왔던 사람으로서, 원래 목회자가 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큐티모임을 주도하였을 당시만 하여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결코 목사의 옷은 입을 수 없다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나에게도 일련의 고난이 있었고, 세상 기준에서 잘난 의사 남편과 결혼하게되어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시집생활이 오히려 기존 예상과 달리 매일 지옥으로 변하는 시간들을 겪었다. 심지어 갑작스러운 남편의 돌연사로 인하여 과부로서의 남은 나의 여생을 마주하게 되기도 하였다. 내가 원하여 얻은 상황들이 결코 아니였지만, 이러한 고난들이 그냥 고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을 통하여 역설적이게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 해석이 되어졌다. 살기 위하여 그렇게 되어야만 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말씀이 믿어지니 내 안에서 영혼구원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생기게 되었다. 특히 사도행전을 통하여 보여지는 바울의 간증상황을 묵상할 때마다 깊은 체휼이 된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에서 이기고 이기는 삶을 살 게 될때보다, 주님의 택함으로 오히려 갇혀 있다고 생각 될때에 우리 안에서 참되고 온전한 말이 더욱 나오게 될 줄로 믿는다.
적용질문. 여러분은 예수 때문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거기까지 하고 막은 적이 있습니까?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고 있습니까?
둘째, 담대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되고 온전한 말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말이다.
나의 악함과 죄됨을 고백하고 간증하면 세상 사람들은 혀를 차기마련이다. 그러나 구원과 관련하여 성경에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하고 말씀하는 이유가 있다. 세상에서 잘나갈 수록 자신의 결함과 죄됨을 보기가 쉽지 않기때문이다. 그나마 공동체에 붙어가면 서로에 대하여 솔직하게권면을 해주기에 그나마 낫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공동체에 묶여가길 원한다.
아그립바는 유대인들을 관리하고 있기에 예수를 결코 모른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그립바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하여 예수에 대하여 긍정도 부정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기도 하였다. 그러기에 바울은 직접적으로 아그립바로 하여금 곤란하지 않게 하도록 아그립바를 향하여 예수에 대한 질문(공격)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예수에 대하여 담대히 간증을 하였다.
아그립바의 지위는 아그립바로 인하여 쉽게 예수를 영접하기 어렵게 한다. 유대 지도자들의 눈치를 안 볼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그립바는 유독 이 지위를 얻기 위하여 매우 노력한 편이기에 더욱 입장을 조심해야하는 상황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자기를 위한 변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에 대하여 간증을 계속해서 한다. 아그립바는 자신의 출세에 걸림돌인 바울 때문에 당혹했을 것이고, 베스도가 보기엔 바울이 미련해 보이면서, 그런 바울을 세워놓은 자신은 부끄러웠을 것이다.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게되었어도 담대하지 못하면 간증을 할 수가 없음을 묵상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에게 간증을 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디서든지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를 하면 살아갈 수가 있다고 믿는다.
[높으신 특정 인물을 향한 애통함을 표현하며, 김양재 목사님부터 담대히 말하는 적용을 보여주셨다.]
적용질문. 복음이 나에게는 미련한 말입니까, 걸림돌입니까?
셋째, 나를 따르라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29절. 나를 따르라라고 우리가 쉽게 말하기 어려워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세상에서 소위 성공한사람들이 아니기에 그렇기 말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를 따르라고 믿음으로 외쳐야할 줄을 믿는다. 다소 찌질하여 요셉과는 많은 대조가 되어 보였던, 며느리와 동침하였던 유다를 묵상해보길 바란다.
내가 의롭고 공로가 많아서 나를 따르라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은 은혜를 보고 우리를 따르라고 외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넘쳐서 구원 받은 사람은 누구에게도 나처럼을 부르짖을 수 있다. 물론, 바울이 말한대로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니, 바울은 전도하는 대상들이 구원 받기를 원한다라고 말하는 부분을 특별히 묵상한다.
성령의 원함은 결국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30-32절. 성령의 원함의 최고의 비결은 하루하루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이다. 후회를 안하게 된다. 세상적으로 휘황찬란한게 없을지라도 오직 감사할 것 밖에 없게 된다.
적용질문. 나처럼 되라를 외칠 수 있겠습니까 ? 행위입니까? 은혜입니까? 가족에게 생색내고 있는 내 결박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어'라며 내세우는 조건은 무엇입니까? 구원받기를 하나님께 원하고 있는 내 곁에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삶 나눔
수근:
양육교사를 신청하게 되었다. 일하면서 많은 과제들을 제출해야하기에 걱정이 되는 데 기도부탁한다. 1대1일 양육은 약 5년전에 수료했었는데, 과제를 다시 해보면서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 지 돌아보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말씀을 보고, 현재 내가 스스로 인정하기 싫은 병식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때에 맞게 처방도 잘 받아가길 원한다.
책들을 많이 구입하였다. 수요일에는 휴가를 내게 되어 해방촌에 가기도하였고, 남산에 가서 독서를 즐기기도 하였다. 어제 잠시 심란한 일이 있었다. 익명제로 운영되는 학교 동문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다. 그곳에 지식인들의 견해 및 공감을 얻고자 장문의 글을 올렸을 때 내가 바랐던 답들과는 다르게 나를 판단하는 피드백들을 얻게되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세상의 견해와 믿음의 공동체의 언어가 다르구나 느끼게 되기도 하였다. 나의 믿음 수준이 절실히 드러나는 사건이였던 것 같다.
윤제:
취준생으로서 여전한 방식으로 모 대학 도서관을 출/퇴근하고 있는 한 주였다. 기존 언어를 구사함에 있어 어휘와 문법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공대 성향의 사고방식만이 옳다는 주관이 있었는데, 독서/글쓰기를 하게 됨으로서 오히려 높은 직위, 직책을 맡을수록 사람간의 모든 능력은 결국엔 말하기와 쓰기로 귀결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은 생각을 언어로 하기 때문에 좋은 소통을 위하여 보다 나의 생각을 다듬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6일중 4일 정도는 저녁 11시 이전에 자는 작은 승리를 하기도 하였다. 운동을 늦게 하는 날에는 바로 잠이 안오기 때문에 보다 운동을 일찍 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 같다. 생활패턴에 신경을 많이 못 썼던 나의 대학원 생활을 묵상해보면 너무 감사한 나날이기도 한데, 계속 도전/유지하여 나아가겠다 (렛스기릿).
기존 튼튼한 등산가방을 다용도 목적으로 오랜 기간 들고 다녔는데, 이번에는 오피스룩에 더욱 어울리는 목적으로 가방을 부모님께 선물받았다 (감사합니당 ㅎ). 다음주부터는 양교책도 들고와야하니 가방을 메고 올 수 있도록 하겠다.
찬:
아웃리치멤버들과 엠티를 다녀왔다. 좋은 시간을 많이 보내고 올 수 있었다. 몸에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도 평소 살이 계속 빠지고 있는데, 저번에 목장에서 권면해준 것 처럼 음식을 많는 적용을 하고왔다 (웃음).
수요일 검진을 통하여 수치가 많이 호전되어 처방받고 있는 약을 줄이게 된 기쁜소식도 있었다. 무려 10년만에 일어난 일인데 요즈음 중독의 문제들도 조금씩 끊어지게되고, 실패하더라도 더욱 빨리 돌아서게 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심을 믿는다. 목요일에는 멤버들을 초대하여 분식음식을 간단하게 대접하기도하였다. 윤제와 마찬가지로 다음주부터 양육자로 섬기게되었는데 기도부탁한다.
원범:
이미 끝내었던 프로젝트 관련하여 상사에게 원치않는 일을 반복적으로 부탁을 받게되어 곤란한상황에 처해있다.
현재 개발자로서 나는 나 자신의 주된 업무도 이미 많은 상태에서 비상식적으로 반복해서 부탁을 받으니, 상사를 향한 많은 판단과 정죄가 많이 되는 한 주였다. 내가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할까, 하나님께 묻게되는 자신을 보게된다.
말씀 나눔
수근:
솔직히 말씀이 잘 안들렸다. 요새 진짜 목사님 말씀이 안들린다.
이번 주 물건을 사다가 어떤 아주머니께서 구겨진 지폐를 받으시고 돈을 펴서 달라고 말하셨었는데, 그 이후로 지갑을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고있다.
그런데 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다. 허세가 많은 데 이것을 어떻게 잠재울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소위 말하는 에루샤가 머리에서 멤 돌고 떠나지를 않는다. 고백하자면, 명품 가방 혹은 지갑을 구입하려고 중고품들을 보고 있었다. 성령의 원함이 아니라, 명품의 원함을 구하게 된다.
정답을 알고있는데 정답대로 잘 안되는 것 같다. 다른 곳에서는 매우 세밀하게 따져가며 절약도 열심히 하는 편인데, 이렇게 소비를 하려는마음이 스스로에게 강하게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허세인게 분명하다. 매 끼니를 김밥먹던 시절, 초심의 마음으로 돌아가야한다고 생각을 하고있다.
목원들의 처방 및 권면:
누구에게나 그런 허세가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것 같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다르겠지만, 결국엔 말씀해석에 더하여 경험을 통하여 우리는 분별력을 키우게 되는 것 같다. 사람의 한계이기도 하다. 성령께서 분별력을 허락하여 구입결정을 하길 짧게 기도하겠다. 사기전에, 혹은 사고나서 목장톡에 자랑이라도 해 달라.
윤제:
매주 설교를 들을 때 마다 나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린다.
극도의 효율을 좋아하는 나는 내가 행한 일에 비하여 생색을 매우 많이 내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나오는 바울은 자신을 높이는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높이는 간증을 통하여 성령의 원함이란 결국 인내와 기도인 것을 보여준다.
성취감을 즐기는 나는 평소 자기방어적 자기애에서 비롯된 자폭(자신감 폭발)을 숨 쉬듯 발산하는데, 나의 교만은 정말 내가 평생 짊어져야 할 숙제, 경계대상임이 느껴진다. 문제는 나의 잘남을 내가 객관적으로 알아도 멈출 수가 없는 부분이다 (미안하다). 우리들교회에 인도가 된 것 역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내가 고백하듯이 나의 교만도 오직 하나님께 의탁하여 가야하기에 나 스스로에게도 인내와 기도, 즉 성령의 원함인 것 같다.
특히 내가 가장 경계해야할 생색중 하나는, 아무래도 섬김의 자리에 있을 때인 것 같다.시간은 한정적 자원이기에 효율을 원하는 나는 내 사람, 내 공동체 외적인 존재에 대한 애통함은 없다. 나는 순종의 목적조차 결국엔 나를 위한 것임이 하나님 앞에서 분명하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들이 나의 정죄와 판단을 듣고 피곤할 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내가 참된 말과 온전한 말을 함으로서 내가 사랑이 없는 헛된 수고를 하지 않도록 기도부탁한다.
불과 몇 개월 전, 갑자기 졸업이 결정되어 박사 논문시험 준비할 때만 하더라도 이거는 하나님이 아니면 못해주신다고 울부짖곤 했다. 당일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결코 능력이 뛰어나서 박사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해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도 감사의 고백을 하였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 달이 지난 지금 사람들을 새로 만나면 마치 내가 이룬 성취인 마냥 스스로를 당당하게 박사라고 소개한다. 힘들었던 시간들이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내 마음에서 교만이 요동치는 지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도 놀랍다.
성령의 원함은 결국엔 기도라고 하셨다. 양교자로 섬길 때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게 아니라 그사람이 성령을 만나도록 인내하고 기도를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양육자로서 섬기게 됨으로서 숙제를 처음하듯이 다시 해보도록 하겠다.
목원들의 처방 및 권면:
취준생이라고 소개를 하도록 하라. 누구나 거쳐가는 취준생인게 어때서 스스로 의식을 하고 있나? 김양재 목사님책의 면접을 꼭 보도록 하여라.
찬:
정확히 올해 2월부터 중독을 가지고 수련회, 양육교사, 보석상자, 그리고 아웃리치, 이렇게 논스탑으로 왔는데 17년 동안 하루도 끊어지지 않던 게임과 음란물 중독이 4개월 만에 끊어주셨다. 물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승리들도 있었고, 극단적인 시도도 한적이 있었다.
예수에 미친것이 아니라, '미쳤다'고 할 정도로 중독만 바라보고, 나의 힘으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어서 희망과 소망도 없이 살아 왔는데 하나님께서 끊어주셨다. 계속 하나님이 붙어갈 수 있도록 환경을 내게 허락하여 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다. 그래도 잔존하는 습관들이 엄습하여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급작스럽게 커져 매우 힘들 때가 있다. 실제로 한, 두번 무너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전과 달라진 것은, 넘어지더라도 그러한 넘어짐이 며칠간 지속이 안되고 빨리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 같아 마치 내가 이대로만 붙어가면 언젠가는 중독으로 부터 자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한 소망이 내 안에 자라나 나의 관점이 달라지게 된 것이 예전과는 가장 큰 차이 인것 같다. 그런 날이 나에게도 임하여나도 간증을 할때에 중독으로 힘들어하는 자들에게 나의 간증이 하나의 소망이 되었으면 한다.
각종 중독에갇히여하루가 멀다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때에 도대체 자유의지가 뭐냐고 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매우 신실하고, 인격적인 하나님이신 것 같다. 이전에는 중독에 속해 묶여 있는지도 몰랐었다. 지금은 자꾸 밖에 나가게 되어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까 중독으로 벗어나게 되어지게 되는 것 같다. 시작은 극단적인 시도였다. 내가 살려고 아무생각이 없이 있다가 나에게 전화가 왔다. 항상 별루였던 목장생활이 별 다를 바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오긴 했다. 근데 바닥을 치고 나서 해석이 조금 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하나님께 기도를 할 때에 붙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라고 기도를 할 것 같다.
목원들의 처방 및 권면:
매우 좋다, 렛스기릿. 받았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평소 말씀을 정리하여 생각이나 느낀 감정들을 그림이나글을 표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원범:
유다랑 요셉의 이야기에 주목을 하여 경청을 하였다.
며느리랑 동침한 유다가 매우 인간적인 잣대에서 판단이 될 수밖에 없는데, 정작 예수님은 유다의 족보에서 세상으로 오셨었다.
겉으로 눈에 보이는게 다가아닌데 나는 나의 열심을 통하여 이룰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욕심이 많은 것이 인정이 된다. 특히 조금씩 결혼에 대하여 대비해하여야한다는 생각이 들수록, 돈이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 가지지 못하여 조바심도 난다.
아까 수근이가 나눠주었던 것을 섣불리 판단할 수가 없었는데, 나도 다른 종류의 욕심 (자전거)이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 발현되는 분야만 다르지 다른 종류의 욕심들이 있다고 생각된다.
목원들의 처방 및 권면:
정말 그런 것 같다. 특히 이번주 전도서 9장 11절을 읽게 되었는데, 나름 다른이들보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이 들 때 나의 의가 올라와 더욱 욕심, 생색, 혹은 정죄가 되는 것 같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잘 안되기에 큐티말고는 답이 없는 것 같다.
기도제목:
윤제:
새벽형 인간으로 거듭나기위한 나의 렛스기릿의 삶은계속된다. 또한, 양육자로서 섬기게 되었는데동반자랑 같이 훈련받는다고 생각하고 숙제를 잘 해가길 원한다.
다음주 주일 오전에 예배를 드리고오후에 부모님과 이문세 콘섯을 다녀오기로 하였는데 안전하게 다녀오길 기도 부탁한다..!
찬:
저번주는 자정이전에 취침을 잘 못했었는데 이번 주 다시 도전을 해본다. 또한, 양육자로서도 잘 섬길 수 있도록 기도 부탁한다.
수근:
양육교사수료를 위하여 끝까지 붙어갈 수 있길. 그리고 직장에서 9월 마감을 잘 하길...!
원범:
양육자로 섬기게 되었는데, 잘 섬길 수 있도록 부탁한다.
또한 이번 한 주 건강을 잘 지키길 기도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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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 끝나고 저녁 간단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