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9월 4일
본문: 사도행전 26:8~18
제목: 성령의 권한
1.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믿어야합니다.
듣기만 해도 무시되는 나사렛 청년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은 못 믿을 것이었다. 부활을 가능한 개념으로만 믿는 것은 사실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는 것과 같다.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실재(있을 재, 在) 온 우주를 다스리는 다스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믿는 것이다. 개념은 나를 낳고 기르신 내 부모가 아니다. 부활을 아무리 머릿 속으로 생각하고 교회를 다녀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으면 실제로 안 믿는 것이다. 설령 내 앞에 그리스도가 나타나도 설령 믿을 것이 못 된다고 하는 것이다. 못 믿는 다는 것은 비난하고 헐뜯다는 뜻이다. 안 믿어지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비난하고 헐뜯는 것이다. 수많은 목장에서 부활의 증언을 목격했다. 그런데 왜 못 믿나? 부활을 그렇게 바랐는데, 내 환경과 별로 다를 바 없어서, 믿기가 싫다. 부활을 못 믿을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예수님은 해처럼 밝고 모든 세력을 다스리는 모습으로 오신다. 중력에서 무중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기복에서 팔복으로 나아가면 맛보게 하는 것이 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완전히 누릴 그 모습을 이 땅에서 잠시 누리게 해주신다. 남편이 가기 전에 고난을 줘도 믿을 수 있는 것은 성령의 힘이다. 죽은 자 임이 깨달아져야한다. 죽은 채 하는 것이 아니다. 죽은 채하면 깔려 죽는다. 찬송하고 다 해도 실재로 못 믿으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적용] 부활이 개념으로 믿어집니까? 실제로 믿어집니까? 저 사람은, 저 가정은 절대 변하지 않아 하며 못 믿을 것으로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죄로 인해 내가 죽은 자임이 인정되십니까?
2. 나도 그랬다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한 점, 한 회 토시가 중요하다. 왜 맨날 똑같은 얘기만 하냐, 내 수치와 죄 연약함 고백하는 것이 성령의 힘이 주어지는 비결이다. 고백하는 그 사람의 영혼을 소생케하는 힘이 있다. 9절에 그렇게 시작한다. 나도 너와 똑같이 예수를 대적한 사람이었다 라고 말한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말한다. 그런 사람 앞에 나도 당신들하고 똑같다 라고 한다. 이런 의식이 유대인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바울은 그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다 예수의 대적자이다. 저 사람도 지금 이렇게 부활을 못 믿어서 그런 것이다. 사람을 이해하는 비결이다. 여러분은 믿어도 날마다 평가한다. 네가 바람을 폈는데 못 핀다는 확신이 어딨어?라며 과거에 머문다. 나도 똑같은데, 나도 하나님 열심히 믿는다고 밤낮 열심히 한 게 뭔지 알아? 성도들 감옥에 가두고 다메섹에게까지 쫓아가서 박해했다. 어떤 바리새인보다 압도적인 예수님의 대적자였다. 압도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오늘의 권한다. 헬라어로 엑소시아 이다. 자신의 권한을 발산한다는 것이다. 대제사장에이 바울에게 준 권한은 체포할 권한이었다.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온 나라의 방침이 다 바뀌어진다. 우리 교회는 1달만에 사무실 나가라고 했다. 그 1사람이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입법 사법 행정부가 있는데, 이걸 모두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이 모든 걸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걸 우리가 보고 있다. 180석을 장악했으니, 누구도 거기서 뭘 할 수가 없다. 바울은 대제사장이자 종이다. 바울은 대제사장의 종인 걸 안다. 이 땅의 권한이 더 가혹하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자리가 종에서 끝날 것 같기 때문이다. 자기 존재 우시아를 발산하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권한의 모습이다. 내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일이 예수를 죽이는 일일 수 있다. 나는 이 일을 정말 하나님을 위해 했다고 하지만, 겉으로 나타나는 일도 악이라면 아니함만 못하다. 육체로 난 자는 자기의 권한으로 다 박해을 한다. 권한을 갖고 자기 존재감으로 박해한다. 내 생각대로 한다면 사랑하는 사람 다 죽이고 격분케하는 것이다. 결국 나 자아가 결국 하나님을 가장 대적하는 것이다. 자기애와 자기열심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꼭 많은 일을 행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제발 여러분한테는 박사 할아버지라도 스스로 생각해도 연필하나 못 세워라고 생각해야한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다. 크레이그 말킨 작가의 에코이스트라는 책이 있다. 에코이스트는 주목 받는 것 싫어하고, 문제가 생기면 내 탓 하고, 갈등 피하고, 다른 사람 말 너무 잘 들어주고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에코이스트는 나르시시트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원인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에코이스트들은 나르시시트들에게 끌려 다니다가 가스라이팅 당하다 자살도 한다고 한다. 이 둘은 가해자 피해자가 없다. 말씀 없이는 다 똑같은 죄인이다.
[적용]내 권한이라 여기며 자랑스럽게 여기는 영육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나도 그랬다'며 이번 명절에 내 간증을 준비하고 있나요? 나는 자기애성의 나르시시스트입니까? 남만 생각하는 에코이스트입니까?
3. 나의 피 흘림이 예수를 박해하는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구원은 정말 디테일이다. 사막의 정오보다 훨씬 더 밝은 빛이 떠서 엎드려지는 이 본문이다. 성령의 회심과 성령의 말함에서 나온 본문이다. 때는 정오이다. 시력이 상할 정도의 빛이 나온다. 눈을 뜰 수 없는 빛에 너무 놀라 모두 엎드러지는 사건으로 찾아오셨다. 부활이 너무 안 믿어지니까,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에는 뇌성과 번개와 나팔로 찾아오신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은 망한 사건이다. 두려운 것이다. 여기서 처음 나온 표현을 중요하게 생각할 때, 히브리말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다. 사울은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바울의 모국어이다. 모국어로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바울이 핍박하는 그리스도인 이전에 오직 바울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가시채를 사서 가시채를 차서 심하게 상처입은 소를 비유한 것이다. 소가 말을 안 들으면 가시로 찌르는 것이다. 그런데 소가 반항하며 뒷발질하면 아픈 것이다. 오직 예수님의 관심사는 오직 바울 한 사람이다. 전도를 하든 말든 네가 남을 박해하는 것 같지만, 너 자신이 피 흘리는 것이다. 그런데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라는 것이다. 자기 죄를 모르니까, 힘들다라는 말이 나온다. 유대인들의 삶 속에 커다란 가시가 있는 것을 그들을 모른다. 정오의 빛보다 더 밝은 빛으로 오신다. 누구를 위해서 믿으라고 하는 것인가? 교회, 예수님, 목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성도
[적용] 주님은 내게 가장 밝은 빛입니까? 더 밝게 여기는 빛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스스로 정죄하며 비난하고 자해하는 것이 예수를 박해하는 것임을 아십니까? 그 가시채로 내 삶을 돌이켜야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1. 주께 지혜와 인내의 마음을 간구하도록
2. 가족들과 지체들의 영육간의 강건함
1. 어머니의 진료 후 수술 및 향후 상황을 위한 기도
1. 겉으로 표현되는 에코이스트의 성향 조차도 결국 그 핵심엔 내가 안정되고 편안하기 위한 나르시시스트적인 본질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직장에서 50대 직원들의 눈치를 너무 보지 않고, 거절할 것은 거절 지혜롭게 잘하기
2. 부활이 믿어지지 않아 아직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예수님 부활의 마음을 되새기기
3. 신교제 신결혼 준비
4. 코로나 후유증 회복 및 영육간 강건
5. 큐티가 잘 안되는데 말씀으로 하루 시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