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1. '네 남편을 데려오라' (요 4:3-16) 김한요 목사님 (베델교회 담임목사님)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이 있다. 한 노인이 낚시하기 위해, 그 한 마리 잡기 위해 그 고생을 한다. 84일 가량 한 마리도 안 잡히다가 드디어 잡았다. 잡아서 돌아오는데 상어가 달라붙었다. 그래서 그 잡은 생선을 지키려고 사투를 벌인다. 그러는 가운데 해변까지 왔는데 자기가 팔십몇일만에 겨우 잡은 그 생선을 보니 뼈만 남았다. 상어가 다 뜯어먹은 것이다. 참 허무한 인생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그래서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스스로 자결한 것이 아닌가. 인생이 이렇게 허망한 것인가를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물고기 한마리만 잡으면 될텐데, 이것만 잡으면 대박날텐데, 이것만 되면 내 인생은 앞으로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할텐데.. 그래서 그 한마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들어올려보니 뼈만 남아있는 허무한 인생, 노인과 바다이다.
소설의 이야기지만 결단코 소설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뒷부분까지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이 여인에게는 다섯명의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사는 남자는 누군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혼의 경력이 있었던 여인. 요한 칼빈이나 루터의 주석을 보면 2000년 전 이 여인의 신분을 생각해보면 가장 불쌍한 여인이었을거라 이야기 한다.
요즘은 분위기가 좀 달라졌지만 우리가 소위 결혼에 실패했다는 표현을 쓴다. 이혼했다. 이런 이야기를 잘 이야기 못한다. 쉬쉬한다. 자랑할 것은 아니니 당연하다. 그런데 이제는 나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쉬쉬할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 시대에 다섯 남편과 이혼한 경력이 있는 이 여인을 대하는 모습은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정말 불쌍한 여인이었다. 한번 이혼해도 쉬쉬하는데 다섯번이나 이혼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무나와 산다. 동거하고 있다.
20세기가 되어서야, 1918년 되어서야 영국도 여성이 투표 참여권을 얻었다. 1872년에 미국 대통령 선거에 수잔 앤써니 여사가 몰래 투표를 했다. 불법 투표라 해서 체포되어서 모든 재판과정을 겪으며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달라고, 그래서 결국1920년 미국도 여성이 처음으로 투표에 참여한다. 즉 겨우 100년도 안된다. 여성이 투표권 얻은 것이 100년 밖에 안된다. 그러니 그것의 20번을더 들어가 2000년으로 갔을 때, 여성의 신분과 지위를 생각했을 때 다섯 남편과 이혼을 했다는 것은 가장 불쌍한 신분이었다고 하는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이 여인이 물길러 제 6시에 나왔다고 성경에서 이야기 한다. 12시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낮 12시는 뜨거워 나갈 수 없고 사람들이 거리에 잘 나가지 않는 시간이라고 한다. 왜 12시에 나갔을까? 사람 만나기 싫은 것이다. 대인 기피증이 있었다.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진다. 아마 요즘같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시대였으면 조금은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는 나가는 순간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을 것이다. 다섯 남자와 이혼한 여자, 그리고 지금은 아무나와 사는 여자. 이 시선을 안느낄 수 없다. 그래서 아예 사람이 다니지 않는 정오, 낮, 뙤약볕, 그 때 물 길러 나간다. 상당히 상징적인 표현 같은데 자기 인생을 대변하는 빈 물항아리를 들고 나간다. 아무리 물을 길러도 다시 메마를 수밖에 없는 빈 물항아리를 들고 우물에 나가는 이 여인이 등장한다. 누구와 대화하기도 말 섞기도 만나기도 싫다.
실패해서 이민까지 와서 미국에서 사는 교포들을 가끔씩 만나게 된다. 예배 드리고 바로 나간다. 환영하고 오시라고 하는데 잘 안온다. 왜냐면 만나면 자기 과거를 이야기 해야 하니까 그렇다. 어디서 왔다는 이야기를 해야하기에 그렇다. 그래서 우리 새가족팀에서는 금기사항이 있다. 물어보지 마라. 특별히 전공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말라, 대학을 어디 나왔는지 물어보지 말라고 한다.
어떤 분들은 질문을 안해도 이야기 하시는 분들이 있다. 기계나 전기공학을 했다던지 하는 분들이다. 그런데 절대 전공 이야기를 안하는 분들이 있다. 영문학 전공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왜냐면 영어 해보라고 할까봐 절대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과거를 들추기가 싫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여러분은 어떤가?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그래도 스펙이 좀 있으신가보다. 그러나 있다고 생각하는데 뜨거운 실패의 잔을 마신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 하기 싫어한다. 실패한 이야기 하기 싫어한다. 심지어는 대학 실패한 이야기도 하기 싫어한다. 근데 이 여인이 그런 의미에서는 대인기피증에 자기 이야기 하기 싫고 사람들과 섞이기 싫어하고 교제하기 싫어하고 몰래왔다 몰래 가고 예배도 뒷자리에 앉아서 살짝왔다 살짝 가는 살살이 성도수준이었을 것 같다.
이 여인이 다섯 번 이혼하고 지금 아무남자와 산다. 나이를 계산해보았다. 50-60대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리 초스피드로 다섯 번 결혼했다 해도 그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왜 이렇게 여러번 반복했을까? 이런 생각도 해본다. 한번 실패했으면 됐지 이런 실패를 왜 또 반복할까. 가슴이 아프다.
지난주 김양재 목사님 설교를 들었다. 그때 게놈 이야기를 하셨다. 그건 독일식 발음이다. 미국에서는 지놈이라고 했더니 옆에서 게놈이나 지놈이나 그놈이라고 한다. 맞다.
그 게놈에 DNA가 다 나온다고 한다.
UCLA에서 나온 연구 결과에 외로움이라고 부르는 DNA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것이 병을 유발하고 우울증을 유발해서 사람을 기피하게 되고 말하기 싫어하고 피해다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50대라 생각해봐도 이 여인은 얼핏 보기에 굉장히 나이든 할머니같이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치매 내지는 고혈압 심혈관 질병, 늘 독감이 떨어지지 않는 여인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시대에는 반드시 코로나도 걸렸을 거라고 이야기를 한다. 맞다.
이런 여인이 오늘 본문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여인, 간과해도 될 법한 여인, 이름도 없는 여인, 무시한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주위사람들의 눈총이나 혀나 차이고 입방아에나 오를 법 한 이 여인, 무시해도 될것 같은데 이 여인을 집중하면서 (오늘 본문에 한국어 성경에 희한하게 번역되었는데) 이 여인을 예수님께서 만나러 오신다. 이것이 오늘 포인트이다.
4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한국말 성경은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이다. 저는 이런 말을 써 본 적이 없다.내가 휘문고에 와야 하겠는지라. 이런 말 해본 적이 없다. 오면 오는거고 가면 가는거지..
영어성경에는 He had to go through. Had to 용법, must 반드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때 하는 말이다. I had to go samaria
예수님께서 반드시 하는 말이시다. 내가 사마리아로 반드시 간다. 이 여인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왜 이렇게 중요한 말이냐면, 유대인들이 사마리아땅이 더럽다 생각해서 안밟았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나서 앗시리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차출해서 자기나라로 데려갔다. 그리고 자기나라사람을 강제로 이민가게 해서 이스라엘 여인과 섞이게 했다. 그래서 사마리아사람들은 혼혈이다. 아직 멸망하지 않았던 남쪽 유다사람들이 생각해볼 때 저 위에 있는 사마리아 사람들은 섞인 인간들이다. 굉장히 인종차별이 심했던 유대인들이다. 한국사람 저리가라 할 정도로 인종차별을 했던 유대인들을 생각해보면 사마리아인들을 짐승취급했다. 그래서 북쪽으로 통과해서 충분히 빨리 갈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사마리아땅을 밟지 않고 요단강을 건너서 우회해서 건너갔다. 그게 그 당시 풍습인데 근데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땅을 직접 통과하는 것이다.
I had to go. 반드시 통행해야 한다. I got to go 하고 갔다.
여기에 예수님이 역사적인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그 누구도 가지 않으려고 한 그 땅을 예수님께서 일부러 가려고 하는데, 왜 가느냐? 지금 다섯남편과 이혼했던 그 여인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아무도 그 여인을 만나길 원치 않았고 여인조차도 그 누구를 만나길 원치 않았는데 예수님이 그 여인을 만나러 일부러, 그 당시 터부시했던 사마리아땅을 예수님은 일부러 건너 가신 것이다.
실은 이 여인도 예수님을 우물가에서 만나서는 냉소적인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유대인이 나를 만나는가 했다. 어디 여기까지 왔냐고, 어떻게 유대인이 나에게 말을 붙이냐고 했다.
그랬더니 13-14절
이 말이, 하루 하루 지루하게 빈 물 항아리, 외로운 인생을 지고 다니는 이 여인에게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려나 하는 말로 해석했을 것이다. 그러면 다시 나는 우물 길러 안나와도 되네 했을 것이다.
우물 길러 안나와도 되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 사람 안만나도 되네, 우연히 누구랑 부딪혀서 말 섞는 일 없어도 되네, 아예 사람을 안만나고 살수 있네? 그런 우물 있으면 주십시오 하면서 오히려 자기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물이 있으면 달라고 한다.
여러분에게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해주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을 갖고싶으신가? 여러분은 지금 목말라 하시는 것이 있나요? 오늘도 빈항아리 들고 우물가에 어쩔 수 없이 물 길러 나오는 여러분의 모습이 오늘 이 본문과 함께 투영이 되는가?
물 길러와도 잠시 후면 또 물길러 와야 한다. 오늘 좀 많이 퍼가면 하루는 버티나 할수없이 그 다음날에 또 물길러 나올 수 밖에 없다. 반복되는, 피로가 젖어드는 그녀의 삶속에 우리 주님께서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말은 그녀의 눈을 확 뜨게 할만 했다.
그래서 그러니 주세요 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옛다 하고 주시면 되는데 니 남편 데려오라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 물을 주시면 되지 왜 하필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는가. 이야기도 한적이 없는데 니 남편 데려오라 한다.
예수님은 가장 그 여인이 숨기고 싶었던 그녀의 뒷이야기, 숨은 이야기, 자기의 과거, 그것을 찔러버리신 것이다. 정곡이 찔렸다고 한다. 예수님의 질문은 네 남편 데려와라 였다.가장 숨기고 싶었고 가리고 싶었고 부끄러워서 결단코 내놓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사람 피해서 정오 뙤약볕에 물 길러 나왔는데 하필이면 만날 필요도 없는 유대인 남자가 목마르지 않는 물을 준다고 해서 달라고 했더니 네 남편을 데리고 오라고 자기가 숨긴 정곡이 찔려버린 것이다. 이 정곡을 성경에서는 죄라고 한다. 내 죄가 찔려버린 것이다.
죄라고 부르는 것이 좀 지나치다 생각하실 수 있다. 이 여인이 모든 것을 다 가진자라고 전제한다면 사람들 앞에 떳떳히 나올 수 있다고 하면 과연 이 여인은 온전할것인가? 내 남편이 잘나가는 남편이다, 어디 내놔도 이 남편때문에 내 얼굴이 올라간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 없는 곳 보다 사람 바글거리는데서 이런 남편과 산다고 자랑할만 하면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되냐는 것이다.
그런데 실은 그렇게 잘난 남편과 살아도, 살다 보면 비교의식 속에 은근히 찾아오는 비굴함이 있다. 남편이 잘나가면 오히려 아내가 더 비굴해질 수 있다.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아내가 잘나가면 남편은 상대적으로 더 박탈감을 느낄수도 있다. 친구들과 모이면 남편들끼리 서로 키재기하고 누구 남편이 더 잘났냐고 비교하는 가운데 시기와 자존심상함과 질투, 바로 그때 찾아오는 것이 무엇인가? 빈 항아리 들고 우물가에 나오는 이 여인의 외로움을 여러분도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름대로 스펙을 찾아서, 이 사람하고만 결혼하면 성공할 것 같다, 이 여자와 만나면 성공할 것 같다. 그래서 데이트하다가 깨지고 나면 인생 종친것 마냥 내 인생에 장래는 없는것 마냥 머리싸매고 드러눕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근데 가만히 살펴보라. 그것이 정말 다 일까? 정말 그것을 다 가지면 우리는 모든 문제에서 해결이 될까?
아까도 이야기 한 것 처럼 UCLA에서 발견한 게놈의 유전인자에 외로움이 있다고 한다. 그 외로움의 유전인자가 스펙을 가지면 사라지냐는 것이다. 아니다. 그 외로움은 늘 우리가운데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성경적로 조명한다면 그들이 발견한 DNA는 외로움이라는 유전인자라기보다 죄의 유전인자라고 생각한다. 이 죄의 유전인자는 아담때부터 계속해서 우리에게 전가되었다고 믿는다. 계속해서 우리에게 전가된 것이다. 여러분 안에 그 죄의 유전자가 있다. 한번 증명해볼까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한번 해볼게요.
김밥과 떡볶이가 불티나게 팔리는데 김밥이 훨씬 잘팔려서 떡볶이가 시기를 했다. 그래서 김밥형님을 어떻게 하든지 죽여야겠다고 생각해서 김밥형님이 퇴근해서 가는 집을 뒤따라가서 봤다. 그리고 밤에 떡볶이가 그 담을 넘어 김밥을 해치우고 나왔다. 그 다음날 아침, 이제는 떡볶이 세상이라고 이제 김밥은 사라졌다, 내 세상이 왔다고 콧노래를 부르며 떡볶이를 만들고 있는데 갑자기 저쪽에서 옷깃을 올리고 휘휘거리고 오는 김밥 형님이 들어온다. 너무 놀랐다. 어떻게 된 일인가, 표정관리못하고 있는데 김밥형님이 어제 순대형님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웃으셨는가? 그러면 여러분은 죄인이다. 제가 증명해냈다. 어떻게 이런 살인 사건을 이야기하는데 웃을 수 있는가? 죄인이다.
예수님께서 나중에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른다고 한다. (21절)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시는 걸까?
우리는 내가 지금 이모양 이꼴이 된 것이 누구 때문이고, 어떤 환경때문이라는 것이다. 내가 이 집안에서 태어나서 이모양 이꼴로 산다는 것이다. 누구처럼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내가 이러지 않았을 거라는 것이다. 은수저 금수저 물고 나왔으면 되는데 흙수저라는 것이다. 근데 예수님께서는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하러 올 때가 온다고 한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못 왔다. 유대 땅에 올 수가 없었다. 사마리아 땅도 밟기 싫어하는 유대인들이 그 사마리아 사람들이 자기네들이 가장 거룩하고 성스럽게 여기는 예루살렘에서 예배 드리는 것을 가만 두겠는가? 못들어온다. 그래서 사마리아 나름대로 성전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걸 두고 하시는 말씀이 사마리아도 예루살렘 탓도 아니라고 한다. 환경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어떤것도 여러분이 책임전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느끼는 것이 환경문제라고 생각한다. 맨날 생각하는 것이 내 문제가 아니라 저사람 문제라 생각한다. 내 문제가 아니라 가장 잘못 된 것은 너를 만난것 때문에 이꼴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네 남편을 데려와라 니 죄를 데려와라 니 문제의 핵심을 데려오라. 니가 그렇게 숨기고 싶었던, 꽁꽁 숨겨놨던 그 죄의 문제를 가져오라. 밝히라는 것이다. 고백하라는 것이다. 끄집어내라는 것이다. 아무리 가지고 있어봤자 문제해결이 안되고 남탓하는데, 끄집어내라는 것이다. 네 남편을 데려오라
여러분이 죄의 문제를 스스럼없이 이야기 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닌것 같다. 그런 간증들을 나누고 우리 큐티교재에서 그 간증들을 실명들로 올리는 것이 저같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쇼크였다. 이런것도 이야기하시네 했다.
근데 실은 제가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다. 여러분은 드러내지만 드러낸 죄인들이고 나는 숨기고 있는 죄인이다. 똑같다. 똑같은데 숨기고 있는 죄인이 더 나쁜 것이다. 안 그런 척 하는 것이다. 그래서 뭐가 잘못일까, 뭐가 더 잘못된것일까 생각해보았다. 드러내면서 결국 여인은 죄의 문제를 해결받는다. 네 남편을 데려오라는 것에서부터 해결받기 시작한다. 드러내지 않고는 니 남편을 데려오라는 말을 못 듣는다. 내 죄에 대한 정곡이 찔리지 않는다. 요리요리 피해다닌다. 교회는 나올지 모르지만 항상 하나님의 말씀의 검이 빗나간다. 빗나가기 보다 자기가 피하는 것이다. 물맷돌 한방에 나가야 하는데..
다윗은 물맷돌 다섯개를 집었다. 골리앗 잡으려고 다섯개 집었는데 한방에 맞췄다. 항상 맞추는가? 아니다 못맞춘다. 살짝 빗나갈 수도 있다.
제가 성경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드라마작가였다면 아슬아슬하게 만들었을 것 같다. 아슬아슬하게 골리앗의 이마를 지나고, 목을 스치고.. 이렇게 만들어야 재밌는 것 아닌가? 근데 너무나 싱겁게 땡 하더니 한방에 날라가서 쿵 쓰러졌다. 무엇인가? 말씀의 검이 가면 콱 찔려야 하는데 계속 피해다니는 것이다. 말씀을 맞아야 하는데 피해다닌다.
바로 그 죄의 문제, 니 남편을 데려오라는 말은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주님의 말씀이다. 그것 나에게 가져오라는 것이다. 나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예수님만이 여러분의 죄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분 앞에 여러분의 죄의 핵심을 가지고 나오라는 것이다. 여러분 안에 도사리고 있는 시기하고 혈압오르고 소화불량이 생기고 자꾸 뒤로 넘어지고, 우울하고 사람 만나기 싫고, 인생 다 산 사람처럼 그렇게 우울하게 살아가는 그 죄악의 핵심덩어리를 가지고 나오라는 것이다. 왜요? 예수님만이 해결할 수 있으니까. 예수님 앞에 나오면 그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만왕의 왕 되신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유일한 분이시다. 오늘도 온 천지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분명하게 돌리시고 행성에 도는 것 하나까지도 간섭하시며, 이 모든것을 당신이 지으시고 모든것이 당신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그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죄의 문제를 가지고 나오면 그분은 해결해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주옵시고. forgive our debts, as we forgive our debtors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근데 forgive our sin이 아니라 forgive our debts 라고 한다. 빚이라고 한다. 죄의 또다른 이름은 빚이다. 빚은 갚아야 한다. 10만원 빌렸으면 10만원 갚아야 하고 100만원 빌렸으면 100만원 갚아야 한다. 여러분이 죄를 지으셨으면 죄는 갚아야 한다. 그런데 죄가 얼마짜리인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한다. 죽는 수 밖에 없다. 여러분이 억만금을 갖다줘도 죄를 갚을 길이 없다. 죽는 것 외에는. 그래서 갚을 길 없는 나의 죄 문제를 위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것 아닌가.
이것이 복음이다. 내가 치뤄야 할 죽음으로 치뤄야 할 죄의 가격을, 그 빚을 예수님께서 대신, 우리는 갚을 길이 없으니, 여러분의 의 도덕 공부잘하는 실력, 스펙으로는 멋있는 여자와 당당한 남편과 결혼하는 것으로 절대로 갚을 수 없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우리 주님은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다. 그것을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는 약속을 허락해주셨다. 아멘이다. 실은 안 믿겨질것이다. 뭐 그렇게 간단하냐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저는 그랬다.
영어에 Too good to be true 라는 말이 있다.
여러분이 왜 복음을 왜 못믿냐면 엉터리나 비논리적이라서가 아니다. 복음이 잘못되어서 안믿는 분이 계시는가? 너무 좋아서 안믿는 것이다. 안믿겨지는 것이다. 너무 좋은 것이다. 그래서 안믿겨지는 것 아닌가? 실감나지 않는 것이다.
한번 이런 가정을 해보자. 예배 끝나고 밖에서 여러분들에게 밖에서 금덩어리 하나씩 공짜로 나눠준다고 해보자. 그럼 받아가겠는가? (예화가 잘못되었다...ㅋㅋ)
만약 free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이거 가짜구나 생각할 것이다. 뭔가 이유가 있을거라고, 그거 받아서 뭐 하라더라, 이럴것이다. 뭔가 있지 어떻게 free가 있을 수 있나 할 것이다. 이것이 too good to be true이다. 너무 좋아서 믿겨지지 않는 것이다. 실은 복음이 그런 것이다. 그런 스토리의 천만배 억만배라 확대하시면 된다. 그것이 복음의 news이다. 구원을 얻는데 제가 할일이 무엇이 있는가? 없다. 믿기만 하면 된다.
그래도 내가 고행이나 금식기도나 한달간 기도만 하고 내려와야 하지 않을까 해서 그러라고 하면 신나서 할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 내가 기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구원이라는 금괴를 손에 쥐면 사람들이 어떻게 될까? 모든것이 은혜라고 생각할까? 모든것이 나의 공 나의 기여 나의 힘 나의 자랑 하면서 구원 받은 것으로 자랑하며 그걸로 무기삼아서 이것도 못 얻은 자를 향해서 비난 핍박하고 어이구 하고 있을 것이다. 아주 교만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참 희한하게도 우리 인간은 too good to be true를 안믿고 안량한 나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인양 구원을 치부하는 경우,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정말 내 자신이 죄인임을 뼈저리게 깨닫는것, 네 남편 데리고 와 하면서 확 찔려야 한다.
저는 모태신앙이다. 그러면 저는 한번도 교회를 빠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제가 제일 싫은 것이 예수님이 나때문에 십자가 지셨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마약파는 놈이나 사람 죽인 살인자나 등쳐먹는 사기꾼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그 사람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 달려 죽으셨다, 그것은 make sense, 이해가 된다. 근데 왜 나를 위해서 그렇게 죽으셔야 하냐 했다 저는 교회 한번도 빠진 적 없고, 성경퀴즈 가면 늘 1등 했다. 근데 내가 저 살인마와 똑같이 예수님이 십자가 져 주신것, 나를 용서하시기 위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져주신 것, 이게 그렇게도 싫은 것이다.
옛날 일가족을 죽인 살인마 고재봉이라는 사람이 있다. 일가족을 다 죽였다. 살인마 중 살인마이다. 결국 사형 당했다. 그 고재봉을 어떤 목사님이 전도해서 예수 믿게 했다. 그리고 감옥에서 간증도 했다. 감옥에 들어온 사람은 누구든지 전도해서 예수믿게 했다. 제가 그 이야기 듣고 아멘이 안나왔다. 내가 왜 저 살인마, 일가족을 죽인 저 끔찍한 살인자가 가는 천국에 왜 내가 가야한다는 것이다. 가고싶지 않았다. 왜 그런마음이 생겼냐면 제가 아직도 죄인인 것을 모르는 것이다. 니 남편을 데려오라는 질문에 찔리지 않는것이다. 항상 요리조리 피해다닌 것이다. 부모님 따라서 교회다니는 주일학교 출신이기 때문이다. 성경퀴즈 1등했고 교회를 한번도 빠져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이 죄의 문제, 니 남편 데려오라는 이 질문을 제대로 받아본 것이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을 텐데 요리조리 피해다닌 것이다.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는 것이다.
옛날 IMF 시대 때 IP통신 신문을 보다가 모두가 다 문을 닫고 있는데 필리핀 한 기업만 문열고 일어난다는 기사를 봤다. 다 사업이 안된다 하는데 왜 여기만 일어나나했더니 이런 기사였다.
필리핀 정부가 어떻게 하면 관광사업을 일으킬까 하면서 내각멤버와 대통령이 의논했다. 드디어 정부 정책이 정해졌다. 관광객이 와서 떠나는 가장 큰 이유가 바퀴벌레라고 하는 피드백을 받았다. 그래서 각료들이 바퀴벌레를 없애면 필리핀에 관광객이 올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바퀴벌레 없애기 위해 나온 정책이 바퀴벌레 100마리당 1불씩 주기로 한 것이다. 그것이 각료회의에서 정책으로 발표되었다. 바퀴벌레 100마리를 잡아오면 1불씩 주기로 했다. 그리고 한 말이 있다. Money for everything, everything for money. 돈이면 다 된다 생각해서 드디어 이 나라는 바퀴벌레 씨를 말릴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바퀴벌레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키워내는 만큼 돈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바퀴벌레 공장이 막 들어서기 시작했다. 여러분이 놀라고 징그러워했는데 저도 그랬다. 뭐 이런게 다 있나 했다. 근데 잠시후에 회개를 했다. 나도 그렇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내 머리가 그정도는 할 것 같았다. 내가 돈을 못벌게 되면 나라도 그럴것 같았다. 십만마리 바퀴를 키워내면 천불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깨달았다. 내 안에 죄를 지을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이 있구나, 나도 죄인이구나, 이것이 내 남편이다. 내가 끄집어내야 할 내 남편이다. 내가 드러내야 할 남편이다. 내 안에도 탐욕 욕심 음란 명예욕이 있다. 목사로 살지만 부끄러운 것이 너무 많다. 강단에 설 때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올라온다. 너무 부끄럽다. 내 안에 남편이 있다. 죄덩어리가 있는 것이다. 저도 이때 뭔가 드러내야 하는데 아직 바람은 안폈다. ㅋㅋㅋ
얼마 전에 작고하신 이어령 박사님이 세례를 74세때 받으셨다. 그것이 화제가 되어 기사화 된것을 읽어봤다. 이어령박사가 20대일때는 반기독교 지성을 대표해서 청문 문학비평가로 함석헌 옹과 함께 마주앉아 기독교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한국의 지성이라고 하는 분이다. 근데 이런 분이 74세에 세례를 받았다. 이 분이 어떻게 세례를 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 그 딸이 변호사로 있었다. 근데 그 딸이 32살에 암에 걸렸다. 그리고 4년후 암이 재발한다. 근데 딸이 낳은 둘째아들이 ADHD 판정을 받는다. 엄마로써 자기도 투병하고 있지만 하와이에 자폐증 전문학교가 있어서 하와이로 이사를 간다. 그 딸을 보려고 이어령박사가 하와이로 간다. 근데 아버지 식사를 준비한다는 딸을 보는데 눈이 안보여서 설겆이도 제대로 못하는 그 딸을 보면서 가슴 아파한다. 근데 그때 이어령 박사님이 난생 처음으로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나의 사랑하는 딸 미나에게 빛을 거두시지 않는다면 남은 삶을 주님의 종으로 살겠나이다.
이 기도를 드린다. 그러면서 이어령 박사님이 간증하면서 이때 자기는 자기해체를 경험했다고 한다. 우리는 자기해체를 뭐라하는가? 깨졌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세례를 받는다.
세례는 자기 해체를 경험한 자들이 받는 것이다. 내가 죄인인 것을 아는 자들, 그래서 죄 때문에 남에게 드러내면 부끄러웠던 네 남편을 데려오라는 것을 끄집어냈던 그 사람들이 세례를 받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은 손가락질 할 것 같은데 예수님은 내딸아 내아들아 하면서 안아주신다. 네 남편을 데려오는 자에게 우리 주님이 안아주시고 위로해주신다. 정죄가 아니라 용서해주신다. 내가 그것 때문에 너를 위하여 몸버려 피흘려 주라고 왔노라. 그래서 탕감. 죄의 삯은 사망인데 그 삯을 갚아주신는 것이다. 거기서 누리는 자유 놓임 내려놓음, 그리고 자기 해체라고 했지만 자기가 해체되었을 때 예수 안에서 다시 회복되어지는 자존감, 거기서 오는 자유는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10절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복음의 능력이다.
15절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그때 주님이 하신 말씀은
16절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즉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예수님의 대답이었다.
여러분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사망으로, 그리고 다시 부활하셔서 순간이 아니라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로 살도록 축복하신 복음 안에서 우리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 감격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우리들교회이다. 그것이 우리들교회의 에센스이다. 죄의 문제를 들고 나와 우리 예수님 앞에 해결과 영생을 맛보고 죄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맛보고 자유의 능력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지 깨달아 날마다 주의 말씀을 상고하면서 그 말씀 안에서 내 길의 빛이요 내 발에 등이 된 말씀으로 인도됨을 받아가는 이 행복한 제2의 인생, 복음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들교회의 에센스라고 분명히 믿는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바로 이 말씀을 붙들고 내 죄의 문제, 네 남편을 데려오라 할 때 데려오면 된다. 주님이 해결하시겠다고 한다. 야단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알려서 여러분에게 면박주고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해결해주시겠다는 것이다. 어두운 죄로부터 놓임받게 하려는 것이다 자유롭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젠 더이상 어두움에서 웅크리고 앉아 우울하게 사람 기피하며 살지 말고 이 여인처럼 빈 물항아리 내려놓고 마을로 내려가 나에게 행하신 주님의 일들을 여기저기에 소문내는 여인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이 우리들 교회에 차고 넘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우리 교회의 모습이 아니겟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남편 데려오십시오. 죄의 문제 하나님께 끄집어내십시오. 그리고 주님 앞에서 해결 받으시고 영원한 복음의 자유한 삶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기도제목 ]
*보련
1. 혜택받는것 서류 낼수있도록
2. 말씀보기
3. 가족구원
*승희
1. 말씀 보고 하루 잘 살아낼수 있도록
2. 기숙사 들어왔는데 룸메와 문제없도록
3. 나의 힘을 빼고 성령은혜로 양육동안 주님사랑 체험 하고 인격적인 만남 있도록
4. 안구건조증 무리하지 않도록
*크리스틴
1. 짧게 읽고 깊게 들어가지 않는 큐티라도 빼먹지 않도록
2. 앞으로 큰 데드라인이 있는데 맡은 일들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마음과 몸을 지켜주시길
3. 가족건강 위해
4. 회개해서 가족/주변사람들 사랑할 수 있기를
*은선
1. 5.20일까지 제출인 학위논문 조급함과 힘든마음 주님 앞에 잘 내려놓고 준비할수있기를. 기름부어주시기를
2. 외할머니 코로나19 합병증없이 완쾌시켜주시기를
3. 눈이 무리해서 조금 아픈데 몸의 균형 잘 지켜가며 공부하기를
4. 진로인도해주시기를
*지영
1. 반려견 건강 회복
2. 학원 원장님 확진으로 일주일간 모든 관리 도맡아 하게 되는데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 주셔서 세상의 기준이 아닌 주님의 기준으로 잘 이끌어 가기를
3. 분별의 영 허락해 주시기를
4. 매일 큐티하며 말씀이 일상에 적용되기를
5. 목장 참여가 수월해 지기를
*교희
1. 착한사람의 가면을 벗고 마음의 속도에 맞춰 지내게 되도록
2. 찌르실 때 피해다니지 않고 하나님께 나가 해결받도록
3. 회사 프로젝트 다 엎어졌는데 하루하루만 잘 보내고 오도록
*은우
1. 생명의 근원이신 생명 말씀으로 하루 만 살도록
2.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 까닭에 목장, 전시, 일, 집에서 7년이 1일되는 은혜 누리도록
3. 내게 맡기신 지체와 나의 구원이 제일 중요한 품삯인지 알게하셔서 정해 주신 그 곳에서 매우 번창하는 교회, 목장, 지체, 일터, 가족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