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모두 일생 크고 작은 도움을 받고 이자리에 있습니다? 어떤 도움이 가장 크게 느껴집니까? 다들 위로받고, 위로하고 싶어하지만 최고의 도움은 같은 일을 당한자의 위로인거 같습니다.
당해본 사람이 말하면 그냥 위로가 됩니다. 나도 그랬다 하면 위로가 됩니다. 내 고난으로 상대의 고난을 제압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압가운데 끝나면 안됩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어야 성령의 도우심 입니다. 예수를 전하기위해 나도 그랬다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도움 그 자체에 집착 하기에 고마워하고 미워하고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이란?
1.종과 증인으로 그들에게 갈 때 도우십니다.
16절
성령의 도우심에는 우리가 들어야할 명령이 있습니다. 내가 가시채로 뒷발질한 죄인임이 깨달아지면, 그토록 박해하던 주님의 명령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일어나라 합니다. 가해자인 바울에게 일어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강조를 위해 재차 말하십니다. 바울이 엎어진 자리는 자기가 자랑하던 권세가 주님을 대적하던 무기가 됨을 깨닳은 자리입니다. 부끄러운 자리 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자리입니다.
바울 입장에서는 말이 들려도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울이 자기 발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이유를 알려 주십니다. 주님 앞에 일어설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하나도 없는 바울이 왜 다시 일어나야 하는지는 17절에 있습니다.
17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구원해서 그들의 구원을 위해 다시 보내시기 위해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야 합니다. 내가 가족에게 상처 받고 힘들어서 살려달라 하니 예수 만나게 해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이제 구원받아서 이 가족을 떠나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괴롭혀서 나를 구원받게 해준 그들에게 다시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남편이 수고해서 제가 구원을 받았는데, 이제는 남편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하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이제는 일어나서 너의 남편을 위해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들 이제 내가 예수믿어서 기쁘고 즐거워서 남편에게 가서 당신이 교회 안가면 이혼 하겠다. 그거 다 헛것이다 하며 명령하고 그러면 이게 그들에게 보내는 것인가? 아니다. 이것은 착각이다. 이런건 마지막 순간에나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어떻게 보내시는가? 종과 증인으로 보낸다고 하신다.
우리는 성경을 자세히 읽어야 하는데, 너무 구체적이지 않다. 그래서 사과도 대충 한다. 하지만 팩트로 사과해야 한다. 종은 여러번 들으셔서 익숙하실 휘페라테스다. 즉 종은 배 밑창에서 노젓는 노예인데, 이는 사형선고 받은 사람들이고, 배 밑창에서 들어날일 없는, 지시 받은 일을 철저히 밑에서 섬겨야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증인은 세상이 듣기 싫어하지만 반드시 들어야할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세상의 비난과 조롱을 잘 당하는 사람이다.
주님은 바울에게 정확하게 명령하신다. 떠나고 싶은 그들에게 종과 증인으로 서라고 하신다. 미워서가 아니다. 주님이 바울과 같이가기 위해서이다.
오늘 제목은 성령의도우심이다. 예수님이 점처럼 낮아지신것처럼 나도 점처럼 낮아져야 한다.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 누가 날마다 예수님 처럼 낮아질 수 있겠는가?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교회는 유명한 미스코리아 자매가 있다. 남편이 너무 속을 썩여서, 화장실 청소를 했었다. 이 자매가 목장에서 나눔을 했는데, 남편을 질서로 인정하는것이었다. 이게 너무 안되서, 휴대폰에 남편의 이름을 점으로 저장했는데, 이를 본 목자님이 혼내시면서 남편을 우리집 기둥으로 저장하라고 했다 하셨다.
생각해보니 저의 친정 엄마도, 시어머니도, 이모도 한번도 남편을 존중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남편을 존중하고 역할에 순종해야 한다는 말씀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한다.
룻기 설교를 듣고 남편방에 들어가 발치 이불을 들고 미안하다고 그리고 부부목장에 한번만 나가자고 했더니 순순히 간다고 했다 한다. 말씀이 들렸다는게 택자인거 같다.
화장실 청소를 그렇게 여러해 했지만 남편 섬기는 것은 몰랐다는 것이다. 가정을 지키려면 남편을 머리에 두어야 한다. 이게 성경의 원리이다.
종과 증인으로 삼겠다 하신다. 삼겠다는 택한다는 뜻인데, 주님이 너를 콕집으셨으니 이제 죽어지고 낮아지라 하시는 것이다. 성령이 효과적으로 도우시는 것이 무엇인가 보니
18절
종과 증인에게 주시는 특혜는 무엇인가? 눈을 뜨게 해서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할 뿐 아니라, 죄를 용서하시고 기업을 주신다 하신다.
눈을 뜨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말씀은 환경은 그대로인데, 감겼던 눈이 떠진다는 것은 해석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둠에서는 소경이 잘 걸어 갑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날마다 넘어집니다. 이게 정상인 것입니다. 이게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 이게 예수님을 만나게 하려고 허락된 고난이구나가 해석이 되고, 가족들에게 종과 증인으로 나아갈때, 하나님이 영원한 기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세우고, 키우고 싶을때, 낮아지는 종으로 증인으로 양육하면 최고의 양육입니다. 그런데 이게 내힘으로 되는게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종과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종과 증인으로 살도록 힘든 가족과 함께 사는건 저주가 아니라, 주님을 만나게 하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거 입니다.
산에 가는 사람들은 험한 길일 수록 가슴이 뛴다고 합니다. 성취감 때문입니다. 힘든 가족때문에 슬픈 분들 많을 텐데 이는 올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콕 집으셔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일으키시고, 종과 증인의 사명을 주셨다는 증거이다.
도우심을 입어 힘든 그들을 잘 감당하고, 십자가지는 적용으로 섬기고 복음을 전하시길 바랍니다.
-내옆의 그들인 힘든 식구들이 내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가장 확실한 증거임을 믿습니까?
-거기서 종과 증인이 잘 되고 있나요? 가르치며 명령하며 갑니까?
평생 남편이 괴롭히고, 돈도 안 법니다. 너무 힘들게 살았습니다. 이혼을 해도 몇번을 했을 텐데, 아들을 3을 낳았습니다. 괴롭힘을 보고 자란 아들들이 너무 효자가 된 것 입니다. 그 남편이 없으면 이 자녀들이 있었겠 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남편이 또 최고인 인 것입니다. 남편 아내 밉다 생각하지 말고, 거기서 나온 자녀들을 생각하세요, 뿌리를 무시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2.회개에 합당한 일을 할때 도우십니다.
19~20절
바울은 다시 아그립바 왕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 한사람에게 전합니다.
바울은 다메섹에 가다가 주님을 만납니다. 그랬기에 다메섹은 피바람이 불 도시에서 복음이 계속 전해지는 첫번째 도시가 됩니다.
한사람이 주님을 만나면 내 가정이 피바람이 불 곳에서, 복음이 전해지는 곳으로 바뀝니다.
즉 내가 이렇게 변했으니, 아그립바 당신도 이렇게 변하셔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보이신 것은 나는 니가 박해하는 예수라 인데, 거스르지 않았다고 하니, 이를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도우심은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고 은혜를 거스르는 것은 결국 자신이 도움이 필요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그립바는 자기 힘이 살아 있기에 성령의 도우심을 받기 힘듭니다. 세상권세가 내 안에서 무너져야 하는데, 육이 무너져야 하는데, 그래야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텐데 아그립바가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듣던지 않던지 전해 놔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건에서는 아? 그예수 하며 생각 할수도 있는 것입니다.
나의 행동이 예수를 박해하던 행동이구나 인정할 때, 내 공동체가 피바람에서 복음이 전해지는 공동체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서도 틀렸다고 하고, 목장에서 모든 지체들이 한 목소리로 틀렸다고 하는데, 나만 혼자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 목소리를 거스르지 말아야 하는데, 인정을 안하니 피 비릿내가 예정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 습관이 그게 아니고가 아니라, 아 맞아로 바뀌어야 합니다.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를 거스르는 사람은 그게 아니고가 나오는데, 인정하는 사람은 맞아요가 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약 먹으라고 하는데, 내가 이상한 것을 사람들이 다 아는데, 나혼자 거스르면서 내가 왜 약을 먹어? 나 정상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다메섹은 피바다로 변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종합적으로 얘기하면 들어야 하는 것이 성령께서 도우시는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도움을 얻는 비결입니다.
가난한 자는 목장에 잘 묻습니다. 그러나 부요해지면 공동체고 모고 필요없어 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인간적으로는 잠시 좋을 수 있지만, 이일로 일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은 못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소리를 듣고 거스르지 않았다면 회개의 합당한 일을 해야 합니다. 손과발이 따라가는 적용이 필요 합니다.
듣고 인정했지만 적용이 없으면 다메섹은 여전히 피비릿내가 나는 것입니다.
온유한거 같아도 그게 아니라고 날마다 그러면 거스르는 사람입니다. 내가 깨달아서 회개했다면 합당한 열매를 맺을 때, 주님께서 도우시는 것입니다.
-하늘이 알고 모두가 아는데, 나 혼자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목장에서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큰 소리로 외치는데, 적용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지금 해야 할 회개에 합당한 일은 무엇입니까?
말씀이 들리는 사람은 이게 다 내얘기 입니다. 그러면 말씀이 피가 되고 살이 됩니다. 하지만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내 힘으로 열심히 섬기기만 합니다. 하지만 적용이 없는 것입니다.
3.나를 죽이는 상황에서 증언할 때 도우십니다.
21~23절
바울이 거스르지 않는 순종으로 응답한 결과는 모두가 칭찬해 주는게 아니라, 결론이 유대인들이 잡아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성전에서 죽이려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수없이 죽음의 상황을 맞이 합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일관되게, 선지자 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 말한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전합니다. 예수를 전합니다. 한결같이 나도 그랬다고 하며 늘 간증함으로 죽으심과 부활을 전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전하는 첫 출발은 내가 얼마나 죄인이었는가? 이게 시작인 것입니다. 그래서 굉장히 바울에게는 다메섹 도상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은 바울은 도우심으로 고난에서 벗어나는게 아니라, 고난을 통과하면서 여전히 서서 사명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인데, 그 전하는 대상은 높고 낮음 없이 동료에서 왕까지 계속 지경이 넓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다 라는 간증 때문에 같은 동족에게 계속 죽임을 당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의 간증은 같은 고난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가장 큰 도움이고, 더 나아가 나의 간증을 통해 내가 성령의 도움을 입는 것입니다. 즉 나의 간증은 성령의 도우심 입니다.
나를 잡아 죽이려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얼마나 죄인이었는지를 말하고 내가 만난 예수님을 증언할 때, 조력자 성령님이 내 옆에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아그립바왕의 도움을 구했다면 풀려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데, 사장의 도움을 구해서 회사에서만 잘 나가고, 예배도 못드리고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당한 고난은 주님 때문에 받는 고난입니다. 마태복음 5장 11~12절에 팔복의 성취를 말해줍니다. 바울은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고난을 받을 때, 주님은 바울을 고아처럼 두지 않습니다. 동맹국 처럼 오셔서 도우시는 것입니다.
창조자 하나님을 대신해 우리가 고난을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맛 보았기에, 천국이 우리 것이기에 잠시 받는 고난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순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천국을 모르기에, 죽인다 살린다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결론은 인내 입니다. 고난에서 조금 인내하면 천국이 내 것인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에게는 전하지 않으면 피값이 네게 있다고 하십니다. 즉 너무 좋은 것인데,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큐티가 너무 좋은데, 내가 너무 힘들게 얻었으니 전하지 않겠다고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부활을 경험한 성도들이 많을 수록 교회가 살아납니다. 내가 복음을, 부활을 전하다 고난을 당하면 나는 하나님의 내 새끼 이기 때문에 성령님이 도우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식당에서 목장 중에 목원이 화를 참지 못하고, 니가 목자냐? 그러니 남편이 그모양이지 했다고 합니다. 이럴 때 어떻게 참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목장에 나와주니 어디겠습니까? 우리가 다 연약합니다.
직분이 낮을수록 와주는게 어디냐 하는것이고, 마을지기는 목자 해주는게 어디냐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지난 주일에 설교를 못했는데, 어제 이런 목장의 얘기가 온 것입니다. 이 목장에서 목원이 먼저 사과를 한 것입니다. 이러니 우리들 교회 화이팅 입니다.
-기복큐티 합니까? 팔복 큐티 합니까?
-목장예배가 값없이 권을 쓰지 않는 상입니까? 벌입니까? 생색납니까?
성령의 도우심으로 여러분이 어디서나 부활의 빛을 환하게 비추는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 합니다.
기도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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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진로, 말씀의 인도, 어머니의 건강 회복, 동생이 우리들 교회에 잘 정착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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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양육 잘 수료하길, 불신교제가 끊어지고 신교제 신결혼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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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진로의 인도 하심
i 양교에서 하나님을 만나길, 친목이 아닌 은혜 받는 시간 되길, 신교제 신결혼 소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