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권한
사도행전 26:8-18
김양재 목사님
권한을 잘 행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권한이 클 수록 그 경계를 지키기가 힘든 것 같다. 남의 일일때는 분별이 잘 되지만 자기일이 되면 눈이 가려진다. 명절의 하이라이트는 집안싸움이다.
본문에 권한이 2번이 나온다. 권세와 권한 모두 원어로는 엑소시아 이다.
1.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믿어야한다.
사두개인들과 달리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을 개념으로만 믿었다. 하나님을 개념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이 계심을 믿어야한다. 실제 중의 실제로 최고 중의 최고로 믿어야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부활을 아무리 머릿속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실제로 믿지 않으면 안 믿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나서도 용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부활을 그렇게 여겼다. 여기다의 원어 크리노는 판단하고 정죄하고 헐뜯는다는 뜻이 있다. 즉 나사렛 청년의 부활을 내 속에서 못 믿을 것이라 생각하며 비난하고 헐뜯었다. 왜 못 믿을까? 내 환경과 별반 다를바 없는 초라한 예수가 구세주라니 믿기 싫은 것이다. 그들은 세상의 모습을 봐서 그렇다. 주님이 부활하신 후의 천국의 모습을 생각해야한다. 기복에서 팔복의 가치관으로 바뀌어져야한다. 그래야 이 땅에서도 맛보는 무중력의 모습, 천국에서 누릴 우리의 모습을 잠시나마 맛보게 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약간의 부활의 모습을 맛보게 한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남은 완전한 부활을 기대하며 나아가야 한다. 목사님도 남편 고난에서도 내 힘이 아닌 팔복의 가치관으로 둥둥떠다니며 내가 죽은자임이 깨달아졌기에 버틸 수 있었다. 용서가 안되는 것은 부활을 실제로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죽으면 십자가가 아무리 무거워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 같은 죄인도 살리신 하나님이라는 것이 깨달아져야 성령의 권한이 주어진다. 어느날 홀연히 임한다. 어떤 설명에도 부활은 하나님의 권능에 속한 것이다. 이미 내 속의 부활을 믿는데, 아직 남은 부활의 모습을 완전히 누릴 권한은 주시지 않는다. 그렇기에 내 상황속에서 불평불만 하지 말고 더 이상 부활은 없다고 여기지 말고 사명을 감당해야한다.
적용
부활이 개념으로 믿어집니까? 실제로 믿어집니까?
저 사람은 저 가정은 절대 변하지 않아 하며 못 믿을 것으로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죄로 인해 내가 죽은 자임이 인정이 되십니까?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이다.
2. 나도 그랬다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나도 그랬다에 더하여 나는 더했다는 고백이 나온다. 우리는 바울의 간증을 3번 들었는데 모든 간증이 쓴 사람과 청중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바울 한 명의 수치와 솔직한 간증이 이렇게 자세히 써있는 것이 성령의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다. 자기 죄에 대한 솔직한 고백은 고백하는 자의 영혼을 소생케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였다는 바울의 고백은 모두가 예수 믿기 전에는 예수의 대적자로 살았다는 것을 알게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을 이해하는 비결이다. 모두 믿기 전에는 다 똑같다. 내가, 나도 똑같다. 바울도 하나님을 믿기 전에 어땠는지 간증했다. 바울은 압도적인 예수님의 대적자였다. 엑소우시아 자기존재를 발산한다고 하는 것, 공적으로 주어지는 자격이 권한이다. 수직적 관계이기에 상관을 위해 더 엄하게 권한을 행사했다. 이 땅의 권한이 그 상사 인간으로부터 나오기에 권한 앞에 약해지고 악해진다. 이것이 세상 권한의 공통이다. 가족을 사랑해서 했던 일이 가족을 죽이는 일이 되기도 한다. 이 일이 죽이는 일인지 살리는 일인지 목장에 물어보길 바란다. 스스로 생각해서 한 그 일이 하나님을 죽이는 일이 될 수 있다. 옳고 그름으로 위에서 결정한 일을 맹목적으로 따르면 안되는 것이다. 바울은 선함으로 하는데 실상은 박해하고 핍박하는 것, 세상의 권한으로 박해하는 것, 존재감을 발산하는 것, 스스로의 내 방식대로의 생각으로 하는 것이다. 결국 다 죽이는 것이다. 내 자아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이다. 제발 스스로 생각해서는 아무것도 못하니 공동체에 물어봐야한다. 한사람도 선한 사람이 없기에 내 방식대로 하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박해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자기애와 자기열심이 하나님을 박해하는 것이다. 내 열심 내 생각이 구원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일을 할 수록 많이 죽이고 많이 핍박한다.
큰 권세가 있을수록, 환경이 좋을수록, 내가 돈을 벌수록 내가 잘못됐다는 것,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나를 아는 것이 해결책이다. 에코이스트는 이기주의와 반대되는 성향으로 자기에 대해 너무나 엄격하다. 이들은 나르시시스트를 자석처럼 끌어당겨 힘겹게 산다. 그러나 에코이스트나 나르시시스트나 부활이 안 믿어지기는 똑같다. 하나님이 안믿어지기는 에코이스트가 더하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서 대적을 한번에 쫓아내지 않으시고 매일 조금씩 쫓아내신다. 무엇이 점진적인 것인가? 매일 큐티하며 공동체에서 나누며 가는 것이다. 한번에 드라마틱한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적용
내 권한이라 여기며 자랑스럽게 여기는 영육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나도 그랬다며 이번 명절에 내 간증을 준비하고 있나요?
나는 자기애성의 나르시시스트 입니까? 남만 생각하는 에코이스트 입니까?
3. 나의 피흘림이 예수를 박해하는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다시 사도 바울은 아그립바 왕 한 명에게 집중하여 말한다. 앞의 간증과 달라진 것은 9장에서는 아나니아의 이야기를 길게 했는데 여기서는 나사렛을 빼고 자신이 핍박한 이야기를 하며 상대에 맞게 디테일하게 전했다. 시력이 상할정도로 강한 사막의 정오보다 더 빛나는 빛으로 찾아오셨다. 쉽게는 망하는 사건으로 찾아오신 것이다. (눈이 안보여지는 사건) 여기서 히브리어로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바울의 모국어로 말씀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의 관심사는 핍박의 대상 말고 오직 바울 한 사람 이라는 것이다.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난이다. 이 말은 가시채를 차서 심하게 상처입은 소에서 비롯 된 말로 상처입은 소가 바로 너, 스스로 찔러 피흘리는 것이 바로 너다. 가시채가 아프니 점점 더 도망가려고 하는 소, 그 소가 바로 너 바울 같다. 즉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관심사는 오직 너 한사람, 바울 너 한사람 이라는 것이다. 가시채를 뒷발질하며 스스로 피흘리는 인생, 열심히 산다하지만 스스로 찌르며 사는 그 인생이 결국 하나님을 박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의 그 아픔이 나의 아픔이다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바울은 자신의 이 이야기를 아그립바 왕에게 하며 왕이여 아무도 몰라도 화려한 옷으로 감추고 있지만 그 속에 큰 상처가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할 수 없으니 자신의 간증을 통해 전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스스로 아파하면서도 계속 자해하고 피 흘릴 때 예수님도 같이 피 흘리고 아파하고 계신다. 이 사랑을 깨달을 때 예수님이 이런 사랑으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바울이 전도 여행을 마치고 2년을 감옥에 있으면서 이 마지막 간증으로 가시채 이야기가 나오며 바울이 좀 더 하나님을 직면하게 되지 않았을까 한다. 주님이 나 때문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들의 핍박 속에서 나도 그랬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내가 힘들다는 것은 자기 죄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 속에 커다란 가시채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안타깝다. 무중력 속에서 팔복의 가치관으로 바뀐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하지 못하니 사막의 정오의 빛보다 더 강한 빛으로 와서 눈이 멀게 하는 사건을 주셨다. 교회와 목회자를 위해 복음을 순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이다. 가시채를 뒷발질 하는 것이 너에게 고생이다.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면 다른 권한을 찾아 기웃거리는 일을 멈추고 내 죄를 보아야 한다. 그래야 주님이 주시는 성령의 권한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도 똑같았다. 나도 다를바 하나 없는 똑같은 죄인이었다.
적용
주님은 내게 가장 밝은 빛이십니까? 더 밝게 여기는 빛이 있지는 않습니까? 내 삶에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아픔, 나를 계속 찌르는 가시채는 무엇입니까?
내가 스스로 정죄하며 비난하고 자해하는 것이 예수를 박해하는 것임을 아십니까? 그 가시채로 인해 내 삶을 돌이켜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나의 자리를 잘 지키는 것이 성령의 위엄이고 이렇게 날마다 여전한 방식으로 잘 깨닫고 가는 것이 성령의 권한이 주어진 삶이다. 말씀이 잘 들리는 것이 권한이다. 환경이 아니라 내 자신의 가시채 뒷발질 때문에 힘든 것이다. 부활은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믿어져야하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의 고백이 있어야한다.
기도제목
박가영
1. 죽은체 아닌 죽어짐으로 극한상황일 때 올라오는 속사람의 가치관과 잘 싸우며 힘든 직장상황에서 변수주실 것 믿고 더욱 주님 간절히 찾도록
2. 가시채 뒷발질 피흘림 인생에서 하나님에 대한 오해 풀며 그 사랑에 매이고 힘 얻는 목장되기를
3. 추석연휴 진해에서 가족과의 시간 나도 그랬다의 고백으로 주시는 사랑과 지혜로 보낼수 있도록
4. 목장 마을 지인들 환절기 건강 체력 관리 및 코로나로부터 지켜주시기를
5. 가족구원과 예비하신 만남의 축복 위해
6. 태풍 이상기후 전쟁 쿠데타속 피해회복을 위해, 인간적 악법 막아주시고 이나라 불쌍히 여겨주시길
정세린
1. 아웃리치 엠티끝나고 벙개를 물어봤더니 채팅방이 싸해졌는데 항상 인간관계에서 이렇게 신경을 많이 쓰고 나의 뇌와 생각을 이 에너지로 계속 쓰는 습관이 오래동안 있었는데
오늘 말씀처럼 너는 그리스도의 충성된 일꾼이다를 믿는 이번 한 주일 그리고 내 안에 장착되기를
2. 돈 관련 다루시는 것에 다 내놓고 나누고 갈수있는 용기와 너무 오래동안 가족들로부터 이어진 너의 일은 너의 일 나의 일은 나의 일이라는 개인주의를 내려놓을 수 있도록
3. 가시채에 힘들어하는 지체를 위해 더 기도하고 말은 삼가도록
4. 엄마와의 관계에서 성령님의 도우심받도록
5. 반려 다람쥐와 경계 지키기
6. 뉴스보며 사회에 대해 순진하게 대응하는게 아니라 더 날카롭고 객관적인 사고력을 키우도록
오지은
1.나를 사랑하지 못해서 가시채 뒷발질로 피흘리고 있을 때 나보다 더 아파하실 예수님 생각하며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길,
세상의 권한을 착각하지 않고 손들고 기도하며 성령의 권한으로 맡겨주신 일에 책임감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지혜 구하며 매일 아침 큐티 말씀 가만가만 새기며 갈 수 있도록
2.이번 수요일에 엄마 대장내시경 하시는데 검사 잘 받으실 수 있도록, 부모님의 건강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길
3.신교제 신결혼을 위한 만남의 축복을 허락해 주시고, 먼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과 말씀으로 교제하며 마음이 건강해지는 은혜를 간구합니다.
누구인지 모르는 형제이지만 그 형제의 오늘에 주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길
4.태풍으로 인한 큰 피해가 덜하도록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세상의 악법이 잘못된 인권해석으로 재정되지 않도록
이미선
1. 매일 말씀으로 오해했던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아가고 내 죄를 깨닫고 손 들고 기도할 수 있도록
2. 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막막하고 막연하고 자꾸 방법을 찾는데 하나님을 신뢰하고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서 하나님 찾을 수 있도록
3. 아빠와 엄마, 남자친구에게 바울처럼 나사렛을 빼고 말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옳고 그름이 아니라 햇빛으로 말하는 지혜를 주시길
4. 차별금지법 등의 모든 악법이 다른 어떤 이름으로 통과되지않고, 태아생명보호법이 제정되도록
이다솜
1. 목장식구들과 가족의 건강 위해 기도합니다
2. 스트레스받는 상황을 극복할때 얻는 쾌감을 즐기지 않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시간과의 싸움도 즐기는것같은 성향 , 최대한 게으름부리다가 일을 휘몰아쳐서 마감하면서 얻는 희열 등....
3. 부모님 추석선물 챙기느라 지출이 많이 생겼고 어머니 수술로 또 생길텐데 다시 채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넘치도록..)
4. 코인중독을 끊어낸 이후로 때때로 느끼는 소소한 기쁨과 일을 많이하면 가끔 너무 행복한 순간이 있는데 이 행복이 계속 이어질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고난은 싫음...
5. 경주에서 천안으로 이사를 했는데 정리하고 싶었던 인연들이 잘 마무리되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요근래 듣기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가 가스라이팅인데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지않고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김의경
1.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2. 체력과 맑은 정신 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