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단이 목장 보고서
■예배일자:2022년 8월 14일
■예배장소: 커피빈 12:30~
■참석인원:오OO, 윤OO,박OO(총 3/7명)
■목장풍경
이번주는 김옥진 엘더님께서 저희와 함께해 주셨습니다:)
저희를 위해 따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음료도 너무 맛있었어요~♡
오늘 참석하지 못한 식구들은 다음주에는 꼬옥~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읽기
본문:사도행전 25:12-22
제목:성령의 상소
설교: 김양재목사님
■설교요약및 적용질문
우리가이 땅에서 심판을 받는 것은 축복입니다. 왜? 돌이키라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상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수많은 심판을 통해 회개로 돌이켜 영원히 피할 수 없는 심판이 오기 전에 성령의 상소를 해야 합니다.
성령의 상소는?
첫 번째, 인내의 때를 채워야 합니다.(10-11절)
[사도행전 ~21장-바울의 상황요약]
3차 전도여행 마지막에 바울은 아시아 각 교회에서 부조를 모아 예루살렘 교회에 드리려고 도착했습니다.
열심히 선교하고, 지혜롭게 헌금도 가져왔는데.. 결론이 감옥입니다.
주님 만나 70여 곳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런 바울을 죽여야 한다며 집요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바울은 장로들의 조언에 순종해서 결례를 행하고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었는데 거기서 소동이 나서 체포되었습니다.
☞ 여전히 감금된 피고인 바울
[사도행전 21-25장-바울의 상황 요약]
유대인에게 잡히고, 산헤드린 공회에 끌려가고, 로마군에게 결박되어 영내에 감금되고, 천부장에게 심문을 받고, 벨릭스&베스도 총독에게 조사를 받았습니다.
바울은로마 시민권자이기 때문에당연히최고의 심판관인 로마황제에게 심판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동안 쓸 수 있었던 상소권을 왜 이 상황에서 사용하는 것일까요?
바울은 모든 상황들을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지긋지긋한 유대땅을 떠날 수 있는 로마시민의 당연한 권리가 있지만 그 권한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새로 부임한 성실한 베스도가 도와줄 줄 알았더니 노골적으로 유대인에게 유리하게 처리하려고 합니다. 아무도 믿을 사람 없습니다.
드디어 로마시민의 상소권을 사용합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그날, 그 시간, 그 밤이 왔습니다.
이 상소권이 얼마나 대단한지 바울이 이 한마디 하자마자 총독 베스도는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로마시민권자라서!☆하나님이 보시기에 인내의 때를 채운 것이라서!
권한은 쓰는 것보다 안쓰는게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 높은 권한을 가지고 있을 때 더 높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붙잡히고, 매맞고 등등 고난을 인내하고 비로소 로마 시민임을 밝혔습니다.
그마저도 자기 안위, 복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빌립보 교회의 보호를 위해서 그곳을 떠나면서 로마시민권을 썼습니다.
참다가 때가 차매 쓰니까 상소가 빛이 납니다.
인내도 하지 않고, 날마다 기도만 한다고 들어주시는게 아닙니다. 참으니까 기도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Q 1. 구원을 위해 쓰는 권과 쓰지 않는 권은 무엇입니까?
Q 2. 할 수만 있다면 상소해서라도 당장 해결하고 싶은 억울한 일은 무엇입니까?
Q 3. 구원을 위해 얼마나 인내하고 있습니까?
Q 4. 상대방을 인내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두 번째, 부르짖어야 합니다.(12-14절)
⊙에피칼레오 = 1)이름을 부르다. 2)상소하다.(간절히 부르짖는 것,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온 것은 부르짖게 하기 위함입니다.
나를 능히 죄에서 구원할 내 아버지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묶이지 않았더라면?결코 부르짖지 않습니다.
큰 세력들이 나를 둘러싸고, 여전히 갇혀 있는, 내어줄 수 없는 환경이기에 우리는 부르짖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의 목소리를 간절히 듣기 원하십니다.
작은 시련 속에서 늘 하나님을 부르짖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큰 시련이 닥쳐올 때도 절대로 부르지 못합니다.
무릎 꿇어야 합니다. 사람을 찾고, 방법을 찾고, 나를 내어줄 누군가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혼자 부르는 것이 안되면 예배의 현장으로 나와야 합니다.
부를 힘도 없고, 상황이 기가 막혀서 멍하니 넋이 나간 환경 가운데 있을지라도 미약한 음성이나마 '주여~'를 불러야 합니다.
'주여~'가 절로 나오는 것이 성령의 상소입니다.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서 성령의 상소가 아니고..
바울은이런 마음으로 가이사에게 상소를 했습니다.
자기 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타적입니다.
이렇게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로마시민인 바울의 상소에 베스도도 바로 응답했듯이 천국 시민권자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반드시 응답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응답은 우리의 생각, 기대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풀려나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환대를 받고, 능력과 힘이 생겨 열심히 전도하는 것이 응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느 누가 2년 동안 갇혀 있고, 2년이 지나도 힘과 권세에 둘러싸여 바울을 죽이려는 이 상황을 누가 응답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하지만 이 상황이 바울에게는 가장 안전한 상황이고, 바울을 용서하심이고, 은혜입니다.
가장 최고의 응답임을 오늘 보게 됩니다. 왜?!
만약 그 2년 동안바울이 석방됐었으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입니다.(졸지도, 먹지도 않고 바울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딱 포진해 있었기 때문)
그러나 끝까지 성령의 상소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로마군대가 동원되어 황제에게 안전하게 가게 하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로마(목표, 비전)까지의 2,240km를 그 누구도 후송할 수 없습니다.
복음때문에 응답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안위, 안녕을 위해 기도하니 응답이 없습니다.
내가 날마다 큐티하고 기도하는 것 자체가 응답인줄 믿는다.
내가 오늘 힘들다고 성경 내팽개치는 것은 불순종이고, 오늘도 눈뜨고 큐티하며 인내하는 것 자체가 날마다 하나님의 응답인줄 믿는다.
Q 1. 문제가 생기면 나는 누구를 가장 먼저 찾습니까?
Q 2. 주님께서 나의 상소를 들으신다고 믿어지십니까?
Q 3. 최고의 응답을 주심을 믿습니까?
기도만 하면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이 응답이 아니라.. 이것이 구속사입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는데도 집요하게 죽이려고 하는 것처럼..
세 번째, 지겨운 괴롭힘을 통과할 때 기회를 주십니다. (15-19절)
베스도에게 있어서 바울은 벨릭스 전 총독이 남기고 간 잔류물 중 하나, 귀찮은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상소를 했기에 상급기관에 청할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과 바울 사이에 있었던 고소, 변론을 보니 가이사에게 상소할 재료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유대인들을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아주 난제입니다.
바로 그때 아그립바 왕과 여동생 버니게가 짠! 나타난 것입니다.
⊙ 아그립바왕: 헤롯대왕의 손자, 야고보를 칼로 죽인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인 아그립바 2세입니다.
⊙버니게: 아그립바왕의 누이동생, 문제 많은 당사자였습니다.
amprarr 종교적인 면에 있어서 신실한 유대교 신자였습니다.
유대교와 관련된 상당한 지식을 갖췄고, 그래서 유대인의 종교문제에 아주 전문가라는 평판이 나있었습니다.
바울의 문제는 로마 실정법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종교에 관한 문제였기에 거기에 최고의 의논 상대가 딱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로마의 총독보다 더 윗직급, 분봉왕이기 때문에 책임을 전가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베스도가 일처리에 있어서 만큼은 대단히 지혜롭고 노련했음을 발견합니다.
내 옆에 의논상대가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그런데 의논도 욕심이 앞서면 친구하고도 의논을 안합니다.
그래서 목장에서 이런 것을 물어보고, 의논상대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공동체(목장)입니다.
그러나 목자도 욕심이 생기면 얘기를 안합니다. 꼭 망하고 나서 나눈다.
작은 것도 나누는 것이 겸손한 것입니다. 그게 응답입니다. 내가 나누는 것 자체가 응답입니다.
벌써 거기에 겸손함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동족에게 고소당한 피고 바울에 대해 베스도가 설명합니다.
⊙ 원고=유대인들, 피고=바울
원고들이 바울을 달라고, 자기들이 처리하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로마법에 어긋나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람 데리고 왔는데 원고들이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 요점: 자신은 로마총독으로서 법대로, 공정하게 처리하려고 했다고 생색을 냅니다.
'바울의 악행 혐의는 증명할 수 없었고 그러고보니 바울이 계속 주장하는 일은 예수의 부활입니다.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종교적 문제에 불과하더라~'
예수님의 부활을 말할 때: 바울-영혼의 떨림, 감격이 있음 vs 베스도-건조함
바울이 유대교와 충돌을 일으킨 이유는 부활때문입니다.
바울은 떨림이 있고 그들은 없습니다. 이것때문에 충돌을 계속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때문에 충돌이 계속 일어납니다.
저도 십자가 부활의 구속사를 주구장창 외칩니다.
그런데 여자 목사라는 것때문에 복음이 훼방받을 때가 많습니다.그래서 바울이 이해됩니다.
바울에 관한 이런 보고가 벌써 여러 번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고소 내용도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되어 나왔습니다.
이런 시간을 다 인내하며 지나왔는데 또 반복입니다. 아그립바 앞에서 얘기를 해야 합니다.
정말 지겨운 괴롭힘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지겨운 괴롭힘이더라도 내 힘을 빼고, 판단을 멈추고,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통과하면..!
변명이 필요하면 변명할 기회를 주시고, 상소가 필요할 때는 상소의 기회를 주십니다. [by출애굽기]
근데 여기서 우리는 기회조차 우리가 만들려고 해서 문제입니다.
지금 나를 덮고 있는 사람, 상황, 사건.. 지겹게 반복되는 고난에서 단번에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어디있을까? 어떻게 만들까? 늘 두리번거리며 새 사람, 환경을 꿈꾼다.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불평, 원망이 우리의 주제가가 된 듯한 그런 지옥을 다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회는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를 얻으려고 찾는 주체= 악인들 ex)갸롯유다-예수님 넘길 기회를 찾습니다.
거룩한 성도가 기회를 찾거나 노린다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성도는 그저 기회 있는 대로 착한 일을 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있으면 주님이 보내신 곳에 간다고 합니다.
성도의 때나 기회는 인간이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특히 주님은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타적으로 회개할 기회, 착한 일을 할 기회를 찾는 것이지 악인의 기회 찾는 것, 예수님 넘길 기회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전심전력을 다해서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런 기회와 이 기회는 다릅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회를 잡는 것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괴롭힘에서 벗어날 기회를 내가 얻겠다는 헛된 욕심을 버리는 것이 가만히 서서 주가 행하시는 구원을 보는 비결입니다.
이 지겨운 괴롭힘은 벗어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주님이 우리를 괴롭혔다~ 풀어줬다~ 새디스트인가? 아닙니다.
우리가 지겨운 것은 아직 내 죄가 내 고난보다 크다는 구속사가 깨달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는 사람은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이 지겨운 괴롭힘이! 구속사가 깨달아지면 내 인생의 결론임이 인정이 됩니다.
결국 이 지겨운 괴롭힘 속에서 내가 주님 앞에서 얼마나 지겨운 죄인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걸 피해야 되는게 아니고 그 지겨운 괴롭힘 속에서 내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제가 이걸 경험했습니다.
남편이 지겹다고만 하다가 제가 제 지겨움을 발견했습니다.
바울이 지겨운 괴롭힘을 통과하면서도 자기 무죄에 대한 변명보다 더 강조해서 전한 것이 부활하신 주님입니다.
바로 자신이 이렇게 지겨운 괴롭힘을 당해도 할 말 없는 죄인임을 철저히 알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사과하는 마음으로 변명을 하며 주님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확실한 자기 인식과 하나님 인식이 있으면 이 지겨운 괴롭힘도 통과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사실 지겨운 괴롭힘입니다.
각자 지겨운 문제들을 사는게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모르면,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모르면 자기를 모릅니다.
하나님과 자기를 모르면 문제만 보입니다.
그게 애굽의 바로의 관점입니다.
잘 살때는 그러다가 재앙이 오면 모든것이 재앙이 되고, 사건이 오면 문제만 보이니 이 10가지가 다 재앙입니다.
이런 사람은 마지만 10가지 재앙까지 치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을 모르니까ㅠㅠ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알고, 자기도 아니 내 고난도 해석됩니다.
이 고난이 나를 망하게 하려고 온 사건이 아니라 나를 구원시키려고, 나를 거룩하게 빚어 정금같이 빛나게 하시려는 주님의 세팅을 아니까이스라엘-고센땅은 재앙이 빗겨갑니다.
이스라엘이 잘 났나? 너무 찌질합니다. 그런데 빗겨갑니다.
왜? 하나님이 택했으니까. 하나님을 알고 자기를 아니까:)
우리도 기가 막힌 고난을 말씀대로 적용하며 통과하니 성령의 상소가 되어 놀라운 회복과 구원을 경험(by간증)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성령의 상소를 들어주시는 목적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면 편안함에 취해 멀리멀리 떠내려가는 일도 봅니다.
고난이 오면 주님께 왔다가, 해결되면 떠나고..
고난을 피하는 것이 목적이 되니까 그렇습니다.
기복이 왜 무섭냐? 하나님도 모르고 자기도 모르는데 날마다 빌어요.
그런데 해결되면 하나님을 떠납니다.
내가 젖과 꿀 속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을 알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동안에는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그렇게 빌다가 환경이 풀리면 하나님을 믿은게 아니었기에 흘러 떠내려 갑니다.
목적이 문제해결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씀으로 주님을 알고 나를 알아 하루하루 지겨운 괴롭힘을 통과할 때, 때가 되면 주님이 필요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남편이 갔는데 인내의 때가 차서 저를 쓰시듯이..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며 주님께 상소한 신음을 낱낱이 기억하시고 결국 기회를 주십니다.
주님을 섬길 기회를 주셨습니다.
기회가 오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령의 상소입니다.
Q1. 괴롭도록 지겨운 사람, 지겨운 상황, 지겨운 사건은 무엇입니까?
Q 2. 여기서 벗어날 기회를 얻으려고 누구를 또는 무엇을 기웃거리고 있나요?
[장로님 나눔]
조울증 아내와 사는 것이 인내의 삶입니다.
공동체의 도움을 받고, 인내할 것이 많으니까 드디어 장로님까지 되셨습니다.
해석하고 가고 있지만 너무 힘들다는 나눔을 하셨습니다.
막내딸이 대학만 들어가면 졸혼을 하리라 했는데 이번에 막내딸이 대학에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따로 살아보리라 하며 올해부터 별거 중이십니다.
⊙ 장로님께 드리는 말씀:
세계적인 석학인 스테니 하워즈 교수-아내가 조울증, 끝나지 않을 고통 가운데 아내를 돌보며 살았음.
이렇게 힘들 때 아내를 보낼 공동체가 없더라. (교회를 못보낸 것입니다.)
결국 혼자서 그 일을 감당하려고 하다보니20년정도 사시고 이혼하셨음. 부인은 곧 소천.
☞ 공동체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참 크다는 것을 느낍니다.
같이 나누면서 통과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우리들교회 공동체가 세계적 대안이 맞구나~
☆오픈을 하셨기에 교회의 기도제목이 되어 기도받는 복 받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중요한 포인트! 왜 이리 별거하시나? 회사가 잘 되시고, 아이가 대학에 잘 들어가니까.
환경이 나아지니 이렇게 기회를 엿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무 이해됩니다. 그런데 본인이 답을 압니다. 교만하시다고..
성령의 상소로!
이 가정이 모델이 되어 수많은 가정이 힘을 얻기를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오픈했으니 우리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네 번째, 한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20-22절)
바울에 대한 보고를 전해 들은 아그립바 왕은 '나도 이 사람(바울)의 말을 듣고 싶다~'라고 말합니다.
⊙ 아그립바&버니게 남매
: 겉으로는 다 가졌음. 아버지가 가장 최고의 정점에서 충이 먹어서 비참하게 죽었고, 자기가 분봉왕이지만 실권은 없음.
왕위, 재물, 관계로도 채울 수 없는 인생. 허무함&공허함이 있으니까 바울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듣고 싶다는 것입니다.
목적없이 살아가는 아그립바&버니게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 바울은 가이사에게 상소한 후에도 또 며칠을 더 구류된 채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바울의 상소가 성령의 상소이기 때문에! 그 목적이 억울함을 풀고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상소의 목적이 구원이기 때문에 또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그립바와 버니게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말이죠.
상소대로 로마에 가는 것 또한 로마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혐의를 벗고, 억울함을 풀고, 복수하는 것이 기도목적이 아니라 항상 전도와 전도를 통한 구원이 우리의 모든 기도, 상소의목적입니다.
큐티의 꽃은 적용이고, 결론은 영혼구원입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이거나 구원이 최고의 가치임을 잊지 맙시다!
Q1. 인생이 허무할 때가 있습니까?
Q 2. 허무함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습니까?
Q 3. 내 인생 최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구원은 몇 번째 목적입니까?
Q 4. 말씀 전할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교사모임 중 전도]
1학기 종강 파티를 식당에서 했는데 종교에 대한 주제가 나와서 잠깐전도를 해보려고 했는데 씨알도 안먹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분이 저를 보면서 순수하고 착하다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그때 전자동으로 진짜 솔직한 마음으로 자신의 음란을 고백했습니다.
비록 거창한 복음은 전하지는 못했지만 지질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 이게 유다복음입니다.
항상 '나는 칭찬거리가 하나도 없어요..~'하면, 전하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목사님-미주 목세&집회]
미국 가서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너무나 상한 심령이 되어 기도제목도 못올리고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니 회개밖에 없었습니다.
아프니까 쉬고 싶었지만 저의 사역에 제 욕심이 있다면 저를 용서하지 마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미국 선교 여행이 가장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제가 죽어져야 열매가 맺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생각지 못한 분들이 곳곳에서 저를 보고 자기 한 사람을 위해 왔다고 합니다.
어디를 가나 큐티를 하는 성도들이 계셨습니다.
말씀이 들리는 그 한 사람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기도제목
오OO
1.날마다 큐티하는 여자 책 사서 엄마에게 전할 수 있도록
2. 첫 직장 때의 겪었던 고난을 트라우마라고 탓하며 직장 내 관계의 어려움을 느끼는데
이 과정 속에서 인내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지긋한 억눌림을 말씀으로 통과해 갈 수 있도록
3. 목적을 구원에 두고 가치관이 분명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박OO
1. 나의 시선을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하는 생활예배가 회복되도록(매일 큐티)
2. 개학 준비 중 뻥뻥 터지는 문제들을 내 생각, 내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옆 선생님께 토스할 부분은 토스하며 갈 수 있도록
3. 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히는 것들(기회만 엿보는 버릇=내 생각을 의지하는 것, 열등감, 낮은 자존감 등등)을 아무리 나눠도
변화나 회복이 없으니 정말 지긋지긋해서나누고 싶지도 않았는데.. 오늘 영아부 교사 모임으로, 엘더님 탐방으로 나눌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
오늘 말씀을 통해저의 목적이 오직 문제 해결에만 있기에 지금 이 시간이 너무 힘들게 느껴지는 것을 깨닫게 해주심에도 감사합니다.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더라도 목장에서 겸손히 나누는 것 자체가 기도응답임을 믿고, 잘 나누면서 가는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4. 아빠의 공예배 참석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5. 아빠의 곰팡이 제거 일이 하나도 잡히지 않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 가정이하나님을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을잘 인내하며 통과해 갈 수 있는 힘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