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22.6.5.
제목: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본문: 요한복음 21:15~19
설교자: 이성관 목사(안산시민교회 담임 목사님)
우주에서 중간괘도 수정이라는 표현이 있다. 목표를 재조정하는 것이다. 영적인 삶이 재작업되는 작업이 우리 인생에 꼭 필요합니다. 베드로는 아주 성실한 제자였다. 빠른 속도감을 내고 진행되었다. 예수님 옆에 있었을 떄의 얘기다. 궤도를 이탈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신앙의 관계가 약해지고 멀어지기 시작할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베드로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가려 하기 때문이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고, 신앙을 이탈하였다. 이탈의 원인을 자세히 보면, 자신의 렌즈로 제한과 한계의 틀로 보았다. 잘못된 자신의 렌즈로 보았다. 그 끝은 비극이었다. 내면의 세계가 무너지고, 거룩 무너지고, 열정 소멸된다. 불신으로 바뀐다. 그 후에 베드로는 죄책감이 남았다. 떨치려해도 잊으려해도 잊지 못했다. 부정의 잔상이 남아있다. 실패의 잔상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요? 자신 스스로 깊은 절망감과 실패감으로 누가 아니라 스스로 감옥에 들어갑니다. 이 곳에 들어가면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 들어가면, 나와 상관 없다고 하기 때문에 회개가 필요한데 일어날 힘 조차 없다. 시간 지나면 거룩한 성도로 사는 것이 이 도전조차 버거워서 자리를 회피하고 도망간다. 이 베드로에 모습 속에 실패자의 모습이 역력하다. 25장 3절 시몬 베드로가 나는 지금 물고기를 잡으러 가니 이 모습이 어떻게 보입니까? 힘차게 주를 위한 모습이라고 보입니까? 찬양할 떄의 모습처럼 보입니까? 승리를 선포하고 감동하고 감격하는 모습입니까? 그렇지 않아 보이지요? 어깨 쳐져 있고, 겨우겨우 고기를 잡는 모습으로 생각이 됩니다. 예수님 만나기 전엔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는 모습이라도 있었다. 예수님과 함께 했던 기억이 나지만, 고기를 아무런 생각 없이 잡는 베드로의 모습이다. 사실 베드로는 물고기 낚는 어부가 아닌, 사람 낚는 어부였다. 그 베드로에 남는 것은 실패한 잔상이 있다. 만족하지 못하고 공허한 모습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 상태에서, 솟아날 구멍 없는 그 때에 예수님 오시는 것입니다. 그 떄에 예수님 말씀이 찾아옵니다. 실패의 잔상 속에 넘어져있고, 그 인생 속에 다 포기하고 있는 그 때에 누가복음 5장에 게넷사네 물가에 처음 오시는 그 모습으로 오십니다. 요한복음 31장에도 아무것도 잡지 못하는 그 말씀 속에 오십니다. 그렇게 하니 고기를 많이 잡아 그물이 찢어지는 모습으로 오십니다. 21장에 베드로는 낙담하고 실패하는 베드로에게 처음에 만났던 그 사람, 그 은혜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물 위를 걷는 기적, 그것을 보이시면서 오십니다. 베드로에게 더욱 구체적으로 물으신다.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묻습니다. 이 물으시는 대답하는 베드로 마음 속에 답변할 수 없는 버거움이 있다. 주님 저 사랑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다시 물어보십니다.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내가 그러하나이다. 그런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두 번째 대답한다. 예수님의 사랑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얼마나 지독한 어둠이고 죄인인지 알게 되신다. Do you truly love me? 그러니 베드로는 소극적으로 주님은 더욱 소극적으로 대답한다. 베드로는 고개를 들 수 없다. 사랑의 고백 앞에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베드로 고백 앞에 주님이 내 인생에 필요합니다 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당신의 사랑으로 내 사랑이 있어야 내가 사랑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물어보니 베드로 대답한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십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철저히 주님을 바라보는 베드로입니다. 이제는 피할 길 없는 내 삶의 사건과 현장 가운데 주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덮어야 내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이 사랑의 고백도 내게 있지 아니하고, 주님에 있음을 디베라 호숫가에서 다시 고백합니다. 이 고백의 질이 다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이 아십니다. 이것은 확연히 다릅니다. 예수님 따르면 뭔가 잘 따를 것 같지요? 그러나 이제는 그 예수님을 믿는 것이 더 큰 죄책으로 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으로 들립니다. 주님은 그 떄 오시고, 사랑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방황하고 표류하는 우주선이 아니라, 궤도의 수정을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우리들교회에서 이 말씀도 있지만, 삶의 간증도 중요한 줄을 압니다. 내가 너무 열심히 일하고 목회하고 한계가 올 때에, 너울성 파도로 죽고 싶었는데 등대를 보며 성령님이 강력하게 말씀해주셨다. 네가 빛이 되려 했구나 그 순간에 내가 너무 죄가 깨달아지고, 내가 너무 어둠인 것이 인정됐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보고 살아난다. 그 말씀 없이는 회복될 방법이 없다. 말씀 하나로 그 하루의 상황들이 해석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 외에는 회복할 길이 없다. 이 전의 말씀은 지식의 말씀이었고, 지금은 생과 사의 말씀으로 실존의 말씀이었다. 진짜 말씀이 역동하여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한다. 목회자가 실존적 죽음 경험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들교회 세우신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저를 살리신 것처럼 오늘 여러분을 살리실 거라고 증언합니다. 제가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일어납니다. 제가 죽는 그 날에 제 옆에 큐티인이 있을 겁니다. 그 본문이 제 인생을 정리하는 말씀일겁니다. 그 순간에도 회개할 것이 있다면, 주님의 얼굴을 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전에는 아픔이 고난이었는데, 지금은 더 큰 고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도제목
류가영
1. 내가 빛이 아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정해주신 궤도 안에서 기쁘게 누리기를
2. 직장에서 너무 일을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기를
3. 무릎부상 및 영육간 강건
4. 남자친구의 구원
5. 오늘 처음 예배에 온 후배의 구원
이소정
1. 온전한 빛 되신 예수님께 은혜를 간구하는 한 주 되도록
2. 진로의 인도하심
3. 건강(알러지 반응이 나아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