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6 성령의 호의
사도행전 24:27-25:11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의 자서전에서 이런 말을 남겼어요. '내게 호의를 베푼 사람이 내가 호의를 베푼 사람보다 나중에 나를 도울 가능성이 크다.' 내가 도와준 사람이 나를 도울 가능성이 커야 하는데 거꾸로 한 번 호의를 베푼 사람이 또 베풀기 쉽다는 거예요. 이것을 벤 프랭클린 효과라고 하는데요. 심리학자들이 여러 차례 실험을 했는데 실제로 그런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호의 한 번 잘못 베풀었다가 호구가 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드나요? 아니면 '역시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과 더 잘 지내는 게 답이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시나요? 그거 자체가 다 지금 이기적인 자기 생각으로 결정하는 거죠. 이렇게 호의는 받으면 받을수록 좋은 것이지만 한 편으로는 갚아야 할 빚이 되기도 합니다. 본성이 이기적인 사람들이 호의를 두고서도 보이지 않는 경쟁을 치열하게 하는 것이 인생의 모습이죠. 인간적인 정이나 계산으로 호의를 베풀거나 받으려 해서는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성령의 호의는 베풀기도 하고 거절도 해야 합니다. 오늘은 성령의 호의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어요.
1. 죽이는 호의를 분별해야 합니다. (27절, 1-5절)
27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1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 24장 27절부터 읽을게요. 벨릭스가 바울에 대한판결을 미루고 헤롯 궁에 구류한 이유는 오늘 이렇게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함이라고 해요. 여기서 이 마음을 얻고자 하여를 원어로 보면 카리스예요. 이것이 호의를 베풀고자 하여 인대요. 카리스가 하나님께 쓰이면 은혜가 되고 사람에게 쓰이면 호의가 됩니다. 이게 참 어려운 거예요. 분별하기가. 우리가 호의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너무 호의가 은혜 같아요. '아유 너무 은혜예요.' 이러자나요. 나한테 잘해주면. 벨릭스는 왜 호의를 베풀기 원했을까요? 벨릭스는 갇힌 바울에게 사람 만날 자유를 주고는 돈 받을 일을 기대했죠. 그리고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에게는 마음을 얻고 싶었어요. 내가 가둬 놨으니까 이제 마음을 얻고 싶어했어요. 나름 양쪽에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호의라는 단어가 네 번 나오는 거예요. 네 번. 원어로 똑같은 단어가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네 번을 좀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벨릭스는 결국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한 것 같지만 결국 유혈 폭동이 일어나고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죽인 것이 알려져서 로마로 소환을 당해서 불법을 행한 것도 다 드러나고 해가지고 사형 언도를 받았죠. 마음을 얻고자 대가를 탐하는 호의는 결국 자기를 죽이는 이런 호의가 되는 거예요.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예요. 그래서 이제 12대 총독 베스도가 부임을 하는데 이 사람은 벨릭스와는 다른 아주 굉장히 성실하고 유능하고 행정가이고 아주 정치가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가이사랴에 부임한 지 사흘만에, 로마에서 거기로 오려면 얼마나 멀어요. 배 타고. 그런데 사흘만에 성실 강박이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초고속으로 인수인계를 끝내고 유대의 문화적 중심인 예루살렘을 방문을 했어요. '총독으로서 백성의 마음을 사려면 이 가장 중심지 예루살렘을 방문해야 되겠다.' 이 사람은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거기서 대제사장 및 높은 사람과 면담을 하는 거예요. 신임 총독으로서 큰 호의를 베풀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여기 대제사장들이라고 복수로 표현이 되어 있는데요. 워낙 유대는 우리가 구약 성경에 봐도 대제사장은 한 명이어야 하고 죽으면 직계 자손에게 계승되는 굉장히 거룩한 직분인데요. 로마가 마음대로 돈 받고 매관매직하니까 우리가 2년 전에만 해도 '그 입을 치라.' 아나니아 대제사장 기억나죠? 그 사람이 이스마엘 대제사장으로 바뀌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제사장들인 거예요. 들. 그리고 높은 사람은 산헤드린 공회를 말하니까 지금 입법, 사법, 종교가 똘똘 뭉쳐 어용이 되었고 이제 그들의 판결은 이미 공정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죠.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베스도를 만나자마자 한 가지 청을 합니다.
3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 3절이에요.
바울이 가이사랴로 오기 전 그 40명의 암살단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매복해가지고 바울을 죽이려고 결단한 것 기억나시죠? 기억나십니까? 그러니까 벨릭스 총독이 더났자나요. 바울을 알던. 이제 처음 온 베스도 총독님은 뭘 알겠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또 훌륭하기까지 해요. 그러니까 이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주시기를 청합니다.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제 바울은 죄가 없으니까 재판으로 죽일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길에서 매복해서 죽이겠다고 계속 2년 전에 하던 짓거리를 그대로 하는 거예요. 지금 총독이 바뀌었자나요. 또 대제사장도 바뀌었자나요. 그러니까 환경이 다 바뀌었어요. 그런데 뭐가 안 바뀌었죠? 그들의 마음이 하나도 안 바뀌었어요. 2년 전과 똑같아요. 그 대단한 대제사장들과 높으신 산헤드린 공회원님들은 2년의 세월동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제사를, 즉 예배를 드렸겠죠. 예배 전문가인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 때문에 날마다 회의를 하겠죠. 그런데 만장일치로 그 전문성으로 바울을 매복해서 지금 죽이고자 하는 거예요. 세상이 변하고 환경이 다 변했는데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내가 하는 짓은 뭔가 하면 오늘 이렇게 살인이에요. 학벌과 모든 것을 가지고 이 살인을 생각해요. 그래서 내가 너무 안 변하니까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는 환경, 변하지 않는 남편, 변하지 않는 자녀, 변하지 않는 이 모든 환경을 우리한테 하는 것은, 그 변하지 않는 모든 식구들을 주신 것이 내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데 내가 변하지 않고 있는데 이 호의가 베풀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변하지 않는 내가 하는 것은 살인 의지밖에 없는 거예요. 이 유대인 지도자들이 머리가 너무 좋아서 이미 벤 프랭클린 효과를 알았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미 인간의 호의라는 것은 한 번 베푸는 사람이 계속 베푼다고 그랬자나요. 그러니까 호의를 베풀면서 찾아오고 이런 호의, 자기도취에 빠져 있는 베스도에게 호의를 구하는 거죠. '이왕 그러시는데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좀 옮겨 주시면 어떨까요?' 그런데 거기는 매복해서 죽이려고 하는 게 있자나요. 내가 변하지 않고 사람의 호의를 받게 되면 사람 죽이는 호의가 되는 거예요. 자 이게 뭔가 하면 남편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다 남편이 딱 돌아오면 교회를 떠나고 여행 다니면서 흘러 떠내려가, 물질이 없어서 물질이 생기면 중독에 빠져서 또 예배와 공동체를 떠나요. 그러니까 이것이 바로 그 물질이 안 생겼으면 그러지 않았을 건데 죽이는 호의가 되는 거예요. 심방 보고에 보니까 돈을 좀 잘 못 벌던 남편이 갑자기 큰 돈이 생기니까 그냥 남편의 호의로 풍족한 생활을 하는 거예요. 돈이 없어도 있는 것처럼, 있어도 없는 것처럼 사실 항상 구원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막 풍족하게 누리다가 돈으로 자녀를 유학을 보냈는데 그곳에서 왕따를 당하고 힘들어지니까 또 다시 한국에 왔는데 적응을 못하고 대인기피와 공황, 불안이 온 거예요. 그리고 자신을 버려 둔 부모를 평생 원망하며 독이 섞인 말을 부모에게 뱉고 심지어 부모에게 폭력도 행하면서 부모와 아예 연을 끊고 살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돈이 있던 것도 자기 탓이 아닌데 생긴 거 가지고 자식 위해서 이거 저거 다 해보려고 했는데 남편의 호의가, 이런 부모의 호의가 자녀를 사랑한다고 모든 것을 희생한 부모의 사랑이 하나님이 없으니까 결국 죽이는 호의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어렸을 때부터 지금 말씀을 넣어주는 거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루 말을 할 수 없어요. 우리는 선한 게 없어서 내 돈 생기면 내 자식한테 쓰고 이거 밖에 모르자나요. 그럼 이것이 죽이는 호의가 된다는 거죠. 이때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베스도의 호의를 얻었다면,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보냈으면 바울이 죽었을 거 아니예요. 매복한 그 사람들한테. 그러니까 이제 죽이는 호의 맞죠. 그렇죠? 이 호의를. 결국 사람에게 구하고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고 사람의 평판과 인정을 받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고 결국은 그 호의로 내가 죽는 거예요. 누군가를 죽이고 내가 죽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 구할 때 똑같이 구함이지만 이 호의가 은혜, 카리스로 변한다 그랬자나요. 주어는 항상 하나님이어야 돼요. 그러니까 예배를 통해서 날마다 내 환경을 변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원수같은 나의 유익에 반하는 저 바울을 죽여 달라고. 그러니까 회사에서도 나의 유익에 반하는 저 상사를 죽여달라고 기도하는 게 아니라 주님의 호의인 은혜를 구하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큐티와 목장은 어디서고 답이에요. 보세요, 여러분. 지도자가 문제가 아니예요. 지도자가 잔인한 벨릭스에서 이 훌륭한 베스도로 바뀌었는데 내가 안 변하니까 여전히 미워하고 원망하고 죽이는 것 밖에 안 하자나요. 지도자가 문제가 아니예요. 가난한 친정 아버지 밑에서 부자 남편으로 환경이 바뀌었는데 내가 안 변하니까 이 피해의식으로 내가 가난하게 살았는데 우리 남편은 부자로 살아서 '나 가난할 때 너는 뭐했냐? 너는 누리고 살았자나.' 이런 부자 남편을 증오하거나 아니면 시댁에서 맨날 무시를 받으면 가난한 아버지를 또 무시하는 거예요. '내가 가난하게 살아서 이런 걸 당한다.'고. 내가 안 변하면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미워하고 상처 묵상하고 죽이고자 하고 교만하고 이거 밖에 안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해되십니까? 그러므로 아이들을 신결혼을 시켜야 되고 믿음으로 어렸을 때부터 해석할 수 있는 이 능력을 주지 않으면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하는 일은 원망, 교만 그냥 이런 미워함. 그리고 그냥 죽이고자 하는 거예요. 유대인 대제사장들처럼. 그 높은 산헤드린 공회원의 인생의 목표는 바울 죽이는 거예요. 바울이 어디가 잘못됐어. 잘, 잘못이 상관이 없어요. 나한테 나쁘면 죽여야 돼요. 무조건. 그런데 이 사람들이 죽이고자 하는데 우리는 죽이고자 하는 생각이 없겠습니까? 살인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죠. 바람 한 번 피면 다 죽여야 되고, 다 죽어야 돼요.
4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5 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 그런데 4절, 5절에 웬일입니까?
베스도는 바울을 옮겨 달라는 요청을 듣고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기가 곧 예루살렘을 떠나 임지인 가이사랴로 갈 건데 여기 왜 바울을 데리고 오냐?' 그럼 군사까지 다 동원해서 100km가 넘는 걸 데려와야 되니까 이거는 이제 이 성실한 사람은 이건 안 맞는 거예요. 바울을 생각하는 게 아니예요. 그러니까 거기 너희들도 나와 같이 내려가서 그 사람이 좋지 못한 일이 있으면 고발하라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거절을 했죠. 예루살렘으로 데려갈 것을. 결국 이 베스도의 거절은 바울을 지켜준 것뿐만 아니라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원들도 살인이라는 죄에서 지켜준 거예요. 때로는 나의 호의라고 생각한 것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영육을 죽이는 일이 될 수 있고, 때로는 거절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이 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의 호의에는 거절의 복이 크게 작용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집안 식구들이 하는데 다 도와야되지 않냐 그래가지고 뭐가 투자하는데 온 집안 식구가 돈을 돕고 막 이러는데 우리는 목장에서 물어보자나요. 절대로 그거 하시면 안된다. 그래서 이 분만 안 했어요. 그런데 도와준 사람들 지금 다 물려 가지고 집도 팔고 다 망했는데 이 분만 딱 살아남았어. 우리들교회 500원. 돈 번 사람이 한 둘이 아니예요. 지금. 때를 잘 맞아, 내가 이런 얘기를 안 해서 그렇지. 우리는 이런 얘기는 안 해요. 이럴 때만 해요. 그러니까 이게 '가만가만 오늘 말씀이 뭔가?' 이거에 대해서 하나님은 늘 축복을 하세요. 그러니까 어떤 집사님이 불륜을 행하다가 이 불륜남이 이 집사님 너무 사랑해서 교회 오게 됐다고요. 그런데 와서 듣다 보니까 이 불륜을 끊어낼 수 있었는데 계속 가끔 연락을 해서 이 남자를 구원해야 되지 않겠는가, 교회에 오게 해야 되지 않겠는가 고민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호의가 그 사람도 나도 죽이는 거예요. 아셨어요? 그러니까 이제 이게 헷갈리시는데 복음은 그렇게 값싼 싸구려가 아니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렇게 케이스가 다 다르겠지만 그 남자의 불쌍한 영혼을 위해서 은혜를 구해야 되는 거지 내가 호의로 해줄 수 있는 거는 각자 다 케이스가 다른 거, 이걸 목장에서 물어보셔야 되는 거예요. 이 사람 계속 내가 교회 오라, 그런데 전처, 현처는 와야 돼요. 달라요. 그렇죠? 그때마다 잘 모르겠으니까 목장에서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적용] 나는 호의를 베푸는 사람입니까? 받는 사람입니까? 거절해서 살린 경험이 있습니까? (지금 내가 거절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수없이 예배를 드려도 유대인들처럼 변하지 않는 내 미움 교만은 무엇입니까?
2. 차별하지 않습니다. (6-9절)
6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7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8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9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 유대인들의 이 호의에 응답이라도 하듯 베스도는 가이사랴에 도착한 다음날 바로 바울의 재판을 엽니다. 역시 성실합니다. 서로 이렇게 호의를 주고받으며 뭔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 여기 9절에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얻고자 이게 세번째 호의예요. 카리스죠. 그렇죠?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거예요. 베스도의 호의는 이미 바울이 아니라 이미 유대 유력자들을 향하고 있어요. 바울에게는 아직 호의를 베푼 적이 없어요. 그런데 유대 유력자들에게는 이미 찾아가는 호의,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는 호의, 그들과 8일 이상 머물면서 교제한 호의를 베풀었기 때문에 이제 다시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호의를 베푸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 되었어요. 이게 바로 벤 프랭클린 효과예요. 한 번 내가 들어주기 시작하면, 한 번 투자하기 시작하면 계속 해야 되는 거예요. 거기서 이제 결판을 봐야 되니까. 그런데 우리가 목장에 오면 '지금 바로 끊으세요. 손해 봐도 여기서 끊으세요.' 그래서 우리 목장이 아주 그냥, 이분이 절대로 집을 안 사는데, 주식을 이만큼 해 놓고. '집 사라.'고 몇 년 전에 목장에서 아줌마들이, 얘기했죠? 들고 일어나가지고, 그래가지고 집 샀는데 주식이 그냥 팍 떨어져서 다시 계약금 물리자 그래서 '계약금이고 뭐고 무조건 집 사라.'고 이랬더니 그 다음에 보니까 주식이 완전히 똥값이 된 거예요. 더 내려간 거. 그래서 거긴 집을 건졌더라. 뭐 이런 얘기. 그러니까 '그 아줌마들이 도대체 뭘 안다고 나한테 그런거지.' 지금까지 그런다는 거예요. 목장은 훌륭해. 사실 이게 성경에 다 나와 있는 거예요. 호의가 오늘 네 번째 나오죠. 인간의 호의 그거 참 무서운 거예요. 사실 로마 총독이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될 대상은 로마 시민 아닙니까? 그런데 초라한 로마 시민 죄수 한 명 보다는 자신이 통치하는 유대 사회를 좌우할 힘이 있는 그런 유력자들 여러 명이 훨씬 더 중요한 존재로 생각되는 거죠. 그러니까 공정해야 할 재판정에서도 지금 차별을 하면서 유대 유력자 편을 드는 거예요. 지금. 지도자들이 다 이래요. 인간적인 호의는 이렇게 차별적이에요. 선택적 호의예요. 어떤 기준을 가지고 도덕적 판단으로 호의를 가지는 게 아니예요. 어떤 이유에서든 니 편, 내 편이 확실해요.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이런 차별이 훨씬 더 심해 보여요. 그리고 힘이 있으니까 더 차별을 확실히 할 수가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 성실한 베스도도 결국 내 편 따지는 것은 벨릭스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네요. 혈연, 지연, 학연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이 진짜 하나도 없어요.
[적용] 대놓고 차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은근히 차별하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요즘 누구의 마음을 사고 싶습니까?
대놓고 차별하는 사람 벨릭스, 은근히 차별하는 사람 베스도. 훌륭한 사람도 차별을 하고, 잔인한 사람도 차별을 해요. 예수 믿어야 돼요.
서울학생인권조례 제5조는 교육 영역에서 차별금지법이에요. 이게 통과되면 유치원에서부터 동성애에 대한 교육을 받고, 스스로 성별 정체성을 선택하는 젠더에 대한 교육을 받아요. 청소년들에게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교육을 하는데 학생도 임신할 수 있다는 것을 차별받지 않을 권리로 인정하는 거예요. 이것은 결국 청소년들의 성관계, 임신, 출산을 조장하게 되는데요. 결정적인 것은 동성애나 바른 성 가치관에 대한 윤리적 비판도 금지가 되어 표현의 자유가 박탈당하게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임신 권리, 낙태 권리 그냥 갖다 붙이면 안 되는 게 없어요. 여러분 차별을 금지한다니까 듣기에 너무 좋자나요. 이 좋은 이름을 만들어 놓으니까 대부분의 국민들은 '왜 차별을 금지하니까 좋지 않아?' 자꾸 이러는 거예요. 이런 차별금지법에 이런 독소 조항이 곳곳에 인권이라는 미명으로 조여오고 있는 거예요. 인간이 100% 죄인인데 죄인이 하고자 하는 것을 다 인정해 주는 것이 차별 금지가 아니예요.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면 망치는 지름길이자나요. 그런데 기절초풍할 일이 일어났어요. 그저께 24일에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임신 6개월 이전까지 여성의 낙태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낙태권 인정 판결을 49년 만에 공식 폐기했습니다. 이번 판결이 동성혼과 피임 등과 관련한 기존 대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보호법, 또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않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우리 기도가 과연 응답이 될 것인가? 우리 기도 너무 위력적입니다. 할렐루야. 손꾸럼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런데 미국도 보수, 진보로 갈려서 6:3으로 폐기가 됐으니까 세상에 정치인들이 이 중요한 법을 결정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아주 바이든은 너무 슬퍼한다자나요. 이게 폐기가 됐다고. 그러니까 한 사람이 너무 중요하다고 했는데 우리나라도 여섯 명, 아홉 명 중에서 지금 이제 세 명이 반대하고 여섯 명이 찬성했자나요. 그러니까 이 한 사람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이거 정치 논리로 이용하면 나라가 망하는데 그래도 정치가들이 중요한 법을 좌지우지하니까. 어제는 6.25 72주년이에요. 나라가 없으면 예배도 못 드려요. 상기하자 6.25. 아셨습니까? 그런데 이런 일들이 지금 이렇게 일어나는데 그냥 우리가 개혁을 하려해서 하는 게 아니고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다 보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고 헌법에 그 모든 것들이 다 있다는 거예요. 그 연방대법원에서.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면 안 된다는 거, 그렇게 얘기를 해서 이런 법을 제정하면 안 된다고. 그런데도 막 잘 살아지니까 이런 법이 제정이 됐다가 지금 이제 모두가. 이게 또 아니라는 사람도 이렇게 있자나요. 어쨌든 너무 감사하고 우리는 늘 미국 따라 하니까, 이것도 다 미국 따라한 거니까 미국 따라서 이렇게 했으면 너무 좋겠습니다. 할렐루야.
3. 둘러서서 고발해도 사과합니다. (7-8절)
7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 다시 7절로 가봅시다.
그 대단한 사람들이 죄인의 모습으로 나온 바울을 쫙 둘러서서 이제 이 사람들은 베스도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소동 문제, 이단 문제, 성전 더럽힌 문제, 너무 설명해서 아시죠? 그 부르다가 죽을 그 문제로 또 고발을 했어요. 그런데 여기 끝에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여기서 능히라는 원어의 뜻이 능력이 있다, 강하다, 큰 힘이 있다 이런 뜻이에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모든 것이 나를 둘러싸도 나를 해할 능력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 이거 알아야 합니다. 눈 앞에 천 만 인이 나를 둘러싸고 진 칠지라도 그것이 나를, 내 영혼을 해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문자적으로도 바울의 모든 사건은 당장은 베스도에게, 그리고 가이사에게만 결정권이 있자나요. 왜냐하면 바울은 로마 시민이기 때문이죠. 로마 시민인데도 그 권을 안 썼자나요. 지금까지. 마찬가지로 주변에서 보기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건이, 이 환경이 너무 중대해 보일 수가 있죠. 실직이나 암이나 이혼, 가출. 너무 중대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그렇게 크지 않아요. 실제로 나를 해 할 어떤 증거도 가지지 못해요. 능력이 없어요. 지금 뭐 식구들하고 불화가 일어났어요. 실직 문제가 아니예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8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 8절 보십시다.
있는 그대로 말하는 거예요. 이 8절의 변명을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아폴로게오마이, 사과. 기억나시죠? 그러니까 막 변명하고 변호하면서 내가 잘났다고 논리적으로 치열하게 '나는 죄가 없다.' 이게 아니라 한결같이 사과에서 시작하는 낮은 자세로 늘 사과하는 걸 말해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 그저 있는 대로 말하다 보면, 그게 하루아침에 그렇게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아니예요. 이 둘러서서, 이 둘러싸인 목장에서 늘 있는 그대로 말하는 연습이 된 사람들은 아무리 나를 죽이려는 고위직들이 나를 둘러싸고 진 쳐도 '내 죄인가요?'하는 심정으로, 사과하는 심정으로 이걸 말하는 거예요. 똑같은 얘기 바울도 하기 얼마나 지겹겠어요. '오해하게 해서 미안해요. 내 뜻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그런데 사실은 제가 죄를 범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처음부터 '나는 죄를 범하지 않았는데.' 이게 아니고 이렇게 이렇게. 그러니까 여러분들 직장이나 뭐나 그렇게 옳고 그름을 따져서가 아니라 이 태도 때문에 안 되는 거예요. '오해하게 해서 미안해요. 사실은 그 뜻이 아니었는데요. 그런데 저는 죄를 짓지 않았어요.' 이렇게 얘기하시라고요. 이거 목장에서 내공이 쌓여야 돼요. 평소에 공동체가 둘러서서 여러분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사건이 올 때 빛이 나죠. 회사에서 다 회의할 때 화가 나서 다 망치는 거예요. 늘 그럴 때 '제가 오해를 하게 했군요.' 조금 지나서. 그래서 여러분들이 다 승승장구하는 거예요. 우리들교회 성도들이. 승승장구 못하는 사람은 분노 조절 때문에 안되는 거예요. 학벌이 좋으면 뭐해요. 분노 조절 때문에 안되는 거예요. 소통이 안되는 거. 이게 어떤 얘기를 들어도 '이게 별 일이 아니구나.' 이런 생각이 목장에서 늘 들었던 사람은 목장에서 부부끼리 겁나게 싸우자나요. 그런 얘기를 늘 듣다가 자기 회사가면 '이게 별 일이 아니구나. 우리 그렇게 싸우던데.' 얘기를 잘 들을 수 있는 거. 목장에서 부부간에 싸운다고 우리가 놀라지 않아요. '싸우나 다음주일에 또 오시라.' 그래요. 그게 여러분들한테 얼마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공부인 줄 아세요? 어디서 그걸 보겠습니까? 어떤 집사님이 결혼 전 남편이 다른 여자하고 카톡을 하고 대화한 내용을 결혼 후에 봤다는 거예요. 그런데 막 이 사건이 너무 커 보이는 거예요. 이 사건에 온전히 둘러 싸여서 일상을 잃어버리고 입맛도 없어지고 심지어 이혼까지 결심한 거는 이 남편이 정말 신실한 교회 오빠였기 때문에. 너무 커 보여서 이런 거 가지고 세상은 이혼을 해요. 이혼 전에 또 가볼 데가 있죠. 그래서 우리들교회 목장에 인도되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그냥 조금 나눴더니 다들 '카톡 정도로 웬일이냐. 어떤 목사는 여자를 셋이나 만나던데.' 뭐 그러고 '실바람, 샛바람, 광풍 목장도 있다더라.' 이런 얘기를 계속 들으니까 '아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이렇게 다 잘 살고 있는데. 내가 죄인이구나.'를 깨닫게 되고 '내 남편이 오늘 바울처럼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내 남편이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그거 결혼 전 일이자나요. 이걸 깨닫게 되는 거죠. 적용해 보세요.
[적용] 나를 둘러서서 고발하는 중대한 일들은 무엇입니까? 사과합니까? 맞대응합니까? 평소에 목장에서의 둘러싸임이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된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이렇게 목장을 우습게 여기시면 큰 코 다치는 거예요. 아주 여러분들은 제 얘기를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거예요. 교만해서 그 목장을 안 가는 거예요. 내가 학벌로 다 이길 거 같아요? 내 실력으로 이길 거 같아요? 여기서 변호사 더둘로 다 붙었는데 바울을 못 이겼어요. 대제사장들, 유대인들 다 들러붙었는데 바울을 못 이겼어요.
4. 아무도 나를 내줄 수 없는 특권입니다. (10-11절)
10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 예루살렘에 가서 심문을 받겠냐는 베스도의 호의가 잔뜩 어린 질문에 바울은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심문을 받아도 가이사가 있는 로마에서 받아야 한다고 해요. 원어를 보면 바울은 지금 자신이
2년째 가이사의 재판 자리에 앉아 있음을 강조하는 거예요. 12절까지 세 번을 얘기를 하는 거예요. 무슨 뜻입니까? 바울은 이 사건에 시작부터 자신의 목적지가 로마임을 생각하고 있어요. 이미 성령께서 에베소를 떠나기 전부터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이거 19장 21절에 알고 있죠? 로마가 자기의 최종 목적지라는 건 알아요. 이렇게 성령의 경영에 다른 목적지를 분명히 알았는데 방법을 모르겠는 거예요. 어떻게 로마로 가야 되는지. 저도 맨날 가정 중수, 말씀 묵상. 목적지는 알지만 방법은 늘 몰라요. 방법은 '가만가만 오늘 말씀이 뭔가?' 이게 방법이에요. 여러분.
11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 여기서 내줄 수 없나이다의 내주다가 호의예요. 호의. 카리스예요. 네 번째 호의가 나왔죠. 하나님께서 나를 내어줄 수 없는 이 상황, 다시 말해서 묶여 있는 이 환경, 갇혀 있는 이 환경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거예요. 바울은 지금 죄인으로 갇혀 있어요. 가장 상급 기관인 황제 가이사 앞에 가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바울을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혀서 2년을 지내고 생각을 해보니까 바울을 죽이려고 온 힘을 다하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원과 그를 죽이려고 결심한 40명의 자객들이 2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바울은 이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했겠죠. 그래서 갇혀 있는데 2년 있다 나와 보니까 그들이 하나도 안 변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이전에 풀려나서 자유인이 됐으면 100%로 내가 죽었겠구나.' 이걸 알게 되는 거죠.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만 그때는 풀려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하나님의 은혜인 거죠. 내가 갇혀 있는 게 은혜인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내어줄 수 없는 내 환경, 이게 성령의 호의예요. 다시 말해 묶여 있는 환경, 갇혀 있는 환경이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라는 것이 하나님은 100% 옳으시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큐티를 하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이 100% 옳으시기 때문인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목장에서 성령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무얼 하고 싶냐 그랬더니 거의 다 여행을 얘기했어요. 그런데 이제 한 목장에서는 어떤 집사님이 남편과 함께 여행을 가겠다.' 그러니까 다들 '남편과 함께요?' 그러면서 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듣는 남편 집사도 너무 싫어하더래요. 그러니까 보세요. 당장 여행이 아니라 집 밖 카페도 자유롭게 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학교 다녀오면 첫째 밥 먹이고, 학원 보내고, 둘째 어린이집에서 데려와야 되고, 셋째는 내 등에 늘 업혀 있기 때문에 다 묶여 있자나요. 아무도 그 집사님을 문자적으로 내어줄 수가 없는 거예요. 내어줄 수가. 시간이 없고, 돈이 없고, 몸이 아프고 이렇게 묶여 있는 환경들이 많아요. 그런데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어줄 수 없는 이 환경은, 그런데 나를 지금 가이사에게로 이끄는, 바울이 갇혀 있었자나요. 가이사에게로, 황제에게로 인도하는 성령의 호의, 하나님의 용서이며 은혜라는 거예요. 카리스에는 자비, 용서, 은혜 이런 뜻이 다 있어요. 제가 용서를 생각했어요. 카리스에는 용서라는 뜻이 있어요. 이 세상의 호의는 무서운 거예요. 결혼도, 직장도 공짜인 호의는 없어요. 이 세상에 공짜는 하나도 없어요. 다들 이해타산을 무섭게 숨기고, 발톱을 감추고 다 호의를 베풀어요. 그거 다 뺏기는 거예요. 한 사람도 이해타산 없이 덤비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믿음이 없는 사람의 말은 믿으면 안 되는 거예요. '아유 사람은 착해요.' 착하지 않아요. 100% 죄인인 거예요.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호의, 하나님의 은혜는 빼앗길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 청년들이 지금 아무도 이혼을 안 한 거는 바로 이래요. 청년들이 잘난 게 뭐가 있어요. 그런데 은혜가 있는 거죠. 우리는 마땅히 죽어야 될 죄인이기 때문에 사단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우리의 영혼을 요구합니다. 그때 우리 주님이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바울이 '오늘 내가 죽을 죄를 지었으면 내가 죽겠다.'고 그랬자나요. 그러나 하나님은 '내 아들이 십자가에 대신 죽었으니까 어느 누구에게도 너를 내어줄 수 없다.'고 대답하시겠죠? 이게 성령의 호의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돈이 아무리 많은 부자가 정말 바울을 자유롭게 해 준다고 한들 그렇게 배를 빌려 로마까지 갈 수 있어요? 어림도 없어요. 유대인 다 죽이려고 하는데. 그러니까 최고의 군사를 붙여서, 삼엄하게 경비를 세워서 로마까지 가게 할 수 있는 건 이 땅에서 로마 황제밖에 없는 거예요. 그 길을 지금 인도하니까 최고의 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는 것이고, 그리고 이제 그 말을 할 때가 온 것을 안 것이에요. 그 말을 할 수 있도록 로마 시민권이 있었고 그걸 이제 쓰는 거죠. 그때는 또 네로가 선정을 할 때였다고 하더라고요. 저 또한 갇혀 있던 13년이 성령의 호의였죠. 저야말로 자유를 주었더라면 아주 100% 이혼하고 자유 부인이 돼서 삶을 살았을 거예요. 그러나 갇혀 있었던 것이 제 힘이에요? 이게 성령의 호의였고 갇혀 있었던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용서였는지 몰라요. 은혜였어요. 저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그 시간이 필요했어요. 인간의 악한 호의로 인해서 여러분들이 당한 게 다 많아요. 그렇죠? 속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호의인 은혜를 사모하는 줄을 믿습니다. 인간의 호의도 그렇게 쓰이는 거예요. 오늘 서로 인간들이 서로 계산하면서 네 번이나 호의가 나왔는데 이 호의로 우리는 성령의 호의, 은혜로 용서받고 용서하면서 그렇게 성령의 호의로 나가게 된 줄 믿습니다. 나를 갇히게 하는 것이 얼마나 사단에게 내어 주시지 않은 성령의 호의고, 그것이 하나님의 용서이고 은혜인 줄 모르겠어요.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갇힌 것이 하나님의 용서예요. 아셨어요? 그래서 이 자리에 와서 있는 거예요. 내가 뭐가 잘나서 하나님이 이렇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적용해보세요.
[적용] 갇혀있는 자리가 가이사 황제보다 더 큰 주님에게로 인도되는 길인 것이 믿어지십니까? (여러분들의 지금 갇힘이 하나님의 은혜고 용서고 호의인 것이 믿어지십니까?) 가장 급할 때 쓸 수 있는 로마 시민권은 무엇이 있을까요?
제가 다음주 초에 와싱턴 중앙 장로교회에서 열리는 세계 선교사 대회를 참여합니다. 그 전에 크라이스트 커뮤니티 교회에서 열리는 목회자 세미나를 섬기러 1차적으로 워싱턴에 갑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듣고 어제 한 목사님이 편지를 보내셨어요. 여기 목자님 진실이가 또 있더라고요. '구속사를 위해 목회자와 가정을 살리는 이 놀라운 워싱턴 목세 사역에 저와 아내가 쓰임 받게 될 줄은 저희 아내 말대로 너무 놀랍지 않아요? 목사님의 말투까지 닮아가는데요. 목사님과 우리들교회에 딱 붙은 딱풀 성도입니다. 오직 그것만이 살 길이라고 하네요. 머나먼 이곳이지만 휘문 성전, 판교 성전 옆에 사시는 성도님들보다 더 사랑하고 사모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설교 속에 진실양의 소원이 자기와 똑같은 내용이어서 너무 놀랍고 하염없이 울며 요리를 했는데 요리 마치기까지 큐티엠의 나를 살린 그때 그 말씀을 두 편이나 더 듣고 예배를 드렸다 했어요. 이민 생활과 사역자와의 결혼, 4년 만에 낳은 세 자녀, 그 중 가운데 아들 아이는 자폐 아이로 가정과 교회, 직장 생활에 갇혀 지내기를 29년이 되었는데 드디어 작년 2021년 유튜브로 들은 베델교회 부흥회 말씀에 하늘이 열리고 말씀이 들리는 수지 맞은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목사님의 책을 주문해서, 그 한국 서점에 있는 18권을 주문해서 듣고 읽고 그때부터 큐티인으로 큐티를 하면서 목회자 목욕탕 세미나, THINK 목회 세미나를 수료하면서 회개의 역사로 아내의 매사가 살아나고 아내 대신 말씀을 먼저 깨달으시고 그 때문에 죽도로 수고해주신 목사님께' 죽도로 수고하는지 여기만 하시네. '목사님께 감사의 큰 절을 드려도 부족하다고 합니다. 저 또한 매일, 매일 갖은 말씀 묵상을 다 해도 내적 치유, 감정 치유, 인지 치유를 한다고 말을 해도 바뀌어지지 않는 이유를 발견했어요. 그것은 죄에 대한 회개가 빠져있었기 때문이고 이렇게 목사님의 말씀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고백하면서 그 죄의 문제에 직면하고, 그 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해결 받은 바를 나누는 역사가 있었음을 깨달았죠. 그 말씀을 듣고 저 자신도 어렸을 때 겪었던 제 아픔을 솔직하게 성도들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죄를 자백하니 성도들도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목회자 성경 연구, 워싱턴 4지역 성경 연구 모임이 있었던 날인데요. 이 목사님의 목세 포스터를 모두 보셨는지 확인했는데 목사님들이 이렇게 다 등록하시는 기쁜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를 힘입어 힘 닿는 대로 워싱턴 목세를 전하고 있습니다. 주최하시는 교회 위치가 아침과 오후에 교통체증이 최고인 곳입니다. 그래서 거기까지 가려면 2시간 30분 막 이렇게 걸리는 곳에 메릴랜드 교회들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 가정은 세미나를 호텔에서 2박 3일 숙박하며 듣기로 결정했다.'고 하니까 등록하신 목사님들도 '우리도, 우리도.' 그래서 전부 다 수련회처럼 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저도 모르는 목사님 내외가 어제 밤에 주신 편지예요. 정말 이거 성령의 호의 아니겠습니까? 거절하는 분들도 많으실 텐데 이렇게 워싱턴 크라이스트 커뮤니티 교회에서 7월 5일부터 7일까지 THINK 목회자 세미나를 합니다. 7월 25일에서 27일까지는 랄리 한인 장로교회에서 또 이렇게 합니다. 또 서부에 우리가 아는 이 베델교회에서는 8월 1일에서 3일까지 세 번의 목회자 세미나를 하고 그 외에 여러 교회 집회도 다섯 곳을 합니다. 관심 있는 사역자, 이렇게 평신도 사역자들 많이 모여 주세요. 흩어져 있는 우리들교회 성도님들도 저 한 번 만나려면 너무 어려우실텐데 목세에 참여할 기회를 드리겠어요. 왜냐하면 다들 평신도 사역자들이시니까요. 저는 미국에서 처음 하는 THINK 목회자 세미나라서 '이게 누가 오실까?' 제가 이렇게 걱정이 되는 거죠. 그래서 많이, 많이 알려주시고, 특히 담임 목사님이 데리고 오시면 누구라도 정말 다 오시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목회자 한 분이 변하면 교회가 변하죠? 그래서 기도를 많이, 많이 해주시기를 바라는데, 이 목사님의 기도 제목이에요. '호텔을 잘 정하고 이동에 안전하고 저녁 식사 잘 이루어지길.' 그걸 저한테 부탁을. '2박 3일을 성령님 부어주옵소서. 등록이 더 이루어지고 목세 그날 그 자리에 한 목회자라도, 한 리더들이라도 빠짐없이 불러 주시며 마른 뼈가 살아나는 쓰나미의 회개의 역사가 목세 가운데 넘치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누가 목회에 성공했냐에 세상 가치관에 좀 먹혀서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 이곳 워싱턴 지역 목회자들을 살려주시옵소서. 살려주시옵소서.' 다 닮았어요. '구속사를 인생과 가정과 목회를 해석하고 살아내게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께. 김양재 목사님과 우리들교회 공동체에 사랑과 감사를 전합니다.' 이거 서로 서신서에 주고받는 바울과 디모데처럼 이렇게 서로. '큐티인을 번역해주시는 얼바인 베델교회에 구속사를 더욱 창대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를 통해 등록 확인되신 목회자와 이 권사님들 명단입니다.' 이러면서 이따만 하게, 저는 자원하는 한 사람이 있으니까, 진실이 같은 목회자가 계시니까 얼마나 성령의 호의를 베풀어 주셨는지 알겠죠. 그래서 제가 진짜 눈물을 흘렸어요. 제가 이렇게 갇혀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래서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일에 기도를 많이 해주시고. 다들 '목사님은 날마다 우세요?' 이러는데 제가 일주일동안 갇혀 있다가 보면은 아무것도 안 해도 교회만 오면 그냥 너무 눈물이 나는 거예요. 내가 너무 갇혀 있어,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을 하니까. 갇혀 있는 게 용서자나요. 그래서 오면은 그 사죄함의 은총이 저절로 있어가지고 누가 여러분이 저처럼 갇혀 있겠습니까? 제가 수없이 많이 아팠어도 주일날은 멀쩡하게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주일을 위해서 나를 일주일동안 죽이시는 거 같아. 내가 하도 살아가지고, 여러가지 살아있는 게 많아가지고. 그래서 이렇게 말씀이 제 말씀 아닌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이렇게 하게 됩니다.
말씀 맺어요. 성령의 호의는 죽이는 호의를 분별해야 합니다.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둘러서서 고발해도 사과를 해야 돼요. 아무도 나를 내줄 수 없는 특권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누가 뭐라그래도 나는 주의 길을 가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아무리 갇혀 있어도 거기서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는 사람은 주의 길을 갈 수가 있는 거예요.
목장 모임 참석
미혜, 연수, 민희, 예선, 우정
기도제목
미혜
나의 모든 환경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용서였음을 묵상하며 진정으로 감사하며 고백하기를
피해의식과 열등감이 많은 아빠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고 구원해주시기를
아빠 피부 습진으로 고생하시는데 고쳐 주시기를
회사의 모든 사정을 아시고 주님께서 경영해주시기를
목장식구들 각자 처한 상황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돌보시며 그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해주시기를
예선
남동생이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 중에 있는데 가족들에게 전파되지 않고 격리 기간 잘 지나가도록
목장 식구들과 아웃리치 위해 기도의 자리 잘 지키도록
계속 여러 생각이 올라오는데 하나님보다 앞서나가지 않고 성령의 호의로 잘 받으며 진행 중인 구직활동에 임할 수 있도록 (붙회떨감 하도록)
아웃리치 모임 계속 잘 붙어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