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단이 목장 보고서
■예배일자:2022년 8월 21일
■예배장소:파리크라상
■참석인원:오OO, 박OO(총 2/7명)
■목장풍경
오늘은 목자언니와 단둘이었지만ㅠ 서로의 죄가 너무 공감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눴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책임지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읽기
본문:사도행전 25:23-27
제목:성령의 위엄
설교: 김양재목사님
■설교요약및 적용질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법률실력으로 약자를 살리니 이상한 부분이 감춰지고 위엄이 따릅니다.
☞ 우리도 성경구절 하나로 사람을 살려내면 성령의 위엄이 따를 것입니다.
구원때문에 인내하면 위엄을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이 있습니다:)
성령의 위엄이란?
첫 번째, 과시가 아니라 자신의 수치를 드러낼 때 주어집니다.(23절)
베스도가 지금 엄청난 쇼를 계획했습니다.
로마황제에게 상소하기 위해서 아그립바왕과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접견장소로 나옵니다.
위엄이 있는 것(X) amprarr 위엄이 있어 보이게 갖췄다(O) = 자신들을 과시하기 위해 호화찬란한 모습으로 접견 장소에 들어왔습니다.
⊙ 위엄: 판타지아=공상, 상상, 환상
신약-단 1회 사용 / 구약- 4회 중 2회는 상상의 뜻으로 사용.ex. 구름 or 바다의 움직임을 의인화
2회는 우상(인간이 상상으로 만든 허구)의 뜻으로 사용.for 우상의 헛됨 강조
아그립바와 버니게의 잔뜩 부풀린 큰 위엄이야말로 세상 사람 누구라도 가지고 싶은 판타지입니다. 그러나 실상이 아닌 허구입니다.
그런데 이 심문쇼를 이렇게 화려하게 한 것은 그만큼 바울에게 열등감이 있어서 화려하게 꾸민거라 생각됩니다.
심문쇼의 감독 베스도가 아그립바의 상대역으로 정한 피고 바울이 입장합니다. (원어: 끌려나왔다-수동태)
⊙ 베스도 &아그립바&버니게 등: 능동태
⊙ 바울: 수동태 (높은 사람들에게 바울이 구경거리가 되어 심문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위엄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초라한 바울입니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노인이고, 키도 작고, 대머리에 다리도 휘고 코도 매부리코.. 외모로도 아주 밀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용하지만 그리스도를 닮은 기풍과 자신감으로 법정을 압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볼까가 중요하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MRI를 찍는데 겉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가면 얼마나웃긴가요? 진짜 중요한 것은 내부인데..
그 접견 장소에서 바울만 유일하게 세상의 위엄이 허상임을 알고 성령의 위엄 앞에 무릎을 꿇고 순종하여 사명을 감당하고 있기에 위엄이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고자 수많은 옷과 장식품을 갖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드러낸 것이 아니라옷 속에 자신들을 숨긴 것입니다.
겉을 드러내고 과시할수록 자신을 숨기고 싶은 것이 많은 것입니다.
실체를 숨기고 있기에 그들에게 위엄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골프 옷은 비쌀수록 잘 팔린다~ 명품 사려고 줄을서는 것~ 등등 다 열등감이 있는 것입니다.
[아그립바와 버니게의 실체-열등감]
그들은 아그립바 1세의 아들과 딸로 오누이 관계입니다.
친여동생과 근친상간을 했던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와 같이 이들도 근친상간의 의심을 받고 있었습니다.
⊙ 아그립바 2세: 아주 방탕하게 살다가 돈이 없어 쩔쩔매고 있었음
⊙ 칼리굴라: 황제가 되기 전에 '전임 티베리우스 황제는 왜 안죽나? '라고 말한 것을 누가 밀고했음
그때 이 아그립바 2세가 칼리굴라의 죄를 뒤집어쓰고스스로 감옥에 간 것입니다.
칼리굴라는 후에 감옥에서 나온 아그립바에게 땅도 몰아주고예루살렘 성전 관리권과대제사장 임명권도 줬습니다.
이런 사람을 두고 세상은 정치를 잘 한다고 합니다.
[그들의 뿌리]
그의 증조할아버지였던 헤롯대왕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유아 살해의 명령을 내리고 다 죽였던 인물입니다.
⊙ 헤롯대왕의 아들인 헤롯 안디바: 세례요한을 죽임, 빌라도와 한편이 되어 예수님을 못박음.
⊙ 안디바의 조카인 헤롯 아그립바 1세: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양복을 입고단상에 서서 위엄을 부리며 하나님 영광을 가로채다가 벌레에게 먹혀 죽었음.
☞ 그 헤롯대왕부터 6대가 걸치도록 악인의 형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대대로 죽이는 집안!
이 땅에서 아그립바처럼 악하게 살다가 기회를 잡아 벼락출세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받을 벌이 영원무궁하다는 것, 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줄을 잘 서면 죄만 더 크게 지을 뿐입니다. 죄는 과녁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들의 문란한 삶]
아그립바는 결혼도 안하고 자식도 없었고, 그의 곁에는 연년생 여동생 버니게가 있었습니다.
⊙ 그들의 여동생 드루실라: 벨릭스 총독의 아내,3번 결혼했음.
⊙ 버니게:13살 때 첫 결혼, 곧 사별하여 그의 삼촌 칼키스와 결혼하나 또 사별 amprarr 칼키스의 땅을 몰아서 오빠에게 주고, 둘이 함께 살게 됨
버니게는 나쁜 소문(근친상간)을 잠재우고자 길리기아 왕 폴레몬에게 시집을갔습니다.
그녀는 결혼 조건으로 할례받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도 믿어야 해~ 할례받아야 해~ 요구한 것입니다.
☞ 문란하게 살아도 율법적인 것은 당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래되지 않아 이혼 후 오빠에게 돌아왔습니다.
☞ 언제든 돌아갈 나의 고향입니다.친정이 부자이면 이혼이 참 쉬워 보입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버니게는 디도 장군과 눈이 맞았습니다.
⊙ 디도 장군: 유대 전쟁으로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무너뜨리라라는 예수님의 예언을 성취시킨 로마 황제 아들
☞ 자기 정욕을 위해서는 원수도, 나라도, 근친상간도 상관없는 것입니다.
디도장군이 무려 11살이나 연하였고, 버니게는 벌써 40살이 넘은 나이였는데도..
나중에 황제가 될 정도로 모든 것을 다 갖춘 디도 장군이 11살의 나이 차이를 넘어 사귈 정도로 베니게의 매력은 치명적이었나 봅니다.
그런데도 버니게는 자기 동생인 드루실라의 미모를 질투했다고 합니다. 끝이 없습니다.
아무튼 버니게와 디도장군의 관계는 지속되었고, 디도가 황제가 될 때 버니게를 황후로 삼으려고 했는데 로마 황실에서 거세게 반대해서뜻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버니게는 또 편한 오빠인 아그립바에게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우리는 아그립바를 환상의 남자로 봅니다.
이런 배경으로 아그립바와 버니게는 화려한 교양과 화려한 치장으로 접견 장소에 나타났지만 그들은 이러한 죄를 드러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작은 죄만 있어도 숨기려고 하고, 가리우려고 합니다.
우리의 깊은 죄성이, 찬란한 옷과 스펙이, 깊은 열등감이 자신의 외적인 것을 끊임없이 자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위엄은 나 자신을 정확히 드러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 즉,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버니게는 아내의 자리, 동생의 자리를 모릅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 죄인의 자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리! 그때 하나님의 위엄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환자가 자신이 환자임을 알 때 탁월한 의사의 위엄이 환자에게 임하듯..
우리가 죄인임을 알 때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성부, 성자, 성령의 위엄이 우리를 덮고, 이끕니다.
접견장소= place of hearing, 듣기 위한 장소! 바로 목장입니다.
이곳에서 그들이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못했던 화려한 편력을 드러냈다면 바울에게 임한 성령의 위엄이 동일하게 임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말을 듣고, 바울 앞에서 자신의 화려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런데 목장에서 나눌 때 교양 있게 잘 된 나눔만 하는 바로 그 사람이 헤롯이고, 버니게입니다.
Q 1. 세상의 위엄이 허상이라는 데 몇 퍼센트 동의합니까?
Q 2. 꿈에서라도 한번 누리고 싶은 판타지는 무엇입니까?
Q 3. 나의 갖추어진 모습 속에 감추고 싶은 모습은 무엇입니까?
Q 4. 내가 끝까지 지켜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두 번째, 한 영혼을 살필 때 위엄이 주어집니다.(24-26절)
큰 위엄을 갖추고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접견 장소(목장)에 나왔습니다.
[베스도 목자의 말 요약]
'이 사람은유대 무리가 살려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내가 그 사람을 잘 살폈는데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상소를 했기 때문에 황제에게 보내야 하는데 뭐가 문제인지 보려고 당신들을 불렀다.'
☞ 나는 잘못한게 하나도 없다. 나는 탁월하게 처리했다. 내가 다 살펴봤다.
'죄는 없는데 그가 문제에요. 그가 황제에게 상소를 해서 일이 복잡하게 되었어요!'
= '나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황제에게는 확실한 사실을 말할 것이 없다~'
그럴듯해 보입니다. *아스팔레스(실상): 변함이 없는 것을 황제에게 말할게 없다는 것입니다.
베스도는 바울에 관한 실상을 이미 다 파악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알아내지 못한 것처럼 핑계를 댑니다.
☞ 왜? 자기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서, 영향력을 더 크게 보이기 위해서 바울을 이용할 뿐인데..
이것마저 자기가 황제에게 더 정확한 보고를 하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연출하고 있습니다.
베스도의 연출력은 대단합니다.
베스도의 주장: '나는 다 잘했다. 살펴보고, 처리했다. 그가 문제다! 보니까 그는 죄는 없는데 상소 때문에 복잡하게 되었다!'
베스도는 정직한 관리입니다. 그러나 위엄이 있지는 않습니다.
☞ 왜? 자신이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나는 잘못 없다의 태도)는 어떤 존경도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삶에서 이런 사람('나는 죄가 없어, 나는 공정해.')을 많이 만납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함은우리를 지옥에 보내기에도 충분합니다. 즉 착한 게 악한 것입니다.
베스도는 이 사건을 잘 살펴서 정말 문제가 없었으면 바울을 풀어줬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결정을 할 수 있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근데 이 듣는 자리에서 '나는 신임 총독인데다가 유대인 원고들이 너무 유력해서 비위를 거스르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라고 합니다.
[빌라도]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길 때 자신의 손을 씻으며 '나는 아무 죄도 없다. 이 사람에게 아무 죄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너희가 원해서 그런 것이니 너희가 책임져라.'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 사도신경에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2천년동안 전세계, 전역사에걸쳐서 알려지고 있습니다.
유대인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닌 당시 책임자였던 로마총독!
결국 책임지지 않는 모습이 가장 큰 죄악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위엄은 나에게 맡겨진 한 사람을 책임지려고 할 때 그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죄가 없어~ 네가 문제야. 나는 이 문제와 상관이 없어~' 이렇게 책임지지 않는 모습에 하나님께서도 '나도 너와 상관없다. 나도 널 책임지지 않는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죽어가는 한 가정, 한 영혼을 살리고자 할 때 위엄이 주어지는 줄 믿습니다.
죄가 없다는 목자는 곤란합니다. 목장을 이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큰 죄를 묻습니다.
'난 처방 다 했으니까 네가 알아서 해!' '너 잘못이야. 네가 책임져!'
고통이 있더라도 '네 문제가 내 문제지. 네 아픔이 내 아픔이야.' 아픔을 껴안을 때 성령의 위엄이 우리를 뒤덮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서 껴안아 주실 줄 믿습니다.
Q 1. '나는 문제없어. 네가 문제야.' 하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Q 2. 내가 죽어도 책임지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아내? 남편? 부모? 자녀?
Q 3. 내게 주신 은혜는 망각하며 나만 이 가정을 책임진다고 억울해 빌라도, 베스도처럼 손을 씻고 있지 않습니까?
세 번째, 무리한 일을 분별할 때 위엄이 주어집니다. (27절)
어느 누구도 바울의 죄목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딜 가나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죄목이 없어도 바울은 자신이 죄수임을 인정하며 갑니다.
죄수임을 인정하며 가는 사람은 무리한 일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며 갈 수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왔을 때 이 일의 옳고 그름만 따지고, 나는 죄목이 없으니 죄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죄목만 찾다가 싸움만 납니다.
죄목이 없지만 죄수임을 아는 것이 성도의 위엄입니다.
우리가 오픈하고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죄를 십자가에 완전히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아 그 죄에 대해 온전히 죽었기 때문에 오픈하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오픈하고 고백함으로 날마다 내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그 죄와 치열하게 싸우며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지만 죄목이 없는 죄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간과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정말 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게 필요합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세상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목장에서 죄 고백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죄 용서함 받는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일을 베스도는 무리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 무리함: 이성이 없는, 말이 되지 않는, 비합리적인이라는 뜻.
베스도는 도대체 왜 바울이 갇혀 있고 이런 상황에 있는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이런 남편과 살며, 왜 이런 적용을 하며, 왜 오픈을 하고, 왜 나를 힘들게 하는 저 사람을 돌보는지.. 구원과 십자가를 모르면 이 모든 일들을 무리한 일들이라고 말합니다.
이성, 합리의 토대 위에 살아온 베스도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당하고 가야 합니다. 왜? 이 세상과 하나님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역할을 감당하는 집사님]
아내 집사님이 남편에게 쫓겨났는데 그집 앞에 반찬을 걸어 놨다고 합니다.
왜? 아내의 역할을 잘 하지 못한 자신의 죄를회개하며 목장 처방에 순종해서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마음이 변했다고 합니다. 아직 돌아오기까지는 아니지만 변했습니다.
그런데 정신과 의사는 이 가정은 결코 합쳐질 수 없고 반찬을 해서 가져다주는 그런 미련한 일을 하지 말라고, 그래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고 했답니다.
☞ 합리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객관적으로 욕심이 없는 목장에서 검증받아야 합니다.
목장에 목자와 목원들은 욕심이 많아도 목장은 욕심이 없습니다. 왜? 구원의 공동체이니까^_^
나누지 않으면 우리는 무리한 일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무리한 일을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구원을 위한 적용이 무리해 보여도 말씀 안에서는 가장 이성적인 적용이고 이런 것들을 공동체 안에서 분별하며 나아갈 때 너도 나도 사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킹]
흑인을 죽인 백인도 사람, 흑인도 사람, 사람은 죄인입니다.
사람이 100프로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가 가장 존엄합니다.
존엄=성령의 위엄입니다.
Q1. 지금 묻지 않고 무리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이 있나요?
Q 2. 주변에서 모두 무리한 일이라 하는데 이것이 합리적이라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Q 3. 죄목이 없다고 난 죄인이 아니라 외치고 있지는 않나요?
■기도제목
오OO
1.나의 열심과 성실함으로 자기 과시를 하지 않고 내 죄를 보면서 사건을 통과해 갈 수 있도록
2. 내가 죄수임을 알고 직장에서 책임지는 자세로 일할 수 있도록
윤OO
1. 시도때도 없이 올라오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분노를 잘 다스리기
2. 심리치료 중인데 나에 대해 잘 알고 스스로를 잘 다독여주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박OO
1. 이번 사건을 통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봤는데 앞으로는 그러지 않도록
2. 공부의 자리 잘 지킬 수 있도록(퇴근 후 스터디카페로 발걸음 인도해 주시기를..)
3. 아빠와 공예배 참석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