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2.7.3.
본문: 시편 8:1~9
설교자: 손윤상 목사
제목: 우리들의 예배
우리들교회 온 지 4개월된 젖먹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주님만 의지하는 성령의 호의가 되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어떤 권사님이 강남에서 망해서 의정부로 갔다. 다른 집 살림까지 차린 남편을 15년 기다리면서 뼈만 남아서 온 남편과 신앙생활을 해서 좋다고 한다.
함께 모여서 예배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생각해보도록 한다.
1.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주목해야한다.
온 땅이 아름답다고 한다. 시인은 하나님의 탁월하심, 위대하심을 찬양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관광지의 자연을 보면 넋을 잃고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주목하고 빠져들어야한다. 내 영혼이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의자에만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주일에 예배를 잘 드리지 않으면, 생활이 압박하게 된다. 주일은 하나님에게 압도되는 것이 있어야한다. 나의 주중의 삶을 잘 살펴보아야한다. 과도한 열심히 일을 했다면, 예배가 시작부터 끝까지 냉랭하게 될 것이다. 시편은 배열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시작은 복 있는 자는 여호와를 복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한다. 가운데는 탄식 시이다. 수많은 고난에서 하나님을 찾는다. 8편은 회중이 갖고 있는 고난으로 주목하고 바라보면서 찬양하고 있다. 전혀 생뚱맞게 배열된 것이 아니다. 응답으로 기록된 것이 시편 8편으로 기록되어 있다. 탄식 시를 허락한 이유가 있다면, 말씀을 묵상하며 찾게한다. 마치 시냇물이 찾기에 갈급함같이 하나님이 위대하심으로 영광으로 대답해주신다. 그런 경험들이 다 있지 않나요? 평일이 고단하면 삼성역 들어가는 그 길이 너무 좋다. 마음이 쿵쾅드린다. 찬양만 들어도 너무 좋다. 한 주간 나를 돌아보고 회개하고 한 주간 그렇게 살 것을 다짐하게 된다. 부흥하게 된 교회들을 많이 다녔었다. 우리들교회는 사실 부흥하려는 교회는 아니지만, 대표적으로 부흥하는 교회다. 부흥하는 교회는 예배가 살아있다. 부흥은 하려는 것이 아니라, 되어지는 것이다. 거기가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신다, 하나님이 샘을 주신다 라는 소문이 들리면 목 마르고 배고픈 영혼들이 주께로 오게 된다. 주일 설교하며 기도하는 것은 청중들이 날 바라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설교자도 성도 눈치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면 우리들의 생각이 다르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일까? 비중, 중요도라고 본다. 내가 이 상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께 있을 수 있다라고 한다. 모든 만물이 존재하는 이유가 하나님 때문이다. 하나님이 없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다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자신에게 너무 몰두되어 있다. 하나님의 선과 능력보다 나의 선과 능력에 몰두되어 있다. 그래서 불안해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가치를 알게되면 그것들이 작게 느껴진다. 강남 한복판을 지나가면 강남에 살고싶다가도,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적용] 절망적인 사건 가운데서 예배에 나오는가? 목마른 사슴, 배부른 돼지
주중에 과도한 열심을 내는 부분이 무엇입니까?
2. 겸손함을 회복하는 예배입니다.
골리앗 앞에서 어린 소년인 다윗이 물맷돌 하나 갖고 승리를 경험했다. 담임목사님의 성령의 지금 설교를 들으며, 성도에게 부끄러웠다. 말씀 앞에 반응하는 것을 보니, 저와 차원이 달랐습니다. 말씀 앞에서는 지적 수준을 자랑하는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주제 파악을 못하고 제가 회개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세상의 기준을 보며, 내가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한 적이 없나요? 내가 세상적으로 잘 되고 신앙도 잘 되는 것이 좋다 생각한다. 세상적인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미련하고 약한 것들을 택하여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그 사람들을 통해서 드러내신다. 그러나 우리 맘에 내가 미련하고 약한 자가 되길 늘 두려워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그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를 누릴 수 있다. 성도를 향한 애통함보다 나 자신의 애통함이 있었다. 하나님은 나에게 한번도 성공하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나의 곤고를 드러내라고 하신다. 오히려 다 버려야 된다고 하셨다. 내가 성공하고 잘되고 부흥하는 것이 아니라, 온 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어린 아이와 젖먹이로 살아야한다고 말해주셨다. 자신의 마음에 합한 자를 통해 주의 일을 이뤄가는 분이시다.
[적용]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나를 괜찮게 보이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도 숨기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학벌, 가난, 가정환경? 하나님 앞에서 내 주제를 알고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모습을 서 있습니까?
3. 주님의 돌보심과 사랑을 신뢰하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시기하시기까지 사랑하신다고 한다. 사랑은 에노시 라고 쓰여있다. 에노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연약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예수님은 몰약 탄 포도주가 아닌, 신 포도주를 받으셨다. 고통을 더 극심히 느끼는 것은 시 포도주였다. 주님의 다함없는 사랑을 예배에서 맛보고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적용]주께서 하늘과 별보다 더 생각하시고 돌보시는 존재가 바로 나임이 믿어집니까? 주님의 사랑을 입은자로서 내가 생각하고 돌보아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기도제목
류가영
1, 나의 주제를 알고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예배회복
2. 새로 올 목장식구를 위한 기도
3. 건강회복과 영육간 강건
4. 남자친구, 가족, 지체를 위한 기도
+저번주 못 올린말씀도 올립니다.
날짜: 2022.6.26.
본문: 사도행전 24:27~25:11
제목: 성령의 호의
설교자: 김양재 목사님
성령의 호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1. 죽이는 호의를 분별해야합니다.
카리스는 하나님에게 쓰면 은혜고, 사람에게는 호의다. 벨릭스는 왜 호의 베풀길 원했을까요? 사람 받을 일을 주고 돈을 기대했다. 유대인들에게는 마음을 얻고 싶었다. 나름 양쪽에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했다. 벨릭스는 결국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했지만, 유대인들을 결국 잔인하게 죽인 것이 드러났다. 마음을 얻고자 댓가를 탐하는 호의는 자기를 죽이는 호의가 됐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벨릭스는 굉장히 유능한 행정가였다. 가이사에서 성실강박이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인수인계 끝나고 진행했다. 가장 중심지 예루살렘을 방문해야겠다.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주기를 청했다. 길에서 매복해서 죽이겠다고 2년전에 하던 짓거리를 그대로 하는 것이다. 지금 총독, 대제사장 다 바뀌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이 하나도 안 바뀌었다. 그 높은 대제사장과 사네드린 공회원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하였다. 환경이 변해도 내가 변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건 살인밖에 없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배우자 자녀를 내게 붙여주신 것이다. 내 새끼만 최고라고 계속 끼고 돌다가는 죽이는 호의가 된다. 평판을 위한 호의가 살인이 된다. 그래서 호의의 주어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되어야한다. 주님의 호의인 은혜를 구해야한다. 지도자가 아주 잔인한 벨릭스에서 아주 선한 왕베스도로 바뀌어도 내가 바뀌지 않으면 죽이는 것밖에 없다. 미워하고 상처 묵상하며 서로를 죽이는 것밖에 없다. 베스도가 상식적인 사람이다. 각자 케이스가 다 다르겠지요. 거절해야할 것도 있다. 복음 위해서.
[적용]나는 호의를 베푸는 사람입니까, 받는 사람입니까? 거절해서 살린 경험이 있습니까? 수없이 예배를 드려도 유대인들처럼 변하지 않는 내 마음 교만은 무엇입니까?
2. 차별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서로 호의를 주고받으며 대화가 되는 것 같다. 베스도의 호의는 바울이 아닌 유대 유력자들을 향하고 있다. 이미 찾아가는 호의, 요청 들어주는 호의, 8일이상 교제하는 호의를 보여준다. 벤 플랭클린 효과다. 한번 투자하면 받아내기 위해서 자꾸 한다. 다 똑같다. 인간적 호의는 이렇게 차별적이고 선택적이다. 도덕적인 아닌 내편 네편이 확실하다. 힘이 있으니 차별을 확실히 더 할 수 있다. 베스도도 결국 잔인한 벨릭스와 다를 것 없고 혈연, 학연, 지연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없다.
[적용]대놓고 차별, 은근히 차별하는 것 무엇입니까? 요즘 누구의 마음을 사고 싶습니까?
3. 둘러서서 고발해도 사과합니다.
또 고발을 한다. 지겹지도 않은가싶다. 이 세상이 그런 것이다. 그런데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다고 한다. 능히는 능력있고 강한 힘이 있다. 천만인이 진 칠지라도 나를 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이사랴에게 그 결정권이 있다. 이 사람들이 번지 수 잘못 찾았다. 바울은 로마 시민이다. 바울은 있는 그대로 말한다. 8절의 변명은 아폴로게오마이, 사과로 인한 변명이다. 논리적으로 치열히 다투는 게 아니라, 낮은 자세에서 사과하며 말하는 것이다. 모두가 네 죄를 랄랄라 하는데, 그저 둘러 쌓여서 있는 그대로 말한다. 어떤 얘기를 들어도 별 일 아니구나 생각하면 된다.
[적용]나를 둘러서서 고발하는 중대한 것은 무엇입니까? 거기서 사과하나 맞대응하나? 평소에 목장에서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된 적이 있습니까?
4. 아무도 나를 내줄 수 없는 특권입니다.
2년째 가이사의 재판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나온다. 3번이나 같은 말을 한다. 바울은 이 사건의 시작부터 자신의 목적지를 로마라고 생각한다. 이미 성령께서 말씀하신 사항이다. 로마도 보아야 하니라. 그게 바울의 목적이다. 성령의 목적지를 분명히 알았지만, 방법을 몰랐다. 그런데 방법은 환경으로 가르쳐 주신다. 그래서 날마다 큐티를 해야한다. 내 줄 수 없다의 내주다는 카리스마다. 네 번째 호의다. 하나님께서 나를 내어줄 수 없는 이 환경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가장 황급기관이 가이사에 가기까지 어느 누구도 바울을 건들 수 없다. 로마시민의 죄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내어줄 수 없는 내 환경인 것이다. 그 환경이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다. 왜? 하나님이 백프로 옳으시기 때문이다. 성령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뭐하고 싶냐 목장에 물으니 거의 여행간다가 많다.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그 환경은 나를 가이사랴에게 이끄는 성령의 호의라는 게 믿어지십니까? 호의에는 감사라는 뜻도 있다. 황제를 넘어 주님께로 이끄는 하나님의 용서이고 은혜이다. 나를 그 정도로 해야 이 짧은 인생에서 주님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결혼도 직장도 공짜인 호의는 이 세상에 없다. 다들 이해타산을 무섭게 숨기고 호의를 베푼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의 영혼을 요구한다. 바울은 오늘 죽겠다하면 죽겟나이다 하는데, 하나님은 내 아들이 너 대신에 죽었으니 너는 죽게 할 수 없다. 라고 하셨다. 바울을 안전하게 데려갈 황제는 로마밖에 없다. 이제 그 말을 할 수 있도록 바울에게 로마 시민권이 있다. 여러분의 갇혀있는 환경이 하나님의 용서인 것을 믿습니까? 이 짧은 생에 하나님 만나라고 주신 환경이다. 갇혀있던 것은 내 힘이 아니고, 성령의 호의고 용서고 은혜였다. 인간의 호의도 그렇게 쓰인다. 하나님의 용서이고 은혜인줄을 아셔야한다.
[적용]갇혀있는 자리가 가이사 황제보다 더 큰 주님에게로 인도되는 길인 것이 믿어지십니까? 가장 급할 때 쓸 수 있는 로마 시민권은 무엇이 있을까요?
기도제목
이소정
1. 하나님의 호의, 은혜를 구하는 한 주가 되도록
2. 생활예배 잘 드리기
3. 신교제 신결혼의 인도하심
4. 가족과 지체들의 영육간 건강을 위해
류가영
1. 성령의 호의를 받은 적 없다고 생각이 드는데, 받은 호의를 잘 묵상하도록
2. 남자친구, 가족, 지체의 구원
3. 영육간 강건과 병원진료를 위한 유연근무제 허락 받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