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 창세기 20:1-7, 11-13, 17-18
설교: 김태훈 목사
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11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12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13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18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
여러분은 하루 일과를 어떻게 시작하세요?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물을 마십니다. 바로 물을 마시기 전에 잠자리에서 일어난 다음에 그 즉시 무릎을 꿇고 기도 합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인도해주세요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저를 맡겨 주시고 저를 도와주세요. 이렇게 기도합니다. 엄청 경건해보이죠? 습관이 된 것도 있지만 기도가 절로 나와요. 예. 그리고 물을 마시고 샤워를 하는데요 그냥 바로 샤워하는 게 아니라, 샤워하기 전에 그날 큐티인 본문을 한번 쓱 읽습니다. 그렇게 읽은 다음에 샤워를 하면 말씀이 생각나자나요. 마음에 꽂히는 한 구절이 항상 있더라구요. 그후에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깨우고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학교까지 보내고 난 다음에 출근을 해서 책상에 앉아 차분히 다시 큐티를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지난주에는 월화수목금 중에 월요일 큐티 본문이 마음에 확 와닿는거에요. 월요일 큐티인 제목이 아브라함의 반복되는 실수였습니다. 그래서 설교 연락을 받고 고민하지 않고 바로 이 본문이다 이 본문으로 해야겠다 했습니다.
오늘 읽은 이야기에는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고 아비멜렉은 세상왕인데, 우리 기대와는 달리 아브라함은 너무나 초라하고 찌질합니다. 그리고 불신자 아비멜렉은 너무 교양 있고 멋있게 나옵니다. 세상 왕이 믿음의 조상보다 더 나아 보입니다. 많이 헷갈리죠? 그래서 아브라함은 조연 같고, 아비멜렉이 주인공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에 진짜 주인공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입니다. 종교개혁가 칼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성령님은 우리에게 놀랄만한 두가지 사례를 보여주신다. 하나는 인간의 연약함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택자 아브라함은 너무 연약하고 부족해서 계속 넘어지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택자로 붙드시고 일으키시며 회복시킨다는 말씀이 오늘 설교의 핵심이에요.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니다. 택자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 은혜가 임한다고 합니다.
1. 택자임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반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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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1절에 거기서 는 마므레의 상수리 나무가있는 곳, 즉 헤브론을 말합니다. 헤브론은 조카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 소돔으로 간 다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요. 그리고 떠난 곳이 헤브론입니다. 롯에게 재물을 양보하고 사랑하는 조카 롯을 떠나보내고 난 다음에 아브라함은 헤브론에 거주하면서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헤브론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땅, 예배의 처소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아브라함이 이 약속의 땅을 떠나 네게브로 옮겨 갑니다. 네게브는 남방, 남쪽을 말합니다. 네게브에서 더 남쪽으로 가면 가데스가 있고, 가데스 왼쪽에 술이 있습니다. 그리고 술에서 더 내려가면 애굽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랄은 블레셋 땅에 있습니다.
1절을 히브리원문으로 보면, 가데스와 술 사이에 잠시 머물렀다는 동사가 있어요. 한마디로 아브라함이 천국을 상징하는 가나안땅을 떠나서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으로 점점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354장이 생각나는데요,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같이 아브라함은 내려가 내려가 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계속 내려가다가 20년 전에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예쁜 아내 빼앗기고 죽을뻔한 일이 생각나서, 애굽으로 완전히 내려가지는 않고 다시 올라갑니다. 올라가서 약속의 땅 헤브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블레셋 왕의 도시 그랄로 갑니다. 가나안 땅은 맞긴 한데 여호와께 재단을 쌓았던 헤브론이나 아니면 그 전에 나왔던 벧엘이 아닌, 가나안 땅 남쪽 접경지역에 위치한 그랄에 장막을 칩니다. 남쪽이어서 좋고, 왕이 사는 곳이라서 좋고, 안전하고 풍요로워서 좋고 그렇다고 애굽에 완전히 내려간 것은 아니라고 해서 좋다고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그 믿음 좋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한마디 묻지도 않고 혼자서 뚝딱 처리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비극이 시작합니다. 그런데 왜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 헤브론을 떠나 그랄에 거류 했을까요? 창세기 12장에서는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해서 그때는 애굽으로 내려갔다고 하는데, 지금은 기근도 없습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서 아브라함의 재산도 많아졌고 거느리는 종들도 많아졌고 사회적 영향도 퍼졌습니다. 믿음도 초창기보다 자랐구요, 초라한 나그네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을 위해 극진히 대접했고 소돔을 위해 기도까지 했습니다. 또 내년에 사라가 약속의 자녀 이삭을 낳으리라는 엄청난 약속도 좀 전에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헤브론을 떠난 것은, 그런 외적인 이유보다 마음에 기근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목숨을 걸고 기도했는데 소돔은 멸망하고, 겨우 살아남은 내 사랑하는 조카 롯은 아내를 잃고 두 딸과 함께 산에서 거주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다가 그 롯이 두 딸과 근친상간을 해서 아들까지 낳았다는 너무 충격적인 소식을 접합니다. 그때 아브라함 마음이 어땠을까요? 내가 이러려고 목숨 걸고 기도 했나? 내 인생에 되는 건 뭘까? 제단을 쌓고 여호와 이름을 불렀는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고달픈 걸까? 이럴바에야 차라리 남방으로 가서 힐링하며 내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야겠다. 사명이고 말씀이고 이제는 지쳤다. 육적 기근보다 더 무서운 것이 영적 기근입니다. 영적 기근이 찾아오면 마음이 자기 연민과 피해 의식으로 갈라집니다. 갈라진 마음에서 원망과 우울, 허무와 그리고 냉소가 잡초처럼 자라납니다. 그러면 말씀은 사라지고 약속은 잊힙니다. 사명을 망각하고 택자의 정체성을 잊습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과 자기 열심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2절
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
택자 아브라함이 자기 정체성을 잃고 사명을 망각하니깐 실수를 하게 됩니다. 자기 아내가 예쁜 것을 보고 아내를 빼앗고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20년 전 애굽에서 한 실수를 다시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기근 때문에 간 것이고, 믿음이 초창기고 그래서 정상참작을 해준다고 해도 지금은 20년을 지나 아브라함이 산전수전을 다 겪어서 이제 믿음의 조상으로 섰는데, 지금 또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비애 같습니다. 롯을 구하기 위해 자기 집에서 기른 318명을 거느리고 엘람 왕 북부 연합군을 야밤 기습공격으로 쳐부수어 조카 롯을 구했는데, 이제는 그런 일개의 그냥 평범한 그랄 사람이 무서워서 거짓말을 합니다. 자기만 살려고 자기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팔아먹는 치사한 거짓말을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우리는 흥분하지만 그럴 수 있습니다. 택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수를 반복합니다. 아무리 이전에 눈부신 공을 세우고 대단한 적용을 했더라도, 오늘 하루 주님의 은혜를 덧입지 않으면 우리는 넘어집니다. 아브라함의 실수는 거짓말이었지만, 그 거짓말의 뿌리는 불신앙이었습니다. 믿음이 흔들리자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믿음이 약해지자 엉뚱한 곳으로 갑니다. 믿음이 사라지면 불안과 두려움이 몰려와 고질적인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믿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간증) 저는 욕심이 많고 열심이 많은 자입니다. ...
이렇게 망가진 저를 헤브론 같은 목장에서 들어주고 기도해주고 먹여주고 사랑해줘서 우리부부가 살아 났습니다. ... 여러분도 헤브론 같은 목장에 꼭 붙어서 택자인 남편과 아내와 자녀들의 연약함을 잘 인정하며 껴안아주시고 그렇게 걸어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적용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말씀과 예배의 땅 헤브론 입니까? 애굽으로 향하는 남방 땅 네게브 입니까? 세상의 도시 그랄 입니까?
나의 반복되는 실수는 무엇입니까? 그 실수의 근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택자의 연약함을 인정합니까?
2. 실수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더하십니다.
2 ...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택자인 아브라함이 실수를 반복하자 하나님이 사건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거짓말을 듣고 사라를 아내로 취하려고 데려간 것이에요. 한 대지 안에 1대지 2대지 두가지 사건이 동시에 서술 됩니다. 아브라함이 죄를 범하자 마자 하나님이 죄를 즉시 다룬 것이에요. 이렇게 택자는 죄를 지어도 바로 들키게 하십니다. 택자이기에 하나님이 지체치 않고 하나님이 사건을 주시는 것이죠. 그러니 여러분 세상 사람들 다 죄짓는다고 다 안 들키고 잘산다고 나도 한번 죄 지어 봐야지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택자이기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사람을 보내고 사건을 보내어 여러분의 사라를 데려 가십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 여기심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3절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요. 사라를 데려간 그 밤에 하나님이 아브라함 꿈에 나타나셔서 거짓말 한 아브라함을 혼내시는 것이 아니라, 아비멜렉에 꿈에 나타나서 아비멜렉을 혼내시는 겁니다. 그것도 그냥 혼내시는 게 아니라 '너 아브라함의 아내 데려갔지? 너 죽는다' 이렇게 혼내시는거에요. 세상 논리와 이치로는 이해가 안되죠. 실수한 것은 아브라함인데, 하나님은 아브라함 편을 들면서 아비멜렉을 책망 하시는겁니다. 왜 그럴까요? 아브라함이 실수를 반복하고 넘어지지만 그럼에도 택자이기 떄문입니다. 내 아들, 내 딸, 내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겨자씨만한 믿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본토 친척 아비의 땅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갔고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내가 연약한 것을 너무 잘 아십니다. 내 연약함과 내 비천함을 누구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저 주님 품에 안기면 됩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며 갈 때 하나님이 그 밤에 그 위기의 밤에 아비멜렉을 찾아가십니다. 사라 같은 나의 자녀 남편 아내 부모 친구 지체를 지켜주십니다.
4-5절
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에 아비멜렉이 놀라서 변명합니다. 자신은 사라와 아직 잠자리를 갖지 않았고 아브라함과 사라 모두 서로 남매간이라고 해서 자기가 사라를 데려온 것이지, 나는 남의 아내를 빼앗는 악한이가 아니라고 항변 합니다. 물론 세상 잣대로 보면 이 아비멜렉은 훌륭한 왕이죠. 옳고 그름으로 보면 아비멜렉이 아브라함 보다 더 나아보입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옳고 그름의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의롭고 깨끗하고 온전하니깐, 반면 하나님 믿는 저 아브라함은 거짓말하고 아내를 팔아 먹으니깐, 나는 재처럼 하나님이 없어도 돼.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안아도 돼. 나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니깐. 이것이 성령의 양심이 아닌 인간의 양심의 한계입니다.
6절
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믿음은 없고 윤리와 도덕만 있는 아비멜렉에게 하나님은 그 수준에 맞춰서 아비멜렉을 행위를 인정해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비멜렉이 사라와 동침하지 않은 것이 너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막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아비멜렉이 사라와 동침하면 사라를 통해 약속의 자녀 이삭이 태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막으셨다고 하는거에요. 이삭이 와야 예수님이 오시고 예수님이 와야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 구원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택자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택자에게 자비를 더하시고 택자를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의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될 때 하나님의 보호와 자비가 임하게 됩니다. 구원을 위해 섬기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남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리고 나를 살리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택자인 나를 해하는 것은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치졸한 실수를 반복하는 나를 주님은 이렇게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일 구원의 일을 힘쓰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적용질문
나의 치졸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더하신 자비는 무엇입니까? 나의 일 중에서 하나님의 일은 몇 프로입니까?
3. 숨김에도 불구하고 죄를 고백하게 하십니다.
11절
11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란 아비멜렉은 그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 모든 신하들을 소집합니다. 모든 일을 신하들에게 전해주자, 신하들도 놀라고 심히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아비멜렉은 이 자리에 아브라함을 부르는 거에요. 그리고 아브라함의 거짓말 때문에 나와 온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 했다고 도대체 왜 그런거냐고 아브라함을 호되게 책망을 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숨겨왔던 죄를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 곳에서 내가 아내 때문에 죽임 당할까 두려워했다고 죽는 생각을 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약속을 잊고 말씀을 잊고 약속의 땅을 떠나면 자기 생각에 빠져서 거짓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잊고 약속의 땅을 떠나면 자기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사명을 잊고 안정을 취하면 오히려 두려움과 고난이 몰려 옵니다. 말씀과 적용이 지긋지긋 해서 아늑하고 안전해 보이는 그랄로 가면 오히려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내가 하나님의 택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방황하면서 아내 때문에 죽을까 두려워하는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12절
12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아브라함은 그동안 한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사실을 이 아비멜렉과 온 신하들 앞에서 고백합니다.사라가 자신의 이복누이로서 자신이 사라와 근친 결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과 사라 얘기는 창세기 11장부터 나오거든요 거기서 오늘 19장까지 단 한번도 이런 출생의 비밀, 근친 결혼의 비밀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아브라함과 사라가 불임 때문에 자식이 없었고 자식이 없어서 힘들었다고 고난이었다고 이런 말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치욕적인 실수로 치욕적인 수치를 당하는 이 사건에서, 아브라함은 비록 치졸한 답변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숨겨진 아픔을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상상해보세요. 우리 아빠가 바람을 피었다면 얼마나 상처가 되시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아빠가 바람을 피워서 아이까지 임신하고 낳게 되었다면 상처는 얼마나 클까요? 우리 상처가 얼마나 더 크겠습니까? 그런데 거기서 더 나아가서 내가 혼외자 이복 누이와 이복 형제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여러분 그건 이번 대선 뉴스 바로 옆에 나올 만큼 충격적이고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엄청난 그 상처를 이제 드러낸 것이에요.
13절
13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숨은 상처를 고백했던 아브라함은 더 나아가 숨겨왔던 죄를 고백합니다. 바로 자신이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나그네 인생을 살기 시작하면서 가는 곳마다 거짓말을 하고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운명의 발상지 메소포타미아를 떠나 낯설고 척박하고 거친 가나안 땅에 거류하면서 너무 두려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지만 또한 믿음이 없어서 거짓말을 했고 아내를 팔아먹으려고 했고 이것을 아내에게 설득하고 애원하고 강요했다는 것입니다. 나만 살고자 했던 이기적인 남편이고 아내를 지키지 않고 팔아먹은 비겁한 남편이라고 모든 왕과 신하들 앞에서 고백한 거에요.
제가 아까 두번째 대지에서 택자는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비를 더하신다고 했는데요, 그러나 거기서 끝나면 안됩니다. 택자라고 무조건 하나님이 전자동으로 지켜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믿고 우리의 숨겨진 죄를 고백하고 회개케 하기 위함입니다. 숨겨진 상처 숨겨진 죄를 고백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마음을 묻기 때문입니다. 회칠한 담이 되어 하나님과 남들의 관계를 막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치욕적인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수치의 현장에서 24년동안 숨겨왔던 자기 상처와 죄를 고백하면서 묶였던 마음이 자유케 되었습니다. 회칠한 담이 무너져, 부부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래서 20장 이후로 아브라함은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사라를 자기 아내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택자인 우리에게 주시고 싶은 것입니다. 난 의롭고 난 온전하고 난 깨끗하다 고 외친 아비멜렉은 결코 받지 못한 은혜입니다. 이런 고백과 회개가 하나님이 택자인 우리에게 베푸시는 최고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7세기 사막의 교보이자 니느웨이 이삭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기 죄를 아는 사람은 죽은 자를 일으키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 자기 죄를 위해 한 시간을 진실로 울부짖는 사람은 온 세상을 가르치는 사람보다 더 위대하다. 자기 약함을 아는 자는 천사를 볼 수 있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
오늘 이 아브라함의 고백을 보며 저의 반복된 실수 뒤에 숨겨진 죄를 묵상했습니다. 저의 욕심과 열심의 반복된 실수 뒤에 자기 연민과 피해의식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좀 더 깊이 제 내면에 끝없는 불안이 있음을 봅니다. 잘 해야하고 못하면 남들이 나를 싫어하고 버릴 것 같은 불안이 제 안에 있습니다. 관계가 좋다가도 사소한 갈등이 생기면 버림받을 것 같은 불안에 비굴하게 상대에게 맞추거나 아니면 못 참겠다 그러면 칼 같이 관계를 정리하곤 했습니다. 무슨 일을 할 때에도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일 자체를 즐기 수도 있는데, 자꾸 결과를 두려워하고 남들의 평가를 생각하니 남들이 인정해줄까 칭찬해줄까.. 이러니까 마음의 체증이 올라오는거에요. 결혼해서는 아내를 현모양처로 만들려고 아주 잡았습니다. 그 분이 누구신지 모르고 그랬던 것이죠. 드라마는 보지 말고 성경과 경건서적을 읽으라고 아내에게 설득하고 권위있게 말했습니다. 그래야 아내가 우렁각시처럼 내 옆에 꼭 붙어서 저를 잘 섬길꺼라 생각했습니다. 사역하면서는 이 불안이 올라오면 새로운 일을 하거나 중요한 일을 맡을 때면 너무 힘이 드는거에요. 자꾸 소화가 안되고 그러니깐 화장실에 수시로 갔습니다. 잘하지 못해서 버림받으면 어떡하지 이런 불안이 늘 있었습니다. 그렇게 불안을 숨기며 아름답고 묘한 모습으로 가정과 교회를 섬기려고 하니 젊은 나이에 너무 잘 생겼는데 머리가 빠졌습니다. 왜 이렇게 불안이 심했을까? 생각해보면 화려한 스펙을 가지신 부모님 밑에서 감정의 교류, 마음의 소통 없이, 그저 착한 아들, 순한 모범생으로 살면서 부모님의 간섭, 지시, 통제를 내내 받았던 영향도 컸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면, 제 속에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실수와 상처와 죄를 드러내면 하나님도 나를 버릴 것 같은 그런 불안과 불신앙이 제게 있었구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보호함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이 있고 내가 이렇게 연약하고 실수하는데 주님이 끝까지 천국으로 인도해주신다는 믿음이 부족함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하면서 지난달 2월, 마가복음 큐티 말씀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마가복음 4장 39-40절
이런 저의 믿음 없음을 깨트리기 위하여 하나님은 너무 약하고 부족한 자녀를 저희 가정에 주신 것을 봅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지만 말도 못하고 밥도 혼자 못 먹고 걷지도 서지도 못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해 기저귀를 차고 있는 아들 수현이로 인해, 제가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날로 작아지는 것을 봅니다. 별 인생이 없다는 것을 제 몸으로 느끼게 되어요. 아내와 함께 상한 갈대를 품고 가면서 내가 원하던 세상 인정과 칭찬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랑, 주님을 의지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매일 삶으로 배워가고 있습니다. 제 온몸으로 느끼고 있어요.
적용질문
숨겼던 것을 이제 고백하라고 주신 수치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처럼 그것을 고백하겠습니까?
4. 무너짐에도 불구하고 사명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7절
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7절은요 하나님이 꿈에서 아비멜렉에게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말씀입니다. 치졸한 실수를 한 치졸한 나그네 아브라함이 선지자라고 하십니다. 선지자라고 하는 말은 성경에서 여기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이 전쟁 포로로 끌려간 롯을 구했을 때 등장한 것이 아니구요, 소돔을 위해 아브라함이 수차례 기도했는데 그때 등장한 것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독자 내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그렇게 재물로 드렸을 때 너는 내 선지자라 한 것도 아니에요. 거짓말을 해서 아내를 빼앗기고 내 죄 때문에 아파하고 슬퍼하며 주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를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써주신 것입니다. 그는 내 선지자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수 했지만 너는 택자라고 하십니다. 무너졌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무너진 아픔을 딛고 회복으로 나아갈 길을 알려주십니다. 너를 질책하는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너는 내 택자, 내 선지자, 내 새끼이기 떄문에 세상을 위하여 다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난다고 하세요.
17-18절
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18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
아비멜렉과 신하들 앞에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자신의 숨겨진 죄를 고백한 아브라함은 하나님꼐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아내가 고통을 당하고 약속의 자녀가 오지 못할 뻔 하고 아비멜렉 집에 모든 태가 닫힌 것을 생각하면서 아브라함은 아마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구제 불능인 자신을 향해 내 택자, 내 선지자 아브라함아 라고 불러주시는 하나님 때문에 눈물을 흘렀을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을 위하여 기도 합니다. 나 떄문에 닫힌 아비멜렉의 모든 태를 열어달라고 기도하자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그의 여종들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해주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불신앙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추락했습니다. 그는 무너진 세상을 경험했고 세상 왕 앞에서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는 그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사라를 통해 주실 약속의 자녀도 약속의 땅도 너는 복이 될지라 약속의 땅도, 너는 복이 될지라 라는 약속도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밤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아비멜렉을 막으시고 사라를 지켜주십니다. 아브라함을 선지자라 하시면서, 아브라함의 회개를 이끌어내십니다. 그리고 다시 사명을 회복시켜주심으로 무너지 세계를 재건하라 하십니다. 이것이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내가 해야할 것은 무너진 자리에서 내 죄를 고백한 후에 맡겨주신 사명을 다시 붙잡는 것입니다. 너는 내 택자 내 선지자다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아브라함처럼 중보 기도 하는 것입니다. 나의 태는 닫혔지만 남의 태를 위해 기도할 때 남들이 치료되고 생명을 얻습니다. 아브라함이요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하자, 바로 다음장 21장에서 드디어 사라가 이삭을 임신하고 낳게 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지극히 높으신 분을 위해 라는 책에서
내면의 목표할 곳으로 들어가라. 주님께서는 욥이 친구들을 위해 기도했을 때 그의 재난을 바꾸워 놓으셨다. 영혼을 구하는 자로서 당신이 일생에 해야할 일은 바로 중보기도이다. 그 분께서 당신을 어떤 환경에 갖다 놓으셨던간에 즉시 기도하라. 그 분의 용서가 당신의 것이었듯이 다른 영혼의 삶에도 그 용서가 나타나도록 기도하라. 지금 친구들을 위해, 지금 당신이 접촉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간구하라.
적용질문
무너진 내가 주님의 택자, 주님의 선지자라는 말씀이 믿어집니까?
아브라함처럼 남들을 위해 이타적으로 기도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반복되는 실수로 수치를 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지켜주세요. 그동안 숨겨왔던 죄를 고백하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철저히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은혜를 주시며 사명을 주시며 회복시켜주세요 아브라함에게도 임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 은혜가 아브라함의 후손인 우리에게 주시는 겁니다.
한주 근황
A: 그냥 회사 적응 중,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무서워 피하는 중임.
B: 시험 보고 난 첫 주라서 마음 잡는 것에 집중하는 한주였다. 4월 27일에 다시 시험이 있어서 다시 준비중.
C: 회사에서는 주어진 일 맡아서 계속 하고 있고, 솔루션 하고 있는 것이 있어서 정리 해야할 것이 있는 상태, 책임감 있는 자리는 아니라서 다소 편한 상태이긴 함. 이런 편함을 경계하며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 여자친구와의 관계는 개선은 있지만 아직 힘든 상태.
D: 한주간 너무 지옥. 사소한 것 가지고 가족과 많이 싸웠다. 회사 일이든 가정일이든 들었던 내용을 반복하는.. 오늘 말씀 들으면서 그들이 나한테 맞춰주기 바라는 어린아이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려 놓기로 하고. 억지 적용에도 내가 적용했을 때 성령님이 간섭하시는 것을 배웠다.
적용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말씀과 예배의 땅 헤브론 입니까? 애굽으로 향하는 남방 땅 네게브 입니까? 세상의 도시 그랄 입니까?
나의 반복되는 실수는 무엇입니까? 그 실수의 근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택자의 연약함을 인정합니까?
E: 나의 반복되는 실수는 나태와 시간 약속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것도 미루는 습성 때문인 것 같다.
F: 나도 늘 미루는 게 문제. 귀찮거나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금방 그만 두는 것 같음. 그 근원은 나태 때문에 생긴 것 같다.
E: 집에만 있으면 나태가 너무 심해지는 것 같다. 쉬는 날이라도 최소 한번은 밖에 나가자.
F: 일주일에 한번은 나간다.
E: 집밖으로 나가는 적용을 좀 해야하는 것 같다. 하루에 한번은..
F: 다음주에는 매일 운동하는 걸 적용해보겠다.
E: 당장은 무조건 한번은 나가보는 것 정도만이라도 하면 될 듯..
G: 나의 반복되는 실수는 욕심이 많은 것, 사람 보기에 좋은 것 좋은 것을 나도 너무 좋아한다.
H: 내 안에 인정받고 싶은 욕구, 나의 아픔과 상처가 태생적으로 부모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늘 있다. 내 욕심을 가지치기 하는 적용을 해야겠다..
적용질문
숨겼던 것을 이제 고백하라고 주신 수치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처럼 그것을 고백하겠습니까?
I: 음란의 사건들을 계속 고백하라고 하는 것 같다. 신기하게 고백하고 나서부터는 죄를 멀리하고 있다.
적용질문
무너진 내가 주님의 택자, 주님의 선지자라는 말씀이 믿어집니까?
아브라함처럼 남들을 위해 이타적으로 기도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J: 믿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 불편한 사람을 피하기 급급하다. 오늘 아브라함을선지자라고 말씀하시니 나도 선지자라 생각한다. 불편한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노력해야겠다.
적용질문:
나의 치졸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더하신 자비는 무엇입니까? 나의 일 중에서 하나님의 일은 몇 프로입니까?
K: 가정 형편이 아주 잘사는 건 아니지만, 굶어 죽진 않는 이런 환경이 하나님이 더하신 자비인 것 같다. 나눔을 할 수 있는 목장도 하나님의 자비. 특히 형들과 또래들의 관점을 알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적용질문:
숨겼던 것을 이제 고백하라고 주신 수치의 사건을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처럼 그것을 고백하겠습니까?
L: 오래 숨겨왔던 죄가 하나 있다. ...... 나 스스로도 사랑해줘야 할 것 같다.
기도제목
재엽: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너무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 성령의 애통한 마음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병희: 다음 주부터 산책 적용, 그래서 체력이 길러지길
혜국: 회사에서 중책을 맡았는데 업무에 실수가 없도록, 새 교제에 축복 주시길
남룡: 여자친구와의 사건이 나의 진짜 사건, 우리의 사건이라 깨닫고 깨어 기도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