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3 시편 8:1-9 (우리들의 예배) 송윤상부목사님
오늘의 설교본문은 회중에 한자리에 모여 찬송하는 찬송시라 할수있습니다.
1.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주목하는 예배입니다.
시인은 시작과 끝을 여호와 주여 하며 감사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탁월하신 위대하심을 주목하며 감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예배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혹시 요즘 예배가 무미건조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일예배에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지 못하면 지난한주간 힘들었던것이 괜찮아지지 않고 다음주에 있을 일들이 불안해지고 힘들어집니다. 예배에서는 압도되는 은혜가 있이야합니다.
내게 그것이 없다면 주중에 삶을 잘살펴보아야 합니다.
한주간 세상적인것에만 집중하며 살진않았는가 고민해봅시다.
하나님이 주중에 여전히 바뀌지 않는 탄식을 허락하신 이유가 있다면 내영혼이 하루하루 큐티를 보며 주를 찾기 갈급하기를 바라시는것입니다. 그래야만 주일에 은혜의 충만함을 허락하신다는 겁니다. 주일의 예배가 기다려지는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오면 목사님의 말씀이 내게 주신 말씀같고 그 힘으로 또 다음 한주를 살아내기로 약속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주목하며 이 세상이 담을수없는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바라보고 겪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살아갈수있습니다.
1절에 하나님의 영광이 뭘까요? 중요도라고 할수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가장 비중있고 중요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든것을 갖춰도 하나님의 영광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것이고 모든것이 없어도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면 모든것이 있게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보다 자신에게, 자신의 능력에 비중을 두고 삽니다.
하나님을 주목하면 문제가 있어도 그것이 내문제가 아니라 이 문제가 하나님께 속한것이고 하나님의 뜰안에 있다는것이 인정이 됩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면 그곳에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문제를 통해 선하심을 증명하신다는것을 믿으면 하나님의 온유와 사랑을 느낄수있습니다.
-적용 : 절망적인 사건과 상황가운데 예배의 자리로 나옵니까? 세상의 자리로 나갑니까?
주중에 과도한 열심을 부르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예배에 목마른 사슴입니까? 배부른 돼지입니까?
2. 겸손함을 회복하는 예배입니다.
주님의 손에 붙들리기만 하다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이들을 심판하는 도구가 될수있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경험했습니다. 조롱하는 골리앗앞에서 나는 물멧돌만으로도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하게 하신다는 고백을 하며 승리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며 나의 지적수준을 자랑하는것이, 하나님을 잘안다는것이, 부끄러운것임을 알게되었습니다. 겸손히 젖먹이가 되어 주님을 찾지않는 저를 회개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내가 미련하고 약한자가 되는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번에 띵크양육을 받으며 이사야의 화로다 나는 망한 인생이라고 쓸모없는 인생이라고 고백하기 싫어하는 저를 보았습니다. 허나 하나님은 그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주시는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앞에서 젖먹이처럼 나를 낮추고 있습니까?
-적용 : 하나님이 아닌것으로 나를 괜찮게 보이려고 하는것은 무엇인가요? 지금도 숨기고 싶은 학벌, 가난, 가정환경등 나의 과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내 주제를 알고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모습으로 서 있습니까?
3. 주님의 돌보심과 사랑으로 하는 예배입니다.
우주는 사람이 측량할수없이 광대합니다. 그런 우주에 비하면 사람이 정말 먼지같을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주를 손으로 눌러 별을 만드시고 각각 자리에 있어야 할것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바로 먼지보다 못한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먼지와 같은 피조물인 사람을 질투까지 하여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그런 우리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아껴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보다 조금 모자라게 만드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무엇을 해도 내 존귀와 가치를 증명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다하는 그 관계안에서만 내 존재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과 관계하면시 내 죄를 보고 엎드려 회개하며 고백하면 그를 통해 하나님이 내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십니다. 그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신뢰하며 맛볼수가 있는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실때 몰약포도주가 아닌 신포도주를 드신것은 십자가의 고통의 고난인 순간에 더 쓴 고난을 받으신것입니다. 그것은 내 고난에 더큰 고난을 받는자를 위해 죽으셨다는것입니다.
더쓴 고난의 절망의 자리에서 대속물로 죽으셨다 알게되니 아버지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아버님을 알게되니 내안의 열등감,인정중독, 쓴뿌리처럼 나를 괴롭게 했던 죄패들이 더이상 괴롭지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안에서 성공을 부르짖던 기복이 팔복의 가치관으로 바뀌는 은혜가 있을수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아들을 죽이시며 구원하시려한 그마음을 보길 바랍니다.
-적용 : 주께서 하늘과 별보다 더 생각하시고 돌보시는 존재가 바로 나임이 믿어지십니까?
주님의 사랑을 입은자로서 내가 생각하고 돌보아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기도제목>
A
1. 가족구원
2. 직장내에서 내시선이 아닌 하나님 시선으로 볼수있길
3. 아웃리치 자리 잘지키고 갈수있길
4. 생활예배
다님
1. 중등부수련회,아웃리치 은혜가운데 무사히 영육강건히 끝까지 동행해주시길
2. 말씀을 통해 제안의 상처를 보고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를 경험할수있길
3. 신교제 신결혼, 기도할수있길
4. 매출이 떨어져서서 가격개편하고 신제품 준비중인데 인도하심아래서 진행될수있길
5. 생활예배 잘 지킬수있길
윤아목자언니
1. 생활예배 잘 지킬수있길
2. 이번주에 집도 보러가고 토요일에는 양쪽 어머님과 한복을 보러가는데, 넉넉히 감당할 마음주시고 하나님과 동행할수있길
3. 분기 마감 일과 결혼준비 과정속에서 벨런스를 잘 지킬수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