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18 성령의 권한
사도행전 26:16-23
우리 모두 일생 크고 작은 도움을 받고 이 자리에 있어요. 여러분들은 어떤 도움이 가장 크게 느껴 지십니까? 다들 위로하고 싶어하지만 최고의 도움은 같은 일을 당해본 자의 위로 같아요. 각자 전공 과목이 있자나요. 우리는 그게 수치가 아니고, 이혼, 사기, 보이스 피싱 등등 '나도 그랬다.'면서 얘기를 하면 위로가 돼요. 저도 30대 과부가 60대 과부를 제압한 적이 있다고 그랬자나요. 그런데 제압에서 끝나면 안 되고, 그 고난 가운데서 내가 만난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어야 이것이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그래서 제가 과부라고 한 후에 에스겔로 이제 복음을 전하고 간증을 했었죠. 우리는 세상의 도움과 성령의 도움을 자꾸 착각하기 때문에 도움 그 자체에 집착을 하고, 그리고 고마워하고, 또 이제 미워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도우심에 대해서 듣겠습니다.
1. 종과 증인으로 그들에게 갈 때 도우십니다. (16-18절)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 16절이에요.
성령님이 도우시려면 이렇게 우리가 들어야 할 명령이 있습니다. 돈 주고 사탕 주는 게 도움이 아니고, 내가 가시채로 주님을 뒷발질한 죄인이라는 것이 깨달아지면 그때부터 그리도 박해하던 당사자인 주님의 명령이 들리기 시작을 해요. 괴롭히기만 하던 그 사람의 아픔이 느껴지기 시작하니까 그 사람의 말이 들리기 시작해요. 굉장히 중요한 얘기예요. 두 번이나 '나는 니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자신을 밝히신 주님은 땅에 엎드러져 있는 바울에게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가해자 보고 엎드러진 그 자리에서 다시 벌떡 일어나라고 하세요. 강조하시기 위해 너의 발로 서라고 재차 말씀하세요. 하지만 바울이 엎어진 자리는 세상 권한을 휘두르다가 주님을 만나 자기 실체가 드러난 그 자리예요. 자기가 자랑하던 권세가 주님을 대적하던 무기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 그 자리예요. 부끄러움의 자리, 절망의 자리예요. 바울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자리예요. 그러니까 바울 입장에서는 이 말이 들려도 행할 수 없는 명령을 듣는 셈이에요. '그런데 어쩌라고. 들리긴 들렸는데 내가 어떻게 그 남편하고 살아. 어떻게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야.' 그러니까 주님은 바울이 자기 발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이유를 또 알려주세요. 서라와 내가 사이에는 왜냐하면이 있어요. 원어예요. 그러니까 주님 앞에 일어설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고 하나도 없는데 바울이 왜 다시 일어나야 하냐면 17절에.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 바울을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종과 증인으로 삼기 위해 일어나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그들이 누구죠?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구원해서 다시 그들에게 보낸다는 거예요. 지겨운 그들에게서 구원했다면 이제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할 것 아니예요?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서 구원했는데 다시 그들에게 보낸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성경을 자세히 읽어야 돼요. 내가 배우자에게, 부모, 형제에게 상처받고 힘들어서 '하나님 살려주세요.'했더니 나를 만나 주셨어요. 구원해 주셨어요. 그런데 구원받고 너무 좋아요. 그래서 룰루랄라 하면서 이제는 내가 아프리카 선교를 가고 싶어요. 내가 이제 정말 이혼하고 재혼해서 예수 믿고 구원도 받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너를 괴롭혀서 너를 구원받게 해 준 그들에게 다시 가라.' 얘기를 하는 거예요. '다시 가라.' 다시 말하면 남편이 수고해서 제가 구원을 받았죠. 그러니 이제는 내가 좀 '여기까지 끝.'하고 싶어. 그래서 새로운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하신 후에 '다시 니 남편에게 가라.'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남편에게로 나가가지고 뭐라고 할까요? '내가 이 좋은 예수를 믿고 당신한테 다시 돌아왔다. 그러니까 당신 예수 믿지 않으면 나랑 못 살아. 변화되지 않으면 못하면 못 살아. 당신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알아들어?' 이래가면서 맨날 명령하고 가르치면서 예수 믿는 게 무슨 재세가 되는 것처럼 막 이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지겹죠. 아니 자기 혼자 예수 믿었으면 됐지. 그러니까 이제 주님은 그들에게 종과 증인을 삼기 위해 보내신다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종과 증인으로 가라는 거예요. 잘난 척하고 가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가되. 종은 여러 번 들으셔서 이제 익숙하실 휘페레테스예요. 아래서라는 휘페와 뱃사람이라는 레테스가 합성된 단어인데, 즉, 종은 배 밑창에서 노 젓는 노예니까 사람들에게 드러날 일이 없어요. 이 사람들은 사형 선고받은 사람들이에요. 지시받은 일을 철저히 밑에서 섬겨야 하는 사람입니다. 또, 증인은 마르티스 순교자자나요. 그러니까 날마다 옳고 그름에 대해서 증언하고 교양있게 박수 받는 그런 증인이 아니예요. 세상이 너무 듣기 싫어하지만 반드시 들어야할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세상이 던지는 비난과 조롱을 잘 당하는 사람이 증인인 거예요. 반려견 다 키우는데 반려견 얘기를 어떻게 할 수가 있겠어요. 그런데 참 심각하지 않아요? 우리나라 상황이. 그런데 반려견 얘기해가지고 막 은혜가 다 날아갔다는 나눔을 제가 읽었어요. 그런데 그건 반려견 얘기가 아니고 우리나라 지금 인구 문제 때문에 그 얘기를 한 거자나요. 그러니까 제가 맨날 듣기 싫은 얘기를 해야만 하는 정말, 이게 진짜 좁은 길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정확하게 명령을 주시는 거예요. 바울이 떠나고 싶은 그들에게 일어나 종과 증인으로 서라고 명령하시는 거예요. 미워서가 아니고 주님의 길을 같이 가기 위해서 그러는 거죠. 그러니까 명령, 사과를 해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하는, 일어나서. 또 그냥 '종과 증인으로 가라.' 이랬는데, 대충 사명 받고, 대충 사과하고 그러시면 안 되는 거예요. 큐티를 그래서 정확하게 하셔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감추어진 성부 하나님의 경륜이 성자 하나님의 자궁의 점 하나로 낮아지심으로 이 땅에서 드러나게 하셨는데, 낮아진 점이 얼마나 힘들어요. 그러니까 성령 하나님이 효과적으로 도와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감추어진 그 뜻을 우리가 이룰 수가 없어요. 이것이 삼위일체를 가장 쉽게 설명한 것이에요. 그런데 누가 예수님처럼 날마다 그렇게 점으로 낮아질 수가 있겠습니까? 정말 효과적인 성령님의 도움이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1부 시간에는 제가 잘못 소개를 했어요. 미스코리아 자매라고 얘기를 했는데, 우리가 똑같은 이름이 몇 개나 되가지고 미스코리아 자매가 아니고, C. 한뭐뭐 자매인데 C자매예요, A가 아니고. 그런데 이 자매도 굉장히 미스코리아만큼 예뻐요. 그런데 처음 우리들교회 와서 가장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우리 목사님이 남편을 가정의 머리로 세우고 질서에 순종하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제 핸드폰에 남편을 점으로 저장을 해 두었거든요. 그랬더니 여자 목장에서 남편에게 전화가 왔는데 '누구냐?'고 그래가지고 남편이라고 그랬더니 막 너무 혼내시면서 '우리집 기둥으로 바꾸라.'고, 그래서 바꾸면서 예언하시기를 '남편은 점이 아니라 이제부터 그 집 기둥이 될 거라.'고 했는데 진짜 그렇게 예언하신 대로 됐고, 지금 생각해보면 저희 친정 엄마도, 시어머니도, 또 저희 이모도 한 번도 저는 남편을 존중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남편을 존중하고 역할에 순종해야 한다는 말씀이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은데요. 어쨌든 룻기 말씀으로 그걸 깨닫고 남편에게 한 번만 부부 목장에 가달라고 했더니 지금 와서 부목자가 됐다는 그런 간증을 올려 주셨어요. 똑같은 이름의 미스코리아는 그냥 이렇게 적용하느라고 오셨는데, 이 사람이 다른 직업이 많을 텐데 우리 판교의 화장실 청소를 몇 년이나 하셨어요. 미스코리아는 할 데가 많은데. 그래서 정말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지금은 너무 잘 사셔서 우리 중, 고등부에서 섬기시는데 정말 잘 살고 보니까 지금 허벅지를 꼬집어도 말씀이 약간 안 들리더라고 그 얘기는 하시더라고요. 그러니 종과 증인의 원형이 누구시죠? 바로 예수님이자나요. 예수님이 바울을 종과 증인으로 삼겠다는 말씀은 바울을 예수님 자신처럼 세우시겠다는 뜻이에요. 삼겠다는 단어는 22장에 나온 것처럼 택하다라는 단어예요. 하나님이 손을 펴서 붙잡듯 그렇게 확실하게 콕 집어서 세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이렇게 효과적으로 도우시니까 그 특혜가 무엇일까요?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 18절.
그 특혜가 눈을 뜨게 한대요.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뿐만 아니라 죄를 용서해주시고 기업을 주신대요. 그런데 눈을 뜨게 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여러분, 눈을 딱 감았다 한 번 떠 보세요. 그런데 지금 이제 달라진 게 하나도 없죠? 제가 그대로 서 있자나요, 여기. 눈을 딱 감았다 떠보니 환경이 그대로예요. 이 말씀은 환경은 그대로인데 감겼던 눈이 떠진다는 것은 이 환경이 해석이 된다는 뜻이에요. '내가 눈이 떠졌어.' 이러자나요. 눈을 감고 있었을 때는 그저 다 지옥이었는데 내 눈을 뜨게 하시니까 뼛속까지 죄인인 나를 위해 이게 허락하신 고난이었구나. 이 모든 것이 말씀으로 해석이 되니까 미움과 증오로 사탄의 권세 아래 살다가 성령의 권한으로 이제 용서를 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더 나아가 내 가정에 종과 증인으로 다시 그들에게 나아갈 때 다시 들어간 그곳에 죄 사함과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을 주신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도 누군가를 세우고, 키우고 싶다면 낮아지는 종으로, 죽어지는 순교자, 증인으로 길러내면 여러분은 최고의 양육을 한 것이죠. 그런데 이게 가르쳐서 되겠습니까? 스승도, 부모도, 종과 증인으로 살아야 되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불쌍한 노인이 구걸하는 것을 보면 '저런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 아니야. 어려서부터 공부 안 하고 제 할 일을 안 했기 때문에 지금 저렇게 돈이 없어서 삶의 결론이야. 너도 공부 안 하고 돈 없으면 저렇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돈이 있어야 해. 알았지. 그러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 돼. 돈만 있으면 이혼해도 되고, 혼자 살아도 돼. 알았지.' 이렇게 키우니까 나르시시스트 유전이 계속된다는 거죠. 믿음 없는 사람들이 다 이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돈이 있어야 돼. 최고야.' 따라서 종과 증인으로 살도록 힘든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사실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예요. 산에 가는 사람들은 험한 길일수록 가슴이 뛴다고 하자나요. 그 성취감이 대단한 것이죠. 그러니까 힘든 가족에 눌려 엎드러져 있고 싶으신 분들 많으실텐데 오늘 성령의 도우심으로 확실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힘든 가족은 내가 벗어나야 할 올무가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콕 집어 선택하셔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일으키시며 종과 증인의 사명을 주셨다는 증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도움만 받고 '아 이제 나는 입 싹 닫고 떠난다.' 뭐 '이혼한다.' 이런 사람 되지 마시고, 그 도우심을 힘 입어서 그 힘든 가족들 같은 사람을 잘 감당하시고, 십자가 지는 적용으로 섬기시고, 복음을 전하시면서 많은 열매 맺으세요. 적용해보세요.
[적용] 내 옆의 그들인 힘든 식구들이 내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가장 확실한 증거인 것을 믿습니까? 거기서 종과 증인 잘되고 있나요, 가르치며 명령하며 갑니까?
2.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할 때 도우십니다. (19-20절)
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20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 바울은 아그립바 왕의 이름을 다시 부르며 아그립바 왕 한 사람을 다시 주목하죠. 왜냐하면 이게 간증이에요, 그러니까. 바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다메섹으로 가다가 주님을 만났자나요. 그러니까 다메섹이라는 도시가 피 바람이 부는 잔인한 살상의 도시가 될 뻔 했자나요. 그런데 바울 한 사람이 변해서 다메섹은 복음이 선포되는 은혜의 도시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한 사람이 변하면 내가 속한 가정이 피 바람이 부는 다메섹이 아니라 복음이 선포되는 가정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간증하면서 아그립바 한 사람도 나처럼 좀 이렇게 변해 보라고 간증을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변한다는 것이 뭐예요. 오늘 바울은 아그립바 왕이여 하면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않았다고 그래요. 거스르지 않았다고. 하늘이 바울에게 뭘 보여줬어요?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하늘에서 큰 빛이 있었고, 음성이 있었어요. 음성은 굉장히 짧아요. 우리가 아는 것처럼 구체적인 사명은 바울이 눈이 멀어 찾아간 아나니아가 '너 이방인 선교하기 위해서 불렀다.' 해 주셨지만 우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진 음성은 무엇인가요? '사울아, 사울아 니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니가 박해하는 예수라.' 그거예요. 그런데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거스르지, 이 거스르지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거스르지 않았다는 것은 예수께서 말하신 그 말씀을 인정했다는 거예요. 그 얘기는 내가 박해했다는 거 인정했어요. '니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그리고 내가 그 박해하는 게 예수님을 박해했다는 걸 인정했어요, 인정. 그러니까 피 비린내나는 내 가정이 복음의 도시로 변화되는 출발은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인정할 때 시작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고 은혜를 거스르는 것은 결국 자신은 그런 도움이 필요 없다고 믿는 것이죠. 그러니까 거스르지 않으려면 거스를 수 있는 힘 자체가 없어져야 하는데 이 아그립바가 거스를 수 있는 힘이 펄펄 살아있기 때문에 아무리 들어도 도우심을 구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세상의 권한, 사탄의 권세가 내 속에서 펄펄 살아 있어요. 그러니까 육이 무너져야 하는데, 그래야지 두 손 들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게 되는데 하늘에서 이제 그 모든 그것을 거스르지 않았다고 하는데 지금 이 얘기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게 틀릴 수도 있구나.'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내가 했던 일이 예수님을 박해하던 일이었구나.' 이것을 인정할 때 내가 속한 공동체가 다메섹에서 복음의 도시로 바뀌는 거예요. 피 바람이 부는 가정에서 복음의 도시로. 한 사람이 너무 중요해요.
하늘에서 보였대요. 하늘에서 보였다는 것은 주변 모두가 말한다는 거죠. 온 천지가 다 진동할 정도로 말하는 거예요. 나만 모르는 거예요. 지금 말씀에서도 틀렸다고 하고, 목장에서도 모든 지체들이 하늘의 큰 소리로, 한 목소리로 다 틀렸다고 하는데 나만 혼자 내 생각이 '옳다.'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목소리를 거스르지 않을 때, 그 소리들을 인정할 때 이 피 비린내 나는 가정이, 모든 도시가 복음의 도시로 변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 사람이 예수 믿는 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제 이런 것들을 내 삶에서 적용을 하면 모든 사람이 약을 먹으라고 하는데 내가 이상한 것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목장의 식구들이 다 알고, 하늘이 아는데 나 혼자 거스르면서 '그게 아니라니까. 내가 왜 약을 먹어야 돼. 니가 먹어야지.' 그런데 너무 아픈 사람들 오래 간호하다 조면 간호하는 사람도 먹어야 돼요. 그런데 간호하는 사람이 '니가 아픈데 왜 내가 약을 먹어야지? 난 정상인데, 내가 그 검사도 다 해봤다니까.' 검사 그거 믿으시면 안 돼요. 아니 믿어야지 돼요. 그러니까 의사도 먹으라고 그러고, 목장 식구들도 먹으라고 그러는데 그걸 이제 거스르고 있으니까 그 다메섹이 피 바다로 변하는 거를 우리가 경험하고 있어요. '아, 내가 틀릴 수도 있구나.' 자, 여러분들 한 번 목장에서도 얘기해봐요. 나는 누구 얘기 들을 때마다 '그게 아니라니까.'이게 먼저 나와요. '아, 그러게요.' 이래요. 배우자, 목장에서 한 번 물어봐요. 나는 무슨 말을 들을 때마다 '그게 아니라니까.' 이게 먼저 나옵니까? '아유 글쎄, 그러네요.' 이렇게 얘기합니까? 이게 답이 다 나오는 거예요. 맨날 '그게 아니라니까.', '그게 아니고.' 이거는 이제 하늘에서 이제 그걸 거스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이제 '그러게요.'하는 사람들이 목장에 묻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니까.'하는 사람은 이제 공동체고 뭐고 다 필요가 없는 거예요. 오직 '나는 떠나야해. 이혼밖에 답이 없어.' 그러시면 인간적으로 잠시 좋을 수 있어도 이 일 때문에 예수님 전하는 성령의 도우심은 못 받는 거예요. 여러분들 편하게 나갔어요. 그러면 예수님을 전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거예요. 하늘에서 보이셨으면 거스르지 말아야 돼요. 그러니까 목장에서 하는 모든 것들은 하늘에서 보이시는 거예요. 모두가 얘기하는 건 하늘에서 보이시는 거예요. 그것을 내가 보니까 틀린 게 없어. '너희들이 다 틀렸어.' 그러니까 죄 가운데 있으면 항상 다 틀렸다고 그래요. 그런데 그것이 생각에서 그쳐서는 안 되죠. 합당한 일을 행해야 되는 거예요. 인정만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손과 발이 따라가는 적용을 해야 되고, 인정을 했다면 그 일을 행했다는 것도 목장에서 꼭 발표를 해야. 병원 갔다 오면 그 다음 주일에 병원 간 얘기해야 되고, 약을 먹으라 그랬으면 약 먹는 얘기를 해야 돼요. 그러니까 목장이 진짜 하늘이에요, 하늘. '내가 약을 먹을 수 있다. 병원 갔다.'고 호언장담해도 실제로 그 약을 먹지 않으면 여전히 다메섹은 피 비린내가 진동하는 거죠. 하늘을 거스르지 않고 인정하고, 내가 그런 사람임이 깨달아져 회개했다면 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때 성령께서 도우시는 거죠. 약 먹는 얘기만 했는데 내연남, 내연녀 다 끊어야 되는 거예요. 도박을, 술을, 쇼핑 중독을 끊어야 하는 거예요. 끊을 수 없으면 목장에서 내 모습을 계속 인정하면서 고백하고 '내가 이걸 할 수 없다.'고 이렇게 적용하면 성령께서 도와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너무 변하지 않은 거 같은데 목장만 나가서 날마다 한 마디씩 얘기하고 적용할 때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냥 복음이 내 눈 앞에 있는 다메섹 뿐 아니라 나의 회개로 말미암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여러분들의 이 하나씩 하는 적용 있자나요. 이 모든 것이 지금 땅끝까지 전파되는 걸 지금 보고 있죠, 눈으로. 여러분들이 목장에서 사근사근 나눴던 것들이 맨날 제가 이렇게 나눠주고, 읽고 하니까 여러분 얼마나 세계적인 일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하늘이 알고 모두가 아는데 나 혼자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목장에서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큰 소리로 외치는데 적용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지금 해야 할 회개에 합당한 일은 무엇입니까?
3. 나를 죽이는 상황에서 증언할 때 도우십니다. (21-23절)
21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 바울이 이렇게 거스르지 않는 순종으로 응답한 결과는 정말 자랑할 만한 칭찬이 아니고, 유대인들이 잡아죽이고자 하는 거예요. 그것도 성전에서. 정말이지 이제 세상으로 보면 기가 막힌 결과가 나오자나요. 바울이 수 없는 죽음을 당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을 우리는 계속 지금 읽어오고 일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바울은 변명하고, 변호하고, 권한을 쓰거나 하지 이러지 않아요. 늘 일관되게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 그게 뭐죠? 즉, 예수의 고난과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신 부활을 전하는 거죠. 어떻게 전했나요? 늘 한결같이 자신을 간증함으로 예수님을 전했어요. '나도 그랬다.'하면서 내가 어떻게 예수를 핍박하고 죽였는지, 그리고 그 예수가 내 죄를 위해 어떻게 고난을 당하셨고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으로 부활하여 내 삶에 어떻게 은혜로 찾아오셨는지 늘 자신을 간증함으로 죽으심과 부활을 전했어요. 그러니까 그 예수를 전하는 첫 출발이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고백하는 것이었죠. 그러므로 나의 다메섹 도상이 꼭 있어야 되는 거예요. 다메섹 도상이 중요해요. 그런데 나의 다메섹 도상이 없으니까 전도를 못해. 내 죄를 모르니까. 자기 죄를 모르는 사람은 전도를 할 수가 없어요. 죄를 알아야 되는데 바울처럼. 성령의 도우심을 받은 바울은 그래서 오늘까지 서서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증언한다고 해요. 성령의 도우심으로 고난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고난을 통과하면서 여전히 사명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그 대상은 우리가 알다시피 높고 낮음 없이 자신의 제자들, 또 동료들, 동족, 이방인, 높은 관료인 총독, 심지어 왕까지 점점점점 지경이 넓어지게 하시자나요. 그리고 자기를 죽이려는 한 동네 유대인들에게까지. 그러니까 이 '예수가 그리스도다.' 이 간증 때문에 동네 유대인들한테 계속 무시를 당하고 죽임을 당하지만, 그 자리에서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서 늘 증언을 하는 거예요. 정말 높고 낮은 수많은 사람에게 저도 간증한 거 같아요. 즉, 나의 간증은 같은 고난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가장 큰 도움이고, 더 나아가 나를 도우시는 성령의 도움이에요. 쉽게 말하면 지난주 주일 설교에 장로님께서 내가 동성애자였다고 간증하면서 이 동성애가 예수를 못 박는 얼마나 큰 죄인지를 고백하는 것이 이 죄 가운데 있는 동성애자들을 돕는 가장 큰 도움이라는 거예요. 더 나아가서 이 고백을 하므로 장로님이 성령의 도움을 받게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 고백을 하므로 장로님이 도움을 받고, 그거를 듣는 사람이 도움을 받고. 그러니까 동성애자들에게 가장 큰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믿지 않으면 이거를 다 굉장히 싫어하는 거죠, 이런 간증을. 그러니까 이런 걸 간증을 하면 당연히 고난이 따라오게 되어 있는 거예요, 알아듣지 못하니까. 즉, 나의 간증은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거예요. 내가 간증을 한다는 게 성령의 도움이에요. 여기서 도우심은 헬라어 에파쿠리아인데 동맹자, 조력자라는 의미죠. 성경 전체에 오직 여기만 쓰인 단어인데요. 나를 잡아 죽이려고 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또 누구에게도 내가 얼마나 죄인이었는지 말씀 앞에 간증하며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과 이 부활을 간증할 때 그 간증하는 내 옆에는 항상 보혜사 성령님, 조력자, 동맹자가 내 옆에서 나를 도와준다는 거예요. 바로 이게 효과적인 성령의 도우심이라 이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떤 대상에게도 내가 예수님을 간증할 때 그 도움이 늘 나에게 있는 거예요. 그런데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도움을 청했다면 거기서 풀려났겠죠, 당장. 그리고 자기 로마 시민권을 자랑하고. 그러면 그 사람의 도움은 너무 한계가 있는 거예요. 법정에서 풀려나는 게 도움이 아닌 거예요. 온 천하 만물을 지으신 모든 만물의 왕이신 하나님이 왜 바울을 도우시겠어요? 바울과 같은 편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냥 같은 편이 아니예요. 바울을 구속사여 종과 증인 삼으신 주님이신데 바울이 당하는 것을 자신이 당한 것처럼 여기시는 아버지예요. 게다가 바울이 당한 고난은 주님 때문에 받는 고난이자나요. 마태복음 5장에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팔복의 성취입니다. 바로 이 특수 관계 때문에 바울이 사명의 자리를 지키며 죽을 듯한 고난을 당할 때 주님은 바울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세요. 그 고난을 당하고 있음으로 주님이 친히 동맹군처럼 달려오셔서 바울을 도우시는 것, 바로 이것이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우리도 내 일 때문에 누군가가 불이익을 당하면 그 사람을 평생 돕지 않겠어요? 아그립바 왕처럼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 대신 감옥에 가 주면 잠시 뒤에 왕의 자리를 거머쥘 것 때문에 감옥에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가 저절로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을 대신해서 내가 고난을 받아온 그런데 로마가 하나님 나라하고 비교가 되겠습니까? 이 하나님 나라를 본 것이 부활의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그냥 둥둥 떠다니는 거, 그거죠.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 하는데, 그러니까 내가 잠시 고난을 받음으로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천국이 내 것이구나.' 이게 믿어지니까 다들 기쁘게 순교를 하는 거예요. 고린도전서 우리가 큐티했자나요.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상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로다 했자나요. 그러니까 '그러면 내 상이 무엇이냐?' 그랬더니 그러니까 값없이 전하고 내 권리를 쓰지 않는 것이라고 했자나요. 이것이 세상에서 보면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입니까? 값없이 전하고 내 권리를 쓰지 않는 것. 그러니까 아그립바가 로마 황제를 위해서 감옥에 가 준 것은 황제가 줄 대단한 권세를 믿었기 때문인데, 그런데 여기서 생색을 냈다가는 다 된 밥에 코 빠뜨리자나요. 그 아그립바가 감옥 가가지고 '내가 말야. 이거 말야 칼리굴라 때문에 대신해주는 거야. 그런데 나한테 사식도 안 넣어주고 이게 뭐야.' 이러면 다 된 코 빠뜨린다 이거예요. 그런데 바울은 자기 힘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9장이 '나는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어요. 또, 에스겔 선지자에게도 '니가 알면서도 전하지 않으면 피 값을 네게서 찾겠다. 그래서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 내가 그렇게 대단한 하나님 나라를 맛 봤다고요. 그런데 내가 그걸 안 전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내가 얼마나 얄밉겠어요. 그런데 우리들교회 그래요 '내가 돌고 돌고 돌아서 우리들교회를 왔는데 내가 이런 큐티는 차음 봤네. 그래서 나 너무 아까워서 절대로 아무한테도 안 알려줘.' 그래서 절대서 전도도 안 하고, 큐티책도 안 준다는 거예요. '내가 몇 십 년을 통해서 겨우 알았는데.' 이거 똑같은 얘기예요, 여러분. 그러니까 이제 영적, 육적으로, 육적인 사람이 이걸 이제 다 못 알아들어요, 못알아들어. 너무 좋아서 난 누구한테 얘기를 안 하겠다는 거예요. 전도를 그래서 안 하는 거예요. 내 죄를 모르니까 다 인간적으로 듣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좋은 거, 너무 좋은데 내가 이걸 어떻게 생색을 내겠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부활을 경험한 성도들이 많은 교회는 무조건 기쁘고 즐거운 거예요. 천국, 그러니까 너무 대단한 천국이 내 거니까 자존감이 작렬이에요. 너무 부자면 여유가 있자나요. 사람이 열등감이 없자나요. 그러니까 이제 만나는 게 즐거운 거예요. 열등감이 많으면 우리 맨날 눈치봐야 돼요, 그사람. 비위 맞추고 하느라고. 그러니까 불신자들은 그들을 보면서 변화되어 가는데 우리들교회에 만난 사람들이 비교적 많기 때문에 변화가 그래도 많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따라서 내가 부르심에 순종하여 사명을 감당하다가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나는 하나님의 내새끼이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를 반드시 도우셔야만 하는, 도우실 수밖에 없는 강력한 이유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구원 때문에 열심히 섬긴 가족에게 지금 진짜 더 큰 오해와 미움을 받고 있습니까? 또, 부서를 섬기다가 뜻밖에 생긴 문제로 너무 힘이 드세요? 목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상처를 받았습니까?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를 하나씩 다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이게 다 주제가자나요. 목장에서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부부간에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부모, 형제 간에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러니까 부모 머리를 뜯는 자녀들도 있고, 폭력을 휘두르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다 있어요, 다 있어. 그런데 우리들교회 와서 다니기만 하면 성령께서 반드시 도우실 것입니다. 아니, 살만해서 사는 게 아니예요. 청년부들이 어떻게 이혼을 안 하겠습니까? 붙어있으니까, 붙어있으니까. 그래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요. 목장 예배 도중에 목자님이 또 처방을 하죠. 그랬더니 목원님께서 폭발적인 화를 내고 '니가 목자냐? 그러니까 남편이 그 모양이지.'하고 이제 소동을 피웠어요. 그런데 사실 이런 상황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가 되겠습니까? 못 다닐 교회다.' 다 이제 내려놓고 교회 떠나고 다 그러겠죠. '어머머머, 어머머머.' 이쪽, 저쪽 가 가지고. 그런데 이제 제가 이걸 지난주에 듣고, 아니 근데 그런 말을 하면서도 그 목원이 교회 와 주는 게 어디예요. 그렇지 않아요? 이런 얘길 할 수 있는 게 우리들 공동체 아니예요? 바울같은 사람도 변했는데, 바울이 얼마나 악마예요, 악마. 그런 사람이 변했지, 그런 거에 비하면 이거는 너는 천사죠, 천사. 그런데 우리가 다 연약하자나요. 기뻐하고 들거워하는 목장 식구들이 되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붙들어야 되는데 진짜 믿음이 연약할수록 와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아, 그럴 수도 있구나.' 그러니까 이거를 보고 '들어야 되는 목자님도 화이팅이고, 목원도 화이팅.'이라고 제가 이렇게 써 놨는데 어저께 세상에 이 목원이 사과를 했다는 거예요, 먼저. 그래가지고 내가 그걸 좀 보내 보라고 그랬더니 진짜 아주 제대로 사과를 했더라고요. '목자님과 부목자님께 사과드립니다. 저번 주일엔 제가 너무 감정적으로 치우쳐 마음 다치실 얘기를 했습니다. 마음 아프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목장에도 죄송한 마음이에요. 제가 마음이 생각보다 더 많이 아프다보니 도가 지나친 행동과 말을 했어요. 많이 상처받으셨을 텐데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건강하게 저의 감정을 그때 그때 표현하지 못하다보니 화가 되어 분노 조절이 안 되었습니다. 제가 인간으로도 신앙으로도 성숙하지 못함으로 마음을 상하게 해드린 점 죄송합니다. 저도 아팠지만 제 잘못을 사과드리는 게 맞는 갓 같아 말씀드립니다. 성령님께서 찾아가 주셔서 상하신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니 그러니까 조금 기다리니까 말씀이 변화시키자나요, 그렇죠? 우리가 이렇게 우상을 쌓았다가 말씀으로 콱 무너뜨리고, 그 다음 또 이틀 지나면 수요 예배 때 또 콱 무너뜨리고, 또 하루 지나서 목장 예배 때 콱 무너뜨리고. 예배에 가야 돼요. 가서 말씀을 들어야 돼요. 우리 청년부 아이도 그냥 온라인에서 이상한 거 할 삔 했는데 제 8월 20일자 설교 듣고, 청년부 아이들도 다 말씀 듣고. 정말 우리들교회 화이팅이에요. 어저께 우리 초원님도 목자 모임에서 정말 그 목자님이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는 거를 컴플레인을 했어요. 그런대 목자님에게 네가지라고 했다는 거예요, 초원님께서. 그래가지고 어저께 눈물의 사과를 하셨자나요. 그런데 전라도에서는 그런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기 때문에 그렇다고는 합니다만, 우리 모두 정말 긴장하고 깨어 있어야 되는데 그 처음 오셨던 분들, 오래되신 분들이 애베소 교회처럼 첫 사랑을 진짜 회복하셔야 될 거 같아요. 이분도 믿자마자 우리들교회 와서 너무 열심히 그렇게 광주에서 오가면서 열심히 했는데 20년을 큐티를 하다보니까 이루어진 것밖에 없다는 거예요. 다 이루어져가지고 이제 마음이 부유해져가지고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가 아니고 '부유한 자는 화가 있나니 지옥이 저희 것임이요.' 거꾸로 되자나요. 마음이 부유해져가지고 이타적인 삶보다는 '와, 큐티만 하면 모든 게 다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해가지고 기복의 큐티를 했다는 걸 자기도 모르게 알게 됐다고 어저께 회개를 하셨는데 듣다 보니까 큐티해서 잘되신 분들은 다 기복의 큐티하는 분들이 많을 거 같아요. 정말 다 깨어 있어야 될 거 같아. 그러니가 누구도 예외가 없는 거예요. 내가 좀 잘되면 세상으로 다 떠내려가고, 유교적으로 떠나려가고 그러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 다 목장에서 깨어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우리는 사과를 해야 되는 거예요. 목자는 목원에게, 또 마을지기는 목원에게, 초원은 마을지기에게, 목원에게 다 사과하는 거예요, 구원 때문에. 옳고 그름이 아니예요. 오늘 종과 증인으로 살려면 무조건 사과를 하셔야 되는 거예요. 저도 그냥 언제나 이, 그냥 저는 그 다음에 이제 또 사과를, 모두에게 저는 사과를 해야 되는 거죠. 적용해보세요.
[적용] 기복 큐티 합니까? 팔복 큐티 합니까? 목장예배가 값없이 권을 쓰지 않는 상입니까? 벌입니까? 생색납니까?
말씀 맺어요. 성령의 도우심은 그러니까 종과 증인으로 그들에게 갈 때 도우세요. 명령과 가르침으로 가는 게 아니예요. 종과 증인으로 이유를 그렇게 되면 안 돼요. '틀렸다, 맞다.' 이런 얘기하시면 안 돼요. '나는 이래서 사과 못하고, 저래서 사과 못해.' 나는 이래서 가서 따져야 되고 이런 게 아니고 종과 증인으로. 그런데 우리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목원이든 뭐든 상관없이 사과해요.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할 때 도우세요.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거스르면 안 돼요. 하늘이 알고 모두가 아는데 나만 아니라고 그래요. 나를 죽이는 상황에서도 증언할 때 도우십니다. 이게 은혜 아니면 우리가 설 수가 없어요.
목장 모임 참석
미혜, 연수, 예선, 미래, 우정
기도제목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남 탓 하나님 탓하지 말고 내 죄를 보고 갈수 있도록
죄가 넘치는 곳에 은혜가 많다고 하는데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도우시는 성령의 인도를 경험하기를
가족들 건강 지켜 주시고 목원들 가정과 직장에서 주님 언제나 동행해 주시고, 저에게도 합당한 직장을 허락해 주세요. 난이도와 육체적인 피로도 함께 고려한 알맞은 곳으로 환경을 열어 주시길 바랍니다.
새로운 약 처방 받아 치료를 받게 되는데 부작용이 없도록 효과를 볼 수 있도록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나의 구원을 위해 열일하시는 주님을 묵상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미혜
회사에서 윗 질서인 형부에게 그게 아니고요 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것이 타인의 말을 거스르고 나의 옳음을 증명하려는 나의 끊어지지 않는 불순종의 교만과 열등감임을 인정하며 이제는 맞다고, 내가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내 힘으로 할 수 없어 성령께서 도와 주시기를
아빠 다음 주에 심장질환으로 병원에 오시는데 검사 순적히 진행되고 진료 잘 받으실 수 있도록
온양 집을 처분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서 공동체에 잘 묻고 기도하며 갈 수 있기를
우리 목장 식구들 각자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기를
민희
요새 너무 체력이 많이 지치고 새로운 업무 적응에 번아웃이 올 것 같습니다. 성령님이 지혜 주셔서 말씀으로 새 힘 얻기를
관우와 결혼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날짜 스드메 신혼여행 결혼반지 등등 너무 막연한데 잘 물으며 갈 수 있기를
결혼 준비를 하며 본질적인 부분보다 비본질적인 것들로 인해 싸우거나 상처받지 않도록
관우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여러 사건이 많지만 그걸 주관하는 분은 하나님임을 항상 기억하고 말씀에 매달리며 가는 복된 삶이 되길
회사 사무실 직원들이 좋은 분위기에서 일하며 가도록 성령님 우리 사무실에도 역사해주세요.
엄마들의 건강을 보호하여 주세요.
내 모습을 잘 보며 가길
목장식구들 기도제목 보며 같이 기도하도록
예선
말씀으로 하루만 잘 살도록
종과 증인으로 허락하신 자리 잘 지키며 갈 수 있도록
붙여주신 하나님 내새끼, 공동체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날씨가 추워져서 인지, 예전 생각을 해서인지 감동이 요동치는데 다음 진료 전까지 말씀 잘 붙들고 생각의 가지치기 할 수 있도록
육체적으로 많이 지친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성 탈모도 온 것 같은데 나의 영육을 잘 돌보며 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