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큐티하셔야 이탈안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21:15-19
설교: 이성관 목사 (안산시민교회 담임)
인생을 살다 보면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와 상관없이 인생의 궤도를 이탈할 때가 있습니다.인생의 어느 시점, 순간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인생보다는 내 뜻대로 살 때가 많이 있죠. 이것은 마치 그 중간 궤도 수정 없이 방향성을 완전히 상실한 표류하고 있는 우주선과 같습니다. 이렇게 궤도를 벗어난 삶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은 것 같이 참된 목적을 잃은 채 이리저리 헤매고 방황할 때가 많이 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이 중간 궤도의 수정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셨던 본래의 의도를 찾아가는 것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 삶의 방향성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오늘 베드로의 인생을 통해서 또 베드로가 어떻게 그 인생이 조정이 되었는지 함께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베드로는 인생의 궤도를 아주 순탄하게 잘 진행했던 제자였죠. 흔들릴 수 없는 방향의 나침판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메시아고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 옆에 있을 때에는 그의 인생의 궤도가 나름 잘 안착이 되고 진행이 되죠. 예수님이라는 강력한 신앙의 자기장과 더불어 있을 때는 인생의 궤도를 이탈하고 벗어나는 일을 상상조차 못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믿음의 근본인 예수님과의 관계가 중심이 됨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다 보면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궤도와 우리가 가고 싶은 그 궤도와 방향성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다르기 때문이죠. 더 솔직하게 얘기해볼까요? 예수님이 원래 의도하시는 그 궤도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왜 마음에 들지 않냐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뜻을 알지 못할 때 그렇습니다. 결국 베드로도 그 신앙의 궤도에서부터 이탈하죠. 그 베드로의 이탈의 원인을 잘 들여다보면 자신의 마음의 창 렌즈로 보는 예수님을 향한 한계와 제한이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베드로는 잘못된 자신의 렌즈로 예수님을 항상 바라본 겁니다. 예수님을 오해하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신앙으로 잘못 살았던 거죠. 그 인생의 궤도를 이탈한 베드로의 모습은 비극적인 결과가 있었죠.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께 멀어지면 내면의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무너지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이 본래의 창조 세계에 주셨던 그 거룩함이 다 사라지죠. 처음의 열정들이 다 소멸해 가죠. 담대한 믿음도 소심해지고 위축된 불신으로 한순간에 바뀌어지고요. 예수님에 대한 강한 사랑의 열정도 뒤로 슬그머니 도망치는 무기력해 보이는 무책임한 사랑으로 바뀌어집니다.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하지 말아야 될 일들을 했습니다. 인생의 궤도, 믿음의 궤도를 완전히 이탈해 버렸죠. 믿음의 궤도를 이탈한 그 베드로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었냐면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한때 주님과 함께했던 아름답고 귀한 추억이 생각날 때마다 더불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자신의 절망과 후회함이 늘 있는 겁니다. 예배를 드리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일주일 중 6일의 삶을 생각해보면 죄책감이 가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떨치려 해도, 잊으려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과 불신과 부정의 잔상이 늘 있다는 것이죠. 그것 때문에 더 큰 좌절과 실패의 굴레에 빠져 들어갑니다. 여전히 가슴 깊은 곳에 해결할 수 없는 쓴 뿌리들이 살아 움직입니다. 견고한 진들이 내 안에 가득한 겁니다. 건강한 자아도 못 만들고 건강한 신앙의 열매를 맺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죠. 이 실패의 잔상은 너무너무 심각합니다. 은혜의 흔적이 있던 사람이 그 실패의 사건을 경험하면 결국 자신을 스스로 깊은 절망과 죄책감에 웅덩이와 수렁으로 끌어들이는데 누군가에 의해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내가 만든 동굴 안에, 자신이 만든 감옥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곳에 들어가면 나올 길이 없어요. 내가 만든 감옥에 들어가면, 그 생각에 사로잡히면 거기에서 나올 방법이 없습니다.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되면 예수님은 더 이상 나랑 상관없는 분이 되어버리죠. 내 인생을 세상에 다 맡겨버리고 의지 없이 허랑방탕하게 집을 나간 탕자처럼 마음대로 살려고 합니다. 죄책감은 사라지지 아니하고 반복되는 죄는 지속성 있게 죄 가운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그것을 향해 일어날 힘조차도 없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 회개하지 못하는 또 다른 그 실망 속에 더 힘들게 무너집니다. 시간이 지나면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야 할 이 의무조차도 이제는 힘겨워, 버거워서 회피해서 도망쳐버리죠. 오늘 요한복음 21장 3절 베드로의 모습에서 그 모습이 역력하게 보이거든요. 3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지금 베드로의 모습이 어때요? 힘차게 주를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고기를 잡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아 보이죠. 어깨는 축 처져 있고 의욕도 상실이 되어 있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겨우겨우 고기를 잡는 모습입니다. 결국 자신의 옛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간 배들의 모습이죠. 아니 예전보다 더 못한 삶을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래도 어부일지라도 자신의 일에 밤이 새도록 수고하는 열심은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이 이상할 수 있으나 어설프게 만난 예수님, 어설프게 들은 말씀이 자신의 삶에 개입된 이후에 이제는 그 어부의 일도 흥미가 없어졌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의지도 없습니다. 일의 의미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죽였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확 죽어버리면 좋겠다. 그냥 눈을 감고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예수님과 함께했던 그 추억과 예수님이 주셨던 기쁨과 감격과 감동이 흥분의 은혜를 누렸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 그렇게 그물질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 속에 여러 가지의 복잡한 생각과 심정이 고기를 잡고 있는 상태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사실 베드로는요 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니잖아요.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의 궤도, 특별히 중간에 수정이 없을 때에 더 큰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죄책감과 실패의 잔상을 지니고 똑같은 고기를 잡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무너진 실패한 사랑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방법이 없는 이 때 중간 궤도 수정이 필요합니다. 인생을 다시 재조정하는 그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본래의 부르심을 쫓아가는 영적인 복음의 회복이지만 치유의 삶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은 오늘 이 예배가 중간 궤도의 수정이 있는 시간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간절히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장면을 보면 새롭죠. 실패한 잔상을 깨뜨리기 위해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처음 만났던 그 은혜의 그 장면을 그대로 가르쳐오시죠. 아마 설교를 통해서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요한복음 21장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만나는 그 장면과 누가복음 5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시는 그 장면이 크로스 오버가 되는 걸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3절에 그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죠. 누가복음 5장 5절에도 밤이 새도록 수고했을 때 잡은 것이 없습니다. 그물을 배의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라 하시니 이게 던졌습니다. 요한복음 21장 6절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다 누가 복음 5장 5절이거든요. 요한복음 21장 6절에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이 많아 그물이 찢어진지라. 누가복음 5장 6절입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게네사레 호숫가에서 처음 만났던 그 장면의 모습을 요한복음 21장에 실패하고 낙담하고 죄책감 가득한 베드로에게 다시 기억나게 하시는 겁니다. 베드로가 무리를 걸었던 기적 또한 기억나게 하십니다. 주여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무리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무리로 걸어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립니다. 너무 비슷하죠. 처음에 만난 그 장면, 기적을 베풀었던 그 장면 그런데 실패하고 모든 것이 끝나버린 그 베드로에게 이 장면이 오늘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겁니다. 그 은혜의 사랑. 처음 사랑, 처음 은혜가 너무 중요한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제 말씀하셔요. 그 인생의 궤도에 수정하시는 그 말씀이 있었습니다. 물고기를 다 나눠 먹은 후에 예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내가 이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은혜의 현장의 고백이었습니다. 늘 다른 제자들보다 더 사랑했던 베드로의 고백을 다시 물어보고 계신 겁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사실 예수님의 이 질문 앞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실패한 베드로의 마음에는 쉽게 답할 수 없었겠죠. 참 버거운 마음이었을 겁니다. 지금 은혜의 기억보다는 여전히 실패한 자신의 모습이 더 크게 보이기 때문에. 그런데 예수님은 다시 한 번 물어보십니다. 그의 인생을 재조정하기 위해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지요. 어찌 할 바를 몰라 대답합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우리 성도 여러분 이것이 자기 확신에 찬 자신 만만한 대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사랑의 고백이 철부지와 같을 때에 아무것도 몰랐을 때의 고백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실패에 자신의 모습을 철저하게 깨닫고 있는 겁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 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할 때보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실패했던 모습, 철저하게 겸손하고 자기가 죄인됨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예수님은 베드로의 실패를 아셨고 베드로의 연약함도 모두 아셨습니다. 이제 마지막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째 질문 앞에는 더 침묵 가운데 근심하며 나의 고백을 내가 지킬 수 있을까 여전히 의심을 가지면서 고백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분의 사랑이 나에게 있을 때만이 고백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한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제 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모태 신앙으로 목회자의 자녀로 아주 반듯하게 잘 컸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자랐고 개척교회 목사로 자랐는데 그 교회에 제가 35살에 담임이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개척한 교회에 보통 말하면 세습 목사. 그렇게 35살의 미국 유학 중에 저희 교회 성도님들이 오해하시더라고요. 저희 아버지가 부른 줄 알고. 그런데 제가 기도하다가 유학시절에 아프리카 가겠다고 하니 저희 모교를 보내시더라구요. 근데 이유를 알았습니다. 아프리카보다 목회하기가 더 힘들어요. 35살에 가서 나름 열심히 하려고 애썼습니다. 1대 목사님들의 특유의 영성과 특별히 저희 아버지께서는 폐결핵을 앓으셔서 한쪽 폐가 없으시고 한쪽의 반만 가지고 목회를 하셨습니다. 12년 동안 동굴에서 기도하시면서 피를 토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렇게 교회를 늦게 개척을 하셨었거든요. 이전에 그런 우리 그 1대의 목사님들 보면 죽으면 죽으리로다라고 그렇게 기도해서 교회를 세우셨잖아요. 너무나 완벽하고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또 그렇게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셨습니다. 제 인생의 궤도도 상당히 잘 안착이 되었고 아주 빠르게 속도감 있게 안착이 되어 진행되었습니다. 35살에 부임 해서 이제 담임이 되었거든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갔습니다. 그 길을 가는 것이 맞았기 때문에 그러나 그 안에는 자꾸만 인생의 궤도가 틀어지기 시작하는 거죠. 나의 열심이 더 가득했고요. 잘해야만 한다, 성공해야만 한다, 빈틈이 보이면 가뜩이나 세습 목산데 더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삶으로 밤을 지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원형 탈모에 새벽기도가 끝나면 비행기 소리가 나면 그 비행기 가는데 줄을 달아서라도 다시 미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 시간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목회를 어떻게 했냐면 생존적으로 했습니다. 버텨야 된다, 잘해야 된다 실수하면 안 된다, 제한적인 틀로 예수님을 본 베드로와 같이 저도 그렇게 보았던 것 같아요. 근데 다 아시죠? 노력해도 됩니까? 노력하면 되십니까? 일이 제대로 풀려갑니까? 마음은 더 공허하죠. 깊은 절망과 불평과 원망의 감옥 속에 벗어날 수 없이 목회자니까 거룩해야 되니까 티도 못 내죠. 제 약함은 치부니까 드러낼 수 없죠. 사역으로 인한 기쁨은 잠시 뿐이겠죠. 성공과 목적을 꿈꿨으니까 불평과 원망은 가득하고 누구 탓으로 돌리고 도망치고 회피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지 않겠습니까? 꼭 그럴 때마다 보디발의 아내처럼 유혹거리가 많습니다. 미국에 공부할 수 있는 기회, 어떤 더 큰 교회에서의 청빙.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셔요. 그러던 저에게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목회한지 3년이 되던 날 갑자기 아버지께서 소천하셨고 저희 교인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38살 목사가 과연 이 큰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그래서 더 울지도 못하고 어금니를 깨물고 그 강단을 지켰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얘기했거든요. 이제 니가 당회장이야 버텨야 해. 그때 말할 수 없는 공황장애가 왔습니다. 또 시간이 지나 척수 염증이 와서 오른쪽 마비가 왔습니다. 지금 열심히 운동해서 운동 신경이 회복이 됐지만 감각은 고무 장갑 10개 쓴 것처럼 못 느낍니다. 그리고 재작년에 몸이 좀 피곤한 거 같아서 병원을 가봤더니 간경화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하기 싫더라고요. 목회고 뭐고 고난이 닥쳐오니까 해석이 안 되더라고요. 해석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누구한테 하소연하고 넋두리해도요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먹먹해요. 선배 목사님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눠보지만 이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거예요. 저에게 목회의 모든 의욕이 상실되었습니다. 그리고 살아갈 모든 것도 이유도 희박해졌어요. 작년에 제가 5개월 동안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교회에 잠시 쉬겠다고 얘기를 했거든요. 근데 그 5개월 동안 제 삶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제 아내가 같이 왔지만 주일날 인터넷으로 저희 본교회 예배를 드리고 있는 저를 보면서 불신자 남편의 그 간접 경험을 했습니다. 제 아내는 이제 교회에 가야 되니까 애들이랑 다 가고 제가 잘 갔다 와 그리고 컴퓨터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는 제 모습, 저에 대한 실망이 있었지만 이 마음이 해갈이 안 돼서 그리고 섬에 가족과 함께 들어갔습니다.내가 결단을 해야 되겠다. 목회를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안산 시민교회의 사역을 해야 할지 떠나야 될지 하나님 앞에 사생결단으로 결단해야 되겠다 했는데 이 결단도 힘이 있을 때 하는 거죠. 그럴만한 힘도 없더라구요. 내면의 힘도 감정과 마음이 결단할 제정신이 아닌 거예요. 섬에 들어가서 파도가 치는 밤 배가 안 뜨는 날이거든요. 섬에 안에 있으니까 파도가 정말 세게 치는데 방파제에 혼자 끝자락에 섰습니다. 자식도 안 보여요. 파도가 한번 와서 나를 휩쓸고 가면 좋겠다. 그 마음 아십니까? 파도가 와서 나를 데려가야 내가 편할 것 같다. 이 끝없는 인생에 살아갈 힘이 없다. 그냥 파도가 잘못 와서 나를 끌고 갔으면 좋겠다. 그때 로뎀나무의 엘리아 설교를 제가 정말많이 했거든요. 죽기를 간구하는 죽음에 대한 직면이 뭔지를 제가 경험했습니다. 그때 제 옆에 등대가 하나가 있었거든요. 근데 그 등대를 보는 순간 성령님의 강력한 마음에 울림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울림은 이거였어요. 너는 빛이 아니다. 니 상황을 보아라. 근데 너는 왜 빛이 되려 했느냐. 너는 철저히 희망 없는 인간이다. 지금 방파제 끝에 죽기를 간구하는 네 인생을 보아라.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제가 집을 나간 탕자와 같은 거죠. 저는 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아프고 병원에 입원해서 괴로워하면 하나님이 좀 오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 주의 일을 위해서 정말 금식하고 버텨냈으면 한 번이라도 저를 찾아와 주셔서 위로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는 너무 억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아니다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니가 나의 집으로 니가 와야 산다. 내가 가면 너는 여전히 죄된 본성이 가득해서 니가 한 줄 착각할 것이다. 니가 엎드려 기도하고 와라. 저는 그때 이 돌아온 탕자의 말씀이 제대로 보여지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이 상황에, 이 전환점에 있었던 일이 어떤 일이냐면 저희 아내 지인께서 큐티인을 보내주셨거든요. 죽기를 간구하는 그때에 할 일이 없으니까 소파 옆에 책상 위에 있는 큐티인을 이렇게 뒤져 보기 시작했어요. 말씀보다 묵상 간증이 너무 익사이팅한 거예요. 전통적 교회에서 고신, 총신 보수적 신앙을 한 저에겐 말도 안 돼, 어떻게 실명을 거론하고 여기에다가 익명이라고 적어야지 너무나 신기하게 봤던 거예요. 처음에는 신기하게 봤어요.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분의 이야기가 제 이야긴 거예요. 이분의 죄에 대한 그 현상과 실태가 제 마음에 문제 제기를 하기 시작한 거예요. 자기 열심, 자기 확신, 자기의 그리고 유학 시절 때 하나님 앞에 뜨겁게 기도했던 베드로 게네사레의 장면이 보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저의 아내랑 만나서 3일 만에 결혼을 약정하고 100일 안에 다 끝났거든요.이거는 저희 교인들도 모를 수 있어요.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고 결혼은 작정이다, 남자 아니고 핸디캡이 없으면 하나님 결혼하기로 작정하겠습니다 해서 만나서 결혼했어요. 대단한 신앙 같지만은 꼭 사랑해서 결혼하십시오. 지금은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만회가 안 되는 건 알지만 지금 방향을 이쪽으로 돌렸잖아요. 그래서 많이 싸웠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실크와 같이 자란 제 아내, 누가 쓰다가 한번 구겨서 버려서 겨우겨우 폈는데 구김이 많은 바리새인 같은 제 모습 속에 제 아내한테 사모는 그러는 게 아니야, 그래선 안돼, 아내가 아니고 사모에 대한 교육을 바리새인들이 정죄하듯이 말씀으로 정죄하는 거예요. 논리가 아니라 말씀을 가지고 날카롭게 배운 게 또 많아가지고 난도질 하는 거죠. 그런데도 한도 끝도 없이 저를 사랑해주는 거죠. 그런 폭언과 밀어붙임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워싱턴 dc에서 이제 저보다 한국으로 한 달 먼저 들어갈 일이 있었거든요. 목사 안수가 강도사 안수를 받기 위해서근데 아이 하나를 업고 울더라고요 저는 속으로 아스 사이즈 자유다 이제 마음껏 게임하고 마음껏 축구하고 이제 마음껏 놀 수 있다. 자유다 하는데 제가 가야 돼 빨리 가 빨리 가 빨리 가 나 신경 쓰지 말고 빨리 가 그런데 뭐막 울더라고요 아기는 울죠. 짐은 있죠. 근데 그 모습이 저는 사실은 이 충격이었거든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는 길을 사람이 넋이 나간 처럼 왔어요. 그리고 소파에 딱 앉았어요. 문을 열고요, 소파에 앉았는데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이런 상태에서는 말씀을 전하는 게 가짜겠구나, 이렇게 유학을 해서 목사가 돼봤자 소망이었겠구나. 그 생각이 번뜩 들어서 하나님 죽여주옵소서라고 기도를 했거든요. 그리고 현관문이 열린 채 소파에 앉아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 이후로부터 죽여달라고 하니까 하나님이 진짜 오셔서 죽이셨어요.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죄를 드러나게 하셨거든요. 저는 그 이사야의 6장의 말씀이 뭔지 압니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하나님이 처음에 위로한다 축복 아닙니다. 망하게 되었도다. 할 말이 없습니다. 부들부들 주여 죽여주옵소서, 주여 죽여주옵소서. 아픔 상처의 문제가 아니고 불신과 외로움과 거짓과 음란과 말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 비춰주실 때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부들부들 떨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죄의 고백이 있는 그 순간에 저는 그걸 경험했습니다. 죄가 고백되는 그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것을 치유하시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10년 동안 공부해서 얻은 지식의 하나님이 아니라 제 인생 속에 오셨던 그 하나님을 보게 되었는데 그 큐티인의 책을 통해 다시 만나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는 목욕탕 큐티 목회 세미나가 뭔지 모릅니다. 알지도 못했고 띵크 양육도 지난주부터 받았습니다.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초신자입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우리들교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전하고 싶은 거 한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반드시 말씀을 보고 살아야 합니다. 말씀 외에는 회복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매일매일 말씀 앞에 사로잡혀 살지 않으면 인생의 궤도가 또 틀어집니다. 해석할 수 있는 기준이 없어집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뜻, 내 기분, 분위기에 따라 그날 운이 좋으면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점을 보는 게 낫죠. 말씀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봐야한다는 확신이 드니까 이것저것 따지지도 않고 저희 교회가 38년된 정통적 교회거든요. 그냥 당회를 열어서 전교인 큐티를 해야 합니다. 전교인 큐티 책을 1천 권을 신청을 했어요. 그리고 2년째 전교인 큐티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님 앞에 설 때까지 말씀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김양재 목사님 말씀 많이 하시잖아요. 살고 싶어서 말씀을 봤다고. 저는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그래도 제가 겪었던 그 말씀은 생사의 문제에서 보았던 말씀이거든요. 그래서 말씀 놓치면 저는 죽는 겁니다. 저는 이 말씀을 붙잡고 마지막에 주님을 만나 그때에 말씀 딱 붙잡고 서는 게 소원입니다. 목회를 잘하는 게 소원이 아니고 성공하는 게 소원이 아니고 오늘 주신 그 말씀 붙잡고 주님 앞에 서는 게 소원입니다. 저는 큐티인 책을 죽는 순간에 옆에 두고 죽을 거예요. 그리고 그날의 큐티인 말씀이 그날의 큐티인 본문이 주님께서 제 인생을 평가하시고 결론 내어지는 말씀일 줄로 믿습니다. 저는 기대가 돼요. 혹시 딱 봤는데 게으르고 악한 종아가 나오면 주여 그러면 제가 가서 회개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저희 교회에도 계속 얘기합니다. 프로그램 아니라고 패널 강의 강사로 왔을 때도 얘기했습니다. 다들 어떻게 하면 목회를 잘할 수 있을까라는 방법을 가지고 오셨어요. 제가 안타까웠습니다. 마음에 허황된 꿈을 꾸고 이 자리에 앉아 있거나 다 해봤는데 세미나, 교회 성장까지 공부 유학하고 왔는데 다 해봤는데 저렇게 눈이 초롱초롱하구나 그분들에게 제가 성령님의 탄식으로 말씀을 전했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 말씀 보는 게 정상이라고. 아멘 아니십니까? 하나님이 계시해주시는 그 말씀 앞에 우리는 늘 점검하고 때로는 어려움을 해석하고 죽을 것 같은 그 상황도 버티게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술 맡은 관원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가 한 가지만 더 간증하고 가겠습니다. 이것은 따끈따끈한 간증입니다. 이거는 준비된 간증이고요. 오늘 아침에 안산에서 넘어오면서 오늘 말씀이 야곱과 그의 가족이 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거거든요. 지금 저희 처형도 제 아내 언니도 미국에서 이 방송을 들을 겁니다. 처제도 그럴 거고요. 그리고 헝가리에 처남이 있고요. 저희 누님 집사는 캐나다에 있습니다. 하여튼간 전 세계에 다 있거든요. 근데 그들의 상황이 지금 무너져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들 교회에 와서 설교를 나누지만 오늘 이 자리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족 구원의 기회를 삼으신 것 같아요. 다 보시고 계십니다. 장인어른 장모님 다. 그래서 저는요 너무 기쁨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큐티말씀이 오늘 없었다면 저는 오늘 우리들교회에 섰을 때에 허세, 내가 이제는 총리가 되는 듯한 느낌이겠구나. 우리들 교회를 경험한 이후에 저희 교회 가면 전통적 교회이기 때문에 이제는 씨름해야 될 교회입니다. 말씀과 설득하고 또 이들과 함께 하고 어떤 체면과 신앙의 경륜이 더 중요한 전통적 교회에 이 말씀과 생명을 걸고 싸워야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오늘 그 말씀으로 조명될 때에 해석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 우리들 교회에 세우신 이유가 야곱이 애굽으로 다 데려가서 가족 구원이 일어난 것처럼 우리의 가족의 구원이 일어나기 위함인 줄 오늘 큐티 안 했으면 오늘 제가 시건방지게 와서 나중에 역시 나는 할 수 있어. 이 망할 생각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말씀으로 조명해 보니 늘 나는 없고 하나님이 조명해 주시는 말씀만 있고 이 말씀을 보니 이해가 되고 상황이 판단이 되고 그 안에 겸손함이 있고 그리고 내일 어떤 말씀을 주실까 기대가 되고 그 말씀 따라 마음의 풍랑이 있는 곳에서도 늘 흔들리지 아니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한 주님 보고, 주님 보시기에 주님 만날 때까지 잘 갈 수 있는 것처럼제가 오늘 라스트 설몬이라고 적었거든요. 제가 두 번 다시 올 줄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김양재 목사님의 대단한 모험이죠. 마흔네 살 된 목사를 이렇게 세우셨다는 게 감사하기도 하지만 우리 천국에서 만날 때 부끄럽지 않게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말씀끝까지 붙드십시오. 그러면 살아날 줄을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더 성장하고 말씀 앞에 부흥하는 교회 되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1. 지금 궤도에서 이탈해 어디에 있습니까? 궤도를 수정해서 찾아가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2. 죽고 싶도록 힘들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3. 주님이 빛인데 내가 빛이 되려고 한 일(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과 상관없는 내 열심으로 헛된 수고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4. 예수님의 보혈의 치유를 경험하기 위해 내가 지금 고백해야할 죄는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박가영
1.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과 관계, 말씀만이 나를 살리심을 믿고 매일의 큐티 기도로 대화시간 늘리기
2. 형식 율법 아닌 예수님 질문에 답하며 관계로 맺어지는 목장 식구들의 신앙 생활되기를
3. 교회 부서별 여름사역들 하나님 앞서 일하심부터 믿고 따르며 섬세하게 인도해주시길
4. 가족구원, 아버지 마음 계속 만져주시고 정죄, 반성 아닌 자유해지는 회개로 인도해주시길
5. 나를 누구보다 알고, 나를 위한 신결혼의 만남 계획하심을 믿고 기대로 구하며 가도록
6. 업무상 맡게되는 무거운 일들 지혜주시고 기도로 도움 구하며 마음지켜 주시길
7. 죽음으로 소모되는 우크라이나 전쟁 멈추어주시고, 우리나라 위정자들 붙들어주시길
이미선
1. 요즘 너무 말씀이 내 말씀으로 들리지 않고 짜증이 나서 자꾸 궤도를 벗어나 내 열심과 생색으로 나를 망치고 있는데ㅠㅠ, 말씀이 들리고 감사할 수 있도록
2.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해가 풀어지고 내 방법과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만 신뢰할 수 있도록
3. 아빠 엄마와 남자친구에 대한 잘못된 연민과 효와 관계 아니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경계를 잘 지킬 수 있도록
4. 너무 과중한 업무에 알바생도 뽑아주지 않아 회사와 대표님께 생색이 올라오고 너무 힘든데 대표님이 상황을 인식하고 개선될 수 있도록
5. 지방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지도자들이 뽑혔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고 책임감있는 모습으로 일할 수 있도록
6. 차별금지법 등의 모든 악법이 어떠한 이름으로도 통과되지않고 태아생명보호법이 제정되도록
오지은
1. 요즘 무엇을 먹어도 속이 계속 편하지않고 배가 고픈 빈 속에도 속이 니글거리고 메스껍습니다. 건강 관리 잘하고 22일에 검진 잘 받을 수 있도록
2. 엄마의 건강이 3년 전부터 계속 불안한 상태인데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오늘 피검사 위해 병원 잘 다녀오시도록
3. 아빠도 말씀이 잘 들리시도록
4. 신교제, 신결혼을 위한 만남의 축복을 허락해주시고 아직 누구인지 모르는 형제이지만 그 형제의 오늘에도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기를
5. 양교를 마쳤습니다. 양교 후 마음에 허전함이 있고 에너지가 가라앉으려는 듯한데 매일매일 말씀 보며 힘 얻을 수 있도록
정세린
1. 소송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는 마음을 더 주시기
2. 다람쥐가 없어 외로움이나 허전함을 다른걸로 자꾸 채우려고 하는 해결 본능을 하나님 본능으로
3. 아웃리치 마음의 준비 그리고 체력준비 제발!
4. 일대일 양육 마무리 잘하자
5. 엄마 우울, 자기 미련등...채워지지 않고 대인 회피를 하려고 해서 저만 의지하려고 하는데 목장 얘기 하고 있고, 목장에 가야 우리 같이 살 수 있다라고 자꾸 이야기하고 있는데
성령님 마음을계속 움직여주세요
김의경
1. 스쿠터 질렀습니다. ㅎㅎ 사고 나니, 기숙사에서 나만 튀는 짓을 한 것이 무척 신경쓰입니다. 기숙사 사람들과 좋은 관계 맺어갈 수 있기를.
2. 체력 지켜주시고 일본에서의 남은 시간 유익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3. 영어가 들리도록.
이다솜
1. 가족과 목장 식구들의 건강 위해 기도합니다
2. 계속되는 여유로움에 불안해지는데 평안을 누릴수있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