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31. '광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출 8:25-32 ) 김정태 목사님
혈기 많은 고라니 김정태 목사님
저의 MBTI는 IMJA-A 임자 라는 뜻이다. 제 성격은 1% 온유, 99% 야생이다. 야생의 고라니는 착한 얼굴과 귀여운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성격은 꽥, 야생의 정태도 온유한 얼굴과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지만 성격은 꽥이다. 서식지도 있다. 100% 보호를 받고 있다. 출생지는 임자도, 고난과 죄로 영혼 멸종위기에 처한 전라도에 위치한 섬이다. 목적지는 천국, 말씀과 기도로 영혼이 보호되고 있다. 우리들 교회 만나서 제가 보호되고 있다. 또 성장과정이 있다. 100% 가정고난이다, 과거에 아버지께서 죽이겠다고 가스통을 들고 왔다. 어느날은 트랙터로 집을 들이받아 집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아버지 때문에 여러 번 죽을 뻔 했다. 현재는 나의 구원을 위해 수고하신 아버지이다. 외모도 있다. 90% 탈모빔, 날마다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 힘차게 큐티하는 남자이다. 그리고 날마다 대머리 독수리가 되어가는 남자이다. 첫째아들이 '아빠는 왜 이마가 뒤로 가있어?' 하고 물어본다. 탈모 진행중이다. 모근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
담임목사님께서 이렇게 부족한 저를 강단 위에 세우셨다. 너무나 걱정되는 것은 제 언어가 저렴하고 사투리를 많이 쓴다. 그래서 우리들교회 주일 강단의 격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담임목사님께서 강단에 고라니 한마리 풀어놓았다고 생각하시면 된다. 감사한 것은 전에는 뱀목사님이라 했는데 지금은 고라니 목사님이라 한다. 다리가 생겼다. 비록 네 다리지만 다리가 생겼다. 이제는 직립보행을 해야 한다. 점점 진화되고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오늘 '광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제목을 정해 보았다. 입이 마르는 것이 이 자리가 광야인 것 같다. 부족하나마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리라 믿고 은혜 받길 소망한다.
하나님께서 피 개구리 이 파리 재앙으로 큰 권능을 보여주시니 모세와 아론이 믿음과 담대함을 가지고 바로 앞에 나아갈 수 있었다. 처음에 모세는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냐고, 어찌하여만 외쳤다. 그러나 담대함과 자신감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 전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가진 자신감 담대함 역시 내 실력과 노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 나오는 것임을 보게 된다.
피 개구리 이 재앙을 겪으면서 완강하던 바로가 이번에 파리 재앙을 겪으면서 그 마음이 흔들렸는지 두번째로 모세와 아론을 부른다. 구원을 위해 광야로 나가야 하는데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는 바로와 같은 세상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애굽과 같은 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광야로 나가야 한다.
광야가 어떤가? 살아내기 어려운 곳이다. 황량하고 거친 환경, 아무것도 없는 환경이지만 나와 내 가정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만 있는 환경, 하나님만 있는 광야로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를 놓아주지 않는 바로와 같은 세상을 향해 뭐라고 해야 할까?
광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1. 부당함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25절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하나님께서는 앞선 피 개구리 이 재앙과는 다르게 파리 재앙에 대해서는 애굽과 고센땅을 구분하셨다. 고센땅이 구별되는 것을 본 바로는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왜 고센땅만 구별하고 우리땅만 재앙을 주나 고민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을 부른다. 회개했기 때문에 부른 것이 아니다. 무수한 파리떼로 온 애굽이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파리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파리채 하나로 끝난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파리를 하나님께서 들어쓰시면 난리가 난다.
우리가 생각하는 파리는 귀엽고 아기자기하고 겸손하다. 그래서 파리채로 파리 잡으려고 하면 죄송합니다 하며 손 비비고 도망간다. 그런데 이 파리가 아니다. 또 다른 파리가 있다. 고급스러운 에메랄드 빛을 띈 똥파리가 있다. 그러나 똥파리와 우리는 동선이 다르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파리 하나가 더 있다. 시골에 가면 소 피빨아먹는 쇠파리가 있다. 그 파리들은 굉장히 강팍하다. 잡으려 하면 쳐다본다. 얼마나 큰지, 엄지손톱만하고 도망가지도 않는다. 이 파리 삼형제들이 다 달라붙어서 애굽을 힘들게 하니 애굽은 말 그대로 황폐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먹고 살 만할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하나님 없어도 충분히 잘 살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는가? 구원이 필요한 사람, 죽을 것 같은 환경에 놓여있는 사람,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다.
고등학교때 제가 저수지에서 친구들과 수영 시합을 했다. 열심히 수영을 했는데 갑자기 앞으로 안 나갔다. 보니 제 다리에 물풀이 감긴 것이다. 너무 놀라서 발버둥을 쳤고, 발버둥 칠수록 물풀은 더 세게 감겨서 풀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제 몸이 계속 가라앉기 시작했다. 제 힘으로 도저히 안되니 포기가 되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했다. 그리고 몸의 힘이 쫙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물이 입까지 차오를 때 어푸어푸 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한번만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그 기도 끝나자마자 신기하게도 발에 감긴 물풀이 스르륵 풀리게 되었다. 그렇게 살아났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나니 바로처럼 교회를 당연히 안갔다.
이렇게 사람들은 죽을 것 같은 환경이 아니면 하나님을 찾을 마음이 없다. 자신의 집과 애굽의 온 전역에 황폐함의 사건이 오니 그제서야 모세와 아론을 부르는 바로가 있다. 그런데 바로가 모세와 아론에게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라고 한다. 네번째 재앙을 겪었으면 이제 회개해야 하는데 회개하지도 않고, 아직도 바로는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 너희 하나님이라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고난은 절대적이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믿는 것이 기적 중의 기적이다. 병낫고 환상보고 하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 믿는 것이 가장 큰 기적이고 내가 천국가는 것이 가장 큰 기적이다. 당연한 것 아니다.
코로나 같은 국가적 재앙을 네 번이나 겪었으면 회개할 만도 한데 회개하지 않았다. 바로 입장에서는 자신의 입지가 위태해졌다. 모든 언론에 나오고 여야가 분열되고 파업하고 난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타격을 받았기에 바로의 마음은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타협점을 제시했다. 하나님께 제사드리되 이 땅에서 제사드리라고 하는 것이다. 바로는 노동력도 잃지 않고 재앙도 면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끝까지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가두려는 시도를 했다.
세상은 이렇게 우리에게 합리적인 타협점을 제시하며 끊임없이 유혹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을 막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방해한다. 그렇기에 세상이 우리에게 타협점을 제시하는 것은 우리에게 양보해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가둬 두려는 꼼수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분별하기는 참 쉽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가 매주 목장에 가서 이것을 분별하도록 해야 한다.
합리적인 타협점을 제시하는 바로에게 모세는 뭐라고 할까?
26절 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모세는 바로의 그 제안이 부당하다고 말한다. 모세는 부당한 이유를 너무나 명확히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제사 지내는 것을 애굽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싫어하다는 단어는 가증하다 부정하다 미움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당시 애굽사람들의 문화는 동물을 신성시 여겨졌다. 그래서 어린양 같은 경우는 암몬 신에게 속한 짐승이었기 때문에 죽일 수 없었고 흰 암소는 절대 죽일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님께 짐승 잡아 죽이는 희생제사를 드리면 가만히 놔두겠는가? 바로 돌로 쳤을 것이다. 모세의 말처럼 바로의 제안은 정말 부당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 아래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땅과 그 문화 아래에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없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방식대로 제사를 지낼 수 없는 것이다. 양을 제물로 삼아야 하는데 애굽 사람들이 돌로 치니 돼지로 희생제사 드린다든지 하는 또 다른 타협을 하게 된다. 그러니 세상과 타협하게 되면 또 다른 타협을 낳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드리고 섬기기 위해서는 예전의 가치관과 세상의 문화, 전통에서부터 완전히 분리되고 떠나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 맥락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광야로 나가야 한다. 광야를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 먼지밖에 없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이 있는 것 같은 광야로 가야 한다. 비록 그 길이 사흘길이 걸리는 고통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길을 가야지 우리가 가정과 예배와 우리의 영혼을 세울 수 있다.
27절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모세가 세운 제사의 기준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다. 내가 편한대로 내가 하고싶은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이다. 그러니 우리의 예배의 기준도 내가 원하는 때 장소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간 장소 예배의 자리로 나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이 땅에서 제사 드리라는 바로의 명령과 사흘 길 광야로 나가라는 하나님의 명령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가족의 구원과 민족의 구원을 위해 모세가 부당하다 외쳤듯이 우리도 이런 적용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나와 내 가정 배우자 자녀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때로는 부당하다 외칠 수 있어야 한다. 네네 하면서 예스맨이 되면 안된다. 저와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때로는 부당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저는 10년전 전도사로 사역하면서 전도사 생활비 70만원으로 다섯식구가 먹고 살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 돈으로는 생활 자체가 안되었다. 그래서 주말에는 교회에서 사역하고 주중에는 신대원 다니며 학교 끝나고 공장에서 새벽까지 일하고 단순 노동하며 살았다. 아내는 이런 제가 안쓰럽다며 집에서 갓 태어난 셋째를 돌보며 인형 눈 붙이고 크리스마스 카드 접는 부업을 하며 함께 생계를 이어가던 때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대부업체 러시앤 XX 에서 연락이 왔다. 전화를 받아보니 당신의 아내가 내 연락을 안받는다고, 아내가 저 몰래 큰 대출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한달 생활비가 70만원이었는데, 한달에 나가는 이자가 50만원이 넘게 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애들 키우고 살아갈 수 없었다.
지금까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방학 되면 자장면배달 대리운전 우유배달 신문배달도 해보고 공장 조선소 순대공장도 가봤다. 그런데 이 사건이 터지니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제가 마주한 삶을 마주할 자신과 살아낼 자신이 없었다. 도움 부탁할 사람도 비빌 언덕도 해결할 방법도 없었다. 얼마나 돈 때문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월말이 되면 고지서가 나오는데 그 고지서를 보면 가슴이 벌렁거리고 심장이 멎을 것 같고 토 나올 것 같고 손이 덜덜 떨릴 지경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리 되니 아내와 사이가 안좋았다. 매일 싸우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아내가 싸우고 스트레스 받는다며 싸우다가 집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아있으니 너무 비참했다. 그래서 이렇게 살 바에 죽어버리자, 해결할 방법은 내가 죽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 했다. 주님께 귀한 사명과 직분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살았는데, 사건이 해석되지 않고 함께 이야기할 목장과 공동체가 없으니 하나님께 의지하기 보다 일이 이지경까지 되도록 내버려두신 하나님께 부당하다고 외치며 소리지르며 베란다로 가서 목을 매고 말았다.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내일을 살 용기 자체가 안났다. 막막하고 벼랑끝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내일을 마주할 용기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막상 목을 매고 나니 애들 셋이 눈에 밟혔다. 그러면서 내가 없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정말 많이 고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막상 목을 매니 지옥 갈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살포시 풀었다.
풀긴 풀었는데 성질은 났다. 죽고 싶은데 죽을 수 없었다. 누가 죽여주면 좋겠는데 얼마나 건강한지 너무 건강했다.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었다. 너무 분노가 치밀어 올라 하나님께 삿대질 하면서 소리질렀다. 이렇게 거지처럼 살다가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냐며 그러려고 나를 목회자로 부르셨냐고 그렇게 미친사람처럼 천장을 향해 삿대질하며 소리지르며 욕을 하며 온갖 혈기를 쏟아부었다. 한참 하나님께 욕하고 성질내고 비방하며 따졌다.
그러다 문득 결혼 초에 아내와 했던 약속이 생각이 났다. 그때도 돈이 없어서 도시가스가 끊겼을 때였다. 그때 아내와 마주앉아서 냉수 한 사발 떠놓고 아내와 약속을 했다. 우리가 사명의 길을 가는데 때로는 밥 한그릇 못 먹을 때가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물 한잔 먹는 것에 감사하며 사역자의 길, 사명의 길을 감당하자고 약속했었다. 그 장면이 생각이 났다. 그런데 저는 지금 돈 없다고 죽겠다고 하나님을 협박하는 것이었다. 내가 죽어버린다고 하나님께 협박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아내와 함께 사명의 길을 걷자고 했던 제가 그동안 얼마나 변질되고 물질우상 삼고 살아왔는지가 보여 회개가 되었다. 얼마나 제가 물질우상 삼고 살았는지 깨달아져 무릎 꿇고 회개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아이들 봐서라도 이번 한번만 살려달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여러분도 한번만 살려달라고 기도해보라. 그렇게 기도를 많이 했는데 다 살아났다. 이번 한번만 살려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마음이 약하셔서 다 살려주신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인분을 쇠똥으로 감해주셔서 대출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그래서 재정적 문제도 잘 통과가 되었다. 고질적 재정 문제를 지원받는 길을 열어주셔서 저희 가정이 살아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들 교회 와서 말씀으로 해석되니 있어야 할 사건이라는 것이 100% 인정이 되었다. 그리고 저와 우리 가정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세팅임이 인정되었다. 그러면서 억울함의 사건, 부당함의 제목이 회개와 감사의 제목이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말씀으로 해석하게 되면 내게 부당하다 했던 것들이 오히려 감사의 제목이 되는 기이한 은혜가 있다.
적용)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부당하다고 말하나요? 아니면 나의 만족과 유익을 채우기 위해 부당함을 말하나요?
지금 내가 부당하다고 외치는 것은 무엇인가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부당함을 외친 적이 있나요?
광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2. 죄로부터 멀리 가야 합니다.
28절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바로는 자신의 술책이 통하지 않으니 이번에도 이스라엘 민족을 보내겠다고 약속한다. 그런데 바로의 마음 가운데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떠나보낼 의도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이 말의 원 뜻은 너희는 절대 멀리 가지 말라는 뜻이다. 아주 강하게 이스라엘 민족의 활동반경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니 바로는 어떻게든 이스라엘 민족을 붙잡아두려 한 것이다. 자신의 욕심과 고집 때문에 온 애굽백성이 고통받고 죽어간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 채 완악하고 강팍한 마음으로 일관한다.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탐욕 욕심 야망이 있기에 우리가 미루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의 모습 속에 우리의 모습이 있고, 저의 모습이 있다. 지금 내려놓아야 할 죄와 욕심이 있는데 그것을 내려놓지 못해 고민한다. 목장에서 늘 함께 권면 받지만 내려놓지 못하는 우리를 발견한다. 바로 한사람이 내려놓지 못해 애굽 모든 사람이 고난 받는 것 처럼, 나 한사람의 죄 탐욕 욕심을 내려놓지 못해 우리 가족이 고난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손해보지 않으려는 나의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죄를 사랑해서 포기하지 못하는 그 마음 때문에 타이밍을 놓치고 결국 더 큰 손해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야망 욕망 쾌락 음란을 내려놓지 못하는 내가 바로이다.
내 가족의 구원을 위해 내려놓아야 하는데 내려놓지 못하고 여전히 아쉬움만 가득하다. 내가 바로라는 것을 목장에 오픈하며 더 늦기 전에 내려놓아야 할 줄 믿는다. 바로가 모세에게 너무 멀리 가지말라고 말한 것 처럼, 세상은 우리에게 죄악에서 너무 멀리 가지말라고 한다. 술 음란 도박에서부터 너무 멀리 가지말라고, 적당히만 하라고 한다. 얼마나 속기 좋은 이야기인가? 내가 죄의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내가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질 수 없기에 나와 내 가정 내 자녀의 구원을 위해 반드시 죄와 멀어져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광야로 나가야 한다. 그 길이 고단하고 힘들지라도 광야로 가야 한다. 내려놓지 않으면 지금 당장은 너무 좋다. 죄를 즐기고 쾌락을 즐기고 가면 재밌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나중에는 부메랑이 되어 나 배우자 자녀를 치게 된다. 그렇기에 지금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다면 내려놓는 적용을 해야 한다.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을 알려주시면 지금 내려놓아야 한다. 죄와 멀리 떨어지는 적용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필요하다.
저는 청소년부를 섬기고 있다. 오랫동안 현장수련회를 못했는데 올해 현장수련회가 가능해져서 4월부터 수련회 준비를 했다. 청년 스텝 120명이 모여 주일목장모임 다 끝나고 밤 10시까지 매주 모여 수련회 준비를 했다. 힘들 때도 지칠 때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현장에 와서 뛰는 모습을 생각하니 은혜와 감사가 되었다. 그런데 수련회 며칠 앞두고 갑자기 코로나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청소년부 자체적으로 방역수칙을 강화했다. 코로나 확진자, 동거가족 중 확진자가 있는 경우, 확진 아니더라도 코로나 증상이 있는 경우 학생 교사 할 것 없이 수련회 참석 불가방침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수련회 장에서는 각 방에서 매 시간 소독하고 출발 당일아침에 아이들은 각자 코로나 키트로 검사하기로 했다.
하지만 수련회 전날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이 집단 감염된 뉴스가 이슈가 되었다. 그것을 보면서 코로나 집단 감염의 위험성을 안은 채 수련회를 강행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건강과 행사를 도저히 맞바꿀 수가 없었다. 그래서 즉시 사역자들과 함께 온라인 수련회로 전환한지 검토한 결과 가능해서, 안타깝지만 버스 출발한 상태였지만 현장수련회 취소 공지를 내렸다.
사역자들은 버스 떠나는 시간까지 고민하고 기도하며 지혜를 구했다. 십자가는 지혜이고 지혜는 타이밍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마지막 타이밍을 잡았고 그래서 버스가 출발했지만 다시 돌릴 수 있었다. 25대의 버스였다. 그 버스가 다 돌았다. 싹 회차해서 판교와 종합운동장역에 내려서 귀가조치를 했다. 아이들이 얼마나 실망했겠는가, 실망했을 아이들과 아이들이 변화될 것을 기대했던 선생님들, 12주동안 열심히 아이들을 섬기기 위해 열심히 준비한 120명의 스텝들을 생각하니 너무 미안함과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제가 황망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모든 것이 중단되어 텅텅 빈 수련회장을 보니 그때의 그 황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가지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옳은 선택을 한 것은 알지만 3년만의 현장 수련회를 준비했던 터라 아쉬움이 더 컸다.
그날 큐티 말씀이 22일 본문, 모세가 떨기나무 불붙은 것을 본 장면이다. 모세가 그것을 보고 이 큰 광경을 내가 보리라고 했다. 그날 25대의 버스가 일제히 유턴하는 그런 큰 광경을 보았다. 정말 너무나 놀라운 광경이었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제가 살면서 도깨비불을 두 번 봤다. 그러나 25대의 버스가 회차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도깨비 불 보는 것 보다 더 힘든 것을 본 것이다. 정말 놀라운 것은 아이들의 구원과 건강을 위해 어떤 손해라도 감수하는 우리들 공동체를 보며 세상에 이런 공동체가 어디있을까 했다. 이것은 우리들공동체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적용이라는 것이 인정되었다.
또 하나 더 놀라웠던 것은, 25대의 버스가 수련회장을 가고 있다가 돌았다. 고속도로에서 돌았으니 정말 황당한 일이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도 돌면 안된다고 하는 분이 단 한사람도 없었다. 부장님부터 시작해서 25명의 차장을 맡으신 선생님, 아이들 케어하시는 몇백명의 선생님들이 모두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너무나 놀랐다. 제가 보낸 카톡 한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다. 정말 너무 놀라웠다. 비록 지금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공동체의 질서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많은 은혜를 받았다. 특히 선생님들께 욕은 자기들이 먹을 테니 목사님은 온라인 수련회에 집중해달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분들 때문에 온라인수련회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선생님들이 정말 놀랍다.
그날 말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발의 신을 벗으라고 하셨다. 가만가만 내가 벗어야 할 신은 무엇인가 생각을 했다. 제가 벗어야 할 신은 현장 수련회 였다. 완벽하고 멋진, 성공적인 행사로써의 수련회를 벗으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바로가 끝까지 탐욕을 포기하지 못하고 너희는 멀리 가지 말라고 한 것 처럼, 저도 성공적이고 멋진 수련회를 내려놓지 못해 그렇게 전전긍긍했다. 그러고 나니 나로호 발사 누리호 발사 취소가 보통 힘든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엔 버튼 눌러서 누르고 말라면 말지 뭘 저리 기다리나 했는데 이번에 해보니 그 결정이 보통 결정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준비한 것과 큰 재정이 들어간 수련회, 그리고 아이들의 건강을 놓고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못한 바로처럼 고민할 때, 청소년부 동료 사역자들과 함께 있었기에 행사의 신을 벗을 수 있었고, 온라인 수련회를 준비할 수 있었다.
수련회 끝나고 지방에서 올라온 아이들에게 모든 사역자가 전화를 돌렸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연락을 드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교회에서 어려운 결정 하셨는데 질서에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저를 위로해주셨다. 오히려 한 부모님께서 어디 가지말고 공동체에 끝까지 붙어가라고 하셨다. 제가 어디 갈 것 처럼 느껴졌나보다. 그렇게 저를 위로해주시고 치킨도 보내주셨다.
아이들과 통화해보니 아이들의 목소리가 너무 밝았다. 한 아이는 엄마와 같이 대구로 내려가면서 수련회를 드리고, 어떤 친구는 차표 구하지 못해 다른 선생님이 그 아이를 데려다 맛있는 것도 먹이고 서울 구경도 시켜주는 힐링의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어떤 친구들은 온라인 예배 드리면서 녹취해서 보내주기도 했다. 정말 아이들 선생님 부모님의 수준이 다 높으시다.
욕심의 신발을 벗고 고집의 신발을 벗고 행사의 신발을 벗으니 모든 것이 다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바로처럼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못해 아이들에게 큰 해를 끼칠 뻔 했지만 함께하는 사역자와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빨리 내려놓을 수 있었고 온라인 수련회를 잘 준비할 수 있었다.
적용)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는 내 욕심과 탐욕, 죄는 무엇입니까? 내가 멀리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이고 멀리해야 할 습관과 장소는 어디입니까?
광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3. 인내로 내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29절 모세가 이르되 내가 왕을 떠나가서 여호와께 간구하리니 내일이면 파리 떼가 바로와 바로의 신하와 바로의 백성을 떠나려니와 바로는 이 백성을 보내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일에 다시 거짓을 행하지 마소서 하고
모세가 바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 땅의 파리재앙이 끝나게 하고 바로와 애굽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고 출애굽 시키는 일을 진행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모세 입장에서는 바로와 애굽을 위해 기도하는 것에는 믿음의 적용이 필요했을 것이다. 요나가 니느웨 성에 가서 복음 전할 때 적용이 필요했듯이 모세도 믿음의 적용이 필요했을 것이다. 애굽은 이스라엘 백성을 430년 동안 핍박했다. 그러니 모세가 기도한 것이 정말 믿음의 적용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내 백성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원수 같은 상대방을 위해 기도하는 적용을 해야할 때가 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원수가 당장 없어지면 좋겠지만 오히려 그 원수가 나의 구원을 위해 또 우리 가정의 구원을 위해 수고해주는 것이다. 오늘도 원수들이 많다. 오늘 집에 가면 큰 원수 작은 원수 막내 원수.. 내가 비록 원수와 함께 산다해도 인내하며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나는 그 원수와 절대 살지 못한다 하며 그 원수가 있는 그 자리를 떠나 도망가버리면 안된다.
저희 아버지는 늘 폭력적이셨다. 제게는 너무나 두려운 존재였다. 어머니와는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셨다. 너무 심해서 동네사람들이 말리지도 못했다.
우리는 대출 받으려면 대출신청서 쓰고 대출을 받는데, 아버지는 은행에 가서 의자를 들어 창구에 던지고는 돈 가져와 하면서 대출을 받으시는 분이셨다. 상식이 안통하시는 분이다. 너무 혈기가 크신 분이다. 그 모습을 보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너무 힘들어서 이럴거면 온 가족이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태어나면 안되었을 인간이구나 하며 제 스스로를 부정하며 저주하며 살았다.
그러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아버지의 핍박이 시작되었다. 교회 계속 다니면 호적 파버린다, 너 같은 모습이 무슨 목사냐, 니가 어떻게 산 줄 다 아는데.. 교회 이야기 하면 나가라고 하셨다. 욕이라는 욕은 진짜 많이 들었다.
그런데 제가 신대원 입학 준비하다가 아내와 사이가 너무 안좋아서 입학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남자가 한번 마음 먹었으면 끝까지 해야지' 하면서 저보고 신대원 가라고 했다. 안티크리스천인데 제가 신대원 안가니 신대원 안간다고 쌍욕을 하시며 엄청 뭐라고 하셨다. 한참 이야기 하다가 설득이 안되니 제가 야간 신대원가겠다고 했다. 주간에는 일하고 야간엔 공부하겠다 했다. 그러니 아버지가 '니 주제에? 니 머리로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한다고? 야간은 무슨 야간, 주간으로 가' 하셨다. 아버지께서 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의 이상하고 오묘한 인도하심을 받아 신대원에 가게 되었다.
그렇게 신대원 간 제게 아버지께서는 항상 이야기 하셨다. 너 목사되면 제네시스 하나 뽑아줄게 하면서 제 차를 빼앗아가셨다. 그리고 3일 뒤에 날아온 딱지 8장.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목사안수 받으니 제네시스 안사주셨다. 그 이후에 너 개척하면 교회 지어준다고 농사 잘되게 기도해달라고 하셨다.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신대원도 다 포기했을 텐데, 아버지 때문에 사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신대원 들어가서도 역시 저는 아내와 사이가 안좋았다. 그때는 상황이 심각해서 이혼하겠다고 양가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이혼서류를 썼다. 그때 또 아버지가 등장하셨다. 아버지가 한걸음에 등장하셔서 쌍욕하시면서 '뭐 이혼? 니 주제를 알아야지 이혼? 없는 집에 시집와 준 것도 눈물나서 감사한데 뭐 이혼? 같이 살아준 것도 고마워하지 못할망정 뭐 이혼?' 이라 하며 쌍욕하시면서 저의 가정을 물리적인 압박으로 막아주셨다. 더 웃긴건 본인도 평생 이혼을 외치며 사셨는데 저희 가정의 이혼을 막아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두가지 큰 사명을 주셨다. 목회자와 가정이다. 이 두 사명 다 저를 핍박하고 힘들게 했던 바로 같은 저의 아버지 때문에 지킬 수 있었다. 아이러니 하다. 그렇게 아버지께서는 제가 목사안수 받는 것을 보시고 5개월 뒤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돌아가셨다.
집이 완전히 망했을 때, 급성 맹장으로 수술했을 때, 급성 간경화가 왔을 때, 손가락이 절단되었을 때 제가 항상 아버지께 복음을 전했으나 그때마다 제가 쌍욕을 먹었다. 그러던 분이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니 그냥 예수님을 믿었다. 그렇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우리들교회 와서 말씀으로 해석받으니 아버지가 저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는지 깨닫게 되어 감사가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세상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셨다. 제 가정 지키는 것, 그리고 저를 목회자의 길로 가도록 인도해주신 것, 그것이 아버지의 사명이었다. 그래서 정말 감사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를 핍박하고 공격하는 바로 같은 사람들이 주변이 많다. 그러나 그 핍박하는 사람이 나의 구원을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하고 수고해주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고,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해 기도해주어야 할 줄 믿는다.
그러나 모세가 기도한다 해서 바로가 바뀌었는가? 안바뀐다. 바로는 또 거짓말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는다. 이처럼 믿었던 내 배우자 자녀, 각종 중독에 빠져있는 가족들이 다시는 안그럴게 하지만 반복적으로 무너지는 것을 보며 우리의 마음 믿음도 무너질 때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잘 아는대로 내 배우자 자녀의 구원은 나의 한번의 적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기까지 10번의 재앙을 겪었다. 그것처럼 말씀이 이루어질 때 까지 나를 힘들게 하고 숨통 조이는 바로 같은 내 배우자 내 가정 내 자녀의 구원을 위해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지키며 적용해나가야 한다. 원수갚는 일도, 내 가족의 구원도 모두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인정하면서 가야한다. 이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시간표에 맡겨드려야 하는 것이다. 힘들겠지만 여러분의 모든 고난을 하나님의 시간표에 맡겨드리시길 바란다.
32절에 바로가 완강하다고 했다. 우리도 바로처럼 여전히 내 고집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고집이 강팍한 마음이라 늘 이야기해주시지만 하나님께 그것을 내놓지 못하고 반역한다. 가정에서, 배우자와 자녀들 앞에서 내 고집과 아집, 나의 개똥철학을 내려놓지 못하는 내가 완악한 마음을 가진 바로인 것이 인정된다. 그래서 공동체에서 권면하고 위로해도 내 생각 판단 습관이 맞다며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내가 바로인 것을 인정하며 가야한다.
고집 내려놓지 못하고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는 바로 한 사람 때문에 애굽의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한다. 그런 것 처럼 나 한사람의 완악함으로 인해, 고집과 가치관을 내려놓지 않기에 온 가족이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간절히 바라기는 사랑하는 성도님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바로 같은 나의 성품, 바로 같은 내 배우자 자녀 앞에서 그 삶의 자리를 잘 인내하고 예배의 자리 목장의 자리를 잘 지켜나가면서 바로의 마음을 내려놓고 모세처럼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소망한다.
적용) 나의 구원을 위해 수고해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세입니까? 아니면 끝까지 고집부리는 바로입니까?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 때문에 가족들이 고통 가운데 거한다는 것이 인정되십니까?
말씀 맺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끊임없이 광야로 인도하신다. 그런데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는 세상이 있다. 그래서 내 죄를 끊어내기가 너무 힘들다. 세상은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온갖 유혹들로 나를 잡아두려 하지만, 하나님과 공동체 앞에 어쩔 수 없는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가야하고, 내 죄를 회개하며 가야 한다. 또한 세상을 향해 모세처럼 부당함을 느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너무 멀리 가지 말라는 세상의 말을 뒤로 하고 죄로부터 멀리 떠나야 한다. 나 한사람이 죄를 보지 못해 내 배우자 자녀 우리 엄마아빠가 고난 겪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가야 한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광야를 갈 때 나를 핍박하고 가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일어난다. 그러나 결국 그 사람들이 나의 구원을 위해 수고해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인내로 그 자리를 지켜 나가야 한다.
[기도제목]
* 교희
1. 내 환상속의 관계들을 잘 직면하도록
2. 엄마 만나고 싶은 마음 잘 분별하고 결정하도록
3. 아웃리치 팀원들의 건강
* 보련
1. 하나님의 자존감 가질 수 있도록
2. 어떤 일이든지 직장 인도함 받을 수 있도록
3. 말씀으로 하루만 살 수 있도록
* 은우
1. 재앙의 목적이 이스라엘과 모세와 나의 구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고 하루만 말씀에 잘 살 수 있는 은총 내려 주시도록
2. 크고 작은 여러 문제 가운데서 스스로 계시는 분의 경륜 안에 있다는 것 믿고 분별하여서 지혜롭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