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3 시편 8:1~9 우리들의 예배
(손윤상 목사님)
국수 말고 국시, 무디말고 문디 손윤상 목사 입니다. 성도님들이 제가 누군가 많이 생각을 하실 것 입니다. 온지 4개월 밖에 안되었는데, 주일 강단에 서게되어 많이 놀랍습니다.
수요 설교도 못했는데, 주일설교를 하라고 하시니 너무 놀랐습니다. 혹시 주일 새벽큐티 설교입니까? 여쭈었는데, 아니라고 하셔서 다리가 풀렸습니다. 그럼에도 배운대로 주일 큐티 본문이 모지 하고 보니 2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들교회 온지 4개월된 젖먹이가 몰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주일 설교가 주님만 의지하는 성령의 호의가 되길 의지합니다.
설교를 하게 되니 간증 거리를 주셨습니다. 지난 교회에서 섬기던 권사님이 전화를 주셨는데, 강남에서 의정부로 오신 분입니다. 이정도 이동은 폭삭 망해야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의정부를 폄하하는것이 아닙니다. 상황가운데 오게 되셨습니다.
이 권사님의 남편이 사업을 실패하고, 바람도 피시면서 권사님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15년 정도 되는데, 이혼하지 않고 남편이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 부탁을 하셨습니다. 이번에 전화와서 남편이 돌아왔다고 함께 신앙생활하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왜 이분이 남편을 그렇게 기다리는가? 떠난 남편을 기다리지 않고 정서적인 분리를 했으면 좋겠다 집착을 내려 놓아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을 했습니다. 권사님이 감사를 하시며 우리들교회 가셨죠? 너무 잘 되셨습니다. 김양재 목사님 설교를 들으며 남편을 기다릴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제서야 권사님이 남편을 통해 말씀을 붙들게 된거라고, 지난 저의 사역이 얼마나 얄팍하고 천박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강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사역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이미 그 말씀이 강에서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나누라고 설교자로 세우셨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시편의 대표적인 찬송시입니다. 시인이 여호와 우리 주여 라고 고백하는것을 보면 회중이 한자리에 모여 부르는 찬송 시 입니다.
온회중이 한자리에 모여 찬송하는게 주일 모습 같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우리들의 예배라 했습니다. 2년동안 비대면 예배로 이 모여 드리는 예배가 많이 퇴색되어 가지는거 같은데,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아보겠습니다.
1.하나님의 위대함을 주목하는 예배입니다.
1,9절
시인은 시작과 끝을 주의 이름이 온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라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탁월하심 위대하심을 감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흠모하는 것을 보면 거기에 온 정신을 빠트립니다. 시인은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 보고 있습니다.
주일에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탁월하심 위대하심을 주목하고 깊이 빠져 들어야 합니다.
성도님들은 어떤 예배를 경함하고 계십니까? 언제부터인가 주일 예배가 무미건조해 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일 예배에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지 않으면 삶이 바르게 정렬 되지 않습니다. 지난 한주간의 일이 나를 조여오고 압박해 옵니다. 그래서 염려 합니다. 주일은 하나님께 압도 되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주일 예배가 무미건조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평일의 삶을 보아야 합니다. 세상에 열렬하게 살고, 하나님께 무미건조하다면 주일 예배의 시작부터 끝까지 냉랭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가게 됩니다.
시편은 150편으로 되어져 있는데, 한편한편 배열이 영감을 가지고 되어 있다 합니다.
시편 1~2편은 복있는 자에대해 말합니다.
3편~7편은 탄식 시입니다. 개인의 삶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고난과 핍박에서 하나님을 찾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8편은 회중이 가진 문제와 고난으로 하나님을 찾는게 아니라, 먼저 바라보며 주목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
개인의 고난에서 하나님을 찾은게 응답으로 배열되어 있는 것입니다.
탄식시를 허락하신이유는 고난의 환경에서 말씀으로 하나님을 찾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주중의 삶을 하나님을 찾는 갈급함으로 보내야 주일 예배가 주님의 응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 주일이 그렇게 기다려 집니다. 삼성역에서 내려서 골고다 언덕같은 그곳을 힘들게 가는게 아니라 달려 가게 됩니다. 그리고 문앞에서 심장이 뛰고 30분 먼저 와서 맨앞에 자리를 잡고, 중보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예배가 시작되면 다같이 일어납니다. 간주 소리만 나와도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한 고난을 주시고, 정확하게 찾아와 주시는지, 지난 한주를 회개하고 앞으로의 한주를 기대하게 하십니다.
저는 부흥하는 교회의 목회자고 되고 싶었습니다. 부흥하는 교회의 특징은 예배가 살아 있습니다. 예배의 환경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거기 가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신다. 주를 찾고 찾았는데, 거기 가면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면 사람들이 몰려들게 됩니다.
우리들교회가 말씀이 항상 준비되어 있기에 목마른 심령들이 달려와 예배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성도도 설교자도 그래야 합니다. 온땅의 영광을 덮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탁월하심 위대하심을 경험하면 가치관과 생각이 다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인가요? 땅의 언어로 생각하면 비중, 중요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상받을 때 보면 연예인들이 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고 합니다. 내가 상받은 이유가 하나님 때문이라고 하는것입니다. 이 비중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만물이 존재 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것을 가졌지만 하나님이 없으면 모든것을 잃었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의 불행은 하나님께 비중을 두는 것 보다 자신에게 비중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보다 하나님의 선함보다 자신의 능력과 선함에 몰두하니 만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주목하면 이땅에 중요한게 중요해지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예배를 드리러 강남에 오게 되면 주변이 너무나 휘왕찬란 합니다. 역시 강남이다 강남에서 살아야 한다 라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그런마음이 들다가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내 인생에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살고 순종하는게 전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선교사님들이 순교의 현장에서 애쓰시다가 돌아오셔서 간증하시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에 감동이 됩니다. 순교의 위협 앞에서도 믿음을 지킬때 그 간증을 들으면 너무나 은혜가 됩니다.
죽음의 위협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사람들이 배척하는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 안에 있는가,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권사님께도 그분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던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마음이 있었 던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볼수있고 깨닫고 생각할 수 있는 교회로 온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주목하면 내가 가진 문제가 전부로 다가오는게 아니라, 이 문제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당하는 모든 일이 안전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루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어머니가 생각 났습니다.
어머니는 중년에 마사지를 받으러 가시고, 절에 기왓장을 올리는 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는 분이었는데, 허세가 있으셨던거 같습니다.
그런 가정에서 어느날 부터인가 밤만 되면 부모님이 돈때문에 다투셨습니다. 아버지가 많은 돈을 끌어다 썻는데, 감당이 안되, 빚쟁이들에게 연락이 오고 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와 저와 동생을 다른데 보내시고, 죽음을 택하셨습니다.
어머니도 죽고 싶으셨을텐데, 자식때문에 죽지 못해 사셨습니다. 어머니가 흐느끼는 소리에 아무말 못하고 가슴이 먹먹해 잠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자리에 죽지못해 오신 분이 있으십니까? 잘 오셨습니다. 기가막힌 상황가운데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것이 잘하신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도 그러다 한 집사님의 전도로 교회에 가게 되셨습니다. 새벽기도도 가셨는데, 답이 없는 상황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했습니다. 어느날 주일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어머니에게 들렸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날개 그늘아래 살고 있구나 하는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고 인도하신다는게 믿어지니까,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절대 잃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님이라고, 내게 남은 것이 있구나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두 자녀를 남겨 주셨구나 하시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삶이 되셨습니다. 기복에서 팔복의 삶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절망적인 사건과 상황 가운데 예배의 자리로 나아 오십니까? 세상의 자리로 나아 오십니까?
-주중에 과도한 열심을 내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예배와 말씀에 목마른 사슴입니까? 배부른 돼지 입니까?
2.겸손함을 회복하는 예배 입니다.
2절
하나님은 원수와 대적자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 약하고 미성숙해서 제대로 된 도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을 통해 무너트리십니다.
다윗은 이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면 물 맷돌이라도 승리 할 수있는걸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에게 권능을 주셔서 대적자들을 부끄럽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말해도 말씀이 들리지 않고, 겸손히 주님을 찾지 않는 제 모습을 보면서 회개가 나왔습니다.
성도의 가장 큰 착각은 세상에서 잘 나가고, 믿음도 좋아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이는 아닙니다. 세상에서 잘 나가는건 하나님이 필요하시다면 도구가 될 뿐입니다.
이세상의 상식과 가치관이 얼마나 약하고 잘못된 것인지 우리를 들어서 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10주 싱크 양육에서 이사야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하는 고백을 보면서 제가 하나님 앞에 설때 이 고백을 하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망했습니다. 하는 말을 하기 싫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를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내가 겸손하게 어린아이와 젖먹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들교회가 하나님의 능력에 붙들린 이유가 무엇일까? 모든 사람이 별인생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사람이 부하든 가난하든 어떻든 상관없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는 공고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기술이 아닌 목회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고 나온게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이력서에 낼때는 고등학교를 적어본적이 없습니다. 대학교 부터 적었습니다. 아들이 한번 고등학교 어디 나왔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특목고를 나왔다고 반쯤 속여가며 말을 했습니다. 우리들교회는 사실 있는 그대로 써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공고를 써야 한다는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이력서를 쓰고, 이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공고를 지우기 위해 열심히 사역했습니다. 공부도 하고, 세미나도 참석하며 열심히 했습니다. 이런 시간이 지나갈수록 제안에 탈진이 오고, 제가 더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이것으로 사역하는게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 약점을 그대로 드러낼 때, 젖먹이와 어린아이가 될때, 공고를 있는 그대로 오픈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3년 고생하면 담임 목사가 될 것이라는 자리가 나서 원주로 갔습니다. 200~300명 앞에서 목회를 하니 만족이 안되었습니다.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불 붙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지난 교회 담임목사님이 축복하면 그대로 되는 은사가 있으셨습니다. 저를 보고 축복을 하시는데, 제안에 디엘무디가 있다며 많은 사람을 주께 인도할거라며, 부목사님들이 다 있는데, 3천명 목회를 할거라고 하며 인정 받는 거 같고 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현실은 3천명이 아니라, 3개월만에 사임을 하고 무디가 아닌 문디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깨달아 진것은 하나님은 저에게 한번도 성공하라고 하신적이 없는 것입니다. 무엇을 갖추라고 하신적이 없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건 제가 어떤 모습이든 온마음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가 되길 원하셨습니다. 주님앞에 어린아이와 젖먹이로 서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에 합한자를 통해 그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 앞에 젖먹이와 어린아이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나를 괜찮게 보이려고 하는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숨기고 싶은 학벌 가난 가정환경등 나의 과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내 주제를 알고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모습으로 서 있습니까?
3.주님의 돌보심과 사랑을 신뢰하는 예배입니다.
3~5절
우주에 있는 별들중 은하수는 종이를 480키로미터를 쌓아올린 거리라고 합니다. 우주는 사람이 측정할 수 없게 엄청나게 광대합니다. 우주속에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초라한 존재 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주의 별들을 주님의 손가락을 꾹꾹 눌러 만드시고 태양계와 천체를 주관하시는 그런 주님이 누구에게 관심이 있다고 하십니까? 사람에게 있다고 하십니다.
어거스틴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인가? 하셨을때, 피조물인 사람을 시기하기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라고 할 때 히브리어로 에노시 라고 합니다. 이는 연약하고 유약한 한계가 많은 뜻이라고 합니다. 인자는 벤 아담이라고 하는데, 벤은 아들이고 아담은 흙과 먼지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놀라운 점은 우주의 점과같은 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우셨다고 합니다.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생명으로 우리를 사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누려지십니까? 믿어지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려면 우리안에 상처와 쓴뿌리가 제하여 져야합니다. 오직 우리가 십자가 앞에 서서 우리에게 묶여있는 피해의식 자기연민 내면의 쓴뿌리가 제하여져야 주님의 사랑을 신뢰하며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중2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시고, 그 사건으로 제 안에 쓴뿌리가 미움과 원망이었습니다. 없었으면 좋겠다는 부모라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살은 안됩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내야 합니다.
저는 아버지가 부재하신 이후에 너무 힘들어 계속 아버지에게 원망과 분노가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힘들어 하시니 배신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노가 자기 연민과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내안에 자라나게 했습니다. 그것도 모른체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으니 저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름수련회 때 하나님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너무 힘들다고 엉엉 울고 나니 주님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 고요한 음성으로 내가 너를 안다. 너를 사랑한다 하시며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전혀 않고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왜 죽으셔야 했는지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양육자님이 아버지가 왜 그렇게 죽으셔야 했는지 생각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6주차때, 그 말을 듣고 아버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내가 목마르다 하신 말씀이었는데, 예수님은 군병들이 준 몰약탄 포도주는 드시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온전히 받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목마르다 할때 군병들이 준 신 포도주는 드셨습니다. 왜 그려셨을까? 했는데, 이 신포도주는 고난에 고난을 더 겪게 하려고 군병들이 조롱을 하려고 준것이라는 주석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에 고난을 더 하는 이 절망의 자리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도 그랬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절벽의 낭떠러지에서 누구도 손 잡아 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 상황 때문에 그렇게 하실 수 밖에 없었구나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환경에서도 영혼구원에 관심을 주셨는데, 저는 이런 상황에 몰약탄 포도주만 먹고 영혼에는 관심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해자임을 인정하고 나서 제안에 열등과 자기연민 피해의식이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자리에 피해의식과 자기 연민의 감옥에 갇힌 분 혹은 누구도 손잡아 주지 않는 낭떨어지에 서있는분이 있습니까?
주님을 바라보시고 주님께 나오십쇼, 그 사랑을 맛보십쇼, 그러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럴때 자기연민 열등감이 풀려지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주께서 하늘과 별보다 더 생각하시고 돌보시는 존재가 바로 나임이 믿어지십니까?
-주님의 사랑을 입은자로서 내가 생각하고 돌보아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기도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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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헌 세상에 흘러가지 않길, 신교제 신결혼 소망
세진 말씀보며 진로의 인도 하심
광훈 회사 생활 하면서 하나님 붙잡고 부르짖으며 의지하며 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