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8 성령의 고발
사도행전 24:1-9
지난주에 베델교회의 김한요 목사님은 성령의 편지로 와 주셔서 우리들교회 얘기를 객관적으로 듣게 하셔서 격려도 되고 사명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이에요. 좋은 부모, 나쁜 부모 없고 예수 믿게 해 준 부모가 최고의 부모라고 했는데 오늘 우리가 실례 간증을 들었습니다. 자 우리는 그러면 어떤 부모일까요? 소위 좋은 부모로 최고로 키우고 교회도 다니게 했는데 우리 김 목사님 말씀처럼 죽고 나서 내 자녀가 이상한데서 눈 뜨면 어떻게 하죠? 요즘 사회적으로 이렇게 고소 고발의 시대를 산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꼭 법적인 고발이 아니더라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적이나 공격을 받는 것도 고발을 당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내 자신이 내게 비난하는 내면의 소리도 스스로 고발하고 고발당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죠.
바울은 그 자신이 특별한 성령의 편지가 되어서 가이사랴로 왔어요. 그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로 전달이 되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이 바울이라는 편지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이 바울이라는 편지가 펼쳐지기 위해서 아주 독특한 방법이 사용되는데 바로 그것이 고발입니다. 바울이 그 무서운 고발을 당하니까 무서울수록, 사악할수록 그 고발이 더 큰 성령의 고발로 바뀝니다. 그래서 바울이라는 편지가 온 세상에 펼쳐지기 위한 최고의 은혜의 통로가 되게 된 것이죠. 그래서 고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고발을 당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바울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 그 고발에 성령이 임하시니까 최고의 은혜로 바뀌게 하셨습니다. 발상의 전환이 너무 중요해요. 오늘은 서로 서로 정죄하는 모든 고발이 성령의 고발로 바뀌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세상으로 내려가는 고발이 아닙니다. (1절)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 1절입니다.
이제 바울의 전도 여행이 소강 상태에 들어가고 바울을 잡고자, 죽이고자 하는 박해가 계속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21장 이렇게 보면 유대 궂중을 향한 바울의 변론이 있고,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의 변론이 23장에 있었죠. 그것도 끝이 안나서 이제 로마 총독에게까지 고발을 하니까 오늘 벨릭스 총독 앞에서의 변론이 있고, 베스도 앞에서의 변론, 아그립바 왕 앞에서의 변론이 지금 이어집니다. 이런 변론을 이렇게 길게 다루는 것은 이런 변론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아주 크기 때문인데요. 우리의 신앙 생활이 수많은 고발에 대해서 변론하는 것이거든요. 성령의 편지가 되려면 반대에 직면하여 수 없는 변론을 해야 되는 거예요. 초대 교회 당시 갖은 박해와 고난 가운데 처하여 있었지만 바울의 이러한 변론에 힘을 얻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에요. 이처럼 자세한 변론 내용은 수많은 고발을 받아낸 우리들교회 성도들 간증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큐티인의 간증이 풍성하자나요. 그래서 오늘은 벨릭스 총독 앞에서의 변론을 보겠어요.
이제 바울이 보병과 기병의 호위를 받으면서 완벽한 전락으로 안디바드리를 지나 가이사랴로 떠난지 닷새가 지났습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는 40명의 암살단이 있었자나요. 그런데 그들이 가만히 있을 그들이 아니죠. 거기의 대표격인 아나니아 대제사장은 자기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의 대표라는 것을 과시하려고 자기 수하의 장로들을 데리고 탁월한 한 변호사와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유력한 사람들이 팀을 이루어서 바울을 잡겠다고 떠났어요. 지금으로 따지면 아나니아가 행정수반이기 때문에 대통령과 정치인과 대형 로펌의 대표가 한 팀을 꾸려가지고 온 거예요. 그런데 이 1절에 총독만 이름이 없어요. 다 이름이 있는데요. 그것은 이미 공정할 수가 없는 재판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면 왜 벨릭스 총독이 공정할 수 없는 인물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겠어요.
벨릭스 형제는 원래 글라우디오 황제의 어머니의 노예였어요. 형제가. 그런데 글라우디오 황제는 온갖 못된 쾌락은 그냥 모조리 추구하면서 유대인들을 다 추방했던 악한 왕이었죠. 그런데 이 사람은 그냥 하루도 쾌락적인 것을, 살아 새것을 계속 추구하면서 그때 이 온갖 쾌락의 소스를 알아서 제공한 자가 바로 벨릭스의 형 팔라스였어요. 그러니까 이 쾌락을 제공하는 자들과 당연히 이권이 개입되니까 돈을, 돈을 얼마나 모았는지 그 돈으로 노예인 동생을 신분 세탁해서 총독으로 밀어 넣을 정도까지 된 거예요. 그리고 팔라스는 끝까지 왕을 모시고 자신은 총독이 되지 않았어요. 충신 났죠? 우리 지금 보면 '어, 훌륭하다.' 그렇게 생각할 사람. 그러니까 이렇게 갱단, 마피아 같이 죽고 죽이는 정치판에서 이때 이권이 있는데 고발이 난무했겠죠. 여기에 거의 100%, 거의 99% 승률을 자랑하는 더둘로 변호사가 이 돈 냄새를 귀신 같이 맡고 '이게 돈 되는 일이구나.' 하면서 아나니아의 오른팔이 되어서 협업을 한 거죠. 더둘로가 헬라어를 잘하지만 그러나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오직 돈 만이 나의 힘.'이라는 리더 그룹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돈, 돈 하면서 잔인하게 그 모든 통치를 했던 글라우디오도 그렇지만, 이 벨릭스도 총독을 6년밖에 못했어요. 불안하게 지옥을 살다가 악한 황제에게 소환되어서 비참하게 죽었어요. 이 세상의 권세가 그렇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영원한 보장인지 알아야 하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벨릭스의 스토리가 이렇게 되는 것을 알고 우리가 출발을 합시다.
오늘 1절에 대제사장과 그 일행들이 함께 내려왔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바울이 가이사랴로 갈 때는 내려갔다라는 표현은 없어요. 똑같이 가이사랴로 온 거자나요. 예루살렘에서.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가이사랴로 들어가 그러니까 이르렀다, 들어갔다 라고 표현되어 있지 내려갔다 라는 말이 없어요. 그러니까 바울이 가이사랴에 간 것은 '마침내 이르렀다, 안전하게 들어갔다.' 뭔가 꼭 가야한다는 표현이에요. 영적인 예루살렘은 늘 꼭 올라갔다고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한마디로 여기서 함께 내려갔다는 이 말은 영적이 아닌 세상으로 흘러내려갔다는 뜻이에요. 세상적인 방법으로 했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이 단어를 유심히 보면 내려왔다 라는 단어가 3인칭 단수예요. 너무 이상하자나요. 주어가 여럿인데 어떻게 단수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여럿이 주어인데 그것을 받는 내려왔다는 동사는 단수라는 거죠. 그러니까 주어를 단수로 한 사람을 딱 꼬집어서 여기서 대제사장을 지칭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사람이 제일 우두머리자나요. 대제사장은 여러분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 성전에 있어야 되자나요. 절기 지키는 예배를 준비해야 되고 성전에서 할 일이 많아요. 그런데 이 바울에 대한 증오심으로 바울 한 사람 죽이겠다고 104km 떨어진 300리 길을 지금 닷새나 달려왔어요. 이제 유대인들은 대제사장이 아니더라도 여자와 노예와 이방인을 무시합니다. 그리고 소송하지 말라고 해서 세상 법정에 들어가는 것을 금기시해요. 그런데 모든 걸 깨고 이 나이 많은 대제사장 양반께서 손수 자기가 직접 와서 이방인 법정에 들어갑니다. 얼마나 지금 급하면 이러겠어요. 진짜 얼마나 급하면. 이제 끝이라고 생각을 해요. 딱. 급하면 눈에 보이는 게 없어요. 여럿 우리가 내려왔지만 이 기막힌 대제사장을 바라보며 내려왔다고 단수로 기록한 거예요. 대제사장이 함께 내려온 이 일의 주범이라는 거죠. 그가 획책했기 때문에 같이간 모든 사람이 고발을 해서 똑같이 주어가 복수인데 내려갔다는 단수고 고발했다는 복수예요. 대제사장이 내려와서 모두가 같이 고발을 했다 이런 뜻이죠.
결국 이렇게 내려간 아나니아의 최후도 어떻게 되었을까요? 십일조를 가로채며 온 나라에 권력을 휘두르던 그는 훗날 온 백성의 미움을 받다가 결국 하수구에 숨어 있다가 로마 군병에게 죽임을 당하게 돼요. 벨릭스도 대제사장도 아나니아도 최후가 너무 비참하지 않나요. 정말 다시는 올라갈 수 없는 곳에 지금 내려간 거예요.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힘과, 권세와, 변호사를 고용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예배의 자리를 박차고 내려갔어요. 먹고 살만하면 예배의 자리를 박차고 내려가요. 그런데 돈도 없고 권세도 없으면 박차고 내려가지 못할 텐데 우리가 권세가 없어서 누군가 고발을 해도 박차고 내려갈 환경이 안되는 것이 우리에게는 축복입니다. 증오심으로 지금 바울의 죄를 묻겠다고 자리를 박차고 쫓아가면 상대는 더욱 악해져서 싸움만 일어날 뿐입니다. 그래서 그저 어떤 상황에서도 내 자리를 지키는 것, 목숨 걸고 가정을 지키고, 예배와 목장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결국 누군가를 회개케 하는 성령의 고발이 되는 것이죠. 이것이 성령의 고발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면 나를 보고만 있어도 성령의 고발이 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
그래서 오늘 이 고발의 뜻으로 사용된 단어는 엠파니쪼라고 원래는 눈에 띄도록 드러내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바울의 잘못을 다른 사람들이 똑똑히 보도록, 드러내도록 지금 고발을 한다.' 우리 말에도 잘못을 까발리다라는 표현이 있자나요. 이것이 엠파니쪼의 의미입니다. 고발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울을 그렇게 고발했기 때문에 결국 바울을 온 세상에 나타내고 알리며 도리어 바울을 자랑하게 된 것이에요. 그런데 바로 이 단어는 부활 후 우리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다시 나타나실 때 사용하는 단어예요. 즉 이 단어는 법정적인 어휘인데요. 재판장 앞에 우리를 위하여 예수께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다는 뜻을 품고 있어요.
즉 바울을 고발한 이 사건이 도리어 바울을 알리는 사건이 되었고, 바울 옆에 바울을 변호하기 위해서 예수께서 나타나신 것이라는 거예요. 바로 이것이 성령의 고발입니다. 바울은 늘 이르렀고, 들어가고, 자기 자리를 지켰어요. 누군가를 미워해서 고발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그렇게 세상 방법으로 누군가를 죽이고자, 원수 갚고자 내려가지 않고 내 자리를 잘 지킬 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알리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 성령의 편지인 나를 알리실 것입니다. 나의 믿음과 나의 눈물과 나의 자리를 주께서 아시기 때문에 주께서 가만히 자리 잘 지키고 있는 나를 알리시고, 주께서 변호하시고, 주께서 결국 내 앞에 나타나실 줄 믿습니다. 나타나십니다. 적용해보실래요.
[적용] 혹시 변호사를 고용해서 이혼 등을 생각하나요? 권세와 재물이 주어져서 편한 교회, 편한 가정의 환상을 가지고 지금 어디로 내려가고 있나요?
2. 말에 걸려 넘어지면 세상의 고발로 끝납니다. (2-9절)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 2절이에요.
고발장이 접수되자 총독이 바울을 소환합니다. 바울이 법정에 나와요. 지금 피고 신분이죠. 아나니아가 대표하는 유대인 전체가 원고가 되고, 그 원고를 대변하는 지금 변호사가 있고, 이미 아나니아와 뇌물을 주고 받는 사이인 벨릭스가 재판장인 이 법정에 바울이 피고로 섭니다. 더둘로가 벨릭스에게 아첨을 합니다.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 3절서부터 읽어보겠어요.
변호사 더둘로는 연설 전문가답게 고상한 단어와 품격 있는 어투로 벨릭스 총독을 향해 바울을 고발하는 연설을 하는 거예요. 각하, 태평, 무슨 선견, 개선, 멋있는 단어. 그러니까 각하 그 벨릭스 때문에 태평하답니다. 그는 신의 예지를, 하나님의 예지를 가진 선견을 가졌대요. 개혁을 했다고 여러가지로 이 나라가 개선되었답니다. 이런 묵직한 단어로 벨릭스를 한껏 칭송합니다. 그런데 사실 노예 출신 벨릭스는 각하나 선견이라는 말이 절대로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자나요. 그의 통치는 분쟁이 잦았기 때문에 태평이나 개선이라는 말과도 거리가 멀었어요. 그런데 그때 도둑을 잡았답니다. 그때. 도둑을 좀 많이 잡았대요. 앞에서는 잡고 뒤에서는 돈 받고 다 풀어줬대요. 그러니까 이 사람 돈 밖에 모르니까. 우리가 지금 벨릭스에 대해서 조금 전에 알아봤자나요. 잔인하고, 악하고, 음탕한 노예이고, 특별히 돈 노예이고, 이방인인 그에게 이스라엘의 최고 행정 수반인 대제사장이 변호사를 통해서 짧지만 굵은 칭찬으로 총독을 한껏 띄운 더둘로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을 해봐야 되는 거예요. '야 돈이 좋으면 이런 사람 바울을 지금 고발하면서 벨릭스를 이래야 될 것인가?' 그러니까 이제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한대요. 현재형으로 그냥 너무 감사하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감사하다고 어마어마한 칭찬을 한 거예요. 그래서 이 더둘로는 그렇게 칭찬을 해놓고 이제 바울을 고발합니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7] 8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 5절이에요.
바울에 대해 더둘로는 전염병이라는 죄패를 딱 붙입니다. 의학이 발달한 오늘 날도 코로나같은 전염병이 얼마나 무서워요. 하물며 과거에는 어땠겠습니까? 전염병은 듣기만해도 '악~'소리가 나는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무조건 피해야하고 무조건 없앨 수 있으면 없애야 하는 기피대상 1호였어요. 그런데 진짜 더둘로가 언변이 좋았던 것 같아요. 이 단어 하나를 잘 골라서 특정 인물에 딱 연결을 시키는 아주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의 능력이자나요. 그러니까 승률 100%죠. 그러니까 더둘로가 전문가답게 하고 많은 단어들 중에서 전염병이라는 가공할 단어를 바울과 딱 연결시킵니다. 이제 바울은 전염병이라는 낙인이 딱 찍혔어요. 그러니까 이제 언론에 한 사람 이렇게 프레임을 씌우기 시작하면 낙인이 딱 찍히는 거 있죠. 끊임없는 언론 플레이를 해요. 정치가들은. 그런데 이제 진짜 그런 거 있죠. 그럼 어떻게 전염병같은 자냐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요. 첫째,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기 때문에 전염병같은 자라는 거예요. 소요는 로마 관리들이 제일 싫어하는 일인데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로마는 너무 넓은 영토를 로마라는 하나라는 지붕 아래에 두기가 어렵기 때문에 소요나 폭동을 철저히 예방하고 진압해야 됐어요. 그런데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서 유대인의 소요를 일으키는 폭동가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로마 법에 따라서 처형을 해야 되고 반역죄로 십자가 죄로 다스리라고 지금 넌지시. '바울이 가는 곳마다 소요를 일으킨다.' 바울이 전염병인 이유 두번째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는 거예요. 바울이 전하는 가르침은 정통 유대교가 아니라 나사렛 이단이라고 지금 폄훼를 합니다. 그가 비주류 집단이라서 그는 늘 주류를 비판하고 문제를 일으키는데 이 위험 집단의 두목이 바로 바울이라는 거예요. 따라서 '로마의 안전을 위해서 그 싹을 싹둑 잘라야 된다.' 이렇게 변론을 했어요. 뭐 남의 얘기 같지 않아요. 그렇죠? 제가 항상 비주류에 있어봐가지고. 지금 이게 전부 다 내 말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번째로 왜 전염병인가. 성전을 더럽게 하려 했다는 거예요. 로마는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때로는 그 지방에 일정 권한을 주기도 했는데요. 예루살렘처럼 종교성이 강한 지역에 대해서는 그들이 신성시하는 규율에 따라 형벌을 집행하는 것을 허락하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그 나라의, 그 민족의 전통, 문화 다 인정해줬어요. 오직 소요만, 오직 소요만 다스렸는데, 그래서 야고보 사도나 스데반 집사를 로마의 관여 없이 살해를 할 수 있었던 거죠. 죽일 수 있었던 거예요. 바울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유대인들이 알아서 처형해도 될만한 이 심각한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주도 면밀하게 변론을 하는지 성전을 더럽게 했다는 게 아니라 지금 뭐라고 그랬습니까?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성전을 더럽히지 않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책임 소재가 될까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그러니까 이제 일류 변호사는 이렇게 나갈 자리를 보고 이렇게 변호를 합니다. 더둘로가 이렇게 유창하면서도 파괴력 있는 고발 연설로 바울을 순식간에 전염병 같은 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향해 유대인과 율법과 성전을 비방하여 가르치는 자라는 그런 프레임을 씌웠던 거 기억하시죠. 사실 그때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그 이방인, 절대로 이방인과 같이 성전에 들어갔다고, 같이 그 드로비모인가, 같이 들어가지도 않았자나요. 그렇게 아주 프레임을 씌우는데 아주 그냥 일가견이 있어요. 이 그룹이. 그런데 이젠 더둘로가 전염병이라는 한 단어로 딱 각인을 시켜버렸어요. 과연 더둘로입니다. 이 고발에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다 동의 합니다.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 9절이에요.
그러니까 이 아나니아와 이런 더둘로와 장로들, 그 리더 그룹이 그냥 결정만 하면 이 유대인들은 다 옳다. 자기 생각이 없어요. 야 그 정치, 똑같아요.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 하고. 유대인들이 더둘로의 고발에 증인으로 지금 자처하는 거예요. 그 어떻게 벨릭스를 그렇게 칭찬을 할 수가 있어요. 자기 동족 바울은 지금 가말리엘의 후예고, 산헤드린 공회원이고, 유대인 중에 유대인인데, 이 바울을 향한 고발인데 전부 다 '바울을 죽어라.' 바울이 이방인과 어울리며 유대인의 정체성을 훼손한다고 비난한 그들인데 정작 자기들이 이방인 총독에게 지금 동족 바울을 고발하고 있죠. 제가 벨릭스의 히스토리를 괜히 말씀드린 게 아니예요. 어떻게 이 벨릭스에게 바울을 고발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자기 이권이, 자기 유익이 딱 생기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게 본능이에요. 참 아이러니 합니다.
여러분은 누군가 여러분을 '전염병 같은 자.'라고 하면 어떨 거 같으세요? '저 코로나 같은 놈.'그러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기분이 안 상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게다가 아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면서 왜 전염병 같은 자인지 설명한다면 어떻겠어요. 듣기가 너무 어렵겠죠. 부글부글. 부글부글 끓어 오르겠죠. 우리를 향한 고발은 이렇게 공격하는 말을 동반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결국은 그 말에 다 걸려 넘어지는 거예요. 잘 참다가도 말 한마디, 아니 단어 하나에 걸려서 다 분이 나서 폭발을 합니다. 결국은 99번 참아도 한 번 못 참으면 똑같은 거예요. 공격하는 자나, 공격하나 당하는 자나. 결국은 거기서 거기예요. 이렇게 말에 걸려 넘어지면 우리가 당하는 고발은 세상의 고발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야.'라는 말을 하는데 이 고발하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참지 못해가지고 똑같이 고발하고 싸우면 지는 거예요. 화가 나면 지는 거예요. 왜요? 예수님의 편지가 될 수 없자나요. 예수님의 증인으로 서야 내가 받는 고발이 성령의 고발이 되는데 화를 내고, 서로 싸우고, 고발로 갚고 이러면 결국 성령의 고발로 바꾸어지지 못해요. 내가 성령의 편지가 못되니까. 여러분도 가정이나 직장에서, 또 교회에서도 좀 말 한마디에 부르르 떨지 말고 좀 넘어가시기 바래요. 말 하나에 시험 들어서 '사니, 못사니.' 그래서 그냥 이혼을 하고, 뭐 이러고 그러는데 그 의도를 살펴야 하고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전하시려는 뜻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정말 그 어떤 말을 해도 넘어가시면 좋겠습니다.
[적용] 내가 도저히 참지 못하는 단어 하나는 무엇입니까? 또 한마디만 들으면 용서가 되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세상의 고발이 아첨으로 시작한다는 것 인정하십니까?
3. 천하에 흩어진 백성들에게 알리는 고발입니다. (5-9절)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7] 8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 자 똑같은 5절서부터 9절까지 다시 읽어요.
바울의 죄를 고발할 때 우리가 보니라고 시작을 합니다. 우리가 이전에 들었던 이 보니라는 단어는 블레포도 있고, 에이도도 있고. 그러니까 아주 주의 깊게 보다라는 그런 단어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쓰인 이 단어는 휴리스코라고 그냥 대충 봐도 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한 번만 봐도 전염병 같은 자라는 것을 딱 알 수 있다는 거예요. 대충 봐도 알고, 한 번만 봐도 알고, 지나가다가 우연히 봐도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러면서 바울을 전염병 같은 놈이라고 했자나요. 그러면 이 말을 듣고 어떻게 넘어갈까요? 전염병 같은 놈이라는 고발을 들은 바울은 어땠을까요? 이 말 자체가 너무 기분 나쁜 말이지만 생각해보니까 내용이 다 맞아요. 자신이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한 일이 바로 복음을 전한 것이자나요.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다녔는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 믿는 제자들이 곳곳에 생겼고, 교회가 세워지고, 성도가 점점 늘어났어요. 어떤가요? 전염병 같은 자 맞지 않아요? 진짜 복음을 퍼뜨리고 다녔자나요. 그러니까 바울은 '야 이런 식으로 내가 힘쓴 전도를 인정받을 수도 있구나.' 이게 발상의 전환이에요. 속으로 '맞다. 나 전염병 같은 놈이야.' 그렇게 했을 것 같아요. 뭐든지 이렇게 구원의 관점으로 생각하면 걸려서 넘어지지 않고 다 훌쩍 넘어갈 수 있는 거예요. 날마다 걸려 넘어지면 그건 이제 여러분들이 성령의 고발이 못되서 그래요. 그러니 이 말도 안 되는 고발인 더둘로의 말에 하나님의 시선이 담겨 있음을 봐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실 때 바울이 이 세상을 복음으로 전염시키는 당신의 편지인 거예요. 이 바울이 가는 곳곳마다 그리스도가 전해지고 전 세계로 이 복음이 전해지는데 이 바울이 나사렛 도당의 제일 첫번째 우두머리라는 것이죠.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사람들의 동네, 나사렛에서 제일 앞서 달려가는 사람이 바울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 힘든 사람 제일 앞에서 죄와 싸우면서 복음을 증거하는 첫번재 사람, 최고의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셨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맞지. 내가 전염병 같은 놈 맞아. 아유 저 더둘로가 나를 인정해주네.' 그렇게 생각을, 발상의 전환을 하시면 돼요. 누가는, 지난번에 우리 24장에서 그때도 고발 얘기했자나요. 고발을 그때나 오늘이나 여덟 번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개역 성경에는 똑같이 다 고발이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가 이제 헬라어는 거기 세 번이나 단어가 바뀌어요. 그래서 빨강, 파랑, 형광 이렇게 세 가지 색으로 동그라미를 치듯이 아주 그렇게 하이라이트를 하고 있는데요. 23장 28절의 고발은 제가 엔칼레오라고 했죠. 내 것 내놔라 기억나시죠? 엔칼레오, 내 것 내놔라 오늘 1절은 엠파니쪼, 그들이 잘못을 까발리다. 그들이 잘못을 까발리면 하나님이 자랑해 주시는 거예요. 오늘 2절과 8절에 카테고레인, 카테고리아의 어우너이기도 합니다. 범주라고 그러죠. 카타의 접두어와 아고라의 합성어인데요. 즉 광장 아고라에서 공개적으로 죄를 묻고 그 죄를 지목해서 널리 알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카테고레인의, 고발하다의 단어 뜻이에요.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광장,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우리가 매주 모여 말씀 앞에 치열하게 나를 드러내고 고백하는 목장이라는 거예요. 더둘로처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고발하는 게 아니라 목장 가운데 그 임재하신 하나님께, 그 말씀 앞에 나의 눈물과 상처를 심지어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의 죄까지도 나누면서 나아갈 때 이 모든 나눔을 널리 알리는 것이 바로 성령의 고발이에요. 뭐라고요? '내 것 내놔라.' 내 죄를 까발리는 고발을 할 때도 하나님이 도리어 그들이 나를 까발리는 고발을 할 때도 하나님이 도리어, 그들이 나를 까발리면 하나님이 자랑을 해주신다고. 그 다음에 광장에서 주목하면서 나의 모든 것을 나누는 것, 이게 이제 고발인데 이게 성령의, 모든 나눔을 널리 알리는 게 성령의 고발이라는 거죠. 나사렛 도당의 우두머리 같은 내 죄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무리 앞에 제일 앞장서서 달려가는, 하나님이 첫번째로 자랑하고 싶은 첫번째 사람이라는 거예요. 이 바울이. 이렇게 우리가 목장에서 나누며 가는 이 모든 나눔을 온 세상에 전파하며 천하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파되어 그들을 와글와글 소요케 하는 이것이 성령의 고발이라는 것이죠. 할렐루야. 그러니까 큐티인이 영어로 번역되었자나요. 이제 미국에서, 영국에서, 캐나다에서, 필리핀에서, 이제 온 천하에 지금 우리의 나눔이 읽혀지고 있어요. 그러면 '어이고 쪽팔려.' 그러시겠어요? 천하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우리가 고발당한 사실들을 다 읽어내려 가자나요. 지금. 그럴 때 그들의 마음에 소동이 일어나고 '아 나와 같이 고난당한 사람이 또 있구나.' 그 위로를 받으며 우리가 붙든 예수를 다시 붙들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염시키는 제일 첫번째 사람으로 우리를 불러 주시는 것이죠. 이것이 성령의 고발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냥 나는 내 자리에서 목장 나눔만 했는데, 거기서 내 죄를 봤는데 그것이 온 천하에 흘러 내려가서 온 천하를 지금 소요케하고 있다고요. 이게 전염병같은 놈과 년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디 세상으로 흘러가지 아니하고 여기 딱 짱 박혀가지고 했는데, 가만히 있는데 코로나 시기에 온 천하에 열매 맺어 자라는 복음이 된 거예요. 그러니까 수많은 요동과 고발로 우리 안에 편지가 열려서 내 속에 있는 예수가 전해지는 것이죠. 그러니까 변호사 더둘로가 자신의 탁월한 헬라어 실력과 법정 지식과 로마 법과 절차에 대한 탁월한 학문으로 고발을 했지만 오히려 바울이라는 편지를 열어서 지금 바울을 널리 알리고 있는 거예요. 더둘로가 고발을 했지만 사실 더둘로가 바울을 알리고 있다 이거예요. 우리는 누가 뭐라고 고발을 할 때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고. 미워하지만 않고, 그냥 고발하지만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더둘로가 알려준다는 거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편지를 열어서 온 세계에 알리고 싶어 하시는 거예요. 우리 베델교회가 더둘로는 아닌데 천당 밑에 얼바인이 있대요. 거기 너무 아름다워서. 그런데 당연히 거기 박사들도 많고 너무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데 정말 가만히 있었더니 그분들을 사용하셔서 이렇게 영어가 네이티브로 번역이 되게 됐으니 이게 또 우리들교회 얘기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여러분도 너무 놀랍지 않으세요? 여러분 뭐 잘났어요? 여러분들이 뭐라고 영어로 막 우리의 나눔이 번역이 되어지고 이러겠습니까.
실제로 바울은 1차, 2차, 3차 전도 여행 때보다 계속 지금 갇혀 있는데 계속 고발을 당하고 있자나요. 그래서 유대인 지도자, 대제사장, 로마 총독들, 그리고 이제 로마 황제에게까지 고발을 당하니까 점점 복음의 지경이 넓혀져 가고 있자나요. 그러니까 고발로 말미암아 천하에 흩어진 백성들에게 지경이 점점 넓어지는 거예요.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발상의 전환이 일어나서 가만히만 있으니까 자꾸 잡혀가 가지고 로마 왕한테까지 복음을 전하게 됐어요. 여러분들은 이렇게 미워하고, 고발하고, 고소하고 이런 걸 안 하셔야 돼요. 그래야지 하나님이 쫙 지경이 넓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적용] 내 죄를 대충 보고 넘어가고 있습니까? 목장에서 구체적으로 내 죄를 보고 나누며 가는 것이 천하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누구의 고발로 이 자리에 왔나요?
말씀을 맺어요. 성령의 고발은 세상으로 내려가는 고발이 아닌 거예요. 자기 자리 잘 지키는 것이에요. 그리고 말에, 한 말에 걸려 넘어지면 세상의 고발로 끝나면 열매가 하나도 없죠. 우리는 똑같은 말이라도 이렇게 그냥 나보고 전염병 환자라고 하면 '어떻게 아셨어요?' 이렇게 물어보면 되자나요. '아유 너무 잘 아셨네.' 천하에 흩어진 백성들에게 알리는 고발인 거예요. 우리의 모든 사건들의 하나님의 시선으로 딱 발상의 전환을 해서 그렇게 봐야 되는 줄 믿습니다.
목장 모임 참석
미혜, 연수, 예선, 해정, 우정
기도제목
미혜
하루하루 주신 말씀 사모하며 내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도 현재가 주님이 주신 최고의 환경임을 믿고 갈 수 있기를!
요즘 가족들에게 짜증 낼 때가 있는데 가족들에게도 경계를 지킬 수 있도록!
아빠 건강을 위해 술이 끊어지고 구원해주시기를!
우리 목장 식구들 한 주 주님께서 온전히 지켜 보호해주시기를!
예선
그날 주시는 말씀으로 하루만 잘 살도록
울림 기도회, 큐티 기도회 참석하여 나와 붙여 주신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목장에서 구체적으로 내 죄를 보고 나누며 가는 것이 천하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믿고 여전한 방식으로 잘 붙어 가도록
사람의 말에 걸려 넘어져 놀라는 일이 많은데 문자적으로만 보지 말고 잘 분별하며 갈 수 있는 지혜 주시길
허벅지에 화상입은 것 덧나지 않도록 끝까지 약 잘 챙겨 바르도록
지영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저희 엄마 많이 아픕니다..복수가 차 있어서 고통스러워 하고..아버지..독한 항암으로 나날이 힘들어 하고 잘 먹지 못하고 토하기를 반복합니다..아버지....부디..긍휼을 베풀어..기적과 같이 암세포가 죽어서 완치가 되는..그런 기적을 베풀어 주시옵소서..아버지..엄마 병원에서 홀로 견디고 있습니다..아버지...보호해 주셔서 저희 엄마 외롭지 않게 하나님이 보호하심을 느끼는 하루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아버지...계속 눈물이 나는데..저의 감정을 컨트롤이 안됩니다...아버지..마음잡고..아버지 살아갈 힘 주시옵소서....이 모든 기도 들어주실 줄 믿습니다..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하나님...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저희 엄마 살려주세요..제발...엄마랑 헤어질 마음의 준비 안되었으니..아버지 제발..제가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까지..아버지..허락해주세요..지금 항암제가 잘 안들어서 다른 항암제로 바꿉니다..이번약이 정말 잘들어서..암세포가 다 죽을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아버지..고통속에서 있는 엄마..천사와 동행하여 하루하루 감사가 넘쳐나는 하루하루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이 기도가 상달된 줄로 믿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