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0 복음이 전파되려면
마가복음 13:1-13
설장훈 목사
할렐루야. 아멘. 한 때 화려한 인도 선교사를 꿈꿨지만 이제는 다 무너지고 지금은 불신 가문의 찌질한 장손으로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는 설장훈 목사입니다. 아유 너무 반갑고요. 정말 죽은 자 같은 제가 강단에 다시 오르니까 좀 감격이 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인도 선교사 출신이자나요? 그래서 제가 좀 인도말로 좀 인사해도 될까요? 간단하게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는 뜻인데 실은 제가 오늘 인도 옷 구르따도 입고 여기 오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많이 참았습니다. 왜냐하면 안 그러면 오늘이 선교 집회, 헌신 예배를 드려야 될 거 같아가지고 제가 좀 많이 자제했는데. 이렇게 부끄럽지만 저는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되는데 말씀이 해석 안돼서 참 원망의 눈물을 더 많이 흘린 선교사입니다. 그래서 제 화려한 성전이 다 무너지고 돌가루가 되어야 했죠. 그러니 무너진 곳에서 예수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님들도 오늘 말씀을 통해 내 무너진 곳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길 원합니다. 그래서 복음이 먼저 가정과 직장, 만국에 전파되길 축복합니다.
1. 다 무너져야 합니다. (1-2절)
1절, 2절 말씀입니다.
고대 헬라 문화를 보면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길을 걸으면서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이 일반적인 학습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제자들과 성전을 뚜벅 뚜벅 걸으면서 마태복음 23장 38절 말씀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지게 되리라고 오늘 이 본문 전에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죠. 즉 눈 앞에 보이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그리고 화려하고 이 견고한 예루살렘 성전이 예수님께서 무너진다고 하시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성전이 어떤 곳입니까?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과 사회, 문화의 모든 중심지였습니다. 그들의 정체성이었죠. 그런데 이것이 무너진다고 하니까 생각해보세요. 제자들이 얼마나 당황하고 놀랐겠습니까? 그래서 제자 중 하나가 '선생님 이 멀쩡한 성전이 왜 무너지죠?'라고 다시 묻습니다. 그런데 실은 제가 이 제자의 질문을 보면서 좀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제 성격상 당시 만약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좀 더 집요하게 물어봤을 것 같아요. '예수님 눈 앞에 보이는 이 성전을 보세요. 이전 솔로몬 성전보다 더 크고 튼튼해보이고, 또 화려해요. 이미 건축을 시작한지 50년이고 무사고입니다. 아직도 건축 중이고 신축입니다. 신축. 그리고 지붕에는 황금, 바닥에는 대리석을 깔고, 또 오시는 성도님들 편안하고 아늑하게 기도할 수 있도록 곧 기둥 돌들 사이에 군데 군데 보석도 박을 예정입니다. 정말 멋지지 않아요? 이 화려한 성전은 우리의 자부심이에요.'라고 말할 것 같아요. 그리고 성경에 '이렇게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도 있더라.'고 제가 기록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죠.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그리고 실제 AD 70년 로마 디도 장군이 반란을 일으킨 유대인에 대한 응징으로 성전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돌마다 보석을 넣어 지었기 때문에 침공 당시에 사람들은 그 돌에 박힌 보석을 찾느냐고 진짜 실제 돌을 다 부셔버렸다고 합니다. 정말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이죠. 그런데 말씀을 계속 묵상하다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예수님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다 하셨을까? 그리고 저는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담임 목사님 책을 읽고, 또 말씀을 듣고, 이전 양육 받았던 내용들을 하나, 둘 씩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묵상하면 할수록 제가 참 화려한 성전을 바라보고 그 화려함에 넋이 나간 유대인 같은 거예요. 참고로 저에게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은 선교사로써의 성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선교사, 그리고 선교사다운 선교사가 되고 싶었죠. 솔직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학벌도 없었고 노래도 못하거든요. 진짜 이거 밖에 할 줄 몰라요. 그래서 외치는 것이죠. '이것만은 절대 무너지지 않으리라.' 이런 제 모습에 참 제가 뼛속까지 죄인이라는 것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저는 이렇게 우리들교회 오기 전까지 설장훈 목사가 아니라 설장훈 선교사로 인도 선교 전문가로서 우리들교회 같이 대형 교회에 초빙되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화려한 꿈을 가졌습니다. 인도 인구가 14억명이에요. 되게 많죠. 그리고 저는 이곳에 약 100개의 현지 교회를 개척하고자 목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인도는 다문화, 다종교의 나라인데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제가, 힌두교, 무슬림, 시크교가 있자나요. 이들에게 상황에 맞춰서 복음 전하는 것에 대해 책을 써야겠다 라는 생각도 한 거예요. 그리고 제가 제목도 미리 정했습니다. 그것도 시리즈로. 1권 설 선교사 인도의 아버지가 되다, 제 자서전입니다. 그리고 2권 인도 선교 할 수 있다. 성도님들 어떻게 좀 잘 팔릴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멘'하시면 안 돼요. 솔직히 말씀으로 해석된 지금 돌아보면 제가 참 혈기 왕성한 젊은 선교사의 치기 어린 욕심이죠. 그렇죠? 지금 생각해도 제 모습이 '오 주여.'하면서 소리가 나오고 참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왠지 10년 정도 몸이 부서져라 이렇게 사역하고 헌신하면 이게 가능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 누구보다 저는 선교지에서 사역한 것 같습니다. 50도 날씨에 날마다 전도하고, 심방하고, 제 옷이 땀에 하얗게 소금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날부터인가 이유 없이 제 몸에 통증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현지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지만 의사의 진단은 항상 언제나 복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처방을 받아도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요. 인도는. 그래서 마땅한 치료제 없이 항상 진통제만 받아왔죠. 그런데 진통제를 먹어도 이게 낫지 않고 통증이 계속되니까 병원에 가서 또 진단을 받고 다른, 다양한 종류의 진통제만 받아와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이것이 해결되지가 않았어요. 그리고 확신했죠. 나중에 진짜 내가 한국인만큼, 나보다 인도 진통제를 이렇게 종류별로 다양하게 참 먹어본 사람은 없겠구나 라는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참 제가 자랑할 게 없으니까 이걸 또 자랑하게 되네요. 별 걸 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제 몸에도 진통제에 대한 내성이 생겼는지 아무리 약을 먹어도 정말 통증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성도님들 제가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살거든요. 화려한 꿈을 꾸고 있으니까 사역을 도저히 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진통제를 먹고 그래도 약효가 미약하게나마 나타나는 그 타이밍을 재야겠습니다. 진통제를 먹은 후 효과가 발생하는 시간은 약 1시간, 효과가 지속되는 시간은 1시간 반 정도 되기 대문에 예배, 양육, 심방 1시간 전에는 알람을 맞춰 놓고 약을 먹었어요. 그리고 1시간 반 사역을 하고나서 쉬는 것을 반복적으로 했습니다. 당시 이게 사명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정말 자리에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제게 통증이 오더라고요. 그런데 사람의 욕심이 무서운 게 복음화율 1% 지역에 교회가 개척되고 현지인들 점점 오니까 제 욕심과 열심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화려한 성전이 지어질수록 점점 더 성공과 명예에 대한 욕심이 제 안에 생기고, 제안의 욕심이 아픔의 그 통증을 넘어서는 거예요. 얼마나 이 죄라는 게 무섭습니까? 성도님들. 이 통증을 넘어서는 이 죄.
그런데 제가 처음부터 이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면서 가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저는 주님을 사랑했기에 부르심에 순종하고자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개척하며 진행할 때도 주님 한 분만 바라보며 나아갔죠. 그런데 욕심이 생기니까 제 초심이 변질되는 것입니다. 저도 모르게 예수님이 아니라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고 있고, 그리고 그 성전을 내 우상으로 섬기는 제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 안에 화려한 예루살렘을 다 무너뜨려야 했습니다. 제가 한국에 오기 전에 정말 사역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전도 축제가 인도에서 있었습니다. 당시 현지인 약 100명 이상 왔었는데 새가족 한 명에게는 잠재적으로 세 명 이상의 또 다른 새신자가 있다고 저는 선교사 훈련을 받으면서 배웠기에 앞으로 또 성도들이 많이 와서 교회가 성장할 생각에 마음이 진짜 너무 기쁜 거예요. 꼭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 건축이 인도에서도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전도 축제를 준비하며 제 몸이 무리가 갔는지 축제 다음날 결국 저는 제 몸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엑스레이를 찍는데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이유가 세상에 엑스레이에 나온 제 오른쪽 폐에 약 5에서 6cm 정도의 동그란 하얀 혹 같은 게 엑스레이에 보이더라고요. 순간 인도 의사 선생님이 저를 불쌍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암이라고 조용히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상황을 보니 암이 온 몸에 퍼진 것 같다. 보니까 암이 폐에도 전이된 것 같은데 내가 더 이상 도울 수 없어서 미안하다.' 이렇게 말하면서 저에게 빨리 큰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정말 긴급한 상황이었기에 저는 한국에 빨리 귀국해야 했고, 귀국 당일 병원 응급실을 통해 입원해야 했습니다. 제 안의 화려한 성전이 진짜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무너지는데 불과 48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지 못한 무너짐의 사건은 제 모든 계획과 행동도 멈추게 했어요. 저는 인도 전문가로서, 오늘같이 설장훈 선교사, 성도님들한테 설장훈 선교사로, 불리고 싶었는데 제 바램과 다르게 의사, 간호사 선생님께 설장훈 환자로 불렸죠. 그리고 자랑스럽게, 제가 인도 옷을 입고 싶어했다고 했자나요. 선교사임을 드러내는 그 현지 옷을 입고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환자 복을 입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강단에서 복음을 외치는 모습에서 침대에 누워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불안해하는 무력한 존재가 돼야 했죠. 그리고 이것만은 절대 무너지지 않으리라 외쳤던 제 화려한 꿈, 그리고 더 나아가 제 미래에 대한 소망과 사명, 가족과 물질까지 다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성도님들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진짜 이 무너짐의 사건을 통해 객관적으로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10년 이상 선교사로 준비하고 훈련받았어도 눈 앞에 있는 그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 선교사로써의 그 성공이 눈 앞에 보이니까 욕심이 생기고 변질된다고 했자나요. 그렇죠? 욕심이 있으니까 그 통증을 이기고요. 진짜 욕심이 생기니 초심이 변질되더라고요. 그래서 성도님들 날마나 큐티책 가지고 큐티하시는 게 정말 중요한 거예요. 그리고 공동체에서 양육받는 거, 공동체에 붙어가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저도 공동체에서 양육을 받으면서 한 번 더 THINK 하며 내 안에 왜 이렇게 성공에 대한 욕심이 생겼을까?라는 것을 한 번 더 좀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성도님들 제가 당대 신앙이고, 또 불신 가문의 장손이거든요. 제 욕심의 근원에는 다른 그 누구보다 안 믿는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아들로서, 또 장손으로써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거예요. 솔직히 저는 스무살에 예수님을 믿고 나서 불신 가정의 장손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제가 보니까 주변에 성도님들 중에서도 홀로 신앙 생활하시는 분들 많이 계신 것 같아요.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힘내세요. 처음에 저도 예수님을 믿고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큰 기쁨과 설레임을 주졌는데 하지만 장손이 제사 때 절을 안 한다고, 그리고 주일에 가족 모임을 하는데 얘는 교회 간다고 얼굴 한 번 안 비친다고 그렇게 섭섭해하더라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제가 취업 대신 목사와 선교사로 되기로 한 날 저는 집안에서 식구들에게 날마다 구박받는 찌질한 장손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솔직히 부모님께 선교사로 성공해서 이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을 보여드리면 혹시라도 저를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예수님 믿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당당하게 '보라 당신의 아들이 이 화려한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제발 예수님을 믿으세요.'하고 말하고 싶었죠.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것은 저의 크나 큰 교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제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은 다 무너져야 했고 저는 암 환자로써 환자복을 입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야 했습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적용] 나의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은 무엇입니까? 꿈과 소망, 건강과 소유, 가족 등 이것만은 절대 무너지지 않으리라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있어야 할 일'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3-8절)
3절, 4절 말씀입니다.
성경 마태복음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고 간략하게 표기가 되거든요. 하지만 오늘 이 마가복음은 좀 더 구체적으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과 안드레 이름이 언급되고 이들이 제자들의 대표성을 가지고 예수님께 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평소에는 전혀 상상치 못한 이 눈앞의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다고 하니까 제자들이 이 예수님 말씀의 의미가 얼마나 궁금했겠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하는데 문제는 세상에나 이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그 영적인 부분을 이야기하시는 것인데 제자들은 때와 징조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죠.
그리고 5절, 6절 말씀입니다.
이렇게 때와 징조를 논하는 제자들이 예수님은 참 걱정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혹 받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참고로 이 미혹이라는 단어는 나를 죄로 이끄는 일, 그리고 신앙을 떠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성도님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배에 나오자나요.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또 예수님을 믿어도 항상 우리 주변에는 미혹될 것이 너무 많아요. 그렇죠? 외모에, 학벌에, 돈에, 음란에, 명품에, 공부 잘하는 자식에 어떻습니까? 우리 마음이 수시로 미혹이 됩니다. 그리고 또한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내 건강과 학벌, 돈과 지위를 믿고 살다가도 저처럼 암에 걸리거나 입시에 실패하고, 또 실직하면 더 미혹을 잘 받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백 번, 천 번 생각해도 우리에게 무너짐의 사건이 왔을 때 더 말씀 공동체에 잘 붙어 가고, 그리고 구속사 말씀으로 해석하며 내 죄를 회개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정말 중요하죠. 그렇지 않으면 미혹된 곳에서 무너져서 우리는 예수님이 아닌 눈 앞의 현실을 따라가고 현실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좀 그러했습니다. 당시 암에 걸리고 말씀 공동체가 없으니까 분별없이 미혹되는 거예요. 물어볼 목장 공동체가 없었습니다. 인간이 100% 죄인이자나요. 그렇죠? 우리 인간은 100% 죄인이 맞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미혹되어서 그 무너진 곳에서 회개가 없으면 자연스레 예수님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당장 내 눈 앞의 아이 셋이 보이고 '앞으로 나는 어찌 먹고 살아가야 되나.' 그 걱정과 근심이 쌓이고 다시 내 열심과 노력으로 미혹되어 나간다는 것이죠. 간절히 회개하며 무너진 곳에서 정말 내 무너진 영을 세워야 나가야 되는데 오히려 현실을 바라보며 미혹되어 무너진 육을 다시 세우고자 합니다. 그래서 저도 현실에 미혹되어서 제 욕심에 다시 열심을 다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원 강사로 시작해서 과외도 하고 영어 공부방도 했어요. 더 드림 영어교실이라고 이름 좋죠. '외국인과의 대화, 여러분의 꿈을 이뤄드립니다.'라고 이렇게 말하면서 실제 전단지에 제 인도 경력을 넣고 중요한 것은 원장 직강, 원장 직강이 되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당시 제가 있던 곳이 아파트 6천 세대가 있었거든요. 정말 진짜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전단지를 다 돌렸어요. 정말 그 현실의 무너진 곳에서 제가 예수님을 만나서 거기서 간절히 회개하면서 예수님을 바라봐야 되는데 말씀이 해석이 안되니까, 현실을 바라보니까 다시 내 욕심에 따라서 내 무너진 육을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미혹되었어요. 그래서 함께 하는 공동체, 이렇게 구속사의 말씀이 없으면 우리는 이렇게 미혹을 끊어내는 것이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7절, 8절 말씀입니다.
곳곳에 난리가 나고 소문이 나겠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뭐라고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세요. 그런데 성도님들 이 두려움은 내 안에 내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어지면 두려움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내 자식, 내 배우자, 내 직장, 내 건강, 이렇게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면서 조금만 나에게 손해가 오면 너무 두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옳고 그름으로 니 탓, 내 탓 하면서 난리가 나는 것이죠. 그런데 곳곳에 이렇게 난리가 나고 소문이 들리는데 왜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7절 말씀을 보면 이 일은 있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곳곳에 난리와 소문이 내 거룩과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락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 있어요. 그것은 무엇이냐 면 바로 오늘 하루,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자세입니다. 그 어떤 무너짐의 사건 가운데서도 여러분 절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 어떤 사건에서도 '있어야 할 일이구나.'라는 자세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어떤 자세요? '있어야 할 일이구나.' 그래서 코로나 확진으로 집안이 난리가 나도 '있어야 할 일이구나.', 주식 투자로 집안이 망하고 배우자 간에 다툼이 있더라도 '있어야 할 일이구나.', 잘나가는 회사에서 실직이 되어 먹고 살 걱정, 앞날이 깜깜해도 '있어야 할 일이구나.', 안 믿는 배우자, 자녀로 교회 오는 게 너무 힘들어도 뭐죠? '있어야 할 일이구나.', 저처럼 암으로 건강이 무너져도 '있어야 할 일이구나.', 그 어떤 무너짐으로 난리 소문이 나더라도 우리는 하루 하루 이렇게 '있어야 할 일이구나.'를 외쳐야 합니다.
한국에 귀국하자 마자 저는 응급실로 입원하였고 암 3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원암 종양 크기가 15cm 전후, 그리고 전이된 폐암은 5cm 정도였고, 피 검사를 하면 보통 암 종양 수치가 5미만이 나와야 정상이지만 저는 정확히 12020이 나왔습니다. 이 숫자는 평생 제가 잊을 수 없는 숫자인 것 같습니다. 그나마 뼈까지 전이가 안 되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제가 서 있지만 당시 저는 말 그대로 죽은 자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수술과 여러 번의 항암 치료를 받아야 했죠. 그리고 정말 길고 긴 밤을 지내며 절망과 슬픔 가운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날이 새매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은 그 시작은 목욕탕 세미나였습니다. 선교사로써 추천을 받아서 우연히 목욕탕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리고 첫날 저는 담임 목사님의 룻기 설교, 구속사의 말씀을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게 나오미의 그 인생의 흉년, 그 말씀이 제 사건의 인생의 흉년을 생각하게 하셨고, 그리고 저에게 주어진 이 사건을 구속사 말씀으로 해석하게 한 그 첫 시작이었습니다. 이것이 제 구원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교회에서 사역하는 것을 정말 진심으로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제가 암 환자자나요. 암 환자를 받아줄 교회가 없다는 그 사단의 미혹에 저는 수시로 제 남은 희망조차도 무너져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어렵게 우리들교회 사역자 청빙에 도전했는데 오늘 제가 이 자리 가운데 서 있습니다. 솔직히 저도 놀랐어요. 왜냐하면 보통 교회는 암이라 하면 무서워하거나 기피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들교회는 감사하게도 이 암이라고 하니까 세상에 구원의 약재료가 된다고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실은 제가 너무 당황했거든요. 정말 제가 어느 것 하나 잘 하는 게 없는데, 제가 나중에 알게 됐는데 저는 진짜 이 암 사건 하나로 우리들교회 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실은 우리들교회 오고 나서 제가 상태가 안 좋았어요. 말씀도 해석돼야 되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래서 제 상태를 보고 담임 목사님이 '잘못 뽑았나.'하시면서 걱정하셨다는데 지금은 아닐거라 믿습니다. 아멘. 이렇게 저는 날이 새매 진짜 우리들교회 공동체와 함께 즐겁게 말씀을 듣고 양육 받으며 주어진 사건을 하나, 둘 씩 해석해가는 축복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제 인생의 암 사건과 더불어 아버지의 부도, 또 자녀의 아픔 등 잊고 싶은 사건들이라서 좀 더 묵상하고 해석하는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큐티 묵상과 양육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이 이 모든 고난은 '있어야 할 일'임을 인정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육이 무너지는 사건을 통해서 영을 세워가셨습니다. 지난주 목자 수련회 때 저는 신임 목자로써 안수를 받았습니다. 당시 제가 표현을 못했지만 정말 암으로 죽은 것 같은 제가, 꿈과 소망도 다 무너졌다고 원망의 눈물을 흘리던 제가 우리들교회 목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신임 목자로 임명되는 날 긴 긴 밤 죽은 자와 같은 저에게, 모든 소망이 무너진 저에게 하나님이 다시 사명을 주신 것 같았습니다. 나의 무너짐의 사건을 기억하라 말씀하시고 여전히 무너진 성전에서 힘들어하고 아픔과 상처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말씀을 전하고 살리라고 사명을 주신 것 같았어요. 그리고 감당할 힘도 주셨습니다. 솔직히 예전에는 항암 치료 이후에 체력이 너무 버거웠습니다. 그래서 정말 사역을 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는데 이제는 주신 사명 잘 감당하라고 시간이 흐르고 체력이 점점 회복되어서 작년 11월에는 완치 판정도 받게 되었습니다. 정말 제가 죽은 자이고 사명이 무너졌고 꿈도 무너져서 죽은 자였는데 이 죽은 자를 하나님께서 살리신 것이기에 한 영혼의 구혼을 위해 하루 하루 살라고 생명을 다시 주신 것 같아요.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 이 주신 생명 진짜 한 영혼을 살리는데 있어서 귀하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목자로써, 또 사역자로써 다시 제가 주신 이 사명 소중하게 여기고 잘 감당토록 기도 부탁 드립니다. 아멘.
[적용]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아픔과 상처, 고난이 '있어야 할 일'임이 인정되나요? 여전히 내가 포기하지 못해 미혹 받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3.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9-13절)
9절, 10절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때 진정한 종말이 오는 것이죠. 최근 뉴스를 보면 제 마음을 애통케 하는 기사가 있습니다. 바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소식인데요. 최근에는 러시아가 전쟁에서 금지된 무기를 사용하고, 또 자신의 죄를 숨기고자 시신을 태워서 증거를 없앤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니 전쟁이 잔인하고, 또 인간이 죄인이라고는 들었지만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도 잔인할 수 있을까. 이런 잔인한 행동을 서슴 없이 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인간이 100% 죄인이다 라는 것을 더 절실히 깨닫습니다. 그리고 제가 올해 맡은 사역 중 하나가 우리들교회 선교국에서 선임 목사님들과 함께 선교 사역을 진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한 선교사님이 영문 큐티인 책을 가지고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가져가실 수 있도록 그렇게 돕고, 그 선교사님과 수시로 카톡을 주고받으면서 난민들 상황을 전해 들었어요. 그리고 솔직히 전쟁 가운데 죽더라도 가족 헤어지는 전쟁의, 그 난민의 슬픔을 뭘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난민들이 슬픔이 있지만 그 큐티인 말씀, 특히 큐티인 가운데 말씀의 간증을 읽고 참 많은 위로를 받고 좋아한다는 제가 전달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큐티 목회야말로 전쟁과 기근, 재난 가운데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복음이 만국에 전파돼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도 몇 주 전에 제가 아는 인도 현지 제자에게도 영문 큐티인을 전달했죠. 사진이 있는데요. 보시면 이 친구는 아버지가 군인이고 힌두교 안에서도 카스트 아래서 지금은 없어졌지만 높은 계층에 있는 현지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회심하였고 지금 목회자의 길을 가고자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생각이 나서 이렇게 큐티책을 제가 보낸 거예요. 영문 책을. 그런데 이 친구가 이 책을 받고 나서 저를 그렇게 구박하는 거예요. 아니 왜냐하면 '이렇게 좋은 책을 왜 이제 알려주냐?'고. 제가 너무 민망해가지고. 진짜 제가 더 안 혼나려면 이 친구는 정기 구독으로, 영문 큐티인 정기 구독으로 빨리 해줘야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라 또 반가운 인도 청년들이 저에게 또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제가 있었을 때는 교회에서의 인도 청년들이었는데요. 제가 한국에 나오자마자 결혼을 했어요. 사진 또 보여주시겠어요. 결혼을 했는데, 참 둘 다 힌두교 집안이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거예요. 그 아이 사진을 저에게도 보내주고 이렇게 신앙을 가지고, 그리고 날마다 제가 건강이 안 좋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도하고 있다.'라고 소식도, 그런 반가운 소식도 전달해 주었습니다. 아까 그 사진에 아이가 참 예쁘죠? 마침 5월에 우리가 또 영문으로 어린이 큐티책이랑 새싹 큐티가 나왔자나요. 이 집안은 세트, 영어 세드로 해서 보내줘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 저는 참 무너진 사건을 통해서 제 사명과 꿈도 다 무너졌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육이 죽고 영이 사니까 진짜 무너진 사명을 하나님께서 한국에서도 이어지게 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난 시간 이런 저런 이유로 솔직히 제가 현지인들과 좀 소통을 많이 못했거든요. 이제는 사명을 가지고 다시 소통을 이어가려 합니다. 저도 이제 영문 큐티인 책을 가지고 또 하겠죠? 그리고 또 이들에게 정말 하루 속히 이 큐티 목회가 빨리 들어가야 돼요. 그 이유가 한국도 동일하겠지만 정말 이혼, 도박, 술, 중독 등 고통 가운데 있는 현지인 가정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도 목장처럼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한데 무너진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함께 말씀을 묻고 나눌 공동체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하루 속히 우리 이 큐티 사역이 강에서 바다로, 전 세계 가운데 흘러 넘치도록 성도님들 함께 기도 부탁 드립니다. 아멘.
그리고 11절에서 13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사명을 가진 이 땅의 그리스도인입니다. 아멘. 복음이 전파돼야 끝이 오죠. 그런데 복음을 전하다 보면 무너지고 뽑히고, 또 파괴되고 파멸될 일들이 우리 인생에 너무 많다는 거예요. 말씀 그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미움을 받아야 되죠. 하지만 성도님들 이런 일이 있을 때, 내가 미움을 받을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되죠? '있어야 할 일이구나.' 아멘. '있어야 할 일이구나.' 이렇게 생각하시고 그 어떤 난리와 미움이 있더라도 끝까지 견딤으로 구원받을 줄 믿습니다. 아멘.
제가 우리들교회 와서 정말 놀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속사의 말씀을 듣고 적용하면서 미움을 받아도, 온갖 난리가 있어도 끝까지 견디는 성도님들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큐티의 꽃은 적용이죠. 그리고 이 적용을 제가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은혜를 입고, 또 살아나는 게 있더라고요. 얼마 전에 한 집사님으로부터 장례 연락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시어머니가 소천하셨다며 위로 예배 집례를 부탁하셨는데요. 처음에는 저는 그저 평범한 가정의 위로 예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담당 초원님이 목자 카톡방에 공유된 그 집사님의 사연을 공유해주셨고, 그리고 저는 그 사연을 읽어 내려가면서 제 가슴이 점점 먹먹해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이와 같습니다. '어제 시어머니께 돌아가셨고 지금 아이들과 부산으로 내려가는 중입니다. 남편이 혼외 자식을 낳고 자신의 부모님한테 그 여자와 아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시부모님은 그 아이가 다섯 살이 되어 남편이 오픈할 때까지 남편과 같이 이 사실을 함구하셨습니다. 그리고 혼외자의 출생이 밝혀지자 저는 난리를 쳤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그 여자와 아이를 옹호하고 오히려 울며 소리지르는 제게 '니가 잘했으면 이런 일이 생겼느냐.' 이렇게 호통치신 때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아이 아빠가 죽고 3년 전에 아이들과 함께 어머니를 찾아 뵈었을 때도 '니가 잘했으면 니 남편이 바람났겠냐.' 저를 질책하시고 미워하시던 그 시어머니, 그분의 장례를 가기까지 얼마나 마음이 복잡했는지 모릅니다. 초원님, 목자님들 제가 큰 권세이신 주님만 생각하고 우리 아이들 위해 십자가를 잘 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려요. 상처 입었다고 생각하는 저는 온데 간데없고 끝까지 가족 구원을 위해 견디며 오직 주님만 드러나게 기도해주세요. 장례 잘 치르고 돌아오겠습니다.' 이 문자를 읽으며 저는 그날 부산에 내려가 위로 예배를 집례했습니다. 내려가는 내내 제 마음이 무거웠고, 그리고 더 간절히 이 장례를 놓고 기도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위로 예배를 드리며 나눔을 하는데 정말 집사님께서 눈물을 흘리면서 육이 무너지는 이 모든 사건이 가족 구원과 나의 거룩을 위해 꼭 있어야 할 일임을 인정하시고, 또 집사님께서 살아생전 아이 아빠를 잘 섬기지 못한 것,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 미워하던 시어머니를 잘 섬기지 못한 것을 정말 눈물을 흘리며 애타게 고백하시고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눈물의 회개로 가정의 분쟁이 성령의 분쟁이 되고 말씀 그대로 성령의 소망을 바라보게 하는 순간이 된 것이죠. 세상은 옳고 그름으로 피해자라 말하며 정말 미움과 증오를 만들면서 난리를 치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 집사님들은 정말 구원을 위해서 온갖 난리가 나고 미움이 있더라고 끝까지 잘 견딥니다. 그렇죠? 아멘. 육이 무너지고 영이 세워지는 사건들이 우리에게 많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큐티를 적용하시면서 육이 무너지더라도 영을 세워 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도 이렇게 성도님들의 적용을 보면서, 제 자신도 많이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성도님들 저는 이런 적용을 보면서 장말 우리들교회에서 사역하는 게 정말 즐겁습니다. 아멘. 정말 즐거워 보이죠? 아멘. 저 정말 즐거워요. 웃어요. 구속사의 말씀을 듣고 말씀 공동체에 붙어 가는 게 너무 행복해요. 아멘. 정말 행복해요. 예수님의 첫사랑 같이 너무 행복한 거예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예수님을 모르고 사건 해석이 안되서 미움 받아 죽을 것 같은 그 환경에 계신 분들이 너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그들에게 가서 구원의 예수님을 알려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죽을 것 같은 무너짐이 사건이 반드시 있어야 할 일임을 알려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알려줘야죠. 구원을 위해 끝까지 견디라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침 전도 축제가 다음주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셔서 구속사의 말씀을 듣고 살아나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다음주 전도 축제에 많이 초대해 주시고 함께 구원을 위해 끝까지 잘 견디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적용] 구원을 위해 끝까지 나는 미움을 잘 받고 견디고 있나요? 천국 복음을 먼저 전파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려면 우리 안의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이 다 무너져야 합니다. 그리고 무너짐의 이 사건은 내 구원과 거룩을 위한 사건이고 반드시 '있어야 할 일'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 어떤 미움이 있더라도, 난리가 나더라도 여러분 구원을 바라보며 끝까지 견디세요. 내 안에 어떤 무너짐의 사건이 있더라도 무너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길 바랍니다. 이와 같은 때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될 것입니다. 아멘.
기도제목
코로나 자가격리 끝났는데 가족들 옮기지 않도록 주님 정말 지켜주세요.
남동생 공시랑 취준 잘 준비하고 좋은 열매 있기를 지혜와 명철을 주시고 원망과 불평의 옥에서 나올 수 있도록
여동생이 말씀과 기도의 자리로 나아와 주께 기도하기를 적용하고 은혜로 거저 받도록. 주님이 하셨다는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붙으면 회개하고 떨어져도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도록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하다고 우리 가족뿐만이 아닌 우리 목원들 가정과 직장에서 보호하여 주시기를
우정
매일 큐티, 기도를 통해 주님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취업을 위한 공부 집중력을 가지고 열심히 할 수 있도록
결혼 준비로 여러가지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주님의 뜻과 말씀대로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믿지 않는 우리 가족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미혜
지금의 상황에 대한 의미나 가치를 내가 판단하지 말고 현재의 모든 상황이 주님이 허락하신 것이라 믿고 하루하루 살아가기를
회사 투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큰데 안되는 결과에도 낙심하지 말고 어떤 결과든 주님의 완전한 준비였음을 고백할 수 있도록
나는 고난과 환난을 두려워하는데 고난 주간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 은혜 묵상하며 가기를!
우리 목장 식구들 각자 다 힘들 텐데 한 주 예수님이 살려주신 은혜로 살 수 있기를!
예선
그날 주시는 말씀으로 하루만 잘 살도록
나와 목장 식구들을 위해 기도의 자리 잘 지키도록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햇빛 알러지가 다시 오려고 하는 것 같은데 대비를 잘 하고 면역력을 위해 꾸준히 운동하도록
직업훈련 면접 결과 예비번호를 받았는데 붙회떨감하도록 (과정은 4/18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