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2 구원을 악세사리쯤으로 여기는 목사
창세기 37:23-36
파주소망의교회 남기윤 목사
이번 목세 이튿날 목사님이 큐티와 구속사라는 강의를 하시는데 그냥 지나가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 시대 목사님들이 구원을 악세사리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라는 말씀이었는데 되게 평이해보이곡 또 별스럽지 않아 보이는 이 한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을 후비고 들어왔습니다. 제가 그런 목사의 삶을 많이 살아왔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목요일 큐티를 하다가 이게 좀 분명해졌습니다.
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 23절인데요.
이 당시 유목민들이 입던 겉옷은 무릎을 덮지 않는 짧은 길이였고요 팔꿈치를 덮지 않는 짧은 소매를 가진 겉옷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야 양을 치고 일을 하기 시작할 때 편리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요셉이 입은 채색옷 이 케토넷파심이라고 하는 이 옷은 치마처럼 땅에 끌리는 그런 옷이었고요. 손매는 손가락까지 다 덮고도 남을 만큼 긴 소매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일을 하는 사람의 옷이 아니죠. 일을 부리는 사람의 옷이고, 누리는 사람의 옷이고, 가진 사람의 옷이었습니다. 관리자의 옷이기도 했고 왕이나 귀족들이 입던 옷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옷을 부러워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입고 싶어하는 옷도 이런 옷이고요. No money, No spec, Only Jesus라고 외치지만 사실은 우리가 여전히 가질 수만 있다면 가지고 싶어하는 옷이고 입고 싶어하는 옷이 이 채색옷 아니겠습니까?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보자마자 이 채색옷부터 벗깁니다. 이 벗기고 파샤트라고 하는 단어는 뜻이 급습하다, 침입하다 이런 뜻을 가졌기에 형들은 빼앗듯이 요셉의 채색옷을 벗겼다 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큐티 목회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돋 저는, 아니 영원히 저는 요셉이 입었던 이 채색옷을 내가 빼앗아 입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원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사실은 목회적 성공이라고 하는 채색옷,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목사라는 채색옷, 숫자적 성장이라는 채색옷, 그것이 저의 추구였고, 의미였고, 그것에 제 인생을 갈아넣었던 것 같습니다.
28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 28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도 속아서 그랬습니다. 저는 그렇게 살고 그렇게 목회하는 것이 맞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정작 구원은 구덩이에 던져버리고, 구원은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치우듯이 팔아버리고 채색옷에만 관심이 있는, 구원을 악세사리쯤으로 여기는 목사였던 것 같습니다. 유다의 결론이 그는 나보다 옳도다 였다면 저의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30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 30절.
이 뒷부분이 너무 가슴에 꽂혔어요. 나는 어디로 갈까 구원은 악세사리쯤으로 여기는 목회의 끝은 감격도 없고, 기쁨도 없고, 자유함도 없고 '나는 어디로 갈까.'였습니다. 길이 안 보이고 빛이 안 보였습니다. 원고를 준비하다가 그때 쯤에 이 등대가 생각났어요. 그냥 여러분이 잘 살아있어야 될 이유, 목세를 몇 번씩 오면서 우리 교회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들교회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김양재 목사님을 위해 기도해야 될 이유가 생긴거죠. 잘 걸어가 주셔야, 또 제가 잘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등대의 빛을, 이 사명을 감당하고 있음을 잘 기억하시고 함께 동역으로 잘 이 길을 걸어가 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그때 만난 것이 큐티 목회였습니다. 그때 만난 것이 여러분을 살려냈던, 이제는 저 같은 사람을 살리는 약재료가 된 여러분의 실패와 절망과 죄와 고난과 상처로 점철된 여러분의 묵상 간증이었습니다. THINK 양육을 받으면서 일생을 제 빈 배에 목회적 성공을 채우기 위해서 살았다 라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닫게 됐습니다. 베드로의 빈 배에 찾아오신 것처럼 저라는 빈 배를 찾아내시고 그렇게 제 인생의 배에, 목회의 빈 배에 올라주셨습니다. 불순종의 길바닥에서 돌을 베개 삼아 누워 잘 수밖에 없는 저를 네게 허락하신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 약속해주신 것도 그때였습니다. '항상 성도들이 들어야 될 말씀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성도들을 향해 칼을 뽑아 휘두르는 것처럼 말씀들을 많이 휘둘러 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THINK 양육을 받아가면서 이게 내가 들어야 될 말씀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이 들리게 하셨고 말씀이 들리니 죄가 보이기 시작했고 죄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아팠고 원망했던 내 인생에 일어났던 그런 일들이 사실은 제게 있어야 될 일들이었고, 또 들을 말을 들었습니다 라고 해석되게 되어졌습니다. 양육을 받을러 올 때는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많이 울게 하셨고, 양육 가운데 앉아있는 동안에는 의자를 붙잡고 앉아있어야 될 만큼 부들부들 떨리는 제 죄된 제 삶의 실체를 보고 울게 하셨고, 갈 때는 고쳐 쓸 수 없는 저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울게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2017년 7회 목세에 처음 참여했지만 THINK 양육은 9회 때 받았습니다. 그리고 10회, 11회, 12회, 13회, 이번에 14회까지 여섯 번을 받았습니다. THINK 양육도 아주 잘 받았던 건 한 두 번 정도, 적당히 한 번, 약간 부실하게 한 번, 네 번을 THINK 양육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있다고 들었어요. 우리들교회 소속되어 있으면서 THINK 양육을 안 받은 분들이 계시다고. 3일 회개 금식감입니다. 회개하시고 꼭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주변에서 참 많이 물어요. 큐티 목회를 왜 하냐고. 해도 참 유난스럽게 한다. 그렇게 묻습니다. 제가 그때마다 꼭 대답합니다. '옳아서 한다.'고 '이 길이 맞아서 이 길을 걷는다.'고 말합니다. 기복의 옷이 제 살처럼 붙어서 기복의 옷은 한 번으로는 벗겨낼 수 없었고, 채색옷을 입고 싶어하는 이 마음은 한 번으로 주저 앉힐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도 어느 순간 제 설교가, 또 목회가 기복으로 가려고 합니다. 이제야 겨우 나의 원함에서 주님의 원함으로 돌아선 것 같습니다. 제 전공 과목은 목회적인 이 성공을 쫓아서 그냥 열심히 하는 열심 공장 공장장입니다. 정말 저는 한 열심했습니다. 교회 120개를 개척하면 하나가 살아남는다고 하는 때에 그냥 맨 땅에 헤딩하듯이 교회를 개척을 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18개월동안 90만원 월세를 단 한 번도 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동네에서 제일 오래된 허름한 아파트 월세를 살았습니다. 관리비를 못 내니까요. 막 태어난 아이까지 4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하루는 집에 가면 전기를 끊어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또 하루는 집에 가면 수도계량기를 떼어가서 물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개척을 하고 보니까 부흥은 고사하고 죽느냐 사느냐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생존을 붙잡기 시작하니까 본질이 훼손되기 시작했습니다. 어찌하든 목회적인 성공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 혈루의 근원이 숫자적인 교회 부흥이었고 목회적 성공이었기 때문에 혈루병 여인이 12년 동안 수 없는 의사들을 찾아다녔던 것처럼 부흥만 할 수 있다면 안 해본 것이 없고 안 찾아다녀 본 곳이 거의 없다 싶습니다. 저는 21일 금식을 세 번 해봤습니다. 3일 금식, 일주일 금식은 저도, 우리 성도들도 세지도 못합니다. 8년 동안 오산리 산기도를 쉬어 본적이 없고요. 집에서 보다 교회 강대상에서 더 많이 잤습니다. 오직 병든 열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제가 119에 네 번을 실려 갔습니다. 마지막 제 인생의 목회의 결론은 탈진이고 공황장애였던 것 같습니다. 큐티하기 전까지 부교역자들에게 가장 많이 한 말도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어. 다 돼.' 그렇게 하고 열심히 하는 거예요. 말씀 앞에서 저를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누가 선을 그어 놓고 '이 선 이상은 너도, 너의 교회도 넘어설 수 없다.'라고 말해놓은 것처럼 저도, 교회도 딱 그쯤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수르 광야를 40년 돌았던 것처럼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돌고 돌고 돌고 또 도는 광야 생활이 반복되어졌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무수한 도드라진 죄패들이 있었습니다. THINK 양육을 제일 처음 받을 때 그 유명한, 아시죠. 아십니까? 그 평원지기 분을 통해서 완고함의 죄패를 제일 처음 받아들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완고한 사람인지 처음 그날 알았습니다. 저를 가장 괴롭힌 죄패는 평판 중독 죄패였습니다. 평판 중독은 인정 중독하고는 좀 차원이 달라요. 목회적으로 성공을 해야 하니까 성도들을 속여야 하는 거에요. 좋은 목사, 괜찮은 목사로 좋은 평판을 얻어야 했습니다. 속이고 가면을 쓰고 위선스럽고. 그 대표적인 예가 사례비를 받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돈에 욕심이 없는 목사로 포장하고 싶었고 꽤나 헌신적인 목사로 포장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마누라랑 자식을 쫄쫄 굶겨가면서 얼마나 고생을 시켰는지 모릅니다. 정말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속이고 사람도 속이고 나 자신도 나 자신에게 속아서 사는 악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큐티 목회를 하기 전까지는 이런 죄패를 무용담처럼 하고 다녔어요. '나는 사례비도 안 받는다.' 뭐 이런 거 있자나요. 개척 2년이 되니까 얼마 정도는 집에 가져갈 수 있게됐어요. 그런데 여러분 그때 제가 뭘 했는지 아십니까? 500명쯤 모여도 결코 단독 선교사들을 잘 파송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우리 교회에서 단독 선교사님을 팔레스타인에 파송했습니다. 그리고 매월 교회 월세만큼이나 보내게 됐습니다. missional church, 선교적 교회 흉내내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THINK 양육을 받으면서 발견된 제 세번째 죄패가 흉내 목회, 흉내 신앙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역에 진심은 있으나 영혼에는 진심이 없는 목사. 그 다음에는 말씀을 휘두르기만 하고 성도들의 삶을 받아내지 못하는 목사. 그럴 때마다, 제가 THINK 양육 완고함의 죄패가 발견된 그 주일부터 아주 도드라진, 큐티하다가 나오는 죄패가 있으면 목에 이 죄패를 차고 설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구경시켜 드릴까요. 구원을 악세사리쯤으로 여기는 목사 이튿날 이게 가슴에 꽂혔을 때, 제가 오늘 우리 본 교회, 제 교회에서, 섬기는 교회에서 말씀을 나눴다면 아마도 거기서 이 죄패를 차고 저는 오늘 말씀을 나누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그냥 성도들하고 큐티 양육을 시작을 했습니다. 때때마다 저의 죄패를 차고 저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큐티에 대한 열정이 사그러들 때마다 우리들교회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김양재 목사님이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교회처럼 도와주셨습니다. 저희 교회는 많은 평원지기들이 오셔서 묵상 간증을 나눠 주셨고요. 그리고 청년들도 여러분들이 오셨고, 중, 고등부 학생들도 몇 분이 와서 묵상 간증을 나눠 주기도 했습니다. 이 큐티에 대한 에너지가 사그라질 때마다 그런 식으로 계속 불을 붙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시작한 게 21일간 하는 새벽 큐티학교였습니다. 큐티인 순서대로 하는 거예요. 본문을 읽고, 본문 해석을 읽고, 여러분들의 묵상 간증을 잃고 그런 다음에 교회 모든 등을 소등합니다. 그리고 장의자에 테이블을 만들어서, 탈부착하게 만들었어요. 개인별로 교회에서 스탠드를 다 샀습니다. 소등을 하고 난 다음에는 스탠드를 키고 25분간 개인 묵상을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25분이 지나면 각자의 적용점을 잡고 통성으로, 합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 시작한 건, 그렇게 큐티에 정착이 되기 시작했는데 그 에너지가 너무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일대일 큐티 짝꿍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큐티 짝꿍끼리 그날 한 큐티를 나누는 거에요. 주일만 되면 저녁 9시에 제가 해야 되는 일은 다음주 일주일동안 큐티 짝궁을 서로 파트너를 바꾸어서 단톡방에 올리는 것입니다. 그럼 한 주 동안 그렇게 바뀌어진 큐티 짝궁과 큐티를 하고 단톡방에다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교회도 우리들교회처럼 매 주일 설교하기 직전에 3분씩 묵상 간증을 나누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은 가만가만 훈련입니다. 1부 예배 때 저희 교회꺼니까 이거 따라하지 말라고 제가 말씀을 드렸더니 담임 목사님이 큐티 목회 가져갔으니까 쌤쌤이다. 여러분 큐티하면서 가장 어려운 건 여러분은 어떠세요? 우리 성도들은 적용하는 거였습니다. 적용점을 찾고 말씀이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적용을 하고, 그 적용에 순종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 이게 참 어려웠습니다. 계속 기도하고 큐티를 따라가려고 애를 쓰니까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하고 있는 것처럼, No momey, No Spec, Only Jesus처럼 좋은 슬로건이 하나 만들어졌어요. 그게 뭐냐하면 '가만가만 오늘 말씀이 뭐라고 그러셨지?' 이거였습니다. 하루 열 번씩을 연습을 하는 거예요. 갑자기 남편이 열받게 할 때 '가만가만 오늘 말씀이 뭐라고 하셨지?' 이거 하는 거예요. 갑자기 되도 않게 딸이 짜증을 부릴 때 '가만가만 오늘 말씀이 뭐라고 그러셨지?' 이거 하는 거죠. 열번씩을 하고 이것도 단톡방을 따로 만들었어요. 우리 청년 자매가 '목사님 이러지 말고 이걸 제목을 붙이는 게 좋겠어요.' 그래서 이게 가만가만 훈련이 됐습니다. 저희 교회는 가만가만 훈련 단톡방이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큐티를 마치고 나면 그것들을 올려주기 시작합니다. 그 가만가만, 너무 많지만 두 개만 여러분에게 소개를 시켜드리려고 합니다. 5월 11일날 집사님 가만가만 훈련인데요. 본문이 창세기 33장 1절에서 17절이었습니다. '어제 가만가만 훈련은.' 반드시 오늘 가만가만을 할 때 어제 가만가만을 잘 했는지, 절반만 했는지, 불순종했는지 그걸 적고 그 다음에 오늘 가만가만 훈련을 올리게 되어 있습니다. '어제 가만가만 훈련은 가정 일에 소홀한 나 때문에 마음이 상해 있는 남편에게 기도 후 낮아진 마음으로 대화를 시도해보는 것이었는데 기도 후 낮아진 마음으로 대화를 시도해봤는데 묻는 말 외에는 대답을 하지 않아서 마음이 더 어려웠습니다. ' 그리고 오늘 가만가만을 하는 거예요. '가만가만 오늘 말씀이 모였더라. 3절 ....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 야곱은 죽음에 이르는 겸손으로 그에게 일곱 번 절하고 용서를 구했는데 나는 겨우 한 번 시도해보고 마음이 어렵다고 했구나. 오늘도, 내일도 남편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용서를 구하고 사과하겠습니다.' 이게 이 집사님의 가만가만 훈련이에요. 5월 19일 장로님 가만가만 훈련인데요. 이 분은 우리 교회에 오신지 두 달 채 되지 않아요. 육사 출신이기도 하시고, 좋은 회사의 부사장님이시기도 하시고, 주변의 큰 교회는 다 다녀보시고. 그리고 저희 교회 예배를 드려보시고 큐티하는 모습에 저희 교회를 오신 것 같아요. 오시자마자 새벽 큐티에 동참하셨고 이 가만가만 훈련을 함께 하시고 계세요. '가만가만 오늘 말씀이 뭐라고 하셨지 35절 ....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아버지 야곱의 회개의 눈물, 이 눈물을 보시고 하나님이 부르시고 요셉을 살리신 것 아닐까. 실천하기 강입자 치료기.' 뭔지는 모르겠지만 꽤 비싼 돈을 주고 '강입자 치료기를 구입했는데 임대했다고 아내를 속였다. 퇴근해서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이거 저하고 장로님만 보는 게 아니예요. 다 보는 거예요. 살아계신가 모르겟어요. '내 아들이 며늘아이를 속일까 두렵다.' 자기의 속임과 자녀들의 속임으로 연결이 되신 거예요. '이 큰 죄 하나님 앞에 회개 기도하기.' 이렇게 적용점과 실천점을 올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여러분들의 기도와, 또 담임 목사님의 수고와 그런 섬김으로 우리 소망의 공동체에도 여러분에게 일어나기 시작한 일들이 동일하게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2021년 8월 6일날 금요일 오전에 저희 교회에서 파견한 미얀마 선교사님 가정으로부터 카톡 내용입니다. '목사님 미얀마에는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군부 정권은 더 이상 코로나 환자들을 케어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대부분의 선교사님들이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코로나로 드러누워 계신 분도 계시고, 소천하신 분도 계시고, 지난주에는 정바울 선교사님도 돌아가시고. 미얀마는 앞으로 2주 안에 인구의 절반이 코로나에 걸릴 거라는 뉴스는 연일 방송에 나오고. 심지어 퍼펙트 스톰이라고 해서 온 나라를 쓸어버리는 초강력 태풍처럼 코로나가 미얀마를 쓸어버릴 것이라는 뉴스도 나오고. 마침 8월 8일 주일이 항쟁기념일이어서 내전이 발발할 것이라는 소문이 미얀마 전체에 또 돌고 있습니다. 코로나는 아닌 것 같지만 아내하고 첫째가 어제부터 근육통으로 힘들어하고 가벼운 코로나 증상도 보이고 있고요.' 이쯤 카톡을 주고 받다가 번뜩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결국에는 나에게 한국으로 들어와야 할 지, 그대로 있어야 할 지 내 결정을 물으려고 카톡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왜냐하면 이 때 미얀마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선교지 베이스 캠프에서 같이 사역하던 다섯 가정과 함께 10시간을 달려서 공항 가장 가까운 양공까지 와 있었거든요. 여차하면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올 판이었습니다. 순간 가만가만 오늘 말씀이 뭐였지? 막 당황스러워서 생각이 나질 않는 거예요. 막 노트북을, 한 손에는 전화기를 들고 있고 한 손에는 노트북을 막 가져와서 그날 새벽에 나눈 큐티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8월 6일 큐티인 토요일 큐티 본문은 사도행전 14장 1절에서 18절입니다. 그날 새벽에 나눈 제 큐티 제목은 이러했습니다. 이런 저런 반대를 일상으로 여기게 하시는 성령의 권능 본문을 다시 보는데 유독 3절 말씀이 눈에 콕 박혔습니다. 2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원어 성경을 살펴봤더니 이 3절 두 사도 앞에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게 문법적으로 맞지 않자나요. '반대가 이러이러 하니 현실이 이러이러 하니 그러므로 두 사도가 떠났다.' 이래야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말씀은 '반대가 이러이러 하니 현실이 이러이러 하지만 그러므로 두 사도가 오래 있어.'라는 큐티인 거예요. 우리는 반대를 받으면, 핍박을 받으면, 미움을 받으면, 우리는 싸우고 다투면 떠나라는 사인인가보다, 갈라서라는 사인인가보다, 그냥 그만 포기라하는 사인인가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자나요. 말씀 없는 우리는 그렇게 해석을 하고 그렇게 반응을 하자나요. 말씀이 아니라 감정이 주인이고 우리 현실이 주인이고 상황이 주인일 때가 너무 많으니까요. 하지만 말씀이 주인이 되고, 성령이 주인이 되면 이런 저런 반대를 일상으로 여기게 하시는 성령의 권능이 우리에게 있으면 여러분 해석이 달라지자나요. 해석이 달라지면 반응도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들어야 할 말을 들었습니다.'가 되고 '있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가 되고 '그는 나보다 옳도다.'가 되지 않습니까? 제 인생도 그러하고 우리 성도들의 인생도 그러하고 '들어야 할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은 얼마나 큰 능력있는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가 목세 패널 토의 때도 제가, 정말 진심이었어요. 전도사님이 같이 왔는데 '목사님 혹시 그 말 주최측에서 시켰어요?' 그렇게 하더라고요. 제가 뭐라고 그랬냐면 '들어야 할 말을 들었습니다.' 는 노벨상을 주셔야 된다고 그랬어요. 김양재 목사님한테. 우리 교회에 이게 얼마나 큰 영향력이 있는지 몰라요. 여러분 하필이면 이날 큐티 말씀이 이런 말씀이라 그러므로 오래 있으라는 말씀이라 선교사님에게 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카톡창에 이리 적기 시작했습니다. 선교사님이라 김사장 이렇게 부르거든요. '김사장 무조건 일단 비행기 타. 이 말이 내 목구멍에 걸려있다.' 왜냐하면 제가 너무 아끼는 동생이에요. 목사님도 사모님도, 둘 다. '하지만 오늘 큐티 말씀은 이렇답니다.' 그리고 큐티 내용을 보냈어요. 제게는 정말로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김사장과 나누기가 참으로 쉽지 않는 말씀이다. 하지만 오늘 말씀이 뭐라 하시는지 우리 말씀을 보자. 이 상황에 이 말씀을 보내기가 너무 잔인하지만 그냥 오늘 큐티여서 보낸다. 하지만 결정은 김사장이 해. 김사장이 무슨 결정을 하든지 나는 김사장이 결정하는대로 준비할게.' 카톡이 오질 않는 거예요. 그리고 그 다음날 이런 카톡이 제게 날아왔습니다. '목사님 버스를 빌려서 10시간을 달려서 다시 선교지로 돌아왔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 말씀하신다면, 말씀대로 순종하면 말씀이신 하나님이 함께하실 거라 믿습니다.' 이 카톡 내용을 받고 정말 마음이 먹먹해졌어요. 그 뒤 사모님도 코로나에 걸렸고, 선교사님 자신도 코로나도 걸리고 네 명의 자녀 중에 첫째 딸도 코로나에 걸렸지만 그 소식을 듣고 온 교회가 일주일, 일일 금식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정말 건강하고 예쁘게 그 자리에서 현실의 반대를 뚫고 이런 저런 반대를 일상으로 여기게 하시는 성령의 권능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습니다.
작년 7월 어느 날은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어요. 삼척에 사시는 76세 된 큐티인으로 큐티를 3년째 하고 계시는 장로님이라고 자기를 소개하셨습니다. 6월에, 삼척이니까요. 집 앞에 파주에 사는 가정이 놀러왔는데 이혼 확정 일자를 앞두고 아이들과 마지막 가족 여행을 왔다는 거예요. 두 분이 다 교회 집사님이셨다고. 7, 8월에 큐티인에 저희 교회가 실렸었거든요. 이 기사를 보고 교회가 파주니까 물어 물어 제 전화번호를 이틀 동안 물어서 제게 전화를 하신 거예요. 이 가정을 도와줄 수 없겠냐고. 알고 보니 저희 지역에서 제일 큰 교회 집사님 가정이었습니다. 이혼을 청구하신 분이 아내 집사님이셔서 사모와 만나기로 했습니다. 만나기로 한 당일 새벽, 모태신앙이고, 그리고 큰 교회 집사고 그 유명한 셀 교회, 셀 리더이고, 중등부 교사이고. 그런 자신이 이런 처지에 다달아 있다라는 것이 너무 절망스럽더래요. 그래서 베란다를 나가서 자살하려고 창문을 열기 시작한 거예요. 마지막 방충망만 열면 뒤어내리면 되는데 방충망이 열리질 않더래요. 아무리 애를 써도. 방충망이 열리지 않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베란다에 퍼질러 앉아서 짐승이 우는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오전에 제 아내를 만났습니다. 아내가 큐티인을 전달했고 큐티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부터 저희 교회에서 큐티인 설교로 같이 말씀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던데요. 2주 만에 이혼 취소를 하고, 그리고 3개월이 지날쯤 여러분들이 하시는 그대로 남편에게 무릎을 꿇고 '나의 구원을 위해 당신을 수고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남편도 집사님인데요.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세요? '이제 알았냐?' 여러분 그냥 남자들은 그러려니 하십시오. 목사나 평신도나 다 그 쯤이 그 쯤인 것 같아요. 그러던가 말던가 말씀에 잘 반응하시고 얼마나 잘 살아가고 계신지 모릅니다.
저희 교회는 저희 교회에서 처음 예수를 믿는 사람 비율이 60% 정도 되어집니다. 이 자매도 저희 교회에서 처음 예수를 믿었는데요. 몰랐습니다. 11시 주일 예배를 드리지만 남자 친구와 이런 저런 음란 교제를 하고 있는 줄 몰랐죠. 우리가 어찌 알았겠습까? 청년 목장에서 자신의 음란하고 죄된 삶을 말씀 앞에서 오픈한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목세 참여하는 동안에 두 분의 전도사님이 계시지만 큐티하시는, 평소 집사님들 새벽 예배를 맡기거든요. 이 자매가 수요일날 새벽 예배를 인도했고요. 목자가 됐고요. 서른 살의 미혼 청년이지만 일곱 명의 저희 교회 운영 위원 중에 한 명이 됐고요. 새벽에 자동차로 40분이 걸려서 새벽 예배를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큐티로 목회하면서 저도 되게 단순해지고 간결해지고 확신있게 되어졌고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인데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러분 큐티하면서 너무 확신이 든 것이 이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해 놓으신 말씀을 기록해놓은 책이 아니고 지금 요한복음 1장 1절은 이 말씀이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말씀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말씀이신 줄 믿습니다. 그러니 너무 자연스럽지 않나요? 이 하나님이신 말씀 앞에 우리가 아침마다 말씀 앞에 서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한 일인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가복음 1장 35절은 예수님이 이렇게 사셨다고 말씀하세요.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여러분 어디로 가야할지 말씀이신 하나님께 물으셨고 들으셨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 지 말씀이신 하나님께 물으셨고 들으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도 제가 따로 정하지 않았어요. 김양재 담임 목사님에게 여러 가지를,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원칙을 세워 목회하는 것입니다. 큐티인을 하고 난 뒤 부터 간혹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을 때 전화가 오자나요. 언제 말씀을 좀 전해달라고 그러면 전화 온 당일 날 큐티 본문, 오늘 이 말씀 전하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날 그 큐티 본문으로, 한 달 뒤가 됐든 두 달 뒤가 됐든 그 큐티 본문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목요일날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비서 목사님이신 신 목사님에게 전화가 왔기 때문에 제 오늘 나누는 본문이 목요일 큐티 본문이 된 겁니다. 그리고 제가 은혜 받았던 정말 구원을 악세사리쯤으로 여기는 이 목사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새벽에 하나님 앞에 서셨던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 4절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그 일이 예수님의 일이 되어졌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신 그 일이 여러분의 일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버지께서 가라고 하신 그 방향이 예수님의 방향이 됐습니다. 아버지께서 붙잡으라고 하신 그 일이 예수님의 방법이 되었습니다. 김양재 목사님이 '별 인생이 없다.' 그런 어록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가장 좋은 인생은 그 날 말씀을 따라가는 인생인 줄로 믿습니다. 가장 위대한 인생도 그 날 말씀을 따라 사는 인생인 줄 믿습니다. 이게 너무 좋은 거예요. 대단한 인생이 따로 없다라는 게 너무 믿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결과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8장 29절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여러분의 자녀 여러분이 함께 있고 싶어하시는 것처럼 여러분 하나님의 소원은 여러분과 함께 있고 싶어하는 사실이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지금 말씀하세요. 언제 하나님이 우리와 함게 계실 수 있냐면 우리에게 주시는 그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 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동행하시는 역사가 나타나실 줄 믿습니다.
저는 대학교 3학년을 휴학하고 No spec이어야 하는데 스펙 쌓으려고 스타트업 업체에 인턴 사원으로 있는 큰 딸이 있고요. 그리고 두 살 적은 대학교 3학년 피아노를 전공하는 딸이 있습니다. 그리고 재수하고 있는 셋째가 아들이고요. 그리고 막내는 두 살 터울로 고2 학생입니다. 그런데 제게는 원래 큰 아들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성남 저 은행동 거기서 전도사를 하고 있을 때인데 토요일이었어요. 아내는 교회에서 꽃꽂이를 하고 있고 저는 집에서 주일 사역 말씀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이 꽂꽂이가 시간이 좀 걸리자나요. 아들이 네 살짜리니까 자꾸 치근대니까 '아들 엄마 금방 끝나니까 끝나고 나면 같이 과자 사먹자.' 그리고 천 원짜리 하나를 쥐어준 거예요. 아내는 꽃꽂이에 정신이 없으니까요. 교회도 작으니까 아이가 그 천 원짜리를 들고 교회 바로 앞에 제법 규모가 있는 큰 슈퍼마켓이 있었어요. 차 두 대가 빠듯이 지나갈 수 있는 그런 좁은 길인데 이 아들이 천 원짜리를 들고 길을 건너는데, 여러분 옛날에 기아 봉고차 아시죠? 승합차. 거기에 과자며 이런 여러 상품들을 싣고 납품하는 차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25살 먹은 청년이 막 과자를 납품을 하고 운전석에 앉아서 영수증도 정리하고, 돈도 정리하고 하다가 출발을 하면서 이 아이가 조그마니까, 봉고차 앞을 지나가고 있는 아이를 보지 못한 거예요. 그래서 그만 이 승합차 앞 바퀴, 뒷바퀴가 아이 배를 타고 넘었어요. 연락을 받고 2시 30분에 병원에 갔는데 이미 뇌사 상태였고 7시 반에 아들이 사망을 했습니다. 병이 있어서 1년, 2년 시간이 있을 때는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서로가 준비되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급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죽고 하면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가 훨씬 힘들더라고요. 기억과 추겅이 있으니까요. 집에 가면 걔가 쓰던 치약 하나, 칫솔 하나, 걔가 쓰던 슬리퍼 하나가 견딜 수가 없는 거에요. 아내가 특별히 많이 힘들어했기 때문에 사역을 내려놓고 2001년 1월달 제주 열방 대학에 DTS 받으러 갔습니다. 3개월 강의를 듣고 3개월 아웃 리치를 나가는데 이 강의의 핵심이 4주 동안 하는 내적 치유더라고요. 두번째 강의가 천정우 간사님이 하는 하나님의 다림줄이라고 하는 강의였었습니다. 수요일쯤이었나, 목요일쯤었나 강의를 마치고 기타 케이스를 십자가 앞에다가 툭 열어놓더니 '자 용서하지 않으면 회복이 일어나지 않으니 여러분이 용서해야 될 사람들을 쪽지에 이름을 적어서 내놓으십시오.' 9시쯤 이 일이 시작됐는데 10시 반이 넘어가도 이 시간이 끝이 나질 않는 거예요. 왜냐하면 한 사람이 안 나가는 거예요. 그 사람이 저였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용서 안 한 것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셔서 적을 수가 없었어요. 성령의 감동이셨는지 간사님이 '여러분 하나님이라도 용서하셔야 합니다.' 그러시더라고요. 용서한 건 아니고 그냥 제가 안 쓰면 지체들이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어거지로 하나님이라고 쓰고 그 쪽지를 놓고 나갔어요. 그 다음주에는 하와이 코나에 있는 열방 대학에서 여자 선교사님이 오셔서 또 강의를 진행하는데 아 또 핵심 주제가 또 용서인 거예요. 하루는 너무 힘이 들어서 식사를 포기하고 점심 시간에 그냥 칠판 앞에 이 머리가 벽에 닿을 만큼 딱 붙어 앉아서 기도로 하나님과 싸우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까 점심 시간이 다 끝이 난 거예요. 그래서 그냥 강의를 포기하고 제주 열방 대학 소나무 숲을 호주머니에 손 푹 넣고 걷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소나무 숲을 걷고 있는데 제 마음 안에 하나님께서 잔잔하게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기윤아 힘드니?' 그러시는 거예요. 여러분 되게 아프고 힘든데 너무 부드럽고 따뜻하게 말하면 더 화가 나는 거 아시죠. 정말 화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하늘을 쳐다보고 삿대질을 하면서 막 하나님한테 막 해 대기 시작했어요. '당신 같으면 힘들지 않겠냐.'고 '당신이 제 마음을 아냐.'고 막 쏘아붙이고 있는데 하나님이 제게 뭐라고 맘에 감동을 주시면서 말씀하시냐면 '기윤아 그래도 너는 니 손으로 니 아들 죽이지는 않았잖니. 내 손으로 내 아들 죽인 내 마음 너 아니?'라고 제게 말씀을 걸어옹셨어요. 여러분 저는 아들 잃은 아버지였기 때문에 아들 잃은 아버지의 마음이 그냥 와 닿기 시작했어요. 여러분들 응급실에서 제 손마디를 한 마디 씩 한 마디 씩 칼로 잘라가며 제가 죽고 제 아들이 살아날 수 있다면 저는 그렇게 죽어갔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요. 이게 부모의 마음 아니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 살리겠다고 자기 아들 죽어가는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던 그 아버지의 마음이 깨달아지니까요. 이 세상 천치 하나님보다 불쌍한 분이 없는 거 있죠. 감히 제가 하나님을 껴안고 그분의 등을 쓰다듬으며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 불쌍해서 어떻게 해. 우리 하나님 불쌍해서 어떻게 해.' 아들 잃은 아버지 대 아들 잃은 아버지가 만나서 그 소나무 숲속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받은 구원이 그 구원 아닙니까. 여러분이 받은 구원이 그 구원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이 구원을 채색옷과 바꾸고 살았던 거예요. 여러분은 이 구원을 돈과, 부자와, 성공과, 출세와 바꾸고 살아가고 계시진 않습니까? 같이 기도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삶이 어찌 살아왔든 나의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당신의 손으로 살리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시고 저의 구원을 이루신 그 하나님 앞에 같이 기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지금까지 나의 삶은 그리 살아왔는지 모르지만 이제 저의 구원을 채색옷과 바꾸지 않겠습니다. 저의 구원을 절대로 다른 것과 바꾸지 않겠습니다. 그런 고백으로.
목장 모임 참석
미혜, 연수, 예선, 해정, 우정
기도제목
저는 오늘 일 마치고 공부를 하려고 하니 집중을 하는 것에 신경이 쓰이고 부담이 옵니다. 집중을 해야 암기가 잘 되는 게 있어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생각보다 오롯이 사용할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번에 모의고사로 임하고 실업급여 신청 후 다시 온전히 공부에 전념할 시간을 가지고 기도로 준비하려고 합니다. 오기로 패기로 도전하는 시간이 되도록 7월부터 1년정도 준비하고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또한 기도합니다.
이번에는 취약한 과목 위주로 처음을 할애하고 일독하는 과정을 여러 번 돌리는 것도 생각합니다. 행정학개론 행정법총론 이 과목을 위해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고 임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형통하였다는 말씀으로 잘 인내하고 갈수가 있도록 꾸준함으로 나아가기를 다짐합니다.
성령의 고백을 통해 내 죄를 자백하고 가족들에게 사과하는 적용을 할 수 있도록 양심에 거리낌없이 고백하고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미혜
개발자 친구가 아버지 간호를 위해 휴직을 원한다고 하는데 그 친구와 회사를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인도해주시기를
교수님 팀과의 협업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대로 갈 수 있기를
일상에서 도망하고 싶을 때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 더욱 주시기를
부모님 건강을 지켜 주시고 아빠를 구원해주시기를
우리 목원들의 간절한 기도제목에 하나님 신실하게 응답해주시기를
예선
100% 옳으신 하나님 인정이 안되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길
오랜만에 면접 보고 왔는데 감사는 하나도 없고 불평만 많은 것이 채색옷 입은 나의 모습임을 알고 어디로 가든 허락하신 자리임을 먼저 생각할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 붙회떨감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여러 가지로 나의 모습 보며 가는 것이 너무 힘든데 저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과 목장에 아뢰며 갈 수 있도록
아웃리치 처음으로 신청했는데 기도로 준비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