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22.5.15.
본문: 사도행전 24:10~20
제목: 성령의 고백
설교: 김양재 담임목사님
1. 사과로 시작하는 고백입니다.
ad52~58년까지 벨릭스는 총독을 했다. 유대인과 그 상황을 이해해서 기분좋다. 복음 전할 때 내가 할말만 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대화는 사과의 기반을 두고 하고 있다. 상대방에게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고 한다. 항상 선한 양심을 가지라 라고 한다. 그런데 실습을 해보자. 고발을 당했는데, 어떻게 하면 사과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을까. 말도 못하게 나를 물어뜯고 고발하고 난리 났는데, 바울이라면 그렇게 생각했다면 오해에요. 죄송하네요. 사실은 제 의도는 그게 아니였어요. 이게 사과로 시작하는 고백이다. 사과는 원어로 아폴로게마이, apology의 어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바울은 자기가 죄인이잖아요. 특히 유대인 동족을 핍박했던 사람이다. 그 마음으로 기꺼이, 기쁘게 소요를 일으켰다는 것에 대해 팩트체크 들어간다. 내가 왜 소요일으키지 않았는지. 벨릭스에게 당신이 아는 바와 같이 라고 한다. 내용인즉 전 죄송한데요. 예루살렘온지 열이틀 밖에 안 됐고 나를 본 사람도 많다. 나는 소요를 일으킨 적이 없다고 한다. 바울은 이 상황에서 정말 변론하고 싶었을 것 같다. 바울이 논중에 강하다. 더둘로와 한판 붙고 싶었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 가이사랴 성전에서도, 벨릭스 앞에서 어떤 변론도 안하고 특히 사람 공격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실제 얘기를 사과하는 태도로 해서 아폴로게오마이 자신을 지킨다. 이것
[적용질문]지금 기막힌 고발을 당했는데 그 말을 즉시 인정하고 사과로 시작하는 복음을 기쁘게 전할 수 있을까요? 그만큼 나같은 죄인 살리신 은혜가 있습니까?
2. 죄의 자백이고 공동체의 고백입니다.
두 번째 고발인 나사렛 우두머리라고 고발한 것에 대해 중요한 고백을 한다. 나사렛 그리스도가 이단임을 인정한 게 아니라, 자신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따른다고 인정했다. 의인과 악인에 대한 부활을 소망했다. 바울을 죽이려는 tf팀은 대부분은 사두게인들이었다. 그들에게 부활을 말하면 아주 불이익을 당하기 쉬웠다. 의인과 악인에 대한 부활을 믿는다. 불이익을 당해도 부활 신앙을 가진 이는 누가 뭐라해도 두렵지 않다. 오히려 담대하게 자신 믿음 인정하고 신앙 고백을 한다. 바울이 악인과, 선인의 부활을 주장하는 유일한 구절이다. 선인의 부활을 상급을 위한 부활이고, 악인의 부활은 영원한 징벌과 심판으로 받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5장에서 선한 일은 상급으로 , 악한 자는 심판으로 라고 나온다. 벨릭스와 더둘로에게 경고하며 전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하나도 안 들린다. 지금도 제 얘기가 하나도 안 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고백이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고백은 호몰로게오(하나, 동일한, 그리고 말하다.)그래서 여러 사람이 한 목소리로 같은 말을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고, 공동체적인 고백이다. 이것이 바로 고백이다. 성령의 고백이 내 목소리가 아니라 우리 목소리다. 자기 생명을 접붙이면서 몸으로 연결된 지체들을 통해 내 속에 그리스도가 고백되어지는 것이 호몰로게오다. 한마음 한 목소리로 선언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간증, 신앙고백이다. 우리가 사도신경 할 떄, 찬양할 때, 봉헌할 때, 새가족 환영할 때, 온가족이 매일 같은 본문으로 적용하고 묵상할 때, 함께 고백할 떄에 한 마음 한 목소리로 고백하는 것이 성령의 고백이다. 이게 없으면 어디서 가족이 하나가 되겠나. 갈등을 한 짐씩 짊어지고 살겠는가. 호몰로게오 우리 목소리라는 뜻이 있지만, 동의하다 시인하다 라는 중요한 뜻이다. 자백과 고백이 같다. 그래서 오늘 성령의 고백에 공동 번역은 시인이라고 했다. 우리 모든 죄 고백의 자백은 우리의 모든 불의에서 깨끗게 해주신다. 우리가 목장에서 나누잖아요? 그럼 불의에서 깨끗게 하신다. 여러분은 그까짓거 뭐 깨끗게 하나? 일단 여러분이 교회에 온 이상, 얼마나 거룩해져 가는지 몰라요. 죄가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우리들교회가 거룩해져가는 것에 모델이다. 죄를 말하면 자백하면, 나를 깨끗게 해주신다. 미쁘시고 의로워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신다. 사람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성령의 자백이다. 부활 소망으로 내 죄를 고백하는 개인 구원으로 목장에서 나누니, 공동체적 구원이 된다. 그래서 자백, 공동체척 고백의 두가지 뜻이 있다. 그래서 사실 개혁한글 못 담는 것들이 있다. 한글 성경만으로 큐티하지만, 이런 건 정말 원어가 뜻을 담아놨구나 싶다. 그러니까 이제 그 바울이 박해 가운데, 이스라엘에게 예수를 알리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지난번 황송영 초원님이 노스펙 노머니 온리 지저스 와우 하셨다. 그게 복음의 핵심이다. 이 세상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죽음 무릅쓴 고백을 하게 하신 것이 성령의 고백이다. 목장에서 나누는 것이 불의에서 깨끗게 해 주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도 the way에서 way는 도이고, the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내 죄고백이 다른 사람의 죄 고백을 불러 일으킨다. 전염병처럼 퍼진다. 목장에서 내 죄 고백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날마다 간증을 한다. 그 간증을 듣고 생명이 접붙혀진다. 목사도 저런 얘기를 할 수 있네 라는 것을 공동체에서 고백하시면 희한하게 하나님이 병 고쳐주신다.
[적용질문]나는 의인의 부활만 믿습니까? 악인의 부활도 믿습니까?
죄의 자백이 확실합니까? 공동체 고백도 확실합니까?
3.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고백입니다.
더둘로의 마지막 고발은 성전을 더럽게하려 했다. 여기에 대한 변명을 들어본다. 더둘로는 변론이고, 바울은 변명이다. 변론은 싸우자고 하는 것이고, 변명은 사과로부터 한다. 이방 교회 마게도냐 돕는 것도 어렵지만, 예루살렘까지 안전하게 얼마나 치밀하게 가져왔는지요. 그 구조를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고, 궁극적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화합니다. 이 때 조심해야하는 게, 유대인의 선민의식을 배려하면서 줘야하는 것이다. 자기 의를 위한 양심이 아니라, 힘쓴 일이라고 양심의 거리낌이 없도록 부조를 가져왔다고 하는 것은, 항상 끝에 돈이 있는데, 초로의 노인 바울이 돈을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나사렛 이단의 괴수가 되어 돈 받은 것도 아니고, 성전 더럽힌 것도 아니다. 이단 교주는 다 돈문제 일으킨다. 소요를 보면 꼭 돈이 있다. 그런데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 돈을 주러 왔다는 것이다. 이 대단한 예루살렘 교회에 돈을 주러 왔다는 것이다. 이방에서 가져온 부조는 사랑과 노력의 표시다. 이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양심에 거리낌이 있다. 온갖 방해와 비난을 무릅쓰고 철저히 자기를 숨기고, 예루살렘에 보인 것이다. 방해, 어려움, 무릅씀을 보고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이다. 성령의 고백인데, 돈이 있다. 물질 가는데 마음이 간다. 헌금도 많이 가고 왔을 것인데, 돈을 주는 바울과 돈을 바라는 더둘로는 게임이 안된다. 바울이 온유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말을 하니 사람들이 많이들 모여든다. 착해서 이말저말 다 들어주고 하는 것 매력 꽝이다. 원칙을 지키니 프라이드가 있다.
[적용질문]여러분은 원칙을 지켜서 긍지를 갖게 된 적이 있나요? 스승의 날에 원칙을 지키게 해주시고 긍지를 갖게 해주신 스승님이 있으신지요?
*기도제목
이소정
1. 진로의 과정에서 내 고백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고백이 나올 수 있도록
2. 가족과 지체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
류가영
1. 직장, 가족, 남자친구에게 사과할 것은 겸손히 사과하는 지혜를 주시기를
2. 직장에서 금전적 문제에 계속 원칙 지키는 것으로 평안함과 자부심과 자유함을 누리기를
3. 무릎 및 영육간 강건
4. 직장에 지혜를 부어주시길
5. 가족과 지체를 위해 출근시간에 기도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