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2.
성령의 자유
사도행전24:17-23
김양재 목사님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참 자유를 좋아하지만은 성령의 자유를 누리기 원하고, 알기 원합니다. 오늘 성령의 자유에 대해서 듣겠습니다.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제가 없는 동안 <성령의 고백>으로 사과 많이 하셨나요? 잊어버리셨죠?
이번 선교 여행에 고위직에 계신 어떤 분을 만나서 복음 제시를 했는데 영접을 하셨어요. 그분의 문제는 <직장 관계>였는데요. 그러니까 상대방이 아무리 사과를 해도 진정성이 없다고 했대요. 그래서 그분 때문에 저를 찾아오셨고, 천하보다 귀한 예수님을 영접하셨으니까 그분이 얼마나 고마운가를 생각하며 그런 마음으로 다시한 번 사과를 해보시라고 그랬더니 그분이 그렇게 사과를 했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랬더니 상대방과 상관없이 마음이 평강하다고 하셨어요. 바로 이것이 자유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는 이 집회를 참석하시고, 확실하게 그날 다시 한번 영접하셨어요. 이번에 그 한 분 때문에 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그 한 분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자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게요.
첫째로, 성령의 자유는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합니다.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 오순절에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에 내려오시며 사도행전이 시작이 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하죠. 믿는 사람들이 모여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되고, 또 세워지고. 바울에 의해 소아시아와 유럽에까지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우리가 요즘 계속 읽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선교 보고 겸해서 말씀을 전하겠어요. 이번에 간 그 터키가 바로 이 소아시아의 교회가 세워진 교회들이 있는 곳이에요. 얼마나 핍박을 받으면서 세워진 교회들입니까? 그래서 잠깐 서머나 교회를 보고, 에베소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를 봤지만 교회는 없고, 다 무너진 터만 보았어요. 그리고 바울의 눈물로 세워진 이 선교지인 터키 그곳을 거의 다 이슬람이 꽉 잡고 있었어요. 그곳에서 예수 믿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면, 아마 그곳에 또 이스라엘이나 또 그곳에 예루살렘 교회나 이 소아시아의 교회가 그대로 있다면, 전 세계의 성지가 되어서 거기가 터져나갈 것 같아요. 그래서 무너지게 하셨구나 그래서 이 땅에 예수님의 무덤도 시신도 없게 하셨어요. 그런데 로마의 바티칸 성당에 베드로의 시신이 있다고 하니까 거기를 미어지게 갑니다. 아주 남대문 시장이 따로 없어요. 성당 안에서도 막 떠밀려가요. 이 땅에 우상 삼을 것은 하나도 없어야 할 것을 이렇게 샘플로 보여주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 중동 선교사 수련회를 갔기에 제가 중동에 대해서 말씀을 좀 드릴게요. 그 소아시아 교회가 있던 터키가 거의 지금 알라를 믿는 이슬람으로 채워졌는데요. 그 이슬람이 이스마엘의 후예들이고, 이스마엘을 내쫓을 때 큰 나라를 이루리라 했기에 자기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큰 자다라는 생각 때문인지.. 그 영적인 피해의식으로 이 세상에서 정말 믿기 힘든 족속들이 바로 이슬람 믿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알라로 무장되어 있고, 그리고 이제 너무 착해 보여서 행위로는 그 경건함과 종교심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마엘의 후예인 마호메트를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일생에 한번 사우디를 가야 합니다. 마호메트의 출생지 사우디의 메카가 성지가 되어서 평생 돈 모아서 거기 가는 게 소원이에요. 그래서 12월에 그때 특별히 가야 하는데, 수백만 명이 해마다 그때 이제 참배를 해가지고 마귀 돌기둥에 돌 던지기 행사로 마귀를 쫓는다고 그때 돌에 맞아 죽은 사람이 해마다 많음에도, 그곳에서 죽으면 자기네도 천국 간다고 그렇게 부러워한다는 거예요. 자살 폭탄 테러를 하다가 죽어도 이 알라를 섬기다가 죽는 것이니까 기쁨으로 하는 종교관이 그렇게 무서운 거죠. 여러분들, 그 사우디 한번 가는 게 그렇게 소원이라는데 우리도 이렇게 그 정도의 마음으로 현장 예배를 좀 사모하시면 어떨까요? 그런데 그들에게 없는 것이 자유함이죠. 그 착하고 이런 사람들이 너무 경직되어 있고, 여자들이 그냥 이 더운데 다 부르카를 쓰고 다니면서 남자들의 종속물로 살아가는데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문화가 그래요.
이렇게 알라를 믿고 있는데도 그 바울의 행적으로 터키의 이스탄불만 해도 인구가 2천만 명인데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뿐만 아니라 로마 시대의 그 지하묘지 갑바도기아 등을 보러 1년에 관광객이 4천만 명이 들어온다는 거예요. 이스탄불에. 자기네들은 알라를 믿고, 지금 관광은 바울 때문에 먹고 살고~ 이러는 거예요. 바울이 전해놓은 복음은 간 곳이 없고, 바울 때문에 먹고사는 나라가 되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얼마나 감격스럽게 사도행전을 읽습니까? 근데 이방인 중에 이방인인 제가 그곳에 가서 복음의 메카인 소아시아의 터키에서 이 복음을 전하다니 이야말로 차별 없는 복음의 진수 아니겠습니까! 중동 지역 선교사 수련회를 이번에 터키에서 한 거예요. 그래서 한150여분이 참석을 했는데요. 이런 곳에서 선교를 하시니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그러나 그곳도 이번에 제가 삶으로 전하니까 다들 큐티인에 대해서 관심 폭발이에요. 선교사 수련회에서 마지막 피드백하신 선교사님은 보통 수련회 끝나고 성령충만 받고 이제 좋아서 끝나는데 이번 수련회에서는 이 큐티를 반드시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또 십자가를 길로 놓아야 하니까 무거운 마음으로 숙제를 안고 간다고 했어요. 그러나 기쁘다고 하셨어요. 이게 거룩한 부담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죽은 자의 부활을 만나고, 전하셔서 자유를 만끽하며, 경직된 중동지역의 백성들에게 바로 이 자유를 선물로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이 지구상에서 가장 경직된 백성은 북한이에요. 그곳에 자유가 선포되기를 바랍니다! 그 곳곳에 죽은 자의 부활인 예수님이 전해져야겠죠.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지금 바울이 계속 잡혀가면서 이제 세 번째 변명을 하는 거예요. 바울이 너무 억울하게 누명을 썼어요. 그러면서 온 천하를 어지럽히는 이 전염병자야! 이런 상황에서 그 더둘로가 막 바울을 고발했잖아요. 그런데 이 바울의 <성령의 고백>은 대제사장과 더둘러의 고발과는 실제가 다르다는 것을 다시 보여주었어요. 법정에서 세 번째로 고발당한 바울은 벨릭스 총독 앞에서 소요죄에 대해, 이단의 괴수 죄에 대해, 성전 모독죄에 대해 기꺼이 변명을 했다고 했습니다. 이기려는 변명을 한 것이 아니라! 내 목소리가 아니라 우리 목소리로 공동체적인 고백을 했다고 했습니다. 이 고발이 유효하려면, 그 사건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의 고발은 증인도 없이 순전히 날조된 거짓말이었어요. 바울은 과거 공회에서 심문받을 때에 자신의 위법 사실을 발견한 것이 있다면 지금 말해보라고 도전을 합니다. 그러니까 사과를 하면서, 조목조목 팩트를 말하는 게 중요해요.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바울은 자신에 대한 변명을 마치면서 다시 한 번 부활에 대한 메시지를 증거하는 거예요. 이 조목조목 변명한 것이 그 한마디 부활의 복음 전함 때문에 이 많은 변명을 한 거예요. 그것은 바로 오직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내가 오늘 신문을 받는다는 것이죠.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할 수 있는 자리에서 더둘로와 경쟁해서 이기겠다고 변론하지 않고!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이 사명에 붙들린 바 된 바울을 보며 이것이 진정 자유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바울의 한마디 울부짖음과 외침은 사과를 한다고 죄인이 하는 소리가 아니었어요. 죽음이 가장 큰 권세라면, 죽음을 이겼기 때문에, 아무리 지금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도! (누가 뭐라고 해도) 바울은 절망의 옥에, 부정의 옥에, 미움의 옥에 갇히지 않았어요! 죽은 자의 부활인 예수가 그리스도임이 믿어졌고, 그래서 그걸 전해야 되는 거예요. 복음이 나에게 복음이 되면 우리는 자유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자유예요. 스스로 계신 자. 하나님의 이름이 스스로 계신 자 스스로 자(自) 말미암을 유(由)로 하나님이 나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합니다. 우리는 다 죽은 자예요. 이 세상에 대하여 죽지 않으면 부활을 소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죽지 않고,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전하고 갇히고, 전하고 갇히며 갑니다.
결국 그들은 바울을 죄인으로 가두었지만, 하나님은 누가의 기록으로 그의 진실됨이 2천 년 동안 지금 알려지게 하셨어요. 지금 이 세상에서 죄수로 갇혀 있어도 하나님은 속지 않으세요. 요셉이 그랬잖아요. 그러므로 오늘 가정파괴의 원인이 여러분에게 있지 않아도..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 때문에 내가 가정을 지키며, 옥에 갇혀서 심문받고 있는 여러분의 죄의 고백 나눔은 기록이 되어서 영원히 남을 것을 믿습니다. 2천 년 동안 이 바울의 행적이 지금 다 남아서 우리에게 복음이 되고 있는 거예요. 적용 질문이에요.
[적용질문]
부활을 믿는다면서 여전히 절망의 옥, 미움의 옥, 의심의 옥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요?
죽은 자의 부활이 안 믿어지니까 여러분을 때마다 죄인으로 가두어놓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성령의 자유 두 번째는 치우치지 않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은요. 그렇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다고 치우치지 않아요.
오래전에 제가 '여성 목회를 하는데 너무 많이 모이니까 이단 소리를 듣지 않겠느냐?'고 어떤 기자가 물어본 적이 있어요.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다 이단이고, 그런 게 아니죠. 제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누구 비위를 맞춘 것도 아니고. 평신도 집사로 사역을 하면서도 죽은 자의 부활 복음이 확실하기 때문에! 내가 말씀으로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이제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말씀으로 치우치지 않고 왔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래서 방언의 본문이 나올 때는 방언의 은사를 달라고 기도하고, 신유 말씀이 나올 때는 신유의 은사를 달라고 기도하고, 말씀을 보면서 우리 남 목사님처럼 가만가만 오늘은 무엇이 부족한가? 찬양, 기도, 신유, 구제, 성경, 헌금 등등 중에 내가 무엇이 부족한가? 하루도 빠짐없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의 치우침을 묵상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는 말씀으로 양육만 강조하고, 어떤 교회는 구원만 강조하고, 어떤 교회는 전도만 강조합니다. 그러면 도리어 이단 될 확률이 아주 높아요. 영혼 구원 때문에 큐티도 하고, 영혼 구원 때문에 찬양도 하고, 적용도 하고, 기도도 하는 거예요. <큐티의 꽃은 적용이고, 결론은 영혼 구원>이라고 했잖아요. 이걸 다 간과해요.
말씀이 있기 때문에 기도했다면, 오늘 말씀이 뭔가?를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했다면 기도도 뜨겁고, 또 찬양도 세련됐어요.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 은혜로운 것이 가장 세련된 거예요. 모든 순서가 유기적으로 은혜를 끼쳐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만 바르게 읽으니까 이 모든 것이 나왔어요. 하나님께서 환란이 주제가 되고, 성경이 교과서가 되고, 성령이 스승이 되게 하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런데 우리들교회는 너무나 말씀에 치우쳐 있어서 찬양 시간에 처음부터 오질 않아요. 예배는 찬양부터예요! 사전 순서가 아니에요. 사전 찬양이 아니라고요.
우리가 이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경건의 능력도 없지만, 경건의 모양도 없는 것 같아요. 이번에 갔던 공산권이었던 루마니아는 그리스정교회가 또 온 나라를 도배하고 있는 곳인데요. 루마니아도, 우크라이나도, 터키도 다 이 개신교는 발붙이기가 너무 힘든 곳이에요. 근데 알다시피 영문 큐티인을 우크라이나 사태 때 헌금과 같이 보냈잖아요. 근데 그 큐티인이 국회로 들어가게 되어 이번에 이렇게 국회의 초청을 제가 받았어요. 거기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이 발칸반도의 대표들도 다 그때 이제 오신, 1년에 한 번 있는 특별한 날이라고 하는데 제가 거기서 그렇게 마이크를 잡고.. 제가 그곳에 섰다는 것만도 너무 대단한 일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큐티인이 뻗어나가는데 굉장히 아주 영향을 줄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계의 그 교단장들도 다 만났어요. 다들 큐티인에 대하여서 관심을 가지셨어요. 우크라이나 통역을 하고, 루마니아 통역을 하면서 이 큐티인에 대해 설명을 하는 기회를 가졌는데. 그렇게 사석에서 은혜를 받으니까, 다 오라오라 해가지고 갑자기 이렇게 많이 오셨어요. 그리고 이제 끝난 후 밥 먹을 때, 모두 자기 나눔을 하는 거예요. 통역으로 들었지만 다들 처음으로 이렇게 자기 나눔을 한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주일에는 루마니아 침례교 총회장 교회에서 제가 주일 설교를 했습니다. 여자는 찬양에도 못 서고, 설교도 못 합니다. 반드시 치마를 입어야 해요. 근데 제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갔기 때문에 바지를 입고 강단 아래에서 설교했어요. 그러나 이런 곳에서도 제가 삶으로 간증을 하니까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들었어요. 너무 형식과 전통에 치우쳐 있어서 젊은이들이 그 교회를 다 떠난다고 하는데.. 근데 30년 전에 그 공산권에서 해방이 지금 됐는데. 공산권일 때는 예배가 살아있어서 그 예배 자체로 그냥 모이기만 하면 부흥이 됐다는 거예요. 근데 지금은 그렇게 하면 다들 떠나는 거예요. 그러다가 제가 그 떠날 수밖에 없는 이 환경에서도 삶으로 설명을 하니까 이 세상 모든 문제는 부부 문제, 자녀 문제, 직장 문제잖아요. 근데 우리가 골고루 가서 저도 하고, 간증도 하고 우리가 그러니까 삶은 만국 공통어였어요. 그래서 그 전통교회도 큐티인에 대해서 관심을 아주 표하셨습니다. 바울 때도 방해가 심했지만 지금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이렇게 다 치우쳐 있기 때문에 교회 한번 나가기 위해서, 또 큐티 운동을 위해서... 사단은 교묘하게 오기 때문에 우리가 늘 치우치지 않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적용질문]
여러분은 말씀, 기도, 선교, 구제, 찬양, 치유, 방언, 전총 등 어디에 가장 치우쳐 있습니까?
사도행전의 교회들이 다 무너진 것에 대해 아무리 좋아 보이는 것들도 다 무너진다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성령의 자유 세 번째는, 삶으로 살아냅니다.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바울이 팩트로 조목조목 변명했잖아요? '나는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하는 것 때문에 지금 내가 이걸 전했다!' 그런데 벨릭스가 그 이 도(기독교)에 대해서 다 안다는 거예요. 24장 10절을 보면 바울이 말하기를 벨릭스 총독이 여러 해 전부터 유대민족의 재판장으로 있었으니 당연히 유대인의 종교 문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터이니까 변명하기가 쉬워서 기쁘다고 했잖아요. 벨릭스는 유대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 상당히 지식이 있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변명하기가 기쁘다 그랬어요. 알고 있기 때문에. 더구나 아내 드루실라는 유대인이었죠. 또 가이사랴에는 오래전부터 빌립 집사가 복음을 전해왔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벨릭스는 바울이 실정법을 어긴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여기서 아는 고로라고 번역된 이 헬라어의 뜻은 알면서도 이 뜻이에요. 벨릭스는 바울이 무죄인 줄 알면서도! 석방하지 않고 선고를 연기했어요. 이렇게 다 알면서도 바로 무죄 판결을 내리지 않은 것은 역시 뇌물의 힘인 것 같아요. 뇌물 받았는데 어떻게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뜻을 바로 꺾겠어요? 판결 연기했죠. 바울을 다시 감금합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26절 보면 바울에게 돈을 받고자 하는데, 벨릭스의 돈에 대한 탐욕은 하여튼 끝이 없습니다. 벨릭스는 예수의 도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그 도를 따르지는 않았어요. 알면서도 따르지 않았어요. 예수의 도를 따른 것이 아니라 유대인 지도자들의 눈치만 보면서 자기 욕망을 따랐죠. 안다는 것은 인격적인 지식을 말하는데 그는 예수의 가르침을 머리로만 알았을 뿐 삶으로는 전혀 깨닫지도 따르지도 않았습니다. 반면에 바울은 구속이 된 상황에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도를 따라! 삶으로 담대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도를 안다는 것은 아는 것을 넘어서 일상을 살아내야 되는 거예요. 도를 안다는 것은 진짜 그걸 넘어서 삶으로 살아내야 되죠! 행해야 되죠! 지켜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자유를 누리려면 이렇게 잘 살아야 돼요. 행함이 있어야 돼요.
우리가 이 바울의 선교 여행지인 토로스산맥에 대해서 살펴봤는데 이번에 가면서 '저기가 토로스 산맥이다' 하는데 멀리서 봐도 정말 너무나 험산 준령이라서 마가가 가기가 정말 싫었겠구나 그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우리가 그 입장이 안 돼 보면 모르잖아요?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복음이 구속사적이라 유대인의 방해가 원색적으로 드러나서 다 죽이려고 했잖아요? 그럼 여러분들은 날마다 구속사가 뭐냐고 해요. 구속사가 뭐에요? 지난주 창세기 큐티 본문에서 구속사를 말씀을 좀 드린다고 할 것 같으면, 창세기에서 믿음의 조상 야곱이 끝까지 사랑한 사람은 라헬과 요셉이었죠. 그러니까 요셉을 보고 죽어도 좋겠다고 해요. 그러면 다른 아들은 뭐예요? 그러나 하나님의 커트라인에는 이 사랑받지 못한 레아와 며느리와 동침한 아들 유다가 더 위에 올라가 있잖아요. 레아가 약속의 땅에 묻히고, 라헬은 베들레헴 길가에 묻혔다고 그랬어요. 굉장히 중요한 구절들이에요. 그리고 요셉이 아니고 유다가 예수님의 직계조상이 되었어요. 믿음 있는 야곱이 좋아한다고 천국에도 똑같은 순위로 입성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예쁘고, 총리로 성공해서 가는 곳이 아니고! 힘들고, 죄 많고, 수치스러운 사람들이 회개하고 가는 곳이 천국이라는 것이죠. 이것이 성경적인, 구속사적인 가치관이에요. 그러니까 큐티를 하면서 매 주일 이렇게 구속사적인 가치관으로 봐야 자유함을 누리죠.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이쁜 걸 좋아하고, 너무 착한 걸 좋아하고, 너무 총리를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이 땅에서 사랑받지 못하니까 슬프잖아요, 레아가. 또 유다는 죄짓고 다 자기를 무시하니까 또 슬프죠. 그 마음을 생각할 때 너무 인생이 슬퍼요. 근데 잠깐이잖아요, 이 땅이. 그렇지만 언제나 레아가 하나님을 아니까 그 입에서는 찬송과. 연합과. 후한 선물! 이런 영적인 언어만 나오고, 사랑받고 있는 라헬은 '억울하다, 경쟁에서 이겼도다, 슬프도다' 이런 얘기밖에 안 해요, 라헬이, 남편의 사랑을 받는다고 찬송과~ 연합과~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니에요. 요셉도 나중에 아버지를 어기고 '기뻐 아니하여'하는데... 근데 유다는 마지막까지 내 생명을 내놓고 형제들의 연합을 이렇게 하잖아요. 유다가 연합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기가 막혀요. 이게 바로 구속사에요.
그니까 내가 이 땅에서 사랑을 못 받아도 예수 신랑을 모시고 있으면 그 바람 피우는 남편을 정말 불쌍히 여기고, 예수 신랑과 만나는 그 기쁨이! 이 모든 걸 압도하는 거예요, 압도하는! 그 기쁨이 있으니까 그 길을 가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 청년들이 그래서 이혼을 지금 안 하는 거예요. 이걸 모르니까.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라헬하고 요셉밖에 모르잖아요. 너무나 야곱이 일생 그 못 벗어나는.... 믿음이 있어도 못 벗어나는 연약함이 있더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냥 자식 때문에 아내 때문에 힘들어요. 일생 그것 때문에 힘들어서 야곱도 야곱이 됐나 봐요. 못 내려놓는 그것 때문에... 막 라헬한테 성냈다고 그랬어요. 그런데도 그 집착에서 못 벗어나고 또 요셉은 일생 못 봤잖아요. 그러니까 자기도 그걸 아는데 안 되는 거. 이런 것 때문에 너무 힘들었으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전도하기 힘든 그 터키에서도 이 요새 난민들이 밀려오잖아요. 디아스포라 난민 교회는 지금 부흥을 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난민을 다 불쌍하게 여기는데 거기는 다 지금 부흥을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의 복음을 들은 사람은 확실하게 구원과 심판으로 갈라지는 걸 볼 수 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라 우리 모두도 사단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는 것을 넘어서 삶으로 살아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터키에서도 알라를 믿는 그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은 지하드(아랍어로 성전)로, 성전(알라를 위한 거룩한 전쟁)으로 선포되어서 각자 집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인 거예요. 그게 너무 문화적으로 힘든 일이라는 그 말씀을 선교사님이 하셔서.... 우리 가정의 문제도 목숨을 걸어야지 이렇게 가정을 지킬 수 있는 일원론이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 선교사님이 2009년에 들어가서 2022년 현재 30명가량 나오는 현지인 교회가 됐는데 거기서 제가 마지막 날 말씀을 전했어요. 근데 그 교회가 아주 굉장히 부흥하고 있는 교회라고 합니다. 현지인 고등학교 자매가 찬양을 인도하는데 힘드니까 너무 은혜롭고, 너무 영적인 거예요. 이런 곳에서 선교사님들이 삶으로 살아나지 않으면 전해지기가 어려운 거죠.
바울이 그렇게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다 세웠지만, 소아시아 교회가 다 무너지고, 지진에 휩쓸리고.. 그랬기 때문에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됐어요. 그 건물들은 다 무너졌지만... 그것을 보면서 제가 우리들교회가 없어진다 해도 우리가 삶으로 살아낸다면 전 세계에 이 구속사의 복음이 전파되어서 큐티 무브먼트의 사역이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운동이 일어나게 될 것을 소원합니다. 이번에도 주일설교에 제가 없는 동안에 이 THINK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신 개척교회 목사님, 또 시골교회 목사님, 교회는 크지만 힘드신 젊으신 목사님들이 이 큐티 무브먼트에 힘입어 차별없이 복음을 전해주셨어요. 우리는 다 은혜를 받았어요. 큰 교회 목사라서 은혜를 받은 게 아니라 이제 같은 마인드로 전하시니까. 그래서 특별한 사람이 복음을 잘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묵상을 죽자고 하게 되니까. 우리와 같은 마인드의 설교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구원을 악세사리 쯤으로 여기는 목사>, <큐티인을 사고, 들고 다니며, 읽어라> 하는 목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며 궤도 수정의 질문으로 말씀을 전해주셨는데요. 개척교회인 작은 교회는 코로나 기간에 150명 가량으로 부흥이 되었고, 시골교회는 1년 예산이 6천만 원에서 지금 3년 만에 4억으로 늘었다는 거예요. 큰 교회 목사님은 서고에 꽂혀 있던 큐티인을 보고 자기는 아무것도 몰랐지만은 그냥 큐티인 책 하나 보고 천 권을 시켜서 2년째 해오고 있다고 했어요. 정말 궤도 수정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한 분이 바뀌니까 그 교회가 다 큐티 목회하는 교회로 바뀌었어요. 바로 이거죠. 고유명사에서 보통명사로 바뀌어 가고 있는 운동이 지금 시작됐네 할렐루야! 앞으로는 설교 잘하는 목사보다는 사람 살리는 목사가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교계의 지각 변동을 기대합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적용질문]
여러분은 말씀에 대해 안다고 하면서도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고 이렇게 눈치만 보면서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무엇입니까?
성령의 자유는 네 번째, 복음 전하는 자유입니다.
23.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벨릭스도 자신의 연기 결정이 마음에 걸렸는지 바울에게 큰 호의를 베푸는 척합니다. 선고를 연기하고 자유를 주라고 했어요. 친구들이 돌보는 걸 허락했어요.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너무 배려해주는 것 같지 않습니까? 갇혔지만 갇히지 않은 애매한 상태가 되었네요. 그러나 불과 며칠 전 테러를 당할 것 같은 그런 처지였던 걸 생각하면, 안전하게 지켜지면서 개인적인 신변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은혜입니다. 여러분도 다시한번 도약하기 위한 사명을 위해서 이런 자유라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벨릭스가 자유를 주어도 그 자유를 누리려면, <믿고 살고 누리는 것> 이 자유함이 있어야 되는데요. 이 자유함이 없다면 편함도, 갇힘도 다 못 누려요. 내가 누린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에요. 바울이 아무것도 안 하고 누리는 것 같습니까? 바울은 벨릭스가 부여한 자유를 이용해서, 계속해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어요. 바울이 몸이 구속된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해서 억울하게 수감되게 하셨던 것이에요. 그래서 여기서 2년 동안이나 복음을 전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억울하게 갇혔다. 하지만은 항상 죽은 자의 부활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어디나 복음 전할 환경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자유함이에요! 갇혀 있으나~ 편한 환경이거나~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의 자유인 줄 믿습니다. 그것이 성령의 자유예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피아노에 갇혀 있고, 시집살이에 갇혀 있고, 복음에 지금 갇혀 있는데! 이제는 제가 어디를 가도 쉬는 거는 너무 힘들어요. 거긴 자유함이 없어요. 놀고 있으면 늘 불안해요. 그냥 내가 한 사람이라도 만나면 그 가정이 달라질 텐데... 교회가 달라질 텐데... 놀면 불안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유가 최고의 자유인 것을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힘든 가운데서도 복음을 전하니까 자유함이 생겨서 더 기뻐서 지금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습니까! 목장에서 우리가 힘을 얻어서 또 사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목장이 있는 게 얼마나 자유함이 넘치는 최고의 복음 전할 장소인지 모르겠고. 이 복음을 전하는 자유가 최고의 자유인 것을 고백합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적용질문]
여러분의 자유는 복음 전하는 자유입니까? 나 자신을 위한 자유입니까?
여러분에게 자유가 주어지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말씀 맺어요. 성령의 자유는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합니다. 그리고 치우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삶으로 살아냅니다. 성령의 자유는 복음 전하는 자유인 거예요.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 살아계신 주! 살아계신 주가 내 갈 길을 인도하는 거예요.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기도제목
장원영
1. 죽음과 부활이라는 말씀에 제일 먼저 아빠가 생각이 났습니다.
요즘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시는 게 보이는데, 이 부분에서는 여전히 감정의 옥에 갇혀 있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감정에 치우지지 않고 지금의 때를 누리며,말씀대로 하루하루 여전한 방식으로 중심잡고 살아낼 수 있도록기도해주세요.
2. 매장에서 말씀과 내 생각이 항상 대치하며 성령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데, 알고 있는 말씀대로 살아낼 수 있게 기도해주세요.
3. 성령의 자유가 있는 우리 목장되게 기도해주세요! (아직 일대일 숙제의 옥에 갇힌 식구들 양육 과제 빨리 마치고 자유해지길~)
4. 남동생이 공동체 궤도 안에 들어오도록 기도해주세요.
5. 모두 건강 지켜주시고 운동 시작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정지윤
1. 5과 양육과제 무사히 잘 마칠 수 있도록.
2. 체력 잘 지키도록.
3. 부동산의 매입 조건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고 사람들도 소동스러운 와중인데, 말씀보고 잘 묻고 기도하며 갈 수 있도록.
이지영
1. 오른쪽 다리인대가 회복되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2. 경련 안 하도록.
3. 양육 받을 수 있는 지혜가 있도록.
4. 신교제 할 수 있도록.
5. 아빠와 동생의 영혼구원.
6. 20일에 부모님 무사히 성남으로 부족치 않고 이사 오시도록.
김수정
1. 현장예배와 목장예배 잘 참석하고, 은혜 많이 받을 수 있도록.
2. 테니스엘보가 악화되지 않도록.
3. 많이 나태해져서 게으르지 않도록 회복 시켜주세요.
4. 정신과 병원에 가서 약처방과 상담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김지혜
1. 못한 양육과제를 채워가고 있는데 완수하고 자유함 누리길!
2. 여동생 영육건강과 뱃속 태아를 보살펴주시고, 양육마친 제부의 삶과 직장도 인도해주시길
3. 말씀묵상하며 제가 치우쳐 있는 부분을 깨닫게 하시고, 말씀따라 일상을 살아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