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말씀으로 나눔 했습니다.)
2022.07.10.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갈 3:19-29) 김완규 목사님 (세종한빛교회 담임)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 해 달라고 하시는 것 같다는 마음으로 왔다. 흘러가는 생수의 역사 속 부스러기라도 먹는 여인처럼 흩어진 것 잘 주워 먹어가며 사는 목회자도 교회도 있다는 것을 아시고 그 길 잘 걸어가 주시면 좋겠다.
큰바위 얼굴처럼 한 소년이 저런 사람 언제 나오나 봤는데, 어느새 그 얼굴의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처럼, 먼발치에서만 봤던 우리들교회에 서게된 것 자체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는 마음으로 서 있다. 좋게 말해 큰바위 얼굴이고, 팩트를 이야기하자면 명품 우리들교회를 베끼고 있는 짝퉁 목회를 잘 하고 있다.
월요 울림기도회 보고 우리도 나눔이 있으면 좋겠다고 나누었더니 부목사님들이 더울림기도회로 이름을 붙여 왔다. 왜 그렇게 붙였냐 했더니 저분들이 울면 우리는 더 울어야 한다고 해서 그렇다고 했다.
우리들교회 표어도 기가막히다. 이걸 베껴야 하는데 어떻게 효과적으로 베낄까 고민했다. 그럼에도 살아냅시다를 어떻게 가져올 수 있을까 고민하고 연락을 드렸는데, 그렇게 연락 오는 교회가 없었는지 담당자를 연결해주겠다 했다. 다섯명의 담당자와 통화한 것 같다. 다들 황당해하신 것 같다. 그 표어를 살아냅시다, 그리고 살려냅시다 로 썼다.
이런 식으로 쓴다. 제 속에 선한 것이 없어 나올 것도 없어 김양재 목사님 잘 베끼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심방예배 돌예배 장례 예배도 그날 큐티말씀으로 한다. 한 권사님께서 돌아가셔서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날 큐티말씀이 다말이야기였다. 첫째는 죽고 오난은 밖으로 사정하고 다말은 시아버지와 동침하고... 이 본문으로 장례예배를 드렸다. 읽어놓고서 바꿀걸 그랬다 했다. 할말이 없었다. 어머니를 보시고 어머니가 옳다, 네가 나보다 옳다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될 것이라, 그 믿음의 길을 어머니가 가셨으니 여러분도 그 길을 가실거다, 그 복을 받으실거라 설교했던 기억이 난다. 큐티말씀으로 심방하면 어떻게 목사님 제 상황을 아시나 하시는데, 역시 베끼길 잘했다 싶었다.
16년 전 여름에 이 자리에서 예배를 드렸다. 수요예배를 드렸다. 에어컨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시간 정도 예배 드린 것으로 기억한다. 말씀만 세시간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더 충격이었던 것은 한분도 흐트러짐 없이 예배에 집중하셨다. 이 힘은 뭘까, 그때부터 더 궁금하고 말씀의 파워, 말씀으로 살아낸다는 것이 어떤걸까, 저에게 그런 목마름으로 다가왔다.
우리들교회는 장모님의 암사건 때문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8년 전 개척을 앞두고 목세 1기를 참여하며 더 깊이 우리들교회를 따라가게 되었고, 1년 전에는 온 가족이 관계의 어려움을 당하는 아이를 품고 갈곳이 없었는데, 어디 갈 수 있을까 해서 판교에 왔던 기억이 난다. 저희들에게 있어서 우리들교회는 환란당하고 빚지고 원통해하는 저와 제 가정이 피하는 아둘람굴이고, 살아갈 소망을 주고, 나가야 하는 길을 여는 공동체이다.
여러분들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저는 우리들교회의 소식들과 흐름들 속에서 제가 비빌 언덕을 찾고 가야 할 길을 찾고 있다. 이런 목회도 있구나, 이런 교회도, 이런 성도들도, 이런 가치관도 있구나 한다.
목세 1기 참여하고 말씀하신대로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고 라는 표어를 정하고 달려가고 있다. 말씀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그 말씀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겠다. 말씀 앞에서 나를 발견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가. 하나님의 용서,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말씀 앞에서 나를 비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할까, 제가 순간 순간 그것을 잊어가면 물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죽어가는 것을 본다. 원통해하고 억울해하고 인정받지 못해 섭섭해하고 편가르고 목사지만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려 하고 성도들을 이용하려 하는 마음으로 가득차고 계산한다. 말씀 앞에서 저를 보지 않으면 저는 정확히 하나님을 막는, 하나님의 통로를 막는 불순물이 되어 있고 걸림돌이 되어 있다.
THINK 양육을 보면 양육과 큐티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내 죄를 보는 큐티, 십자가의 길로 가는 큐티, 나의 약재료로 다른사람들을 살리는 큐티, 인생의 목적을 행복이 아니라 거룩임을 아는 큐티, 내게 일어난 사건을 말씀으로 해석하는 큐티, 한 영혼의 소중함을 아는 큐티,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큐티,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님을 아는 큐티, 구속사의 시각으로 사람과 사건을 보는 큐티.. 어떻게 이런 지혜가 떠오를 수 있을까? 어떻게 말씀 앞에, 말씀을 하나하나 보아가며 어떻게 이런 것들이 정의될 수 있을까? 저로써는 충격이다. 그 크신 구속사의 가치관이 어떻게 하면 제 속에 들어와 저와 제 사역 제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마음껏 구속사를 펼쳐가실 수 있을까? 목마르고 닮고싶고 따르고 싶은 소망이다.
사단은 계속 우리를 공격한다. 선악과 따먹어서 눈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살아라, 죄 이런거 생각하지 말고 원하는대로 하고싶은대로 살라고 무리를 부추긴다. 제가 양육하며 주일말씀 나누었다. 주일 말씀이 바벨탑이었다. 니므롯 같은 리더쉽을 발휘하고 성을 지을만큼의 인구를 동원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따라오고 그들을 한 언어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웍이 되고, 지을 재료인 흙과 바를 역청이 충만하면 내가 바벨탑을 안지을까? 자신이 없었다. 지을 것 같았다. 잘나가고 멋있고 화려한 바벨탑을 지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가지로 제 수준과 상태를 아시니, 놔두면 하늘끝까지 갈 것이 뻔하니 여러가지를 허락해주셨다.
저는 운전면허 빼고는 모든 시험에 다 떨어져봤다. 시험에 붙는 것을 보면 우러러보고 싶다. 저는 공부 하고싶었는데 잘 안되었다.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시험 늘 떨어졌다. 저는 장로교 통합측 목사이다. 장로교 통합은 장신대가 메인이 되어 흘러가는 교단이다. 저는 학부도 장신대에 떨어지고 신대원도 장신대에 떨어졌다. 그래서 장신대 가서 시험 보면 안된다는 굳은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Ph.D는 떨어질 것 같아서 아예 안갔다. 그리고 주님이 한번 더 보내셔서 목사고시를 떨어지게 하셨다.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이다.
제가 개척한 이유는 한가지이다. 다섯분이 모여서 개척한다 하시는데 저를 부르셨다. 기도도 깊이 안했다. 담임목사 할 수 있다는 오직 그거 하나였다. 세종이 어딨는지도 몰랐다. 담임목사 시켜주신다니 그냥 좋아서 갔다. 꿈 비전 주님의 부르심 그런거 있었지만 그런 것 보다 담임목사 할 수 있다,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누가 저 같은 사람을 불러주겠는가, 그거 하나 때문에 간 것이다.
그러니 사람에게 끌려갔다. 교회에 유능하고 멋있고 똑똑하고 추진력 있고 화려한 분들이 오신다. 그리고 정확하게 멋있고 유능하고 똑똑하고 화려한 분들에게 상처받는다. 그래서 사람을 아는 큐티라는 한 마디에 그렇구나, 내가 하나님도 모르지만 사람도 모르는구나, 나도 모르는구나 했다. 내가 왜 목사가 되었는지, 내가 왜 사역을 하는지 나도 모르는구나, 정말 말씀 앞에 나를 비추지 않으면 어디를 갈까, 내가 뭐하며 살까? 조금 더 편안하고 인정받고, 누가 뭐 해주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누가 인정 안해주면 땅으로 꺼지는.. 그렇게 살다가,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속으로는 사람을 위해 살다가 가겠구나. 그 묶임과 답답함이 뻔한 제 인생 스토리였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본문을 통해 같이 봤으면 좋겠다.
1.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거하기 위해 자신의 죄를 보아야 합니다.
환경에 장사가 없는 우리들, 그래서 율법을 주셔서 우리 모습을 비춰주시는 것이다. 죄 가운데 죽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발버둥치는데 안되는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될 것 같아? 하면서 정확하게 말씀 앞에서 나를 비추시며 나를 보게 하시는 그 율법의 기능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
19 그런 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율법의 기능은 한가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다.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율법이 하는 일이 있다. 율법은 구약성경, 율법 아래에 있는 우리가 다 죄인이라고 가두어 두기 위함이다. 살게 하는 기능은 아니다. 죄 가운데 가두어서 너희가 죄 가운데 죽어가는 인생임을 깨달으라고 주시는 것이 율법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셔서 구원의 복을 선포하시기 직전에 율법에서 내가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 서기관들을 향해 더 율법을 강화시키신다. 간음 살인 도덕질해야 심판 받는다 생각한 그들에게 음욕을 품었다면 간음, 욕심 품었다면 도둑질, 미워하면 살인, 사람을 무시하면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하신다. 정확히 네 실체가 어떤 지 알라고 우리를 계속 인도하신다.
그래서 율법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초등교사 몽학선생 인도자가 된다고 한다. 율법의 정죄를 당하는 순간이 어떤 순간인가? 내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이 된다. 그러면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거꾸로 율법 앞의 내 모습을 봐야 하고 내 실체가 드러나야 하고 내 것이 드러나서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인생임을 내 영혼속에 고백할 때 그것이 구원의 완성이 될 것이라고, 그래서 율법이 필요하다고 우리에게 말씀해준다. 정죄당하는 그 순간이 예수님 만날 때 이다.
저희 장모님은 집-교회만 아시는 분이다. 딸을 사모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바쳤다고 한다. 그의 인생은 암으로 마쳤다. 그때 교회 분위기는 기도해서 목사 사위 얻고 딸은 사모가 되었는데 저 사람은 무슨 저주를 받아 암에 걸렸나, 50중반의 나이에 암에 걸려 죽어가는 것이 그렇게 애쓰고 수고했던 삶과 전혀 맞지 않는다 생각했다. 육체도 아프고 마음도 힘들고 영적으로는 무슨 저주를 받는가 이야기했다. 영육이 다 무너져 가는 상황으로 가셨다. 치료차 서울에 오시며 우리들교회 예배에 오셔서 드리기 시작하셨다. 그날 본문 내용 기억 못하나 김양재 목사님께서 계속 하셨던 이야기가 기억나신다 한다. 암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암은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암은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장모님은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의 실체를 보셨다. 애쓰고 수고하고 노력하고... 모든 것을 헌신했는데 천국 갈 믿음이 없는 자신의 모습을 봤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어떻게 왜 했는지 모르겠다, 무얼 했는지 모르겠다' 천국 소망도 없이 내가 가야 할 그 길도 모르면서 자기 열심에 속고 남도 속고 우리 모두다 속은 삶을 산다. 김양재 목사님 말씀 들으면서 회개하기 시작하셨다. 2년간 투병하셨고 돌아가시기 1주일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들었다. '나 천국 갈 수 있을 것 같아. 수정아, 너도 이 땅에서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 잘 하다가 우리 천국에서 만나자' 인간의 노력으로 천국 가는 것이 아님을, 인간의 열심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지 않음을 인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무너져야 진짜 생명이신 예수를 만난다. 정말 생명이신 예수를 이제서야 만나는 시간을 보게 되었다.
이런 목사님과의 인연이 있었기에 목회자 세미나가 열린다 하시니 참석하게 되었다. 개척을 앞둔 시간이었다. 1기때 김양재 목사님의 언니 되시는 선교사님이 물가로 나오라 라는 찬양을 부르셨던 것이 기억난다. 울다가 감격스러웠다. 간증콘서트에서 왜 콘서트를 간증으로 할까 했는데 앉아서 2-3시간동안 또 감동 감격 충격속에 빠졌다.
우리들교회는 김양재 목사님의 말씀에 힘이 있어서 간다고 생각했다. 맞다. 맞는데 그러고 나서 또 하나의 힘을 봤다. 그것은 목장 예배였다. 마음을 열고 자신의 약함을 토해놓고 그 말씀을 삶속에 받아들이고 들어주고 함께하고 함께 우는 그 모습들.. 이것이 우리들교회 공동체의 힘이구나 했다. 감격과 감사로 목회자 1기를 마쳤다.
구속사의 말씀을 계속 들어가면서 하나님은 저의 상태를 진단해 주셨다. 너는 인정중독에 걸려 있는 사람이다. 그럴 것 같다. 어려서부터도, 살면서도, 지금까지 인정받지 못했다. 인정에 늘 목말라했다. 그러니 목회하면서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오직 그것 하나에 관심을 기울이는 인생이었다. 그래서 부교역자 시절에 응급실에 두번 실려갈 만큼 최선을 다해 목회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인정중독에 빠진 저의 상태를 드러내기 위해서 저희 담임목사님을 쓰셨다. 인정해주시지 않았다. 하면 할수록 너는 왜 그래 하셨다. 인정이 이세상에 남은 모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제가 있을 곳이 없었다. 무너지고 무너지는데 하나님께서 제 안의 두려움의 실체들을 꺼내주셨다.
첫번째 두려움은 물질이었다. 마음 가운데 왜 이렇게 내가 교회에 충성할까 생각해보니, 이 교회에서 벗어나면 나는 뭘 먹고 살지, 내 가족들은 어떻게 살지 하는 먹고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두번째가 인정받지 못하는 억울함과 분노가 저를 끌고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착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마음 가운데 정말 두려운 것은 돈이고 명예였다.
외식의 모습은 가정에서도 드러났다. 겉으로는 굉장히 유하고 상대방을 품어줄 것 같은 사역자였지만 집에 돌아가면 그 분노들을 쏟아내었다. 제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을 듣지 않는 것 처럼 보일 때, 그 꼴도 못보았다. 손찌검을 했다. 아이는 여름성경학교때 얼굴에 다섯 손가락 자국이 난 채 교회로 갔다. 큰 사모님께서 저와 제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놀라셨다. 제 아이에게 이런 폭력과 분노를 쏟아내서 미안했다. 제 아이가 그것 때문에 요즘 힘들어한다.
구속사의 말씀이 들어가면서 한참 잘못되었다 생각했고 그 고민이 들 때 아내가 양육을 시작했다. 아내가 한 청년을 양육했고 장로님의 가정에서 수십년간 반주를 했던 청년이 양육을 마치고 사모님 꼭 양육하셔야 한다는 말에 남편과의 관계가 어렵고 자녀 때문에 힘들고, 물질 때문에 사역을 놓겠다고 하는 성도들을 붙잡고 양육을 시작했다.
제 아내가 양육했던 한 집사님의 나눔이다. 이분은 두 번 결혼하셨고 두 번 이혼하신 경력으로 우리 교회에 오셨다. 이 분의 나눔이다.
제 죄를 못 보고 남편 죄만 보면서 탓하고, 제 열심으로 제 성품으로 참아내고 있었다. 남편을 우상 삼아서 생명 살리는 일에는 관심도 없고 풍성한 물질에 갇혀 가정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내 것만 보고, 남편 구원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참았다고 하지만 그것은 명분이었을 뿐, 남편을 나 편한대로 바꾸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나의 행복을 위해 신앙을 이용한 사람이었다. 바람이 난 남편이 주인인 줄 알았는데, 믿으면서도 악함을 품고 있는 제가 더 죄인임을 이제야 알게 된다. 이혼 재판을 하며 그 사람에게 다 내어준 물질이 이해되지 않고, 억울하고 또 억울했다. 재판은 바람을 폈기에 이혼했는데, 오히려 재판석에서 남편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100% 옳으신 하나님이 인정되니 그것도 인정이 되었습니다. 물질은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지 제게는 필요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저를 위해 그렇게 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어 감사하고, 100% 옳으신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었다. 믿음 좋은 사람은 없고 믿음 좋은 환경만 있다는 말씀이 인정이 된다. 제게 물질이 있었다면 저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물질을 의지했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저는 지금 광야학교에 있다. 남들이 볼 때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사는 여자고, 월세방에서 살고 공장에 다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에 평안을 느끼며 살아간다. 공장을 다니며 난생 처음 몸 쓰는 일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큐티 하고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딸아이를 힘들게 하는 딸의 친구가 저의 어릴 적 모습 같아 회개가 된다. 내 딸도 아프지만 그 아이도 아프구나 생각하게 된다. 제가 힘들게 했을 것만 같은 친구들이 떠올랐다.
아들 녀석이 라면 사먹으려고 기숙사를 몰래 빠져나가다가 걸려 퇴소 처리를 당했다. 화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내새끼' 하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제가 학창 시절에 권세에 순종하지 못해 겉으로는 착한척 하면서 속으로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권세에 순종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내가 잘못하고 깨닫지 못하니 우리 아이들이 수고가 많다. 예전 같으면 머리 싸매고 걱정에 걱정을 했을 텐데 이제는 걱정이 안된다. 100% 옳으신 주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저도 10주 성경공부를 하고 아내가 10주 양육을 한다. 그런데 아내가 10주 양육한 분들이 바뀌었다. 분명히 반응은 제가 더 좋은 것 같은데... 그래서 저도 양육을 시작했다. 삶의 자리에 가서 문제들을 풀어가는 것이다. 달려가서 기도해주세요 가 아니라 말씀으로 문제를 보고 오히려 회개하고 오히려 나갈 방향을 찾고 한분 한분 서는 것을 보면서 양육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적용) 나를 새롭게 하시기 위해 나의 악함이 드러나게 하시는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되시는가?
행위로 의롭게 되려다가 남들의 비난과 자책으로 고통당한 적은 없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내가 100% 죄인인 것이 인정되십니까? 내가 무너지는 이 때가 예수님을 만날 때인 것이 인정이 되십니까?
2.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거하는 자는 약속을 이을 사명을 감당합니다.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저와 함께 양육했던 한 남자분의 혈기 많고 성공 중독 인정중독에 빠져있다는 집사님의 나눔이다.
막내동생이 사춘기를 심하게 앓으니 정신 이상이 왔다. 그것이 악화되어 정신지체가 되었다. 그러면 교회다니는 저라도 기도하며 아픔을 감싸줘야 하는데, 막내동생에게 '어떻게 집안에 이런 자식이 태어났어' 하며 면박 주고 폭행을 행사했다. 생명수 강을 막는 것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바리새인처럼 거룩하게 행동하는 바로 저였다. 이런 환경에서도 참아준 엄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엄마 너무 힘들었을텐데 이런 상황에서 이혼안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가 속을 털어놓았다. 'OO야 요즘 잠을 못자, 수면제를 먹는데 잠이 안와서 꼬박 날샐 때가 많아. 외할머니가 치매로 돌아가셨잖아, 내가 그럴까봐 두려워서 잠을 못자' 저는 그 순간 50평생 함께하면서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생각했다. 맛난 음식 멋진 여행으로 보여주는 효도만 하려 했지 깊은 데서 울고 있는 한 영혼의 두려움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개가 일어났다. 내 생각만 하고 살았구나, 엄마의 아픔을 이해하려 한 적이 한번도 없구나, 부모님과 동생은 지옥을 살고 있는데 나만 편안함으로 살고 있었구나..
이 양육을 받는 중간에 어머니께 영접기도 하고 어머니가 예수 믿기 시작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분의 또 다른 고백이다.
그러나 다 됨이 없는 인생이다. 어느날 늦게 일어난 딸에게 벌로 계란후라이를 시켰다. 먹고 있는데 짠내가 확 났다. 소금을 많이 친 것 같다. 싱크대에 토하면서 성질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날 큐티말씀이 있었다.
막 9:50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제가 얼마나 싱거우면 하나님이 딸을 통해 소금을 뿌리셨겠습니까? 딱 맞는 말씀을 주시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얘야, 매일 큐티하고 기도하니 너 뭔가 된 것 같지? 너 100프로 죄인이야. 매일 말씀 소금 안치면 뉴스중독 음란 명예중독에 빠질거야. 그러니 내 말씀 짜더라도 받아먹어' 라고 하시는 것 같다.
맞습니다. 저는 하루라도 말씀을 비추지 않으면 버려질 인생이다. 저를 붙드시고 매일 말씀큐티를 주셔서 감사하다.
이 간증 하시는데, 시골에 계셨던 부모님과 정신지체 동생과 온 가족이 같이 나와 기도하고 함께 찬양하는 일들이 있었다.
말씀이 내면화 육신화 체질화 되어 살아낸다는 것, 그러나 사실은 내가 얼마나 견고한지 그게 잘 안된다. 인정중독 성공중독에 빠진 제가 잘 안되니 하나님께서는 이번에 이런 카드를 쓰시는 것 같다.
저에게 우리들교회 말씀을 처음 알려주신 분은 저희 어머니시다. 제 삶의 스승이자 멘토이시다. 교회를 개척할때도 건축할때도 순간순간 어려워질때마다 저는 어머니께 기도 부탁하고 상의한다. 하나님께 묻는 것 보다 어머니께 묻는 것이 더 많다. 현재 어머니는 뇌출혈로 의식 없이 2년째 누워계신다. 제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영적 마마보이 같은 저를 이제는 물어볼 곳 없게 만드신다. 이제 하나님 앞에 물어봐라, 하나님 앞에 서라, 말씀대로 산다면서? 그럼 말씀 앞에 엎드려라. 그리고 네가 정말 말씀의 인도를 받아라 라고 해주시는 것 같다. 이사야가 웃시야가 죽어야 소명을 받는 것 처럼, 장모님은 제 아내의 웃시야였고 어머님은 저의 웃시야였다. 하나님 앞에 서는 인생이 되게 하시려고 성령께서는 저희 가정을 이끄시고 만지고 계신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인 것을 너는 아느냐고 물어보시는 것 같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가려고 내가 사역하고 있고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잘먹고 잘살고 적당히 존경받고 편안한 노후 세워지는 것이 제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주님께서 저를 흔드시는 것 같다.
저희 장모님은 수정아, 예수 잘 믿다가 천국에서 만나자 말씀을 남기고 가셨고, 침대에 누워계시는 저희 어머님을 보면 완규야 나 너희 교회 가서 예배 드리고 싶다 꼭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럴 때 마다 조용히 저를 돌아보게 된다. 나보다 기도도 많이 하시고 나보다 말씀 더 사모하시는 제 어머니는 왜 누워있고 나는 왜 서있나, 나는 왜 살아있나, 나는 왜 이렇게 서서 말씀 전하고 있지, 나보다 훨씬 나은 분인데...
그래서 나를 왜 살려두셨나 생각해본다. 내가 사역하고 이자리에 있는 이유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약속을 유업으로 받아, 하나님의 약속을 유업으로 받아 그 약속들을 증거하라고, 구속사의 약속들을 증거하라고 나를 살려두셨나 보다 싶다. 100% 옳으신 하나님이 내가 정신 못차리니 그저 인정중독에 빠져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하니 저희 어머님이 누워계신 것 같다.
저의 한계는 여전하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감사하다.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인생임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 저는 여전히 보잘것이 없다. 그래서 감사하다. 인정중독을 매일 벗어날 수 있도록, 그런 환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여전히 도망가고 싶다. 그래서 감사하다. 양육하면서 6과의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내가 목마르다 하실 때 성경을 응하게 하시려 하셨던 그 예수님, 마지막 십자가에서도 사명 때문에 목마름을 고백하셨던 예수님의 사명, 그것 아니면 저는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양육 하면서 뭐가 그렇게 힘드세요? 라고 물었다. 성도들이 금리가 올라가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5억 빚을 졌고, 5억 빚져서 빌려줬고, 주식 하다가 잃어버려 그 빚을 내고 있는데 금리가 올라가니 이자 내야 할 돈이 막 쌓여간다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일하면서도 정말 힘빠지겠다 했다.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도 얼마나 힘이 빠질까, 살맛 없겠다 생각이 든다.
그런데 생각이 든다. 그럼 금리가 내려가면 살만한가?
잘되어도 교만해지고 안되면 비굴해진다. 교만과 비굴 사이만 왔다갔다 하다가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구나, 사명이 아니면 살아간다는 이유가 뭔지도, 왜 사는지에 대한 결정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모습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그렇게 열어주신 하나님의 사역 위에 쓰임받고 계신 김양재 목사님, 그리고 우리들 교회. 그 강물이 흘러서 금강 자락에 있는 저희 같은 교회가 받아먹고 산다. 이렇게 여러분들의 삶의 간증과 나눔들로 살아가고 있는 교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시기를 바란다. 우리들교회 모습이 세계속의 대안이 되는 것 처럼, 그래서 여전한 방식으로 이 자리를 지켜주시는 것을 통해 아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구나는 것을 저도 확인하며 저도 살아가겠다.
신분 성별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약속이 이 땅에서 이어져가는 것이, 그 약속을 누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합니다.
적용) 정신지체 동생,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자녀, 누워계신 의식이 없는 어머니 모두 예수님 안에서 약속 받기 위해 걸어가고 있는 예수님의 지체들인 것이 인정되십니까?
지금도 나는 사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인생임이 인정이 됩니까?
[ 말씀맺음 ]
율법 앞에 정죄받고 내 인생의 한계를 만나는 것이 예수님을 만나는 때라고 하신다. 그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약속을 이어가는 사명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 기도제목 ]
* 보련
1. 직장 인도함 받았는데, 나에게 훈련하는 장소인 것 알고 훈련 잘하기
2. 이번 주 토요일 유아부 큐페 잘 마칠수있기를
3. 말씀보며 하루 살기
* 크리스틴
1. 말씀이 잘 들리도록. 큐티 하면서 말씀과 친해지도록
2.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충성하기.
3. 부모님과 할머니의 건강 위해서
* 교희
1. 본질을 잘 분별할 수 있도록
2. 하루만 잘 살도록
3. 애도 잘 할 수 있도록
4. 소년부 큐페 참석하는 아이들 은혜 받도록
* 은우
1. 지금 주신 시간, 공간, 관계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유업의 땅이라는 것을 믿고 누리고 하루만 잘 사는 믿음 주시도록
2. 청년부 아웃리치에 기름부으시고 모두 (인 리치) 할 수 있도록
3. 목장과 목장식구들의 영육을 보호해주시고 성령의 자존감으로 하루 만 잘 사는 은혜 (Gods grace in our lives) 내려 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