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 창세기 20:1~7, 11~13, 17~18
- 제목 : 그럼에도 불구하고
- 설교 : 김태훈 목사님
할렐루야! 설교의 자리는 언제서도 떨리는 것 같아요. 주 중에 설교하라는 연락을 받고, 그래서 세상 모든 짐을 진 사람처럼 이리저리 이제 서성거리니까 옆에 있던 아내가 한마디 했습니다. '목사는 하나님 말씀 전하는 자 아니야? 당연한 일을 하는데 왜 그래?' 여러분 제가 이런 여인을 모시고 삽니다. 네. 여러분 존경해 주세요. 얼마나 막 부담되는지 아냐고 아내에게 변명했지만 사실 맞는 말이기 때문에 좀 부끄러웠습니다.
여러분은 하루 일과를 어떻게 시작하세요? 저는 일어나서 먼저 물을 마십니다. 근데 물을 마시기 전에 잠자리에서 일어난 다음에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저를 인도해 주세요.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저를 붙잡아주시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세요.' 여러분 엄청 경건해 보이죠? 습관이 된 것도 있지만 기도가 절로 나와요. 아침에 일어나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물을 마시고 이제 샤워를 하는데요. 샤워하기 전에 먼저 그날 큐티인 본문을 한번 쓱 읽습니다. 그래서 샤워하면서 이제 말씀을 생각해요. 그날 제목을 생각하고, 또 주신 마음에 꽂힌 그 한 구절을 이렇게 생각하면서 샤워를 합니다.
그 후에 이제 아내와 함께 우리 애들이 3명인데 아이들을 깨우고, 또 먹이고, 입히고 그리고 학교까지 다 보낸 다음에 출근해서 책상에 앉아 차분히 그 때 다시 큐티를 하고, 다 한 다음에 하루의 일과를 시작합니다.
지난주에는 월요일 큐티 본문이 마음에 남았어요. 큐티 제목이 아브라함에 반복되는 실수였습니다. 그래서 설교 연락을 받고 바로 이 본문이다! 이 본문으로 해야겠다!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야기에는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고, 아비멜렉은 세상 왕인데 우리 기대와는 달리 아브라함은 너무 초라하고 찌질한 모습으로 나옵니다. 반면 불신자 아비멜렉은 너무 교양 있고 멋있게 나옵니다. 세상 왕이 믿음의 조상보다 더 나아 보입니다. 많이 헷갈리죠? 아브라함은 조연 같고 아비멜렉이 주인공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입니다. 종교 개혁가 칼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성령님은 우리에게 놀랄 만한 두 가지 사례를 보여주신다. 하나는 인간의 연약함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택자 아브라함은 너무 연약하고 부족해서 계속 넘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붙드시고 일으키시며 회복시켜주신다는 것이 오늘 설교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혹시 오늘 몸이 너무 아프고 피곤하거나 급한 일정이 있으신 분들은 이것만 기억하고 나가셔도 됩니다. 농담인 거 아시죠? 끝까지 말씀 잘 들으시고 이 예배 잘 들리시는 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차고 넘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니다. 택자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한다고 합니다. 택자의 인생에 임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1. 택자임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반복합니다.
1절,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1절에 거기서는 마므레 이 상수리 나무들이 있는 곳, 즉 헤브론을 말합니다. 헤브론은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 소돔으로 간 다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간 곳이었습니다. 롯에게 재물을 양보하고 롯을 떠나보낸 아브라함은 이 헤브론에 거주하면서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헤브론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땅 예배의 처소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아브라함이 이 약속의 땅을 떠나 네게브 땅으로 옮겨갑니다. 네게브는 남방을 말하는데요. 우리 1절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가데스와 술 사이에 잠시 머물렀다는 동사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브라함이 천국을 상징하는 가나안 땅을 떠나가지고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으로 점점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354장이 생각나는데요.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같이~' 여러분 아시죠? 아브라함은 올라가 올라가가 아니라 내려가 내려가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20년 전에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예쁜 아내를 빼앗기고 죽을 뻔한 일이 생각나서 애굽으로 완전히 내려가지 않고 다시 올라갑니다.
그런데 올라가서 헤브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블레셋 왕의 도시 그랄로 갑니다. 가나안 땅은 맞긴 한데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쌓았던 헤브론이나 벧엘이 아닌, 가나안 땅 남쪽 접경지역에 위치한 그랄에 장막에 칩니다. 남쪽이어서 좋고, 왕이 사는 곳이어서 좋고, 안전하고 풍요로워서 좋고, 그렇다고 애굽에 완전히 내려간 건 아니라서 좋다고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그렇게 믿음 좋았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한마디 묻지도 않고 혼자서 뚝딱 처리합니다.
근데 여기서부터 비극이 싹 틉니다. 왜 아브라함은 헤브론에서 떠나 그랄에 거류했을까요?
12장에서는 가나안 땅의 기근이 너무 심해 애굽으로 내려갔다고 했는데 지금은 20장에는 기근도 없습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서 재산도 늘어났고 거느리는 종들도 많아졌고 사회적 영향력도 커졌습니다. 믿음도 초창기보다 자랐고요. 초라한 나그네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도 극진히 대접했고, 소돔을 위해 목숨 걸고 기도까지 했습니다. 내년에 사라가 약속의 자녀 이삭을 낳으리라는 엄청난 말씀도 아브라함이 좀 전에 받았어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헤브론을 떠난 것은 그 마음에 기근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목숨을 걸고 기도했는데 소돔은 멸망하고, 겨우 살아남은 조카 롯은 아내를 잃고 두 딸과 함께 산에서 거주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다가 롯이 두 딸과 근친상간에서 아들까지 낳았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그때 아브라함 마음이 어땠을까요? 내가 이러려고 목숨 걸고 기도했나? 내 인생에 되는 건 뭐지?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는데 내 인생은 왜 이리 고달픈 걸까? 이럴 바에야 차라리 남방으로 가서 힐링하며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야겠다.
육적 기근보다 더 무서운 것이 영적 기근입니다. 영적 기근이 찾아오면 마음의 자기 연민과 피해의식으로 마음이 갈라집니다. 갈라진 마음에서 원망과 우울, 냉소와 허무의 잡초가 자라납니다. 그러면 말씀은 사라지고 약속은 잊힙니다. 사명을 망각하고 택자의 정체성을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과 자기 열심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2절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이렇게 택자 아브라함이 자기 정체성을 잊고 사명을 망각하니까 실수를 합니다. 자기 안에 사라를 그랄 사람들에게 자기 누이라고 한 것이죠. 사람들이 자기 아내가 예쁜 것을 보고 아내를 빼앗고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20년 전 애굽에서 했던 실수를 다시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기근 때문에 간 것이고, 믿음도 초창기라 정상참작을 해준다 해도 20년이 지나 산전수전 다 겪은 아브라함이 지금 또 실수를 하는 거예요. 이걸 보면서 우리 인생의 비애를 느낍니다.
롯을 구하기 위해 자기 집에서 기른 군인 318명을 거느리고, 엘람 왕 연합군을 야밤 기습 공격으로 쳐부수었던 아브라함이 그냥 평범한 그랄 사람들이 무서워서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그냥 거짓말이 아니라 자기만 살려고 자기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팔아먹는 치사한 거짓말을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우리는 흥분하죠. 하지만 그럴 수 있습니다. 택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수를 반복합니다. 아무리 이전에 눈부신 공을 세우고, 대단한 적용을 했더라도 오늘 하루 주님의 은혜를 덧 입지 않으면 우리는 이렇게 넘어집니다.
아브라함의 실수는 거짓말이었지만 그 거짓말의 뿌리는 불신앙이었습니다. 믿음이 흔들리자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믿음이 약해지자 엉뚱한 곳으로 갑니다. 믿음이 사라지자 불안과 두려움이 몰려와 고질적인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믿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아브라함이 그렇게 치졸한 모습으로 나락이 빠진 게 제 모습 같았어요. 저는 욕심이 많고 또 열심이 많은 자입니다. 그래서 제 열심으로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를 외치며 미국 유학을 떠났어요. 아내는 공동체에 남아 있기를 원했고, 또 우리 목사님은 좀 더 공동체에 남고 섬기면서 그 후에 유학 가기를 권면하셨지만 저는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미국으로 나아갔습니다.
열심과 욕심으로 공부하니까 머리까지 빠지면서 공부하니 미국 교수님들이 막 박수 쳐주고, 인정해 주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석사하기를 받았고요. 그리고 박사 과정에도 입학 허가를 받으며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우리 학교로 오라고 그랬습니다. 여기서 제가 좀 더 제 자랑을 하자면 그냥 학교가 아니라 되게 미국의 우수한 신학교의 신학학 박사 과정에 세 군데나 합격하는 기록을 세웠어요.
하지만 잘 나가고 올라갈 때 그 와중에 둘째 수현이가 조산으로 태어나고 뇌성마비 장애를 얻으면서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픈 자녀로 인해 우리 부부는 많이 싸웠고요. 서로 상대 탓을 하고 그래서 미워하고 거의 매일마다 싸웠어요. 그래서 저는 이제 우리 부부는 쇼윈도 부부, 서류상 부부, 명목상 부부로 살면서 그냥 이제 우리의 관계는 끝난 거구나 하며 절망했습니다.
전세자금으로 유학을 했기에 이제 갑자기 돌아온 저희 가정은 집이 없어서 본가, 처가, 병원 등 이렇게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떠돌아다녔습니다. 아브라함이 이곳저곳 옮겨가며 거류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때는 사역도 할 수 없었어요. 나는 택자인데 어쩌다 내 인생은 이렇게 됐을까 앞으로 우리 가정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에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우리 가정을 헤브론 같은 공동체 그리고 목장으로 다시 옮겨주셨어요. 목사였지만 목원으로 목장에 들어가기로 했는데 목사인 제가 부담스러워 선뜻 저를 받아주겠다는 목사님들이 안 계셨다고 이후에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기꺼이 저를 받아주시겠다는 한 목자님이 계셔서 그 부부 목장에 들어갔어요.
그때가 벌써 6년 전입니다. 서로에게 분노와 상처가 가득했던 저희 부부를 보고, 우리 또 목자님,권찰님이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저희를 섬겨주셨는지 모릅니다. 어디 계신지 모르지만 너무 감사했어요.
목자님, 권찰님 저희 집에서 부부 목장을 드리던 날이었는데요. 처음으로 목자님께서 그때 제게 물으셨어요.
'목사님, 혹시 사모님께 바라는 게 있으세요?
'네. 저도 유학 기간에 그리고 한국에 와서 아내에게 상처받았어요. 저는 바라는 게 아내의 사과입니다. 아내의 사과를 듣고 싶어요.' 이렇게 얘기했어요. 웃으시네요.
이 말에 아내는 질색하며 '저야말로 남편의 사과를 받고 싶어요!' 라고 했는데 저의 굳어진 얼굴을 보고 우리 목사님이 웃으시면서 아내에게 조심스레 말한 것이 '그래도 목사님이 목장에서 나누셨으니까 사모님이 한 번 사과를 해 주시면 어떨까요?' 이 목자님의 간곡한 부탁에 아내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제게 사과를 했습니다.
근데 여러분 그때 제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진정성이 안 느껴집니다. 저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여러분 제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상상이 가시죠? 이렇게 망가진 저를 헤브론 같은 목장에서 들어주고 기도해주고 먹여주고 권면해 주는 사랑으로 섬겨주셔서 우리 부부가 살아났고 저도 사역에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연약한 가정을 보시고 여러분도 헤브론 같은 목장에 꼭 붙어서 택자인 우리 남편, 아내, 자녀들의 연약함을 잘 인정하며 가시기를 바랍니다.
적용 -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말씀과 예배의 땅 헤브론입니까? 애굽으로 향하는 남방 땅 네게브입니까? 세상 왕의 도시 그랄입니까?
나의 반복되는 실수는 무엇입니까? 그 실수의 근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택자의 연약함을 인정합니까?
2. 실수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더하십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택자인 아브라함이 실수를 반복하자 하나님이 사건을 주십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거짓말을 믿고, 사라를 자기 아내로 취하려고 데려간 것이에요.
한 구절 안에 아까 1대지, 2대지 두 사건이 서술됩니다. 아브라함이 죄를 범하자마자 하나님이 죄를 즉시 다루신 것이에요. 이렇게 택자는 죄를 지어도 바로 들키게 하십니다. 택자이기에 하나님이 지치지 않고 사건을 주시는 것이죠. 그러니 여러분 세상 사람들 다 한다고 나도 한번 죄 지어봐야지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택자이기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사람을 보내고 사건을 보내고 여러분의 사라를 데려가십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을 한번 같이 보겠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이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3절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입니다. 근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요. 사라를 데려간 그 밤에 하나님이 아브라함 꿈에 나타나셔서 거짓말한 아브라함을 혼내시는 게 아니라 아비멜렉 꿈에 나타나셔서 아비멜렉을 혼내시는 겁니다. 그냥 혼내신 게 아니라 '너 아브라함의 아내 데려갔지? 너 죽는다!' 이렇게 하신 거예요. 세상 논리와 이치로는 이해가 안 되죠. 실수한 것은 아브라함인데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 편을 드시고 아비멜렉을 혼내시는 걸까? 왜 그럴까요?
아브라함이 실수를 반복하고 계속 넘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자이기 때문입니다. 내 아들, 내 딸, 내 새끼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갔고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연약한 것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내 연약함과 비천함을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나를 아신다는 것을 믿고 그저 주님의 품에 안기면 됩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며 갈 때 하나님이 그 밤에 그 위기의 밤 때 아비멜렉을 찾아가십니다. 사라 같은 나의 자녀, 남편, 아내, 부모 지체를 지켜주십니다.
4절 5절입니다.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에 아비멜렉이 놀라서 변명해요. 자신은 사라와 아직 잠자리를 갖지 않았다고 아브라함과 사라 모두 서로 남매간이라고 해서 자기가 사라를 데려온 거지, 자기는 남의 아내를 빼앗는 악한이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세상 잣대로 보면 아비멜렉은 훌륭한 왕이죠. 옳고 그름으로 보면 아브라함보다 더 나아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옳고 그름의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의롭고 나는 온전하고 깨끗하니까 반면 하나님 믿는 저 아브라함은 거짓말을 하고 아내를 팔아먹으니까 나는 하나님이 없어도 돼! 나는 굳이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돼! 이것이 성령의 양심이 아닌 인간의 양심의 한계입니다.
6절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믿음은 없고 윤리와 도덕만 있는 아비멜렉에게 하나님은 그 수준에 맞추어서 아비멜렉의 행위를 인정해 주세요. 그러나 하나님은 아비멜렉이 사라와 동침하지 않은 것은 네가 잘나서가 아니라 네가 스스로 절제해서가 아니라 내가 막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아비멜렉이 사라와 동침하면 사라를 통해 약속이 전혀 이삭이 태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막으셨다고 하는 거예요. 이삭이 와야 예수님이 오시고, 예수님이 와야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 구원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택자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택자에게 자비를 더하시고 택자를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의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될 때 하나님의 보호와 자비가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동체에서 직분을 받아서 구원을 위해 섬기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알아야 돼요. 공동체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택자인 나를 해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범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치졸한 실수를 반복하는 나를 주님은 이렇게 사랑하세요. 이 사랑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일 구원의 일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적용 - 나의 치졸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더하신 자비는 무엇입니까?
나의 일 중에서 하나님의 일은 몇 프로입니까?
3. 숨김에도 불구하고 죄를 고백하게 하십니다.
11절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란 아비멜렉은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 모든 신하들을 소집해요. 그 모든 일을 신하들에게 전해주자 신하들도 심히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아비멜렉은 이 자리에 아브라함을 불러서 아브라함의 거짓말 때문에 나와 온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했다고 너 도대체 왜 그런 거냐고 호되게 책망을 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숨겨왔던 죄를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곳에서 내가 아내 때문에 죽을까봐 두려워했다고 그럼 죽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읽고 약속의 땅을 떠나면 자기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사명을 잊고 안전을 추구하면 오히려 두려움과 불안이 몰려옵니다. 말씀과 적용이 지긋지긋해서 아늑하고 안전해 보이는 그랄로 가면 오히려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택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당황하면서 아내 때문에 죽을까 두려웠다는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12절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아브라함은 그동안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사실을 아비멜렉과 그의 온 신하들 앞에서 고백합니다. 사라가 사실 자신의 이복 누이로서 자기가 근친 결혼을 했다는 것이에요. 성경에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는 창세기 11장부터 나오는데요. 거기서 오늘 또 바로 이전 19장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출생의 비밀, 근친 결혼의 비밀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아브라함과 사라가 불임의 고난으로 자녀가 없어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만 나왔어요. 그러다가 치욕적인 실수로 치욕적인 수치를 당하는 이 사건에서 아브라함은 비록 치졸한 변명이긴 하지만 자신의 숨겨진 아픔을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상상해보세요. 우리 아빠가 바람을 피었다면 여러분 얼마나 상처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아빠가 바람을 펴서 아이까지 낳았다면 여러분 우리 상처는 얼마나 더 크겠습니까? 그런데 만일 내가 그 혼외자 이복 누이랑 아니면은 이복 형제랑 근친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여러분 이번 대선 뉴스 바로 옆에 나올 만큼 너무나 충격적인 일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엄청난 그 상처를 이제 드러낸 것이에요.
13절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숨은 상처를 고백했던 아브라함은 이제 더 나아가 숨겨왔던 죄를 고백합니다. 바로 자신이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나그네 인생을 살기 시작하면서 가는 곳마다 거짓말을 하고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문명의 발상지 메소포타미아를 떠나 낯설고 거칠고 야만적인 가나안 땅에 거류하면서 너무 두려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지만 또한 믿음이 없어서 거짓말을 했고, 아내를 언제라도 팔아먹으려고 했고, 이것을 아내에게 설득하고 애원하고 강요했다는 것입니다. 나만 살고자 했던 이기적인 남편이고, 아내를 지켜주지 않고 팔아먹은 비겁한 남편이라고 고백한 것이에요.
아까 제가 두 번째 대지에서 택자는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비를 더하신다고 했는데요. 근데 거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택자라고 무조건 하나님이 전자동으로 지켜주시고 복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비를 믿고 이제 우리의 숨겨진 죄를 고백하고 회개케 하기 위함입니다. 숨겨진 상처, 숨겨진 죄를 고백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마음을 묻기 때문입니다. 회칠한 담이 되어 하나님과 남들과의 관계를 막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치욕적인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수치의 현장에서 24년 동안 숨겨왔던 자기 상처와 죄를 고백함으로써 묶였던 마음이 자유케 됐습니다. 회칠한 담이 무너져 부부관계가 회복됐습니다. 20장 이후로 아브라함은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사라를 자기 아내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택자인 우리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난 의롭고 난 온전하고 난 깨끗하다!' 이렇게만 외치는 아비멜렉은 결코 받지 못하는 은혜인 것입니다. 이런 고백과 회개가 하나님이 택자에게 베푸시는 최고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7세기 니느웨이 이삭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기 죄를 아는 사람은 죽은 자를 일으키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 자기 죄를 위해 한 시간을 진실로 울부짖는 사람은 온 세상을 가르치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 자기 약함을 아는 사람은 천사를 볼 수 있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
아브라함의 고백을 보며 저의 반복된 실수를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죄를 묵상했어요. 저의 욕심과 열심이라는 반복된 실수 뒤에 자기 연민과 피해의식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제 내면에 끝없는 불안이 있음을 봅니다. 잘 해야만 하고, 못하면 남들이 싫어하고 외면하고 버릴 것 같은 불안이 있습니다. 관계가 좋다가도 의견이 다르고 사소한 갈등이라도 생기면 버림받을 것 같은, 불안에 비굴하게 상대방에게 맞추거나 아니면은 칼같이 관계를 정리하곤 했습니다. 무슨 일을 이제 할 때도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일을 즐기면 되는데 자꾸 결과를 두려워하고 남들의 평가를 생각하니 마음에 이제 체증이 올라오는 거예요.
결혼을 해서는 아내를 현모양처로 만들려고 잡았습니다. 그분이 누구신지 제가 잘 모르고 그랬던 거죠. 드라마는 보지 말고 성경과 경건서적을 읽으라고 아주 권위 있게 명령했습니다. 그래야 아내가 선녀와 나뭇꾼처럼 나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우렁각시처럼 제 옆에 꼭 붙어서 나를 잘 섬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또 힘든 결혼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사역하면서는 또 이 불안이 올라오면 새로운 일을 하거나 중요한 일을 맡을 때 힘들었어요. 자꾸 소화가 안 되고 화장실에 수시로 갔습니다. 잘하지 못해서 버림받으면 어떡하나?라는 불안이 늘 있었습니다. 그렇게 불안을 숨기며 아름답고 묘한 모습으로 가정과 교회를 섬기려고 하니 젊은 나이에 제 머리가 빠지게 된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불안이 심했을까? 또 생각해 봤죠. 먼저 화려한 스펙을 가지신 부모님 밑에서 감정의 교류, 또 마음의 소통, 편하게 또 생각을 나누는 것 없이 그저 착한 아들 또 순한 모범생으로 살면서 부모님의 간섭, 지시, 통제를 내내 받았던, 결혼하기 전까지 받았던 영향도 컸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면 제 속에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 자리잡고 있음을 봅니다. 실수와 상처와 죄를 드러내면 하나님도 나를 버릴 것 같은 그런 불안과 불신앙이 제게 있었고요.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와 자비를 믿지 못하는 불신앙이 있고, 연약한 나를, 또 실수하는 나를 주님이 끝까지 천국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이 부족함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하면서 지난달 마가복음 큐티 말씀이 생각났어요. 계속 떠올랐습니다. 마가복음 4장 39~40절인데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 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이런 저희 믿음 없음을 깨뜨리기 위하여 하나님은 너무도 약하고 부족한 자녀를 저희 가정에 주신 것을 봅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됐지만, 말도 못하고, 밥도 혼자 못 먹고, 걷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해 기저귀를 차고 있는 아들 수현이로 인해 인정을 못 받으면 버림 받을 것 같은 불안과 두려움이 날로 작아지는 것을 봅니다. 더 큰 고난 앞에 제가 가지고 있었던 그 인간적인 슬픔이 작아지는 것을 봅니다. 별 인생이 없다는 것을 제 온몸으로 느끼고 있어요.
아내와 함께 상한 갈대를 품고 가면서 세상의 인정과 칭찬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과 주님을 의지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절로 무릎이 끊어지고 또 기도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적용 - 숨겼던 것을 이제 고백하라고 주신 수치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처럼 그것을 고백하겠습니까?
4. 무너짐에도 불구하고 사명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7절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7절은 하나님이 꿈에서 아비멜렉의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치졸한 실수를 한, 치졸한 아브라함이 선지자라고 하십니다. 이 선지자라는 말은 성경에서 여기에 처음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이 전쟁 포로로 끌려간 롯을 구하기 위해 싸웠을 때 등장한 게 아닙니다. 소돔을 위해 수차례 중보했을 때 등장한 게 아닙니다. 나중에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을 때 등장한 것도 아닙니다. 거짓말을 해서 아내를 빼앗기고 내 죄 때문에 아파하고 슬퍼하면서 밤중에 주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를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써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수했지만 너는 택자라고 하십니다. 무너졌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무너진 아픔을 딛고 회복으로 나아갈 길을 알려주십니다. 선지자의 사명을 다시 주시며 너를 질책하는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너는 내 택자, 내 선지자, 내 새끼이기 때문에 세상을 위하여 다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난다고 하시는 겁니다.
17~18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
아비멜렉과 신하들 앞에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자신의 숨겨진 죄를 고백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아내가 고통당하고, 약속의 자녀가 오지 못할 뻔하고, 아비멜렉 집에 모든 태가 닫힌 것을 생각하면서 아브라함은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구제 불능인 자신을 향해 '내 택자, 내 선지자 아브라함아'라고 불러주시는 하나님 때문에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나 때문에 다친 아비멜렉 집의 모든 태를 열어달라고 기도하자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그의 여종들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해주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불신앙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추락했습니다. 그는 무너진 세계를 경험했고 세상 왕 앞에서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어요. 사라를 통해 주실 약속의 자녀도, 약속의 땅도, 너는 복이 될지라 라는 약속도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그 밤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아비멜렉을 막으시고 사라를 지켜주십니다. 아브라함을 선지자라 하시면서 아브라함의 회개를 이끌어내십니다. 그리고 다시 사명을 회복시켜주심으로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은 무너진 자리에서 내 죄를 고백한 후에 맡겨주신 사명을 다시 붙잡는 것입니다. '너는 내 택자, 내 선지자란다'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아브라함처럼 중보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의 태는 다쳤지만 남의 태를 위해 기도할 때 남들이 치료되고 생명을 얻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명을 회복하자 바로 다음 장인 21장에서 드디어 사라가 이삭을 임신하고 낳게 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지극히 높으신 분을 위해 라는 책에서 우리가 실패를 경험했을 때 중보 기도를 통해 어떻게 사명을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줍니다. 내면의 목표할 곳으로 들어가라. 주님께서는 욥이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했을 때 그의 재난을 바꾸어 놓으셨다. 영혼을 구하는 자로서 당신이 일생에 해야 할 일은 바로 중보 기도이다. 그분께서 당신을 어떤 환경에 갖다 놓으셨든 간에 즉시 기도하라. 그분의 용서가 당신 것이었듯이 다른 영혼의 삶에도 그 용서가 나타나도록 기도하라. 지금 친구들을 위해 지금 당신이 접촉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간구하라
적용 - 무너진 내가 주님의 택자, 주님의 선지자라는 말씀이 믿어집니까?
아브라함처럼 남들을 위해 이타적으로 기도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마지막으로 한 목장 나눔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분은 미국에 사시는 여 집사님이신데요. 부부가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서로 실망하고 상처 주면서 가정이 무너질 뻔하다가 때마침 우리들교회 목장을 소개받아 자기 죄를 보고 또 적용을 하고 그러면서 가정이 살아나고 있다는 나눔입니다. 제가 상황 최대로 할 수 있는 한 역할을 바꿔가면서 해보겠습니다.
집사님 : 결혼해서 미국에서 13살, 11살, 7살 세 아들을 키우고 있어요. 남편 하나만 바라보고 미국에 와서 한 결혼은 신혼 때부터 잦은 싸움과 외로움으로 인해 실패한 듯 보였어요. 제 많은 부분을 내려놓고 한 결혼이라 남편이 무조건 잘해주리라 믿었지만 남편은 저가 자녀들에게 분노와 혈기를 쏟아냈고, 저는 이 사람과 더 이상 상종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대화가 단절된 채 살았어요.
하지만 남편의 자녀 체벌로 인해 미국 경찰이 오늘 사건과 남편의 우울증, 자살 충동을 계기로 우리들교회 목장을 소개받았어요. 그동안 내 사건이 해석이 안 됐는데 목장에서 그냥 같이 듣고 보고 나누다 보니 남편이 아니라 내가 가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 때문에 너무 힘들어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는 전혀 기도할 마음도 없었는데 이런 저를 가증하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내 죄가 조금씩 보이게 되고 내 구원을 위해 남편과 자녀가 수고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목자님 : 몇 달 전 집사님이 새 가족으로 오셨을 때 벼랑 끝에 서 있는 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 저랑 통화하셨을 때 남편과 대화가 없고 단지 필요한 말만 일부 한다고 하셔서 회복에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게 웬 걸, 목장 처방대로 남편 출퇴근 때 인사하시고 또 남편의 마음을 읽어주는 대화를 해보라고 처방했는데 집사님이 바로바로 적용하면서 남편의 마음을 하나하나 얻어가는 걸 보면서 목자인 나는 우리들교회 16년을 다녔는데 왜 바로 저렇게 못 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집사님처럼 LTE급으로 빨리 통과하시는 분들 보면 좀 부러워요.
집사님 : 저 LTE급은 아니고요. (다 이게 다 온라인 줌으로 이루어진 겁니다.) 죽음이 왔다 갔다 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급한 불을 꺼주신 것 같아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사 목장 처방을 따라 남편이 우울증 약을 처방받고 또 잘 먹어주는 은혜를 주신 거죠.
애들이 클수록 아빠 자리가 크게 느껴지는데 혼자 감당하기 힘든 자녀 양육을 이제 남편과 함께 상의하게 되어서 큰 힘이 되요.
목자님 : 맞아요. 결혼 생활 14년 고생하신 거 생각하면 (이 집사님이 14년 결혼 생활하셨습니다.)이것도 빠른 게 아니죠. 정말 남편분이 위기 상황이라고 들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하나님이 빠름! 빠름!으로 119 보내주신 것 같아요.
크고 작은 사건들이 계속 오고 환경이 달라진 건 없지만 집사님이 변하시니 가족들도 변하는 게 너무 감사해요. 남편한테 살포시 아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는 말도 해보시면서 조금씩 잘 이끌어주세요.
여러분, 우리들 목장 정말 대단하죠? 네 한국과 미국 태평양을 사이에 건너주면서 이렇게 가정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만 아니라 정말 온 세계 성도님들이 이런 구속사의 말씀과 그리고 구속사의 말씀을 나누는 목장을 통해 서로 연약함을 인정하고 죄를 고백하며 십자가의 적용을 하므로 가정이 살아나고 구원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반복되는 실수로 수치를 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아브라함과 사라를 지켜주십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숨겨왔던 상처와 죄를 고백하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철저히 낮아지고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명을 주시면서 그를 회복시켜주시는 거예요. 아브라함에게 임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은혜가 바로 아브라함의 후손인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목장 기도 제목]
공통 기도 제목
김은실 목자님, 서다인 자매님 하루 속히 코로나에서 회복 되실 수 있도록
김은실 목자님
1. 구원때문에 주목을 하라 하시는데 내 구원부터인 저를 용서하시고 내 입을 치는 온전한 회개가 되게 해주세요.
2. 택자라 하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환경으로 점점 인도하시는데 그런 날 불쌍히 여겨주시고, 해야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들 잘 분별하여 주님께 온전히 맡기고 인도 받아 가게 해주세요.
3. 미취학부 컨텐츠가 구속사의 말씀이 전해지는 통로가 되게 하시고, 참여하고,보는 이들이 성령의 황홀을 누릴 수 있게 해주세요.
4. 목장 식구들의 기도제목을 기억해주시고, 또, 모두 믿음의 배우자를 위해 자신을 먼저 보고 분별의 눈을 주셔서 서로 알아보고 신교제, 신결혼 할 수 있도록 그 때를 소망하는 맘으로 기다리게 해주세요.
5. 셋째 언니와 형부가 꼭 다음 목회자 세미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맘을 열어주시고, 알맞은 타이밍에 전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6. 부모님과 다시 큐티하는 자리에 앉게 하시고 내 생각대로 부모님에게 편견 갖지 않게 하시고, 가족 모두 말씀이 뚫고 들어가 회개가 되고 평생 말씀 붙드는 인생 되게 해주세요.
김자영 부목자님
1. 업무할 때 지혜주시길
2. 시간을 아껴 쓰길
3. 코로나로 아픈 모든 지체들을 빨리 회복시켜 주시길
홍선미
1. 안목의 정욕을 내려놓고 사람의 중심을 볼 수 있도록...
2. 신교제, 신결혼 할 수 있도록...
3. 나로 인해 사람들이 실족하지 않을 수 있도록
김지아
1. 변이레, 변이삭 타령 그만하고 내 입을 치며 수치심 골방감정 띵크하며 먼저 얘기하실 때까지 입도 뻥끗 안 하는 적용 잘 지키기
2. 치졸하게 가식과 위선으로 교회를 섬기고 생색으로 이삭을 기대하는 기복 버리고, 실패를 경험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보기도로 강에서 바다로의 사명 감당하기
3. 10주 동안 그저 내 죄만 보는 선지자 양육자로 써 주시길
4. 목자언니, 다인자매님 코로나 속히 회복되고 구원의 사건 되길
5. 택자인 숫양 배우자님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이번 한 주도 수풀에 잘 걸려 계시고 본인의 치졸한 실수에도 하나님께서 더하신 자비로 내년 이 시기에 신교제 신결혼
서다인
1. 코로나로 아직도 몸이 아프고 힘이 듭니다. 지친 영육이 회복될 수 있게
2. 일상 회복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 너무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조금씩 일어나보기
박수지
1. 우리반 아이들 내 생각대로 판단하고 차별하지 않고, 1년동안 가식적인 모습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해줄 수 있도록
2. 목장 언니들, 반 아이들, 가족들, 주변 지체들을 위해 꾸준히 중보기도할 수 있도록
3. 개학하고 큐티를 대충 하게 되는데 말씀 놓치지 않는 삶 살 수 있도록
4. 기도하며 지혜롭게 결혼 준비 할 수 있도록, 이번주 상견례 편안한 분위기에서 좋은 만남 되도록
5. 이모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얼른 가정에 돌아오실 수 있도록
안주현
1. 내 기대에 어긋나고 거절당하는 것 같은 상황에서 묻지도 않고 회피하고 떠나는 반복된 실수에 대해 잘 고백하고 회개하며 사명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2. 은실언니, 다인 자매님 코로나 속히 회복되시고 혼자 자가 격리할때 아프지 않게, 힘들고 외롭지 않게 돌봐주세요, 목장 식구들 모두 코로나로부터 안전히 지켜 주시길
3. 회사동료 효진님, 현우님, 종민님, 봄님, 인수님 예배와 큐티가 회복되고 인격적으로 예수님 만날 수 있도록
4. 짱아, 자두 건강 지켜주시고, 아빠의 영혼 구원 책임져 주세요. 엄마의 힘든 인생을 구속사로 잘 해석하실 수 있도록
5. 신교제에 있어 병고침보다 죄사함의 은혜가 있을 수 있길, 신교제를 향한 수치심, 의심, 체념, 절망, 낙심, 원망 등의 나의 골방의 감정에 대해 잘 THINK, 회개하고 자유함 얻을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