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6 성령의 양심
ampbull 설교자: 김양재 담임목사님
ampbull 설교 본문: 사도행전 22장 30절-23장 5절
30 이튿날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진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그들 앞에 세우니라
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3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4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5 바울이 이르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요즘 정말 양심 없는 사람들 많습니다. 우리 청년이 2천만원을 보이스피싱 당했습니다. 전재산이었답니다. 청년이 끊지 않고 회사에서 조퇴하고 나와서 하루종일 통화하며 그 돈을 보냈다는 겁니다. 나중에 만나보니까 노랑머리에 알바하는 청년쯤 되었답니다. 거래 서류가 완벽했고 검찰 조사 양식도 아주 감쪽같이 속였답니다. 전재산을 잃은 이 청년은 어쩝니까. 러시아의 푸틴부터 화인 맞은 양심이 많습니다.
1. 구원 때문에 주목하는 양심입니다.
(30-1절) 지성인인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왜 이렇게 미움을 받는지 천부장이 이해를 못합니다. 그래서 진상을 알아보고자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합니다. 이 공회는 변질되었습니다. 의장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로마는 산헤드린 공회의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였고 사형 판결의 권한도 부여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예전에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습니다. 스데반을 죽인 공로를 인정 받아서 산헤드린 공회원이 되었습니다. 조건이 30세 이상에 결혼을 하고 자녀도 있어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와서 천부장, 유대인 최고지도자 등 다양한 무리들을 만납니다. 어떤 모습으로 만났습니까? 한결 같이 바울이 죄인의 모습으로 그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정답부터 말하자면 구원 때문입니다. 반면교사 삼으라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원로가 된 바울의 친구들도 보았을 것입니다. 공회 앞에서 선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을 수도 있겠지만, 당당히 그 앞에 서서 말합니다. 바울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 때문에, 그의 관심이 오직 구원에 있기 때문에 쳐다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양심은 내 죄를 주목하고 십자가를 주목하여 구원을 주목할 때 바르게 작동됩니다.
아버지 마을님 나눔에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보이스피싱 당한 딸의 구원에 주목한 아빠는 평생 모은 돈 없어진 것보다 네 사회생활 적응 때문에 너무 우려된다고 아이들을 불러다 놓고 세 가지를 말해주었다고 하십니다. 첫째, 다른 사람들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간접 경험을 위해서라도 들어야 한다. 둘째, 아빠가 10분의 1을 채워줄테니 다시 시작하다. 큰 헌금을 하고 남을 도왔다고 생각하겠다. 실은 하나님이 네게 주신 돈이니 앞으로 온전한 십일조를 하렴. 셋째, 1년 먼저 들어온 직원에게 따돌림 당해서 네가 많이 힘들어했는데 따돌린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그를 긍휼히 돌아보라고 말해주지 못한 것을 회개한다. 너는 5개월 만에 정규직이 되었는데, 그 사람은 끝까지 계약직으로 있다가 퇴사한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쓰였다.
- 사람을 만날 때 무엇에 주목하고 있나요? 구원인가요, 겉모습인가요?
- 믿기 전 옛 동료들을 만난다면 내 모습이 초라해보이지 않겠습니까?
2.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는 양심입니다.
(1절) 형제라고 부르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너무 바쁘니까 형제들아 합니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참 중요합니다. 양심은 함께 보다라는 뜻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같은 생각, 공통적인 깨달음이 양심입니다. 내 속에서 옳은 일과 그른 일을 분간하고 그릇된 일에는 불편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양심입니다. 학습되거나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핑계치 못하게 우리 마음에 심어놓으신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모든 세상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공통된 기준이 양심입니다. 누군가를 배신하는 행위가 찬양받는 경우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양심에 따라 선한 일인지, 나쁜 일인지 스스로 알 수가 있습니다.
범사에 양심을 따라 주를 섬겼다는 말이 내 속에 기준에 따라 한 치의 그릇됨도 없이 섬겼다는 뜻일까요? 그래서 이 본문을 잘 봐야 합니다. 헬라어 아가도스라는 단어는 헬라어 토브와 같은 단어입니다. 창세기 1장에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바로 토브입니다. 도덕적인 선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에서의 선함이 바로 양심입니다. 우리 속의 양심은 어떻습니까? 제대로 작동합니까? 다 무너져내렸습니다. 당장 나를 봐도 양심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합니다. 내가 행하는 일이 나쁜 일임을 알고도 양심과 타협해서 기준선이 모호해집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기준이 모호해집니다. 잘못된 일을 하면서도 시켜서 했다는 핑계를 댑니다. 하늘이 열려서 말씀이 특별히 임하지 않았다면 평생 남편 탓, 시어머니 탓을 하면서 합리화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환경에 장사가 없습니다. 그 환경에 따라 양심이 달라집니다. 요즘에는 법까지 그 경계가 모호해졌습니다. 낙태법이 정당화되고 남성과 여성의 기준까지 사라집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고 알아도 내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이 양심의 현실입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하시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가 없습니다. 0.84에서 0.81로 출산율이 또 줄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선한 양심은 그 기준을 우리 속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말씀에 두는 양심이 성령의 양심입니다. 나를 주목했을 때 내가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인지를 깨달았다면, 기준을 밖에 두는 것이 성령의 양심입니다. 성령의 황홀처럼 내가 틀렸음을 인정되면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성령의 양심입니다. 내 판단이 맞다고 하는 사람은 그 판단이 맞을지라도 조심해야 합니다.
양심에 따라서 섬겼다라는 단어는 시민으로 합당하게 행하다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시민으로 범사에 성령의 양심과 말씀이 내 판단의 기준 삼는다는 것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하나님 옆에 각주가 있습니다. 백성 노릇하였노라라는 각주가 붙어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보고 함께 알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섬겼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이냐, 주인이냐 늘 생각합니다. 그러나 종이나 주인은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닙니다. 종은 착해야만 하고 아들은 마음대로 합니다. 주인이 보기 좋은 것은 아들이니까 좋은 겁니다.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입니다. doing의 문제가 아니라 being의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 관계가 안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보고 함께 아는 성령의 양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착한 것이 양심이 아니고 주님과 함께 보고 듣는 것이 양심입니다. 바울이 수많은 무시와 조롱과 매질 속에서도 간증하며 복음 전하는 것도, 자신의 양심과 생각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따라 주님과 함께 아는 공통의 지식으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곧 대선이 있습니다. 우리가 시민으로 합당하게 행해야 합니다. 성령의 양심에 따라서 말씀에 따라서 합당하게 해야 합니다. 철학이든 심리학이든 사회학이든 인간이 타고난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개념이 대세인듯합니다. 어떤 점에서는 이런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100% 타락한 죄인입니다. 이런 개념을 악용하는 것이 인간의 부패를 드러냅니다. 죄를 인정하는 데서 멈춥니다. 그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만 가지 이유를 다 찾아서 합리화합니다. 예수만 믿으면 심플한데, 이유 찾는 것으로 인간이 일생 고민합니다. 숨는 것은 성령의 양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세워서 동성애를 막고 생명을 보호하면서 말씀의 원리를 수호할 수 있는 사람에게 시민으로서 합당히 투표해야 합니다. 산헤드린 공회원이 아무도 이 이야기를 안 듣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이런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양심이 무너져내리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가 옳은 것을 압니다. 일부러 잊으려고 하는 것이지 양심이 하나님의 법이 옳은 것은 다 압니다. 푸틴도 다 알지만 양심이 무너져내려서 저렇게 침공을 합니다. 푸틴만 그러는 것이 아니고 이미 2남 1녀가 있는 친모가 재혼을 해서 4명의 아이를 낳았답니다. 그런데 전 남편과 낳은 딸이 계부로부터 9살부터 21살까지 성폭행을 무차별로 당하게 해서 낙태를 두 번이나 시켰다고 합니다. 양심으로 말하면 푸틴이 나쁠까요, 계부가 나쁠까요, 친모가 나쁠까요? 기가 막힙니다. 자기의 양심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 내 양심이 알면서도 합리화시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 나의 판단 기준은 돈, 체면, 고향, 외모 중 무엇입니까?
- 여러분의 양심의 기준은 자기 옳음입니까, 하나님 말씀입니까?
3. 그를 치는 것이 아닌 나를 치는 양심입니다.
(2절)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생각하면서 모든 판단 기준을 율법으로 삼았습니다. 입을 치라는 것은 최고의 인격 모독 행위입니다. 손등으로 뺨을 때리는 것입니다. 이 수치를 예수님이 미리 다 당해주셨습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바울을 눈 뜨게 해준 아나니아도 아니고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아나니아도 아닙니다. 11년이나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으로 재임했던 자입니다. 탐욕스럽고 포악하고 성질이 급하고 잔인한 사람이었고 십일조를 횡령했다고 합니다. 66년에 로마와 유대 사이에 전쟁이 나자 헤롯대왕의 궁전 뜰 안에 숨어있다가 걸려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아나니아가 분노하여 사람을 시켜 바울을 치라고 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아나니아를 치셨습니다. 모든 판단 기준이 내가 됩니다. 모두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싶어하지 않으세요?
바울은 이런 아나니아를 향해 회칠한 담아라며 하나님이 너를 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회칠한 무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시체를 봉분 없이 묻고 시체를 밟으면 부정하니까 회칠을 해서 무덤을 표시했습니다. 허술한데 겉으로는 완벽해보이는 모습이 회칠한 담의 모습입니다. 회칠한 무덤은 시체인 줄은 다 압니다. 회칠한 담은 안팎이 서로 보이지 않습니다. 나도 남도 하나님께 못 가게 하는 것이 회칠한 담입니다. 회칠한 담은 거짓입니다.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의 대제사장들에게 회칠한 담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수없이 당했지만 아무에게도 안 한 가장 심한 저주의 말을 하나님과 가장 가깝다는 대제사장에게 합니다. 이중인격, 거짓말쟁이라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안 되죠.
(4-5절) 회칠한 담을 무너뜨리려면 내 입을 쳐야 합니다. 성령의 양심은 나를 쳐서 내 약점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갑자기 공회가 소집되었기 때문에 대제사장의 의복을 갖추지 못해서 못 알아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짐승처럼 대했지만 바울은 끝까지 형제로 불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의 양심은 내 잘못을 시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자기가 그렇게 이야기를 했지만 대제사장인 줄 모르고 했다고 말합니다. 중독자의 회복은 내가 중독자임을 시인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가장 위대한 고백은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회칠한 담이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양심과 성령의 양심이 다른 부분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양심은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옳다고 여기면 거침이 없습니다. 바울도 여러 가지 매맞는 경험을 했습니다. 확신이 지나치면 자기는 틀리면 안 되는 존재가 됩니다. 나도 모르게 나도 회칠한 담이 되어있습니다. 가는 길이 비슷해보여도 모두가 권세를 가지면 어느 순간 그 입을 치라가 됩니다. 안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이 문제가 생기면 믿는 사람이 잘못이고, 믿음이 있는 사람끼리 문제가 생기면 더 믿음이 있는 사람이 잘못입니다. 창업주들이 예수 믿기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해도 주님 못 만나면 창업주가 되어서 그 입을 치라가 전공이 됩니다. 푸틴의 아랫사람 중에 어떤 이가 직언을 했는데 푸틴이 듣지를 않았답니다. 이야말로 성령의 양심이 아니라 악한 양심입니다. 성령의 양심은 실수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이 실수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일임을 깨닫고 나를 치고 그곳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푸틴이 유턴하기를 기도합니다. 우크라이나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양심이 너무 하잘것없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양심이 무너져서 그렇지 양심은 다 있습니다.
- 내 죄악을 숨기는 방패로 삼고 있는 것은 유전입니까, 상처입니까, 질병입니까?
- 죄악임을 인정하고 돌아서야 할 때 남의 입을 칩니까, 내 입을 칩니까?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군의 해외 대피 지원을 거절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피 지원이 아니라 적군과 싸울 탄피가 필요하다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켜내는 세계를 위한 전쟁이라고 했습니다. 3번이나 암살의 위험이 있었습니다. 화상회의로 여러분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달라고 유럽연합은 우리와 함께 할 때 더 강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러시아 대표가 오니까 집단퇴장하는 것으로 러시아에 대한 반대의견을 표했습니다. 우리들교회도 선교 헌금을 보냈고 여러 통로를 통해서 난민을 돕고자 합니다. 푸틴이 거대해보여도 세계는 젤렌스키 한 사람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하나로 모이고 유럽이 하나로 모이고 세계가 하나로 모입니다. 세계를 위한 전쟁이 맞습니다. 지도자 한 사람은 정말 중요합니다. 아프간 대통령은 도망갔습니다. 그 사람은 세계가 아프간을 주목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합니다. 화인 맞은 양심도 있지만 성령의 양심 가진 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양심을 가지시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하나님은 너무 멀리 있습니다. 함께 보고 함께 아는 공통적인 지식은 목장에 있습니다. 천국을 가시적으로 보이는 곳이 목장입니다. 여기서 함께 보고 함께 듣고 함께 아는 것이 양심입니다. 날마다 큐티하면서 묻고 가는 것이 성령의 양심을 가지고 가는 최고의 지식입니다. 날마다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하고 목장 가면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A
사람 만날 때 사람이 말하는 것을 많이 본다. 말 한마디만 들어도 구원의 확신이 있는지 배려할 마음이 있는지가 느껴진다. 사람의 마음보다는 냉철하게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약점이 없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 같이 들려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은혜가 쌓이고 나서부터는 좀 더 분별하고 마음을 천천히 열려고 하는 것 같다. 이 사람이 믿음 안에서 자신의 죄인임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인가 판단한 후에 아닌 것 같으면 냉담해지는 것 같다.
최근에 믿음이 부족한 사람을 너무 냉담하게 대하는 것 같다는 평을 받았다. 사람을 판단하는 도구로만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찔렸다.
T
남자 여자 다르다. 여자는 외모. 사귀고싶은지 아닌지로 갈린다. 남잔 다 똑같다. 누가돠엇든 친해지려고 한다. 예민하거나 싫어하는 건 없나 좀 보려한다. 구원의 확신이나 이런건 좀 나중에 보려고한다.
나도 위선적인걸 안좋아한다. 왜냐면 내가 스스로 그렇다. 내 스스로 싫어하는 부분이라서 그렇다. 나도 생각해보면 착한척한다. 그러기 싫은데 그런다.
최근에 있엇다. 롤을 안한지 6개월. 절제가 안되니까. 촤근 친구랑 내기를 해서 다시 한번햇다. 하다보니 슬슬 다시 하게 되서. 음란물을 땡길때 합리화하는 것. 적당히 하는 건 상관없는데 정말 절제가 안된다, 지면 너무 절제가 어렵다. 혈기가 막 올라오는 문제
U
사람을 만나면 대화해보면 생각을 알수잇다. 그것으로 판단하고 급을 나눠 생각한다. 친해지고 싶다 같이있고 싶지않다. 속된말로 선비스타일은 싫어한다. 깐깐한 사람. 그러다보니 구원으로 보진 않았다.
학폭때도 그 심리가 있던것같다. 나와 다른 친구들은 놀면서 지내는데 다른 사람들은 왜 받아들이지못하고 넘기지 못할까. 물고늘어질까 하는 게 많이 불편했다. 또 싫어하는 것 = 위선적인것.
보이스피싱을 당할뻔랬다. 전화와서 큰 일 난것처럼하여 속아넘어갈뻔했다.
담배가 진짜 어렵다. 어떻게든 안 끊을 이유를 찾게된다. 합리화가 정말 많이 된다. 교만은 끊임없이 올라온다.
기도제목
김태석
- 동생 코로나 확진. 사건으로 다시 교회 올 수 있도록.
- 다음주 목장 참석할 수 있도록
유다니
- 믿음이 생길 수 있도록
- 요즘 매일 큐티가 싫어지는데 그래도 붙어갈 수 있도록
안식
- 면담 잘 받고 어떤결과라도 순종할 수 있도록 감사할 수 있도록
- 약속을 줄이고 혼자 집중 할 시간 확보 할 수 있도록